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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친구집에 갔다가 보고 반했던 책이다. 개구쟁이 아이의 머릿속에 들어있는 짓궂은 상상, 엉뚱한 상상, 기발한 상상들이 삽화를 떼어놓고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독특하게 펼쳐진다. 어른이 되어서 봐도 재미있다.
쉘 실버스타인이라면 <아낌없이 주는 나무>나 <어디로 갔을까 나의 한쪽은>으로 더 유명할 거 같다. 간결한 삽화와 짧은 글로도 충분히 교훈을 준다는 면이 더욱 선호되는 요인이지 않을까 싶은데, 이 <다락방의 불빛>은 교훈적인 요소보다는 악동에 가까운 개구장이의 무한한 상상력이 자유롭게 펼쳐져 즐겁다.
책읽기를 싫어하는 아이조차 재미있는 책도 있다는 걸 깨닫게 해줄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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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전
그러니까
내가 고등학교 다닐적이다.
친구는 나와 교환일기를 주고 받자고 했는데
그러면서 거기다가 참 재미난 우화들을 적어 주었었다.
요번에 보물창고 신형건님이 새로 변역하셨다는데 ...
바로 이 다락방의 불빛이란 책이다.
![]() 아낌없이 주는 나무로 이미 유명한 이 작가는 역시 그에 버금가는
참 재미나고 많은 생각을 새록새록 해 낼 수 있는 그림우화를 써놓았다.
어찌보면 짤막한 이야기들이 세상을 향한 딴지를 걸듯 그렇게
수다스럽다.
귀머거리 도널드 ![]() ![]() ![]() 분명 그때와는 많이 다른 느낌이다.
그치만
머리속 백열전구에 빠지직~ 전기 흘러 들어가는 소리가 들린다.
이제 내 머리속에 전구가 제대로 빛을 발하려는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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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자신 없어 하는 분야가 바로 시다. 이상하게 시는 읽기도 힘들고 선뜻 손에 잡히지도 않는다. 지난 해에 큰 맘 먹고 시집을 사서 보다가 아직까지도 진행중인 게 있을 정도다. 시를 읽다 보면 내가 공감하는 부분에서는 '어쩜 이렇게 마음을 잘 표현할까.'하고 반갑다가도 잘 이해가 가지 않으면 시인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었을까 고민한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는데도 학교 다닐 때 시를 분석하며 공부한 영향 때문일 것이다. 여하튼 그래도 뭔 소린지 모를 때는 내 자신을 책망하며 잠시 접어 둔다. 그러다가 한동안 잊고 지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 문제지만... 누군가가 이야기하길 시는 하나를 가지고 백 번 정도 읽으면 그 뜻이 저절로 이해된다고 한다. 과연 내가 그 경지에 이를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번에는 한번 시도해 볼까 생각중이다.
쉘 실버스타인 하면 누구나가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떠올릴 것이다. 길지 않은 내용과 펜으로 그린 듯한 그림으로 어른부터 아이까지 모두 읽어야 하는 스테디 셀러가 된 책. 지금도 토론의 주제가 되기도 하고 부모를 대상으로 한 강의에서 자주 인용되는 책이 바로 <아낌없이 주는 나무>일 것이다. 사실 그런 종류의 이야기를 기대하며 책을 펼쳤는데 이런... 표제작을 읽고 다음을 넘기니 다른 작품이 나온다. 이건 시가 아닌가. 그러나 시를 이해하는데는 지금까지의 선입견을 무색하게 만든다. 다음 장에 나오는 시가 바로 마음에 꽂히면서 말이다. '얼마나 많이, 얼마나 크게'라는 시를 읽다가 마지막 행이 되자 '아차'싶다. 그래 받으려고만 하지 말고 내가 베풀어야 그에 대한 결과도 있는 거구나... 왜 항상 결과만을 탓했을까. 내가 노력하지 않고 좋은 결과가 나오기만을 기대했을까. 이거 초반부터 심상치 않다.
