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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총점 종이책
『소각의 여왕』살아간다는 건 어쩌면 죽음과도 마주하는 일이라는 것을.
"『소각의 여왕』살아간다는 건 어쩌면 죽음과도 마주하는 일이라는 것을." 내용보기
살아간다는 건 어쩌면 죽음과도 마주하는 일이라는 것을 최근에 책을 읽으면서 느끼고 있다. 우리가 느끼는 간접 체험이라고 해야할까. 미리 죽음이후의 것들을 상상해보지만 좀처럼 그림이 되어 나타나지 않는데 책을 읽으면서 조금씩 그려보고 있다. 우리가 죽은 후 우리의 죽음 이후의 것들을 치워주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집에서 홀로 죽은 사람들의 유품 등을 정리해주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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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아간다는 건 어쩌면 죽음과도 마주하는 일이라는 것을 최근에 책을 읽으면서 느끼고 있다. 우리가 느끼는 간접 체험이라고 해야할까. 미리 죽음이후의 것들을 상상해보지만 좀처럼 그림이 되어 나타나지 않는데 책을 읽으면서 조금씩 그려보고 있다. 우리가 죽은 후 우리의 죽음 이후의 것들을 치워주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집에서 홀로 죽은 사람들의 유품 등을 정리해주는 사람들은 그런 일들을 어떤 감정으로 할까. 타인들의 죽음이후의 흔적들을 치우면서 자신의 삶을 더 깊게 바라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사람이 죽은후 흔적을 지워주는 유품정리사나 쓰레기를 정리하는 고물상이나 어떻게 보면 비슷한 일인 것도 같다. 쓰레기를 분리해 사용할 수 있는 것은 깨끗이 닦아 사용할 수 있게 하고, 죽은 사람의 주변 정리를 하며 자신이 살아온 날들을 조금씩은 정리할 수 있을테니까. 평상시엔 관심을 두고 있지 않다가 누군가의 죽음을 바라보며 자신의 삶을 반추해보고 주변 인물들과의 관계까지도 더 애틋하게 만드는 것도 같다. 이유의 『소각의 여왕』을 보며 나는 살아간다는 건 어쩌면 죽음과도 마주하는 일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고물상 주인 지창 씨와 유품정리사 해미가 살아가는 삶은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가난한 자들의 힘겨운 삶을 엿볼 수 있다. 쓰레기를 수거하고 돈이 될 것들과 되지 않을 것들을 분리하는 일은 쓸모 없는 물건들에서 쓸모있는 물건들을 만들어가는 일이다. 허파에 바람이 든 지창 씨가 폐가전에서 찾았던 금속을 찾아내려 기계에 빠져있는동안 해미는 유품정리사 일을 하며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삶 그리고 죽음을 엿보게 된다. 

 

 

 

  죽은 자들이 머물렀던 공간은 냄새를 간직하고 있다. 그 공간에서 어떻게 머물렀느냐에 따라 다양한 냄새를 피우고 그 흔적들을 남기고 있다. 그저 한 줌의 재로 가는 삶을 그들은 어떻게 견뎌왔을까. 누군가는 살아가다가 죽음을 맞이하고 죽은 사람의 유품을 정리하며 그 사람의 흔적을 찾아 지워가는 일을 끝내고 나면 굉장히 삶이 허무해 질것 같지 않은가. 죽은 자들이 애틋하게 생각했던 물건들도 결국엔 돈이 될 것과 되지 않을 것으로 분리되어 돈이 되지 않을 것들은 태워져 없어진다.

 

  이곳에는 낮은 자들의 삶이 있다. 궁핍해 폐지 몇 장 가지고 싸우는 할머니, 돈 백 몇십만원을 훔쳐 달아난 청년, 자신의 자살을 앞두고 유품 정리를 의뢰한 사람들. 돈을 만들기 위해서 사람이 해서는 안될 행동을 하는 젊은 여성까지.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는 해미의 삶을 보는 일은 편하지만은 않았다. 그럼에도 죽음을 바라보는 해미의 시선은 묵직한 슬픔을 주었다.

 

  해미처럼 죽음을 자주 마주하다보면 죽음에 대해 좀더 초월해질 수 있을까. 자신의 죽음이든, 가족의 죽음이든. 죽음을 마치 유머를 나누는 것처럼 슬픔을 덜 느끼게도 되는 걸까. 단지 잠이 들었을 뿐이라며 재미있는 이야기를 할 준비가 되면 곧 눈을 뜨고 말거라고 자신의 마음을 달랬는지도 모르는 일. 그러고 보면 삶은 참 슬프다. 기쁨이 있는 반면에 슬픔이 많다. 영원할 것 같았던 삶이 어느 순간 아주 짧은 시간이 되어 사라질수도 있음을. 우리는 알면서도 모르는 척을 하는 것도 같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h*****9 2016.01.14. 신고 공감 11 댓글 9
리뷰 총점 종이책
[소각의 여왕]
"[소각의 여왕]" 내용보기
죽음에 관심을 가지게 된 몇 년 동안 아주 어릴 때 해보던 '죽으면 어디로 갈까'란 원초적인 궁금증이 함께 되살아났다. 오히려 아무 것도 모른다 싶은 유아때 던지는 질문들이 더 근본적이고 철학적인 것 같다. 죽음에 대한 관심은, 그것에서 파생되는 여러 것들로 꼬리를 물어 나간다. 이는 나의 독서 형태에도 영향을 주었다. 책의 내용에서 보이는 죽음과 관련된 표현이나 이야기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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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관심을 가지게 된 몇 년 동안 아주 어릴 때 해보던 '죽으면 어디로 갈까'란 원초적인 궁금증이 함께 되살아났다. 오히려 아무 것도 모른다 싶은 유아때 던지는 질문들이 더 근본적이고 철학적인 것 같다. 죽음에 대한 관심은, 그것에서 파생되는 여러 것들로 꼬리를 물어 나간다. 이는 나의 독서 형태에도 영향을 주었다. 책의 내용에서 보이는 죽음과 관련된 표현이나 이야기들이 도드라지게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소각의 여왕]은 그 가지로부터 뻗어나온 책 선택이었다.

 

비유적인 제목일 것이란 기대와 달리 내용적으로는 소설의 제목 그 자체에 가깝다. 유품의 처리와 '소각'이 주업무인 해미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는 단선적이다. 혹시 작가가 어디에 의도를 숨겨놓은 건 아닐까. 그러나 복잡한 고민은 하지 않아도 되었던 것이다. 기승전결이 분명한 서사성 큰 흐름은 아니지만 통통대는 짧은 문장이 에피소드들을 적당히 투입시켜 읽기의 맥을 유지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었다. 

