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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피리부는 사나이 바람따라 가는 떠돌이 피리 하나 불고서 허허허 예전에 송창식의 피리부는 사나이가 생각이났다.. 그때는 무슨 노래인지 모르고 그냥 재미난 리듬에 맞춰서 불렀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참으로 슬픈 노래인것 같은데..
중세의 전설이 만나 새로운 소설을 만들어 버렸는데. 동화책으로 짧게 보다가 재미난 소설로 만나보니 더욱더 재미있게 느껴진다. 케이스 매퀸과 애덤 매퀸이 하멜른의 쥐잡이를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버렸다.
요란한 오차림을 한 남자 그것도 피리를 부는 악단이라면 우리는 얼마나 신뢰를 하고 그사람을 따를수가 있을까 그렇게 남을 막따라 갈수는 없지 않을까.. 피리를 불어 도시의 쥐들을 모두 강으로 끌고 가서 빠뜨려 죽이라는 길드 수장의 명령을 받은 요하네스 그냥 하네스라고 부르는것이 편하겠다.
하네스는 그 임수를 어떻게 수행할수 있을까 사실 거기서 부터 이야기가 시작했으면 내 생각되로 진행되는것이라고 말할수 있을것이다. 하지만 시작은 1278년 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이것이 어떻게 진행될지는 모르겠으나 나중에 이야기가 참으로 잘 진행되었구나 하는 마음을 가질것이다.
남의 불행은 자신의 행복일까 하는 의문을 가질수 있는 소년나이의 또래애의 죽음을 목격하고 그렇게 도제로 입문하게 되었다. 그렇게 아버지의 고통을 보면서 도제 생활을 하고 6년이 지나가면서 잊혀졌던 과거의 기억속으로 자신을 집어 넣으면서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하네스는 그 자신의 이야기와 동질함을 느끼는 안셀름 하지만 영원히 친구로 지낼수 없는 다른 사고방식 하지만 먼가 통하는 마음그것은 환경의 영향이겠지..
적이지만 인정할수 없지만 안셀름의 방해를 물리치고 쥐들을 제거하고 그렇지만 그것이 인간의 욕망에 의해 의도된 것인것을 알았을때의 배신감을 느겼다. 쥐들에게서 병원균인 쯔쯔가무시병을 옮기는건 아닐까 하는 생각되 했었는데 그시대에는 그런 병명이 없을 것이었기 때문에 또 엉뚱한 생각이 되었다..
아버지기 때문에 무능력아니 권력의 혜택을 너무 자연스럽게 느끼고 그렇지만 일말의 양심이 있는 클라라와 그 무능력을 이용한 바우어 참으로 인각이라는 동물에 대한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할까 아니면.. 이기심이라고 해아하나.
너무 순식같에 끝이 나서 작은 끈이 아직도 내마음의 피리를 울리는것같다.. 피리 소리가 끝나고 책장의 마지막을 덮었지만 내마음의 피리를 지금부터 울리기 시작했으니 언제간 음악이 끝나겠지..
음악이 끝나면 인생의 막장인가.. 7막7장의 작가처럼 내 인생의 몇막일까..
재미난 책은 막의 시작이었으면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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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1284년 6월 26일, 한 피리 연주자가 하멜른의 아이들을 데리고..... 사라졌다. 동화와 판타지의 결합이라는 독특한 소재의 책으로 오랜만에 흥미진진한 모험소설을 읽은듯하다 많은 이들의 머릿속에 기억되고 있을 피리부는 사나이를 새로이 각색하여 꾸민 특이한 소설이다. 이책을 읽기전에 먼저 고전의 피리부는 사나이를 읽어보지 않을수없었다. 가물가물한 기억들이 자꾸 소설의 스토리를 방해하기 때문이였다 원작인 피리부는 사나이를 동화로 끝내지 않고 왜? 라는 의구심과 상상력이 동원되어 두루뭉실한 동화의 세계를 정밀화처럼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소설속의 주인공이 피리를 불때면 나도모르게 입이모아지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쳐 죽여버리고 싶을 정도로 분노를 일게하는 악인, 착하지만 우물안에서만 살아온 여자아이, 행동해야 할때 행동하지 못하는 우유부단한 피리연주자 등등 소설속의 캐릭터들은 소설을 더욱 생동감있게 만들어주었다 지루한 일상에 색다른 모험이 되어준 재밌는 책이였던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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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멜른을 향한다.
정의와 자비를 입고서 떠나는 요하네스는 어떤 심정인 것일까?
