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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해주는 작품
"가족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해주는 작품 " 내용보기
처음에 이 책에 대한 소개로 해외판 <엄마 찾아 삼만 리> 또는 또 다른 <올리버 트위스트>라는 정도의 말을 들었다. 하지만 이 책은 결코 소설이나 픽션으로 볼 수 없는 면이 있고 한 명의 엔리케의 이야기로 끝난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엔리케가 그 여정을 계속하고 있기 때문에 여느 문학작품과 사뭇 다르다. 그래서 읽을 때의 느낌이나 읽고 나서의 느낌도 그 여운이 달랐다.
"가족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해주는 작품 " 내용보기

처음에 이 책에 대한 소개로 해외판 <엄마 찾아 삼만 리> 또는 또 다른 <올리버 트위스트>라는 정도의 말을 들었다. 하지만 이 책은 결코 소설이나 픽션으로 볼 수 없는 면이 있고 한 명의 엔리케의 이야기로 끝난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엔리케가 그 여정을 계속하고 있기 때문에 여느 문학작품과 사뭇 다르다. 그래서 읽을 때의 느낌이나 읽고 나서의 느낌도 그 여운이 달랐다.

 

이 이야기는 미국의 한 기자가 남미에서 미국으로 오는 많은 불법이민자에 대한 이야기를 쓴 것이다. 왜 남미에서 미국까지 오는지, 그 과정은 어떤지, 어떤 일들을 겪는지 아주 세세하게 그리고 있다. 엔리케라는 한 온두라스 소년이 과테말라와 멕시코 전역을 기차와 버스, 도보로 거쳐 미국으로 들어오는 과정을 그대로 재현하면서 기자가 엔리케에게서 들은 내용, 같은 여행을 통해 만난 다른 불법이민자들을 직접 보고 또 들은 이야기를 모두 담고 있다. 하지만 그 여행이 그냥 우리가 알고 있는 여행과 얼마나 다른가. 또 한 번만 하고 마는 여행인가. 그 여행에서 만나는 수많은 장애와 눈물, 고통은 또 얼마나 큰 것인가. 이 여행은 둑음을 무릅쓴 여행이다. 불법으로 하는 여행이니만큼 쉬운 건 하나도 없다. 너무나 어렵고 고통스러운 여행인데, 성공할 때까지, 또는 장애자가 되거나 둑음에 이르기까지 그 여행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전쟁과 내란, 가난 그리고 해체된 가정으로 인한 불법이민자와 그 가족은 남미에서 점점 늘어만 가고 있는 추세이다. 그러다 보니 국가나 사회, 가정 모두 어느 것 하나 안정된 것이 없다. 더구나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인한 그 고통은 어른 세대만 겪는 것이 아니고 그대로 아이들에게 전이되어 교육이니 일자리니 미래를 꿈꿔볼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하루 세끼를 먹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고 오히려 쓰레기장을 뒤지는 것이 당연한 일이 되다 보면, 이들에게 선택은 둘 중 하나다. 그대로 그 상태를 견디며 생존하거나, 미국이라는 꿈의 나라로 불법이민을 가서 경제문제를 조금이라도 해결해보겠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엄마나 아빠가 아이들과 몇 년씩이나 헤어져 지내게 된다. 책을 읽는 내내 느끼는 것이지만, 어느 방법이 옳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저 선택하고 그 결과를 지켜보면서 안타까워하는 수밖에는 다른 방법이 보이질 않는다.    

 

많은 엄마나 아빠들이 미국으로 떠나면서 아이들에게 머니를 벌면 곧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하며 불법이민을 감행한다. 하지만 철저한 자본주의 사회인 미국에서 더구나 불법이민자의 입장에서 머니를 벌어야 얼마나 많이 벌겠는가. 그러다 보면 한 해, 두 해... 아이들은 희미해져가는 엄마 얼굴을 떠올리기도 힘들게 되고 애정이나 교육이 결핍된 가정이나 학교에서의 생활이 제대로 이루어질 리가 없지 않은가. 그래서 아이들이 직접 엄마를 찾아 그 먼 여정을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그 여정이란 것은... 국경에서 몰래 화물열차를 타고 불법이민자를 색출하는 경찰을 피하고 먹을 것을 구해가며 미국으로 들어가는 것인데...

 

멕시코를 관통하는 그 화물열차는... 강간피해자를 만들고 장애자를 만들고 살인을 저지르는 열차인 것이다. 그 가진 것 없고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하고 어린 아이들을 폭행하고 강간하고 가진 것 다 빼앗고 살인까지도 저지르는 마피아나 갱단들... 경찰들도 더 하면 더했지, 마피아와 다를 게 없다. 더구나 열차 지붕에서 하는 여행은 자칫 졸다가 떨어져 둑거나 나뭇가지에 치여 떨어지거나... 숨었다가, 기차가 다시 출발할 때 움직이는 열차에 매달려야 할 때, 팔, 다리가 떨어져 나가는 것은 예사인 여행 자체도 위험한 것이다. 물론 함께 여행하는 사람들끼리 우정을 쌓기도 하고 간혹 도움을 주는 마을 사람들을 만나기도 하고 그들을 어떻게든 도와주려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도처에 둑음이 도사리고 있는 여행이 바로 엔리케의 여행이다. 이주민을 돕는 사람들의 외침이다. “우리는 사람이요. 우리는 사람들을 사람답게 대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 여행을 왜 하는가. 그렇게 위험한 여행을 왜 하는가. 목숨까지도 내놓고 하는 그 여행을 왜 하는가. 몇 번이나 붙잡혀서 폭행을 당하고 되돌려지면서도 그 여행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어릴 적 끌어안아주던 엄마, 그 엄마를 만나기 위한 것이다. 나이키 신발도 멋진 책가방도 커다란 곰 인형도 이들을 위로해주지 못하고 이들의 눈물을 닦아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몇 년씩이나 보지 못한 엄마를 보러가기 위한 여행인 것이다. 하지만 천행으로 다시 만난다 해도 그 결말이 늘 행복한 것은 아니다. 한번 해체되었던 가정이 다시 합쳐진다고 그 간극이 엄마와 자식이라는 단순한 공식으로 모두 메워질 수 있는가. 엄마는 아이들을 위해 모든 걸 희생했다고 생각하는데, 자식은 나이키 신발을 원한 것이 아니고 원한 것은 돌아온다는 엄마였는데...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다른 사회, 흘러간 세월은 한번 해체된 가정의 예전 행복을 그대로 되돌려주지 않는다. 아이들은 외친다. “돈은 필요 없어요. 엄마만 있으면 돼요.”     

 

읽는 내내 가슴이 먹먹하고 숨이 막히고 머리까지 아플 지경이었다. 그 도가 얼마나 상상 이상이었던지... 인간이기를 포기한 짐승 같은 마피아들이 판치고 불법이민자를 색출하는 경찰은 미친 개였다. 더불어 우리나라에 와 있는 많은 외국인 근로자들의 처지가 자연스레 떠올랐다. 열악한 근무환경에서 박봉에 시달리면서도 근면하게 일해 고국에 있는 가족들을 도우려는 그들을 무시하고 욕하고 때리면서 일시키는 사람들, 제때에 월급도 주지 않고 불법이민자라는 약점을 이용해 협박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도 떠올랐다. IMF를 겪은 지 얼마나 됐다고 경제대국이라고 무지막지하게 낭비를 해대는 우리나라, 우리나라 사람들도 점점 더 짐승이 돼가는 건 아닌지... 생각해볼 일이다.

 

궂은 일 하면서 우리를 돕고 있는 그 외국인 근로자 한명 한명이 모두 엔리케 같은 아이를 고국에 두고 왔다는 것을 우리 모두 한번쯤 생각해보게 만드는 책이었다. 그 외국인들이 모두 어느 날 꿈을 이루고 고국으로 돌아가 그들의 아이들과 행복한 눈물을 흘리며 상봉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그러면 더 이상의 가정해체로 오는 불행은 없을 것이 아닌가. 진정한 가족의 의미는 가난과 고난도 모두 함께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사람 떠나는 것을 막는 방법요? 일자리죠. 돈 벌 수 있는 일자리요. 그게 다예요.”

