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파트 단지 내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는 곳에는 유독 고양이의 출몰이 잦다. 먹어야 사는 것이 이 세상 모든 생명체의 사는 방식이겠지만, 녀석의 날카로운 두 눈동자와 마주치는 것이 기분 좋게 느껴졌던 적은 별로 없었다. 어둑어둑해진 밤하늘에서 비라도 내리는 날에는 더더욱… 제각각 생활하는 영역이야 정해져 있을지도 모르지만, 인간의 눈으로 보았을 때 녀석들의 삶은 ‘방랑’ 그 자체이다. 하지만 차와 오토바이 등 인간의 생명조차도 손쉽게 앗아가는 물체들이 너무도 많은 이 곳에서의 떠돌이 생활은 위험천만한 것이다. 삶이 곧 죽음일지도 모르는, 하지만 우리는 그들의 삶을 깊이 들여다보기 보다는 오히려 ‘도둑고양이’라는 명칭으로 그들을 부르길 즐긴다. 그런 그들과 눈을 맞추기 위해 거리 한복판에 엎드린 이가 있었으니, 바로 이 책의 작가였다. 카메라를 손에 쥐기 전까지 나는 꽃이나 나비 등을 렌즈에 담는다는 게 어떤 걸 의미하는지 알지 못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허리를 굽히고, 때로는 땅에 자신의 몸을 납작하게 붙여가면서까지 사진을 찍었던 이유가 단지 좋은 각도에서 특정 피사체를 담기 위함만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아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자연에 대한 기본적인 애착을 지닌 사람에게 좋은 사진이 허락된다(?)는 사실은 끊임없이 움직이는 아기의 미소를 담기 위해 무엇보다도 아기와 친해져야 하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작가는 이 원리에 충실한 사람이었다. 아니, 그가 주로 사진으로 찍어냈던 대상은 다름 아닌 고양이였기에 그에게 다른 선택은 불가능한 것이었다. 인간의 미세한 움직임에도 황급히 세상을 외면하는, 길들여지지 않은 자(!)를 렌즈에 담으며 그는 세상을 배워가고 있었다. 1등부터 꼴찌까지 줄 세우기를 좋아하는 인간의 습성이 얼마나 어리석고도 무모한 것인지… 고양이에 대해 우리가 가진 부정적인 인식들이 하나, 둘씩 셔터를 누를 때마다 깨어졌다. 높은 담을 넘나드는 녀석들의 몸동작은 사뿐하다 못해 우아해 보이기까지 했으며, 이전에는 어딘가 모르게 처량하면서도 적대적인 무언가를 담고 있는 듯해 보였던 녀석들의 눈동자로부터 애정을 갈구하는 빛을 읽기도 했다. 하지만 녀석들이 지닌 외로움은 읽어내는 이가 누구냐에 따라 각기 다른 의미로 해석되었다. 누군가는 돌을 들고 무의식적으로 녀석들을 해치는 그 순간, 다른 누군가는 자비를 털어 녀석들의 먹거리를 장만하는 곳이 이 세상임을 느끼며 나는 다소 혼란스러웠다. 대개의 이런 책들은 사진으로 페이지를 장식하는데 충실한 나머지 인쇄된 글자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은 게 사실이건만, 첫 페이지부터 빼곡히 들어찬 글씨 앞에서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작가에게 고양이는 아무리 많은 말과 글을 이용할지라도 모두 그려낼 수 없는 그런 존재인 듯했다. 세상 어느 곳에도 집착하지 않는, 그래서 끊임없이 떠돌아야만 하는 녀석들의 삶으로부터 인생의 출발과 끝을 알 수 없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읽어낸 작가에게 고양이는 어쩌면 자기 자신을 바라보기 위한 거울과도 같은 존재가 아니었을지 싶다. 