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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이면서 종교가 아닌, 삶의 변화를 추구하는 동학-우리 학문으로서의 동학
"종교이면서 종교가 아닌, 삶의 변화를 추구하는 동학-우리 학문으로서의 동학" 내용보기
몇달동안 19세기 조선과 관련한 책을 읽으면서 요즘말로다 멘탈 붕괴할 사건들이 연이어 터졌던 이 시기에 이 혼란스러운 시기에 백성들은 대체 어디에 무엇에 의지하면서 버텼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안으로는 봉건제의 누적된 모순과 부정부패에 밖으로는 외세에 시달려야 했던 시기, 동학농민전쟁은 일어날 수 밖에 없었던 민중 봉기였던 것이다.   비단 동학농민 전쟁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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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달동안 19세기 조선과 관련한 책을 읽으면서 요즘말로다 멘탈 붕괴할 사건들이 연이어 터졌던 이 시기에 이 혼란스러운 시기에 백성들은 대체 어디에 무엇에 의지하면서 버텼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안으로는 봉건제의 누적된 모순과 부정부패에 밖으로는 외세에 시달려야 했던 시기, 동학농민전쟁은 일어날 수 밖에 없었던 민중 봉기였던 것이다.

 

비단 동학농민 전쟁만이 아니라, 19세기 조선을 이해하는데 동학을 빼놓을 수 없겠다는 생각과 함께, 그렇다면 19세기 동학은 오늘날에는 우리 속에 어떻게 자리잡고 있는 것인지 궁금해졌다.

'우리 학문으로서의 동학'이라는 제목을 보고는 학문이라고? 동학이. 우리에겐 '인내천(人乃天)'의 종교로 인식돼 있는 것을 '우리 학문'이라는 범주로 제시하고 있다.

19세기의 동학이 서세동점의 혼란 속에서 고통받았던 민중을 위로하고 민족적 자긍심을 드높인 한국 최초의 학문이자 철학사상이었고, 오늘날에는 경제적 이해관계에 얽힌 생명파괴,양극화 등 반생명적이고 반공동체적인 위기를 해결하는 대안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정말 그런가? 너무 상찬을 해놓아서 잠시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생각해보니 동학에 대해서는 익숙하게 여기고 있지만 정작 사상에 대해서는 인내천사상을 기반으로 했다는 정도 외에는 별달리 아는 것도 없었던 거였다.서양 사상이나 철학에 대해서는 신경써서 읽고 배우면서 우리 사상인데도 오히려 몰랐던 것인가.

 

읽으면서 파편처럼 흩어져 있던 역사속 동학 활동들이 조금씩 조합되기 시작했다.

농민운동을 비롯해서 3.1운동때 참여하고, 계몽지 '개벽'의 활동도 있었고. 유학의 폐해와 서학에 대항하며 민중 속을 파고들었다. 그래서 조선이 자생적 근대성을 성취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해주었지만 애석하게도 그 시도는 좌절되고 말았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렇게 보면 동학의 성격이 참으로 다면적이라고 할 수 있다.종교이자 학문이자 철학사상이라니. 그 의견에 동의여부를 떠나서 동학농민운동이나 천도교, 인내천이나 모든 이들이 내면에 한울님을 모시고 있다는시천주(侍天主) 사상 등을 감안해보면 종교적 성격도 분명히 엿보였다. 수행을 통해 삶을 개선하고, 인격을 삶의 방식을 변화시키는 신앙과 수행을 겸비한 우리 학문이라는 것이다.

 

이 책에는 상당히 솔깃해지는 내용들이 많아서 동학을 다시 보게 한다. 그래서 오히려 의심쩍었고  여러가지 단상을 떠오르게 한다. 

왜 이렇게 좋은 말만 있을까. 너무 이상적으로만 동학을 해석한 것이 아닐까.과연 이 정도로 동학이 사상으로서나 철학으로서나 학문으로서 체계와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정작 우리 현실 속에서 만나는 동학이라고 하면 안국동 근처에 있는 수운회관이 얼핏 떠오를 뿐인데 등등등... 

서구문명으로 인한 문제점을 치유하는 지혜를 제시해줄 것이라는 평가가 썩 와닿지 않았다. 아무래도 일단 지금 우리현실에서 동떨어져 있고, 실제의 동학을 접해보지 못해서 그런 것이다.

동학은 일제 강점기와 해방후 서구문화의 유입 속에서 우리사회와 단절돼 있었던만큼 동학의 실제를 보여주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동학이 갖고 있는 장점이나 저력은 인정하게 된다. 우리 역사 속에서 증명했던 그  역동성이나 실천성, 또 수행을 통해 삶과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개벽'정신은 분명 사회와 공동체가 자연과 평화를 지향하는 쪽으로 변화해야한다는 방향성을 지니고 있다.

 

e****0 2015.10.31. 신고 공감 0 댓글 2
리뷰 총점 종이책
동학 입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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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가끔 또는 나 같은 경우는 아주 많이 공허할 때가 있다. 스스로가 부끄러울 때가 있다. 그렇다고 이 부끄러움이 내면적 침참으로 해결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래서, 사회적 실천이 중요한 데, 문제는 그 실천이 개인적 성장으로 반드시 연결되지는 않은다는 것이다. 나의 경우는 특히 그렇다. 그래서, 고민한다. 사회적 실천과 나의 영적 성장을 동시에 기할수는 없을까? 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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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가끔 또는 나 같은 경우는 아주 많이 공허할 때가 있다. 스스로가 부끄러울 때가 있다. 그렇다고 이 부끄러움이 내면적 침참으로 해결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래서, 사회적 실천이 중요한 데, 문제는 그 실천이 개인적 성장으로 반드시 연결되지는 않은다는 것이다. 나의 경우는 특히 그렇다. 그래서, 고민한다. 사회적 실천과 나의 영적 성장을 동시에 기할수는 없을까? 이런 고민의 와중에 나는 동학을 만났고 이 책을 만났다.