 

급히 책을 만드느라 그랬는지, 인쇄의 문제였는지 띄어쓰기나 오타가 눈에 많이 띄어서 읽다가 가끔 막혔던 것이 좀 아쉬운 점이다. 좋은 책이고 계속 읽힐 책이니만큼 교정 잘 된 2쇄, 3쇄가 나오길 바란다.  

g******i 2007.02.15. 신고 공감 2 댓글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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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희망을 보았다 <엔리케의 여정>
"그래도 희망을 보았다 <엔리케의 여정> " 내용보기
책 표지에는 안개 끼듯 흐릿한 배경으로 한 소년이 기차 위에 앉아 있는 뒷모습이 보인다. 이 책은 저자가 자신의 목숨을 내걸고 이민자들의 실태를 알리기 위해 '이민자들의 죽음의 여정'에 동행하며 적은 기록이다. 작가는 기자로 수많은 어려움 속에서 기사를 쓰기도 했지만 이 책을 쓰면서 정말 죽을 고비도 넘기고 굉장히 위험했던 순간이 많았다고 이야기 하면서, 이민자의 시선
"그래도 희망을 보았다 <엔리케의 여정> " 내용보기
책 표지에는 안개 끼듯 흐릿한 배경으로 한 소년이 기차 위에 앉아 있는 뒷모습이 보인다.

이 책은 저자가 자신의 목숨을 내걸고 이민자들의 실태를 알리기 위해 '이민자들의 죽음의 여정'에 동행하며 적은 기록이다. 작가는 기자로 수많은 어려움 속에서 기사를 쓰기도 했지만 이 책을 쓰면서 정말 죽을 고비도 넘기고 굉장히 위험했던 순간이 많았다고 이야기 하면서, 이민자의 시선도 그렇다고 반대쪽도 아닌 최대한 객관적인 시선을 통해 쓰려고 노력했다고 덧붙인다.

그래서 엔리케의 여정에서는 중앙아메리카나 멕시코의 아이들이 그들의 부모를 찾아 고난과 위험, 죽을 고비를 무릅쓰고 미국행을 사실 그대로 보여준다.

한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도 같고, 엔리케의 여정이 너무도 놀랍고 충격적인 것들이 많아서, 현실이 아닌 작가가 꾸며쓴 픽션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때로는 아무 포장이나 미사여구 없이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보여줄 때....

사람들에게 더 크게 와닿고,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만들고, 더 가슴 막막하고 저 끝에서 저려오는 뭔가를 더 강하게 느낄 때가 있다.

 

  남편과 이혼한 싱글맘 라우데스는 가난한 생활과 아이들의 장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잘 키우기 위해 미국행을 결심한다.

7살난 딸 벨키와 5살난 아들 엔리케를 남겨두고 온두라스에서 미국으로 떠난다.

힘들게 미국에서 생활하면서 사기도 당하고 20여시간씩 몸을 혹사시켜가며 일을 해서 번 돈을 아이들에게 보내고 빨리 돈을 벌어서 돌아갈 생각을 한다. 미국에서 남자도 만나고 아이를 낳아 기르게 된다. 그러다 어느덧 온두리스를 떠나온지 12년이 다되어 간다.

  온두리스에서 벨키와 엔리케는 각각 외가와 친가에 맡겨진다. 엔리케는 처음에 아버지에게 맡겨졌으나 새장가를 가면서 친할머니에게 외삼촌네에서 다시 이모네로 여기저기 옮겨 다니게 된다. 그러면서 엄마에 대한 그리움과 보고싶은이 커진다. 점점 삐뚤어지고, 마약과 본드에도 손을 데는 문제아를 자라나게 된 엔리케는 여자친구 마리아를 사귀게 된다. 그러다 엄마가 있는 미국행을 결심하게 되는데 그 과정을 이 책에서는 여과없이 보여준다.

  피도 눈물도 없는 이민국 사람들, 이주민을 벌레취급하는 사람들, 강간당하고 강간하는 사람들, 돈을 강탈하거나 뇌물을 요구하는 부패한 경찰들, 가난하면서도 이주민들을 돕는 베라크루소 사람들, 자신들과 같은 처지의 사람들, 기차에서 떨어져 죽거나 총에 맞어 죽고, 다리가 절단되는 사람들 등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엔리케는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서 가는 도중에 7번이나 걸려서 소환되기도 한다. 그러나 엄마를 찾겠다는 일념으로 수많은 죽을 고비도 넘기면서도 버텨낸다. 그래서 결국 엄마를 만난다.  

 

  그렇게 어렵게 만난 엄마와 엔리케의 삶은 과연 해피엔딩일까?!

해마다 수많은 싱글맘들이나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는 사람들이 미국으로 오고, 엔리케처럼 많은 아이들이 "죽음의 기차"를 타고 여행 아니 그들 부모를 찾아나선다. 도중에 죽거나 다치거나 본국으로 송환되는 아이들을 제외하더라도 미국에 안전하게 도착한 얼마되지 않은 아이들이 다 행복하게 해피엔딩으로 잘 살고 있을까?!

현실은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그들을 버리고(?아이의 장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해 가며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한 부모들) 간 부모들을 원망하고, 마약과 술에 찌들거나 탈선을 길을 걷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또 이들의 신분이 안정되지 않기 때문에 노동의 댓가도 그만큼 받기가 어렵다고 한다.

엔리케의 여정을 통해 그 이면에 많은 문제점들이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가난한 나라, 일거리가 없는 나라에서 태어나 이혼의 증가로 인해 가정이 파괴되고 싱글맘들의 증가로 인해 살기는 더 힘들어지고, 그래서 돈을 벌기 위해 그들은 미국행을 선택한다. 그렇게 정상적인 가정에서 자라지 못한 그들의 아들딸들이 자라서 다시 미국행을 선택하는 빈곤의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다.

그들이 처한 현실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하는 것이다. 지금 미국은 수많은 이민자와 불법체류자들로 인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

불법체류자들을 색출해 본국으로 추방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 그들이 왜 갖은 위험과 죽음까지 무릅쓰고 미국행을 하는지 그들을 도울 다른 방법은 없는지 살펴야 한다.

이민자들을 돕거나 추방하는 것은 임시방편일 뿐이다. 근본적으로는 이민자들의 나라들이 경제적으로 살아갈 수 있게 원조를 해준다거나 외채를 탕감해주는 등 근본적인 대안책을 마련해야 된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읽으면서 얼마 전에 "여수 외국인 보호소" 화재로 인해 9명이 희생되고 많은 사람이 부상을 당했다는 기사를 접한 게 떠올랐다.

우리나라도 "코리안 드림"의 꿈을 안고 한국을 찾는 동남아나 중국에서 오는 수많은 불법체류외국인들이 있다. 브로커들에게 몇백에서 몇천씩을 주고 밀입국한 그들이 악덕업주를 만나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하거나, 산업재해를 당해 장애인이 되고, 운이 좋아 돈을 벌어 고국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러지 못하고 결국엔 잡혀서 본국으로 강제 추방되는 것이 현실이다. 여수 외국인 보호소 화재로 알려진 사실에는 그들이 인간 이하의 삶을 사고 있었다는 것을 증언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 역시 아메리칸 드림이나 기타 다른나라에 돈을 벌기 위해 불법체류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들 역시 힘들고 어려운 삶을 살았다.

엔리케의 여정처럼 힘든 여정은 아닐지라도 코리안 드림의 꿈을 안고 오는 외국인들을 관리하는 것을 보면 엔리케 이야기가 결코 남의 일만은 아닌 것이다.

 

그래도 엔리케의 여정에서 희망을 보았다.

엔리케가 엄마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수많은 어려움과 죽을 고비가 많았지만, 엄마를 만난다는 희망과 이주자들을 돕는 수많은 손길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들도 하루에 2~3달러를 벌기 어려운 상황인데도, "죽음의 기차" 지나가면 기차 위에 있는 이주민들을 위해 먹을 것과 마실것들을 봉지에 싸서 던져주고 그들의 행운을 빌어주는 사람들, 올가처럼 다치거나 불구가 된 이주민들을 돕는 사람들, 이주민들을 돕는 일에 열심인 레오 신부 등 사회나 경제적 약자임에도 불구하고 이주민들을 돕는 그런 사람들이 있기에 세상은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m*****a 2007.02.24.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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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리케가 아닌 우리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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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정말 대단하다. 그렇게 위험한 길을 어떻게 기자라는 사명감이라는 정체모를 의무감 하나만을 가지고 갈 수 있는 것일까. 사진작가든, 글을 쓰는 기자든 정말 대단하다. 그리고 책 속의 주인공들인 불법이주를 위해 기차 지붕에 매달려가는 그 아이들도...   이 글의 주인공인 엔리케는 미국으로 가기 위해 기차지붕에 매달려가는 수많은 아이들 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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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정말 대단하다. 그렇게 위험한 길을 어떻게 기자라는 사명감이라는 정체모를 의무감 하나만을 가지고 갈 수 있는 것일까. 사진작가든, 글을 쓰는 기자든 정말 대단하다. 그리고 책 속의 주인공들인 불법이주를 위해 기차 지붕에 매달려가는 그 아이들도...

