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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전국시대는 혈연과 지연에 기초한 원시공동체가 철기와 농업혁명에 바탕을 둔 중앙집권적 관료국가로 변해가는 공간이었다. 난립한 각 국가들은 제각기 부국강병의 기치를 내걸고, 천하통일의 주인이 되고자 했기에 전쟁이 그칠 날이 없었다. 이런 춘추전국시대를 살았던 제자백가들은 저마다의 사상을 가지고서 유세하며, 자신의 사상으로 천하통일을 이루고자 했다. 이처럼 우리는 춘추전국시대에 활약했던 세객들의 저작을 동양고전이라 부르며, 그 저작들을 읽음으로써 그 시대를 이해하고, 또 현재를 살아가는 삶의 지혜를 구하고자 한다. 그렇지만 제자백가라는 말이 보여주듯 당시에 유세했던 사상가들은 많았고, 따라서 우리가 읽어야 하는 고전의 수도 결코 적지 않다. 그리고 이렇게 많은 사상서를 읽고 이해한다는 것은 전공자가 아닌 일반인으로써는 조금 난해하기까지 하다. 어떻게 보면 그 말이 그 말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이 사람이 주장했던 내용과 저 사람이 주장했던 내용이 무엇이 다른지 헷갈리기도 한다. 이럴 경우 비슷하게 혹은 정반대의 내용을 주장했던 제자백가들을 비교해서 읽는다면 어떠할까? 이 책의 저자는 그렇게 제자백가들을 만나고 있다. 한 인물의 사상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다른 사상가들의 저작과 크로스 리딩을 하는 것이 훨씬 이해가 빠르다고 하면서 말이다. 그의 전작 [맹자와 장자, 희망을 세우고 변신을 꿈꾸다]를 읽으면서 맹자와 장자를 제대로 이해한 것과 같은 느낌이, 이 책 [노자와 묵자, 자유를 찾고 평화를 넓히다]를 찾아 읽게 만들었다. 무無와 유有라는 상반된 개념을 가지고 씨름했던 노자와 묵자, 그들이 주장했던 것은 과연 무엇이고, 어떻게 해야 그것을 이룰 수 있다고 했을까? 지금까지 노자는 공자와 대비되어 서로 다른 지향을 갖는 사상가로 간주되거나, 장자와 나란히 노장으로 불리며 도가를 창시한 인물로 간주되어 왔다. 그에 반해 묵자는 기본적으로 공자사상과 맥을 같이 하지만 인仁이나 예禮대신 의義를 중시한 평화주의자로, 또 유가, 법가, 도가와 함께 선진4가로 불리었지만 어찌 보면 제자백가의 비주류로 대접을 받아왔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저자는 노자가 무無의 세계를 이야기했다면 묵자는 유有의 세계를 이야기했으며, 이렇게 볼 때 무와 유의 세계를 대변하는 노자와 묵자를 대비하는 것도 우리가 동양고전을 읽는 독법의 하나로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노자는 상대적인 차이를 갖는 어느 한 항목에 갇히지 않고 전체를 보는 시선을 갖도록 요구했다. 노자가 말한 無는 특정한 가치와 방향을 유일하고 절대적인 것으로 설정하는 것을 반대하는 근원적인 의미를 가진다. 노자는 자연과 사회의 상반되는 성질 중에 어느 하나만을 기준으로 삼아 다른 모든 것이 그것을 향해 나아갈 수 없다고 생각했다. 서로 상반되는 성질이 의존하고 맛 물려 있다고 본 것이다. 그가 찰흙과 그릇, 벽이나 문 들과 방, 그리고 바퀴살과 바퀴통을 예로 들어 설명한 것처럼 빈 곳이 있으므로 해서 비로소 기능이 있게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有는 기능의 이로움을 만들어 주고, 無는 쓰임의 기능을 만들어 낸다는 뜻이다. 노자는 이를 세상의 만물은 모두 有에서 생기고, 또 有는 無에서 생겨난다고 정리한다. 노자의 핵심사상인 道 역시, 모든 존재가 따라야 하는 선천적인 이념이 아니라, 상반되는 힘의 작용으로 인해 생명이 지속되는 힘이며, 또한 무욕無欲은 한계를 파악할 줄 모르고 만족할 줄 모르는 질주하는 욕망을 경계하는 말로, 반드시 '만족할 줄 알면 욕되지 않고, 그칠 줄 알면 위태롭지 않다'는 지족知足이나 지지知止와 연결해서 읽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경계에 갇히지 않고, 기존의 시선에서 벗어난 사고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내가 아닌, 존재 자체의 나로 온전하게 바라보게 만들었다. 즉, 특정한 가치만을 수용하고 다른 가치를 부정토록 하는 시대의 동원을 병적인 현상으로 보고, 한갓 상대적인 차이밖에 지니지 않는 有들의 경쟁과 대립에서 벗어나고자 한 것이다. 이처럼 노자는 有의 세계를 넘어 無의 세계로 나아갔기에 얽매임에서 벗어난 자유의 사상가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묵자는 확실한 기준을 정립하여 有와 無의 세계를 엄밀하게 규정하고자 했다고 한다. 