한 마리의 고양이가 내 눈에 들어온다. 살포시 다가가 카메라를 들이대기가 무섭게 녀석은 내 시야에서 사라진다. 온몸 가득 품었던 나를 향한 경계심, 녀석이 달아난 것은 아직 나는 세상의 일부가 되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쳇바퀴 돌아가듯 정해진 생활을 하는 나를 피하며 녀석은 마음 속으로 외쳤을지도 모르겠다. ‘내게서 자유를 빼앗아가진 말아줘’라고… |
|
길에서 사는 고양이들의 고단한 삶은 인간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오히려 더 치열하다. 왜냐하면 고양이들은 저보다 강한 인간들의 공격과 동시에 자신들끼리의 치열한 경쟁에서도 살아 남아야 하기 때문이다. 고양이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 책을 읽고 차디찬 그 편견의 그늘에 햇빛을 드리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인간이든 동물이든 이 땅에 살아 숨쉬는 모든 생명체는 존귀하다. 그 무엇도 인간만을 위해서 없어져야 하거나 고통받아야 하는 생명은 없다. 이 책은 고양이를 아끼는 사람들로 하여금 무한한 공감의 도가니에 빠져들게 할 것이며, 미묘들의 사진에 탐닉하게 될 것이다. 이 책을 읽고 길고양이에게 측은지심을 보여 주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늘어날 수 있길 바란다... 인간과 자연이 어울어져 사는 것이 궁극적인 이상향이라면 도시에 사는 길고양이는 인간이 만들어낸 필연적인 개체이며, 도시 안에서 인간이 보듬어 줘야 하는 자연의 약자이다. |
|
집에 찾아오는 고양이에게 밥을 준지 어느덧 1년이 지나가고 있다. 첫번째 어미고양이는 생고기를 어디선가 가져와 집앞에 두고 갔다고 한다. 유독히 동물을 싫어하는 부모님 하지만 엄마는 고양이 밥은 꾸준히 챙겨 준다. 고양이가 음식물이나 사냥한 동물등을 집앞에 가져다 준다는것은 친구로 인정하고 존중한다는 의미라고 한다. 변화는 서서히 시작된다고 해야 할까. 처음엔 고양이는 보는 것만으로도 싫어하시던 부모님은 차차 고양이를 관찰하고 바라보면서 고양이에 대한 관심이 증가해 갔다.이제는 처음의 어미 고양이의 어린 고양이들이 커서 새끼를 낳고 그렇게 그들은 살아가고 있다. 자유롭게 그리고 우리집을 지켜가면서. 난 고양이가 좋다. 그리고 고양이를 싫어하던 부모님또한 고양이가 마냥 싫지만은 않다고 하신다. 부모님에게 이 책을 선물하면서 부모님이 가진 고양이에 대한 모든 편견이 사라지기를 바란다. 이 책에는 그만한 가치가 있었고 긍정적으로 생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책 속의 사진과 엽서도 마음에 든다. ㅎㅎㅎ 길고양이를 보면 인사하고 싶어지게 만드는 책 |
|
"도둑 고양이"라는 이름이 언제부턴가 "길고양이"로 정착되어져 가고 있다. 내심 흐뭇하다. 뭘 훔쳐먹거나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닌데 도둑 고양이라는 이름은 오명처럼 나쁜 이미지를 주기 때문이다.
즐겨보는 [동물농장]에서 장애견으로 태어난 강아지나 버려지는 고양이들을 볼때마다 눈시울이 붉어지곤 했는데, 사람손을 탔던 그들은 버려진 곳에서 돌아오지 않을 주인을 마냥 기다리며 죽어가고 있었다. 자신의 불필요에 의해 버리는 것은 이기적인 인간뿐이 아닌가 싶어져 같은 인간으로서 화가 나기도 했다. 불쑥불쑥.