 

이 글의 주인공인 엔리케는 미국으로 가기 위해 기차지붕에 매달려가는 수많은 아이들 중 하나이다. 그리고 그들의 가족 또한 아이들의 뒤에 남겨진, 때로는 먼저 미국으로 넘어간, 미국으로 가다 숨진 가족들 중 하나일 것이다. 수십만명의 불법이주민들은 여전히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면서 미국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가는 도중 수많은 위험에 직면하고 겨우 미국으로 간다고 해도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백인들의 평균 임금과는 비교도 되지 않은 싼 임금의 가혹한 노동 뿐이다. 게다가 고국에 남겨진 가족들과의 기약없는 이별은 가족해체라는 새로운 문제를 양산하게 된다. 물론 이러한 불법이주민들의 문제는 항상 TV에서 신문에서 다루어지고 있는 소재이다. 언제나 심각성을 이야기하고 정부는 해결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외치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 순간 나는 어렴풋이 알고 있던 불법이주민들의 심각한 문제의 표면이 아닌 보다 깊은 문제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엔리케는 단지 엄마를 만나기 위해서 미국으로 가는 위험을 감수했다. 기차에 매달리고 잔혹한 갱들을 피하고 단속반들을 피하기 위해 항상 뛰어다닌다. 수십번의 되돌이표를 찍은 후에야 도착한 미국에서 엄마는 낯선 존재이다. 처음으로 받는 엄마의 잔소리와 간섭, 그리고 나를 버리고 갔었다는 서운함과 증오감은 점점 엄마와 자식 사이의 어긋남을 가지고 온다. 그리고 또다른 남겨진 가족을 위해 엔리케는 일을 해야한다. 이처럼 불법이주민의 문제는 계속 반복되고 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어떻게 이렇게 사람이 잔인해질 수가 있지, 왜 이들은 이렇게밖에 살 수 없는 것인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가난으로 물들어 있는 중남미의 아이들은 때론 불쌍하게 때론 잔인하게 그들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과연 무엇이 그들의 삶을 극단으로 몰고 갔는지 문제의 본질을 분석하여 해결방법을 마련해야 할 필요가 절실하다. 그리고 이들의 참혹한 현실은 앞으로 우리에게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문제라고 본다. 현재도 탈북자들의 문제는 심각하다. 계속해서 북한을 탈출하는 주민들은 늘어가고 있고, 그들의 대부분은 한국으로 들어오기 위한 위험한 여정을 감수한다.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 역시 엔리케가 겪었던 것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앞으로 점점 탈북자들은 늘어갈 것이고, 동남아시아에서 들어오는 불법노동자들도 점점 그 수가 증가할 것이다. 과연 우리 정부가 얼마만큼의 대책을 마련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단순히 이들을 받아들이고 쫓아내고의 문제가 아닌 이러한 불법이주의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아마도 이 책은 정부관계자들에게 한 부씩 보내줘야 할 책인 것 같다.

YES마니아 : 골드 c******4 2007.03.09.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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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리케에게는 밥보다는 엄마의 사랑이 더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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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만나기 위한 목숨을 건 여행 끝에 엔리케는 드디어 엄마를 만난다. 11년 만에 만난 모자간은 얼마나 반가웠을까! 하지만 그들 사이에는 많은 틈이 존재했다. 아이들 입장에서는 엄마가 자신들을 버렸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이에 대해 엄마가 사과하길 원한다. 애들에게는 굶더라도 엄마와 함께 있는 것을 원한다. 하지만 엄마의 입장에서 보면 아이들을 버린 것에 대한 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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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만나기 위한 목숨을 건 여행 끝에 엔리케는 드디어 엄마를 만난다. 11년 만에 만난 모자간은 얼마나 반가웠을까! 하지만 그들 사이에는 많은 틈이 존재했다.


아이들 입장에서는 엄마가 자신들을 버렸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이에 대해 엄마가 사과하길 원한다. 애들에게는 굶더라도 엄마와 함께 있는 것을 원한다. 하지만 엄마의 입장에서 보면 아이들을 버린 것에 대한 양심의 가책은 있지만 힘들게 일해서 가족에게 송금하는 등 자신의 희생에 대해 존중받기를 원하고 있다. 이렇게 엄마와 아이들은 동상이몽을 꾸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엔리케와 엄마 사이에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또 서로를 미워하게 하는 이유가 존재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위기 상황을 잘 극복하는 엔리케의 모습이 독자들에게는 안도의 한 숨을 쉬게 해준다.


보통 엄마들은 자신의 자식들을 잘 키우기 위해서는 우선 돈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돈이 있어야 의식주 해결과 자녀에 대한 교육을 시킬 수 있고, 그래야만 자녀들에게 미래를 만들어줄 수 있다고 믿기에 목숨을 걸고 미국으로 가는 것이다. 하지만 아이의 입장에서는 돈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엄마의 스킨십과 미소 그리고 사랑이다. 해리 하를로의 실험결과에서 보듯이 엄마 잃은 새끼 원숭이는 우유를 주는 철로 만든 인조 엄마보다는 먹을 것을 주지 않더라도 부드럽고 따듯한 헝겊으로 감싼 인조 엄마를 좋아했다. 즉 아기에게는 먹는 것 보다 엄마의 따스한 스킨십이 더욱 필요로 한 것이다.


이 책의 주인공 엔리케는 122일에 걸쳐 온두라스의 데구시갈파에서  멕시코-미국 국경까지 8번의 도전 끝에 성공한다. 그 거리는 2,574 킬로미터에 달하며 그는 이 과정에서 무수히 죽을 고비를 넘기고 온 몸은 상처투성이로 변한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목숨을 걸고 미국으로 가려는 불법 이주민들의 모습이 애처로워 눈시울이 붉어졌고, 가난하고 또 불쌍한 그들의 돈과 몸을 빼앗는 짐승 같은 강도, 갱들, 경찰관을 보고는 분노했으며, 불법 이주민들을 돕는 베라크루스 사람들의 헌신적인 모습에 코끝이 찡해왔다. 2000년 세계은행의 조사보고에 의하면 멕시코의 1억 명의 인구 중 42.5퍼센트가 하루에 2달러도 안 되는 생활비로 살아가며, 시골 마을에서는 다섯 살 난 아이의 30 퍼센트가 잘 먹지를 못해 성장이 느리다고 한다. 기찻길을 따라 허름한 집에서 사는 이 사람들이 멕시코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다. 바로 이들이 베라크루스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 중 20 퍼센트는 미국으로 떠난 자식을 두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들이 불법 이주자의 심정을 이해하고 있으며, 그들을 적극적으로 돕고 있는 것이다. 또 열차에서 떨어져 다리나 팔이 잘려나간 사람들을 돕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그들 모두 가난한 사람들이다.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것을 지키기에 바쁘다보니, 없는 사람을 돕는 것은 가난한 사람들인 것 같다. 동병상련(同病相憐)!! 그래서 세상은 아직 살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리라.


저자인 소냐 나자리오는 이 책을 쓰는 데 5년이 걸렸다고 한다. 이 기간 중 6개월간은 이주민들과 같이 위험한 여정에 올랐으며 각지에서 취재를 했다. 저자는 엔리케가 지나온 여정을 그대로 재연했다. 즉 온두라스에서 버스를 타고 출발해서, 멕시코에서는 화물열차와 히치하이크로 여행을 했다. 아니 여행이 아니라 고행이었을 것이다. 이 목숨을 건 긴 여정은 그녀에게 퓰리처상을 안겨 주었던 것이다.


이렇게 목숨을 걸고 미국으로 가려는 불법 이주자를 없애기 위한 유일한 효과적인 전략은 ‘이민자들의 고국 경제를 후원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야만 그들 나라에서 의식주와 자녀 교육에 필요한 돈을 벌 수 있는 일자리를 만들 수 있으니 말이다.


우리나라에 와서 3D 업종에 근무하는 외국인 불법 노동자들을 생각해본다. 그들도 단지 돈 때문에 사랑하는 가족들과 떨어져 말도 잘 안 통할 뿐만 아니라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아가면서 고국으로 보낼 돈을 벌기위해 살아가고 있다. 그들에게도 따스한 시선을 보내주는 성숙함이 필요한 시기이다.

