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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로 은희경에 담뿍 빠져있던 1999년. 그녀의 단편집 <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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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셀린느와
요즘은 도서관에서 빌린 책들을 주로 읽는데, '빌린 책'을 읽다 보면 재미난 일이 많다.
어떨 때는 코딱지로 의심되는 것들까지 덕지덕지 붙어 있다.
라면국물로 의심되는 자국들은 약과고.
위생장갑이라도 끼고 책을 읽어야 하나 싶을 정도로 심난한 책들.
그러나 가끔 호기심이나 상상력을 자극하는 재미난 것들이 꽂혀 있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영수증.
한 번은 책을 읽다 영수증을 하나 발견했는데 아이스크림 두 개를 구입한 영수증이다.
이 사람은 책을 보면서 이 큰 아이스크림 두 통을 모두 먹은 걸까? 궁금하다.
어떨 땐 책에 사람 이름이나 전화 번호가 적혀 있기도 하다. 몇 시 비행기로 출국한다는 기록이 있기도 하고. 이런 메모들 역시 상상력을 자극한다.
이 책에 끼어 있던 건 셀린느 향수의 테스트지였다. 명함만한 사이즈의 상단과 왼쪽 옆에 CELINE라고 쓰여 있는 매우 심플한 종이이다.
이 종이를 끼워 둔 사람은 책 속에 어떤 향기를 가둬두고 싶었던 걸까? 어떤 한 때의 기억을 담아두고 싶었던 걸까?
책의 전반적인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소품이라는 생각이 들어 다시 책 속에 끼워두었다.
이 책에 실린 대부분의 작품들은 1990년대 후반에 쓰여진 거다. 지금으로부터 11-12년 전. 그런데 책을 읽다 보면 레깅스를 입은 여자들이 나온다. '아, 그 때도 레깅스가 있었구나.' '가만, 그때 나는 몇 살이었지? 스물 넷. 근데 왜 그때 나는 레깅스라는 걸 몰랐지?' 생각하다가... 유행이라는 것도 결국 돌고 도는 구나 싶어 피식 웃었다.
그런데 사람의 감정이라는 것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허구헌날 자식들 붙잡고 자기 신세한탄을 하는 엄마도 자기 딸한테는 결혼을 하라고 한다. "엄마는 결혼한 거 후회한다면서 왜 나한테는 결혼하래?" "너는 잘 살겠지." 도대체 이런 낙관론은 어디서 기인한 걸까?
누구나 자기는 행복할 거라고 확신하며 결혼을 한다. 누가나 자기는 해피엔딩일 것이라 생각하며 사랑을 하고. 사랑에 한 번 실패했던 사람도 또 다시 사랑을 한다. 두 번 실패했던 사람도 또 다시 사랑을 한다. '그 사람이랑 안 맞았던 것 뿐이야. 다른 사람을 만나면 다를 거야.'
사람의 문제라고 생각하지 제도나 감정 자체 혹은 관계의 문제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좀 운이 나빴을 뿐인데 다음엔 반드시 운이 좋을 거야.
그런데 은희경은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무서울 정도로 냉철하고 현명하다. '그건 망상이야.'라고 직선적으로 말한다. 사랑은 원래 쓸쓸한 거고 관계란 원래 헛헛한 거야.
12년 전에 유행했던 레깅스를 12년 후에 또 입고, 앞으로 12년 뒤에도 또 입게 될 수 있겠지만... 그런 게 다 무슨 소용 있겠어?
그런데 정말... 어떠한 희망도 기대할 수 없는 걸까? 삶에서도 사랑에서도?
3. 그리고...
사실 이 책은 리뷰가 필요없다. 작가가 친절하게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고 논평한다. 하나, 하나 분신같고 자식같을 텐데, 칭찬 일색인 평론가의 글보다 훨씬 객관적이다. 그래서 유쾌하다. '님 좀 짱인 듯.'
그러니깐 나머지 리뷰는 '서문'에 실린 '작가의 말'에서 빌려보자.