도제가 되어서 처음 맞게 되는 임무이다.
이 임무를 위해 스승으로 부터 받은 어릿광대 같은 색깔 있는 옷은, 스승의 묘한 미소와 함께 분명 무언가를 상징한다.
스승은 빨간색의 정의와 노란색의 자비를 알려주며 언제 어느 때라도 이 두가지를 기억하라고 한다.
요하네스는 기억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기에 더더욱 힘든 길을 나아 갔고, 일을 해결하기 위해 많은 고민을 하게 된다.
동화가 이렇게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시선을 가질 수도 있다는 것을 읽어가며 알게 된다.
어렸을 때 읽었던, 익숙하고도 그리운 동화라는 생각을 가지고 책을 펼쳤다가 슬그머니 깔려 있는 무겁고도 서글픈 생각들 덕분에 한 장, 한 장이 버거웠던 것은 사실이다.
저자들은 무엇을 보여 주고 싶었던 것일까?
어린 날의 다정스러웠던 동화가 어느 새 무서운 사회의 모습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해버린 이유는 무엇일까?
동화가 동화로 남을 수 없게 만든 그 이유가 무엇일까?
정의와 자비가 살아 있음을 알려 주고 싶었다면 좀 더 완벽한 모습의 요하네스를 만들어 주었을 텐데..
확실하지도, 그렇다고 봐 주고 싶은 마음이 들지도 않는 밉살스러운 캐릭터들을 두고서 무엇을 고민하게 만들고 싶었던 것일까?
읽는 내내 선명해지지 않는 그림자만 붙잡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들끓는 쥐떼가 무엇을 의미하느냐!!! 하는 것은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인간의 탐욕과 욕심, 욕망.. 그런 음험한 것들에 둘러싸인 인간의 나약함...
맞다..그렇다.. 이런 어두운 욕망들이 들끓고 있기에 하멜른은 고통에 휩싸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하멜른 뿐만이 아니겠지.
저자들은 우리 인간의 이런 모습을 자각하게 해주고 싶었을 것이다.
배신과 음모로 점철 되어 있는 이 소설 속에 그래도 요하네스는 스승의 가르침인 정의와 자비를 실천하고자 한다.
우리의 법정에서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왠지 어울리지 않는, 오히려 상반된 듯한 것이 바로 이 정의와 자비가 아니던가.
이것이 제대로 실천된다면 그것은 아마도 마법의 힘을 발휘하지 않을까 싶은데..
요하네스는 최선을 다해 가르침을 실천하고자 한다.
비록 그것이 최상은 아닐지라도, 가장 완벽한 것은 아닐지라도 그 자신의 노력을 다해 실천한다.
감탄을 터뜨리며 박수를 치고 싶은 소설은 아니지만, 우리 사회의 모습과 내가 배우고 지키고 싶은 게 무엇인지 한번 더 기억하게 해 준 책이라는 점에서 점수를 주고 싶다.
왠지 태극기와 국가가 무엇인가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국가를 이루는 한 구성원으로써 조금 더 깊은 생각에 빠지는 시간을 가져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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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알고 있는 <피리부는 사나이> 를 기본으로 작가의 상상력을 가득 붙여 만든 판타지 소설이다.
칭찬 일색의 리뷰와 독특해 보이는 책소개의 줄거리를 보고 고른 책인데, 사실... 그냥 그랬다.
다른 사람들과 읽는 방식이 다른 건지, 책을 받아들이는 코드가 다른 건지... 나도 모르겠다만 여튼 나는 그냥 그랬다.
그렇다고 아예 재미없었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나름 피리 연주자 길드라던가, 피리를 이용한 마법이라던가, 재미있는 요소는 있었다.
다만 이야기의 전개 방식이 별로다. 뭔가 이야기의 진행이 매끄럽지 않고 두서가 없다. 소개 글을 보면 별의별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요하네스는 쥐 떼를 소탕한다. 라고 되어 있는데, 그 별의 별 우여곡절이 정말이지 별의 별 우여곡절이다. 이야기를 풍성하게, 긴장감 있게 뭐 그렇게 만들어 줘야 할 별의별 우여곡절이 이야기를 산만하게, 늘어지게 뭐 그렇게 만든다는 말이다.
차라리 주인공 요하네스가 온갖 어려움과 역경을 이겨내며 피리연주자가 되는 과정을 이야기 전반에 깔고, 쥐떼 소탕과 농노해방을 클라이막스로 썼다면 어땠을까?
쥐떼 소탕 장면은 나름 긴장감이 있었지만, 내내 사라진 사례금 타령만 하는 주인공은 이래저래 별볼일 없어보였다.
