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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여동생은 어렸을때부터 물건 분해하기를 참 좋아했습니다. 제가 아끼는 시계도, 라디오도 모두 여지없이 분해하고는 씩 웃으며 "언니, 미안해~ 내가 원래대로 해놓으려고했는데 너무 복잡해서 못고치겠어.." 라고 말하는동생이 밉기도 했지만 그래도 귀여웠습니다. 그대로 과학상자다 발명대회다 초등학교 내내 꼼지락 거리면서 보내고 중학생이 된 동생이, 부모님께 "저 과학자가 되고싶어요." 라고 한뒤 들은 대답은, "과학자? 그거 얼마나 어려운데~ 다 뜬구름 잡는 소리야~ 다른거해라" 였습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나니 "뜬구름 잡는 소리" 가 얼마나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해 주었는지, 그리고 그 뜬구름 잡는소리가 사회의 모든 구성요소와 어떻게 연계되어 어떻게 사회에 영향을 주었는지 알수 있었습니다.
사실, 이책은 그리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닙니다. 양자역학이다 상대성 이론이다.. 하는 이론들을 읽다보면 머리가 뱅글뱅글 도는 느낌이었지만 뉴턴부터 도나 해러웨이까지.. 약 350여년의 과학탐험을 하면서 말로는 설명할수는 없지만 350년간의 역사탐험을 하고 온 기분이었습니다. '과학탐험' 이기도 했지만, '역사탐험' 이기도 했습니다.
처음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저자분들의 독특한 약력 덕분이었습니다. 서울대 물리학과, 카이스트 공학과를 나오신 과학도분들이 현재 철학과 교수를 하고있는다는것이 무척이나 의아스러웠죠. 제가 보기엔 동떨어져 있는, 너무나 다른 두개의 학문이 공존한다는 사실 자체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과학과 인문학, 사회학, 심리학, 정치학 - 대부분의 학문은 동떨어진것이 아닌 하나되어 발전하는 학문이라는것을 알게되었습니다.
진화론과 창조론의 대립만해도, 과학문제가 아닌 사회적문제로 종교와도 관련되어 다양한 비판과 대립이 있었고 이 문제는 최근까지도 이어져 그랜드캐년 진화론/창조론 등의 문제로 이어지고 있고, 우생학의 경우 정치와 결부되어 많은사람에게 고통을 주는데 무기로 쓰이기도 했지요.. 또한 포스트모던과 과학의 대립은 과학전쟁으로 이어져 다른학문과 과학은 연관되는것인지, 과학은 순수한 사실인지에대해서도 수많은 의견이 나왔고, 대립하게 되었죠. 또한 과학은 왜 남자만이 하는가, 여성이 더 잘할수있는 부분이 있지 않는가, 하는 과학의 페미니즘에 관한 내용도, 과학이 사회를 통제해야 하는지, 사회가 과학을 통제해야 하는지 최근 황우석박사님 일로인해 체감하게된 이문제도 순수한 과학의 문제만은 아닐 겁니다.