그러나 묵자가 살았던 춘추전국시대는 모든 사람들이 각기 자신의 욕망을 행위의 기준으로 내세우며 공론을 형성하지 못하던 시기였다. 따라서 묵자는 현실에서 이러한 다양한 주장들의 차이를 크게 하여 어떤 것이 옳고 그른지, 이롭고 해로운지를 식별하고자 했다. 그 결과, 추상적인 가치보다 有를 더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현실의 문제를 더 잘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전쟁이 일어나지 않으면 평화가 유지되지만, 나와 남의 이익과 피해를 구분하는 가운데 경쟁과 전쟁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나를 믿을 수는 있지만 남은 믿을 수 없다는 상호불신이 전쟁으로 향하는 동시대 사람들의 사고였기는 그는 겸애兼愛를 주장하였다. 그렇지만 겸애만으로는 평화를 이루는 것이 부족하였기에 모든 침략전쟁을 반대하는 비공非攻과 삼환三桓의 해결방안으로 절약을 강조했다. 또한 묵자는 단지 이론만으로 평화를 위한 전쟁이나 경쟁의 해결을 하기는 어렵다고 보았다. 그래서 집단의 군사조직화를 추진하여 스스로 용병집단이 되어 침공을 받는 약한 나라와 공동방위를 펼쳤다. 즉, 묵자는 이론과 실천의 통일을 자기사상의 요체로 삼은 것이다. 살아남는 자가 강자이던 약육강식의 시대, 춘추시대 지도자들은 저마다 부국강병으로 패권을 차지하기에 혈안이 되어 끊임없는 전쟁의 길을 선택했다. 살아남기 위해 적을 쳐야 하고, 또 쳐야 했다. 이 와중에 고통 받는 사람들은 일반 백성뿐이었다. 이런 시대에 노자와 묵자에게 無와 有는 각기 자유와 평화로 나가는 디딤돌이었다. 서로 방향은 다르지만 현실의 문제를 풀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한 결과였기 때문이다. 지금은 춘추전국시대와 똑같다고는 할 수 없지만, 경쟁이 도가 넘은 사회임에는 틀림이 없다. 이러한 시대 노자와 묵자가 추구했던 자유와 평화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것도 동양고전을 읽는 이유가 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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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와 묵자라는 학자를 동양고전에서는 많이 접했지만 그들을 한곳에 묶어서 함께 이야기하는 컨셉은 접하지 못한터라 읽어보기 좋은 도서라 생각이 들었다. 더욱이 저자가 신정근이 아니던가.... 눈높이에 맞는 설명도 좋지만 풀어서 쓰기에 어렵지 않게 다가오는 설명으로 어렵다는 생각보다는 읽을수 있는 힘을 주는 문체로 접근하기 때문에 읽는데 지치지 않고 끝까지 읽고 나갈수 있는 저자기기에 믿고 가는 책이다.
노자와 묵자를 그려내고 무와 유를 대표하는 두거장이라고 말하고 있는 표지에서 심플하게 와 닿았기에 주제에 맞는 구성적인 표현을 하고 있다.
무의 자유를 이야기 하는 노자와 유에 대한 실천을 이야기 하는 묵자가 그 당시의 문구로 현실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이야기를 풀어간다.
첫장에서는 노자와 묵자에 대한 전반적인 배경을 이야기 함으로써 고전속의 인물의 배경을 알아야 현재의 그들이 주장하는 논의된 이야기가 잘 이해되도록 많은 사진을 통해 배경을 전달하고 있어서 그들이 낯설지 않게 친숙할수 있는 시간을 글로써 풀어내고 있다.
노자를 먼저 이야기 하는데 자유에 대한 이야기를 단락적인 주제별 갈래로 풀어나간다, 무룰 통해 치유해가는 과정을 이야기 하여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부드러움이 단단함을 이김을 이야기 하는 대목이 있다.
노자는 여성성을 성애 에너지를 표현하는 것이 아닌 생명과 관련이 있고 평화적 연결을 위한 고리적 특징으로 알게 된다.
부드러운 그 자체를 성수 즉 물로써 설명을 해나감으로써 노자 전체에서 일관되는 일관들을 노자가 써 내려가 글들을 삽입해가면서 설명을 이끌어 가고 설명을 그리고 저자가 직접 가본 곳을 사진을 넣어가면서 글을 써 내려가고 있다.
묵자는 유를 통해 평화를 넓히고자 하늕지를 설명하기 앞서서 묵자 또한 노자만큼이나 미스테리한 인물이라고 말하고 있다.
묵자를 잘 접하지 못한 나로서는 어렵다기 보다는 새로움에 조금은 더딘 속도로 읽어내고 있지만 노자의 사상과 비교를해주어 가면서 설명을 하다보니 이해가 조금은 도움이 된다고 할수 있다.
둘의 사상을 가지고 이야기 하는 관점의 맛을 볼수 있는 책이라서 노자편만 읽어도 무리가 없고, 묵자편만 읽어도 무리가 없는 구성을 하고 있다.
각자의 생각하는 길을을 보고자할때 어찌보면 현재에 묵자같은 인물들이 많이 있지 않는가 한다.