 

 

 

아버지를 '지창씨'라고 부르는 해미. 가족으로서의 관계보다 직장 동료로 대하기에 적절한 호칭이다. 그것은 엄마의 죽음에 '동의'한 아버지의 태도를 비아냥대는 호칭같기도 하다. 민둥민둥한 부녀관계지만 결정적일 땐 아버지로서, 딸로서의 감정이 분출되는 지점이 보인다. 바람이 단단히 든 아버지가, 운영하던 고물상을 방치하고 순수 이트륨을 뽑는 데만 몰두할 때 경제적 책임을 해미가 떠안는 모습에서 지창씨가 아닌 아버지로 대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것도 해미 몰래 지창씨가 해오던 유품정리 일을 해미가 하였기 때문이다.

 

유품 정리를 업체에 맡긴다는 것은 그 죽음이 급작스럽고 방치된 죽음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일을 누가 할까란 생각을 해본 적은 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한 것까진 궁금하진 않았다. 알고 싶지도 않았고. 이 소설을 읽고난 뒤 이야기와 상관없이 나의 개인적 결심을 하게 만든 것이 있다. 그건 바로 중고제품은 되도록 살지 말자, 이다. 누군가의 죽음에 의해 남겨진 물건들, 그 물건들의 쓰임이 아직 남았다는 판단이 서면 그것을 깨끗이 소독해서 되판다는 것을 새삼 확인했기 때문이다. 그러겠구나, 싶다. 누군가에겐 그러한 일도 생계 수단이 될 것임으로.

 

다시 이야기로 돌아가, 소설 [소각의 여왕]이 문학동네소설상을 수상했다길래 기대를 좀 많이 했는데 다 읽고 나선 이게 뭐지, 이런 반응이 절로 나왔다. 내가 좋아하는 류의 문장이나 이야기 구성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분명 새로운 점이 있다는 건 느끼겠는데 그 새로움이 신선하다거나 나의 명치를 때린다거나 할 정도의 충격은 아니었다. '상을 받았으면 뭔가 다를 거야' 라는 나의 편견이 낳은 아쉬움이다. 그래도 새로운 작가를 만나는 시간은 가졌으니까, 그걸로 됐다.

 

 

YES마니아 : 로얄 g********s 2016.03.05. 신고 공감 7 댓글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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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환하는 것들 속에 사라져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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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말이 있는데, 그 반대의 세계도 있다. 해미가 살아가는 공간, 고물상이 그렇다. 그 곳에서 책은 책이 아니라 파지가 된다. 표지 따로, 스프링 따로, 속지 따로 다 따로따로 해야 가치가 높아지는 곳이다. 어떤 물건이 가치를 가지려면 그 물질 고유의 내재된 특성으로 새로운 것을 만들 수 있도록 합성되어, 기능하는 개체로서의 자신을 버리고 원래 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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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말이 있는데, 그 반대의 세계도 있다. 해미가 살아가는 공간, 고물상이 그렇다. 그 곳에서 책은 책이 아니라 파지가 된다. 표지 따로, 스프링 따로, 속지 따로 다 따로따로 해야 가치가 높아지는 곳이다. 어떤 물건이 가치를 가지려면 그 물질 고유의 내재된 특성으로 새로운 것을 만들 수 있도록 합성되어, 기능하는 개체로서의 자신을 버리고 원래 물화되기 전의 상태로 분해되어야 한다. 이렇게 생각하니 갑자기 범우주적이고 철학적인 물질의 재순환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사람이 죽어 분자와 원자로 분해되고 세상 속에 섞이고, 그것들이 다시 생명이 된다는 온 우주의 일에는 언제나 이렇게 순환의 기본 법칙이 유유히 흐르고 있다. 모든 것은 다른 형태로 끊임없이 변화를 되풀이한다. 버려지는 물건들은 수집되고 분류되어 재활용되거나 소각된다. 무엇이 남겨지고 무엇이 태워질까.

허파에 바람이 들어가는 병이 있다. 해미 할아버지가 지창에게 고물상이라도 남겨주고 떠난 건 허파에 들어간 바람 덕이었을지도 모른다. 넉마를 줍던 해미 할아버지는 해미 할머니가 지창을 낳던 날 대기실 TV에서 반짝이는 조명아래 빙글 빙글 돌아가는 회전목마를 보는 순간 허파에 바람이 들어갔다. 그러나 할아버지의 허파에 또아리를 틀고 앉은 바람은 철조망에 갇힌 고물상보다 더 반짝이는 것이었다. 지창의 팔랑귀를 자극해서 허파에 훅 하고 바람을 불어놓는 것은 시리즈로 찾아온 불운이고, 현대인이 마주한 불안이다. 불행이 먼저 찾아 오고, 그 다음에 불안이 찾아온다. 개인의 헛된 발버둥이 삶을 개선하지 않는다면 허파의 바람이 삶의 의지를 불어넣을 수 있다. 해미는 지창의 허파에 들어있는 그 바람에 냉소적이지만, 바람든 허파가 빨아들이는 지출이 살림을 대신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해미가 하는 일은 시체에서 나오는 분비물과 냄새만 없애는 게 아니었다. 무너진 사람들의 잔해를 치우는 일이기도 했다. 지창씨는 무너질 것 같으면서 무너지지 않았다. "

죽음을 처리하는 것도 현대에는 하나의 산업이 되었다. 한 사람의 죽음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병원과 장례식장, 화장터, 묘지, 종교적인 비용은 사회에서 또다른 경제를 차지한다. 이 작품은 죽음의 흔적을 지워주는 해미의 직업과 일의 강도에 대해 과잉된 감정적 묘사 혹은 유별난 시선을 품지 않아 마음에 들었다. 대신 상세하게 묘사된 그 일의 구체적인 노동 방법과 물리적 상황이 힘겨운 직종의 하나인 유품정리 일과 의미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아버지의 허파에는 바람이 들어 이트륨이라는 희귀금속을 수집한다는 기계와 실험에 감당해야 할 비용이 점점 늘어가는 중, 더 이상 비전이 보이지 않는 고물상의 수입을 대신해 적어도 일한 만큼의 수입을 가져다줄 유품정리 일을 우연히 맡은 것은 아슬아슬하게 발견한 마지막 기회다. 아버지를 지창씨라 부르는 부녀 사이의 친밀하고 거리낌없는 대화는 팍팍한 현실 속 괴물같은 속도로 달려오고 있는 불운 속에서도 깨어지지지 않기를 바라는 평화로운 가정을 보여준다.

