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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에는 ‘신’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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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이야기]인간중심 현실중시의 세계관으로 제국을 건설하다.   시오노 나나미가 극찬한 카이사르의 문장을 본받아 곧장 본론으로 들어가자. 로마에는 신이 없었다. 그것이 1200년의 역사를 이어간 세계제국 ‘로마’를 건설한 원천이었고 힘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세계 제국 로마의 초석과 원동력을 말한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문구가 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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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이야기]인간중심 현실중시의 세계관으로 제국을 건설하다.

 

시오노 나나미가 극찬한 카이사르의 문장을 본받아 곧장 본론으로 들어가자. 로마에는 신이 없었다. 그것이 1200년의 역사를 이어간 세계제국 ‘로마’를 건설한 원천이었고 힘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세계 제국 로마의 초석과 원동력을 말한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문구가 말해주듯 그들의 인프라 건설을 으뜸으로 꼽거나 로마인(특히 카이사르)들의 관용을 맨 앞에 놓는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라 일컬어지는 사회 지도층의 도덕성과 책임감을 지적하는가하면, 로마의 자랑인 중무장보병을 구성하는 시민과 시민사회의 건강성에서 그 근원을 찾기도 한다. 모두가 옳은 지적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무엇보다 오늘날의 개념으로서의 신을 가지지도 섬기지도 않은 로마인들의 현실 인식에서 세계 제국은 가능하였다. 오늘날 전해지는 로마 신화는 사실 그들의 신화라기보다는 그리스 문명을 받아들이고 그들의 세계를 로마가 정복함으로 생겨난 로마적 그리스 신화에 불과하다.

 

두 개의 얼굴을 가진 야누스 신을 제외하고 로마 신화에 나오는 모든 신은 유피테르와 제우스처럼 그리스 신화의 신들과 짝을 이룬다. 모두가 인격신(人格神)이다. 그들은 인간과 똑같이 행동하고 사고한다. 질투하고 시기하고 분노하는 인간의 모습과 진배없는 신이다. 바로 그 인격신들에 의해 로마인들의 모든 사고와 행동의 양식은 결정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간중심 혹은 현실중시의 로마인

 

로마는 다신교 다민족 국가였다. 로물루스가 로마의 일곱 언덕에 성채를 세운 이후로 로마는 에트루리아인 그리스인 갈리아인 카르타고인 등 많은 민족과 국가를 정복해가며 그들의 세계 제국을 완성해갔다. 그 때마다 새로운 신은 생겨났고 로마는 그 모든 신들을 자신들의 신으로 받아들이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이런 열린 사고는 도시국가 로마가 세계제국으로 도약하는 초석이 되었고, 전지전능한 신의 모습보다는 인간과 함께 사고하고 행동하는 인격신을 숭앙한 태도에서 그들의 인간중심사회와 현실중시의 사고가 싹텄다. 저자의 지적처럼, 그것이 “몸집에서는 게르만족에게, 기술력에서는 에트루리아인에게, 상재에서는 카르타고인에게, 문명에서는 그리스인에게 뒤졌던” 로마인을 세계무대의 주인공으로 만든 원동력이었다.

 

인간의 모습을 한 여러 신들은 그들 운명의 보조자에 불과하였고 공동체사회에서의 질서를 위해 개입하는 존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아우구스투스가 영묘를 만들기 전까지는 제대로 된 무덤조차 가지지 않았을 만큼 로마인들은 사후 세계에 대한 관심이 없었다. 이처럼 현실중시의 세계관은 곧 문화적 다양성의 인정과 로마인들의 개방성을 낳았다.

 

유일신을 믿는 유대국을 사실상의 속주(동맹국이었지만)로 지배했음에도 그들은 유대인의 유일신 사상을 존중했다. 로마는 모든 피정복민족의 문화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자세로 일관했으며 자신들의 문화를 고집하거나 이식하지 않았다. 갈리아 에스파니아 등을 비롯한 수많은 민족과 국가를 정복해 속주로 삼고 총독을 파견하였지만, 실질적인 지배는 부족장이나 왕을 내세운 대리지배 간접지배 방식을 고수하였다.

