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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권은 요독증을 앓고 있던 할머니의 병세가 심해지고 급기야는 죽음을 맞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그토록 사랑해 마지않았던 할머니가 점점 평소의 모습에서 멀어져가는 모습을 보게 된다. 화자는 이미 혼자인 느낌이 들기 시작했고, 이제는 할머니 마음속에서 떠날 준비를 하는 것 같았다. 더 이상 예전의 할머니와의 끈끈했던 애정을 느낄 수가 없었다. 할머니가 병으로 인해 무력해지는 모습을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할머니의 이마에 키스하려고 했으나 할머니는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침착하고도 냉정한 묘사에서 화자의 무너지는 마음을 오히려 더 엿볼 수 있었다고 할까. 인간이 늙고 병들어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서 육체적, 심리적으로 어떻게 변화되고 있는지 그대로 보여주었다.
그런 마음은 어머니도 마찬가지였다. 최대한 냉정함을 유지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할머니의 가슴에 묻혀 울음을 터뜨리는 모습을 보고 싶었던 프랑수아즈는 어머니의 그 차분함에 분노할 지경이었다. 어머니는 총명했던 어머니가 무너져 내린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고, 당신을 걱정해서 마음 아프게 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러면서 곧 나을 거라고 안심시켰다. 이런 중에도 프랑수와즈의 충실함은 화자의 가족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다. 몇 날 며칠을 잠을 안자면서도 온갖 힘든 일을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이라는 듯이’ 해주었기 때문이다. 또 다른 하인들이 화자의 가족에게 무례하게 구는 것도 프랑수아는 용납하지 않았기에 질서가 유지되었다. 프랑수아즈의 이 사명감은 콩브레 시절부터 갖고 있던 것이었다.
할머니가 아팠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다. 그중에는 베르고트도 있었는데, 그의 ‘명성’은 높아져 갔지만, 몸은 점점 쇠약해지고 있었다. 게르망트쪽2 에서는 할머니의 죽음을 비롯하여 베르고트의 병, 마지막에 스완의 병을 언급하면서 죽음에 관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이야기는 생각지 않던 알베르틴이 찾아오고 게르망트 공작부인 살롱 만찬회 장면 이야기로 길게 이어진다. 알베르틴은 이전의 솔직하고 착한 모습이 아니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조금 성숙한 것일까. 누구에게 의존하지 않고 자기중심을 지키려는 태도가 느껴졌다.
게르망트 부인을 보기 위해 아침 산책을 하던 아들에게 어머니는 그런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다고 일침을 놓는다. 화자는 오랜 잠에서 깨어난 듯 정신을 차린다. 그리고 여인을 만나지 않고도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것이 실제 프루스트가 동성애자가 되는 계기인가 보다. 한편 게르망트 부인을 사랑했던 그의 마음을 내려놓았는데 오히려 그쪽에서 살롱에 초대하려고 안달을 하거나 교제에 힘쓰려는 모습이 보인다. 이들은 생루와 샤를뤼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하지만 게르망트 부인에게 시들해진 마음은 다시 뜨거워지지 않는다.
생루의 도움으로 스테르마리아 부인을 만나려는 기대감으로 가득 부풀어있는데 생각지 않게 알베르틴이 찾아온다. 발베크에서 알베르틴을 향한 초조했던 마음과 달리 그다지 신경쓰지도 않는다. 이미 사랑하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마음과 달리 사랑을 나눈다. 그리고 한껏 스테르마리아 부인에 대한 상상을 하며 만날 시간을 고대하고 있었건만 급한 일이 생겨 못 온다는 전갈이 오자 절망에 빠지다가 흐느껴 울기까지 한다. 이 부분에서 좀 웃겼다. 그렇게 몽상을 하며 함께 만나는 순간을 기다렸지만, 물거품 처럼 사라진 것이다. 이때 생루가 나타난 것은 화자에게 있어 구원이었을 만큼 반가워했다. 화자는 생루와의 우정을 논하며 생루와 생루의 친구들과 식사를 하던 일 동시에르의 추억을 떠올리기도 한다.
게르망트 부인의 살롱 만찬에서는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가 펼쳐졌다. 식사 문화, 문학, 그림, 칸트를 언급하기도 했고 화초와 식물학, 역사, 음악, 미술 등으로 이어졌다. 게르망트 공작 부부에 대한 언급이 자주 나왔는데 당시 귀족들의 생활상과 허영심을 엿볼 수 있었다. 예를 들면 게르망트 공작은 부인 외에 많은 정부를 거느리고 있었는데 귀족들의 사치스럽고 문란한 생활을 알 수 있었다. 기 드 모파상의 『벨 아미』가 떠오르기도 했다. 게다가 공작부인은 남편의 정부를 살롱 만찬에 초대하여 얘기도 나누고 어떤 정부에 대해 남편과 함께 흉을 보거나 하는 부분은 우리의 정서에서는 생각할 수 없는 부분이어서 놀라웠다. 게르망트 공작부인에게 실망은 했지만, 공작 부인이 빅토르 위고의 시를 인용하며 이야기하는 부분에서는 화자에게 반향을 일으킨다. 위고의 시집 「가을의 잎」을 고향에 기증했던 걸 저주하면서 같은 책을 사오라고 하인에게 시킨다.
