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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퍼는 진정 패배하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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쿤과 포퍼를 처음 알게 된 것은 80년대 말에서 90년대로 넘어가던 대학시절이었다. 당시는 소련 사회주의의 갑작스런 붕괴로 한국사회의 소위 좌파적 변혁을 꿈꾸고 있던 많은 학생들이 미래에 대한 희망과 자신감을 상실하던 때였다. 자본주의의 완전한 승리를 자축하는 부조리한 현실에 마냥 안주할 수 없던 우리들은 사상적 공황과 허기를 채워줄 새로운 사유와 실천을 모색하였고,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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쿤과 포퍼를 처음 알게 된 것은 80년대 말에서 90년대로 넘어가던 대학시절이었다. 당시는 소련 사회주의의 갑작스런 붕괴로 한국사회의 소위 좌파적 변혁을 꿈꾸고 있던 많은 학생들이 미래에 대한 희망과 자신감을 상실하던 때였다. 자본주의의 완전한 승리를 자축하는 부조리한 현실에 마냥 안주할 수 없던 우리들은 사상적 공황과 허기를 채워줄 새로운 사유와 실천을 모색하였고, 그 무렵 쫓기는 듯 아무렇게나 마구 섭렵하던 책들 가운데 포퍼와 쿤이 자리하고 있었다.

 

처음 접한 포퍼와 쿤은 스티브 폴러가 지적하였듯이 그들이 내게 보여주고자 한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나는 [열린사회와 그 적들]에서 포퍼의 사회주의에 대한 비판을 흩날리듯 읽어나가면서 자본주의에 대한 인류의 숭고한 저항을 전체주의로 싸잡아 비난하는 자유주의 지식인의 야비함만을 느꼈었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을 것이다. 아이러니컬 하게도 토마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는 지금이야말로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공감을 일으켰고, 생태주의, 시민운동, 여성운동, 소수자운동 등 새로운 사회변화의 가능성으로 나를 인도해 주었다.

 

스티븐 풀러의 “쿤/포퍼 논쟁”은 나를 포함한 일반인들에게 쿤과 포퍼가 얼마나 왜곡된 모습으로 알려져 왔는지를 1965년 실제로 진행된 두 사람의 논쟁을 바탕으로 자세히 설명해주고 있다. 풀러는 패러다임의 전환을 이야기하며 객관적이고 불변하는 진리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소위 변화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쿤이 실제로는 지식인과 전문가 집단에 대한 일체의 비판을 불허하는 권위주의자였음을 냉철하게 분석해주었다. 이 얼마나 기묘한 가면과 위장이었던가. 나 또한 그토록 열광하고 술안주로 삼았던 코페르니쿠스의 혁명이라는 것이 사실상 반혁명을 위한 방어벽이었던 것이다.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오 같은 탁월한 지식인 그룹에 의한 그때까지의 정상과학에 대한 근원적 균열과 그에 따른 종교적, 정치적 변화가 동반되지 않고서는 사회는 변화되지 않으며, 지식인들에게는 아무런 사회적 책임이 없다는 것이다. 결국 쿤이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쿤의 과학철학적 입장과 일련의 그의 태도들은 냉전시기 미국의 군사적 팽창과 긴밀하게 연관된 과학자 사회를 정당화하는데 기여한 것이다.

 

풀러는 비록 논쟁에서 패배하였지만 지식인의 사회적 책임을 말하고, 과학적 지식에 대하여 끊임없이 비판적 자세를 유지할 것을 요구하는 포퍼를 민주주의의 수호자로 표현하고 있다. 포퍼는 과학자나 전문가 집단에 대한 맹목적인 사회적 숭배와 기대감이 비합리적 사회체제를 정당화하고 전체주의적 국가권력의 유지에 기여할 수 있음을 비판하고 있다. 사실 오래전 칼 포퍼를 사회적 진보를 가로막는 보수적 논객의 한사람 정도로 생각했던 나였지만, 그랬던 나도 이제는 권력을 해체하자고 사람들을 동원한 뒤에 결국 새로운 권력을 생산한 지난 역사의 과오 정도는 인식하고 있다. 결국 포퍼가 말하는 것처럼 권력에 대한 자유로운 비판을 허용하지 않는 권위주의적 사회는 반드시 부패하게 되는 것이며,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하여 일반 대중을 우민화하는 지식인 그룹들도 사회적 진보를 가로막는 그야말로 열린 사회의 적이 되는 것이다.

 

얼마 전 일본을 방문했을 때 미래은행이라는 지역은행만들기에 몰두하고 있는 일련의 사람들에 대하여 소개받았다. 그들에 대한 소개 리플렛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우리가 일반 은행에 저금하는 돈이 무기를 만들고, 원자력 발전소를 세우고, 제3세계를 착취하는 일에 사용될 지 모릅니다. 미래은행은 오직 지역의 태양에너지를 보급하는 일, 복지시설을 만드는 일, 새로운 NPO를 설립하는 일, 빈곤한 자의 자립을 지원하는 일에만 저리로 대출합니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알렌 투렝은 올바른 사회적 진보를 위하여 스스로 비판의식을 지니고 저항하는 주체로서의 시민들이 중요하다고 말하였다. 스피노자는 언제나 쉽게 바꿀 수 있는 권력, 완전한 민주주의가 보장되는 사회가 대중들에게 가장 이상적 사회라고 말하였다.

 

4년에 한번 있는 선거에서 그것도 2~3분 정도의 민주적 권력이 허용되는 오늘날 형식민주주의 사회에서 분명 여전히 쿤은 승자이다.

 

하지만 결코 쿤이 우리의 미래는 아니다.