허파에 들어가는 바람은 우리를 그토록 달뜨게 만드는 마지막 꿈일지도 모른다. 한 마리 갈매기가 더 멀리 더 높이 날려고 비상하는 동안에도, 수많은 다른 갈매기들은 갈매기 조나단의 비행이 초래할 배고픔에 대해서만 걱정한다. 우리는 때로 현실에 적응하며 먹고 살 걱정을 해야 하는 반면, 그것들을 잊고 지금과는 다른 무언가를 향해 열중할 필요도 느낀다. 숱하게 실패하고 스러졌던 누군가 꿈꾸지 않았다면, 누군가의 바람에 허파가 들어가지 않았다면 인류 역사는 더 평화로왔을 지 모르지만, 아직 사바나 사막에서 동물의 사체를 헤매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해미가 사랑하는 아비의 비행을 지켜보며 할 수 있었던 최선은, 묵묵히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찾은 것 뿐이다. 조금만 더 이해했더라면, 그 비극적 결과가 달라졌을까.



g******1 2016.04.25. 신고 공감 5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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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각의 여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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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의미가 없는 것은 없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에는 모두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말하는데... 쓰레기에도 의미가 있는 것일까? 처음엔 쓰레기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생각했지만.. 남들은 쓰레기라 칭하는 그것들을 모아 돈을 버는 사람들이 있으니 쓰레기 역시 의미가 있는 것이다. 예전 물건이 귀한 시절에는 지금처럼 쓰레기가 많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어느 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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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의미가 없는 것은 없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에는 모두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말하는데... 쓰레기에도 의미가 있는 것일까? 처음엔 쓰레기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생각했지만.. 남들은 쓰레기라 칭하는 그것들을 모아 돈을 버는 사람들이 있으니 쓰레기 역시 의미가 있는 것이다. 예전 물건이 귀한 시절에는 지금처럼 쓰레기가 많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어느 집이나 물건이 넘쳐난다. 누군가는 물건을 너무 쉽게 버려 문제고 누군가는 물건을 버리지 못해 문제다. 사람들의 인생에 적당한 교통정리가 필요하듯 우리의 삶 역시 시간과 함께 적절한 정리가 필요하다. 모든 물건들을 껴안고 죽을 수 없듯, 모든 것을 지키며 살 수도 없다. 가난하고, 그 가난에서 벗어나기 힘든 그들의 삶, 그들에게 진정 편안함은 어쩜 죽음일지도 모른다는 것이 슬프다.

 

재수생 해미는 대학에 가는 대신 포터를 몰며 고물상을 운영하는 아버지 지창씨의 일손을 돕는다. 고물상은 지창씨의 할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것으로 고물을 소중하게 다룬다. 해미는 동네를 돌며 폐지와 고물을 수거하며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는 고물상 일의 진리를 알아가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 지창씨가 해미 몰래 출장을 다님을 알게 되고 그 일이 고물과는 상관없는 유품정리 일임을 알게 된다. 아버지가 초등학교 동창 정우성 으로부터 알게 된 이튜늄뽑는 것에 미쳐있을 때 해미는 아버지를 대신해 유품 정리에 뛰어든다. 해미에게 유품관리 일은 아주 오랫동안 해온 것처럼 거침없고 혈흔과 시취가 밴 공간을 깨끗이 지워내고 정리한다. 해미가 유품정리를 하고 있을 때 아버지 지창씨는 생의 마지막 반전이라도 되는 양 이튜륨을 뽑아내고자 하는데...

 

작년에 유품정리사란 직업을 가진 사람의 책을 읽은 적이 있다. 그 책을 읽으면서 삶과 죽음에 대해 오랫동안 생각했었다. 그 당시 친척 어른의 갑작스런 죽음이 있었기에 더 가슴에 와 닿았던 기억이 있다. 갑작스레 돌아가셨기에 당신 살아생전 물건을 제대로 정리하지 못하셨다. 누군가는 고인의 물건을 가지고 싶었던 사람이 있는 반면, 그건 쓰레기 일뿐이라고 무시했던 가족이 있어 그걸 바라보는 또 다른 3자는 마음이 아팠다고 한다. 내가 그 죽음의 당사자나, 가족이 아니기에 뭐라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그때 생각한 것은 삶에도 정리가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이 세상에 태어나 나는 얼마만큼의 흔적을 남기고 살아가게 될까? 블로그에 나의 글이 있을 것이고, 간간히 남긴 편지나 일기들이 존재할 것이다. 그런 것들 말고는 내가 가진 물건들인데... 내가 죽고 그것들이 쓰레기로 취급된다고 생각하면 묘하게 마음이 아프다. 살아 있던 시절 나에겐 소중한 물건들이지만 그걸 바라보는 자식이나 친척들은 쓰레기로밖에 보지 않음을 다시 한 번 느꼈다. 그래서 정신 말짱할 때 내 삶을, 내 물건들을 항상 정리하며 살아야 하는 것 같다.

 

고물을 취급하는 것과 유품을 취급하는 것. 어찌 보면 가장 밑바닥일일 수도 있다. 결코 하고 싶지 않은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세상엔 또 그들이 있어 쳇바퀴 돌 듯 삶이 흘러간다. 죽은 사람의 얼굴이 그렇게 편안해 보이는 줄 몰랐다고 말하는 사람들. 적어도 죽을 때만큼은 편안하고 싶은 또 다른 바람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죽음은 당연하게 주어지는 선물이 아니다.

스스로의 의지만으로 안 된다. 여러 명의 의지가 하나의 죽음을 이끌어낸다. 누군가의 의지와 누군가의 동의와 누군가의 묵인 (64)

예전엔 죽음에 대해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건 내가 아직 젊다는 반증이었고, 아직은 죽음이라는 우울을 느끼고 싶지 않았던 내 마음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젠 죽음이 삶의 또 다른 연장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삶과 죽음은 같은 선상에서 존재한다. 영원히 사는 사람도 없고 영원히 죽음도 없는 것 같다. 사람에 따라 환생하는 삶도 있을 테니까.

 

내 삶을 뒤돌아본다. 나는.. 잘 살고 있는 것일까 

 

YES마니아 : 로얄 k*****3 2016.01.22. 신고 공감 5 댓글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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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각의 여왕 /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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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위 바위 보는 단순한 게임이다. 많은 게임들이 그 존재마저 의심할 지경으로 사라지고 있는데 반해 이 게임은 여전히 현재진행 중이다. 이 단순한 게임이 이토록 오랫동안 광범위하게 지속되고 있는 이유가 뭘까. 아마도 평등한 확률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균등하게 제공되는 이 평범함이야말로 가위 바위 보를 모든 게임의 대표 자리에 앉힌 이유일 것이다. 여기에는 고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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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위 바위 보는 단순한 게임이다. 많은 게임들이 그 존재마저 의심할 지경으로 사라지고 있는데 반해 이 게임은 여전히 현재진행 중이다. 이 단순한 게임이 이토록 오랫동안 광범위하게 지속되고 있는 이유가 뭘까. 아마도 평등한 확률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균등하게 제공되는 이 평범함이야말로 가위 바위 보를 모든 게임의 대표 자리에 앉힌 이유일 것이다. 여기에는 고수가 없다. 누구나 언제나 초보이다.