마지막 부분에서는 스완이 등장하는데, 이탈리아 여행에 같이 가자는 게르망트 공작의 권유에 스완은 자신은 몇 달 살지 못할 거라는 얘기를 한다. 병을 앓고 있는 스완도 죽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게르망트 공작은 그런 사람을 앞에 두고 아내와 자신의 몸 걱정을 한다. 그러면서 스완에게는 1607년에 지어진 퐁뇌프 다리만큼이나 오래 버틸 거라는 말을 한다. 또 검정 구두를 신은 게르망트 부인에게 빨간 구두를 신으라고 다그치는 장면도 웃겼다. 자신의 의견이 중요하고 때에 따라 불같이 화를 내면서도 빅토르 위고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아내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이런 이중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들이 살아갈 수 있었던 건 황금만능주의가 파고들어서였을까. 이 게르망트 공작의 살롱 이야기를 통해서 당시 프랑스 귀족들의 삶과 여인들의 삶을 짐작할 수 있었다. 자주 언급되고 있는 드레퓌스 사건 얘기를 통해서 반유대주의를 프랑스에서 전 유럽으로 확산시켰고 세계 1차, 2차 대전의 집단적인 광기를 예고한 것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의 어머니가 유대인이었고, 어머니에게 고백할 수 없는 사실을 글쓰기로 녹여냈으니, 이 작품은 프루스트에게 있어 삶의 한 양상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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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나 돌고 돌아 마음의 안신처라는건 독자라면 공감할 것이라 본다. 이북으로 사는편이 여러모로 낫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리뷰를 쓰면 포인트를 주는 줄 몰랐다 그동안 수많는 책을 샀었는데 구입한 1년간의 책만 쓸 수 있다하여 지나기전에 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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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년 1월 2일 프루스트가 앙리 게옹에게 보낸 편지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고 합니다. 독자에게 도음이 될 듯하여 공유합니다. 소설이 저의 목적이라면 이는 작가의 터무니없는 허황된 야망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겠습니다. 점과 선으로 구성된 2차원에 공간이라는 요소를 추가하여 입체감 있는 3차원 세계로 연구 영역을 넓혀 가는 기하학자처럼, 저는 소설에 시간이라는 개념을 삽입함으로써 그와 연결되어 벌어지는 인간의 심리를 연구하고자 한 것입니다. 첫째, 저의 소설에는 다른 소설들이 구성하는 대부분의 요소가 결여되어 있습니다. 제 소설 속 인물들은 자신의 행동이 어떤 내면의 심리를 드러내기 위한 것이 아닌 이상 외적으로 어떤 행동을 하는지 전혀 묘사되지 않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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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6권 게르망트 쪽 2 - 마르셀 프루스트 저/김희영 역 내 방의 예쁜 벽지 두 뼘을 담당하고 있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시리즈... 물론... 아직도 홍차와 마들렌에 빠져 스완네 집 쪽으로... 가고 있는 중이지만ㅋㅋㅋ 세월을 두고 한 권 한 권 모으는 사이 벌써 책이 바래버리고 있다는 사실에 충격 받고 있는 나... 이렇게... 찐 클래식이 된다 (아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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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전 세계 문학을 통틀어 고전중의 고전으로 손꼽히는 소설이지만, 소설 문학의 극한점에 도달한 것으로 평가받는 치열한 작가의 탐구정신으로 인해 쉽게 도전하기 어려운 작품이기도 하다. 일인칭으로 쓰여진 이 소설은 주인공 화자인 마르셀(Marcel)이 흘러간 자신의 과거를 되찾기 위해 떠나는 대장정의 이야기이다. 뜨거운 홍차와 마들렌느 과자로 시작되는 기억의 회상이 오랜 모험의 시간을 마치고 다시 처음의 출발점으로 돌아오기까지 3.000페이지에 달하는 감동과 사색의 기록을 선사하며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오래 전 이 책의 초반부 ‘스완네 집쪽으로’만을 보고 방치해둔 지 수십 년이 흘렀다. 민음사에서 완역본이 너무 예쁜 하드커버 장정으로 발간되었기에 구입하고 있다. 언제쯤 전권을 읽게 될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마지막권이 완간될 때 즈음이면 책도 모두 읽게 되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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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6> 의 시작은 처음부터 강렬하게 할머니의 죽음으로부터 출발한다. 