 

이 책은 동학의 역사, 핵심 사상을 아주 간면하게 제시하고 있다. 간명함 속에는 삶에 대해서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그 무엇이 있다. 갑자기 맑스의 말이 생각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중요한 것은 세계를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변혁하는 것이라는 말. 마찬가지고, 중요한 것은 나를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변혁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나의 변혁과 세계의 변혁이 별개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어느 게 먼저냐고. 선후로 따질 문제도 아니다. '不然其然'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이성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있고 이해할 수 없는 것도 있다. 책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있고, 직접적 실천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있다. 侍天主. 바로 모심이다. 내 안의 한울을 모시는 것이고, 내 밖의 모든 한울을 모시는 것이다. 모심을 통해 내 안과 밖의 경계도 무의미해지고, 몸과 마음의 경계도 무의미해진다. 어떻게? 책을 통해서가 아니다. 실천을 통해서다. 동학을 수행의 실천을 통해서 나를 변혁시키고 세계를 변혁시키는 다시開闢의 학문이다.

 

우리는 지금 죽어라 일하고 돈 벌고 달려가도 있다. 혹시, 내가 지금 죽기살기로 가고 있는 곳이 어디일까? 의심이 생긴다면 이 책을 펼치자.   

g********m 2008.12.27.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동학의 다시 개벽은 나를 찾는 것, 생명을 찾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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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으로서는 동학, 종교로서는 천도교라고 한다. 이 책은 학문으로서 동학의 탄생과 그 변천과정을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으며, 도를 닦는 정신 수양의 방법론으로 동학을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21세기 물질주의의 시대에 실천하는 학문으로서 인간의 본연의 모습인 내면의 나의 모습을 찾는 다시 개벽의 학문으로서 동학을 소개하고 있다.   동학이 학문적으로 유불선 세 학문의 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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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으로서는 동학, 종교로서는 천도교라고 한다. 이 책은 학문으로서 동학의 탄생과 그 변천과정을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으며, 도를 닦는 정신 수양의 방법론으로 동학을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21세기 물질주의의 시대에 실천하는 학문으로서 인간의 본연의 모습인 내면의 나의 모습을 찾는 다시 개벽의 학문으로서 동학을 소개하고 있다.

 

동학이 학문적으로 유불선 세 학문의 결합이고, 사실상 서양의 학문인 서학도 모두 융합되어 있는 학문이다. 동국이 통상 중국 오른쪽에 있는 조선, 우리나라를 뜻하므로 우리나라의 학문이라는 뜻이 되고, 서학에 대항하는 학문이 될 수도 있다.

 

동학이 일반적으로 인내천 사상으로 알려져있는데, 이 책에 의하면 처음 수운 최제우의 시천주 사상으로 시작되었다고 한다. 수운 최제우는 세도정치가 판치는 조선후기의 재가녀의 소생이라는 신분적 제약을 가지고 있었고, 경제적으로도 불후하였던 것 같다. 그래서 평소 배우던 유학이 현실과 맞지 않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장사꾼 등의 현실 생활을 통해서 사회 현상의 문제점을 보게 되는 것 같다. 그리고 상제를 만나고 생활 속에서 도를 득하고 전파하기에 이른다. 여기에서 핵심인 시천주란 나의 몸이 한울을 모신 거룩한 성소이고, 다른 모든 사람도 한울을 모신 거룩한 성소라는 것이다.

 

수운의 도를 현실적인 삶의 기술로 바꾼 사람이 해월 최시형이다. 해월은 시천주의 실천원리를 사인여천(事人如天) 즉 사람을 섬기되 한울같이 섬겨라이다. 그리고 마음과 기운에 대해서 철학적인 이야기가 나오는데, 마음을 잘 지키고 기운을 바르게 하라 정도가 정답이라 할 수 있다.

 

동학이 3대 우암 손병희로 넘어오면서 변화를 겪게 된다. 현실 참여가 늘어나게 되고, 종교의 이름도 동학에서 벗어나 천도교로 넘어가게 된다. (사실 이 책에서는 짤막하게 나오지만 구한말 역사와 엮어서 상당히 복잡한 것으로 안다.) 그래서 쉬운 인내천 사상으로 바뀌게 되지만, 이 책에 의하면 학문과 종교로서의 색깔을 많이 잃게 되는 것 같다. 그리고 남북 분단과 분단직후 북한에서의 천도교 탄압 사건으로 인해 교세가 많이 줄어들게 되는 것 같다.

 

이 책에서도 동학에서의 개벽 (이것은 증산교등도 마찬가지)에 대한 잘못된 해석을 경계하고 있다. 개벽을 종말론으로 이용하여 종말론을 주장하는 종교는 위험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가 생각하는 개벽은 하늘이 꺼지고 땅도 꺼지는 그런 개벽이 아니라, 우리의 삶의 태도와 자연에 대한 태도가 달라지는 것을 말한다. 개인이 완전한 인격체가 되고, 자연을 복원할 수 있다면, 자본주의에 병든 사회가 바뀌는 진정한 개벽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동학, 이 한 권의 책으로 성격을 규정짓기는 어려울 것 같다. 하지만 동학의 탄생의 배경인 유학에 대한 대안, 서학에 대한 대응이 그 시작이고, 시천주에 의한 인간 하나하나가 한울을 모시고 있는 거룩한 성소이고, 이 실천방법으로 사람을 섬길 때 하늘 같이 섬기고, 모든 만물을 경애하라는 것이다. 보편적인 진리를 안고 있는 종교이고 학문으로 생각된다.

 

z******g 2012.06.10.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