산 위에서 주인을 기다리며 다른 동물들의 해코지를 견뎌내야했던 어느 고양이, 태어나면서 부터 온 몸이 얽혀 동기간을 잃고 일부 자신의 신체를 잃어햐 했던 고양이, 앞 발의 뼈가 부족해 캥거루처럼 뒷발로만 서서 이동해야하는 강아지, 임신한 다른 강아지를 보호하기 위해 함께 강가에서 거지처럼 살고 있던 두 마리 개, 언덕에서 관광객들을 피해 차 바닥에 납작 엎드려 있던 털이 거의 없던 어느 개까지....길바닥에서의 생활이 얼마나 힘들고 고단한지 그들은 몸소 보여주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숙명인지라 그들은 오늘도 길에서 태어나고 살아간다. 이웃인 지인이 일본에서 가끔씩 찍어 올리는 일본의 고양이들은 심술궂은 표정에도 불구하고 여유롭게 바닥에 누워 사진 촬영을 허락하는 것과 달리 우리의 길고양이들은 눈만 마주쳐도 도망가는 모습에서 얼마나 안타까움을 느껴야했던지...얼마나 해코지 하는 사람들이 많으면 그런 것일까. 싶어진다.
그래서인지 평소에는 눈으로만 간직했던 예쁜 모습을 모두와 함께 책으로 구경할 수 있는 [나는 길고양이에 탐닉한다]에 매료되어 책을 탐독해 나갔다. 그래도 따듯한 이웃의 보살핌을 받고 있는 고양이들은 얼마나 다행인지. 이웃 길고양이 들이 품앗이 육아로 키웠다는 고양이는 왠지 심청이 고양이처럼 느껴져 계속 웃음짓게 만들고 밀레니엄 타워 벤치 위에 쭈욱 뻗어 쉬고 있는 밀레니엄 고양이는 당장이라도 달려가 보고 싶어졌다. 사료 한 포대면 환영받을 수 있을까.
날씨가 부쩍 추워져 도심에서 물과 먹이를 구하는 것이 힘들어진 것은 물론 추위에 길고양이들 고생이 만만치 않을텐데....그래도 부디 살아남아 따뜻한 봄에 거리를 활보하는 자유묘 그들을 확인하게 되기를 기도해본다.
|
|
오랫만에 내용, 편집/구성에 모두 별 다섯개를 주고 싶은 책을 만났다. ^^
'길냥이'에게 필이 꽂힌 저자는 여러해에 걸쳐 '밀레니엄고양이''카오스무늬고양이''가회고양이''이태원고양이'부터 신도림동 심군과 심돌이, 파양된 고양이 '스밀라'의 관찰일기를 담아냈다. 애정으로 찍은 사진과 글들이 마음을 따뜻하게 해준다. 덤으로 일본의 지역고양이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아주 오래된 낡은 집과 새 빌라가 공존하는 동네가 으례 그렇듯 우리동네도 '길냥이'들이 많다. 그 녀석들이 주로 나타나는 시간은 인간들이 저녁식사후 음식쓰레기봉투를 내놓는, 어둠이 슬슬 깔릴 무렵인 저녁 무렵이다. 혼자서 다니는 냥이, 친구랑 다니는 냥이, 새끼고양이를 데리고 다니는 냥이, 가끔 임신한 냥이까지... 인간들의 눈을 피해 살짝살짝 돌아다닌다.
한번은 집앞 전봇대에 쓰레기봉투를 갖다두려고 현관문을 여는데 음식쓰레기봉투를 살짝 찢어 뭔가를 먹고 있더 고양이가 나를 돌아보더니 키작은 관목뒤로 숨어버렸다. 그런데 나무 아래로 앞발이 살짝 보였다. ㅋㅋ... 그 고양이는 얼핏보기에도 배가 부른 것이 임신한 것 같은데 어깨죽지는 어찌나 말랐던지... 얼른 참치캔을 따서 스치로폴 접시에 담아 나가보니 그사이 사라져버렸다. 아까 고양이가 있던 자리에 놓아두고 문틈으로 지켜보니 쉬 오지 않는다. 제발 '길멍이'들이 먹지 않기를 바랬는데, 한참 있다 내다보니 어느 녀석이 먹었는지 아무튼 접시는 비어있었다. 이처럼 가끔씩 제대로 못먹은 듯한 고양이가 눈에 띄면 캔참치이나 멸치대가리를 조금 접시에 덜어 갖다놓기도 한다. 그런데 이 책은 이런 나를 꾸짖는다. 그저 음식만 주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바람직한 사례로 신도림동의 '냥이왕초(닉네임)'님의 이야기를 한다. 그 분은 5년 넘게 유모차에 길고양이 사료와 깨끗한 물을 싣고 다니며 고양이들을 챙기신단다. 그리고 '중성화수술'을 통해 불쌍한 길냥이들이 늘어나지 않도록 해야한다니, 진정한 사랑의 길은 멀고 험난하다.