「명백히 부도덕한 사랑」
「멍」
「여름은 길지 않다」
「인 마이 라이프」
음악을 해설해주는 경우는 많이 봤어도 작가가 직접 자기 작품에 대해 설명해주고 해설해주니 재밌다.
은희경은 95년에 등단했는데 그 때 작가의 나이가 서른 일곱이었다고 한다. 나는 아직 만으로 서른 넷. 희망이 있나? 사실 '해설'에 실린 이 문장이 가장 위로가 됐다. 세상에 늦은 나이란 없다는 것. 서른 일곱에 작가가 됐다는 게 오히려 장점이 될 수도 있겠지. 그나저나 이 사실도 예전에 분명 알고 있던 사실 같은데 왜 까맣게 잊고 있었지?
어쨌든 「지구 반대쪽」에서 또 하나의 추억을 쌓았다. 그래서 책을 읽는 동안 시계를 보지 않았냐구? 난 온전히 행복한 사람은 아닌가 보다. 「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는데 책을 읽으면서 계속 몇 시인지 확인한 걸 보면. 아니면 「서정시대」 속 '나'처럼 지나치게 진지해서 그런 걸 수도 있구.
아직도 나 자신을, 인간을 직시하고 그 자체로 인정하는 게 어렵고 힘든 걸 보면 어른이 덜 된 건가 싶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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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의 모든 것이 제로섬게임이 아닌가 싶다. 누군가의 불행이 누군가에게 기회가 되는.. 은희경의 소설은 우선 재미있어서 잘 읽혀지고 읽고나서도 잘 잊혀지지 않으며 전적으로 작가의 생각에 공감한다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어느 정도 그녀의 마인드가 나와 비슷하다는 점에서 빠트리지 않고 읽는 편이다. 이번 소설집 역시 예전에 읽었는데 심심해서 이번에 다시 읽은 케이스이고.. 책의 해설자와 마찬가지로 나 역시 이번 소설집 중 명백히 부도덕한 사랑과, 멍, 그리고 서정시대가 가장 인상 깊은 소설이다. 특히 작가의 자전적인 소설인 듯한 서정시대는 너무 솔직하다 싶을 정도로 작가의 모습을 많이 드러내는 작품인 듯 싶다. 누군가가 아주 진지하게 말을 한다해도 그 사람의 바지 지퍼가 열려 있다면 그 사람의 진지함은 사라지고 우스꽝스러운 치부를 드러낸 것만 기억에 남는 것처럼, 소설의 그녀 역시 그녀의 진지함과 성숙함은 머리에 있는 원형 탈모로 인해 그녀의 행동들을 가치절하 시킨다. 사는 것도 그런 게 아닐까 싶다. 중요한 것에 흠집을 내는 사소한 것들 때문에 그 중요함이 가려지고 사소함, 그리고 악세사리 같은 것들만 더 부각되는.. 삶이 그렇듯이 사람 역시 이면이 있다. 멍에서 죽은 이의 친구들은 죽은 이를 아주 몰상식하고 인간 쓰레기급으로 생각하지만 죽은 이의 아내이자 멍의 기억의 작가인 한현정은 세상이 그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라 생각하면서 그의 아픔을 공감하는 걸 보면.. 세상이, 그리고 자신 역시 잘 알지 못하는 자신의 다른 면을 발견해 주는 이가 있다면 그것은 삶의 축복이 아닐 듯 싶다. 발견되는 그 이면이 긍정적인 면이라면 말이다. 책도 나이에 따라서 읽으면서 공감할 수 있는 부분들이 달라지는 것 같다. 몇 년 전에 읽었을 때와 또 다른 느낌이니 말이다. 앞으로도 은희경씨가 다시 읽어도 재미있는 소설을 계속 출간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