현실을 관망이 아닌 현실에 뛰어들고 대항하고 맞서서 싸우길 우너하는 인물이기에 그들의 고뇌에 입문 할수 있는 도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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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는 논어라는 책을 보면 한자가 많아서 해설서가 없으면 읽기에 많은 시간과 노력이 걸렸는데, 직장인으로서 짬이 나질 않아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닌가 싶었다. 물론 산을 넘어야 실력이 일취월장 되겠지만, 높은 산을 쳐다만 보고 포기할 수도 있기 때문에 해설서가 필요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책도 노자와 묵자의 사상에 관해 친절한 설명과 사진, 그림이 곁들여져 있어 일반인들이 맛을 보고 음미하는데 별 어려움이 없어 보인다. 이 책의 저자는 성균관대학교 동양철학과에서 동양철학과 예술철학을 강의하는 신정근 박사다. “마흔, 논어를 읽어야할 시간” 등 다수 전문적인 저술을 하고 있고, 과거 “맹자와 장자, 희망을 세우고 변신을 꿈꾸다”란 책을 읽은 적이 있어 이 책에 대해서도 기대가 있었다. 제목처럼 이 책은 노자와 묵자와 관한 이야기다. 목차에서도 반씩 할애하고 있으며 노자의 특징을 “자유를 찾다”, 묵자는 “평화를 넓히다”라고 하여 핵심을 찌른다. 중국 춘추전국시대 제자백가 중 다수의 사상가가 있는데 노자는 도가사상으로 유명하지만 묵자는 그리 알려져 있지는 않다. 노자와 묵자는 유와 무의 세계를 대표하는 지성인이다. 간단히 말하면, 노자는 유에서 무로, 묵자는 무에서 유로 넘어간다고 할까. 노자의 대표적인 사상은 무위 또는 무위자연이다. 그래서 금기가 많아질수록 백성이 더욱 가난해진다고 보았다. 여기서 무위자연은 방치가 아니라 외부의 힘없이 자체의 힘으로 끊임없이 생성을 자발적으로 되풀이하는 것을 말한다. 신년에 계획을 세우는데 노자는 아마도 왜 계획을 세우는지 따져보지 않을까. 노자는 “세상의 만물은 모두 유에서 생기고 또 유는 무에서 생겨난다”라고 했는데 이는 세상만물이 각양각색으로 다르나 결국 일정한 꼴을 지니고 있어 유에 바탕을 두고 있고, 그 유는 여백의 무에 바탕을 두고 있다. 노자는 두가지의 길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 뛰어남과 지혜, 사랑과 정의, 교묘함과 이익처럼 모든 사람이 따라야할 가치나 나아가야할 방향을 내걸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생기게 되면 사람들은 그쪽으로 가지 않으면서 가는 척하게 되고 바라지 않으면서 바라는 듯 속이기 때문이라 한다. 둘째, 따스함, 소박함 그리고 앞서려고 까불지 않는 자세의 세가지 보물, 즉 삼보이다. 삼보는 시대가 요구하는 날카로움, 화려함 그리고 뒤처지지 않으려는 악착스러운 자세와 대비된다. 이러한 노자의 두가지 길은 현시대와는 완전히 동떨어진 이야기로 보인다. 노자는 규칙을 내세우는 시대가 사람을 점점 기계로 만들고 사람은 규칙 앞에 벌벌 떠는 좀생원으로 변해가는 현상을 보았는데, 오늘날 사람들을 보면 어떻게 생각할까. 노자와 다르게 묵자는 다분히 현실참여자 같다. 묵자는 공자를 비롯한 유자에 대해 다양한 비판을 하는데, 책임 있는 사람이라면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지식과 지혜를 짜내서 공동체의 복지를 증진시켜야 하면서 유자들의 기회주의적인 태도를 비판했다. 묵자는 공자의 인에 대해서도 비판적인데 공자의 사랑을 차별적인 사랑이라며 ‘별애’라고 부르고 자신의 사랑을 무차별적인 사랑이라며 ‘겸애’라고 불러 차이점을 뚜렷히 했다. 묵자 사상의 또다른 특징은 강한 실천정신이다. 내가 남의 일에 책임이 없다고 해서 어디까지 침묵할 수 있을까? 묵자는 아프기는 하지만 어찌 할 수 없다라는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전쟁에 관하여 묵자는 전쟁이 일어나는 원인을 제거해서 전쟁이 아예 일어나지 않게 하려고 했다. 이 책이 흥미롭고 이해하기 쉬운 점은 다양한 현대의 사례를 들어 노자와 묵자의 사상을 설명하고자 하는데 있다. 이 과정에서 저자의 개인적인 견해가 반영될 수 있지만 충분한 근거를 가지고 논리를 전개한다는 점에서 노자와 묵자라는 산을 오르기에는 안성맞춤인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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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전국시대에 동양 철학의 뿌리가 시작되었던건 그 당시 중국이 여러 나라로 쪼개지면서 백성들에게 고통과 배고픔 속에서 죽어나갔기 때문이었다..