 

y****l 2007.02.14. 신고 공감 5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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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합리성에 관한 진실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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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기 전에   리뷰 신청 당시 황우석사태와 관련한 '과학의 검증 주체'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주제로 글을 올리면서 여러 책을 참조하려고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함께 읽었다. 제한된 시간이라서 더 깊이 생각하지도, 사고가 숙성되지 않은 상태로 리뷰 글을 적게 되니 아쉬운 마음이 든다.얇은 책임에도,인용되는 학자와 개념들이 등장하여 처음에는 당황스러움을 감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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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기 전에
 
리뷰 신청 당시 황우석사태와 관련한 '과학의 검증 주체'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주제로 글을 올리면서 여러 책을 참조하려고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함께 읽었다.
제한된 시간이라서 더 깊이 생각하지도, 사고가 숙성되지 않은 상태로 리뷰 글을
적게 되니 아쉬운 마음이 든다.얇은 책임에도,인용되는 학자와 개념들이 등장하여
처음에는 당황스러움을 감출수는 없지만,그래도 큰 윤곽을 잡아가며 두번 읽었다.
읽은 내용을 정리하기 전에 다음과 같은 책을 참조했음을 밝혀둔다.
* 현대과학철학논쟁(민음사), 현대과학철학의 문제들(아르케:2장과 5장-반증과
반증주의,과학의 합리성),열린사회와 그 적들(민음사), 한눈에 읽는 현대철학
(남경태:토마스쿤 편), 현대철학의 흐름(칼포퍼 편: 신중섭)
 
 
2. 쿤/포퍼의 사상을 조명해보며
 
1965년 런던대학의 국제과학철학 세미나를 통해 쿤계보와 포퍼계보학자들간의
논쟁이 있었다.  사실 쿤/포퍼의 논쟁에 앞서 플랭크/마흐논쟁이 있었는데,
플랭크는 과학자체 목적을 위해 과학추구의 과학전문주의를 주장하고,
마흐는 과학엘리트의 이기적인 성격에 강한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플랭크는 대중적인 감시를 무시했는데, 쿤 역시 철학적 감시를 등한시했다는 점을
저자는 지적한다. 여기에 쿤이 냉전시대에 군사복합체에 활동한 과학자집단에게
면죄부를 부여해 주었다는점과 지식인으로서 소극적대응을 문제 삼는다.
 
그러나, 저자의 쿤에 대한 비판과 포퍼에 대한 새로운 조명역시 한쪽으로 치우친
경향이 있다. 이유는 먼저 각각의 진영에서 제기한 '과학의 합리성'에 대한 개념
정의가 다르고(포퍼계는 보다 규범적인 색채가 강함),논의를 계속하는 과정에서
오해가 계속되어 잘못된 방향으로 진행된 점이 있기 때문이다.포퍼나 라카토스의
관점에서는 쿤은 비합리주의자지만,쿤의 관점에서는 그들은 실제 과학과 거리가
먼 합리성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적어도 근대 과학의 출현이후 합리성에 대한 합의에 도달했고,과학적 지식은 곧
합리적 지식이라는 확고한 믿음이 형성되었다,그러나,왜 합리적인가라는 문제는
과학의 본성과 밀접한 관련되어 이를 설명하는 것은 쉽지않다.
여기에 과학의 객관성은 정당화 문제와 관련되어 있고,합리성은 지식뿐만아니라,
인간의 행위와 관련이 있는 개념이다.전통적인 과학철학이 과학,진리,객관성,
합리성,진보를 서로 떨어질 수 없는 개념을 간주한 것에,새로운 과학철학은
이러한 개념을 새롭게 재해석하여 과학철학의 통념을 무너뜨리려고 한다.
 
쿤은 과학의 역동적인 측면인 과학혁명과 과학철학자들이 이론을 선택하는
과정으로 촛점을 옮겨,과학의 합리성을 핵심주제로 만들었다.반면에 이전의
논리경험주의자들은 증거와 이론관계를 중심으로,검증,입증,반증된 과학은
정당화된,합리적인 지식으로 본다,즉,과학적 추론의 논리성과 경험적 기초가
과학의 합리성을 보장한다고 생각하였다.과학철학자들은 플라톤이래 지식론의
전통안에서 과학에 대한 본질탐구를 시도하고,특히 데카르트신드롬의 절대적인
영향아래 시대초월의 보편적 통일된 과학적 방법론이 있고 이를 이용하여 비과학
과 구별질 수 있다고 본다.
 
쿤은 과거와 현재의 과학의 실행에 나타난 연구,이론형성,이론전환과 관련된
사항들을 검토하며 과학철학자들이 제시한 합리성의 기준이 과학자집단에 의해
지켜지지 않는다면 비합리적인 탐구로 속단하지말고,적절한 과학적 탐구의
절차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야함을 제시한다. 정상과학과 과학혁명을 대비하며
정상과학시기에는 하나의 패러다임하에 연구작업,문제풀이를 한다.
그러나 과학의 성과들이 기존의 패러다임 자체에 대한 의문이 누적되어
과학혁명의 시기가 되면 문제푸는 방식이 아닌 문제 내는 방식이 바뀌게 된다.
과학혁명은 정상과학에서 이상현상이나 새로운 발견이 촉발되며, 기존의 것을 전면
부정하는 것이다.과학혁명은 정상과학의 연장하는 선에서 일어나는 게 아니다.
1962년[과학혁명의 구조]는 그렇게 탄생한다.
 
이에 대해 규범은 행위를 통제할 합리적 기준을 제시한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며,
쿤의 역사주의가  합리적 인식행위로서의 과학을 예측불가능한 역사적 흐름에
맡겨버리고, 인식통제적 기능을 포기할 위험성이 있음을 지적하기도 한다.
칼 포퍼는 진정한 과학과 사이비 과학의 구별기준으로 '반증가능성'원리를 든다.
이는 베버의 신념과 책임의 원리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나아가 역동적인 과학탐구와 민주정치를 구현하기 위해 점증적 사회공학을
역설하고,'열린사회의 적'에서 밝힌 바처럼 전체주의에 맞서 방법론적 개체주의에 입각,
끊임없는 비판의식을 강조한다.
 