그렇게 읽어 내려 가며 때론 다시 읽어보기도 하고 때론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을까 감탄하기도 하고 간혹 날카로운 비판에 속이 후련하기도 했다(물론 내가 포함되지 않은 비판이었기에). 어떤 때는 말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직설적이지만 그렇다고 달리 표현한다면 느낌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을 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시를 읽다 보면 작가는 분명 외국인인데 우리 나라 지명이 나오는 경우가 있다. 그만큼 그 지역이 유명하진 않을 테고... 아마도 번역을 그렇게 한 것이리라. 과연 원작에는 어떤 지명이 있었을까 괜히 궁금해진다. 그 시에서는 그 지명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느끼는 거리감이 중요한 것일 텐데도 말이다('긴 차'에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주는 시 '곱슬머리'와 은근슬쩍 꼬집는 시 '달달달 외우는 모 씨' 그리고 딸 아이가 평하길 마지막 반전이 재미있다고 한 '어질러진 방' 등 시 하나하나가 혼자 알고 있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모든 것이 다 이해된 것은 아니었다. 워낙 시랑 친하지 않았기에... 그래도 이 정도에 만족한다. 한 번 읽고 덮어 두었다가 다시 눈에 띄는 것을 읽으려니 전에 읽었던 때와는 느낌이 약간 다른 것 같다. 그렇다면 반복해서 읽어 100번 정도 읽으면 지금 이해가 안 갔던 시들도 그냥 느낌으로 다가오지 않을까. 시를 읽다가 어쩜 그림도 이처럼 시와 딱 맞을까 하며 보았더니 작가가 시와 그림을 모두 그렸단다. 만약 다른 누군가가 그림을 그렸다면 그림을 그린 사람의 해석에 의해 걸러진 것을 독자가 보는 것일 텐데 글 작가가 직접 그린 것이므로 작가의 마음을 오롯이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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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불빛! 뭔가 은밀한 보물, 숨겨진 이야기가 가득할 것 같은 다락방. 그 곳에 새어나오는 반짝이는 불빛은 달콤한 유혹의 느낌이 강하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쓴 작가 쉘 실버스타인에 대한 기대 심리로 책을 펼쳐들자 마자 <다락방 불빛>은 기대 이상의 재미와 감동으로 우리를 만족케 했다. 시인의 언어를 따라 가다보면 결말부분에 느닷없이 다가오는 감정은 “허걱~, 또는 당했다”는 느낌이다. 강한 반전의 묘미가 생생한 작품들이 가득하다. 이 책은 광고처럼 아이의 천진함과 어른의 재치가 번뜩이는 작가의 능청스런 시적인 언어들이 장황한 연설보다 더 강렬하게 우리를 전율케 한다. 쪼아 대기(p83) 지금껏 내가 본 일 중 가장 슬픈 일은 딱따구리가 플라스틱 나무를 쪼아 대던 일이야. 딱따구리는 나를 보고 이렇게 말했지. "어이, 친구, 왜 맛이 예전 같지 않은거야." 번역은 제2의 창작이라고 했던가. 단순히 단어의 뜻만 번역하는 것이 아니라 문장 속에 풍기는 내밀한 맛까지 전달하려는 번역자의 솜씨가 남다르다. 운율이 살아있고 구절구절 생생하고 감칠맛 나는 시어들이 어둠을 밝히는 불빛처럼 우리의 무디고 단단해진 이성을 때로는 부드럽게, 때로는 날카롭게 일깨워준다. 그리고 펜화의 단순한 그림들은 시맛을 한층 살려준다. 시가 전하지 못하는 이미지까지 덤으로 선물 받는 느낌이다. 솔직히 그림만 보면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 반드시 시를 읽어야 그림을 이해할 수 있다. 난해한 그림의 말 걸기는 독자에게 궁금증을 유발한다. 