이 책은 제게 어떠한 절대적인 지식이나 정보를 주기보다는, 그동안 과학이 걸어온길들을 되짚어볼수 있게 해주었고, 앞으로 과학이 어떻게 나아가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 볼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비록 남은건 수많은 생각들과 그러한 생각들의 결론을 내려야하는 과제 뿐이지만 그래도, '그냥과학' 이 아닌 진보하고, 발전하고, 다른학문들과 발맞추는 과학의 새로운 측면을 알게되어 과제를 해결하는 내내 기쁠것만 같습니다. 통(通) 하였느냐,
저는 이 책을 읽고 과학과 사회, 문학과 철학, 정치와 심리학등의 여러 학문과 통할수 있었습니다. 과학 이야기지만 과학 이야기만은 아닌 이 책, 앞으로 더 많은분들이 통(通) 하시고, 우리의 과학의 미래에 대해서 생각할수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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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을 읽고난 느낌은 이상욱님, 홍성욱님, 장대익님, 그리고 이중원님께 감사하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 참으로 많은 노력과 깊은 고증으로 탄생된 책이었다. 쉽지 않은 분야들 그리고, 이해만을 위해 깊이와 노력이 무척 필요했으리라는 생각을 책을 읽는 내내 하였다. 내가 전공한 생물학에서 부터 물리, 천체, 로봇까지, 다양한 분야의 석학들에 대한 이야기가 가득가득하엿다. 우리는 흔히 과학자라고 하면 떠올리는 사람들이 있다. 아인슈타인, 뉴턴정도.... 하지만 이들의 이론은 장점도 있고 획기적이었지만, 오류도 있다. 수많은 숨은 아니 정확히 그 분야의 최고이나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석학들에 의해 지금의 학문들이 모두 발전하게 된것이다. 우린 너무 쉽게 그들을 기억속에서 지우고 있다. 그 분들의 노력과 아이디어 그리고, 천재성을 이책에서는 옥석을 가리듯이 하나하나 끄집어내어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었다. 작가들 모두 물리학과 기계공학을 전공으로 하였는데도, 생물학 분야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설명이 새삼 놀라웠다. 특히, 일반 자연과학의 선을 뛰어넘어 인문학까지 두루 섭렵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이책에 얼마만큼의 노력이 들어있을지 감히 집작이 간다. 사실 우리는 스스로를 문명인 교양인이라 칭하지만, 과연 우리는 문명인이고 교양인일까? 이러한 책이 우리를 교양인의 반열에 동참하게 도와주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조금은 어렵게 다가올수 있지만, 백지상태에 그림을 그리듯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최소한 과학잡지에서 나오는 몇몇 이론들에 조금은 거부감이 사라질듯 싶다. 특히, 나처럼 과학에 관심이 많다면 더욱더 좋은 책이 될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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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좀 어려운 부분도 있었고, 상당히 흥미로운 부분도 있었다. 신경을 곤두세우고 읽어야 했었는데, 이유는 상당히 무식하기 때문이었으리라. 어떤 부분은 명확한 내용을 잘 알지 못해서 안개 낀 사진을 바라보는 느낌이었고, 이미 접해서 알고 있던 부분에서는 괜히 신이 나기도 했었고. 그 동안 나 자신이 얼마나 인문학, 사회학, 심리학, 경제경영학쪽 책에만 눈독을 들여왔는지 쉬이 느낄 수 있었다. 너무나 무지했던 나자신이 어쩐지 쳐량해지기도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유클리드 기하학의 개념이 생각나지 않고..(문과이었기 때문일까? 들어본 기억은 나는데..) 비유클리도 기하학은 더 모르겠고.
그러한 것들의 기본 개념이 보다 체계적으로 머리속에 정리되어 있는 사람은 아주 맛있게, 또 재미나게 책을 읽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그런 부류의 사람은 아니었지만, 책을 읽으며 그래도 나름 기분 좋았던 이유는 깨달은 바가 많다는 것. 여태까지 나는 그래도 과학적인 것들에 어느 정도 관심을 갖고 살아왔다고 느꼈었는데, 이런. 완전 잼뱅이라니.
집중해서 읽다보니, 뭔가를 이해하고 있다는 기쁨도 새록새록 올라오고. '과학'을 주제로 한 글에 그토록 열심을 보이는 나자신이 대견스럽기도 했다..^^
책을 읽으면서도 생각했고, 읽고 나서도 생각한 것은 다시 한번 더 읽어봐야겠다는 것.
얼마 전 알렉산더라는 영화를 보고 느낀 것이 있는데, 그것은 우리가 단 몇 줄로 요약해서 배우는 역사의 결과물들도 한 인간이 여러 과정을 거치면서 이룩해 놓은 것이라는 거. 여태까지 난 역사속의 그들이, 혹은 과학책 속의 그들이 만들어 놓은 업적에만 집중했을 뿐 그네들의 사상이나 생각, 어려움, 시련등은 전혀 관심밖의 일로 치부해버렸던 것이다. 영화를 보고 느꼈던 것을 이 책을 통해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오직 결과물만을 생각하며 그 사람이 왜 그러한 일을 했었는지, 그러한 것들을 이룩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련들을 겪어야 했을지 등은 생각도 않은 채.. 탁월한 능력을 지니고 태어난 그들을 무의식적으로 그저 마냥 동경해왔던 것이다.