| 이 책을 읽은지는 꽤 오래되었다. 간만에 책장 정리를하는데, 이 책을 솎아내며, 미쳐 처리해 버리지 못했던 것이 못내 아쉬움을 남기고, 잊을만 한 시기에 다시 이 책을 떠올리니 맘이 상해서 몇자 적는다. 타인에게 말걸기나 새의 선물에 비하면 터무니 없는 졸작이다. 특히, 책속의 단편인 '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를 보면 막판의 절규(?)를 보고 토웩질이 날것 같다. 이 책 다음에 읽었던 마이너리그를 본 후에는 아예 작가에 대한 실망이 커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남기는 이유는 혹시나 하는 희망때문이다. 깊이있는 글을 써줬으면 하는...독자의 간절한 바램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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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부도덕한 사랑이면 부도덕한 사랑이지. 명백히 부도덕한 사랑은 대체 어떤 것일까? <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의 첫 단편의 제목인 <명백히 부도덕한 사랑>은 부도덕함의 타협점이 아닐까 싶었다. 명백하게 부도덕한 것이란 어떤 것일까?를 고민한 끝에 나온 그녀의 대답이다. 그 대답에 중요하게 자리하고 있는 것은 '가족애' 였다. 이 소설에서 주인공 '나'는 한 가정의 가장과 내연관계를 맺고 있다. 아버지의 외도 덕분에 이혼의 위기를 맞은 어머니의 딸기이도 했다. 47. 나에게는 고독이 오랜 친근이었다, 외롭지 않다고 거짓말을 해주는 술도 있었다.
38. 마음속에 집착이 있을 때 사람은 혼령 같다. 무엇을 봐도 보이지 않고, 먹는지 뱉는지도 느끼지 못한다. 고독을 겪어본 사람만이 집착의 끔찍함을 아는 것은 참 이상한 일이다. '나'로서는 이 관계가 부도덕한 것을 알지만, 외로우니까. 술로 외롭지 않다고 거짓말하는 것도 한계가 있으니까. 그래서 누군가를 사랑하며 살아야하니까 당신의 향기에 취해 다가오는 한 남자를 허락한다. 이 남자가 싱글이 아니었기에 자연스레 불륜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이 부도덕한 사랑은 당신 자신이 나고 자란 가족의 파괴라는 문제와 정확히 겹친다. 34. 가족이란 서로의 꼬리를 물고 있다, 아프게 깨물면 아프게 물린다. 그렇다고 가볍게 물었다가는 자칫 서로를 놓칠 수도 있다. 너무 세게 물면 - 끊겨버릴지도 모른다. 모든 사랑이 다 그렇듯이. '나'는 그의 여자이기 전에. 어머니와 아버지의 딸이다. 그런데도 아내가 있는 그의 구애를 받아들여 그의 여자가 된다는 것은 어머니의 연적임을 인정하는 꼴이다. 결국 '나'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머니를 배신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이 부도덕함이 명백하게 자신이 감당해야 할 문제로 성큼 다가오게 된다. 이 문제에서 가장 큰 걸림돌인 그 남자와의 관계가 예상보다 순순히 정리되어서 다행이었다. 새로 시작하고 싶다는 그 남자의 말이 이 순간의 욕망을 채우고자 그녀를 억지로 설득시키고자 내뱉는 변명처럼 들렸다는 사실은 내가 보기에는 작가에 의하여 의도된 서사였다. 35. 마음을 정하고 나니까 그래. 이렇게는 하루도 더 못 살겠어. 내년이면 나도 사십인데 지금 못바꾸면 평생 이렇게 살고 말거야. 네가 내 인생의 마지막 기회라구, 알아? (중략)
나하고 살면 인생이 바뀔 것 같아요? 그래. 왜요? 너는 내가 사랑하는 여자니까. 그럼 12년 전에는 사랑하지 않는 여자하고 결혼했던 거예요? 물론 그때는 사랑한다고 생각했으니까 결혼을 했겠지. 당신이 나하고 결혼한다고 해요. 그러면 12년 뒤에 똑같은 말을 하지 않을 것 같아요? 그때 어떤 기힉 오면 당신은 또 이번이 진짜 사랑이고 진짜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면서 나를 떠나겠죠.