 

그런데 이런 게임에서조차 필패하는 사람들이 있다. 확률이 33.3정도이면 세 번에 한 번은 이기는 것이 정상이다. 남들보다 조금 재수가 없다 하더라도 여섯 번에 한 번쯤은 이겨야 한다. 그런데도 막무가내로 지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은 대체로 질 줄 뻔히 알면서도 상대에게 자신의 패를 먼저 말한다. 그리고 그것을 낸다. 진다. 그리고 반복한다.

 

이 책에 나오는 주인공들의 삶은 고단하다. 고단하다 못해 숨이 턱 막힌다. 우리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삶이 이들과 같다고 생각하면 너무나 불행하다. 이들은 삶의 진창으로 걸어 들어갈 줄만 알았지 스스로 나오는 법을 배우지 못해 허우적거리고 있다.

 

주인공 해미는 고물상에서 태어나 유품정리 일을 하며 살아간다. 병을 앓던 어머니를 어린 시절에 잃고 아버지를 도와 억척스레 고물상 일을 해나가지만 어쩐 일이지 생활은 뒤로 후퇴한다. 그 가운데는 전자기계 안에 들어있는 희귀금속을 축출해서 부자가 되려고 하는 아버지의 바람병이 있다.

 

아버지 앞에는 정우성이라는 사람이 있다. 고물을 분류하는 일은 기가 막히게 잘 하는 아버지지만 정우성과의 관계에서는 평생 패자의 자리에 붙박이처럼 서있다. 정우성은 늘 기세 좋게 아버지를 뜯어먹고 산다. 만약 아버지가 이 게임에서 한 번만이라도 다른 것을 내놓았다면 다른 삶을 살지 않았을까.

 

고물상에서 함께 일하던 민머리 장은 친구에게 무상으로 양도 받은 정육점을 운영하지만 잘 되지 않는다. 잘 되지 않을 수밖에 없다. 잘 되지 않을 때를 대비해서 그 빚을 덮어씌울 대상을 물색했다는 자체가 패배자의 마인드이기 때문이다. 좋은 것은 내가 갖고 나쁜 것은 다른 사람에게 얹어주려는 약은꾀를 잘도 썼지만 거기에 넘어갈 사람이 없다는 게 그의 한계다.

 

어디 한 군데 마음 따뜻한 장면이 없는 이런 소설도 참 오랜 만에 읽는다 싶다. 이타심은커녕 다 저 혼자 살아보겠다고 아옹다옹이다. 하지만 결국 아무도 잘 살지 못하고 뿔뿔이 흩어져버린다.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살수 있다고 믿어서 죽자살자 흩어졌더니 모래알처럼 저한 몸 건사하기 힘든 미미한 존재가 되어버렸다. 다시 뭉치면 잘살 수 있을까?

 

 

 

 

t******e 2016.01.12. 신고 공감 4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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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으로밖에 갈 수 없는 그들을 위한 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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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은 얼었고 서울은 영하 18도를 기록했다. 제주도는 32년 만에 폭설이 내렸다. “춥다”라는 말이 입에서 떠나지 않는 나날이다. 따뜻한 생강차가 찬 몸을 녹이기 전에 다시 한기가 살을 파고들었다. 추위를 견디며 읽은 책은, 아니 추위를 잊고 싶어 읽은 책은 이유의 『소각의 여왕』이다.   한쪽밖에는 보이지가 않아서 한쪽으로밖에 갈 수 없는 사람들. 죽음이 아니면 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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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은 얼었고 서울은 영하 18도를 기록했다. 제주도는 32년 만에 폭설이 내렸다. “춥다”라는 말이 입에서 떠나지 않는 나날이다. 따뜻한 생강차가 찬 몸을 녹이기 전에 다시 한기가 살을 파고들었다. 추위를 견디며 읽은 책은, 아니 추위를 잊고 싶어 읽은 책은 이유의 『소각의 여왕』이다.

 

한쪽밖에는 보이지가 않아서 한쪽으로밖에 갈 수 없는 사람들. 죽음이 아니면 달리 편안해지는 방법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206쪽)

 

잘못된 선택이었다. 추위를 잊기에 적당한 책이 아니었다. 가벼운 문장은 의연함이 아닌 쓸쓸함을 품고 있었다. 죽음이 아니면 달리 편해지는 방법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가뜩이나 추운 심신을 더 춥게 만들었다.

 

“아버지, 허파에 바람이 들면 사람이 어떻게 되는 줄 알아?”(9쪽, 첫문장)

 

‘허파에 바람이 들다’는 실없이 행동하거나 지나치게 웃을 때 또는 마음이 들떠 있을 때 쓴다. 이유의 『소각의 여왕』은 ‘허파에 바람이 들어 죽게 되는 남자 지창씨’와 그의 유전병, 허파에 바람이 부는 병을 물려받은 딸 해미의 이야기이다. 고물상을 하는 아버지와 유품정리사인 딸의 이야기로 버려진 물건들을 정리하는 것이 그들의 일이다.

 

그는 인생에서 처음으로 자신을 기다리는 운명적 무언가가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것이 이제 지창씨 앞에 모습을 드러내려 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개고생을 하며 의미 없이 보냈다고 생각한 날들이 하나의 위대한 결과물을 위해 바쳐진 순간들이라는 확신이 들었던 것이다. 되든 안 되든 그가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분명 해낼 수 있는 일이었다.

지창씨는 자신의 심장이 그렇게 힘차게 뛰는 걸 처음으로 느꼈다. 아침을 눈을 뜰 때마다, 숨을 쉴 때마다 심장이 터지지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였다.(76-77쪽)

 

아내가 죽은 지창씨는 딸 해미와 단둘이 살고 있다. 그는 아버지 때부터 이어진 고물상을 운영하며 딸 몰래 유품정리를 하고 있다. 가난한 삶은 어머니와 아내의 병원비로 바닥을 쳤다. 그 무렵 친구 정우성이 알려준 사업, 휴대폰에서 이트륨을 분리하는 기계를 만드는 일을 하게 된다. 타인에겐 ‘허파에 바람이 드는’ 일이었지만 그에겐 삶의 마지막 희망이었다. 생각해 보면 꿈이란 실현되기 전까지는 모두 ‘허파에 바람이 드는’ 일이다.

