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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드라마로 방영되고 있다길래, 호기심에서 보았습니다. 역시 일본소설이라 구성이 탄탄하고, 인물묘사도 치밀합니다. 의사를 꿈에 두고 있다면 한번쯤 읽어봐야할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미국드라마 ER이 시각적인 면에서 보는 이를 압도하여 의사에 대한 경외감을 불러 일으킨다면, 이 소설은 한 국립의대 교수의 비극을 통해 하얀 거탑(권위적인 의과대학 건물을 의미한다고 봅니다.)속의 사람들의 치부를 드러내 보임으로써 의사란 어떤 존재여야 하는가를 읽는 이에게 묻고 있습니다. 저는 이를 영상화한 일본드라마도, 지금 방영되고 있는 한국드라마도 보지 못했습니다만 이 책의 작품성을 과연 가감없이 그대로 옮길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도 드는 게 사실입니다. 다만 염두에 두셔야 할 것은, 이 소설은 일본에서는 60년대에 쓰여졌고, 국내에는 80년대에 나온 것이기 때문에 현재의 의학의 수준과는 아무래도 차이가 날 것이고, 중간 중간 일본어를 그대로 직역한 것처럼 보이는 의학용어때문에 국어사전을 옆에 두고, (국어사전에도 없는 단어는 한일사전도 가끔 필요했었습니다.) 읽어야 했던 점입니다. 자신의 꿈이 의사라면 고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일독을 권합니다. 의대교수와 개업의의 차이에서부터, 환자에 대한 의사의 마음가짐, 오진에 의한 의료소송등 생각해 볼 점이 많습니다. 자세한 줄거리는 생략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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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tv로 드라마를 첫회를 보았다. 그때만 해도 김명민이라는 배우가 인지도가 높지도 않았고, 유명한 배우가 나와서 구미를 당기는 것도 아니었다. 아무생각없이 보았던 그 첫회는 손에 땀이 날 정도로 재미있었다. 그 다음번 이야기가 궁금한데... 당췌 기다릴 수가 있었야지. 예스머니를 과감하게 투자하여 '하얀거탑 세트'를 사고야말았다.
아무래도 드라마를 몇번 보았기 때문에 책과 비교하게 됐다. 일단 시대가 다르다. 드라마는 현재를 무대로 이야기가 전개되지만 책은 정확하지는 않지만 전쟁 직후쯤 되는것 같다. 작가가 1963년 부터 연재를 시작했다고 하니 여하튼 지금과는 많은 시간적 괴리감이 있는것이 사실이다.
책은 긴장감이 현저하게 떨어진다. 의학소설이나 법정소설이 그러는 경우가 왕왕있는데 이책 역시 지나치게 병의 원인, 수술방법 등 의학적 지식을 지루하리만치 길게, 자주 나열하고 있다. 드라마는 그것을 시각적으로 짧고 굵게 시청자가 이해해야할 부분만 집고 넘어가는데 이 책의 작가는 그 수위조절 한계를 좀 넘어선 것 같다.
무엇보다 이책의 긴장감과 재미를 반감시킨것은 바로 번역!!!!!! 내가 이 책을 꽁자로 볼려고 대학도서관까지 뒤졌는데 초판이 아마 1985년쯤? 나온것 같았다. 드라마의 인기를 업고 '청조사'라는 출판사가 재판을 낸것 같은데 당연히 번역을 다시 했을줄 알았다. 이런~ 개판이던군. 지금과는 전혀 어울리지도 않는 호칭, 화법, 문법 등 엉망이었다. 그러니 읽는내내 이해도 않되고, 지루하고... 어찌 의학.법정소설이라고 다 지루하고 따분하겠는가. 졸속으로 낸 것이다. 여하튼 속시원히 결말까지 알아서 좋기는 했지만.
또하나, 일본의 그 당시 사회가 굉장히 가부장적이고 남성위주의 권위적인 사회라른걸 알수있었다. 우리나라 저리가라더군. 사람사는 곳은 어디나 부정부패와 부조리가 있기 마련이고. 출발을 언제 하고 언제 도착하느냐가 문제지 결국은 모두들 이러한 과정을 거쳐 민주화가 이루어 지고 청렴결백한 사회로 가는것인것 같다.