40. 집사람을 의존하고 살면서 마누라는 지켜워하는군요. 그 두가지는 똑같은 역할의 양면일 뿐이에요. 당신 아내와 내가 다른 게 뭐가 있죠? 당신은 내가 하는 말은 배려로 듣고 아내가 하는 말은 잔소리라고 짜증을 내죠. 자신이 낡은 달력 같은 존잭 되기 싫다고 말예요. 하지만 언제까지나 새로운 관계는 없어요.
덕분에 그에 대한 명백히 부도덕한 사랑의 미래에 대하여 확신을 갖게될 수 없어졌다. 그 이전에 독자로 하여금 그 남자의 매력이 무엇인지 판단할 기회조차 말끔히 제거해버렸다. 결론은? 남자와 함께 살아갈 치명적인 매력이 없다고 할까? 덕분에 '나'는 명백히 부도덕한 사랑에서 탈출할 수 있었으며 이것은 곧, 가족의 문제에서 어머니의 편을 들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2. 만약에 <명백히 부도덕한 사랑>의 남자가 <인 마이 라이프>의 남자였으면 '나'는 결정을 내리기 훨씬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어쩌면 '나'는 명백히 부도덕한 사랑임에도 불구하고 어머니의 연적이 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 모든 여자에게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인 마이 라이프>의 이 남자는 슬픔의 왕국에 찾아온 불청객이었지만, 얼마지 않아 슬픔의 왕이 되었다. 슬픔을 갖고 있는 여인들에게 그의 모습은 치명적으로 다가온다. 그를 차지하기만하면 슬픔에서 해방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남자였다. 270. 남자는 계속 여자의 눈을 바라보며 노래를 불렀다. 남자의 눈에서 던져진 빛이 여자의 눈 속으로 깃들일 때마다 생기가 넘쳐나고 눈빛니 타올라 여자의 모습은 아름답게 빛난다. 잠자는 숲속의 공주를 깨운 완자의 입맞춤처럼 남자의 눈빛은 여자의 몸속에 깊이 잠들어 있던 생을 일깨우는 것 같았다.
271. 혜린의 마음속에 있는 슬픔의 나라의 법정에서는 새로운 판결문이 나왔다. 여자가 그 남편을 사랑하는 것은 더러운 죄악이며 오직 '인 마이 라이프'의 남자를 사랑하는 것만이 순결한 일이라고, 사랑이 없으면서 함께 사는 부부야말로 상대를 기만하고 삶의 아름다운 섭리를 거스르는 부도덕한 관계라고. 3. <멍>은 대학의 교수로 있는 이진찬이 '멍의 기억'이라는 제목의 한현정의 원고를 열어보는데서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 이야기 속에는 동기들 사이에서 막연히 부채의식으로 기억되곤 했던 현정의 남편. 영규의 고단한 생의 기록이 담겨 있다. 현정은 영규의 생을 사회 부조리의 한단면으로 세상에 내놓기를 원했다. 그 기록은 애절했다. 겉으로 보기에 영규의 생은 나태한 인간 자체였다. 그러나 현정의 원고에 담긴 영규의 일기를 통하여 그의 멍이 자신의 나태함의 결과로 생긴 것이 아니라 그를 가로막는 타자의 벽에 의하여. 즉, 온전히 삶의 무게에 의하여 생긴 것임을 알게된다. 영규의 멍은 그러한 부조리한 현실을 새기기 위한 결과로 매일 생겼다가 사라지고, 살아있는 내내 생성과 소멸은 반복된다. 딸에게 애정어린 일기를 남기기도 했던 그는 죽음으로 인하여 멍을 새기는 행위를 그만둔다. 91. 그의 맨살은 따뜻하다. 그는 이 맨살 속에 멍이 아른아른한 누르스름으로 남아 있을 때쯤이면 늘 새로운 멍을 만들어오곤 했다. 하지만 이제 더이상 새로운 멍을 만들지 않은 덕분인지 그의 몸은 아주 깨끗하다. 멍이 없다! 내 손이 멍을 찾아서 그의 몸 이곳저곳을 다급하게 헤맨다. 그의 가슴, 그의 배, 그의 팔과 다리, 아아, 그의 하얗고 투명안 몸속! 