변해야 한다. 현대인들은 다들 무지하다고 했다. 자신의 분야가 아니면 잘 알지 못하므로.
한 우물만 파는 것이 좋은지, 아니면 두루두루 파는 것이 좋은 지에 대한 판단은 본인의 몫일테지만 이 책은 그러한 것들과는 상관없이 어렵더라도 한번씩 읽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해서, 세상이 그만큼 넓게 보인다면 까짓꺼 백권이라도 더 못읽겠는가.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으므로, 우리 이 날부터 앞으로 살아갈 날까지 많은 것들을 알기 위해 '노력'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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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과학의 역사를 인물 중심으로 알기 쉽게 소개하고 있는 책으로 이 책에서 소개하는 인물들은 비단 과학자만이 아니다. 과학에 생각하는 힘을 보태고 과학에 세계관을 정립하는데 영향을 미친 철학자에서부터, 철학자인지 과학자인지 구분하기 애매한 과학철학자, 과학자들에 대해서 전반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그렇다고해서 이 책의 깊이가 아주 얇지만은 않다. 과학에 대한 지식이 없어도 흥미만 있다면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으면서 한편으로는 과학학에 대한 광범위한 맛보기로서 pre-입문서의 역할은 충실히 수행한다.
크게 전반에는 근대 과학의 세계관에 영향을 미친 과학철학자/철학자와 그 주변인물들 및 사건을 사회적 맥락에서 설명한다. 중반에는 과학사회학의 흐름을 걷는 과학사회학자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종반에는 과학과 우리 사회/문화의 상호관계를 살짝 이야기한다. 비교적 최근의 역사이기 때문에 따분하거나 지루하지 않게 과학과 사회의 관계를 되새길 수 있으며 최근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일련의 사건들에 대입해 보아도 좋을 듯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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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온국민을 충격으로 몰아넣었던 황우석 박사의 사건을 떠올릴 때면 마음이 참 씁쓸하다. 국민적 영웅에서 순식간에 희대의 사기꾼으로 추락한 황 박사. 그가 정말로 연구결과를 조작한건지 아님 마녀사냥에 억울하게 누명을 쓴 건지에 대한 진실여부는 여전히 속시원히 밝혀지지 않은 터라 왈가왈부하기 조심스럽지만, 그가 일부 인정한 배아연구의 윤리적 문제에 대한 논란은 나로 하여금 철학이 사라져가는 과학의 위험성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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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에 '과학자'를 꿈꾼 사람들은 많다. 나 역시 그랬다. 중고등학교를 거치면서, 막연히 '과학자'가 되기 보다는, '기술자'가 되어야 겠다고 조금 비껴섰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과학과 기술'에 대한 관심과 열정은 계속 간직하고 있었다.
대학에 와서도 간간이 '과학'과 '수학'에 관한 책들을 읽곤 했다. 주로 '위인전'이거나 '자서전'이거나 '과학의 역사'에 관한 책들이었다. 퀴리부인으로 알려진 마리 퀴리에 관한 책 [마리 퀴리]를 읽고 오래 감동했던 기억이 있다. 그 당시 폴란드에서는 비밀 정치써클에서 [물리학]을 몰래 공부했다는 대목과 소녀 시절 구두굽이 닳도록 춤추며 놀았다는 대목이 아직도 인상깊게 남아있다. 저자는 잘 생각이 안나지만 [인간 등정의 발자취]라는 책도 꽤 인상적이었다. 양자역학에 관한 책도 꽤 여러 권 들여다 봤던 기억이 있다. 하이젠베르크의 [부분과 전체]도 기억에 남는 책이다. 과학의 천재들을 다룬 책들도 여럿 있었다. 대부분 괴짜이거나 기행을 일삼는 특이한 성격의 소유자들이었다는 인상이 강하게 남아있다.