인간중심과 현실중시의 태도에서 비롯된 이러한 로마의 세계국가 건설이 지리상의 발견 후 활발해진 식민제국의 건설과 결정적으로 다른 모습이다. 유럽의 근대국가 형성기에 행해진 서구제국의 식민지 건설이 자신들의 문화를 강제적으로 이식하고 식민지의 자원으로 부를 축적하는 식민지 건설이었다면, 로마제국의 세계화는 로마인의 생활방식이 그 땅에 물이 스며들 듯 진행된 자발적 로마화였다.

 

로마인들은 그러나 다른 민족의 문명을 받아들여 자신들의 것으로 만드는 데에는 조금도 인색하지 않았다. 에트루리아인들에게서 배운 기술력은 곧 로마 가도의 건설이라는 세계제국의 초석으로 깔렸고 그리스인에게 배운 해양기술은 농경민족인 로마인이 지중해, 나아가 유럽과 아프리카 소아시아까지 진출할 수 있는 발판이 되었다.

 

로마인들은 무엇보다 공존공영의 가치를 숭상한 민족이었다. 그것이 인간중심의 가치관에서 비롯된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팍스 로마나’도 결국 이러한 로마인의 세계관이 낳은 산물이다.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다양성의 인정이라는 그들의 포용력 앞에서 세계는 점차 하나가 되어갔다. 그것은 곧 세계의 안정을 의미했다.

 

로마세계의 구심력으로 저자가 누차 강조하는 ‘클리엔테스’와 ‘파트로네스’의 특수한 신분질서 역시 로마인들의 인간존중의 사고에서 비롯된 신뢰를 밑바탕으로 하여 형성된 것이다. 노예 혹은 출신지역이나 영지 내의 하위시민계급을 지칭하는 클리엔테스가 오늘날의 고객을 의미하는 클라이언트의 어원이라는 사실은 그대로 로마 사회의 인간존엄을 보여주는 척도다.

 

신은 없었다. 인간으로서의 명예가 로마사회를 규율하는 유일한 가치기준이었다. 그 명예가 있었기에 로마의 중무장보병은 강력한 전투력을 발휘할 수 있었고 확실한 문민지배의 전통을 이어갈 수 있었다. 실패한 독재자 술라를 제외하고 루비콘강을 건넌 카이사르 군단도 수도 로마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인간중심의 가치관은 로마사회 신분질서의 유연성을 가능하게 하였다. 자식이 있고 일정수준의 경제력을 가진 노예는 시민이 될 수도 있었다. 유력한 평민귀족도 생겨나고 평민집회의 결의는 원로원의 권고처럼 국가정책으로서의 구속력을 가질 수 있었다. 피정복민족 역시 점차 로마의 시민권자로 흡수되어 로마사회의 일원이 되어갔다. 여러 민족 다양한 문화 그러나 하나의 세계는 바로 인간이 그 중심에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로마인이야기에서 만나는 니체 혹은 그의 초인(超人)

 

세계제국 로마에는 모세의 신, 아브라함의 신은 없었다. 메시아 예수는 제정 로마의 초대황제 아우구스투스가 원로원으로부터 ‘국가의 아버지’라는 칭호를 받고 난 후에야 출생하였다. ‘신은 없었다’는 필자의 선언은 그런 이유로 옳다.

 

그러나 기원 후 19세기의 위대한 사상가 니체에게는 아브라함과 모세의 신, 그리고 그의 독생자 예수가 있었다. 그러니 니체는 “신은 죽었다”고 말할 수밖에. 로마를 이야기하다 갑자기 니체를 등장시킨 까닭은 필자가 로마인이야기를 읽으며 니체, 아니 그의 초인을 만났기 때문이다.

 

 

니체 철학의 기저는 근대 문명에 대한 비판이며 그것의 극복이다. 그는 이천 년 동안 그리스도교에 의해 자라온 유럽 문명의 몰락과 니힐리즘의 도래를 예민하게 감득한다. 그 근대의 극복을 위해 그는 ‘신은 죽었다’고 선언하고 피안적(彼岸的)인 것에 대신하여 차안적(此岸的) ·지상적인 것을, 즉 권력에의 의지를 본질로 하는 생을 주장한다.

