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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위인이라는 말보다 인물이라는 말이 부쩍 눈에 띕니다. 그건 아마 절대적 가치보다는 상대적 가치가 부각되고, 다양성이라든가 '입장에 서 보기'의 비중이 증가하는데 따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훨씬 더 다양한 역사적 인물을 다룰 수 있는 장치가 되기도 하겠지요. 인물이라 명명한 책의 공통된 느낌은, 에피소드 위주로 쓰여 "이런 것만 봐도 ㅇㅇㅇ가 얼마나 훌륭한 사람인지 알 수 있지요."라는 문장으로 점철되었던 나 어렸던 시절 위인전의 느낌에서 많이 달라졌다는 것이었습니다. 책 전반에 흐르는 뉘앙스는 건조하리만치 담담하고, 사실의 전달이라는 느낌이 강하고, 인물이 속한 사회에 대한 배경지식에 많은 부분을 할애한다는 것이지요. 무조건 훌륭하고 뛰어난 사람이라고 주장하기보다는 독자 스스로가 느끼고, 취사선택하여 받아들일 수 있는 기회를 주며, 이러한 인물들 역시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이야기해줌으로써, 그럼에도 그들이 인류에게 미친 좋은 영향을 생각하며 그들이 더욱 대단하다는 느낌을 역설적으로 강조해주는 듯합니다. 스토를 읽으면서 개인적으로 놀란 것은 많은 경우 그녀가 돈을 벌기 위해 글을 썼다는 대목이었습니다. 언젠가 미켈란젤로가 자신의 예술작업의 동인은 오로지 돈이었다고 했다 해서 한 차례 놀란 적이 있었는데, 남북전쟁의 도화선이 된 <톰아저씨의 오두막>를 쓴 스토까지 그랬다는 것이었습니다. '인간적이구나!' 하는 느낌. 많은 이들은 위인은 위인으로 태어난다고 생각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너무나 남달라서 위인이 되는 것이 운명이라고 생각하지요. 그러나 이 책은 위인은 만들어지기도 한다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스토 역시 삶의 과정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이 차곡차곡 내면에 쌓였다가 <톰아저씨의 오두막>이라는 작품을 내놓게 되었으며, 이 일이 그녀를 진정한 인권운동가로 만든 또 다른 도화선이 되었다는 것. 링컨 대통령이 한때 노예해방보다는 미국 연방의 유지에 더 큰 무게를 두었고, 스토가 이에 격노하여 항의하고, 결국 노예해방을 이끌어냈다는 이야기 역시 같은 맥락에서 새로웠습니다. 이처럼 인물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해주는 것이 이 책의 최대의 강점입니다. 더불어 다양한 역사적 그림자료와 조그만 박스 형태의 팁 덕분에 시대, 역사에 대한 이해를 돕기 쉬웠고, 무엇보다 초등 2~3학년 정도부터 읽을 수 있도록 배려한 책의 두께, 그러면서도 고학년까지 충분히 커버할 수 있을 정도의 깊이가 좋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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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아저씨의 오두막>을 읽으며, 작가의 삶은 어땠을까 궁금했었다. 우리 딸도 ' 이 책의 작가는 굉장한 생각을 가진 사람 같애 ' 하며 말했었다. 그래서 그 작가의 삶속으로 아이를 데려가고 싶었다. 스토의 역사 인물 서적을 구해 아이와 함께 읽었다. 스토는 정말 굉장한 사람이다. 그 시대에 상상도 할 수 없을것 같은 일을 해 냈다. 어느 시대이건 간에 선구자는 있게 마련이다. 가난하고 늘 돈을 걱정해야 하는 삶을 살았지만 노예들의 아픈 삶을 외면하지 않았다. 자식의 죽음 앞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글쓰는데 온 힘을 바친다.
우리는 위인에게서 많은 교훈과 감동을 얻는다. 딸 아이가 얻은 교훈은 무엇일까? 불의 앞에 당당할 수 있었던 용기를 배우고 싶다고 말한다. 작가로서 유명해지기까지 하고도 계약서에 남편의 싸인이 있어야 계약이 성립되던 시기에 살았던 여성 치고는 굉장히 용감하고 대단한 사랑의 소유자라고 말한다.