 

 


 


위 사진 : 저자 소냐 나자리오

아래 사진 : 화물 열차 위에서 이주민들과 함께 여정 중인 저자

사진출처 : http://www.enriquesjourney.com

e****n 2007.02.16. 신고 공감 1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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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기차를 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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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국의 유독성분의 산업폐기물을 아프리카에 ‘수출’하는 선진국, 쓰레기더미 위에서 생존을 위협받으며 생존해나가는 세계 각지의 구석진 곳의 아이들, 마약에 취한 채 내전에 끌려가 살인기계와 총알받이가 되는 아프리카 아이들, 갓 10대가 되어서 결혼해 노예처럼 살다 이리저리 팔려 다니는 인생편력을 가진 소녀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며 카카오 농장에서, 카펫을 짜는 공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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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국의 유독성분의 산업폐기물을 아프리카에 ‘수출’하는 선진국, 쓰레기더미 위에서 생존을 위협받으며 생존해나가는 세계 각지의 구석진 곳의 아이들, 마약에 취한 채 내전에 끌려가 살인기계와 총알받이가 되는 아프리카 아이들, 갓 10대가 되어서 결혼해 노예처럼 살다 이리저리 팔려 다니는 인생편력을 가진 소녀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며 카카오 농장에서, 카펫을 짜는 공장에서, 양귀비꽃밭에서 쉴 새 없이 손을 놀려야하는 짙은 피부색의 작디작은 아이들... 제 3세계에 빛과 어둠을 동시에 드리우는 세력권에서 우리는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

 

엔리케의 엄마 라우데스는 아무리 바쁘게 일해도 일곱 살 벨키와 다섯 살 엔리케, 두 남매를 먹여 살릴 길이 없는 온두라스에 사는 싱글맘이다. 극한에 달하고, 출구가 없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선택한 것은, 미국으로 밀입국하여 아이들에게 돈을 송금하는 것이다. 엄마가 없어 천덕꾸러기가 되어 친척집을 전전하며, 엄마가 보내주는 돈으로 학교를 다니고, 생계를 이어갈 수는 있지만, 크리스마스가 되면 돌아온다고 달래고 달래던 엄마는 십 수 년이 흘러도 만나볼 수가 없다. 풍족한 것도 아니지만 엄마가 상실되었기에 누릴 수 있던 모든 것들은 벨키와 엔리케 같은 아이들에게 결코 감사의 대상이 아닌, 한없는 증오와 그리움에 다다른 애증의 대상일 뿐이다.

 

갓 10대를 넘긴 아이건, 장성한 나이가 되어 희미한 엄마의 잔상만 남은 아이건, 미국으로 떠나버린 엄마를 가진 중남미 국가의 엔리케들은 거리와 사춘기와 마약을 거쳐 죽음의 기차에 오른다. 달리는 기차에서 지붕과 화물칸을 넘나들 수 있어야하며, 갱들과 갱보다 더 무법자인 현지경찰, 이민국직원들에게 끊임없이 생명을 위협 당해야하고, 구타, 강간, 굶주림, 강도, 공포, 고독, 죽음을 겪어내며 멕시코의 리오그란데 강까지 이르기 위해 죽음으로만 끝나지 않으면 거듭될 여정을 떠난다. 오직 엄마를 만나기 위해.

 

소냐 나자리오는 엔리케가 122일 동안 8차례의 시도 끝에 다다른, 엄마에의 사투를 5년의 추적과 고증 끝에 세상에 내 놓았다. 엄마를 만나기 전에는 죽어도 죽을 수 없었던 아이, 엔리케, 엔리케들은 죽음의 기차에서 살아남았고, 인간보다 아귀를 닮은 법망을 뒤집어 쓴 무법자들의 총검을 피해 살아남았고, 절망과 희망의 얼굴을 동시에 가진 마의 리오그란데를 살아서 건넜으니, 엄마를 만나 해피엔딩의 후일담을 들려주면 될 일이다. 그러나 죽음을 이겨내고 신세계에 건너온 아이들에게 남은 것은 타인과 다를 바 없는 엄마와 새 가족들 사이에서 철저하게 아웃사이더가 된 자신, 또 다시 거리와 마약과 알콜로 내몰리는 현실의 문제이다.

 

엔리케가 라우데스를 포용하지 못한 채, 현실과 맞닥뜨려 결국은 엄마와 똑같은 선택을 하게 되는 장면에 이르면 <엔리케의 여정>이 독자들에게 던지는 기본적인 메시지로 회귀한다. 여전히 중남미의 가진 것이라고는 모성뿐인 절망에 빠진 엄마들이 선택해야하는 밀입국, 여전히 죽음의 기차를 타고 ‘엄마’를 위해 인간의 존엄성의 모든 부분에 치명적인 상흔을 얻는 아이들, 여전히 미국의 이민정책의 양면성으로 괴로워하는 불법이주민들과 그 자녀 사이의 격한 단절감. 대체 어디서부터 메스를 대야 죽음의 기차의 핏빛 질주를 막을 수 있을까?

 

한 권의 책으로 끊임없이 밀입국을 감행해야 하는 싱글맘과 노동자들을 포용할 길 없는 중남미 산업 구조의 취약성과 피폐함을 회복시킬 수 없고, 미국이 불법이민자들로부터 얻는 산업적인 성과와 희생을 바로잡을 수도 없으며, 죽음의 기차에 매달려 희망처럼 포장된 구원이라고 믿는 해후에 배신당하고 마는 엔리케들을 감싸안아줄 수도 없다. 그렇지만 아이들을 떠나 물질로 행복을 보상하려는 엄마들의 선택을 되돌릴 수 있는 근본적인 해결책을, 고민하고 실행하려는 움직임들을 멈추지 않을 계기가 되어 줄 수는 있다고 믿고 싶다.

a******i 2007.02.21. 신고 공감 1 댓글 2
리뷰 총점 종이책
저널리즘은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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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이 책에 실린 사진을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본 적이 있다. 플리처상 보도사진 부분에서 수상했다는 짧은 제목과 함께. 사진엔 문외한이라 어떤 필름을 사용했는지 모르겠지만, 사진은 강렬했고 충격적이었다. 그런데 이 책을 처음 보면, 겉표지의 사진은 제법 서정적이고 낭만적여 보이기도 하다. 물론 지붕위에 앉았으니 불안은 하겠지. 하지만 소년의 돌아앉은 모습에 묘한 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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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이 책에 실린 사진을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본 적이 있다. 플리처상 보도사진 부분에서 수상했다는 짧은 제목과 함께. 사진엔 문외한이라 어떤 필름을 사용했는지 모르겠지만, 사진은 강렬했고 충격적이었다. 그런데 이 책을 처음 보면, 겉표지의 사진은 제법 서정적이고 낭만적여 보이기도 하다. 물론 지붕위에 앉았으니 불안은 하겠지. 하지만 소년의 돌아앉은 모습에 묘한 황량한 여유로움이 베어있는 듯하다. 과연 이럴 수 있을까? 그래도 소년의 마음은 보는 것과는 사뭇 다를 것이다. 몰래 무임승차 했으니 불안할 것이고, 어서 이 기차가 어머니가 있는 미국으로 데려다 주길 간절히 바라고 있겠지. 분명 무임승차가 나쁜 것이긴 하지만 여행 하면서 무임승차와 서리의 묘미는 여행의 짜릿한 기쁨을 배가시켜 주기도 하지않던가.  더구나 제목 끝말을 '여정'으로 설정했으니 대뜸 '엄마 찾아 삼만리'를 연상하게도 만든다. 또한 '엔리케'란 리틴스러운 이미지가 주는 느낌도 남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하지만...나머지 사진이나 책의 내용은 그렇지가 않다. 오히려 비참하다.  살아 보겠다고 쓰레기더미를 뒤지는 아이들과 그 위를 나르는 검은 독수리의 이미지란 스산하다 못해 음산하기까지 하다. 또한 기차의 지붕위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죽을 힘을 다해 붙들고 있는 것을 보면, 사람의 생에 대한 사투는 참으로 모질다는 것을 실감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하지만 운이 없어 거기서 떨어지기라도 하면 사지가 절단 나거나 죽기도 한단다.  그런데 이들은 왜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 어린 나이에 그런 무모한 도전을 시도하는 것일까? 그것은 남부럽지 않게 자식을 키워 보고자 불법이민자로 미국땅에 발을 디딘 부모를 너무나 그리워한 나머지 그러한 도전을 서슴치 않게 만든다는 것이다. '어머니가 그리워서 죽느니 차라리 어머니를 찾으러 가는 길에 죽겠다'는 필사의 각오인 것이다. 그러고 보면 모정을 그리워 하는 마음이란 죽음 조차도 갈라놓지 못하는 것이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런데..나는 고백 하건데, 그런류의 보도 사진이나 뉴스 보도물 보기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보면 괴롭다.내가 살고 있는 지구 어느 한쪽에서 그런 일이 끊이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안타깝다. 그런데 그것 이상으로 뭘 해 줄 수가 있단 말인가? 그렇다고 나는 저런 나라에서 태어나지 않았으니 얼마나 다행이냐란 말로 본 느낌을 대변한다는 것도 우습지 않은가? 아무튼 그런 보도물을 접한다는 건 여간 곤혹스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좀 더 나를 들여다 보면, '이 생각이 과연 전부 다인가?'가에 진실할 수 없는 나 자신을 발견해 버리고 만다. 눈이 보배라고 사람은 좀 더 나은 것, 화려한 것,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스러운 것에 눈을 두기를 좋아한다. 나 역시도 그것을 부인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매스컴은 연일 그것을 쫒기에 바쁘다. 사람의 오감을 만족시켜줘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에 사람들의 눈과 귀는 점점 더 길들여져 우리 바깥은 세계에 대해선 관심을 두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어느 분야나 그렇듯 속물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 가운데도 조그만 불씨하니 지펴내는 사람들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세상은 살아낼 힘을 얻는지도 모르겠다. 세상 모든 것이 썩있다면 저널리즘이라고 예외겠는가? 그래도 소냐 나자리오 같은 저널리스트가 있으니, 저널리즘은 살아있다!고 외칠 수도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 참혹한 현실을 펜대에 풀어내기 위해 그녀는 무려 5년이란 세월을 준비했고, 엔리케와의 동행을 서슴치 않았다. 그녀 역시도 가정이 있었고, 동행취재하는 동안 어떤 위험한 일을 당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도 무엇이 그녀로 하여금 이 일을 감행하도록만들었는지 모르겠다. 단순한 기자 정신이라고 하면 설명이 가능할까? 아니다. 인간에 대한 지극한 애정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런고로 휴머니즘은 살아있다!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데...이 책을 읽고 있으려니 남의 이야기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본의 아니게 어떤 개기로 작년부터 우리나라 탈북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가 있었다. 그래서 그 전에 막연하게 짐작만 하고 있는 것에서 조금은 한발 다가선 느낌이고, 알고 있기에 만나는 사람마다 내가 들은 탈북자들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준다. 알고보면 이 책에 펼쳐진 현실이나 탈북자들의 현실이 오버랩되는 부분이 많아 보였다. 탈북자들 역시 북한에 가족 내지는 자녀들을 두고 탈북을 한다. 그리고 중국이나 몽골, 필리핀 등지로 흩어 진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여자들은 매춘 내지는 강간을 당하기도 하고, 어쨌든 가까스로 그렇게도 원하던 한국에 발을 들여놓지만 그땐 이미 몸은 만신창이가 돼 수족 놀리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더구나 북한에 두고 온 자녀를 데려오기 위해 적지않은 돈을 벌어 알선책에게 주지만, 잘못 아이들을 데리고 와 졸지에 그 아이는 고아  신세가 되기도 한단다. 북한에 남겨진 아이들도 엔리케를 비롯한 이 책에 소개된 아이들과 같을 거라는 건 쉽게 짐작이 간다. OECD에도 가입한지 오래고, 유엔사무총장을 배출한 이 나라 대한민국 안에서도 엄연히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탈북자 1만명을 돌파 했다고 한다.