여하튼 이 책은 비추^^ 걍 드라마로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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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인가 화제가 되었던 드라마를 보지 못하고 뒤늦게 읽게 된 책... 국립대학 병원을 배경으로 일어나는 의사들의 암투가 적나라하게 그려져 있다. 최고의 실력을 가지고 있지만 자신의 야망을 위해 다른 것을 던져버리는 의사와 오직 환자를 위해 헌신하는 의사... 둘 중 누가 옳은지는 모르겠다... 그래서 마지막 장면 몰락하고 목숨마져 잃어버리는 자이젠의 모습이 조금은 안타까웠다고 해야할 듯... 좀 오래되었지만, 재미있었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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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내용은 드라마를 보신분들은 알고 계시듯 정말 흥미롭습니다. 스토리도 탄탄하고 감동도 있고 지금까지 우리가 알았던 의사들의 세계와는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집니다.
그런데, 내용보다는 책은 편집이 너무 문제가 많습니다. 번역은 70년대 번역이라서 눈에 잘 들어오지도 않고 무슨 뜻인지 한참 생각해야 할 정도이고 알지 못하는 단어도 많습니다.
한 마디로 내용에서 감동을 받고 번역에서 실망한다고 할까..
다른 사람들이 이책을 사신다고 하면 별로 추천해주고 싶지 않을 정도로 번역이 허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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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덮었을 때 한동안 눈을 감고 그대로 침대에 누워있었다. 자이젠의 죽음과 함께 나도 그만 죽어버린 것만 같았다.
수많은 일들이 머릿속을 파노라마처럼 스쳐지나갔다. 수술실에서 휘둘렀던 날카롭고 번쩍이는 메스, 국립의대 교수가 되기까지의 온갖 권모술수와 공작들, 교수이자 위암 권위자로서 누렸던 엄청난 명예와 권력, 의학과 법학을 넘나들며 옥신각신했던 재판, 죽음에 이르러 해부실로 실려 가는 베드의 모습까지.
현재까지 소설 하얀거탑은 일본에서 4번 한국에서 1번, 총 5번 각색되어 인기리에 방영된바 있다. 이는 원작의 치밀하고도 박진감 넘치는 구성이 그대로 드라마에 반영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한편 의학이라는 생소한 주제를 일상 드라마에 끌고 온 것도 흥미로운 요소로 작용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아직 드라마 하얀거탑을 보지는 않았다.
소설을 읽다보면 작가인 야마자끼 도요꼬의 의학 지식에 새삼 놀라게 된다. 그녀는 의학을 전공한 것도 아닌데 소설 속에 즐비한 의학 용어와 수술 과정의 섬세한 묘사는 그야말로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또한 작가는 법률에 관한 지식도 어느 정도 있는 듯하다. 재판 과정과 진행 방식 등을 소설에서 잘 묘사하고 있다. 한 편의 명작을 만들어내기 위해 작가의 무수한 노력이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인터넷에서 하얀거탑에 대한 서평을 보면 내용은 정말 재미있으나 번역은 못 봐주겠다는 식의 글을 많이 볼 수 있다. 나도 이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나 그러한 발언은 소설이 쓰여진 시기, 번역된 시기 등을 고려하지 않은 발언이라고 말하고 싶다. 하얀거탑이 처음 쓰여진 시기는 1960년대이며 한국어로 번역되어 출판된 시기는 1970년대이다. 당시(70년대)의 번역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소설을 두고 오늘날의 독자가 아무런 거리낌 없이 읽기에는 무리가 있다. 본디 언어란 수십 년 동안에도 변하기 마련이며, 특히나 한국사회는 근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급격한 변화를 겪었기 때문에 한국사회의 공용어인 국어의 단어 및 형태 등에도 적잖은 변화가 있었다.
그렇다면 왜 오늘날의 독자들에 맞추어 다시 번역하지 않느냐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거야 출판사의 마음이므로 내가 왈가왈부할 것은 아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과거의 번역을 그대로 유지했으면 한다. 비록 오늘날 읽기에는 다소 껄끄럽지만 과거의 번역이 당시의 시대상을 가장 잘 반영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7, 80년대의 순화되지 않고 번역투, 외국어 등을 그대로 많이 사용한 말투가 과거의 유물을 그대로 접하는 것만 같은 이색적인 느낌을 받게 해주어서 좋았다.