"그 곳 수용능력에 한계가 있다 보니, 진짜 조그마한 얘들조차 가정 분양이 안되면 어쩔 수 없이 대부분 안락사 시키거든요...."
스스로 척박한 환경에서 살기를 원해서 그렇게 태어난 존재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 이건 사람이나 동물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이미 자기 의사와 관계없이 척박한 세상에 태어나 버렸다면, 어쩔 수 없는 삶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일지, 혹은 스스로 개척해 나갈 지는 결정해야한다. 누군가는 주어진 삶을 살아 내는 데 그치지만, 누군가는 어떻게 살 것인지 스스로 선택할 수 있기 위해서 싸운다. 노예로 사는냐, 주인으로 사느냐는 이 지점에서 갈린다.
아름다운 자연뿐만 아니라, 도시의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내야하는 생명들을 보듬는 것 또한 우리 인간들이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국고양이보호협회
마리캣 그래픽스
강아지 고양이 무료분양 사이트 |
|
고양이만큼 참으로 인간의 호불호(好不好)가 뚜렷한 존재도 드물게다. 고양이가 너무 좋아! 고양이는 너무 싫어! 이 두가지의 평 이외에는 들을 수가 없는 이유는 아마도 인간이 고양이에게 기대하는 것이 반려인가 애완인가의 차이 때문이 아닐까 싶다.
고양이를 참 좋아한다. 어렸을 때부터 집안에 고양이가 득실거렸다. 득실 이라고 해도 얼마나 되겠나 하겠지만 스물 한 마리가 우리 집을 거쳐갔다. 고양이 보호소도 아니고 일반 가정집에선 드문 숫자일게다.
그런 연유로 어려서부터 우리 남매 손등은 생채기가 가실 날이 없었다. 그렇게 할퀴어 지면서도 그저 좋다고 고양이들을 쫓아 다녔다. 책상 발치에 내장이 뒤집힌 쥐 시체라도 있는 날이면 기겁을 했지만, 한 두번 겪다 보니 그런 일들이 다 그냥 살아가면서 일어나는 것이었다.
고양이들과 함께했던 시간들은 그 모든 고양이들의 대모(大母)격인 <나비>가 죽을 정도로 늙은 뒤에 홀연이 집을 나간 뒤에 정리가 되었다. 그래서 고양이에 관한 추억은 내 어린 시간의 기억이며, 언젠가는 다시 시작하고 싶은 과제 이기도 하다. 그래서 고양이에 대한 괜찮은 책이 나왔다는 소식에는 늘 반갑다.
흥미로운 책이 나오면 서점에 가서 한 번 들쳐본 후에 구매를 결정하는데, <길고양이…>는 단단하게 비닐에 싸여 있어 구경을 할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주위에 고양이에 정을 둔 사람이 많은 터라 사본 뒤 선물하면 본전은 건지겠다 싶어 주문을 했다.
결과는 대만족이다. 잡지같은 야들야들한 종이와 올컬러 구성, 다채로운 편집, 꽉 찬 내용은 물론, 길고양이의 신산스러운 삶을 담기도 잘 담았으되 고양이에 대한 애정어린 시선들이 눈시울을 시큰하게 만들었다.
나는 고양이가 보호를 받아야 할 만큼 약한 존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단지 그들이 마음 놓고 활보할 수 있도록 인간들의 배려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고양이 뿐만 아니라 '존재의 삶'에 무한히 따뜻한 눈길을 보내는 이 책이 싸늘한 시선들을 덥힐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오늘 새벽에 라디오 시사프로에서 고양이를 지하실에 가두는 주민들에 대한 싸이월드의 반대서명 소식을 다루는 것을 들었다. 안됐다, 불쌍하다의 관점이 아니라 어떻게 다른 생명체와 공존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객관적으로 짚어보는 자리가 공식적으로 마련되고 있는 것에 대해서 사회의 인식의 변화와 희망을 느낀다.