3. 마무리
 
스티브 풀러의 이번 도서는 토퍼계 입장을 대변하는 책이다. 저자가 말한대로
"우리의 정신이 그들을 식민화하지 않으면 반대로 그들이 우리의 정신을 식민화화 한다"
독자의 입장에서는 양쪽의 견해를 비판적으로 거리를 두며 바라볼 필요가 있다.
쿤이 제기했던 문제의식이 과학계의 새바람을 주었고, 오늘의 소수가  내일의
다수가 될 수 있는 변화가능성과 희망의 메세지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다만 쿤이 정치지향적이며 지식인과 전문가 집단에 대한 일체의 비판을 불허한
점이 사실이라면, 또다른 비합리적인 사회체제로 이행될 수 있음을 경계할
부분이다. 따라서 사회곳곳에서 아직도 부익부 빈익빈이 계속되고, 자신들만의
영역 굳이기가 성행되는 시점에서 일반서민들의 다수의 날가로운 눈빛은 계속
살아있어야 한다. 또한 포퍼의 규범주의가 타집단의 참여와 비판의식을 통해
과학계를 지속적으로 정화시켜 줄 수 있다는 장점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단,포퍼의 점진주의 사상은 어디까지나 기존의 체계속에서 이루어지는 미봉책이며
단편적일 수 밖에 없다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 그의 보수적인 성향도 있다는 것이다
e********0 2007.02.19.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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쿤/ 포퍼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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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쿤/포퍼의 논쟁]은 1965년 7월 런던대학에서 단 한 번 벌어진 과학 철학자 쿤과 포퍼의 논쟁을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일율적으로 해석해온 과학 철학적인 관점에서만이 아니라 사회 정치 및 전쟁에 관한 매락 속에서 쿤과포퍼의 논쟁의 의의를 짚어보고 있는 스티브 풀러의 책이다.   사실 내가 과학 철학이란 학문을 처음 알게 된 것은 두 세달 전에 [21세기에는 바꿔야 할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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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쿤/포퍼의 논쟁]은 1965년 7월 런던대학에서 단 한 번 벌어진 과학 철학자 쿤과 포퍼의 논쟁을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일율적으로 해석해온 과학 철학적인 관점에서만이 아니라 사회 정치 및 전쟁에 관한 매락 속에서 쿤과포퍼의 논쟁의 의의를 짚어보고 있는 스티브 풀러의 책이다.

 

사실 내가 과학 철학이란 학문을 처음 알게 된 것은 두 세달 전에 [21세기에는 바꿔야 할 거짓말]이란 책에서 김동광 과학사회학자의 강연 내용을 통해서 였다. 철학적인 고찰을 통해 검증되지 않은 과학자와 과학의 문제는 황우석 사태라는 충격적인 경험을 낳게 했다.

서양에서는 이미 17세기의 자연과학에서 부터 과학 철학의 기원을 찾을 수 있는데 우리의 현실은 1960년대 이후 이과와 문과가 분리된 교육을 하고 있고 이과의 대표 학문으로써의 과학과 문과의 대표 문으로써의 철학은 마치 철길의 레일처럼 분리되어 양분된  길을 걷고 있을 뿐이다. 이런 열악한 학문적 토대에서 우리의 과학은 얼마나 발전할 수 있고 또 그 발전이 무엇을 토대로 검증되고 응용될 것인가 하는 문제에 이르면 참으로 착찹한 마음이 든다.

세기의 격돌을 한 쿤과 포퍼도 '과학은 보다 엄밀한 수단에 의한 철학'이라는 점에서는 동의를 했다고 하는데 쿤과 포퍼의 논쟁에 대한 관심뿐만 아니라 두 사람이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과학관에 대해서도 놓쳐서는 안된다.

 

쿤에 의하면 과학은 하나의 패러다임을 채택하면서 시작되고 그 패러다임 하에서 연구를 하는데 이것을 정상과학 이라고 불렀다.  패러다임이 위기에 처하게 될때 연구자들은 자신이 나가게 될 방향에 대한 규범을 정하기 위해 토론을 하게 되고 실행가능한 대안적 패러다임이 발견 되었을 때 혁명은 일어난다고 보았다. 반면 포퍼는 쿤의 이러한 과학 활동들이 비판정신을 말살하고 철학적 감시가 전무하다고 보았다. 포퍼와 그를 두둔하는 저자 풀러는 현재는 최선의 결과가 아니며 역사에는 실현되지 않은 가능성들이 숨겨져 있고 현재는 과거 행위자들의 특정한 선택 결과이며 그들이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현재는 더 나을 수 있다고 보았다. 즉 과거에 대한 평가와 과거 행위자들에 대한 책임을 묻는 반성을 통해 더 나은 미래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4세기에 걸친 서양 과학 철학사에 그 바탕을 두고 있는 쟁쟁한 쿤과 포퍼의 논쟁을 읽는다는 것은 문화 충격보다 더한 학문의 충격이였으며 책을 읽음으로써 이과와 문과의 분리된 교육을 받은 사람으로서 과학철학이란 학문에 대해 좀 더 넓은 시야를 가질 수있게 되었다.

 

 

 

m****e 2007.02.14.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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쿤과 포퍼, 그리고 스티브 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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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스티브 풀러는 쿤/포퍼 논쟁을 단순한 과학논쟁이 아니라 윤리적이고 정치적인 논쟁으로 재해석했다.   풀러에 따르면, 이 논쟁을 윤리적인 측면에서 보았을때, 쿤은 권위주의자로, 포퍼는 민주주의자로 묘사된다.   그리고 정치적인 측면에서 보았을때, 쿤 이후의 과학은 군산복합체와 결합하는 등 윤리에 어긋나는, 오로지 순수하게 과학의 발전만을 향해 나아갔다. 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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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스티브 풀러는 쿤/포퍼 논쟁을 단순한 과학논쟁이 아니라 윤리적이고 정치적인 논쟁으로 재해석했다.
 
풀러에 따르면, 이 논쟁을 윤리적인 측면에서 보았을때, 쿤은 권위주의자로, 포퍼는 민주주의자로 묘사된다.
 
그리고 정치적인 측면에서 보았을때, 쿤 이후의 과학은 군산복합체와 결합하는 등 윤리에 어긋나는, 오로지 순수하게 과학의 발전만을 향해 나아갔다. 즉 정치적으로 과학이 이용되어 왔던 것이다.
 