그렇게 힘있는 자들이 백성의 안위는 생각하지 않은채 자신의 이익만 추구하였던 그 때 중국의 여러 곳에서 사상가들은 각자 자기 나라의 문제들을 해결하려 하였으며 실천하려고 하였다..그렇게 우리가 생각하는 위대한 사상가들의 시작은 미약하였지만 그들의 사상은 점차 널리 퍼져갔으며 제자들의 의해 보존되어서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오게 된다.여기서는 그 많은 제자 백가 사상가들 중에서 노자와 묵자의 이야기가 담겨져 있었다.. 노자와 묵자..그동안 동양의 철학서를 읽어본 사람이라면 두사람의 사상을 비교하는 것 자체가 어색하다고 할 수 있다..강신주의 <철학 vs 철학>에서 알다시피 노자는 장자와 비교되어 왔으며 묵자는 공자와 주로 비교하면서 서로가 비슷한 점은 무엇인지 그리고 그 차이는 무엇인지 그들의 철학에 대해서 이해해 왔었다..하지만 노자와 묵자의 연관 고리...그 두 사상가는 공통점 보다는 반대되는 사상을 추구했다는 걸 알 수 있다...그건 세상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노자는 무(無)에 가치를 두었다면 묵자는 유(有) 에 가치를 두었으며 세상의 문제들을 해결하려고 노력해 왔으며 백성들의 배고픔을 해결하는데 힘을 썻다는 점이 두 사상가의 사상을 이해하는데 기본적인 요소라고 할 수가 있다... 노자의 사상에서 알수 있는 무위자연...이 무위자연에 대해서 이해를 하는 것...어떤 문제에 대해 억지로 무언가를 하려 하지 않으며 자연의 순리에 따르는 것..그 자연스러움이 바로 우리의 문제들을 해결해 줄 수 있다는 사상이었다...인위적인 요속들..특히 인간들 사이에 각자 가지고 있는 욕심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에 있어서 왜곡된 삶을 추구하였으며,백성들을 고통 속으로 밀어넣었다는 걸 알 수 있으며,노자의 사상 중에서 <금기가 많아지면 백성이 궁핍해진다> 라는 말의 의미는 우리 현 정권과 지금의 모습과 딱 일치하는 생각이라 할 수 있다..현 정권에서 보여지는 법규의 제도의 강화...그들은 민생을 이야기 하면서 점점더 국민들을 가난하게 만들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으며 그들의 그러한 모습은 국민들은 안중에도 없다는 걸 알 수가 있는 것이었다... 이에 반해 묵자의 사상은 바로 현실의 문제에 대해서 구체적인 대안을 마련하면서 실천을 중시하는 사상을 펼쳐가게 된다..특히 절약을 중시하는 묵자의 사상,그리고 문화예술에 있어서 사치스러움보다는 목적이 있는 그러한 문화 예술을 장려하였으며,백성들의 삶과 밀접한 것은 어떤 것이 있는지 생각하였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렇게 우리는 무와 유라는 가치를 통해서 노자와 묵자의 사상을 책을 통해서 이해할 수 있었으며 지금 현재 우리 사회에 일어나고 있는 다양한 문제들이 왜 생겨나는지,그리고 그들의 이율배반적인행동들 뒤에 보여지는 그 실체는 무엇인지 알 수가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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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와 묵자, 그들의 사상을 명쾌하게 설명해주고 있는 '신정근'교수님의 <노자와 묵자>! 이 책은 성균관대학교 출판부에서 출간되었고, 저자인 '신정근'교수님은 현재 성균관대학교 동양철학과의 교수이시며 <마흔, 논어를 읽어야 할 시간>등을 저술하기도 하셨다고 한다. 작년에 노자의 <도덕경>을 읽어보았지만, 그 자체로는 이해하기가 어려운 감이 많았다. 묵자는 아직 읽어보질 않았고... 그런데, 신정근님의 <노자와 묵자>를 읽어보니, 두 사상가들이 말하고자 했던 것들이 무엇이었는지 정말이지 명쾌하게 이해할 수가 있었다. 이 책은 두 사상가들의 이야기를 종합적으로 엮어서 그들이 말하고자 한 핵심을 정리하여 주고 있는 것인데, 전혀 무겁지 않고 어렵지않게 다가와 쏙쏙 머리에 들어오는 것이 무척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노자는 '무'를 묵자는 '유'를 대표한다고 한다. 저자는 이 두 사상가들의 상반된 주장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파악하여 알려주고, 또 이들이 이런 주장을 하게 된 시대적 배경과 현실의 문제를 어떻게 풀고자 하였는지를 비교하며 보여준다. 노자는 모든 존재는 무엇에 의해 끌려가지 않고 자기 원인에 의해 스스로 움직이는 자유로운 상태에 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였고, 묵자는 전쟁이 없어져야 한다는 점을 누구보다도 역설했던 사람이었다고 한다. 