거따 대고 '고양이한테 쏟을 애정 있으면 주변의 굶은 아이를 돌아보라'는 무식한 소리는 나오지 않길 바란다.
인상깊은 구절 : 어미 고양이는 새끼의 몸에 어떤 무늬가 나오든 관심이 없다. 고양이의 몸에 어떤 무늬가 있는지, 눈 색깔이 어떤 색인지, 털이 얼마나 길고 짧은지에 대해 신경을 곤두세우는 것은 인간뿐이다. p24 |
|
나는 미디어다음의 블로거 기자단으로 활동중인 사람이다. 고경원 씨를 만난 것은 작년으로 기억한다. 고양이에 관한 이야기를 쓰는 그녀... 몇 년전만 해도 나는 참 고양이가 싫었다. 도둑 고양이라고 비아냥 거리던 경우가 더 많았다.
하지만 그녀의 블로그에 들어가보니 그녀는 진심으로 이들 고양이를 사랑하고 아끼는 분이라는 것을 생각하였다. 그리고 '도둑 고양이'라는 말 대신에 '길 고양이'라는 말로 순화하자는 그녀의 주장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책은 마치 잡지 한 권을 읽는 기분이다. 그만큼 전혀 지루하지 않고 잡지가 그냥 가쉽으로 끝나는 내용이 대부분이라면 이 책은 얻는게 많다. 고양이에 대한 편견과 오해가 바로 쉽게 풀리기 때문이다.
나는 버스에서 책을 읽지 못한다. 어질어질해서 중간 책을 읽다가 포기하는데 작은 크기에 금방 책을 읽다보니 절반을 읽고 나보니 집에 도착할 정도로 지루함을 몰랐다.
고양이에 대한 편견과 오해... 이 책이 다 풀어줄 것이다! |
|
책이 생각보다 사이즈가 작아서 핸드백에 넣고 다니면서 읽어도 좋을만한 크기더군요. 귀여운 책 크기와는 다르게 가슴을 울리는, 군데 군데 보이는 묵직한 이야기는 참 가슴이 아프기도 하고 코 끝이 찡해지기도 하더라구요. 더불어 우리집(정확히 우리집마당)에 하숙 중인 세 마리의 길냥이 녀석들이 생각나는 순간이었습니다. 현실적인 길냥이들의 사진에 겹쳐져서 보이는 우리 하숙냥이들의 모습이란. 처음에 고양이를 싫어했던 저도 어느날부터 마당에 들어와서 가끔 밥을 얻어먹는 길냥이와의 인연으로 고양이에게 푹 빠지고 말았습니다. 고양이는 정말 한번 빠지면 헤어나올 수가 없더라구요. 그다지 동물에 관심 없었던 저는, 고양이로 인해서 개도 새롭게 보이더라구요. 고양이를 만나기 전에 개를 십년 정도 키웠었는데... 온 세상이 자유롭게, 즐겁게 고양이와 더불어 살 수 있는 그 날이 왔으면 좋겠어요.