가끔 나는...탈북자, 그들에게 묻고 싶었다. 당신들은 행복하냐고? 가족을 두고 이렇게 힘들게 남한 사회에 정착하게 됐는데, 남한은 과연 살만하던가요? 사람들이 잘해 주던가요? 그런데 얼마 전에 안 사실이지만,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다.  역시 남한 사회에 정착하는 건 어려움이 많다고 한다. 체제도 다를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자기네들에 대한 인식이 그다지 좋지 않다고 말한단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나라 사람들이 같은 민족끼린데도 박한 구석이 있지 않은가? 또한 경제적으로도 너무 안 좋으니 나 살기도 버거운 판에 남 생각을 어떻게 하겠는가?

읽으면서...행복도에서 1순위라고 하던 방글라데시를 생각했다. 없이 살기로야 이 책의 배경이 되고 있는 온두라스나 그 나라나 오십보 백보 아닌가? 그런데도 방글라데시 사람들은 행복하다고 한다. 아마 모르긴 해도 그 나라는 아직 상업주의의 물결을 덜 타고 있고, 삶의 가치가 돈에 있지 않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물론 그 나라는 국제 경쟁력은 여타의 국가 보다 떨어질지 모르나 가난을 부끄럽지 않게 여길테니 그래서는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런데 우린 어떠한가? 물질적인 부의 가치가 개인으로 하여금 꼭 행복을 가져다 준다는 확신도 없으면서 우린 너무 쉽게 그것을 믿고 있다. 물론 어느 정도의 돈은 나와 내 가족의 안위를 보장해 줄 수 있고, 내 자녀를 좀 더 좋은 환경에서 교육시킬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을 위해 치루어야 하는 희생은 자신에게나 가족에게나 너무 가혹하다. 그리고 빈부의 격차가 심사면 심할수록 이것은 더욱 자명해진다.

가족은...어떠한 경우에도 떨어지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적어도 그 사람이 독립된 인격과 경제적 자립을 얻을 수 있을 때까지는 말이다. 이것은 가난한 가정이나 부유한 가정이나 똑같이 적용되는 말이다. 자식을 좀 더 나은 환경에서 교육시켜 보겠다고 교육 엑소더스 대열에 밀어 넣은 가족들을 보라. 그중 성공한 케이스도 없진 않지만, 가족해체의 고통을 겪고 있지 않은가? 또한 엔리케를 보라. 엄마와 떨어지고 보니, 버림 받았다는 생각. 모정에 대한 그리움. 탈선. 분노 등 말할 수 없는 고통 속에 살아 간다. 그러니 없이 살아도, 지금 당장은 좋은 환경에서 공부시키지 못한다 해도 가족만큼은 정말로 소중하다는 것을 깨우칠 필요가 있다. 엔리케의 고통은 엔리케 혼자만의 고통이 아니다. 엔리케는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고 당장 북한에도 존재한다. 또한 아직도 제 3세계 어린 아이들이 엔리케와 똑같은 사연과 경로로 기차 지붕 위에 자신의 생명을 내던지고 있으며, 제2, 제3의 엔리케는 앞으로도 계속 나올 것이다. 그럴 때 국가는 뭘 하고 있단 말인가? 읽으면서 화가 났다.

국가가...개인의 가난을 구제해 줄 수는 없다고 한다. 하지만 적어도 가족이 떨어져서 사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제도적인 보인책은 마련해 주어야 하지 않은가? 언제까지 밀입국자가 가장 많은 나라 내지는 교육 엑소더스가 가장 많이 이루어지는 나라라는 오명을 쓰고 있을 것인가? 국민의 바람은 지극히 소박하고 당연한 것인데 그것을 들어 줄 수 없다면 국가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 국가는 가정과 개인의 고통을 언제까지 침묵하려 하는지 모르겠다. 거의 속수무책이 아닌가? 더구나 천신만고의 고생 끝에 엔리케는 어머니와 상봉을 하지만 많은 정서적인 혼란과 고통을 겪게 된다. 그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라고 보여진다. 그런데 이들을 치유하고 상담해 줄만한 마땅한 사회 시설이 언급되지 않은 것으로 봐 그쪽으로 부터의 도움을 전혀 받지 못했던 것 같다. 하기사 밀입국자니 어디가서 도움을 받을 수 있겠는가? 병이 나도 의료보험 해택도 받지 못할텐데...미국이 무슨 봉도 아니고.  

이 책은...책이 가지는 문제점은 다소 있어 보인다. 어느 독자의 지적대로 오자나 탈자도 많지만, 동어반복적인 내용이 많아 전달에 있어서 다소는 그 긴장감이 떨어져 보였고, 무슨 문학도 아닌데 여러 사람의 얘기를 다루다 보니 다소는 산만한 느낌이 들었다. 그냥 기자의 싯점에서 다큐멘티즘 내지는 저널리즘만을 부각시켰더라면 좋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남는다. 또한 이 책이 전 세계에 출판되고, 사진이 전파된 이후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도 언급해 주었으면 좋을텐데 그런 것을 찾아 볼 수 없는 점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래도 이 책을 읽는 가치는 충분히 있어 보인다. 나는 제발 우리의 아이들이 인권 교육을 재대로 받으며 살았으면 좋겠고, 거기에 이 책이 나름 공헌할거라고 보기 때문이다.      