쿤과 쿤의 지지자들은 과학이라는 학문을 탐구하고, 연구하는 과정을 단순히 '퍼즐맞추기'로 생각한다고 풀러는 말한다. 그리고 포퍼는 이와 대조적으로 과학의 발전 그 자체보다는 어떻게 발전하는가를 더욱 중요하게 생각한 듯하다. 즉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가, 하는 것이 발전여부보다 더 중요하며, 따라서 늘 비판과 견제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에 나오는 특정 패러다임에 기초한 '정상과학'이라던가, '열린사회'라던가 하는 용어들은 결국 과학자 집단의 '책임성'에 관련된 말들이다.
 
쿤이 말하는 '정상과학'은 결국 패러다임 내에 진리가 있어, 그 정상과학이 유지되고 있는 동안에는 오로지 그것이 진리라는 뜻을 내포한다. 즉, 외부로부터 '닫힌사회'다.
 
그리고 포퍼가 말하는 '열린사회'는 말 그대로 외부로부터 '열린사회', 즉 '정상'이라는 것을 정해놓고 그것의 권위를 지키는 사회가 아니라, 늘 그것에 도전하고 비판하는 과학사회를 일컫는다. 따라서 진리는 그 사회를 초월해서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쿤과 포퍼의 차이점은 명백하게 드러난다.
 
하지만 나는 책을 읽는 내내 이러한 생각은 분명 포퍼의 지지자인 스티브 풀러의 관점이 많이 반영된 것이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현재 과학계의 주류인 쿤주의자들의 입장이 아닌, 과거 쿤/포퍼 논쟁에서 진 후 비주류가 된 포퍼주의자들의 입장에서 당시를 다시 재조명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생각해보면, 본래 사회학자였던 포퍼에게 쿤과의 논쟁은 단순히 과학에 대한 논쟁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가 사용한 열린'사회'라는 용어에서 드러나듯이, 그는 과학이라는 한 학문의 분야가 아닌 보다 포괄적인 '사회'라는 개념에 있어서 쿤과 입장차이가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쿤/포퍼 논쟁은 더 포괄적으로 재조명될 필요가 있고, 그것을 저자인 스티브 풀러가 해냈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쿤/포퍼 논쟁이 본래부터 과학자인 쿤의 입장에서 철저하게 과학사의 일부로만 인식되어 왔던 것을 보면, 확실히 역사는 이긴자의 역사라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스티브 풀러는 패자인 포퍼의 입장에서 역사를 다시 읽고 싶어했던 것은 아닐까.
 
이 책이 그렇다고 해서 요즘 유행하는 '역사 속 숨은 뒷이야기', '숨겨진 역사 이야기', '패자들의 역사'와 같은 류의 책은 아닌 듯하다. 단순히 쿤/포퍼 논쟁을 설명하고, 재조명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 책 속에는 스티브 풀러가 말하고자하는 명확한 '주제'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지식인들의 사회에 대한 책임'이다.
 
나는 과학이 발전하면 발전할수록 더더욱 전사회에 걸친 윤리적 고찰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과거에는 이러한 윤리적인 고찰이 결여된 채, 과학자들이 다이너마이트, 핵 등을 만들어 이러한 발명들이 전쟁과 같은 인간사회를 위협하는 정치적 도구로 악용되었다. 하지만 그때보다 훨씬 더 과학이 발전한 현대에는, 윤리적 고찰이 결여된 과학의 발전과 진보는 다이너마이트처럼 단순한 물리적 피해에서 그치지 않고 보다 위협적인 피해를 입힐 것이다. 인간복제, 유전자 변형을 통한 생물변형으로 인해 근본적인 생태계가 파괴될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대에는, 과학자들의 책임감이 그 어느때보다도 중요하다. 그리고 이 책임감은 과학자들 뿐만 아니라, 모든 지식인들이 가져야 한다. 그리고 나아가 전 사회가 책임감을 가져야한다. 그래야만 지식과 기술의 발전이 악용되는 것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면에서, 이 책은 현재의 우리 사회, 나아가서 미래의 우리 사회를 위해 꼭 다시 한 번 생각해야 하는 문제를 말해주고 있다. 우리는 쿤/포퍼 논쟁이라는 1965년도의 일을 되새기면서 반성해야 한다.
 
이 책에 쓰여진 쿤과 포퍼의 의견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사실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쿤/포퍼 논쟁에 어떠한 의의를 부여하고, 그에 따라 어떠한 교훈을 얻는가, 그리고 그 교훈을 통해 어떻게 행동을 바꾸고, 나아가 미래를 바꾸는가, 라고 생각한다.
 
역사를 배우는 목적은 바로 거기에 있으니까 말이다.
n********e 2007.02.1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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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은 어떻게 발전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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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퍼는 그의 유명한 저서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을 통해 우리나라의 일반독자들에게도 많이 알려진 사람이다. 그러나 철학이나 더욱이 과학철학에 관해 문외한인 나는 포퍼에 대해 그 이상을 알지는 못했다. 더욱이 포퍼와 쿤 사이에 1965년에 있었던 한차례의 만남을 기점으로 팽팽한 과학철학적 논쟁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를 알지 못하였다. 더욱이 나는 쿤이라는 사람의 이름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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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퍼는 그의 유명한 저서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을 통해 우리나라의 일반독자들에게도 많이 알려진 사람이다. 그러나 철학이나 더욱이 과학철학에 관해 문외한인 나는 포퍼에 대해 그 이상을 알지는 못했다. 더욱이 포퍼와 쿤 사이에 1965년에 있었던 한차례의 만남을 기점으로 팽팽한 과학철학적 논쟁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를 알지 못하였다. 더욱이 나는 쿤이라는 사람의 이름조차도 이 책에서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포퍼라는 이름은 그의 저서 ‘열린사회와 그의 적들’에서 사용된 ‘열린사회’라는 단어의 매력 때문에 우리사회에서 일부분만이 받아들여졌었다. 포퍼는 나찌독일의 전횡을 보면서 제기한 개념 ‘열린사회’를 통해 그가 망명한 미국에서는 공산주의에 대한 자유주의를 대변하는 개념으로 환영을 받았다.