|
|
찾아 읽는 사진책 176 고양이를 부르는 사진 ― 나는 길고양이에 탐닉한다 고경원 글·사진 갤리온 펴냄, 2007.1.24. 누구나 스스로 좋아하는 것을 봅니다. 누구나 스스로 좋아하는 것을 잘 알아봅니다. 누구나 스스로 좋아하는 것을 찾아 마음이 움직입니다. 숲을 좋아하는 사람은 숲으로 갑니다. 숲을 좋아하는 사람은 숲하고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서 살더라도 숲바람을 느낍니다. 언제나 숲노래를 부르면서 빙그레 웃습니다. 바다를 좋아하는 사람은 바다로 갑니다. 바다를 좋아하는 사람은 바다하고 무척 멀리 떨어진 데에서 일하더라도 문득문득 바다내음을 맡습니다. 늘 바다노래를 부르면서 활짝 웃습니다. 길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은 무엇을 볼까요? 길고양이를 볼 테지요. 길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은 어디로 갈까요? 길고양이가 있는 곳으로 갈 테지요. 길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은 도시 한복판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움직이다가도 문득문득 ‘길고양이가 야옹 하고 우는 소리’를 듣습니다. 고경원 님이 글을 쓰고 사진을 찍은 《나는 길고양이에 탐닉한다》(갤리온,2007)를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고경원 님은 “길고양이를 찍으러 다니다 보면 낯선 골목길로 들어가게 되기 일쑤다(머리말).” 하고 말합니다. 참말 이와 같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고경원 님이 들어가는 ‘낯선 골목길’이란 ‘사람 눈길’로 보았을 때에 낯선 골목길이요, 고양이한테는 낯익은 길이거나 골목이요, 고양이로서는 아늑하거나 포근한 쉼터이리라 느껴요. 왜냐하면, 여느 사람한테는 낯선 골목길이, 여느 길고양이한테는 ‘사람한테 치이지 않으면서 느긋하게 쉬는 한편 다른 고양이와 어울리는 터’가 되거든요. 길고양이를 오래도록 지켜본 고경원 님은 “어미 고양이는 새끼의 몸에 어떤 무늬가 나오든 관심이 없다(24쪽).” 하고 이야기합니다. 사람도 이와 똑같습니다. 어버이는 아기가 어떤 키와 몸무게로 태어나도 다 좋습니다. 어버이는 아기가 어떤 몸으로 태어나도 다 반깁니다. 가시내이든 머스마이든 아랑곳할 일이 없어요. 오직 ‘우리 아이’라고 느끼며 기쁩니다. 고양이와 사람만 이와 같지 않아요. 새와 물고기도 그렇지요. 온갖 짐승은 다 이와 같아요. 어느 어버이가 아기한테 ‘너 말야, 100억쯤 손에 쥐고 태어나야지?’ 하고 묻겠어요. 안 따집니다. 오로지 사랑으로 아기를 바라보며, 오직 사랑스러운 눈길과 손길로 아기를 쓰다듬습니다. 길고양이를 사진으로 찍든, 골목개를 사진으로 담든, 우리들은 사랑 하나로 바라볼 노릇입니다. 사랑이 아닌 다른 눈길로 길고양이나 골목개를 바라본다면, 고양이와 개는 사람 눈치를 슬금슬금 보다가 꽁지를 빼겠지요. 고경원 님은 길고양이를 아끼는 이웃을 만나기도 합니다. “아주머니는 흰 고양이를 ‘고비’라 부르고, 카오스 무늬 고양이는 ‘부비’라고 부른다(42쪽).” 하는 이야기처럼, 길고양이를 아끼는 이웃은 이녁 나름대로 길고양이한테 사랑스러운 이름을 붙여서 살갑게 부릅니다. 아주머니한테는 길고양이도 이웃이요 동무입니다. 아주머니한테는 길고양이도 사람과 똑같이 반가운 님이자 벗입니다.