하지만, 정작 '과학의 역사'와 '과학의 철학'에 관한 내용을 접해본 건 그리 오래되지 않는다. 이 책의 저자들이 다닌 서울대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이라는 게 처음 생겨날 즈음이었나 보다. 아는 선배 몇이 그 과정에 응시하려고 준비한다는 얘길 들으며, 과학사는 알겠는데, 과학철학은 뭐다냐, 그리고 과학사란 게 뭐 대단하게 들이파야 할 꺼리라도 될까, 그거해서 밥먹고 살 수는 있을까, 혼자 그렇게 생각했었다. 과학의 세계에 인문학적이고 사회과학적인 틀을 들이댄다고 뭐가 나올까 싶었고, 그런 게 뭐 중요할까 싶었다.
그후로는, 사실, 먹고 살기에 바빴다. '과학'이고 '철학'이고 뭐고, 나 사는 거랑 상관없기는 매 한가지였다. 틈틈이 곁눈질하던 품목들에도 '과학'은 빠져있었다. 왜냐고? 고등학교 '이과'를 나왔고, 대학도 '공과'를 나왔고, '수학'도 잘했고, 물리/화학/생물/지구과학 기본 '과학' 과목들도 왠만큼 했고, '문과' 나온 '과학치'들과는 아예 비교도 안될 만큼 '과학적'인 소양이 탄탄하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철학책들에 가끔 나오는 '자연과학' 관련 사례들을 토론할 때면 하나같이 맹한 표정들을 짓곤 하던 문과생들이 한심했고, 그 때문에 오만을 떨 수 있어서 뿌듯하기도 했었다.
다시, 시간이 한참 흐른 지금, 곰곰히 생각해보면, 내가 '과학'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의 수준은 '초등학생' 대상으로 '과학'과 '미신'의 차이를 설명하는 그런 류가 아니었을까, 너무 단순화시켜서 과정은 빼고 결과만 달랑 늘어놓는 방식은 아니었을까, 우리는 '과학'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과거 중세시대나 르네상스 초기나 근대를 살던 사람들이 가졌을 법한 '미신'과 '풍문'과 '헛소리'들을 믿고 있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말하자면, '과학'을 '미신화'해서 믿고 사는 셈이다.
우주개발로 달에 사람이 오가는 세상에서 어떻게 아직도 '점성술' 따위가 사람들을 여전히 장악하고 있을 수 있는지 의아했던 적이 있다. 물론 지금도 그런 사람들을 보면 '뜨악'해하기는 마찬가지다. '진화론'이 아니라 '지적 설계론'이 맞는 거라고 우기는 일부 종교인들이 여전히 수두룩한 현상도 재미있는 대목이다. 종교의 핍박으로부터 인간 이성을 구원하고 물질적 풍요의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내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과학기술이 대량파괴 무기의 개발과 확산으로 인류 자체의 멸절을 가져올 지도 모른다는 사실도 섬찟한 아이러니다.
이 책을 읽으며 내가 '과학'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것들이 꽤 많다는 걸 느꼈다. '과학'은 그렇게 '과학적'으로 생겨나지도 않았고, '과학적'으로만 진행되지도 발전하지도 않았다는 걸 '과학사'의 숱한 사례들이 잘 보여준다. 그리고, 우리가 늘 자명하게 생각하는 '과학적 방법론'이나 '과학적 원칙'들도 정말 '그때 그때 달라요'라는 식인 경우가 태반이다. 오죽하면 칼 포퍼는 '반증 가능성'을 열어둔 것만이 '과학적'이라는 안쓰러운 방어책을 내밀었겠는가. '과학'과 '과학을 둘러싼 인문 사회적 맥락'이 그렇게 '과학적'이지는 않다는 결론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아무튼 모처럼만에 뇌가 분주해진 독서 시간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너무 바빠서 세목별로 다시 정리할 짬이 없다. 다시, 그럴 기회가 있을 것이라 믿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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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신문에 연재되었던 글을 책으로 만들었다. 신문 연재니까 글의 수준은 짐작할 것이다. 이 '짐작'이라는 단어에는 어떤 편견도 들어있지 않다. 거의 확신한다.