 

고물상이나 유품정리사는 사용 또는 보관가치를 상실한 물건들의 ‘죽음’을 돕는, 그러니까 소각하는 직업이다. 그런 일을 한다고 해도 죽음에 담담하진 않을 것이다. 어쩌면 삶에 대한 애착이 더 강할지도 모른다. 지창씨는 그 기계를 만드는 일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생각하지만 잘못된 선택이었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삶을 무의미하게 보내고 싶지 않은 마지막 몸부림이었기에. 그의 시간은 ‘발밑에서 모래알이 빠지면서 언제든, 누구든, 물속에 잠겨 사라질 수 있다는 걸 온몸으로 실감하던 때’(194쪽)였으므로.

 

죽음은 당연하게 주어지는 선물이 아니다.

스스로의 의지만으로 안 된다. 여러 명의 의지가 하나의 죽음을 이끌어낸다. 누군가의 의지와 누군가의 동의와 누군가의 묵인.(64쪽)

 

한때 ‘9988234’라는 말이 유행했다. 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 2~3일 앓고 4일째 되는 날 죽는다는 뜻이다. 열심히 살다 편안히 생의 마지막을 맞는다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누군가는 스스로, 누군가는 타인에 그릇된 욕망으로 삶을 마감한다. 한 사람의 흔적이 쓰레기고 그마저 소각될 운명이라는 사실은 서글프다.

 

허파에 바람이 드는 일에 빠진 지창씨를 대신에 해미는 유품정리를 시작한다. 유품을 정리하는 일은 고인의 마지막 인사를 하는 일이다. 영어는 만날 때와 헤어질 때의 인사가 다르다. 아침 인사, 점심 인사, 저녁 인사가 다르다. 우린 만날 때와 헤어질 때 모두 ‘안녕’이란 단어로 통한다. 만남이 중요한 만큼 헤어짐도 중요하다. 그녀가 세상을 떠났을 때 장례도 유품 정리도 부모의 몫이었다. 그때 생각했다. 부모 보다 앞서는 일은 결코 해서는 안 되는 일이구나. 유품 정리를 맡긴 사람들에겐 그럴 만한 사정이 있고 지창씨나 해미처럼 그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안다. 일반인보단 전문가의 손길이 닿으면 한결 깔끔하게 정리될 거라는 것도. 하지만 슬프면 슬픈 대로 괴로우면 괴로운 대로 원망하면 원망하는 대로 고인과 이별하는 시간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싶다.

 

“허리케인 파티라는 게 있대.”

해미가 희뿌연 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게 뭔데?”

지창씨가 고개를 숙인 채 미소를 지었다.

“태풍이 가장 세게 몰아칠 때를 기다렸다 파티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거야.”

“담도 크네.”

“태풍이 절정에 이르면 꼭 지구가 죽음의 고통 속에 허덕이는 것처럼 느껴진대. 그 순간을 기다렸다 파티를 하는 거지.”

“그러고도 무사해?”

“무사하겠어? 많이 죽는대.”

다시 정적이 흘렀다. 정적이 깨지는 일은 일어날 것 같지 않았다.

“죽음의 파티네.”

지창씨가 말했다.

“인생을 완전히 쫑내는 파티지. 그래도 멋지잖아. 사람들이 지하대피소에서 숨죽이고 있을 동안 촛불을 켜고 수영복 입고 미친 듯이 마시고 노래하고 춤추는 거야.”(200쪽)

 

아무리 좋은 말로 포장해도 죽음은 삶의 끝이다. 죽음의 순간에 직면했다 해도 삶의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기에 허리케인 파티를 즐기는 것을 정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그 선택이 오답이라고도 생각하지도 않는다. 어쩌면 파티는 삶을 놓아버리겠다는 뜻이 아니라, 거대한 힘을 가진 당신에게 굴복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일지도 모른다.

 

어떤 날 읽으면 좋을까?, 생각하니 딱히 적당한 날이 떠오르지 않는다. 회피하고 싶은 일은 소각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불가능하다. 고통의 시간만 연장될 뿐. 살아있는 우리는 매 순간 최선을 다할 뿐이다. ‘소각’은 예정된 운명이고 ‘여왕’의 삶은 이룰 수 없는 꿈이라도.

 

 

 

 

 

 

 

 

YES마니아 : 로얄 m****6 2016.01.26. 신고 공감 3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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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이 먼 곳을 향할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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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그런 순간이 있다. 마주보고 이야기 하고 있는 사람에서, 눈앞에 있는 사물에서 초점이 흩어지고 멀리 보이는 배경이 선명해지는 순간. 그 순간, 어떤이는 떠나고, 어떤이는 남는다. 그들을 떠나게 하는 마법은 선명한 것을 따르려는 본능보다 더 강한 광기이다. 오직 보이는 것은 그것 뿐이니 그들은 결국 떠날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허파에 바람이 든다는 것은 그런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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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그런 순간이 있다. 마주보고 이야기 하고 있는 사람에서, 눈앞에 있는 사물에서 초점이 흩어지고 멀리 보이는 배경이 선명해지는 순간. 그 순간, 어떤이는 떠나고, 어떤이는 남는다. 그들을 떠나게 하는 마법은 선명한 것을 따르려는 본능보다 더 강한 광기이다. 오직 보이는 것은 그것 뿐이니 그들은 결국 떠날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허파에 바람이 든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한 번 터진 웃음이 멈추지 않듯이, 한 번 궤도를 벗어나면 멈추지 못하는 방황을 반복하는 것이다. 디즈니랜드의 반짝이는 회전목마를 보면서 허파에 바람이 들었다는 할아버지의 유전병처럼, 아버지는 이트륨이라는 희귀한 금속에 빠져 허파에 바람이 들고 만다. 초점이 먼곳을 향하면 주변의 사물이 흐려지는 것은 세상의 이치. 아버지는 물려받은 고물상에 관심이 사라지고 대신 희귀 금속을 추출해 내는 거대한 기계에 빠져든다. 그리고 그의 딸 해미는 아버지가 버려둔 고물상과 유품정리의 바통을 쥐고 이어 달린다. 