그런데, 길고양이는 왜 길고양이일까요. 우리한테 언제부터 고양이가 길고양이가 되었을까요. 예부터 한겨레는 고양이를 따로 집에서 기르지 않았습니다. 다만, 사람 손길을 반기는 고양이가 있을 때에는 집에서 곧잘 먹이를 줍니다. 사람 사는 집과 가까이 지내는 고양이한테는 ‘집고양이’라는 이름을 붙였어요. 사람 사는 집에 가까이 다가오지 않는 고양이한테는 ‘들고양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도둑고양이’라는 이름은 언제 생겼을까요? 궁금한 이름입니다. 그런데, 조금만 생각하면 이 말이 생긴 때를 헤아릴 수 있어요. 왜냐하면, 지난날 여느 시골에는 ‘도둑고양이’가 있기 어렵습니다. 그렇겠지요? 흙을 일구며 살아가는 여느 시골집에는 고양이가 훔쳐서 먹을 만한 먹이가 없습니다. 흙을 일구는 시골사람은 풀과 열매와 곡식을 먹는데, 고양이가 이런 먹을거리를 훔칠 일은 아예 없다시피 해요. 고양이는 쥐를 먹으려고 사람이 사는 집에 가까이 오기만 했겠지요. 그러면, 물고기라든지 ‘고기’ 냄새가 나는 먹이는 어느 집에 있었을까요? 틀림없이 부잣집에 있었겠지요. 여느 시골집에서 지내는 흙지기로서는 고양이가 안쓰러워도 따로 먹이를 챙겨서 건네기 어렵습니다. 사람이 먹는 밥이랑 국을 건넬 뿐입니다. 아마, 지난날 ‘시골고양이’는 사람하고 똑같은 밥이랑 국을 먹으면서, 곧잘 쥐나 개구리나 새를 잡아서 먹었겠지요. 그리고, 부잣집에 살그마니 기어들어 ‘고깃살’을 낼름 먹곤 했겠지요. 부잣집에서는 ‘도둑고양이’라는 이름을 붙일 만합니다. 고양이 이름을 더 헤아린다면, 서울이나 부산처럼 커다란 도시 한복판에서는 ‘길고양이’입니다. 그렇지만, 서울이나 부산이라 하더라도 작은 집이 다닥다닥 붙은 골목동네에서는 ‘골목고양이’입니다. 골목에서 지내니 골목고양이예요. 바닷마을에서 지내는 고양이라면 ‘바다고양이’가 될 테고, 섬에서 지내는 고양이라면 ‘섬고양이’가 될 테지요. 동네에서 동네사람처럼 지내는 고양이는 ‘동네고양이’예요. 도시에서는 동네고양이입니다. 시골에서는 마을이기에, 시골에서 마을사람처럼 수수하게 지내는 고양이는 ‘마을고양이’입니다. 우리 식구들 살아가는 시골마을에도 마을고양이가 여럿 있습니다. 비가 오는 날이라든지 햇볕이 뜨거운 날에는 우리 집 처마 밑이나 평상 밑이나 자전거 밑으로 살그마니 기어들어 옹크리면서 쉬곤 합니다. 《나는 길고양이에 탐닉한다》를 쓴 고경원 님은 “고양이와 함께 살고 싶었지만, 고양이가 행복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줄 수 있을 때까지는 참고 기다리는 게 옳다고 생각했다(159쪽).” 하고 말합니다. 고양이가 즐겁게 살 수 있는 터전은 어떤 빛일까요. 아마, 고양이만 즐겁게 살 수 있는 터전은 아니리라 생각합니다. 고양이가 즐겁게 살 수 있는 터전은, 개한테도 비둘기한테도 참새한테도 직박구리한테도 오소리한테도 족제비한테도, 그리고 사람한테도 즐겁게 살 수 있는 터전이리라 생각해요. 다 함께 즐겁게 살아갈 만한 터전에서 우리는 서로 아끼고 사랑하면서 살아갈 만하리라 느낍니다. 사회도 문화도 정치도 경제도 아름답게 거듭나기를 빕니다. 사회와 문화와 정치와 경제 모두 아름답게 거듭나도록 저마다 즐겁게 땀흘리면서 노래할 수 있기를 빕니다. 그리고, 저마다 스스로 가장 좋아하는 빛을 찾아서 즐겁게 바라볼 수 있기를 빕니다. 스스로 가장 좋아하는 이웃을 빙그레 웃음지으면서 마주하고, 살뜰히 어깨동무하는 손길로 사진을 찍으면 아주 고운 숨결이 흐르리라 봅니다. 《나는 길고양이에 탐닉한다》는 길고양이를 노래하는 자그마한 책인데, 길고양이가 ‘길’에서 삶을 누리는 고양이임을 한결 또렷하게 느낄 만한 ‘길빛’이 흐르는 사진으로 조금 더 가다듬으면 더 좋겠습니다. 4347.6.7.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
|
내가 읽어본 길고양이 책들중 제일 맘에 들었던 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