아마 우리 아들도 거기에 혹 해서 읽었지 싶다. 내가 읽다 무심히 던져둔 책을 본 아이가 하는 말 “엄마, 이 책 생각보다 재밌네”한다. 그러면서 가까이 와서 자신이 읽어주는 부분을 잘 들어보라고 한다. “꼬마 애버게일과 아름다운 조랑말”(p120~121)이란 시다. “조랑말을 갖지 못해 죽는 아이는 없다”는 부모의 장담에 “조랑말을 가질 수 없다면 죽어 버릴 거야”라고 버티던 에버게일은 안타까운 마음에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결국 죽는다. “그 애가 살아있다면 조랑말 백 마리라도 사 줄텐데!”뒤늦게 후회하는 말풍선을 단채 통곡하는 부모그림이 곁들여져 있는 시를 읽어 준 것이다. (이 이야기는 너희 엄마 아빠가 네가 원하는 것을 사 주지 않을 때 읽어주면 딱 좋은 이야기란다.)란 추신까지 달아주는 작가의 고마운 성의(?)가 아들의 맘이 사로잡았나 보다. 의미심장한 웃음을 흘리는 아들 얼굴 너머로 시인의 능청스런 얼굴이 떠오를 것 같다. “흥! 그래도 엄마에게는 안 통해” 아들에게 보란 듯이 강하게 고개를 저으면서도 웃음이 난다. 아마 이 글의 묘미가 현실에서는 있어서는 안되는 일도 서슴없이 일어나고 그 결과를 공유하는 대리 만족을 통해 깨달음을 얻게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작가의 유쾌, 상쾌한 상상력의 세계가 놀랍고 흥미로워서 책 뒤편의 찾아보기를 연신 찾아가며 읽었던 구절을 다시 찾아 읽는 재미가 솔솔했던 그림우화, 나는 시집으로 봤지만, 두고두고 아끼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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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읽고 나서 아련하게 남았던 감동이 다락방의 불빛으로 인해 다시금 지펴지는 것 같다. 쉘 실버스타인의 다락방의 불빛을 읽다보니 그의 재치와 천진난만한 아이 느낌 그대로 전해지는 듯 아이들도 쉽게 읽게 된다. 귀머거리 도널드는 말은 하지 못해도 수다쟁이 수가 떠날 때까지 자기 마음을 수화로 표현했는데 수는 그걸 끝내 모르고 간 건지 몇 번씩이나 읽게 되며 가슴이 저릿하다. 우리 또한 비록 표현하지는 못해도 이러한 경우가 많지 않았을까? 때리기 에서 수퇘지를 때릴 땐 통나무를 쓰고 새끼 돼지를 때릴 땐 잔가지를 쓰고 뱀은 부지깽이를, 수달은 파리채를, 꿀벌은 스키로 때리는데 나를 때릴 땐 깃털을 쓰라니 아이를 때릴 때는 꽃으로라도 때리지 말라는 이야기가 생각난다. 영원한 친구 사이를 유지하는 방법이란 별거 아니다. 난 무엇이든 시키기만 하고 넌 무조건 따르기만 하면 돼! 정말 이래서 과연 영원한 우정이 지속되어질까? 반대로 네가 시키기만 하고 내가 따라만 하게 된다면 친구 사이가 지속될 수 있는 것일지 궁금하다. 아이의 마음 그대로 느낄 수 있는 그 느낌 그대로 이기에 이래서 그의 시를 읽다보면 내 마음도 따뜻한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는 것 같다. 이 각박한 세상에서 다락방의 불빛을 바라보는 동안만이라도 세상 근심을 잊을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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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의 피곤을 뒤로하고 막간을 이용해 읽어 보았던 책입니다. 유머와 지혜와 깨달음, 그리고 반성이 가슴저편에서 헤집고 나옵니다. 오늘을 다시한번 되돌아 보게 되구요. 가방속에 넣고서 한번씩 읽어보아도 좋고, 수첩에 마음에 드는 구절을 적어 보아도 좋고, 함께 하고 싶은 책이기에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선물하기에 그만인 책이네요. 이번 설날 선물하고픈 책이기에 이렇게 바쁘게 글을 올려봅니다.