소설 속 주인공들의 삶은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쓸모 없는 것들에서 가치를 찾아내는 삶, 사라진 것들에서 관계를 복원하는 삶. 모든 것을 소각하면서도 그것의 가치를 마지막으로 '되물어주는' 삶이다. 고물상이 세상에 버려진 모든 것들에서 남아있는 가치를 찾아내 값어치를 매기는 작업이라면, 유품정리를 하는 해미의 일은 주인이 사라져버린 사물에 세상과의 관계를 복원시키거나 사라지게 하는 작업이다. 우리의 삶이 생태계라면 폐기물을 분리해서 다시 복원시키는 작업은 '분해자'의 역할이다. 분해자는 유기물의 시체나 배출물에서 에너지를 끌어 쓰고, 유기화합물을 무기물로 바꿔준다. 이들은 다시 유기물에게 소비되어 같은 과정을 반복한다. 이 때 반드시 거쳐야 하는 것은 결국 '흩어지는' 과정이다. 사물의 부분을 구성했던 과거에 얽매인다면 그것은 필연적으로 소멸되고 말것이지만, 각각의 개체로 분리된다면 다시 한번 기회가 주어진다. 


때문에 그들에게 '집합'은 의미가 없다. 오직 개체로서 존재해야만 가치를 인정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희귀금속의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파지는 파지대로, 병은 병대로, 그리고 인간은 인간 자체로서만 존재해야 한다. 고유의 본질을 놓친 사물은 영원히 사라지는 수밖에 없다. 본질을 찾아가는 과정이 반복될 수록 개체성은 더 확고해지고, 어디에 속해 있는 것으로서가 아닌 오직 그 자체로서 의미를 부여받게 된다.'소각의 여왕'이 모든 것을 사라지게 하면서도 우리에게 사물의 의미를 되묻는 희한한 이야기인 이유가 여기 있다. 


눈 앞에 있는 것들의 의미를 찾는 일은 도무지 어렵기 때문에, 소각하는 과정은 그 공백을 느끼게 해주는 특별한 절차가 된다. 사물과 인간의 관계가 사라지면 그들은 의미 없는 존재가 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런 과정에서 그들은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의미를 각인시킨다. 유일하고 특별한 사물로서 인정 받던 순간에서 주인의 부재로 인해 쓸모없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순간 순간이 모든 사물의 전부의 순간이다. 인간의 경우라면 다른 것들과 섞여 있을 때 개인의 꿈이란 희미해지는 것이고, 개별적 자아가 될 때 이상이 가까워 오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환상의 영역에서 돌아오기에 그들은 너무 거친 삶을 살고 있었다.


펠릭스가 고통을 겪고 있다면 큰일이었다. 그런 상태로 코마에 들어갔다간, 고통에 찬 육신으로 돌아오기보다 빛이 이끄는 대로 따라갈 염려가 있었다. (타나토노트, p.214)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타나토노트'에는 위 장면이 나온다. 처음으로 영계 탐사를 앞두고 있는 펠릭스가 살을 파고든 발톱 때문에 영혼계에서 돌아오지 않을 것을 염려하는 뤼생데르의 생각이다. 현실을 벗어난 이가 현실로 돌아오기 싫은 때는 현실에 지독한 고통이 도사리고 있을 때이다. 결국 그녀의 아버지 지창씨는 허파에 든 바람을 꺼뜨리지 못하고 숨을 거둔다. 그녀가 그의 죽음 앞에서도 크게 울지 않은 것은 그가 좇았던 꿈과 돌아오지 못하는 현실의 간극에 극복할 수 없는 고통이 있음을 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의 허파에는 금새 바람이 들었다가도 꺼져버리곤 하지만, 언젠가 또 그의 아버지처럼 바람든 가슴으로 훌쩍 떠나버릴 것임이 분명하다. 우리 삶이란 가슴 모퉁이에 비현실적인 꿈을 하나 안고 살다가 한 번쯤 날아가 버리거나 혹은 끝내 못하거나, 두 가지의 길이 있을 뿐이다. 

YES마니아 : 로얄 c****o 2016.01.05. 신고 공감 3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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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각의 여왕-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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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저히 엄두가 나질 않았다. 부엌에는 플락스틱 반찬통, 바구니, 김치통, 약봉지, 유리그릇, 냄비, 밥통, 생활용품들이 가득했다. 필요해서, 필요할 것 같아서 사 둔 물건들은 바닥을 점령했다. 비닐봉지는 왜 그렇게 많던지. 사놨는데 어디 있는지 몰라서 또 산 물건들이 가득했다. 칫솔, 치약, 행주, 수세미, 키친타월, 크린랩. 물건 정리와 청소 좀 한다던 나조차 기가 질렸다.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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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저히 엄두가 나질 않았다. 부엌에는 플락스틱 반찬통, 바구니, 김치통, 약봉지, 유리그릇, 냄비, 밥통, 생활용품들이 가득했다. 필요해서, 필요할 것 같아서 사 둔 물건들은 바닥을 점령했다. 비닐봉지는 왜 그렇게 많던지. 사놨는데 어디 있는지 몰라서 또 산 물건들이 가득했다. 칫솔, 치약, 행주, 수세미, 키친타월, 크린랩. 물건 정리와 청소 좀 한다던 나조차 기가 질렸다. 

  거실은 옷과 이불로만 산을 이뤘다. 작은 방도 마찬가지였다. 비닐째 쌓여 있는 옷들을 정리했다. 먼지와 곰팡이, 묵은 냄새들이 코를 찔렀다. 인터넷을 떠올리자 빛이 들어왔다. 검색했더니 여러 업체들이 딸려 나왔다. 몇 군데 전화를 걸었다. 그즈음 나는 전화 거는 것, 부탁하는 것, 물어보는 것에 기가 질려 있었다. 친절하지 않은 음성이 맘에 들지 않았지만 자세한 견적을 뽑고 싶어 구구절절 설명했다. 계단이 있고 집이 높고 짐이 많다는 것. 백오십만 원을 불렀다. 말도 없이 전화를 끊어버렸다. 

  백오십이 누구 집 이름이냐. 우리끼리 해보자. 헌 옷 업체 부르고 종량제 봉투 사다가 쓰레기장으로 짐들을 날랐다. 쓰레기장은 멀었다. 골목을 내려가고 다시 내려가고 길을 하나 건너서 골목으로 들어갔다. 중간에 나는 출근한다는 핑계로 빠져나왔다. 남은 두 사람이 그 짓을 다 했다. 비염 증세가 도지고 있다, 허리가 아프다, 너희들은 백수니까 나는 힘든 건 못하겠다. 뻔뻔하게 그런 말이 잘도 나왔다. 

  중간에 헌 옷 업체 남자가 옷 값을 깎았다. 냄새가 나고 소재가 가볍다는 이유였다. 그거라도 팔아서 밥값, 종량제 봉투값, 커피값하려던 계획이 물 건너갔다. 산 지 얼마 되지 않은 텔레비전 값이 삼만 원이었다. 나머지 가전제품을 가져간다는 조건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는 고개를 자주 끄덕였다. 네, 그러세요. 마음대로 하세요. 제발 가져가고 가져가세요. 나중에 헌 옷 남자가 이제 오기 싫다고, 무섭다고 했다. 그래도 옷과 이불, 냄비가 남아 있었다. 