 

니체는 ‘권력에의 의지’라는 입장에서 삶의 가치를 부정하고 권력을 쇠퇴시키는 그리스도교 도덕이나 불교 도덕을 수동적 니힐리즘이라고 하여 배척하고, 삶의 의의를 적극적으로 긍정하면서 기성가치의 전도(顚倒)를 지향하는 능동적 니힐리즘을 제창하였다. 인간은 권력에의 의지를 체현(體現)하는 초인이라는 이상을 향하여 끊임없는 자기 극복을 하여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로마에는 모세의 신이 없었기에, 즉 내세의 구원에 기대어 현실의 의지를 박약하게 하는 신이 없었기에 로마인들은 현실을 중시할 수 있었고 인간중심의 세계관에서 비롯된 포용적 세계를 건설할 수 있었다. 오늘날의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문명의 충돌은 각기 다른 유일신 사상으로 무장한 세계의 충돌이다.

 

종교가 정치에 개입하거나 지배하려들 때 비극은 잉태한다. 카이사르가 입신의 발판으로 삼은 최고제사장은 종신직일망정 권력과는 전혀 무관한 것이었다. 로마시대의 제사는 인간을 위한 축제였지 인간을 벌하거나 규율하는 정신의 감옥은 아니었다. 중세의 성직자들이 권력화 되었을 때 세상의 암흑은 도래하였다.

 

로마의 세계화가 중세의 십자군 전쟁이나 오늘날의 중동전 같았다면 로마는 그 장구한 세월을 영속하지 못했을 것이 분명하다. 인간들 사이의 싸움이었기에 팍스 로마나는 가능했다. 그러나 신들의 대리전으로 변한 오늘의 전쟁은 따라서 팍스 아메리카나가 되지 못하고 세계 곳곳의 반발을 불러 오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 세워야 할 것은 인간의 제국이지 신들의 제국은 아닌 것이다. 이데올로기에 의한 냉전이 사라진 시대에, 아무리 부정하려 해도 곳곳에서 발생하는 테러와 전쟁에서 종교적 갈등과 반목을 걷어내기는 어렵다. 믿는 그들이야말로 죽으면 가게 될 신들의 제국을 왜 그리도 이 땅에 세우려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인간이 사는 세상에서 인간이 없으면 그곳이 곧 지옥이다. 로마제국의 주춧돌이 된 카이사르도, 아버지의 제국을 반석 위에 세운 아우구스투스도 모두가 인간이었고 인간의 제국을 위해 헌신하였다. 그들이 바로 니체가 말한 초인이었고 그들은 또한 권력에의 의지로 끊임없이 자기 극복을 위한 일생을 살았다.

 

카이사르와 그의 시민군이 갈리아의 혹한과 굶주림을 참아가며 9년이 넘는 시간을 희생한 것도, 한니발의 침공 당시(2차 포에니 전쟁) 그 긴 세월동안 로마인 모두가 일치단결하여 국력을 한데 모으며 절치부심한 것도, 아우구스투스가 제국의 기틀을 마련하기 위해 자신의 딸까지 유배 보내는 아픔을 감내한 것 모두가 인간의 제국 로마를 위한 처절한 자기희생이었다.

 

그런 초인들의 불멸의 의지가 제국을 세우고 지켰다. 그런 다음에야 죽어서 신격(神格) 카이사르, 신격 아우구스투스가 되었다. 로마인이야기에서 니체를 만난다. 니체의 초인에서 오늘의 지도자상을 발견한다. 그런데 세상은 어떤가? 신들은 이 세상을 언제나 지옥으로 만들고 그 대리인들은 평화를 부르짖으며 오늘도 방아쇠를 당긴다. 야누스 신전의 문을 여는 것도 닫는 것도 모두 인간임을 왜 모르는 것인지.

e******1 2007.08.11.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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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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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이야기,  14권까지 마치 대형영화를 보듯 흥미진진하게 단숨에 읽었다. 그리고15권이 나오길 손꼽아 기다리다 나오자 마자 읽었다. 이 책들을 읽는내내 행복했고. 특히 율리우스 카이사르편에서는 극에 달했다. 이책을 읽고 시오노 나나미의 필치에 매료되어 그의 작품 3가지를 더 읽었다. 배운점이 참 많다. 로마황제들의 세련된 매너, 합리적인 정신,시대를 앞선 감각, 미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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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이야기,  14권까지 마치 대형영화를 보듯 흥미진진하게 단숨에 읽었다. 그리고15권이 나오길 손꼽아 기다리다 나오자 마자 읽었다.