이 책은 남북 전쟁의 계기가 될수 있도록 한 스토의 삶과 그의 책이 완성되어가는 과정을 소개해 주고 있다. 중간중간 삽입된 삽화가 독자의 눈길을 끈다.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작가와 그 주변인물의 사진도 들어있어 시대의 인물들을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책 말미에는 부록형식으로 '역사 마주보기'가 있어 시대적 배경이 된 노예제도라든가 남,북 전쟁 같은 자료를 자세히 실어 놓아 역사 공부도 될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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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 [Harriet Elizabeth Beecher Stowe, 1811.6.14~1896.7.1] 스토라는 이름은 모 방송국 프로그램에서 알게 되고 다시 책을 읽고서 더 많은 것을 알게 되었으며, 남북전쟁 영화의 스크린들이 내 눈앞에 지나감을 느꼈다. 난 전기문을 많이 읽던 어릴 적에 [헬렌켈러]의 전기문을 읽고서 [헬렌켈러]와 그녀를 도와준 [셀러반선생님]을 떠올리면서 ‘참 좋은 일을 많이한 사람들 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스토는 삶을 아주 악착같이 그리고 열심히 살아온 사람으로 기억하고 싶다. 남부의 주 생산물인 담배, 쌀, 면화 등의 재배가 늘어나면서 노동력이 필요로 했던 것과 미국 식민지 주 최초로 매사추세츠 주에서 노예제도를 법으로 제정하고 20년 후 버지니아 주 법원은 노예의 자식도 노예가 된다고 판결을 한다. 멕시코 전쟁 후 노예송환법이 새로 제정될 무렵 도망친 노예를 잡아들이는 남부의 노예 주들과 북부의 노예 제도 폐지론자들의 싸움을 지켜보면서 북부 메인주의 스토는 노예 제도 자체를 폐지하기위해 많은 일을 한다. 교회목사인 남동생 헨리는 신도들에게 노예를 사서 자유의 몸으로 풀어주고 스토는 친척과 친구들에게 도망 노예 송환법에 반대하는 편지를 써서 보낸다. 스토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서 잡지사에 원고를 보내서 돈을 벌고 있을 때 올케 이사벨라는 스토에게 편지를 썼다. “해티 아가씨, 내가 만약 아가씨만큼만 글을 쓸 수 있다면 노예 제도가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 이 나라 전체가 깨들을 만한 글을 쓰겠어요.” 스토의 [톰 아저씨의 오두막]이 출판하게 된 결정적인 역할은 올케가 한 것이 아닐까 보아진다.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스토의 명성이 남북전쟁을 일으킨 원인 가운데 하나라고 했으며 후에 영국과 유럽 여러 나라에서도 스토의 [톰 아저씨의 오두막]속의 뜻을 이해하고 공감하였다. 그로부터 12년 뒤 링컨 대통령이 노예 해방령을 선언하게 된다. 큰 혁명이 된 것이다. 스토의 어릴 적 이야기부터 선생님이 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아들을 둘이나 잃고 아픔들을 겪는 모든 것을 보았다. 영국의 화가 조시 리치먼드가 그린 스토의 초상화에서 스토의 모습은 너무도 예뻤다. 아들 프레드릭에게 농장을 사주어 100명이 넘는 노예출신 흑인들에게 일자리를 준다. 나중에 과수원을 사주었으나 프레드릭은 잘 해내지 못하고 어디론가 떠나버린다. 그러나 스토는 해방된 노예들이 다닐 학교를 열고 플로리다에 대한 책과 그림을 모은 책 [야자잎]을 출판했을 때에는 남부의 사람들과 남북전쟁중 남부군을 이끌던 로버트 E. 리 장군도 스토의 활동을 높이 샀다. 스토의 인간의 자유와 평등, 인권의 가치를 느낄 수 있었고, 작품 속에 녹아 있는 자유, 평등, 박애 정신을 느낄 수 있었다. [톰 아저씨의 오두막]을 다시 읽어보고 싶다. 스토가 콜레라에 걸려서 요양 중에 ‘혹 그때 죽는 걸까?’ 하고 걱정을 했었다. 스토는 남편 캘빈이 여든여섯의 나이로 세상을 뜬지 10년 만인 1896년 자신도 여든여섯에 세상을 떴다. 나의 첫째 딸이 태어나기 100년 전의 일이다. 글로써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을 주었다는 것은 실로 대단한 일임은 분명하다. 미국역사상 가장 처절한 전쟁인 남북전쟁 후 미국의 국민들은 양심을 일깨우게 되었다고 본다. 아직까지 현 생활 속에 장애와 비장애인들의 생활과 흑인과 백인의 평등하지 못한 이야기들이 영화 속에서나 TV뉴스 속에서 또 인터넷의 많은 정보와 뉴스소식에서 접할 수 있다. 심지어 한 식구이면서 며느리를 노예처럼 부리고 사람을 잡아서 섬에 붙잡아두고 또한 노예처럼 자유를 빼앗고, 부모를 잃은 조카를 강아지처럼 키우는 소식도 보게 된다. 스토처럼 현실의 아픔을 글로 전하는 이들도 있지만 많은 청취자들은 인터넷 안에서 자신의 주장을 글로 올려둔다. 나도 가끔 그 글들을 보면서 덧글을 달곤 한다. 살기위해서,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서 글을 쓰고 일을 한 스토는 자신이 위인들 속의 한명이 되어 110년이 지나도록 후세에 알려지는 일을 꿈 꿔 본적이 있었을까? 난 가끔 흔들이며 자신의 주제를 모르는 이들에게 주제 넘는 일을 혹 하는 이들에게 “자신이 공인이 되어야해요. 혹 누구의 멘토가 될지 모를 자신이 공인이 된 모습을 상상하고 흐트럼 없는 생활로 본이 되어보세요.” 라고 이야기 해준다. 나 또한 공인이 된 마음으로 바른 길을 가려고 오늘도 노력한다. 스토처럼 한 가정의 주부로써, 부인으로, 엄마로 노력하며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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