 

 

m****9 2007.02.19.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최상의 선택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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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양심에 경종을 울린 펜과 사진의 힘' 뒤표지에 나온 광고중 한 문언이다. 언젠가부터 이런 논픽션에 관심이 가기 시작해서 요즘 꽤 많은 실화들을 접하고 있는데 언제나 실화는 감동적이면서 가슴아프다. 이 책은 죽음을 무릎쓰고 엄마를 찾아 5만 리의 위험한 길을 떠난 온두라스의 한 소년의 이야기다. 그 소년이 지나온 길을 따라 가며 저자가 보고 겪고 들은 이야기를 적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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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양심에 경종을 울린 펜과 사진의 힘' 뒤표지에 나온 광고중 한 문언이다. 언젠가부터 이런 논픽션에 관심이 가기 시작해서 요즘 꽤 많은 실화들을 접하고 있는데 언제나 실화는 감동적이면서 가슴아프다. 이 책은 죽음을 무릎쓰고 엄마를 찾아 5만 리의 위험한 길을 떠난 온두라스의 한 소년의 이야기다. 그 소년이 지나온 길을 따라 가며 저자가 보고 겪고 들은 이야기를 적었다. 그 이야기 속엔 불법 체류를 할 수 밖에 없는 사연과 중앙아메리카에서 미국까지 그 위험한 길을 갈 수밖에 없는 이주민들의 고통이 담겨 있다. 읽는동안 내 나라에서, 내 가족들과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란 걸 모른 채 살고 있는 나는,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이 감히 '천국'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몇 해 전 태국에 있는 친구의 언니집에 간 적이 있었다. 그곳에도 불법으로 태국에 건너와 일을 찾는 미얀마나 캄보디아인들이 많았다. 우리나라에 비하면 엄청나게 싼 임금탓에 수퍼마켓에서 계산하는 직원외에 물건을 비닐봉투에 담아주는 사람이 한 명도 아니고 둘 씩이나 있는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었다. 그뿐아니라 웬만한 한국 가정엔 가정부를 두고 있었는데 대부분의 가정부가 미얀마나 태국 주변 국가에서 돈 벌러 온 불법체류자였다. 그들이 받는 월급은 우리 돈으로 기껏해야 15만원. 그걸로 고국에 있는 동생 학교보내고 살림에 보태면 자신에게 돌아오는 돈은 겨우 만 원 남짓이다. 물론 이건 태국의 예를 들어서 한 이야기지만 자국보다 더 나은 나라에 가서 돈을 벌어 오겠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어느나라에나 마찬가지로 다 있는 모양이다. 우리가 예전에 미국과 일본에 불법으로 건너간 것도 그렇고, 요즘 중국 동포들과 동남아 사람들이 그들 나라보다 좀더 낫다고 생각하고 그 명목으로 한국행을 택해 건너오는 것처럼 말이다. 어쩌면 미래의 어느날에는 나라라는 개념이 사라지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그리고 세계 어느나라마다 그런 현상이 있었지만 난 이 책을 들춰보기 전까지는 그 현실에 대해  너무나 몰랐었던 것 같다. 오래전부터 멕시코인들이 미국으로 가기위해 위험을 무릅쓴다는 이야길 들었으나 그런 것은 그저 돈을 벌겠다는 어른들 뿐이라고 생각했다. 엔리케처럼 엄마를그리워하다가 엄마를 만나야겠다는 일념으로 그 위험 속으로 들어가는 아이들이 있다는 것은 이 여정을 따라가지 않았다면 평생을 몰랐을 뻔했다.

 

중앙아메리카, 브라질과 멕시코 사이에 끼어 있는 가난한 나라들 온두라스,콰테말라등 라틴계 아메리카인들의 처절한 삶은 그 모든 것이 정치적 부패와 가난함에 기인하다고 본다. 더구나 어린나이에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여자들의 삶은 특히 더 그렇다. 제대로 배우지 못해 아는 것이 없고 그런 상황에서 돈을 벌어다 주는 남편이 집을 나가거나 이혼을 당하면, 혼자 아이를 맡은 그들은 먹고 살길이 막막해진다. 그래서 그들이 택하는 가장 손쉬운 돈벌이라는 게 미국으로 건너가 불법체류를 하며 돈을 버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남겨진 아이들은 졸지에 엄마를 잃어버린 고아나 다름없는 아이가 되는 거다. 차라리 고아였다면 포기를 할텐데 고아가 아닌 고아일 수 밖에 없는 그 아이들의 삶이란 짐작하지 않아도 뻔하다.

 

엔리케 역시 이혼한 엄마가 엔리케를 온두라스에 두고 미국으로 돈을 벌러갔다. 엄마 라우데스는 자기가 없어도 가족들이 엔리케와 누나를 잘 보살펴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떠나는 엄마들 모두 생각하듯이 딱 2~3년만 돈을 벌어 온두라스로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실은 라우데스의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2~3년이면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했던 고국하고는 점점 멀어지기만 했다. 삶이라는 게 늘 그렇듯이 무슨 일이 어떻게 벌어질지 예측할 수 없음으로 그만큼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면 또다른 문제가 발생하였으므로 가족과의 약속은 점점 그 신빙성을 잃어갈 뿐이었다. 또 온두라스의 고향에선 그 나름대로 떠나온 집 근처에  엔리케의 아버지가 살고 있고, 외할머니와 이모들이 살고 있었지만 엄마만큼 엔리케를 돌보지는 못했고 엔리케는 엔리케대로 자신의 모든 불행을 엄마 없는 탓으로만 돌려버렸다. 결국 엄마가 돈 벌러 가고 없는 아이들이 최후에 선택하듯이 엔리케마저도 미국으로 엄마를  찾으러 갈 결심을 한다. 헤어진지 11년이 지난 후에 말이다. 

 

그 여정이 우리가 생각하듯이 돈을 주고 브로커를 사서 뚝딱하고 미국으로 가는 것이라면 무슨 걱정이겠냐마는 온두라스에서 미국을, 그것도 돈도 없는 가난한 아이에겐 하늘에 별따기 만큼이나 힘들고 어려운 일이었다. 그리고 위험한 일이었다. 뒤에 그들이 말하는 미국에 대한 생각은 '자기들의 고국보다 훨씬 덜 계급 지향적이고, 초라한 옷을 입어도 업신여기지 않으며 걱정없이 금목걸이를 하고 다닐 수 있다는 나라'라고 생각하는 만큼 중앙아메리카의 치안은 그야말로 무방비상태다. 그러니 그런 곳을 통과해서 미국으로 가야만 하는 여정은 목숨을 담보로 가는 여행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화물열차를 그것도 지붕에 올라타야하는 위험한 일은 고사하고 가는 곳곳의 도시에서 부닥치는 이민국 직원과 부패한 경찰들, 갱단으로부터 몸을 보호하는 일은 그 어떤 일보다도 중요한 일이었다. 강도와 강간, 폭행뿐 아니라 살인까지도 스스럼없이 저지르는 그들에게 엔리케와 같은 이주민들은 짐승보다도 못한 존재였다. 아무리 이주민들을 보호해주는 주민들과 단체가 있다하더라도 말이다. 더구나 기껏 그 위험을 이겨내고 멕시코와 미국의 국경까지 가서 눈앞에 미국을 바라보고 있어도 미국으로 들어가기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엔리케가 미국을 가려하는 이유는 오로지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많은 아이들이 그 그리움으로 엄마를 만나지만 그건 그것으로 또다른 문제를 낳는다고 저자는 이야기 한다.

 

그렇다면 부모들은 왜 그런 모든 위험한 일을 감수하고 미국으로 가려하는 것일까? 왜? 그 대답은 아마 우리도 알고 있다. 오래 지나지 않은 과거, 우리 부모의 부모들이 자식들에게 해 주었던 '가난의 대물림, 배우지 못한 서러움'에서 내 자식만은 벗어나게 하고 싶었다고...

 

부모가 없는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이 모두 잘못되는 법은 없다. 그건 동양이나 서양이다 매 한가지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엄마 없는 가정의 아이들이 늘 이렇게 문제가 되는 것은 '사랑'을 받을 수 없다는 너무나 간단한 이유때문일 거다. 엄마없이 돈을 풍족하게 쓰는 것 하고 엄마와 같이 가난하게 사는 것하고 물어보나마나한 질문이지만 결국은 '사랑'이다.

 

이 책은 중앙아메리카의 해체된 가족들에게 있어 가족이란 존재와 이주민들의 삶, 그리고 미국의 이주민에 대한 대처들에 대해 폭넓게 이야기 한다. 하지만 그 어떤 결론도 내리지 못한다. 왜냐하면 이 이야기는 '그렇게 하여 엄마랑 엔리케는 행복하게 잘 살았다'라고 끝나는 픽션이 아니라 그 현실에서 또 어던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르는 논픽션이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가 그들을 위해 바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세계 어디에서든지 고국을 떠나지 않고 가족들과 헤어지지않고 살 수 있는 그런 날이 오게될 날을 기원하는 일뿐이다.

j****o 2007.02.15. 신고 공감 1 댓글 5
리뷰 총점 종이책
기차지붕, 엔리케와 함께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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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에는 힘이 있다. 설령 글을 못 썼다고 해도-맞춤법이 어긋나거나 지루하게 구성이 되어 있다고 해도 '이 이야기는 사실입니다'라고 시작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마음을 가다듬고 그 내용을 침착하고 끈기 있게 들어줄 준비를 한다. 물론 읽기 쉽고 재미있게 쓰여져 있다고 한다면 더욱더 빨려 들어갈 것이다.   <엔리케의 여정>은 그런 책이다. 실화를
"기차지붕, 엔리케와 함께 하다" 내용보기

실화에는 힘이 있다. 설령 글을 못 썼다고 해도-맞춤법이 어긋나거나 지루하게 구성이 되어 있다고 해도 '이 이야기는 사실입니다'라고 시작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마음을 가다듬고 그 내용을 침착하고 끈기 있게 들어줄 준비를 한다. 물론 읽기 쉽고 재미있게 쓰여져 있다고 한다면 더욱더 빨려 들어갈 것이다.