내 손은 갑자기 멈춘다. 멍의 기억은 사라지고 없었다. 그의 내막을 알지 못하는 동기들은 죽어버린 영규를 한심한 자식이라며 안타까워 하며, 마땅히 그래야만 한다는 생각으로 그들 마음대로 짊어지고 있었던 부채를 갚기로 한다. 냉정하다. 93. 죽은 자들에게는 산 자의 호의를 거절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산 자들이 자신의 삶을 새로 짜맞추더라도 거기에 대해 소명할 권리가 없다는 게 죽은 자의 가장 큰 비극이다, 하긴 죽은 자는 그런 일에 관심이 없다. 애도는 살아남은 자들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한 것이다. 이게 끝은 아니다. 멍의 날카로운 일면은 영규에게만 해당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현정의 원고를 읽은 진찬의 아내. 그녀의 손등에도 푸른 멍자국이 있다는 것이다. 4. 개인적으로 제일 소름돋았던 작품은 <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 였다. 이 단편소설은 세상에 홀로 남겨진 한 여인의 회상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그녀는 그를 상실했지만, 여전히 그를 잊지 못한다. 105. 죽음이란 삶이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형태로 바뀐 것일 뿐 사라진 건 아니야. 죽은 너를 사랑하는 일이 조금 외롭기는 하겠지. 하지만 그런 건 두렵지 않아. 두려운 건 너를 잊는 일이야. 너를 잊게 되면 사랑을 잃는 거니까. 한 사람의 생에서 사랑이란 단 한번뿐번인 거잖아.
103. 내일이 와도 네가 내 곁에 없으리라는 사실, 그것이 나로 하여금 내일이라는 말을 희망의 의미로 쓸 수 없게 만드는 거야. 거꾸로 오늘 다음에 어제가 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너도 살아 있을 테고, 그리고 또 지나온 시절이 좋았던 건 결코 아니지만, 내가 이미 다 아는 일들이 닥쳐올 테니 적어도 두렵지는 않을 거 아냐. 이 소설이 대단한 것은 이유모를 자살로 생을 마감한 남자친구. 상실의 아픔에도 결코 그를 놓지 않은 그녀가 보여주는 두 장의 사진에 대한 서사. 그리고 자살한 남자가 손에 쥐고 있던 한 장의 사진에 대한 설명으로 이 연인에게 찾아온 비극에 대한 완벽한 시나리오를 머릿속으로 그려낼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녀는 사진을 설명하는데 충실했다. 오래전에 떠난 부모님의 이야기를 그에게 들려주지만, 독자인 나는 그것을 통하여 아주 자연스럽게 모든 인과관계를 캐낼 수 있었다. 119. 엄마가 사랑한 건 안경을 쓴 그 남자였어. 아버지에게 청혼을 받던 날 엄마는 그 남자의 옹색한 자취방으로 찾아갔대. 청혼받은 사실을 털어놓고 자기의 마음은 당신에게 있을 뿐이라고 고백했어. 그러나 남자는 아무런 약속도 해줄 수 없다고 했나봐. 엄마는 상처를 갇고 아버지와 결혼했던 거야. (중략) 남자에게 자시의 행복한 모습을 보여주려는 복수심과 그 남자를 가까이에서 보고싶다는 그리움. 그리고 죄의식과 질투. 이런 인과관계를 알게 된 이후. 그녀의 부탁은 너무나 슬프게 들린다. 129. 부탁이 있어. 네가 그 사진 속에 없다는 걸 증명해줘. 너는 다른 곳에 있어야만 해. 그래야 우리의 죄로부터 결백해질 거 아냐. 어서 도망쳐. 너를 속박하는 시계와 사진, 그리고 우리의 아버지로부터. 5. <여름은 길지 않다>는 이해가 잘 되지 않는 단편이었다.