노자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그러므로 유(있음)는 기능의 이로움을 만들어주고, 무(없음)는 쓰임의 기능을 만들어낸다." 무는 유의 그러한 이로움이 생길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해준다. 비어 있기 때문에 다른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p 121 노자는 공자를 비롯한 제자백가들이 특정한 방향을 정해놓고 모든 사람이 그것을 따라야 한다고 하는 것은 사람의 자연스런 행동을 막는 요인이며 불필요한 족쇄나 과도한 구속과 다를 바 없다고 보았다는 것이다. 자연이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돌아가듯, 사람들도 스스로 움직일 수 있다는 것. 노자의 출생과 이름에 얽힌 이야기 그리고 노자의 고향과 노자를 해석하는 다양한 방식이 있음도 들려준다. 노자는 많이 알려져 있지만 묵자는 노자에 비해 덜 알려진 인물이 아닌가 싶다. 묵자의 사상에 대해 이 책을 통해 읽고나니 좀 더 알아보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무척 흥미롭게 느껴진다. 묵자 또한 노자처럼 출생이나 활약시기에 대해서 미스터리에 싸인 인물이라고 한다. 묵자는 유자들이 몸을 사리느라 자신의 소임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는다고 비판하였고, 전쟁이 일어나는 원인을 제거해서 전쟁이 아예 일어나지 않게 하려고 하였다고 한다. 묵자는 제자백가 중에서도 보기 드문 특성들을 나타내는 것들이 있다고 한다. 묵자 한 권에 세상에 모든 것을 다루는 백과전서에 해당하는 특징, 침략 전쟁을 반대하며 실제로 침략을 당하는 나라를 군사적으로 돕는 용병의 역할까지 하는 이론과 실천의 통일을 삼고 행동한 점이 남다르다고 한다. 묵자는 매서운 눈과 유연한 사고를 가진 인물인 셈이다. p207 묵자는 물 먹는 하마마냥 돈을 펑펑 쓰기만 하는 왕실의 퇴폐적이고 낭비적인 예술을 반대했다. p234 무위 리더십과 자유를 갈망한 노자, 투쟁과 정의를 중시한 돈키호테적 사상가 묵자. 노자와 묵자는 전혀 다른 노선을 향하고 있었지만, 그들의 사상에는 힘겹게 살아가고 있었던 백성들을 위하는 마음이 담겨 있었다. 그들이 말하고 있는 문제점들과 좋은 점들이 모두 지금의 시대에 존재하고 있지 않나 싶다. 노자와 묵자. 같은 문제에서 출발하여 전혀 다른 방법을 제시하고 있는 두 사상가. 그 둘의 사상의 핵심을 이렇게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해주고 재미 또한 선사해주고 있는, 신정근님의 <노자와 묵자>. 뭔가 뻥~ 뚫린 기분이다.^^ 이 책은 저자가 제자백가를 두세 명씩 교차해서 읽는 독법의 결실의 세 번째라고 한다. <공자와 손자>, <맹자와 장자>도 읽어봐야 겠다.^^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된 리뷰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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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은 난세에 탄생한다는 말이 진실이라는 것을 저는 춘추전국시대에 활동한 위대한 사상가 제자백가를 보면 항상 느끼는데 이 도서는 그 사상가 중에서 노자와 묵자에 집중하고 있답니다. 무유의 세계를 대표하는 두 거장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노자와 묵자, 자유를 찾고 평화를 넓히다 도서에서는 두 사상가를 따로따로 보는 것이 아니라 묶어서 같이 살펴보고 있답니다. 무위자연이라는 개념으로 우리에게 널리 알려져있는 노자의 사상은 추상적인 내용으로 다양한 해석을 담은 도서를 많이 만나볼 수 있었어요. 사실 노자만큼 미스터리한 인물의 사상가도 없지 않을까 싶은데 그래서 그렇게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했다고 보여지더라구요. 수많은 도서들이 다른 방식으로 노자의 사상을 풀어내어도 기본적인 무의 세계를 꿈꾸었던 노자의 사상의 기본 중기를 보면 모두가 함께 공존한다는 포용력 있는 의미에서 저는 참 좋았어요. 공존과 포용과 자연 그대로라는 사상이 평화를 지향하고 있었기에 그런 이유로 제가 노자라는 인물에 대한 호감이 강했는데 이번 도서는 노자와 묵자를 동시에 만날 수 있더라구요. 사실 저는 묵자라는 인물을 아주 단편적인 지식 몇 줄로만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무유의 세계를 대표하는 거장을 좀 더 알고 싶었어요. 도서는 노자와 묵자의 사상을 나누어서 노자는 자유를 찾고 묵자는 평화를 넓혔다는 장으로 구분해서 서술하고 있어요.