그래서 이 책에서 대하는 균형 잡힌 진정한 포퍼의 모습은 상당히 생소할 수밖에 없다. 더욱이 그의 과학발전 개념에 대응해서 소개된 쿤의 과학발전 개념은 처음 듣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개념들은 자세히 읽어보면 그다지 어려운 개념은 아니다. 이 책이 가지는 난해한 문체와 난삽한 개념의 과잉사용이 책을 쉽게 읽히지 않게 만들지만, 포퍼와 쿤의 개념이 가지는 차이와 그것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분명해 보인다.


보는 방식에 따라서 쿤을 권위적으로 포퍼를 실증적으로 평가할 수도 있고, 다른 방식으로 쿤을 시류에 영합한 성공적인 학자와 포퍼를 과거의 패러다임에 얽매인 고답적인 학자로 평가할 수도 있다. 이 책에는 두사람을 보는 서로 다른 입장의 다양한 관점이 소개되어 있다. 이 책의 저자는 두 사람의 서로 다른 면을 대비 시키면서도 주로 포퍼의 관점을 대변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 가지 의문점이 생긴다. 왜 저자는 그토록 쿤과 포퍼를 비교하려고 하는 것일까. 물론 비교와 분석을 통해서 더 선명한 관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새로운 논쟁을 선점하고 잊혀진 이슈를 세상에 부각시키면서 그들에 대해 더 나은 평가를 하는 것이 필요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과정을 통해 그들이 구축한 사회를 보는 인식의 방법에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고 있는 오늘날의 사회를 더 낫게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외한인 내가 보기에는 두 사람의 관점의 차이는 명백하고 뚜렷해 보인다. 과학을 긍정하고 끊임없는 비판을 통해 더 튼튼한 뿌리를 내려가는 학문적 방법을 지지하는 것이 포퍼의 입장이라면, 쿤은 과학이라고 하는 것은 일정한 전재를 바탕에 깔고 있으며 그 전재(패러다임)이 바뀌는 시기가 오면 사람들이 과학을 탐구하는 방식 또한 달라진다는 관점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문외한인 내가 보이기에는 쿤과 포퍼 두 사람의 관점이 서로 충돌하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두 관점은 서로 양립할 수 있으며 상호보완적이기까지 한 것으로 보인다. 포퍼의 과학발전론은 쿤이 말하는 정상상태에서의 과학의 발전 과정을 설명하는 방식이 될 수 있으며, 포퍼식의 발전이 이루어지다 여러 가지 근본적인 오류가 생겨 과학적 방법론 자체가 비판을 받게 되면 패러다임의 전환을 통해 다른 방식으로 과학에 대한 인식을 하게 된다고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한 패러다임의 전환 후에는 다시 포퍼류의 과학의 자시 비판이 통용되는 정상상태가 이어지는 것이 아닐까.

 

이렇게 보면 나는 오히려 저자의 지나치게 복잡한 관념의 희롱이 거슬리게 느껴진다. 오늘날은 자연과학의 빠른 진보를 인문과학이 따라잡지 못하는 것이 문제이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자연과학철학이란 분야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 기쁘다. 인문학의 비판과 감시를 통해 적절한 균형을 잡지 못하는 자연과학 단독의 발전이란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를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자연과학철학의 첨단에서 일하는 인문학자들이 내놓은 책이 이렇게 대중이 접근하기 어려운 관념들로만 짜여져서는 아무런 소득이 없을 듯 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어려운 국내 독서시장의 여건에서도 이 좋은 책을 소개한 출판사에 감사를 보내고 싶다. 이러한 책이 소개되는 것을 계기로 국내에도 과학에 대한 대중의 이해가 높아지고, 인문학내에서 과학을 받아들이고 감싸고 비평하는 움직임이 더 강해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또한 과학과 인문학적 저작 모두가 대중에게 좀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 쉬운 언어로 쓰여지게 될 것을 바란다.

s***g 2007.02.0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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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 속의 헤매다 눈뜨다를 반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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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으로 대격돌을 벌인 것은 단 한 번이었다는 쿤과 포퍼!   각기 과학사와 인문사회학사에서 그들이 남긴 업적과 명성에   이러한 논쟁의 역사까지 더해져 그들의 이름은 앞으로도 계속   사람들에게 회자되며 고민 거리들, 사색의 시간을 선물할 것이다.   왜냐하면, 풀리지 않고 쉽게 해결되지 않을 이야기들이기에   그 고민의 늪은 더욱 깊어질지도 모르지만 인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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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으로 대격돌을 벌인 것은 단 한 번이었다는 쿤과 포퍼!
 
각기 과학사와 인문사회학사에서 그들이 남긴 업적과 명성에
 
이러한 논쟁의 역사까지 더해져 그들의 이름은 앞으로도 계속
 
사람들에게 회자되며 고민 거리들, 사색의 시간을 선물할 것이다.
 
왜냐하면, 풀리지 않고 쉽게 해결되지 않을 이야기들이기에
 
그 고민의 늪은 더욱 깊어질지도 모르지만 인류를 위해 또한
 
반드시 필요한 이야기들임에는 틀림이 없고 인류의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들은 간과할 수 없는 시사점을 던져주기에
 
더욱 그러하다.
 
한숨을 휴~ 내쉬면서 이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아직도
 
마음에 궁금함이 다 풀리지 않고 맺혀진 것이 해결되지 않은 느낌은
 
어쩔 수가 없다. 과학과 인문사회학을 넘나들며 펼쳐지는 논쟁에
 
힘든 읽기와 이해하기, 다시 읽기 등이 무한정 반복되었다.
 
전문적인 용어들에 힘겨워 하기도 하고 그 때문에 여러모로
 
많은 공부까지 하게 되어 여러 권의 책을 읽은 배부른 기분이랄까?
 
음~ 하며 헛기침을 하며 마무리를 했지만 지금으로서는 그 논쟁의
 
대략만을 맛본 듯해 다시 손이 가는 책이다.
 
쿤의 날카로움과 활력적인 목청에 압도된 듯 하지만
 
포퍼의 반격의 목소리가 낮고도 정확하게 들려오는
 
다양한 환청까지 선물해 주는 책!
 
