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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예는 간데없고 욕정의 흔적만이 남아있는 권번.
"기예는 간데없고 욕정의 흔적만이 남아있는 권번." 내용보기
‘문화의 길 총서’라고 해서 우리 문화 전반에 대해서 주제별로 알아가는 책 인줄 알았다. 그렇다고 내가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의 느낌과 아주 다른 것도 아니다. 비록 인천이라는 지역을 매개로 삼아 그 지역문화를 통해 우리의 근현대사를 돌아보는 것이었기에, 특별히 인천과 관계되는 것을 제외한다면 특정한 주제를 창으로 삼아 우리의 문화 전반을 들여다본다고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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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의 길 총서라고 해서 우리 문화 전반에 대해서 주제별로 알아가는 책 인줄 알았다. 그렇다고 내가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의 느낌과 아주 다른 것도 아니다. 비록 인천이라는 지역을 매개로 삼아 그 지역문화를 통해 우리의 근현대사를 돌아보는 것이었기에, 특별히 인천과 관계되는 것을 제외한다면 특정한 주제를 창으로 삼아 우리의 문화 전반을 들여다본다고 해도 무방하다. 이 책 [권번]은 기생에 대한 이야기이다. ‘기예는 간데없고 욕정의 흔적만이 남은 권번이라는 부제가 말해주듯 권번의 등장은 우리가 알고 있는 기생의 성격을 변하게 만들었다. 바로 일제강점기에 일어난 이야기이다.

 

   우리는 기생이라고 하면 우선 황진이를 떠 올린다. 십 수년 전인가,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만나고 싶은 여자부문에서 1위를 차지했다는 얘기도 들은 적이 있다. 송도3절이라 불린 황진이를 생각하면 기생이란 고상한 이미지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이런 이미지를 주는 기생이 조선시대만 해도 많이 있었다. 허균과의 사랑으로 이름을 알린 매창, 조선중기 사대부인 최경창과 정을 나눈 홍랑, 그리고 촉석루의 논개에 이르기까지.. 그러다 어느 순간 기생은 우아하고 고상한 이미지에서 화류계의 이미지로 바뀌게 된다. 그 매개가 바로 권번이었고, 이는 식민지시절 일제가 치밀하게 계산한 문화침략중의 하나라고 한다. 그것이 군사독재시절 기생관광을 거치면서 대중의 부정적인 이미지는 더욱 깊어 졌다.

 

   술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 시작되었다. 제사를 지내거나 축제에는 반드시 술이 있었고 그 자체로 신성함과 즐거움의 상징이 되었다. 그러다 전통시대 술집이 등장하면서 신성함 보다는 즐거움이 부각되었고, 그 즐거움을 강화 시키기 위하여 등장 한 것이 바로 기생이었다. 전통시대 기생은 예인(藝人)이었다. 잔치나 술자리에서 가무악이나 시서화로 흥을 돋우는 일을 직업으로 삼은 여자였지만, 가혹한 수련과정을 겪고서 비로소 술자리에 나올 수 있었다. 흔히 우리가 알고있는 조선시대 명기들의 조건은 미색보다도 전문 예인으로 서의 소양이었다. 또한 그런 전문 예인의 소양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해학과 말주변이었다. 기생을 해어화(解語花)라는 별칭으로 부른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잔치나 술자리의 성격과 분위기를 파악하고 손님의 성향을 간파하여 분위기에 맞는 해학과 말주변을 지녀야 말 그대로 해어화 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기생이 이제는 없다. 지금의 기생은 매춘부, 성매매 여성과 동의어가 되었고 우리는 그들을 에둘러 직업여성이라고 부른다. 어쩌다 그렇게 되었을까? 이 책의 저자는 그 출발점을 일제시대 권번의 성립에서 찾고 있다. 권번(券番)이란 일제강점기 기생조합의 일본식 명칭이다. 대한제국 말기인 1908년 기생단속령이 공포되면서 기예가 있든 없든 기생들은 모두 권번이나 조합에 적을 두어야 했다. 이로써 기생과 창기간의 경계가 무너졌고 기생은 창기로 취급 받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런 권번의 역할은 직업적 기생을 길러내던 교육기관이자, 기생의 활동을 관리하던 조합이기도 했으며, 기생들이 손님에게서 받은 화대를 관리하고 또 기생들의 세금을 정부에 받치는 중간 역할을 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명기의 의미를 재해석하기 위해 노력했던 기생들이 있었으니 바로 인천 용동권번 출신의 기생들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러나 정확한 자료가 없어 당시의 신문기사를 위주로 하고 여타지역의 권번을 참고하여 용동권번 기생들의 삶을 희미하게 나마 복원했다. 지금은 그 흔적만이 돌계단으로 남아있고 부도유곽으로 출발한 욕정의 흔적만이 뚜렷하다고 한다. 식민지시대와 미군정, 그리고 군사정권을 거치면서 인천 용동권번은 정책에 따라 활동지역을 확장하고 영업방식을 바꾸어 나갔다. 권번에서 유곽으로, 미군의 주둔에 따라 기지촌으로 그리고 군사정권이 들어선 이후에는 집창촌인 엘로우 하우스로, 어찌 보면 우리나라 화류계의 역사가 그 자취 속에 녹아 있는 셈이다.