할머니가 자신이 죽어간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다가 결국은 죽음을 받아들이고 서서히 죽어가는 할머니의 모습은 비장(悲壯)함을 불러일으키며 독자들에게 죽음을 생각하게 만든다.할머니의 죽음은 '영'과 '육'의 분리를 가져온다. 반면, 알베르틴의 목소리는 화자의 '영'이 변화시키고, 이는 알베르틴과의 키스를 통해 '육'의 변화를 이끌어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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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첨나게 긴 시간 텀을 가지고 출간되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오랜만에 6권을 손에 쥐게 되니 5권을 다시 읽고 봐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게 됩니다. 현재 8권까지 출간된 것으로 아는데 나머지 책이 출간되기까지 또 얼마나 긴 시간을 기다려야 할지 아득하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기대는 즐겁기 그지 없습니다. 소설을 읽게되면서 당시 사회의 다양한 문화와 사상을 맛보게 되어 재미와 동시에 소양을 쌓게 되는 기분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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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영 교수의 번역으로 만나보는 민음사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제 6권, 어느덧 6권까지 읽어왔습니다. 작가들마저 흔히들 새해 목표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완독이다라고 밝히고, 또 실패하는 일화들을 가끔 들으며, 그렇다면 '내가 해보리다'하고 시작한 완독이라는 목표. 지금 생각해보면 이렇게 재미있는 것을 두고 왜 그들은 마치 거대한 벽인 것 마냥 표현했을까 싶습니다. 그것은 분명 '제대로' 제 1권도 끝을 보지 못한 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1권을 다 읽고 재미를 안 사람이 2권을 그냥 둘리가 없지요. 열 권이 되더라도 큰 고난은 아닙니다. 얼마나 꼼꼼하게 파헤쳐가며 읽었는지 아닌지 제게 따지려 들어도 소용없을 것입니다. 책속의 그 남자가 소년이며 청년이 되어가고 다시 성인이 되어가는 동안 나는 이미 그와 한마음 한뜻이 된 것을 느끼고 있으니까 말이죠. 이보다 더 높은 독서의 수준이 있겠습니까? PS: 민음사 버전의 이 시리즈. 종이책으로는 8권까지 나와 있습니다만 웬일인지 전자책은 6권까지만 제공되는군요. 김희영 교수님이 얼른 10권까지 완역해 주시길 바라며, 또한 전자책 버전으로도 머지않아 출시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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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6> : 게르망트 쪽
1편 스완네 집쪽으로 (1,2권), 2편 꽃핀 소녀들의 그늘에서(3,4권)에 이어 3편 게르망트 쪽(5,6권)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유년기를 보낸 콩브레, 첫사랑과 문학적 스승을 만난 발베크를 떠나 오랫동안 선망의 대상이었던 게르망트 저택 별채로 이사한 마르셀이 자신이 지닌 환상과 다른 현실을 깨닫게 된다.
청년에서 성인으로 옮겨가는 단계. 환상에서 현실로 한 발자국 내딛여야하는 단계가 왔다. 사교계로 입성한 그는 이제껏 꿈꿔왔던 귀족사회의 모습의 실체를 깨닫는다. 도덕, 인간성보다 자신의 이익과 지금 이 순간의 즐거움이 가장 중요한 귀족들의 모습을 보게된다. 병에 걸려 아픈 친척 스완에 대한 걱정보다 만찬의 성공이 더 중요한 공작부부의 모습을 통해 인간성이 소멸된 귀족사회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환상이 현실과 다르다는 것을 깨달은 이후, 사람들은 어떻게 변화할까? 마르셀은 과연 어떻게 변화했을까? 청년기, 성인기를 지나 노년기에 이른 마르셀의 모습은 그들의 모습과 다른 모습일까? 시간이 지나고 나이를 먹으면서 그의 모습은 아마도 그가 청년기에 느꼈던 귀족들의 실체의 모습과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잃어버리고 있었던 기억과 시간을 찾고자 한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러나 상상은 상상속에서 있을 때 가장 완벽하다.
11권이 완결이라고 하던데, 아직 출간되지는 않았지만, 5권이 남았다. 나머지 이야기는 또 어떤 시간과 기억을 찾을것인지 궁금하다. 책은 난해해서 진도가 더디게 나가지만, 그의 유려하고 섬세한 문장들을 읽는 즐거움이 있다. 긴 호흡의 글이라서 읽기가 쉽지는 않았지만, 완결까지 함께 하고싶다. |
| 1편 「스완네 집 쪽으로」, 2편 「꽃핀 소녀들의 그늘에서」에 이어 3편 「게르망트 쪽」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5, 6권으로 출간되었다. 이번 편에서는 유년기를 보낸 콩브레, 첫사랑과 문학적 스승을 만난 발베크를 떠나, 오랫동안 몽상과 선망의 대상이었던 게르망트 저택의 별채로 이사한 마르셀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아직까지 유년기의 이야기인 콩브레에서의 이야기를 읽고있는데 앞으로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즐거운 기대를 갖게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