이 순간 인류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걱정하는 많은 이의 손에
 
이 책이 고뇌처럼 들려있기를 기대한다.
 
d******f 2007.02.0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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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가들의 진검승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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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퍼는 철학자로 더 각인되었었다. 쿤은 과학철학이라기보다 아예 대중적인 개념으로서 패러다임이란 개념을 널리 알린 사람으로 알고 있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워낙 쿤의 두꺼운 책 ‘과학혁명의 구조’를 읽고자 시도는 했었지만 실제론 독파가 어려웠던 미천한 지식수준이 한탄스럽기도 했다. 대략 내가 읽은 바는 이렇다. 이 책은 과학, 철학, 오히려 이 개념보다는 '정치'에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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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퍼는 철학자로 더 각인되었었다. 쿤은 과학철학이라기보다 아예 대중적인 개념으로서 패러다임이란 개념을 널리 알린 사람으로 알고 있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워낙 쿤의 두꺼운 책 과학혁명의 구조를 읽고자 시도는 했었지만 실제론 독파가 어려웠던 미천한 지식수준이 한탄스럽기도 했다. 대략 내가 읽은 바는 이렇다. 이 책은 과학, 철학, 오히려 이 개념보다는 '정치'에 관하여 더 많은 배경을 설명하는데 지면을 할애한 것 같다. 우선은, 개념적으로 이해가 쉽지 않아 읽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과학철학 자체를 이해한다는 것도 쉽지 않은데, 이에 대한 뒷배경을 논하는 건, 기본적인 전제가 되어 있지 않으면 어려운 일이라는 걸 새삼 확인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나만의 표현으로 정리하자면 ''의 절대적인 영향력 하에 과학철학이란 것이 정립되어 왔고, 정설처럼 되어 왔다. 여기엔 모종의 계략이 있었다. 그래서 난데없이 포퍼를 대립시켜 자리를 만들었고, 계획대로 포퍼는 쿤의 그늘에 가려졌다. 결과적으로는 비판적인 시각의 칼날을 다소 무뎌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반인의 입장에서 포퍼는 쿤만큼 익숙한 이름은 아니지만 그래도 역시 대단한 인물이고, 돌아가신 지 얼마 안된 이 분야의 거장이다.

 

나는 계속 드는 의문이 책의 앞단에서 오래도록 설명하고 있는 과 포퍼의 논쟁의 바탕을 설명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풀러에겐 중요한 일이었고, 과학철학사적으로 큰 의미가 있기에 심층적으로 다루고 있는 것 같긴 한데, 잘 쓴 다큐멘터리를 따라 가는 느낌이었다. , 그만한 비중을 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쿤이 유명하다고는 해도 포퍼도 역시 대가라서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데 말이다. 이 역시 패러다임의 이론의 반증으로,  그간 정상과학의 의미로 쿤이 규정되었다면 그 논쟁에서 싸워 이기지 못한 숨겨진 정상과학자 포퍼를 부각시키고자 한 건 아닐는지.

 

이 책을 읽고 있는 동안, 지인으로부터 포퍼의 이야기를 들었다. 사람들은 포퍼의 이론에 문제가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아직 그가 살아계실 적에 한국의 대학생 한 명이 당신의 이론에 이러저러한 문제가 있다(70년대였던 것 같다)며 편지를 보냈는데, 친필 사인과 함께 네가 이해하지 못한 부분이 있어서 그렇다. 내가 한 말의 의미는 이런 것이며, 그에 관해 참고도서는 다음과 같다.’는 답장이 왔다는 것이다. 대가의 겸손함에 감탄했다. 이 책을 읽으며 과학도 철학을 갖고 뼈대를 가지고 가는 모습에 부럽긴 했다. 우리나라는 이만한 책을 출판하고, 읽을 독자의 시장이 얼마나 형성될까. 너무나 급하게 패러다임을 쉬프트하며 달려온 세월에는 대가나 나올 환경이 아니다. 역사적인 두 인물의 대결을 책 한권으로 풀어낼 정도로 귀중하게 생각하는 그들의 풍토가 못내 부럽고,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마치 얹힌 것처럼 문장이 고스란히 내 머릿속에 들어있는 것 같아 못내 아쉽다.

j***3 2007.02.1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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쿤 포퍼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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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쿤과 포퍼의 과학의 본성에 대한 논쟁.   과학이 현재 어떤길을 가지고 걸어왔으며 어떠한 방향으로 가야 할지에 대해 과학철학자인 포퍼와 철학계의 지성으로 불리웠던 쿤이 서로 논쟁을 벌이게 되었다. 1960년대에 한 번 일어났던 충돌은 그 이후에도 사람들에게 널리 회자되었다. 알려지기에는 쿤이 승리한 것으로 보이지만 저자는 실은 그렇지 않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 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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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쿤과 포퍼의 과학의 본성에 대한 논쟁.

 

과학이 현재 어떤길을 가지고 걸어왔으며 어떠한 방향으로 가야 할지에 대해 과학철학자인 포퍼와 철학계의 지성으로 불리웠던 쿤이 서로 논쟁을 벌이게 되었다. 1960년대에 한 번 일어났던 충돌은 그 이후에도 사람들에게 널리 회자되었다. 알려지기에는 쿤이 승리한 것으로 보이지만 저자는 실은 그렇지 않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 쿤이 말하고자 했던 내용.

 

   쿤은 과학혁명의 구조라는 책이 세계과학통합대백과사전에 수록되며서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과학은 중립적 사건에 의해서 발견되어진다는 실증주의적 견해에서 벗어나 패러다임이 나오고 그 패러다임에 의한 증거가 사라지게 되면 자연스럽게 새로운 패러다임이 구성된다.

패러다임의 변화에 의해서 과학이 발전하게 된다고 이야기 한다. 얼핏 상대적인 주장으로 보이지만 저자는 그 정황에는 다른 요인들이 결합되었다고 이야기한다.

 

# 포퍼의 주장. 열린 사회와 그 적들.

 

   과학철학자인 포퍼의 주장은 달랐다.