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운 유부녀의 일탈을 그린듯 싶었다. 세기말 코드도 있는 것 같았다. 남성이라는 대상을 이름이 공개되지 않는 원룸주인과 혁희와 오래로 분리시켜 등장시킨다. 성적인 코드로서 포썸을 위한 듯한 묘사로 읽히기도 했다. 223. 몇사람을 만족시키는 것은 높은 곳에 있지만 대다수의 사람을 만족시키는 것은 언제나 탁자 아래에 있다. 낮은 곳에서 찾아야 한다. 넓어지려면 먼저 낮춰야 하는 게 보편성의 이치다, 라고 생각한다. 6. <서정시대>라는 단편은 132.의 문장을 증명하는 것으로 마무리되는데. 솔직히 아주 인상적이지는 않았다. 그녀의 원형탈모는 남들도 그녀의 성격에 대해 판단할 수 있는 확실한 증거였다. 132. 과민함과 자의식, 자의식과 긴장, 긴장과 소심함과 진지함. 정작 머리카락이 유난히 많이 빠지는 데에는 아무런 주의도 기울이지 않았다는 뜻이다. 내 머릿속은 언제나 수많은 분석으로 터질 듯이 복잡하지만 실제로 인생에 효용이 되는 것은 별로 없었다.
164. 너, 어제 보니까 땜통이 더 커졌더라. 근데 사람들은 네가 일부러 드러내놓고 다니는 줄 알아. 널 냉소적이고 위악적인 여자로고 하더라니까. 네 소설 주인공같이 시건방지고 독하다고 말이야. 7. <지구 반대쪽>은 환상적 리얼리즘을 가미한 소설이다. 어린 시절 일가족이 모두 살해당한 기억을 간직한 소년은 어른이 되어서도 '누군가가 돌아와서 그의 머리통을 떼내 보자기에 싸고 매듭을 조이'는 것 같은 고통을 느낀다. 그는 착하지 않기 때문에 누군가가 벌을 내린거라고 생각한다. 이런 고통 덕분에 그는 어딘가 불안한 존재로 남아있다. 그했던 남자가 작은 아버지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브라질로 떠난다. 그 여행기간 동안 그를 찾아온 기이한 꿈을 통해 남자가 오랜시간 품어왔던 트라우마가 극복되는 현상이 일어난다. 결론은 분명하지만 이해되지는 않았다. 그의 변화의 원인이 무엇인지. 189. 그 여자는 어쩐지 그가 달라졌다고 느낀다. 종일 가야 말 한마디 없는 것은 여전하지만 그 여자가 욕설을 퍼부으면 전에 없이 언뜻 웃음 같은 것을 띤다. 그의 몸을 안을 때도 그랬다. 체온이 느껴진다. 전에 그와 잘 때는 마치 그는 없고 그의 성기와만 접촉하는 기분이었다. 그 자신은 성기를 떼내 그 여자에게 주어버리고는 아랫도리가 어둠처럼 텅 비고 푹 꺼진 채로 혼자 돌아누워 자는 것만 같았다. 늘 그는 이곳에 없는 것 같이 존재했다. 하지만 이제 그는 자기가 앉았던 자리에 온기를 남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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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사랑이 없다면 도대체 사랑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은희경의 소설에서 사랑은 비정상적인 부부간의 것(멍) 이거나 부부가 아닌 사람들의 것(명백히 부도덕한 사랑, 인 마이 라이프), 사랑해서는 안되는 사람들간의 것(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이다. 질기디 질긴 사랑이지만 희미한 것. 사랑을 찾는다는게 누구나 꿈꾸는 것처럼 자연스럽고 분명하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어떨까 생각해본다. 그리고 찾아보면 생각보다 더 많은 숫자가 이렇게 질긴 사랑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을지 모른다.