이 책들을 읽는내내 행복했고. 특히 율리우스 카이사르편에서는 극에 달했다. 이책을 읽고 시오노 나나미의 필치에 매료되어 그의 작품 3가지를 더 읽었다.

배운점이 참 많다. 로마황제들의 세련된 매너, 합리적인 정신,시대를 앞선 감각, 미래를 내다보는 능력등등 세계사는 로마시대부터. 모든길은 로마로 통한다, 유럽각국에 지금도 많이 존재하는 로마유적들. 다 그럴만한 이유들이 있었다.

특히 중고등학교 청소년들은 반드시 읽고 그들의 성숙에 많은 도움이 되길 바란다.

어른들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좋은책이다.

이책을 읽지 않으면 자기성장의 기회를 또한번 놓치는 것이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j********4 2008.07.1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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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다시 태어나게 한 로마인 이야기
"나를 다시 태어나게 한 로마인 이야기" 내용보기
로마인 이야기는 삼국지에만 젖어있는 나에게는 전혀 다른 세상을 가르쳐 주었다.삼국지에 관한 속담에는 이런 속담이 있다. "젊어서는 삼국지를 3번 읽고 늙어서는 읽지마라"그만큼 삼국지에는 많은 지혜와 경험이 숨어 있어서 늙으면 꾀가 많아진다는 뜻이다.이렇듯 나는 진심을 삼국지를 좋아했고, 여러번 읽었으면, 만화, 게임, 타 도서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접했다. 사실 로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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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마인 이야기는 삼국지에만 젖어있는 나에게는 전혀 다른 세상을 가르쳐 주었다.
삼국지에 관한 속담에는 이런 속담이 있다. "젊어서는 삼국지를 3번 읽고 늙어서는 읽지마라"
그만큼 삼국지에는 많은 지혜와 경험이 숨어 있어서 늙으면 꾀가 많아진다는 뜻이다.
이렇듯 나는 진심을 삼국지를 좋아했고, 여러번 읽었으면, 만화, 게임, 타 도서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접했다.
 사실 로마인 이야기는 내가 학생 때 부터 접했던 게 사실이다. 한 번 훑어 본게 전부 였을 뿐
동양역사서에만 한정되어 있는 나의 생각에는 도무지 서양서적으로 눈길을 돌릴 틈이 없었다.
그러다 우연히 접하게 되었는 데 그것도 군대에서였는 데 다른 책들을 읽다가 읽은 만한 책이
없어서 하는 수 없이 접한 책이 이 로마인 이야기다.
처음에는 그렇듯이 루물루스의 늑대 신화 (로마의 건설한 루물루스는 늑대젖을 먹고 컸다는
신화)부터 시작해서 로마의 붕괴까지 쭉 서술하고 있다.
당시에는 책이 끝까지 보급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나는 로마인 이야기 6권까지 읽었다.
2권의 한니발전쟁부터도 나에게 센세이션을 일으키기에 충분했지만 이후에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
(그는 한니발 전쟁에서 종군한 경험이 있으므로 복수가 어울리겠다.)철저한 복수는 매우 놀라웠다.


이후에도 카토,술라 등이 등장하고, 드디어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등장한다.
율리우스 카이사르.. 나는 로마인 이야기라는 책에서 이 한 인물에 2권을 할애한 것에
의문이 들었다. 코끼리부대,기병을 이끌고, 갈리아지방을 평야를 건너서 알프스 산맥을 넘은
한니발조차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와 엮어서 겨우 한권을 차지하고 있는 데 이 인물은
도대체 어떡해 된 영문인지 혼자서 로마인이야기의 4,5권을 담당하고 있다.


로마인 이야기 율리우스 카이사르 편(상 하) 4,5권

그리고 이 글을 읽으면서 나는 전혀 다른 세상을 접하게 된다. 왜 로마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는 지, 왜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하게 되는 지 이해하게 된다.
이 인물을 대표하는 책은 두 권인 데 갈리아 전기 와 내전기 이다.
갈리아 전기는 갈리아 지방의 종족,토속인들의 반란이고, 내전기는 폼페이우스와의 싸움등을
얘기하고 있다. 카이사르는 평생을 전장에서 보냈다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쟁이 한 시도 그를 가만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때 그 때 지혜와
용기로 난관을 타계해 나간다.
영웅의 끝은 월래 이렇게 비참한가? 그러한 카이사르도 자신의 측근들에게 암살당한다.
평소 때도 죽을 때는 예상치 못하게 죽는 게 낫다고 말했던 그였지만, 브루투스(카이사르가
아끼던 측근)조차도 암살에는 당할 수 없었던 지 "브루투스 너마저!"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고 살해당한다. (지금도 이 뜻은 엄청난 배신을 대신하는 말로 쓰인다.)