어떤 과학적 주장이 입증되려면 그것에 적합한 증거를 모아서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반대하는 반증, 비판적 사고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그의 주장은 쿤을 비롯한 다른 철학자들에 의해 항상 비판적 증거를 제시할 수 없다고 비판받기도 했지만, 그의 주장은 패러다임에 결합되는 것이 아닌, 과학의 순수 목적인 비판적 사고, 이성을 강조하였다고 저자는 이야기 한다.

 

# 저자가 이야기 하고 싶은 내용.

 

   뒤짚어 보기 처럼, 쿤의 승리로 되어 보이는 이 현상들이 두 논쟁의 대상들을 오독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쿤은 냉전시대의 현상에 발 맞추어 자신의 교수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그 논리에 부합하는 글을 썼고, 그 글로 인해서 교수직을 수여받게 되었다고 주장하면서 과학 자제의 논쟁이 아닌, 정치적 목적이 결합된 일이라는 관점에서 논지를 진행시키고 있다. 하이네거는 대학총장직을 수여방으면서 나치당에 협력한 사실처럼 쿤 역시 냉전논리에 야합한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고 이야기 한다.

 

# 어려운 주제, 하지만 읽어봐야 할 내용.

 

책을 이해하는 것은 쉽지만, 쉽게 읽을 수 없는 주제이다. 일단 쿤, 포퍼 논쟁을 이해하려면 쿤과 포퍼의 저작을 읽어본 후 그 관계에 대해서 깊이 생각한 다음 둘 사이의 논쟁의 방향을 제시한 책을 마지막으로 보아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하지만 저자가 쉽고 간결하게 내용의 방향을 설명하고 구성해서 읽는데에 막히거나 어렵지는 않았다.

그저 유명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치부되는 일들 뒤의 배후사건을 조명하는 관점에서 흥미로웠던 책이었다. 그리고 두 논쟁 저자의 책을 읽어봐야겠다는 호기심을 불러일으킨 책이었다.

다른 두 권의 책과 저자를 만날 수 있게 한 책이라고 할까.. 공학도로서 방학이 끝나기 전에 도전할 목표를 세워준 책이였다.

7******e 2007.02.1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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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만큼 읽히는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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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과학철학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한 사람이 집어 든다면 적극적으로 만류해야 한다. 과학철학 개론서가 아니라 과학과 (and) 철학의 주요 맥락을 기반으로 새로운 주장을 펼치고 있는 전문서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서론과 본론, 그리고 결론이 뚜렷하게 구분되어 차근차근 읽다보면 저자의 결론을 이해할 수 있는 논문과도 다르다. 마치 철학전문 계간지 같은 곳에서 "과학찰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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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과학철학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한 사람이 집어 든다면 적극적으로 만류해야 한다. 과학철학 개론서가 아니라 과학과 (and) 철학의 주요 맥락을 기반으로 새로운 주장을 펼치고 있는 전문서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서론과 본론, 그리고 결론이 뚜렷하게 구분되어 차근차근 읽다보면 저자의 결론을 이해할 수 있는 논문과도 다르다. 마치 철학전문 계간지 같은 곳에서 "과학찰학 논쟁의 재해석"이라는 테마로 약 이년 여간 실린 기획 기고라고나 할까... (각 장의 분량으로 보니 월간지 정도가 알맞을 것 같기도 하다)
 
이 책은 대중서가 아니라 독자층이 좁지만 확실한 전문서이므로, 불필요한 노력을 줄리기 위해 이 책의 성격을 분명히 하는 것이 오히려 도움이 될 것이다. 토마스 쿤과 칼 포퍼는 유명세가 강한 이름들이라 과학철학의 문외한이라도 들어봄직한 이름일 것이다. 그러나 마흐, 푸앵카레, 플랑크, 파이어아벤트 같은 이름들을 처음 발음해보는 사람에게는 절대 적합하지 않다. (그렇다면 이 책은 눈에 띄지도 않겠지만) 저들의 이름 정도는 들어본 적이 있는, 철학에 관심이 많은 과학도와, 과학의 사회적 철학의 문제에 관심이 많은 인문학도일지라 하더라도 쿤과 포퍼의 논쟁의 핵심적인 쟁점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지 못하는 사람도 책을 내려놓길 권하고 싶다. (바로 나 같은 사람인데, 이 책을 읽으면 과학철학에 대한 이해가 더 깊어질 것이라고 착각하기 쉬운 사람들이다) 저자는 지나간 논쟁에 대한 친절한 참고서를 쓴 것이 아니라 논쟁의 재해석에 대한 주장을 펼치고 있으므로 그 논쟁은 이미, 이미 파악하고 있는 사람들이 잘 알아들을 수 있는 방식으로 서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평이라기 보다는 책이 어려워서 내 자신이 저자의 맥을 잘 따라가지 못한 것에 대해 하소연하는 것 같다. 그러나 책을 읽는 내내 쿤의 주장과 포퍼의 주장을 간략하게나마 대비해서 설명하는 장이 하나만 더 있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해야 했던 바로 그 부분이 이 책의 독자를 가름하는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쿤이 최종적으로 승리한 듯이 보였던 그 논쟁을 세밀하게 다시 검토한다. 그러나 과학철학이라는 분야가 그렇듯이 그 당시의 학문 사회, 그 사회를 포함하는 사회적 패러다임의 변화, 그리고 그 사회의 주도권을 두고 벌어지는 정치학적 여러 맥락의 구도를 검토한다. 그러면서 포퍼의 손을 다시 들어준다. "권위주의자 쿤"과 "민주주의자 포퍼"(지나치게 단순화한 느낌도 없지 않으나)의 간명한 대립은 그 당시 유럽 학계의 일만이 아니라, 현재 한국 사회의 단면단면에도 그러한 오류들이 숨어있을지도 모른다는 의문을 갖게 한다. (그 오류란 진리의 오류가 아니라 판단의 오류를 말한다)
 
논쟁을 재해석하는 것은 언제나 흥미진진한 일이다. 논쟁이란 승패가 좌우되기 때문이다. "쿤 이후의 세대를 뒤덥은 안개 속에서, 우리는 이러한 평가를 내리기 위한 '맥락'이 변했다고 말하고 싶다. 쿤 자신은 종종 패러다임이 변화할 때 세계도 바뀐다고 주장했다고 말해진다. 그때 쿤의 선언은 새로운 패러다임과 연합한 개념적 틀 안에서, 세계가 다르게 보인다는 말을 극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너그럽게' 읽힌다. 그러나 이것은 쿤의 과학의 현실 정책의 정수를 간과하는 것으로, 과학혁명이 성공하는 것은 (보편적으로) 동일한 사람들이 새롭게 사물을 바라보도록 설득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관점이 영향력을 갖기 시작하기 때문이다."(45쪽) 승패를 좌우할 만큼 우리의 생각에 영향력을 미치는 관점들의 알력(?!)은 현재에도 계속되고 있을 것이다.
 