사실 그 동안 노자의 저서의 내용에만 관심을 가졌던 저는 노자가 살았던 그 시대의 현실을 자세하게 알지는 못했어요. 물론 결코 행복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는 것은 공감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목소리를 민중들이 내고 있는지 국가의 현실을 이해하지 못했거든요. 이 도서는 그 당시의 시대를 아주 자세하게 소개하고 실제 그 시대의 제도나 기록들을 그대로 제시하면서 어떻게 노자의 사상이 이렇게 표현될 수 밖에 없었는지를 근본적으로 이해시켜요. 저는 이 과정이 무척 흥미로웠는데 삽화와 지도, 사진이라는 다양한 자료들과 함께 볼 수 있어서 구체적인 이해가 잘 되었다고 할까요? 추상적이기로 유명한 노자의 사상을 좀더 현실감있게 만나는 느낌이었어요. 노자와 비교하면 묵자는 무척 현실적인 그의 사상만큼이나 다양한 일화도 굉장히 생동감이 넘치는데 저는 묵사성적도로 묘사된 그의 환경이 사람에게 끼치는 영향에 관련된 이야기가 무척 인상적이었어요. 단순한 염색 과정을 지켜보면서 인문학적 사고를 하여 국가 운영의 원리를 떠올린 그의 사고 연상 능력과 유연한 사고와 매서운 그의 안목이 묵자를 다시 보게 하더라구요. 노자와 묵자라는 두 사람의 사상과 삶의 방향은 무척 다르지만 그들이 원한 결말은 같았다고 생각해요. 평화롭고 행복하며 자유로운 인간의 삶을 꿈꾸었던 그들의 사상을 만날 수 있어서 참 좋았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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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와 묵자
위대하신 인물들의 말씀을 듣는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노자와 묵자에 대해서 확실히, 정확하게 알지 못해서 이 책을 읽었다. 두분은 서로 추구하는 사상이 다르지만, 무와 유의 세계를 가장 잘 대변하는 사상가라고 말한다. 모자는 무의 자유인이시고, 묵자는 유의 실천가라고 설명된다. 그들의 사상을 통해서 삶의 지혜를 얻고 싶었고, 실제로 이 책을 읽으면서 지혜를 얻을 수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노자와 묵자라는 인물에 대해서 깊이 있게 알수 있다. 그리고 삶에 대한 방향과 지혜를 얻을 수 있어서 유익한 시간이다. 그들의 사상을 다 이해할 수 는 없지만, 그래도 부분부분은 공감한다. 옛 조상이기때문에 삶의 지혜를 확실히 얻고, 인생의 가르침을 얻을 수있었다. 그들이 살았던 시대의 이야기는 물론, 삶의 질을 높여주는 이야기가 많이 있었다. 서로 다른 사상을 지녔지만 어쩌면 서로 잘 맞는 두 사람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요즘 삶에 대해 더욱 어렵고 불안하면서 사는것같다. 현실에 치여서 현실적으로 변해가는 나의 모습을 보면서 반성한다. 그리고 정말 무엇을 위해서 내가 살아가는것인지 다시한번 생각해볼 수 있었다.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어려움에 부딪칠때마다 좌절해서는 안된다. 이렇게 노자와 묵자의 삶을 통해서 삶의 지혜를 얻어서 극복할 용기를 얻어야한다. 우리 조상들이 과거에 계셨기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누리면서 살 수 있는게 아닌가. 책을 읽으면서 이해하려고 했고, 많은 생각을 돌아보고 정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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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와 묵자, 자유를 찾고 평화를 넓히다 - 무유의 세계를 대표하는 두 거장의 이야기 인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보면 빠지지 않는 레토리 중의 하나가 이른바 제자백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수천년전부터 오랫동안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쳐왔고, 아직도 그 유효기간이 끝나지 않은 신선하고 팔팔한 제품이라는 생각이 들만큼 제자백가와 그 다양한 사장에 대한 이야기들은 그 끝을 알 수 없을만큼 다양한 이야기를 우리에게 하고 있습니다. 그런 다양한 제자백가의 사상 중에서 이 책에서 다룬 노자와 묵자는 꽤 유명한 혹은 인기있는 인물들인듯 합니다. 사실 제자백가를 이야기할 때 가장 우리에게 익숙한 인물은 공자와 맹자입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의 방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이기도 하고, 아직도 우리의 삶 곳곳에 유교적인 흔적이 남아있는 것을 보면, 그저 오래전 인물로 치부하고 넘어가기에는 그 힘이 너무 크다고 할수 있습니다.
공자와 맹자라는 스타와 함께 항상 빠지지 않는 인물이 있다면, 바로 노자와 묵자입니다. 물론 노자는 묵자보다는 장자와 함께 등장하는 것이 훨씬 많습니다. 공맹, 노장과 같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은 이렇게 네 명에 대한 이야기들을 가장 많이 들었던것 같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맞이하게된 노자와 묵자의 만남은 그 자체만으로도 다양한 생각이 들게 합니다. 기존에 보지 못했던 새로운 조합이라는 측면에서, 낯선 느낌이 들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색다른 느낌과 함께, 어떤 기대가 생기기도 합니다.
동양 고전은 읽기 쉬운 책이 아니라는 생각을 합니다. 일단 한자로 되어 있는 데다가, 철학 혹은 그와 비슷한 주제를 가진 책이라는 점에서 옆에 가져다 놓더라고, 그저 검은 것은 글씨이고, 흰 것은 종이라는 정도 외에는 더 이상 진도가 안나가기 쉽습니다. 그런데 이 책은 술술 잘 넘어갑니다. 그렇다고 해서 대충 넘어가는 것은 아니고, 이해하기 쉽게 잘 설명해 주고 있고, 중간중간에 나오는 그림이나 사진과 같은 자료들이 노자와 묵자라는 인물과 그들의 사상에 대한 이해를 하는데 좀 더 친숙하게 만들어 주고 있습니다.