내가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것은 카이사르라고 단언하겠지만, 다른 수많은 로마인의 지혜를
배운 것도 사실이다.
(한니발, 마고,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 옥타비누스, 폼페이우스, 그락쿠스 형제, 술라,
키케로, 카토, 베스킨게토릭스 , 안토니우스 등등 )
이 책을 접하지 않았다면 어찌 이 많은 방대한 지혜를 터득했겠는 가?
항상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역사를 배우는 데 힘쓰는 자는 역사의 주인이요,
그렇지 못한 자는 역사의 손님이라는 말이 있다. -안창호-
그대는 얼마나 주인의식을 가지고 있는 가? 로마인은 그 해답을 가르쳐 줄것이다.




l******h 2011.07.0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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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는 세속권력의 배에 타는 순간 생명을 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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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는 세속권력의 배에 타는 순간 생명을 잃는다.> 일  시: 2007년 5월 1일 장  소: 이탈리아 로마 베드로 성당 사회자: 김동수 목사 토론자: 콘스탄티우스 황제, 율리아누스 황제, 암브로시우스 주교 김동수목사(이하 사회자): 두 분의 황제 폐하와 주교님을 만나게 되어 영광입니다. 원시 기독교가 로마 황제 숭배를 반대하여 약 10차례에 걸쳐 박해를 받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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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는 세속권력의 배에 타는 순간 생명을 잃는다.>




일  시: 2007년 5월 1일


장  소: 이탈리아 로마 베드로 성당


사회자: 김동수 목사


토론자: 콘스탄티우스 황제, 율리아누스 황제, 암브로시우스 주교




김동수목사(이하 사회자): 두 분의 황제 폐하와 주교님을 만나게 되어 영광입니다. 원시 기독교가 로마 황제 숭배를 반대하여 약 10차례에 걸쳐 박해를 받았지만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기독교 공인과 테오도시우스 황제의 국교 승인은 로마의 정치와 문화뿐만 아니라 서양의 문명과 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기독교 전래 약 230년 된 대한민국도 정치와 문화에서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이런 정황에 근거하여 오늘은 기독교와 정치가 어떻게 관계를 가져야 하는지 황제 폐하와 주교님의 의견을 듣고자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콘스탄티우스(이하 콘): 로마는 각 민족들이 황제 숭배를 거역하지 않으면 그들이 믿는 신들을 숭배해도 반대하지 않은 다신교 국가였지만 유일신교인 기독교는 황제 숭배를 거역하여 심한 박해를 받게 됩니다. 박해가 거듭되면서 기독교는 서서히 로마에서 뿌리를 내렸고 강력한 세력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이를 간파하고 정치적 승리를 위한 가장 큰 도구로 기독교를 공인하게 되었고 테오도시우스 황제는 국교로 승인하게 되었습니다. 박해의 대상이었던 기독교가 로마와 한 배를 타게 된 것입니다. 변방과 박해의 대상이었던 기독교가 로마의 중심에 서게 된 것입니다.


율리아누스(이하): 로마의 위대성은 다양성인데 ‘하나의 종교, 하나의 국가’라는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슬로건은 자신의 정치권력을 견고하게 할 수는 있지만 로마의 힘을 약화시켰습니다. 한 국가가 발전하고 진보하기 위해서는 문화적 다양성이 근간입니다. 종교의 유일성은 문화의 획일성을 낳게 되어 국가와 사회의 진보와 발전을 막는 장애물이 될 수 있습니다. 사실 로마의 쇠락은 유일성과 배타성이 핵심인 기독교가 로마의 중심 세력으로 자리매김하면서 시작된 것 아닙니까? 제가 기독교에서 배교자로 정죄 받게 될지라도 기독교 공인 이전 시대로 시계를 돌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입니다.