마음에 드는 시가 많지만 그 중에 몇개를 올려봅니다.
[음악 경력]
그 여자는 피아노를 치고 싶어했지만 손이 건반에 잘 닿지 않았지. 드디어 손이 건반에 닿았을 때는 발이 바닥에 닿지 않았지. 마침내 손도 건반에 닿고 발도 바닥에 닿게 되었을 때는 그 낡아 빠진 피아노 따윈 치고 싶지 않았어.
"맞아, 어쩜 이리 똑 같은 마음이지?" 유모차를 타고 길을 가던 꼬마아이. 피아노소리가 들리면 그곳을 떠나기를 거부하던 아이. 매번 이런일이 되풀이되면서 아장아장 걷게 되었을 때 아빠손을 잡고 피아노학원으로 들어가던 아이는 풀이 한풀 꺽인채로 나옵니다. 아직은 어려서 피아노를 가르쳐줄 수 없노라고... 몇해가 지나고 점점 피아노소리에 무뎌진 아이를 데리고 갔던 피아노 학원. 아인 옛날의 그 마음이 아닌가봅니다.
[하기]
우리가 만나 "안녕"하고 말하면, 그건 인사하기야. 기분이 어떠냐고 물으로면, 그건 배려하기야. 우리가 잠시 멈추어 이야기를 나누면, 그건 대화하기야. 우리가 서로서로 이해하면, 그건 소통하기야. 우리가 따지고 소리지르며 싸우면, 그건 언쟁하기야. 나중에 서로 사과하면, 그건 화해하기야. 우리가 서로 다른 집을 도우면, 그건 협동하기야. 이 모든 하기들을 다 보태면 문명사회를 이루는 거야.
(만일 내가 이걸 멋진 시라고 말하면, 그건 과장하기일까?)
엄마가 아이에게 해 주고 싶은 내용을 어쩜이리 콕 집어서 썼는지... 감탄합니다. 냉장고 앞에 붙여놓거나 수첩 한 페이지에 적어 놓고 읽어보면 따뜻해 질것 같은 시죠?
[물그림자]
물 속에 거꾸로 뒤집혀 서 있는 사람을 마주볼 때마다 실실 웃음이 나오려고 해. 이러면 안 되는데 말이야. 딴 세상 딴 시대 딴 마을에서는 그가 똑바로 선 사람이고 난 거꾸로 뒤집힌 사람일지도 모르잖아.
[손톱 물어뜯는 사람]
어떤 사람은 손톱에 매니큐어를 칠하고 어떤 사람은 말끔히 손질을 하고 어떤 사람은 줄로 살살 갈기도 하지만 나는 잘근잘근 물어뜯지. 그래, 나쁜 버릇이란 건 나도 알아. 하지만 네가 나를 흉보기 전에 알아야 할 게 있어. 난 지금껏 누구의 마음도 할퀴어 본 적이 없단다.
마치 우리아이의 시같아서 살짝 적어봅니다. 우리집 아이의 습관이 손톱 물어뜯기죠. 하지만 그 손톱으로 누구의 마음도 할퀴어 본 적이 없느것 같은데 엄마는 과연 그랬을까? 반성해 봅니다.
[때리기]
수퇘지를 때릴 땐 통나무를 쓰렴. 새끼돼지를 때릴 땐 잔가지를 쓰렴. 뱀을 때릴 땐 부지깽이를 쓰렴. 수달을 때릴 땐 파리채를 쓰렴. 꿀벌을 때릴 땐 스키를 쓰렴. 그리고 나를 때릴 땐 말이야, 깃털을 쓰렴.