 

<엔리케의 여정>은 그런 책이다. 실화를 다루면서 빨려 들어가는 책. 그러나 그 빨려 들어감 때문에 내가 기차 지붕에 앉아 있는 것처럼 엔리케와 함께 굶주리고 얻어맞기도 하며 놀란 가슴도 부여잡고 아파하기도 하고 코끝이 찡해오기도 하는 거다. 그래, 일단 내가 이렇게 엔리케와 함께 기차에 오르게 된 것은 이 책의 저자인 소냐 나자리오 때문이다. 그녀가 이 책을 약간의 사전조사와 풍부한 상상력으로 펜을 휘둘러 감정 복받치는 소설로 만들지 않고, 실제로 아이들처럼 기차 지붕에 앉아 그들과 더불어 여행을 했으며 일촉즉발의 순간들을 함께 겪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가 이 여행을 계획하게 된 프롤로그를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그녀와, 엔리케와 더불어 기차 지붕에 함께 오르게 된 것이다.

 

하지만-함께 기차 지붕에는 올라앉았지만 내 마음에서는 계속 이런 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런 여행을 하다니! 믿을 수 없어!' 물론 세상에는 소설이 더 진짜같고 진실이 거짓같은 경우가 있긴 하다. 이 경우에는 소냐 나자리오와 엔리케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 여행이 너무도 처참해서 어떻게 이런 여행을 사람들이 그것도 한두 명도 아닌 매년 수천명에 달하는 10대들이 하고 있는 것인지 믿기지가 않았다는 것이다. 더구나 이들이 이렇게 목숨을 내놓은 여행을 하는 중요한 이유가 '엄마를 만나기 위해서'라니...!

 

엄마를 만난 후의 모습이 해피 엔딩이 아니라는 것도 안타까운 일이었다. 그렇게 절실한 그리움으로 엄말 찾아왔지만 서로 갈등하게 되고, 결국에는 고국에 남아 있는 자식을 어릴 때의 자신처럼 떼어놓고 오는 악순환은 계속되고...

 

너무 기가 차면 눈물도 나오지 않는 것 같았다. 오히려 책을 읽는 내내 내 정신은 또렷해졌다. 코끝은 시려왔지만 눈물을 흘리진 않았다. 그러고보니 엔리케도 마찬가지였다. 삶의 처절함이 그를 너무나 강하게 만들었다. 이제 그는 우는 대신, 본드를 마시거나 술을 마신다.

그래도 딱 한 번 울뻔 했다. 그건 바로 사랑을 나눠주는 베라크루스 주민들을 만났을 때였다. 그들의 따뜻한 마음에 감동 받아 여행으로 응어리져 있던 내 마음이 살짝 녹아 내리는 걸 느꼈다. 먼 곳에 살고 있고, 이전에는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한 곳에 사는 사람들이지만 이들에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기도는 다 해 주고 싶다. 참사랑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니까.

 

그러면서 나는 그들처럼 누군가에게 무엇을 해 줄 수 있을까를 생각하다가, 문득 우리에게도 또 다른 얼굴의 엔리케가 있음을 떠올렸다. 동남아시아 등지에서 우리나라로 일하려 온 외국인 근로자들의 자녀가 그들이다. 물론 그들은 엔리케처럼 우리나라에 어린 나이에 밀입국해 올 수는 없다. 하지만 멀리서 몇 년째 불법 체류자로 살고 있는 자신의 부모를 그리워하며 있을 것이고 또 일부는 한국에서 부모처럼 불법 체류자의 신분으로 살고 있다가 걸리면 고국에 강제로 돌려 보내질 것이다.

아마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은 분명 이런 불쌍한 엔리케들을 돕기는 커녕 폭행하고 강간하고 살해하는 사람들에게 화를 냈을 것이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런 사회악은 어디든 있다. 바로 우리 곁에도 말이다. 또한 이런 문제들은 양상만 다를 뿐 우리에게도 있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불법) 이주민'이라고 부르지만 우리는 이들을 '불법 체류자'라고 부른다. 이들 역시 우리 나라에서 박봉에 갖은 구박을 받으며 궂은 일을 하면서 지낸다. 오죽하면 이들이 없이는 영세 공장은 안 돌아간다는 이야기도 한다.

위의 장점은 경제적인 것이다. 이들 중에는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단일민족이라는 자부심으로 살아가는 한국 사람들의 정서에 이들이 우리와 '끼어' 사는 것에 대해서는 반감도 들고 할 것이다. 하지만 이전에 읽었던 <디펜딩 더 언디펜더블>의 마약중개상이나 마약중독자 부분에서 본 것처럼 규제가 오히려 '문제'를 만드는 경우도 있다. 좀더 너른 시각으로 현명한 정책이 나와줘야 하지 않겠나하는, 이 책과는 직접적으로 관계가 없는 생각까지 해 보았다.

 

남의 일이라고 치부하기엔 너무나 충격적이고, 결코 남의 일도 아닌 <엔리케의 여정>. 더 이상 이들이 이런 여행을 하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i****7 2007.03.0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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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리케의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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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표지에서도 나타나지만 퓰리처상을 수상할 정도로 사회고발적인 성격이 강한 내용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저자인 소냐 나자리오는 여자인 몸에도 불구하고 LA타임지에서 오랫동안 기자생활을 하면서 눈으로 목격한 불법이민,마약 그리고 빈곤 등에 관심을 표명하고 그 원인규명을 파헤치고자 5년동안 노력을 한 결과가 이 책으로 나타난 것이다.   현대 국제사회는 비약적인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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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표지에서도 나타나지만 퓰리처상을 수상할 정도로 사회고발적인 성격이 강한 내용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저자인 소냐 나자리오는 여자인 몸에도 불구하고 LA타임지에서 오랫동안 기자생활을 하면서 눈으로 목격한 불법이민,마약 그리고 빈곤 등에 관심을 표명하고 그 원인규명을 파헤치고자 5년동안 노력을 한 결과가 이 책으로 나타난 것이다.
 
현대 국제사회는 비약적인 교통수단의 발전으로 말미암아 국경이라는 의미가 과거의 완전한 폐쇄적인 것이라기보다는 단지 지도상의 경계선 정도로 해석될어 인종간의 이동이 빈번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이는 한 국가의 주류민족의 독자적인 문화로 정체되는 것이 아니라 다민족간의 문화로 급속히 대체되어..다시 말해 순혈주의 보다는 다혈주의 문화의 장점이 더 부각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다민족문화 내지 다혈주의는 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불법체류,인권침해,마약과 인신매매와 같은 각종 범죄 등을 양산하여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거대한 꿈의 상징인 미국에서조차 이러한 어두운 구석은 해결의 실마리는 커녕 점점 굳어지고 있음이 이 책을 읽으므로써 여실히 밝혀진다.
아메리카대륙에서 미국이라는 거대한 상징은 상대적으로 중남미국가들의 존재를 한없이 초라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본의 아니게 반미라는 구호가 너무나 당연시되고 있는 실정이다.오랫동안 극우정권의 장기독재,이에 반발하는 좌파정권의 인기성 사회주의정책,거의 무정부상태를 방불케 하는 치안부재 등으로 완전히 경제가 피폐하여 망가질 대로 망가진 중남미국가에서 가장 삶의 곤란을 겪는 계층은 역시 하층계층일 것이다.독재성 저개발국가일수록 빈부의 격차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극심하여 하층민이 자발적으로 신분상승을 하는 것이 거의 꿈에 불가능한 것이다.
 
책의 주인공인 엔리케는 온두라스의 한 남자로서 자신이 어린 시절 가난의 굴레를 벗고자 자신과 어린여동생을 버리고 오래전에 미국으로 돈벌러 가버린 어머니 라우데스를 직접 찾고자 죽음의 기차여행을 하게 된다. 기차가 국경을 넘자마자 멕시코를 지나는 동안 벌어지는 강도들의 악탈행위,국경수비대원 및 경찰들의 비열한 폭행 및 비리 그리고 일부 멕시코인들의 노골적인 멸시 등이 생생하게 보여진다.
 
이렇게 수많은 중남미인들이 미국에서 돈을 벌고자 불법체류를 일삼고 있고 온갖 범죄를 저지르는 단점이 노출됨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싼 저임금으로 말미암아 미국의 물가가 안정되는 이중적인 성격이 있어 서로가 윈윈하는....
 