사회자: 기독교 공인 이후 지방의 이교도들의 성직자는 오히려 지위가 더 강해졌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기독교 공인은 기독교만을 유일 종교로 공인한 것이 아니라 다신교 국가였던 로마의 한 종교로 편입시켰습니다. 물론 정치적 감각이 뛰어났던 대제는 기독교가 유일성 종교로서 공인을 하면 가장 강력한 자신의 후원자가 될 수 있음을 간파한 것은 사실이지만…… 대제가 기독교 공인 당시 신앙을 가진 자인가, 아닌가는 아직도 논란이 있습니다.


: 달걀이 먼저인가 닭이 먼저인가와 같은 논란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저는 대제 폐하의 개인 신앙보다는 기독교 자체가 가진 유일성이 정치권력과 손을 잡는 것을 비판하는 것입니다. 유일성은 타종교와 타협을 불허하고 세속 정치권력과 손을 잡는 순간 국가 자체가 종교화됩니다. 이는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 예가 대제의 아들이신 콘스탄티우스 황제에 오면 기독교 성직자뿐만 아니라 교회 소유의 농지나 공장, 상점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납세자 명단이라 할 수 있는 인구조사에 포함시키지 않음으로 기독교를 더욱 공고하게 하였습니다. 종교와 정치, 경제가 서서히 통합되고 있었습니다. 로마의 암울한 미래의 전조를 보이기 시작한 것이지요.


암브로시우스(이하 암): 로마의 암울함은 이후 황제 폐하들이 로마를 기독교 진리에 입각한 통치를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기독교 유일성이 문제가 아니지요. 황제는 권력이 하나님께서는 주시는 것임을 정확히 알고, 성경의 원리에 입각한 통치를 하였다면 로마는 더 강력하고 부강한 나라가 되었을 것입니다. 유일성과 면세 정책만을 로마 쇠락의 원인으로 단정하는 것은 받아  들이기 힘든 면도 있습니다.


: 그럼 그 면세를 받는 이들이 진정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지 않습니까? 로마의 부자들은 교회에 세금을 물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신앙은 없지만 세금을 내지 않기 위하여 성직자가 되었습니다. 성경은 신자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고 했습니다. 돈과 권력이 신자의 근본 삶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하지만 정치와 결탁한 기독교는 부자들의 종교로 변질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한 로마 제일 부자는 “나를 로마 주교로 삼아주시면, 내일이라도 당장 기독교로 개종하겠습니다,” 했더군요. 하늘의 종교가 땅의 종교로 변질되었고, 생명의 종교가 죽음의 종교로 타락했음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돈은 일만 악의 뿌리라고 사도 바울은 말씀했지만 그들에게 사도 바울의 가르침은 아무 의미가 없었습니다. 이방 종교도 우상이지만 돈도 우상이 될 수 있음을 왜 모르는 것입니까?


암: 방금 말씀 드렸듯이 로마 쇠락의 원인의 전부에는 찬성할 수 없지만 믿음 없는 자들이 면세 때문에 성직자가 되고, 교회의 구성원 되면서 교회가 타락한 것은 맞습니다. 돈이 하나님보다 먼저인 것은 우상숭배이지요. 교회는 항상 이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사회자: 율리아누스 황제께서 말씀하신 것 중에 기독교 유일성과 로마가 한 배를 타면서 로마의 쇠락을 말씀하셨는데 이유를 말씀해주십시오.


율: 로마가 가장 강력한 국가를 전 유럽을 통치하던 시대는 사실 기독교 공인 이전입니다. 기독교의 공인과 국교 승인 후부터 로마는 쇠락의 길에 들어서게 됩니다. 물론 기독교 교리가 로마를 쇠망케 한 것은 아닙니다. 정치와 기독교가 결탁하여 서로를 채워주면서 서로가 타락했지요. 성경에 보면 예수님은 정치권력과 결코 손잡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혁명가로서 로마에 대항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신앙과 종교진리에 자신의 모든 것을 드렸습니다. 바울 사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자신들의 종교를 전파는 했지만 권력과는 무관하였지요. 기독교가 그 신앙을 버리고 권력과 손을 잡으면서 기독교 자체도 타락했고 로마 권력도 힘을 상실하게 됩니다. 특히 유일성인 기독교는 신앙과 교리뿐만 아니라 정치 문화 사회 경제 모든 영역에서 배타성 뛰게 됩니다. 끔찍한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지요. 기독교 2000년의 역사가 증명해주고 있지 않습니까?