하얀거탑을 읽으면서 누구나 인간사회의 부조리와 의사로서의 자질에 대해 고민해보았을 것이다. 먼저 인간사회의 부조리는 비단 하얀거탑으로 비춰지는 커다란 병원과 그 속에서 일하는 의사들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 가령 대기업 같은 곳에서도 똑같이 일어나는 일일 것이다. 이러한 부조리는 대부분 권위주의를 바탕으로 한 관료제에 그 뿌리를 두고 있을 것이다. 소설을 읽고 난 뒤의 감상을 적는 자리에서 권위주의와 관료제에 대한 심각한 고찰을 하고 싶지는 않다. 어쨌든 개인적인 의견을 말하고 넘어가자면 권위주의와 관료제는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누구나가 권력과 명예를 탐하는 인간사회에서 권위주의와 관료제는 어느 정도 질서를 유지시켜주며 인간의 욕망을 어느 정도 충족시켜주기 때문이다. 물론 지나친 권위의식과 비효율 등의 부작용이 있기도 하다. 그러나 해결점 없이 처음으로 되돌아가는 한이 있더라도 마지막으로 한 마디 덧붙이고 싶다. 대부분의 사람은 권위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나도 예외는 아니다.
다음으로 의사로서의 자질이란 무엇일까? 아마 이 질문은 현재 의학과 관련된 전공을 공부하고 있는 학생이나 의료 분야에서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 소수이긴 하지만 나처럼 의대를 진학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사람에게 특히나 유효한 질문일 것이다. 소설 속엔 극단적인 모습의 두 의사가 등장한다. 바로 자신의 권력과 명예를 위해 의료를 행하는 자이젠과 환자의 생명을 최우선시하며 의사의 양심을 지키려 노력하는 사또미이다. 나는 의사도 인간이라는 전제를 깔고 이야기를 진행하고 싶다. 풀어서 얘기하자면 의사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자기 자신을 포함한 가족들을 부양해야 하며 부귀와 명예, 권력 등을 원한다는 것이다. 물론 의사라는 직업의 특수성 때문에 의사는 무엇보다 환자의 생명과 삶의 질 개선에 가장 큰 중점을 두어야겠지만, 이러한 의무를 다한 후에는 의사이기 이전에 인간으로서의 자기 성취를 이루어도 무방하다고 본다.
책을 읽을 때 일부러 무슨 문제의식을 가지고 읽을 필요는 없다. 책을 읽으며 무조건 교훈을 도출하고자하는 그릇된 엘리트주의에 빠진 사람을 종종 봐와서 하는 말이다. 책이란 그 자체로 재밌게 즐길 수 있으면 그만이다. 위에서 나열한 복잡한 문제를 차처하고서라도 하얀거탑은 소설 그 자체로 매우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꼭 한 번 읽어보기 바란다.
추신. 소설의 제목에 관해 개인적인 소견을 말하자면 ‘하얀거탑’보다 ‘백색거탑’이 좀 더 깔끔한 표현이 아닌가싶다. 한글과 한문이 섞인 단어보단 한글이면 한글, 한문이면 한문으로만 이루어진 단어가 좀 더 자연스러운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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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로 인해 원작을 알게되어 사게되었다. 확실히 드라마보다는 소설의 구성이 탄탄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60년대 일본에서 출판된 소설이다. 한국에서도 첫 번역이 80년도에 이루어져 지금의 독자들이 책을 읽으면 상당히 어색하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실제적으로 책의 초판을 1980년 11월에 이루어졌다. 이것이 문제다. 책의 내용, 이야기의 흐름은 지금 느껴도 어색함을 느끼지 못할 지경이다. 하지만, 번역이 아주 어색하다. 아마도 초판 발행이후 한번도 다시 한번 번역부분에 손질을 하지 않은 것 같다. 예를 든다면 소설 내용중에 '가스트로 카메라' 라는 것이 나온다. 이것은 책을 읽다 보면 '내시경' 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앞의 예 처럼, 이야기를 좀 더 흥미진지하게 즐길 수 있도록 다시 한번 번역 작업이 이루어지기를 원한다. 솔직히 책을 읽다 보면 '이 책은 해도 해도 너무한다' 하는 생각을 몇 번 했었다. 순전히 번역의 어색함이 너무 많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지금은 60년대도 아니고, 80년대도 아니다. 원작이 훼손되지 않는 선에서 현대의 독자들이 자연스럽게 책을 읽어 갈 수 있도록 번역이 다시 한번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참고로, 책의 내용은 지금 읽어도 아무 지장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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