이시를 읽고는 다시한번 다짐했습니다. 아이가 가끔씩 딴짓할때 살짝 손으로 어깨를 쳤던게 습관이 되어서 자주 툭툭 건드렸는데 아이는 정말 싫다고 하지 마라고 합니다. 아무리 살짝 건드려도 맞는 입장에서 때린다고 생각합니다. 이 글을 읽으면서 괜히 미안해지네요. 다음부터는 뽀뽀를 해 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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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다도 우리 꼬맹이(10살)가 너무 사랑하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 그 실버스타인의 책. 무작정 사랑스러운 마음으로 머리맡, 늘 읽을 책 몇 권을 쌓아두는 자리에 두었다. 그리고 조금씩 읽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책이다. 하나의 이야기로 생각에 꼬리를 물리기 시작하면 끝이 없고, 적어도 잠시 동안은 이런저런 생각을 해 보아야 하니, 이 많은 이야기를 그리 쉽게 빨리 읽기는 힘들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은 이 책이 어린이용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문투가 어린이에게 들려주는 듯하기는 하지만, 어린이가 혼자 읽어 이해하기가 쉽지는 않겠고, 더러는 섬뜩한 대목도 적지 않았다. 물론 74쪽 '얼간이 어릿광대'처럼 오스카 와일드의 단편을 읽는 듯한 슬픔을 전해주기도 하고, 대부분은 상상력 하나로 세상을 뒤집어보는 재치로 엮어져 있기는 하지만, 14쪽의 '안는 사람'처럼 매우 시니컬한 이야기들이 곳곳에 있다. 잘 씹어가며 읽고 읽혀야 하리라는 생각. 결국 '연령을 불문하다'라는 말을 또다시 들먹이게 된다. 찾아보니 이 책이 번역된 것이 처음이 아니다. 그러나 그 이전의 책들을 읽어보지 못했으므로 비교를 할 수는 없다. 그저 이번에 새로이 번역된 이 책이 어떠한가 싶어서 한 단어, 한 구절, 한 문장씩 음미해가면서 읽어보는 계기는 되었다. 예를 들어 16쪽의 '뭐라고 했게?'에서 "'부추'를 살 걸 그랬지. 내 구두보다 '쌀' 것 같은데." 를 살펴보면 부추->부츠->구두, 살->쌀로 읽히는 소리를 가지고 언어유희를 벌이고 있는데, 실실 웃음이 나면서 도대체 무엇이 이렇게 표현되었을까 원문이 궁금해졌다. 그림 역시 실버스타인 자신이 그린 것이니 전혀 다른 말로 바꾸지는 않았을텐데, 하는 궁금증. 23쪽 '내가 만난 괴물'에서도 유령이 머리통을 마다하고 삼천포 가는 길을 묻더라는 대목에서 혼자 소리내어 웃었다. 본색을 잃어버린 유령도 우습고, 삼천포라는 단어도 우스웠다. 39쪽의 '긴 차'에서 등장하는 서울 종로1가와 부산 해운대, '스무머와 스무모'에서의 웃음과 궁금증은 54쪽 '특벼해?'에서 극으로 치달았다. 도대체 이 이야기의 ㄹ과 ㄱ은 무슨 글자가 이리 된 걸까? 그 뒤로도 이런 예는 마안타. 아마 책의 두께에 비해 번역 시간이 좀 오래 걸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어떻게 전달해야 깊고, 어긋나지 않게 실버스타인을 전해 줄까, 그런 고민 적잖이 했을 듯 싶은. 그런 만큼 독자도 더 꼭꼭 씹어먹어야 하지 않을까 싶고. 아무튼 오래 두고 들춰볼 책이다. 첫 번째 이야기 '다락방의 불빛'에서 덧문도 닫힌 깜깜한 집의 다락방에서 깜박거리는 불빛이 무얼 얘기하려 한 것인지를 곰곰 생각해 본다. 그러다 더럭 겁이 난다. 세상에 나온 책은 읽는 이의 몫이라지만 정말로 내가 이 책을 제대로 읽고 있는 건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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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끼없이 주는 나무'로 유명한 '쉘 실버스타인' 작가가 쓴 것이라 책을 골라 읽어 보았는데 한 마디로~~ 이상한 책이다. 이런 책을 상상력을 키워 주는 책이라고 설명하나?? 이 책에 대한 내용 중에 이런 내용이 있다.