  삼겹살 8인분을 시켜 먹으면서 익은 것만 확인하고 고기를 먹으면서 그냥 백오십에 맡길 걸 후회했다. 몸이 힘들었다. 우리가 해보니 백오십을 줘도 안 할 것 같았다. 백오십은 적게 부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는 내 변명도 통하지 않았다. 숨을 몰아쉬며(코로는 숨을 쉴 수 없으니까, 얼마나 다행인지 입과 코가 있어서) 쓰레기장까지 짐들을 버렸다. 돈이 문제가 아니었다. 우리는 공사장 인부들처럼 고기를 먹어댔다. 오리, 삼겹살, 삼겹살, 소고기, 소고기. 그렇게 먹어도 힘이 나지 않았다. 

  정리하면서 좋았던 순간은 비닐봉지에 쌓인 동전들을 발견할 때였다. 나올 때마다 은행에 가서 바꿨는데 어떤 동전은 썩어서(돈이 썩었다는 말은 비유가 아니라 진짜다) 바꿔줄 수가 없다고 했다. 그 외에는 먼지와 짐들의 무게 때문에 힘들었다. 처음에는 분류라는 것을 했는데 나중에는 봉지 안을 보지도 않고 버렸다. 

  이유의  『소각의 여왕』은 우리가 했던 일을 하는 인물이 나온다. 해미와 지창씨는 고물상을 운영하면서 살아간다. 두 부녀는 서로에게 재밌는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하고 사이좋게 운전을 가르쳐 주기도 한다. 해미의 뒤통수에 불이 나긴 하지만. 허파에 바람이 드는 유전병을 지창씨 역시도 가지고 있다. 고물상에서의 돈은 정직하다. 일 한 만큼 벌어간다. 웃음밖에 안 나오는 돈이지만 고물상에 오는 사람들에게는 하루 노동의 소중한 대가이다. 

   친구 정우성은 지창씨의 현금을 전선에 피복 벗기듯 벗겨간다. 그러다 오랜만에 나타나서 희귀금속을 만들 수 있다는 기계의 도면을 보여준다. 해미는 제발 지창씨가 허파에 바람이 빠졌으면 하지만 내버려 둔다. 그 대신 지창씨가 하던 일을 이어간다. 죽은 사람들의 유품을 정리하는 일. 힘도 세고 냄새 제거도 확실히 하는 해미. 집에서 오랫동안 앓아누운 엄마가 있었고 편의점이라도 차려서 앞으로의 삶을 기대고 싶기도 한 해미. 

  『소각의 여왕』에서 그리는 세계는 한 편의 동화를 보는 듯한 비현실적이고 몽환적인 기운을 가지고 있다. 고물들이 잔뜩 쌓여 있는 그곳에서 해미는 목욕탕 의자에 앉아 전선을 벗기고 파지를 골라내고 지창씨는 창고에서 자신이 만들어낸 기계와 씨름한다. 초 단위로 사람들은 죽어간다. 사고로 사고 같은 자살로 혼자 죽기 싫어 같이 죽고 아파서 죽는다. 

  이 소설에서 죽음은 흔하게 등장한다. 태어나는 것에 이유가 없듯 죽음에도 이유가 없다. 고통과 죽음은 다르다고. 죽음은 다른 차원의 일이라는 것이다. 죽음으로 향한 사람들이 남긴 것들을 정리하는 해미에게 죽음은 견적은 뽑아내야 하는 일이고 가능하면 산 사람들을 마주치고 싶지 않은 일이다. 힘이 드는 건 씻어도 가시질 않는 냄새 때문이다. 죽음은 냄새를 남긴다. 살이 썩어가고 눈동자가 풀리는 일이다. 해미와 지창씨는 죽음 앞에서 고통 앞에서 할 만큼 한 사람들이다. 잘못 썼다. 할 만큼 한 사람들은 없다. 고통을 동반하는 죽음의 기운 앞에서 굴복한 사람들이다. 

  소설의 끝이 어떻게 됐는지 자세하게 알고 싶었다. 다시 생각해보면 자세히 알아야 할 것도 없는 일이다. 허구의 세계든 현실의 이야기든 끝은 존재하지 않으니까. 죽음이 끝이라고 알고 있는데 그건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지창씨가 결국 만들어낸 결말은 허파에 바람이 들어차지 않아도 웃음이 나오는 일이다. 김중혁의 『나는 농담이다』의 주인공 장우영이 하던 말이 계속 떠오른다.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 

  소고기 세 팩을 사서 구워 먹었는데 일 년에 한 번뿐이니까 많이 먹으라고 농담했다. 『소각의 여왕』에서는 삼겹살 한 근, 반 근씩을 사서 구워 먹는다. 사 먹어 놓고 이렇게 비싼 걸 먹어도 되나 후회가 들어 걱정하는 것으로 반성했다. 무슨 말인지. 후회를 했다는 건지 걱정을 했다는 건지 반성을 했다는 건지. 소고기 사 먹는 게 이렇게 생각을 많이 해야 하는 일인 건지 의문이 들기는 한다. 물건으로 남길게 아니라 기억과 경험으로 오그라드는 말이지만 추억으로 남길 일이다, 돈으로는. 어마어마한 짐들을 정리하면서 얻은 깨달음이다.


s*****m 2017.01.15.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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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각의 여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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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각의 여왕 제21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이유 지음 문학동네   어떻게 이 소설을 읽고싶은 책장에 담아놓고, 시립도서관에서 대출하기 위해 이리저리 찾았는지 그 기억조차 가물가물하지만 아무튼 그런 수고 끝에 읽을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지난 2010년 세계일보 신춘문예에 「낯선 아내」가 당선되어 등단한 이유의 장편소설로, 무려 삼 년 만의 수상작이다. 고물상을 운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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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각의 여왕

제21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이유 지음

문학동네

 