'이 세상이란 갑의 불행이 을의 행운을 가져다주는 제로섬 게임이라는 정도는 나도 일찌감치 깨친 바 있다.' p.43
'명백히 부도덕한 사랑'에서 '나'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엄마의 불행이 자신에게 행운을 가져다주는 것을 직접 경험하면서 기꺼이 그 행운을 포기해버린다. 이 제로섬게임은 그 이후의 단편들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난다. 남의 사랑을 훔쳐서 갖게 되는 행복은 언제나 남의 불행을 담보한 것이니까. 그런 이기심에서 비롯된 죄책감을 안고도 사랑을 찾는다. 저 사랑이 다시 없을 것 같다. 죽음으로써 시계를 보지 않을 행복을 찾아 날아가버릴만큼 간절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시 사람은 살고. 다른 사람을 찾고. 지구 반대편으로 날아가 버린다.
은희경의 소설은 이야기에 푹 빠지고 싶을 때 읽으면 좋다. 기차에 앉아 창 밖 풍경을 바라보면서 창 안에 있는 나를 잊고 창 밖의 풍경속에 빠져들듯이. 가을이 선뜻 다가와 창밖을 바라보기 좋은 시절이다. 은희경의 책을 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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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은희경의 중단편 모음집이다. 처음엔 그걸 모르고 잡았던 책.
나는 뭐랄까? 단거리 달리기보다는 장거리 달리기가 좋다. 단거리 달리기가 속도라면 장거리 달리기는 심폐기능이 관건이다. (실지 달리기는 그닥 좋아하지 않지만....) 짧은 글보다는 충분히 느긋한 글이 좋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시보다는 소설이 좋은지도. 그러나 이 책은 짧은거리지만 좋았다. 그러고보니 내가 읽은 은희경의 두번째 책이구나. '마이너리그' 에 이어....
책의 제목으로 사용된 '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는 이 작품집에 수록된 그녀의 중단편 중 하나의 제목이다. 그러나 나 역시 '행복한 사람은~' 이 여러 단편들 중에 가장 기억에 남았다. 무엇보다 문체가 새로웠고 산뜻했다. 그러면서도 읽히기 편한 글. 고정관념일까? 단편들은 장편들에 비해 문체들이 대개 무미건조하다. 내게는 단편소설은 그런 느낌이다. 그런 내게 '행복한 사람은~' 은 단편의 새로운 느낌을 준 것 같다.
그리고 책을 닫고 느낀 점.... 은희경이라는 작가.... 상당히 공상을 많이 하는 사람인 것 같다. 이런 저런 잡생각.... 하긴 뭐, 작가들이 다 그렇지. 전생에서부터 얽힌 머릿 속의 실타래를 풀기 위해 글을 쓸 수 밖에 없는 사람들. 어쩌면 작가는 이 생에서 꼭 풀어야 할 전생의 업보를 업고 태어나는 사람일지도. 기독교인인 내가 이렇게 불교사상인 '윤회' 를 빗대어 이야기를 하는게 참 우습네. 여하튼 나는 작가라는 사람들은 숙명으로 인해 글쟁이가 되었다고 믿고 싶다. 쓴다는 행위 자체가 그들에게 모진 살풀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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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희경 작가의 단편집인 이 책의 제목은 알라딘 서점을 둘러보던 내게 한눈에 띄었다. 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 스마트폰에 점령당한 오늘날 사람들은 시계에 얽매여 산다. 나는 얼마나 행복한가? 여유를 만끽할 수 없는 세상에서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은 얼마나 될까? 뭐 이런 시시콜콜한 생각과 줄거리에 대한 기대로 책을 집어들어 계산대로 갔다.
집에 오자마자 동일 작가의 '타인에게 말걸기'와 이 책중 어떤 책을 먼저 읽을까 고민하다가 이 책을 선택했다. 황순원 작가의 '오래된 정원'과 신경숙 작가의 '깊은 슬픔'을 아직 미처 채 읽지 못한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책의 제목에 매료되어 또 한권의 새로운 책을 펼쳐들게 되었다.