제목) 저 밖에 모르는 아이의 기도
제목) 환상적인 다이빙
책에 대한 궁금한 점~~ 이 책을 읽어보고 판단하시길 바란다. 아주 철학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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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의 불빛’은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작가 쉘 실버스타인이다. 그는 6.25 당시 한국전에 참전하여 국군 신문에 만화를 그린 우리와의 인연을 갖고 있기도 하다. ‘다락방의 불빛’은 미국 학교도서관협회 ‘최우수 작품’으로 선정된바 있다. 카툰풍의 간결함과 경쾌함이 유머와 재치, 상상력이 어우러진 작품으로 읽는 이에게 하여금 상쾌한 웃음을 전한다.
다락방의 불빛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안온함, 감춰진 보물, 낡은 일기장이나 책, 빛바랜 앨범, 또 뭐가 있을까 생쥐, 옛날이야기, 랜턴 이런 것들이 아닐까 싶다. 대체로 낡고 오래된 것에서 풍기는 따뜻함과 신비스러움. 그런 이미지와 이 책을 연결해 본다면 다락방 불빛에서 그려낸 보물 같은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시처럼 쓴 카툰 한편은 동화 한편을 읽는 것 같다. 그 간결함이 동화처럼 느껴지는 것은 글에서 못 다한 말을 그림으로 다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야기를 그림 속에 늘려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림 역시 글처럼 간결하다. 그렇지만 작가는 간결한 글과 그림 속에 할 말을 다 하고 있다. 독자 역시 그가 하고자하는 말이 무엇인지 충분히 알 수 있다.
또 이 책의 한편 한편의 글은 각각이 한 토막의 개그와 같다. 어쩌면 아이들 시선으로 세상을 그려내면 모든 게 개그가 될지 모르겠다. 저밖에 모르는 아이의 기도
하느님, 이제 잠자리에 들려고 하거든요. 제 영혼을 지켜 주시고 제가 만일 깨어나기 전에 죽거든 하느님, 제 장난감들을 모두 망가뜨려 주세요. 다른 애들이 갖고 놀지 못하게요. 아멘.
분명히 양말을 신었는데, 분명히 신발을 신었는데. 예쁜 보라색과 하늘색 넥타이도 분명히 맸는데, 춤출 때 정말 멋져 보이려고 분명히 코트도 걸쳤는데, 아무래도 무언가 빠뜨린 것 같아, 그게 뭐지? 그게 뭐지? 그렇다고 작품 모두가 이처럼 웃기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것은 풍자적이고 또 어떤 것은 잔혹하다. 달달달 외우는 모 씨
모 씨는 달달 사전만 외웠대. 하지만 일자리를 찾지도 못했대. 결혼할 사람을 구하지도 못했대. 달달달 사전만 외운 모 씨는 검게 탄 얼굴을 주문한 사람에게
자, 여기 있어요. 당신이 주문한 거 맞지요. 검게 탄 얼굴에 버터 소스를 뿌리고 으깬 감자도 곁들였답니다. 아니, 뭐라고요? 기름이 튀기는 거 아니라 햇볕에 그을리려는 것이었다고요? 쉘 실버스타인의 무한한 상상력과 재담은 아이들에게 카타르시스를 느낄 것이다. 거침없이 펼쳐 놓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아이들은 차마 말로 하거나 쓰지 못했던, 자신들의 상상과 속마음을 털어 놓는 시원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다락방의 불빛이 주는 또 다른 재미는 말장난에 있다. 가락을 넣어 반복하는 말장난, 우리 옛이야기나 전래동요에서 들을 수 있는 말장난이 그 안에도 있다. 다락방 흐린 불빛 아래 누어 주고받는 말장난 같은 이야기. 누구라도 좋다. 세상 모든 걱정 다 잊고 키득거리며 주고받는 말장난 같은 이야기. 상상만으로 재미있어 죽겠다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한, 다락방 속이야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