사회자: 율리아누스 황제 폐하의 말에 저 역시 동의합니다. 한국기독교는 일제강점기시 민족주의 분위가 강했습니다. 일제 말 신사참배 때문에 민족과 신앙을 배반한 것을 빼고는 신앙의 순수성과 민족을 배반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한국전쟁은 기독교가 신앙의 순수성을 상실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승만을 기독공보 1952년 7월 14일자에서는 “우리 대통령은 공산 토벌에만 독재자”라고 했습니다. 이승만은 기독교인이고, 군목제도를 도입했습니다. 반공을 발판으로 기독교는 독재자와 결탁하였습니다. 이승만과 결탁한 기독교는 군부 독재 시대에 들어서면서 더 노골적으로 군부정권을 찬양하면서 외형적 성장을 거듭하게 되었지만 필연적으로 예언자적 사명과 도덕적 위상을 상실하게 됩니다. 기독교 본래의 정신을 상실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젊은이들은 교회를 등졌고, 지금은 조금씩 쇠락의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콘: 면세 정책과 기독교와 한 배를 탄 것이 약간은 문제가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대한민국의 정치와 기독교 상황은 제가 잘 모르지만 19세기 이후 서구 제국주의가 식민지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기독교는 깊이 개입하였습니다. 생명의 종교였지만 죽임의 잔치를 너무 많이 벌렸지요. 이라크 전쟁에서도 십자군 전쟁 개념이 등장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 저도 서구 기독교가 그렇게까지 잔인한 역사를 만들지는 몰랐습니다. 바울 사도는 로마서 13장에서 권력이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에는 통치철학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권력을 주셨다는 의미는 성경의 원리를 통한 통치를 하라는 말씀입니다. 성경에 근거한 통치는 무력에 의한 통치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 무력은 자기 국민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나라와 국민, 타종교의 사람에게도 동일한 적용을 받는 것이지요. 황제가 하나님의 어린양이라면 어린양답게 다스려야 하고, 교회가 어린양으로 살아가도록 권고해야 하는데 서로가 권력을 힘입어 민중을 해하고 죽이는 일을 했으니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기독교가 로마 정치와 손을 잡은 것은 주교였던 저의 책임이 크다는 생각을 합니다.


율: 종교는 정치와 분리되어야 합니다. 종교가 정치와 손을 잡는 순간 정치와 종교 둘 다는 서로에게 해악이 될 뿐입니다. 이들은 서로 견제해야 하지 않습니까? 종교는 외각에서 정치가 그릇된 길로 갈 때 충고와 권면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정치와 종교가 하나가 된다면 이미 종교는 권력이 되어 버리는 것이지요. 시대와 정치가 그릇된 길로 갈 때, 종교는 그것을 거역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요즘 미국을 보면 자신들의 신앙관을 국제 사회에 그대로 적용시키고 있습니다. 결과는 얼마나 끔찍합니까? 기독교 복음 전파를 방해하는 방해꾼이 기독교 자신들입니다. 대한민국의 일부 기독교 신자들도 미국을 추종하면서 그 길을 그대로 가고 있습니다. 왜 사람들은 역사에서 배우지 못하고, 자신들의 삶의 영역에서 배우지 못하는 것입니까? 기독교 쇠락은 세속이 아니라 바로 자신들에게 있는 것 아닙니까? 정치권력에 들어가기를 소원하지 말고, 성경에 충실한 서구 기독교와 대한민국 기독교가 되기를 역사를 먼저 살았던 사람으로서 드리는 고언입니다.


사회자: 권력이 되어버린 한국 기독교를 생각하면 신자로서 안타까울 뿐입니다. 일제 강점기 때의 독립운동과 70-80년대의 반독재 투쟁에 참여했던 한국 기독교는 이제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광야를 잃어버린 것이지요. 물질과 권력의지가 교회의 사명이 되어 버린 기독교를 보면서 성경의 원리에 충실하고, 세상의 소금의 역할로 부활되기를 원합니다. 권력의지가 아니라 사랑과 섬김과 나눔과 평화와 공의와 정의를 이루는 기독교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오늘 좋은 의견에 감사를 드립니다.


 

k****e 2007.11.12.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