예상외로 이 책은 은희경 작가의 단편집이었고 짤막한 이야기들이 소개되어 있었다. 중고서적이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려는듯 책의 맨 앞페이지엔 '백승희, 99-10-12, 지루한 2년차 가을날에'라는 글씨가 써져있었다. 이 사람도 지루한 나날들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서 이 책을 골랐던걸까? 나는 지루하다기보단 시간에 치여 사는 나에게 조금이나마 보상을 주고 싶어서 요즘들어 많은 책들을 읽곤 했다.
< 명백히 부도덕한 사랑 / 멍 / 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 / 서정시대 / 지구 반대쪽 / 여름은 길지 않다 / 인 마이 라이프 > 책에 수록된 이 작품들이 가지는 공통점은 약간은 어두침침하고 이상스러운 느낌을 준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책에 나오는 사람들은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었지만 그들이 겪는 인생사는 평범하지가 않았다. 유부남과의 불륜, 힘든 결혼생활, 가족이 모두 살해당하고 친척들에게 버림당한 주인공, 사촌과의 열렬한 사랑과 근친애에 대한 죄책감으로 죽은 남자, 알지 못하는 아랫집 여자와 급작스럽게 드라이브를 떠나는 세명의 남자들... 작가는 이 등장인물들을 통해 무엇을 전달하고 싶어했던 것일까?
작가는 독자들에게 '이런 삶도 있을수 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세상살이를 힘들어하는 독자들에게 위안을 주고, 삶에 무료함을 느끼는 사람들에게는 이야기속의 삶을 보여주면서 약간의 일탈을 제공하려고 한 것이 아닐까? 이 책에 수록된 이야기들의 등장인물들이 겪는 일들은 쉽게 남에게 말하지 못할 일들이고,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은 좀처럼 겪기 어려운 일들이다. 하지만 이 글을 통해서 우리는 그 일들을 대리경험 할 수 있고, 또 그러한 일들을 겪은 사람들은 등장인물들의 입장에 자신을 대입하여 이야기에 몰입하여 눈물흘릴 수 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이야기를 통해서 조금이나마 마음의 불편함을 덜 수도 있었을 것이다.
<명백히 부도덕한 사랑>에 나온 '아무 빌미 없이 생겨난 짝사랑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구절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우리들이 살아가는 이곳은 사랑이 지배하고 있다. 사랑으로 인해 살고, 사랑으로 인해 죽고, 사랑으로 인해 남을 증오하고, 사랑으로 인해 남을 죽이기까지 한다. 그러므로 사랑이라는 모티프는 많은 소설의 구심점이 되고있고 이 소설에서도 그러하다. 많은이들이 사랑으로 인해 아파하고 힘들어한다. 나도 그러한 경험을 하였고 이 소설은 그렇게 아파했던 내 마음속 상처가 거의 다 아물어가는 요즈음, 새살이 돋아 그러한 상처들을 완벽하게 나을 수 있도록 했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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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시계 보는 걸. 잊고 살았다.. 낮과 밤이 뒤바뀌고..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를 밥을 먹고 있으면 어김없이 나의 뒷통수에 박히는 엄마의 노여운 시선.. "너 지금 몇신 줄 아냐?... " 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니.. 분명.. 작가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내 나름대로의 해석일테지만..
인연을 끊겠다는 사람일수록 마음 깊이에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강하다. 벗어나려고 하면서도 집착의 대상을 찾는 것이 인간이 견뎌야 할 고독의 본질인지도 모른다. -명백히 부도덕한 사랑 중에서-
주변 사람들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핸드폰을 꺼두었다가도 혹시..날 찾을까.. 하는 맘에.. 몰래 다시 켜보곤.. 음성이라도 남았을까.. 하는 나.. [인상깊은구절] 인연을 끊겠다는 사람일수록 마음 깊이에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강하다. 벗어나려고 하면서도 집착의 대상을 찾는 것이 인간이 견뎌야 할 고독의 본질인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