 

   기생이라는 주제로 시작하는 이 책은 권번이라는 프리즘을 통하여 뒤틀린 우리의 근현대사를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시리즈를 다 읽을 생각은 없지만, 흥미 있는 주제가 몇 가지는 있다. ‘다방이 그렇고 파시가 그렇다. 특정한 주제를 따라 우리의 근현대사를 생각해 보는 것도 또 다른 역사읽기란 생각이 든다.

k*****1 2017.07.04. 신고 공감 6 댓글 2
리뷰 총점 종이책
일제 강점기 인천의 권번 이야기!
"일제 강점기 인천의 권번 이야기!" 내용보기
기녀들을 달리 일컫는 말로 말을 이해할 수 있는 꽃이란 뜻의 '해어화(解語花)'란 표현이 있다. 남성들의 연회나 모임에 참석하여 분위기를 돋우면서, 그 자리에 마치 꽃같은 역할을 했다는 뜻에서 붙여진 것이다. 비록 신분적으로는 천민이었으나, 당대의 지식인들과 더불어 교양을 발휘하는 역할을 했던 것이다. 하지만 기녀들은 조선 후기를 지나, 일제 강점기에 접어들면서 그들의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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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녀들을 달리 일컫는 말로 말을 이해할 수 있는 꽃이란 뜻의 '해어화(解語花)'란 표현이 있다.

 

남성들의 연회나 모임에 참석하여 분위기를 돋우면서, 그 자리에 마치 꽃같은 역할을 했다는 뜻에서 붙여진 것이다.

 

비록 신분적으로는 천민이었으나, 당대의 지식인들과 더불어 교양을 발휘하는 역할을 했던 것이다.

 

하지만 기녀들은 조선 후기를 지나, 일제 강점기에 접어들면서 그들의 사회적 역할도 점차 하락하게 되었다.

 

조선시대의 기녀들이 예인으로 그 능력을 인정받았던 반면, 일제 강점기에 접어들면서 이들은 조합을 만들어 활동해야만 했다.

 

기생들의 조합이 바로 권번이었고, 권번은 기생들의 교육 기관이기도 했다.

 

말이 조합이지, 실제로는 권번에 소속되지 않고서는 활동을 할 수 없도록 만들어 그들을 관리하기 위한 수단이었다고 하겠다.

 

일제 강점기에는 전국 각지에 적지 않은 수의 권번들이 존재하고 있었고, 개항장이었던 인천에도 권번에 소속된 기녀들이 활동하고 있었다.

 

이 책은 인천에 있었던 용동권번을 비롯한 권번들의 상황과 활동 내역들에 관해 신문 등 당시의 자료들을 근거로 탐구한 책이다.

 

인천에는 '용동권번'이 가장 큰 규모를 형성하고 있었고, 이들의 활동이 곧 인천 화류계의 역사였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일반적인 권번의 교육 프로그램은 물론 인천에서 활동했던 기생들의 구체적인 면모까지 밝혀놓고 있어, 근현대 문화사를 탐구하는데 좋은 자료가 될 것이라고 생각된다.

 

해방 이후 미군 기지 주변의 기지촌의 형성도 결국 이와는 무관하다 할 수 없으며, 인천 화류계를 대표하던 '엘로우 하우스'도 그 뿌리가 닿아있다고 평가되고 있다.

 

비록 부끄러운 역사이지만, 그 실체를 어느 정도 밝히는 것이 중요하기에, 그런 점에서 이 책이 지니는 의미는 충분하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차니)

 

* 개인의 독서 기록 공간인 포털사이트 다음의 "책과 더불어(與衆齋)“(https://cafe.daum.net/Allwithbooks)에도 올린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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