 어떻게 이 소설을 읽고싶은 책장에 담아놓고, 시립도서관에서 대출하기 위해 이리저리 찾았는지 그 기억조차 가물가물하지만 아무튼 그런 수고 끝에 읽을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지난 2010년 세계일보 신춘문예에 「낯선 아내」가 당선되어 등단한 이유의 장편소설로, 무려 삼 년 만의 수상작이다. 고물상을 운영하는 지창씨와 유품정리사인 그의 딸 해미, 너무나도 낯설고 특이한 두 부녀의 이야기이다.
1톤 트럭을 몰고 고물상을 운영하는 아버지 지창씨를 돕다가 이미 호황기는 오래 전 이야기고 불황이 거득되면서 더욱더 기이하고 처참한 유품정리를 하게되는 해미의 이야기이다. 지옥에서 벗어나기 위해 지옥에서의 삶에 더욱 매달릴 수밖에 없는 이 모녀의 삶이 또는 하는 일이 현실에 실제로 존재할까? 하는 의문에서부터,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까지 허구가 아닐까? 하는 의심까지 접어든다. 누군가 쓸모없어 함부로 버린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생계를 잇는 소중한 수단이 되고 또 그렇게 모여진 것들은 분류작업을 거쳐 쓸모 있는 것들로 새롭게 태어난다. 삶이 나락으로 떨어질수록, 결코 이루어질 것 같지 않은 꿈은 어째서 더욱 강력히 그 위력을 떨치는 것일까? 이 순환과정 안에는 비참한 세계에 기거하는 부녀의 일상, 그들이 꾸는 꿈의 다소 허황된 속성,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텅 빈 꿈에 의지해 하루하루를 버텨갈 수밖에 없는 산다는 일의 슬픔이 비친다. 
해미는 유품정리 일을 하면서, 자살을 계획하고는 사후 자신의 방정리를 부탁하는 청년과 만삭의 몸으로 산달을 앞두고 남편이 남긴 혈흔과 시취를 지워달라는 여자, 죽은 사연과 방법이 알려지지 않은 미스터리한 호텔 투숙객 등 현실 세계의 슬픈 표정을 마주하게 된다. 섬뜩하고 착잡함에 빠져들게 된다. 이 소설을 통하여 작가는 마음이 무너질 것 같은 장면에서도 감정을 충분히 절제하여 이 비참한 세계를 꼼꼼히 직조해냈다고 설명하고 있다.

문학에 대해 문외한인 나로서는 새삼스러운 일이지만, 문학동네소설상은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 날카로운 통찰력과 섬세한 문장으로 사랑받는 은희경의 『새의 선물』, 에너지 넘치는 서사를 통해 ‘이야기란 무엇인가’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내보인 천명관의 『고래』, 신선하고도 불온한 상상력을 뿜어냈던 김언수의 『캐비닛』, 그리고 ‘특촬물’이라는 생소한 제재를 통해 현 젊은 세대의 내면 풍경을 탁월하게 그려낸 이영훈의 『체인지킹의 후예』까지, 언제나 문학의 최전선에서 세계와 인간을 향한 날카롭고도 깊이 있는 시선을 보여주었던 전통이 올해에도 어김없이 이어진다. 책은 많이 읽고 있지만, 미스터리 같은 장르소설에 국한되어 있는 나로서는 책날개의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리스트를 보면서, 이렇게 수준있는 작품들을 하나 씩 읽어내고 싶다는 꿈을 꾼다.

2016.8.28.(일)  두뽀사리~

i***2 2016.08.29.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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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은 항상 우리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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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할 수 있는 죽음이 있을까? 피할 수 없더라도 미룰 수만 있다면 좋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남겨질 것들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말이다. 그러나 죽음은 천둥과 번개처럼 한순간에 날아든다. 스스로 선택한 죽음은 더욱 그러하다. 죽음을 말하는 찰나도 인정하지 않겠다는 듯 말이다. 흔히 죽음은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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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할 수 있는 죽음이 있을까? 피할 수 없더라도 미룰 수만 있다면 좋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남겨질 것들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말이다. 그러나 죽음은 천둥과 번개처럼 한순간에 날아든다. 스스로 선택한 죽음은 더욱 그러하다. 죽음을 말하는 찰나도 인정하지 않겠다는 듯 말이다. 흔히 죽음은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죽음은 남겨진 자의 슬픔과 애도, 그리고 유품이라는 이름의 물건이 남는다. 그것들은 존재를 모르는 어디론가 보내지거나 소각된다. 한 줌의 재로 사라진다. 

 

 고물상을 운영하는 아버지 지창씨와 유품정리사가 된 딸 해미의 이야기 이유의 『소각의 여왕』은 죽음과 소멸에 대해 말한다. 아니다, 죽음에 대한 애도이자 삶에 대한 강한 애착을 보여준다. 할아버지로부터 시작된 고물상은 한때 큰돈을 안겨줬지만 죽은 어머니의 병원비와 불경기로 지금은 내리막의 상태다. 재수를 하던 딸 해미는 학원 대신 지창씨의 고물상을 돕는다. 포터를 몰고 폐지와 각종 고물을 수거하며 살아간다. 버려진 물건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러다 지창씨가 자신 몰래 이상한 출장을 다닌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다름 아닌 유품 정리였던 것이다. 죽음의 흔적을 말끔하게 치우고 물건을 처분하는 일. 대부분 삶의 희망을 찾지 못해 죽음을 선택한 경우였다. 그러니까 그것이 유일한 선택이었던 것이다. 지창씨에게도 그런 선택이 있었다. 해미가 보기엔 사기가 분명했지만 지창씨는 동창 정우성이 추천한 휴대폰에서 이트륨을 분리하는 기계를 만드는 일이 그러했다.

 

 되든 안 되든 그가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분명 해낼 수 있는 일이었다. 지창씨는 자신의 심장이 그렇게 힘차게 뛰는 걸 처음으로 느꼈다. 아침을 눈을 뜰 때마다, 숨을 쉴 때마다 심장이 터지지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였다.(77쪽) 

 

 지창씨가 그 일에 전부를 걸었을 때 해미는 광고까지 하며 유품정리에 뛰어든다. 의뢰인의 사연을 알고 싶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개입하는 경우가 생긴다. 그러나 해미는 감정을 배제하고 거리낌 없이 죽음이 지나간 자리를 대면하며 죽음을 몰아낸다. 한때 누군가에게 소중했던 물건과의 이별의식을 치르는 것이 고물상의 일이듯 누군가의 마지막 순간을 지켜본 공간과의 이별을 대신하는 것이 유품정리인지도 모른다. 유족을 대신해 죽음의 마침표를 찍는 것이다.

한쪽밖에는 보이지가 않아서 한쪽으로밖에 갈 수 없는 사람들, 죽음이 아니면 달리 편안해지는 방법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 (206쪽)

 

​ 죽음을 만지며 삶을 이어가는 해미를 통해 이유는 삶과 죽음은 항상 우리와 함께 한다는 걸 알려준다. 죽음의 그림자를 완전히 소각하는 순간 또 다른 삶이 거기 있다는 걸 말이다. 그리고 죽음과 삶 둘 중 어느 쪽을 향해 달려가야 하는지 묻는다. 설사 소각하지 못한 채 여전히 죽음과 함께 머물더라도.

r*********s 2016.05.10. 신고 공감 2 댓글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