여튼, 읽히긴 잘 읽힌다만, 딱 읽히는 데에서 끝난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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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을 거닐기에 참 좋은 봄날이네요. 한바퀴 산책도 좋구요 책을 읽기에도 더없이 좋은 날들입니다. 이번 리뷰는 <6월 26일, 하멜른> 입니다.
"피리부는 사나이"의 프리퀄
이야기는 '6월 26일, 하멜론에서는 피리 부는 사나이가 130명의 아이를 데리고 사라졌다' 는 어느 역사적 기록을 배경으로 시작합니다. 이미 제목만 봐도 우리가 동화로 알고 있는 '피리부는 사나이' 와 연관이 있을거라 생각이 들지요? 이 소설은 영화로 따지면 우리가 알고 있는 그 '피리부는 사나이'의 프리퀄에 해당하는 이야기예요. 피리부는 사나이가 왜, 어떻게 피리를 불게 되었는지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그리고 그때 하멜론에서 과면 무슨일이 벌어졌는가에 대해서도 보여줍니다.
영화로는 안만드나요
프리퀄 치고 재미없는 소설이나 영화가 별로 없잖아요. 그만큼 이 작품도 꽤 재미있습니다. 약간은 어린이 동화풍인 느낌도 없잖아 있지만 어린이들이 읽기에는 무리예요. 스토리가 나름 복잡하게 전개되기 때문일 거예요.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소설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영화 시나리오인가? 라는 느낌을 더 받았어요. 마치 영화에서 보여주는 듯한 복선이나 암시도 많구요. 극적인 구성이나 이야기의 전개도 영화의 냄새가 적잖이납니다. 물론 아주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이야기 자체도 꽤 재미있지만 중세 세계나 마법이 존재하는 세계와 같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과는 이질감있는 세계를 묘사하면서 이 소설은 우리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옵니다. 해리포터 시리즈가 그랬듯, 이 마법이 존재하는 세계는 공상과 환상을 불러 일으킵니다.
그리고 나머지
차근차근 정석대로 밟아가는 이야기의 전개와 전형적인 타입의 등장인물에 약간은 소박하다는 느낌도 받긴 하지만, 재미있습니다. 작가는 꿈과 환상의 동화 이야기와 함께 이 사회의 규칙, 제도, 법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왜 만들어지는지, 그러한 것들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이며, 어떻게 사용될 수 있는가에 대한 고찰을 시도하려 하지만 너무 깊이 들어가서 이야기가 자칫 딱딱해지거나 이해하기 어려워지지는 않도록 적당한 선에서 마무리합니다. 이런 부분도 고려해 가면서 책을 읽어간다면 더 재미있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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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에 읽었던 그림 형제의 '피리부는 사나이' 이야기는, 참 섬찟하면서도 슬픈 이야기였다. 대부분의 동화가 "그러저러해서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로 끝나는데, 사실 동화향유층인 어린이들의 정서에 부합하려면, 조금은 거짓부렁이래도 그렇게 끝나는 게 맞을 것 같은데, 아니, 동네 아이들을 싹쓸이해서 부모형제와 생이별을 시키는 이러한 결말이 가당키나 한가 말이다. 왜 그 위정자들은, '피리부는 사나이'에게 정당한 보상을 해주지 않았는가 말이다. 어이없고 황당하고 화가 났더랬다. 내게, '피리부는 사나이' 이야기는 그러한 잔상으로만 남아 있었다. 행복하지 않은 이야기... 정작 동화 속에는 아이를 잃은 부모의 슬픔이 묘사되어 있지 않지만, 왠지 그 절절한 슬픔이 내게도 전이되는 듯한 느낌이 들게 하는 이야기...
언젠가 독일을 여행할 기회가 있었다. 동화의 나라 독일... 나는 피리부는 사나이의 배경이 되는 하멜른을 찾아갔다. '쥐'로 시작해서 '쥐'로 끝나는 작은 도시. 온 도시에 피리부는 사나이의 혼령이 둥둥 떠다니는 것 같은 곳. 참 싫어하는 동물 중 하나인 '쥐'가 그토록 상품화되어 도시를 먹여살리는 모습을 보니 신기하고 신기하였다.