아쉬웠던 것은 번역에 있다. 위 인용문에서도 금방 나타나듯이, "쿤 자신은......말해진다"처럼 지나치게 번역투라서 일기 힘든 부분이 많아서 이 책을 읽는데 많은 어려움이 생겼다. 과학이나 공학의 전문서들을 읽을 때면 종종 번역서보다 원문이 더 쉽게 이해된다고들 하는데, 이것은 번역 과정에서 깊이 숙고해야 할 것이라고 본다. 안 그래도 머리를 굴려가며 읽어야 하는 책인데 문장까지 꼬여 있어서 머리가 이중적으로 복잡해지지 않도록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c******e 2007.02.1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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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사회를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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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한해 우리 사회는 황우석 사태로 엄청난 충격에 휩싸인 적이 있었다. 황우석이라는 사람의 기만적 행동은 논외로 하고, 황우석에 대해 보여준 국민들의 반응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그대로 보여준 대표적인 케이스였다. 그렇다고 나쁜 것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과학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지식인의 자세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전개되었던 것은 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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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한해 우리 사회는 황우석 사태로 엄청난 충격에 휩싸인 적이 있었다. 황우석이라는 사람의 기만적 행동은 논외로 하고, 황우석에 대해 보여준 국민들의 반응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그대로 보여준 대표적인 케이스였다. 그렇다고 나쁜 것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과학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지식인의 자세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전개되었던 것은 큰 수확이었다.

그런데 지금 현재 이 시점에서 그렇게 뜨겁게 달구어지던 논의가 이제는 많이 사그라든 느낌이다. 피상적인 논의만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감정마저 든다. 인문학의 위기라고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우리 학자들이 자초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 문제에 대해서도 우리 인문 학자들은 외국의 글들을 인용하는 수준이지, 좀 더 깊고 우리만의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는 과학과 철학에 대한 논의는 부족한게 현실이다.

이 책은 그러한 과학과 철학에 대한 논의와 더불어 지식인의 역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1965년 7월 떠오르는 과학철학자 토머스 쿤과 ‘열린사회와 그 적들’로 유명한 노장 철학자 칼 포퍼 사이에 이루어진 토론에서, 쿤의 다원론적 시각이 우승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지은이는 당시의 논의를 잘못 해석하였다고 주장하며, 쿤의 이론이 가진 오류를 지적하고 포퍼적인 시각으로 바라볼 것을 요구하고 있다.

먼저 지은이는 쿤과 포퍼의 저술을 통해 쿤과 포퍼가 과학을 바라보는 가장 기본적인 차이는, 쿤의 경우는 과학적 탐구가 이미 이루어진 패러다임 안에서 이루어진다고 본 반면, 포퍼는 ‘개방’에 방점을 두고 언제나 열려진 입장에서 과학적 탐구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이러한 두 학자의 기본적인 논의의 차이는 이후로 전개되는 논의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물론 쿤도 패러다임의 전환이 가능한다고 보았는데, 이는 실행가능한 패러다임이 발견되었을 때에만 가능한 것으로 본 반면, 포퍼는 언제나 비판적인 연구태도를 견지할 것을 역설하엿던 것이다. 즉 쿤은 과학의 합리성을 과학자에게 위임하여 패러다임의 안정성에 역점을 둔 반면, 포퍼는 과학자들에게만 맡겨둘 수 없다며 패러다임을 극복해야 할 문제로 본 것이다. 이는 쿤은 권위주의자로 포퍼는 민주주의자로 구분되는 것이다.

지은이는 쿤과 포퍼의 논쟁에 대한 이제까지의 주류적인 입장과 달리 새로운 시각으로 이러한 극단적인 차이에는 정치적인 배경이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이 부분은 이 책에서 가장 돋보이는 논의가 아닌가 한다.

냉전 시기 미국 정부의 원자폭탄 개발을 내용으로 하는 맨해튼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비판적 과학자들보다는 연구에만 전념하는 과학자들 즉 쿤이 말하는 패러다임 안에서 과학탐구만을 하는 과학자들이 필요했고, 과학자들은 자신들의 행동에 대한 성찰없이 프로젝트를 완수하여 이는 지금 현재까지도 전 세계를 핵의 공포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를 보게되면 과학의 순수성을 강조한 듯 보이는 쿤의 논의는 사실은 매우 정치적이었다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우리 과학계를 되돌아 보게 되는 것이다. 황우석 사태가 발생하기 전까지도 우리는 과학을 순수한 학문이라고만 여겼던것이다. 과학에 대해 논쟁을 하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었던 것이다. 여기서 포퍼의 열린 사회에 대한 논의가 힘을 발휘한다. 과학적 논의에 대한 개방적인 시각이 필요하고 과학자 집단은 이에 대한 책임의식이 있어야 한다. 이는 더 나아가 이 시대에 지식이들이 고민하여야 할 문제이기도 한 것이다.

전문적인 용어들과 쿤과 포퍼의 논쟁의 정확한 숙지가 없이는 읽기가 간단하지 않은 책이지만, 지은이가 쿤과 포퍼의 논쟁에서 우리가 잊어버린 포퍼의 정신을 다시금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는 지적은 매우 설득력이 있다고 하겠다.
c*****1 2007.02.17.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