책은 노자와 묵자를 나란히 놓고, 비교, 대조해가며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노자-묵자, 무-유, 자유인-실천가, 이처럼 전혀 상반되는 것처럼 보이는 관점으로 두 사람의 사상가를 살펴보며, 그들은 과연 어떤 사람이었는지 또한 그들이 말했던 사상이라는 것은 어떤 것이었는지를 함께 이야기합니다. 이들의 사상은 현실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그들 나름의 해법을 찾기 위한 고뇌의 산물이라는 것이 저자가 말하는 주제 입니다. 실제 저자가 알려주는 이야기를 듣다보면, 우리가 맞딱뜨리는 현실에 대한 해법이라는 측면에서 접근하고 있는 노자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무위자연이나 노장사상에 대해 가지고 있던 짧은 지식에 의한 편견이 조금은 사라지는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노장 사상이야기가 나오면 어디선가 슬그머니 따라 나오는 무위자연이라는 말처럼 노자의 이야기는 그저 현실을 도피하기위한 정당성을 찾는 지식인들에게 일종의 도피처를 마련해주는데 그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한 적 있었는데요 노자의 사상은 단지 현실 도피를 위한 도구가 아닌,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도구나 생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와 함께 나온 묵자의 모습은, 좀 더 현실적이면서, 말보다는 행동을 중요시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사실 묵자는 그다지 많이 들어보지 못했고, 그의 사상 또한 지나가며 들었던 한 두 마디의 이야기가 거의 전부인지라, 책에 나온 이야기들을 통해 들여다보는 것이 무척 새로운 인물이었습니다. 책에 나온 삽화로 부터 예전에 봤던 <묵공>이라는 영화가 묵자와 관련이 있다는 것이 떠올랐을 만큼 묵자에 대한 관심이 없었던 것은 인정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를 만났을때, 어떻게든 해결하려고 하고, 이를 어떤 탁상공론이나, 말도 안되는 이상이 아닌, 현실을 기반으로 해결하려고 노력했다는 점에서, 어쩌면, 가장 실질적인 인물중 하나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들이 해결하려고 했던 현실의 문제는 아직도 우리들의 삶에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문화가 다르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이 아닌, 사람들의 삶이기 때문에 그대로 남을 수 밖에 없는 것들도 있는데요. 노자와 묵자의 노력이 그 시대의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지 못했지만, 그런 그들의 노력을 통해, 인간의 삶이 조금은 나아지는데 도움을 받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우리 시대에, 우리가 겪고 있는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뇌하고 있는 우리 시대의 노자와 묵자들에게도 문제 해결을 위한 고민과 노력이 우리 시대의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하지 못하더라도 좀 더 나은 우리의 삶을 만들고, 우리의 후세들에게 더 나은 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기대와 격려를 해 줄수 있었으면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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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는 사람을 특정한 가치로 유도하여 다른 가치를 배제하려고 하면 사람의 자발성을 해치게 되어 뜻하고 의도한 대로 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다. 즉 성인이니 지자(현자)를 자꾸 말하면 오히려 정반대의 결과나 기대하는 효과에 못 미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세상의 만물은 유에서 생겨나고, 그 유는 다시 무에서 생겨난다.' 이런 노자의 무는 아무것도 없는 절대무나 아무런 의미가 없는 허무가 아닌 특정한 영역,의미, 차이로만 환원되며, 부분으로 나뉘어 기능할 수 없는 특성을 가진다. 그와 반면 묵자는 유를 넘어 무로 나아가는 것을 위험하게 여겼다. 그는 증명하고 존재를 밝히며 그의 입장을 밝힌다. 즉 묵자의 유는 현실에서 제기되는 다양한 주장들의 차이를 더 크게 하며 그것이 이로운지 해로운지를 감별해나간 것이다. 노자와 묵자를 비교하면서 읽어 나가면 이해가 되는데 따로 떼어놓고 보면 쉽게 개념이 머릿속에 정리가 되지는 않았다. 저자의 다른 책인 [마흔 논어를 읽어야 할 시간]이 비교적 쉽게 이해된것에 비해, 이 책은 읽는 속도도 더디기만 했다. 노자는 무의 세계를 발견하고 묵자는 유의 세계로 돌아오려고 한 것은 그 당시 사회적 상황과 유관하다. 노자는 어떤 인물인가? 그는 도교를 창시한 사람이나 자세한 기록이 없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노자는 실제 이름이 아닌 한 사람을 부르는 여러 가지 이름 중의 하나이며 호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저자는 노자의 근원을 찾기 위해 중국의 곳곳을 다녔다. 공자와 노자의 만남은 그림의 소재로도 많이 쓰일 정도였는데 그 그림이 바로 [문례노담]이다. 공자가 노자를 찾아 예를 물었다는 뜻으로 노자의 대답이 대단하다. "그딴 건 배울 필요 없어" 이렇게 차갑게 말했던 노자에 대해 공자는 제자들에게 "용과 같은 존재"라고 말한다. 노자는 말년에 세상을 등지고 낙양을 한다. 소를 타고 떠나는 그의 모습을 김홍도와 정선이 그림으로 그린 것이 있는데 그당시 이 소재는 회화에서 가장 환영받는 것이었다고 한다.