결국 저자는 멕시코를 비롯한 많은 중남미인들의 미국행을 막기 위해서는 단기적인 처방은 어렵고 근본적으로  중남미국가들이 스스로 경제회복을 함으로써 그들 국민의 부가 증대시켜 많은 국민들이 더이상 자국을 떠나지 않고서도 가정을 지킬 정도가 되면 지금과 같이 위험하고도 험한 미국으로의 불법체류는 자연적으로 감소할 것이고 따라서 중남미국가들의 경제회복에 미국의 역할도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즉 돈을 벌기 위하여 가정을 해체하는 것보다는 그래도 가정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아무리 떠들어 보아야 막상 돈이 없이 가족 전구성원이 길바닥에 나앉을 정도가 되면 그야 말로 소귀에 경읽기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c*****0 2007.03.0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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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를 문 기차, 꼬리를 문 엔리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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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인이 없다. 시간이 없다. 이런 뻔한 이유로 극장의 문턱이 높게 느껴지기에 가끔 보는 영화는 대부분 DVD를 통해서 고르곤 한다. 뭐 마땅히 보고 싶은 영화가 생각나지 않기에 적절한 갈등(혹은 아주 사소하고 유치한 갈등)이 1-2시간 안에 말끔히 해결되는 영화를 선택하게 된다. 감당키 힘들 갈등은 마음을 무겁게 하기 때문이다.   ‘한 소년의 엄마를 찾아 나선 122일의 여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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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인이 없다. 시간이 없다. 이런 뻔한 이유로 극장의 문턱이 높게 느껴지기에 가끔 보는 영화는 대부분 DVD를 통해서 고르곤 한다. 뭐 마땅히 보고 싶은 영화가 생각나지 않기에 적절한 갈등(혹은 아주 사소하고 유치한 갈등)이 1-2시간 안에 말끔히 해결되는 영화를 선택하게 된다. 감당키 힘들 갈등은 마음을 무겁게 하기 때문이다.

 

‘한 소년의 엄마를 찾아 나선 122일의 여정’은 책을 펼치고 덮는 동안 해소되는 갈등이 아니었다. 과연 이 소년이 그토록 그리워한 엄마를 만날 수 있을까? 그녀를 만나는 동안 엮이는 많은 인물들 간의 열정적인 증오와 우정은 어떻게 표현될 것인가? 엄마와 아들이 만나는 순간 그들은 사랑을 어떻게 얘기할 것인가? 이런 작위적인 여정을 상상했다면 책을 읽는 잠시 동안의 시간이 편치 못할 것이다.

 

<엔리케의 여정>(다른. 2007)은 픽션이 아니다. 실제 사건을 토대로 한 영화의 말머리나 꼬리에 따라 붙은 논픽션의 표식, 때문에 감동이 배가 된다는 그러한 표식과는 다른 현실 자체인 것이다. 물론 아이를 떼어놓고 먹고 살길을 찾아 떠난 엄마와 그녀를 그리워하다 스스로를 망가뜨리고 결국엔 죽음의 문턱을 넘나드는 여정을 나선 소년의 이야기는 그것이 사실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장엄하고 감동적이다. 하지만 작가, ‘소냐 나자리오’는 그들의 감정에 작위적인 감동의 가격표를 붙이지는 않는다. 냉정한 거리를 두고 그들의 여정에 동참하여 본 것, 들은 것만을 추려내 이야기 해줄 뿐이다. 눈앞의 현실이 아니기에 픽션, 논픽션을 구분하기 힘든 먼 나라 이야기는 때문에 생생하게 살아있다. 그 생생함으로 <엄마 찾아 삼만리>보다 적은 눈물 자국을 남기는 <엔리케의 여정>은 눈물샘이 아닌 주먹을, 심장을 조이는 우리 이웃의 이야기가 된다.

 

엄마가 아이의 손을 뿌리치고 미국을 향해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는 것은 윤택한 삶을 위한 ‘아메리칸 드림’ 때문이 아니다. 그녀들은 살기 위해 가족을 떠난다. 경제적인 자생력이 없는 그네들의 나라에서는 악순환의 고리만을 확인할 뿐이기에 말이다. 가족의 곁에서 입에 풀칠은 하겠지만 하루 한 끼와 세 끼의 차이는 엄연히 존재한다. 간신히 아사를 피하는 삶은 그들의 미래를 더욱 어둡게 하기 때문이다. 자식들의 교육을 보장할 수 없고, 간신히 발붙이고 사는 환경에서 ‘홈 스쿨링’은 우습지 않은 잔인한 농담에 불과하다. 어머니, 그녀 자신도 그런 환경에서 자리지 않았는가. 간신히 끼니를 때우고 철이 들기도 전에 책상을 떠나 행상의 길을 나섰다. 그 속에서 미약하나마 행복을 주었던 사랑은 뜻하지 않은 임신을 초래하고, 대부분 그 사랑마저 순간의 유희에 그치고 만다. 어쩌면 그녀들에게 사랑이란 사치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른다. 믿고 의지할 수 없는 남편과의 사랑이 그렇고 자신이 범한 과오를 고스란히 물려줄 자식들에 대한 사랑 역시 그렇다. 그녀들에게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미국으로 가는 것이다. 돈을 벌 수 있는 최소한의 기회를 좇는 것이다.

 

엔리케와 비슷한 상황의 아이들이 도저히 어린 나이에 감당키 힘든 여정을 택한 것을 치기어린 사춘기 방황으로 혹은 복에 겨운 철부지 행동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물론 엄마는 그들은 버린 것이 아니다. 또한 그녀들이 힘겹게 벌어 보내준 돈과 선물로 다른 아이들 보다는 물질적으로 나은 삶을 살아간다. 운이 좋으면 좋은 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마쳐, 엄마의 원대로 안정적인 가정을 꾸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떠나간 엄마의 그림자를 앙칼스럽게 부여 쥐고 있는 그들에게 엄마가 부치는 돈과 함께 돌아오는 것은 상실감뿐이다. 곧 돌아오리라는 약속을 지키지 않는 엄마에 대한 원망만을 키워가면서 그 상실감은 어느새 자신을 잡아먹고 있다. 그들에게 자신을 망칠 기회는 너무도 가까이에 있다. 잠시 동안의 안식을 주는 마약이 지척에 있고, 그것을 소비하는데 큰 어려움도 없다. 상실감에서 오는 격한 투정을 받아줄 사람도 없기에 자학은 더욱 그 강도를 높여간다. 자신을 망칠대로 망쳐버린 ‘엔리케’와 아이들은 결국 엄마를 찾아 나설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고선 아무것도 시작할 수 없기 때문이다.

 

떠나간 엄마와 찾아가는 아이로 시작된 이 이야기는 결국 이민자 전체의 이야기로 넓어진다. 그렇다면 그들이 자신의 가족이 있는 땅을 떠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단순하면서도 근본적인 원인은 그들 나라에 경제적 자생력이 갖춰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즉, 생산과 소비, 그리고 노동이 순환할 틀 자체가 없는 것이다. 그들이 가진 것은 노동력(그것도 기술이 결여된 것)뿐이다. 서구 열강의 탐욕스러운 침이 그들의 해변에 처음 떨어진 이후로 지금까지 그들의 삶은 더욱 악화되어가고 있다. 산업화와 미국의 탄생과 발전의 원동력이었지만 그 주체가 되지 못하고 재료가 되었을 뿐이다. 때문에 이민자들에 대해 미국을 비롯한 유럽에 그 책임이 있다는 것은 결코 과대해석이 아니다.

 

이미 2차 세계 대전 당시 미국은 학살이 예견된 유대인의 이민을 인종적 우월감으로 거부한 역사를 갖고 있다. 이제 문제는 그보다 더욱 복잡해졌고 현실은 다를바 없다. 현지인들에게 외면당한 3D업종에 뚫린 구멍을 채워주는 이민자에 대한 수요와 그것이 파생하는 문제 사이에서 이렇다할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물론 이 문제는 극단적인 판단으로 해결된 요량이 아니다. 그렇지만 그 양 단의 조화를 찾고자 하는 것은 지금의 현실에서, 비겁한 도피에 지나지 않는다.

 

가치 판단을 유보할 수 없는 현실에서 가장 가슴 아팠던 것은 ‘엔리케’의 아이 역시 그와 같은 여정에 동참할지도 모른다는 예상 가능한 결말이었다. 결국 살 수 있는 나라가 아니라면 그들의 떠날 것이다. 환영의 인사말을 기대하기 불가능한 미국이라는 나라를 향해 그 중간의 잔인한 약탈자들에게 짓밟히고 죽어나가면서도 제2, 제3의 엔리케의 여정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세계 평화의 수호자를 자처하는 힘이 장사인 나라가 지도자의 희생을 발휘할 것인지 아니면 이웃을 짓밟고 폭력을 일삼으며 빼앗은 돈으로 정치에 입문하는 깡패에 그치고 말 것인지 지켜볼 문제이다. 후자 쪽에 가깝다는 지금의 판단이 바뀔 수 있을지 생각해 볼 문제이다.

y*******9 2007.03.04.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