사상 없는 과학이 있을 수 있을까? 철학없이 과학을 할 수 있을까? 중세가 아닌 이상 과학 없이 철학을 할 수 있을까?
이 책은 과학과 사상에 대한 통시사이자 공시사이다. 그 낱줄과 씨줄을 자세히 살펴보면, 뉴턴, 아인슈타인, 양자이론, 생물학, 칼 포퍼, 토머스 쿤, 리처드 도킨스 우생학, 도나 해러웨이 등이 있다. 범박하게 얘기하자면, 과학에 대한 철학적 접근을 가볍게 살펴볼 수 있는 책이다.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통섭을 시도하는 독자라면 충분한 길잡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신문 기사 모음이라 약간 가볍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다.
아마, 이 글들은 황우석의 영향인 것 같다. 쭉 읽으면서 생각한 것이지만, 한겨레 신문을 읽는 독자들의 지적 깊이가 이 정도라면, 한국 사회에서 평균적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사는 보통사람들의 교양 수준은 너무 얕은 것은 아닐까, 라는 우려를 보내본다. 요점은 조금 가볍다는 뜻이다. 지면상의 문제도 있었을 것 같은데, 어차피 책으로 내자면 수정하는 과정이 들어갔을 터인데, 여전히 가볍다.
과학과 사상의 조우에 대해 가볍게 살펴 보기를 원하는 사람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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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이란것...수학이란것...어쩜 나와는 너무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살아왔다 앞쪽의 필자가 런던 대학교에서 세미나를 진행할때 철학과 대학원 세미나였는데도 학생 들이 물리,정치,생물,역사,심리,경제학등 물론 철학을 포함해서 학부와 대학원을 거치면 서 여러 분야를 넘나드는 유럽학생들을 설명했는데 나역시 좁은 전공분야와 취업에만 매 달린 우리학생들과 비교되는 부분에서 마음이 조금 그랬다.. 우리가 갖는 부담은 조금은 덜어지고 과학에 흥미를 느낄수 있을것이다 *아이작 뉴턴 - 자연은 수학으로 씌어진 책이고, 수학은 자연을 읽는 언어다 르다는 뿌리깊은 인간중심주의를 배격 들어 놓았을 뿐 아니라, 새로운 개념체계로 우리를 안내해 주었다 아무리 복자한 구조를 덧붙여도 원칙적으로 불완전성은 결코 제거될 수 없다 ` 수 있음을 밝혀냈다 로 일어날 수 있어야 한다 한다고 주장했다 반증시켜버릴 것이 아니라 그 이론이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일종의 `시간` 을 줄 필요가 있다 지 자연에 실재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 인간들이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를 상세히 분석 르와 탄저균 모두 변화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강조 이책을 보다보면 과학의 역사를 알수있고 그들의 지식을 배울수 있고 그들의 논쟁을 들 을수있다..과학뿐만이 아니라 철학,수학등 우리가 알고있는 것과 모두 연관지어져 있는 부분을 느낄수 있고 또 어렵게만 느껴졌던 과학이 어느새 그렇지만은 않은것을 느낄 수 있었다.조금더 친근한 마음과 궁금증..호기심을 제시하면 과학이란건 우리의 궁금증, 호 기심을 풀어줄 아주 재미난 학문인 것 같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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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귀찮아서 리뷰 쓰는 것도 미루고 있었지만 이 책에 대해서 한마디 하고자 한다.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서.
우선 책 자체는 취지나 구성면에서 흠 잡을 곳이 없다. 아주 간략하게 이론을 '소개'하는 것이기 때문에 쉽게 읽을 수 있다. 새로운 것이란 언제나 흥미롭게 다가오는 것이고 소개한다는 것은 그만큼 간략하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장대익이란 작가는 대체 뭐하는 사람인가? 김영사의 <진화론도 진화한다>를 그대로 우려먹은 내용이 아닌가? 사실 그 책도 한겨래의 원고를 거의 첨삭없이 편집해놓은 것이지만. 세번을 우려 먹는 것은 정말 작가로서의 양심에 위배되는 일이 아닌가 싶다. 스스로 아이디어의 고갈을 선포함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