그 슬픈 동화를 각색한 『6월 26일, 하멜른』... "중세의 전설이 소설의 상상력을 만나다"라는 카피가 인상적이었다. 초반은 그림형제의 '피리부는 사나이'를 답습하는 듯 하다가, 중반 이후부터는 전혀 다른 세계로 독자를 끌어들인다. 살면서 느끼는 일이지만, 어린 시절에 겪은 일들은 대개 트라우마가 되어 어른이 된 다음의 시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그 트라우마를 극복하기란 녹록한 일이 아니다. 짧지 않은 묵직한 이 소설 속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어느새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하는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한 몸부림은 순수했던 인간을 권력의 맹목적인 추종자로 만들기도 한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냉혈한으로 만들기도 한다. 이 소설을 읽는 내내 다시 한번 그런 사실들을 확인하며 씁쓸해했다. 입안이 꺼끌꺼글하게 느껴졌다. 다행인 것은, 옛날에 읽었던 동화처럼, 아이들이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휴우... 가슴을 쓸어내렸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만 흐르는 고유한 정서 중 하나는, '피리부는 사나이'를 조금 낭만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송창식 님의 '피리부는 사나이' 때문이리라...
동화의 결말에 대해 역사고증적인 해석을 읽은 적이 있다. 십자군전쟁을 상징하는 결말이라는 것이었다. 그 십자군전쟁 또한 얼마나 어이없고 황당한 전쟁이었던지... 여하튼, 무고한 사람을 다치게 하고 피흘리게 하는 모든 행위는, 악하다. 그래서 나는 전쟁이 싫다...
흠... 동화 한 편에서 파생된 소설책 한 권을 읽으며 나의 생각은 무궁무진하게 뻗어나간다. 지극히 동화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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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6일, 하멜른 - 케이스 매퀸, 애덤 매퀸
이 책은 많은 아이들이 세계명작을 읽을때 그 중 피리부는 사나이로
피리에 환상적인 내용을 조금 섞어서 이야기를 진행시킨 것이 눈에 띈다.
자비와 정의의 실현이란, 어쩌면 양날의 검처럼 정도를 맞추기가 굉장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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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그림형제의 동화 '하멜른의 쥐잡이' 또는 '하멜른의 피리 연주자'를 모티브로 했다길래, 동화책 같은 냄새가 물씬 풍기겠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책을 읽어나갈 수록 정말 흥미진지한 구성을 갖춘 소설이었다. 쥐떼를 내쫓았지만, 사례금을 받지 못해 피리 연주자가 어린 아이 130명을 데리고 떠났다는 독일 민담을 가지고 이렇게 탄탄한 구성에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덧붙였다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독특한 배경, 13세기 독일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피리 길드라는 독특한 길드가 활동하는 시대와 피리로 마법을 부리는 상황들을 마치 나니아연대기나 반지의제왕처럼 판타지적 소설의 요소를 갖춰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더 흥미로웠던 점은 주인공 요하네스가 하멜른에 도착해서 사건을 풀어나가는 경위이다. 하멜른의 쥐떼를 소탕하면서 발생하는 은밀하고 손에 땀이 나는 사건들과 끝까지 누가 선이고 악인지 알 수 없었던 그 긴장감은 소설의 재미를 한층 더 북돋아준다. 마지막에 모든 사건의 전말이 밝혀졌을 때는 나도 미처 예상하거나 생각하지 못한 결말이라 당황스러웠다.
이 소설이 물론 하멜른의 쥐떼를 소탕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기는 하지만 1284년 6월 22일에서부터 1284년 6월 26일 까지의 약 닷새간의 사건들을 통해 요하네스가 정의와 자비를 어떻게 실현하는가가 소설이 담고 있는 진짜 메시지였다. 빨간색의 정의와 노란색의 자비. 요하네스는 그 사이에서 수많은 고민과 갈등을 가지지만 결국 무사히 옳은 선택을 하고 사건도 올바른 방향으로 해결한다.
마지막은 동화처럼 우리에게 교훈을 주면서 훈훈한 엔딩을 보여준다. 책을 읽는 내내 정말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만큼 사건의 전개 속도도 쳐지지 않았고 지루한 부분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소설을 읽으면서 요즘 판타지적 요소를 가진 영화들이 인기를 끄는 것을 생각하면서 이 책 역시 영화화 해도 괜찮을 거 같다는 생각을 해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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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실제로가서 하는 쇼핑을 좋아해서 북하우스에 가, 책을 구매하였다.) 정말 재미있었다.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는데 마치 빨려들어가는 느낌을 선사한다. 아직 읽어보지 않은 사람들에게 한마디를 한다면, "직접 읽어보라. 누구에게 묻지말고 느낌은 나 자신만이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느낌을 이제, 이책을 읽으며 느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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