"장차 약하게 하려면 먼저 강하게 해주어야 한다. 장차 없애려고 하면 먼저 잘 일어나게 해줘라. 장차 빼앗으려고 하면 반드시 먼저 줘라!" 이렇듯 노자의 핵심은 무위 리더쉽인 것이다.
비교해서 읽으니 확연하게 다른 두 사람이었다. 이들의 책이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의 서재에 존재하고 철학서로 읽혀지고 있다는 사실에서 고전의 힘이 느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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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가 자유를 찾고 묵자가 평화를 넓히고자 했다면, 노자의 억압과 묵자의 전쟁을 생각하는 것이 먼저다. 자유는 억압에 대한 반동이요, 평화는 전쟁에 대한 반작용일 테니까. 춘추전국시대라는 대혼란의 현실적 출구로서 노자가 자유를, 묵자가 평화를 선택했다는 주장은 자연스럽다. 또한 유가라는 기득의 사상에 대한 비판과 대안으로서 노자와 묵자는 충분한 사상적 특징과 사회적 기능을 가지고 있다. 유가의 제도를 통한 인위 통치에 대해 노자가 무위자연으로 맞받아치고, 유가의 별애(別愛)를 묵자가 겸애(兼愛)로 대응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무와 유의 대별을 전제로 노자를 무에, 묵자를 유에 배치한 것에 대해서는 적지 않게 당황했다. 그 이유는 첫째, 무와 유의 구분은 관념의 소산인데 반하여 노자와 묵자의 사상은 현실을 개혁하고자 한 실천적 정치담론이기 때문이다. 둘째, 노자의 사상은 무의 세계를 설명하거나 강조하기 보다는 도(道)를 설명하기 위해 무와 유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의 본질을 탐구한 것이 아니라, 무와 유의 ‘관계’를 통해서 도를 드러내는 방식이다. 그러므로 노자를 무에 배치한 것은 오해를 만들 수 있다. 셋째, 묵자의 적극적인 현실 참여적 성격 때문에 그를 유에 배치했다면, 사실 제자백가 중에서 유의 세계에 속하지 않을 사상은 없을 것이다. 구분과 배치의 실익이 없다. 사실 위의 비판이 겨냥하고 있는 것은 ‘포개어 읽는’ 동양 고전이라는 방법론이다. 비교 혹은 대조라는 그물은 두 개의 사물이나 생각의 본질보다는 피상적 대칭 관계를 보다 많이 건져낸다. 쉽게 설명하면 이렇다. 여기 호빵과 호떡이 있다고 치자. 호빵을 호빵답게 하는 것, 즉 호빵의 본질을 갈파하기 위해서는 호빵이 아닌 모든 것과의 차이점을 상정해야 한다. 그러나 호빵과 호떡을 대조하는 방법론은 그 중에서 오직 호빵과 호떡의 차이점에만 주목하면 된다. 천만다행으로 호빵다움이 호떡다움과 서로 맞닿아 있다면 매우 유용하겠지만, 대부분의 비교론은 제한적 대립각을 강조하기 쉽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포개어 읽는’ 방법론은 노자와 묵자의 사상이 서로에게 본질적으로 의존적이라서 선택 했다기보다는, 새로운 관점의 제시라는 환기 정도라고 해야 할 것이다. 많은 연구자들이 공자-노자, 공자-묵자를 비교하는 것은 사실 양자의 관계가 본질을 설명할 수 있을 만큼 상호 의존적이기 때문이다. 노자와 묵자는 공자를 의식적 토대로 삼고 있다. 사후적이던 집단적이던 공자는 그들의 사상 형성에 결정적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저자께서 이러한 점까지 잘 알고 계시다는 점은 비판의 대상이 아니다. 이 책의 구성만 봐도 금방 알 수 있다. 저자는 노자와 묵자를 무와 유로 배치한 이유에 대해 짧게 서론에서 밝힌 후, 노자다움과 묵자다움을 놓치지 않기 위해 책의 대부분을 각자의 사상에 할애했다. 두 사상가 모두 수수께끼 같은 역사성을 갖고 있는 터라, 인용한 문헌적 근거와 최근의 사진까지 세심하게 편집되어 있다. 무와 유의 구별이 서양철학의 존재론적 접근이므로 노자와 묵자가 가지고 있는 동양철학의 관계론적 특성이 훼손되지나 않을까 걱정하지 않아도 좋다. 앞에서 말했듯이 무유(無有)의 대별은 창문을 열어 새로운 공기를 방안에 주입시킬 목적이지, 그것으로 방청소를 대신하려는 게으름의 소산이 아니다. 특히 묵자 부분은 노자와 비교해서 많이 읽히지 않고 있는데, 묵자를 처음 읽으시는 분들에게는 매우 유용하다고 생각된다. 묵자의 이름부터 그의 사상의 대강과 요지를 빠른 시간 내에 정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노자가 어렵다고만 알고 계신 분들은 이 책을 통해 노자를 보다 친숙하게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도덕경을 덥석 읽기 보다는 이 책을 먼저 읽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동양고전을 많이 읽으신 분들보다는 이제 시작하려는 분들께 추천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