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회주의는 철학적이고 윤리적인 충격이였으나 마르크스 이전에 이미 결제 원리로서 나타나있었다. 하지만 사회주의에 정교한 경제 이론은 마르크스에 의해서 이다. 또한 그는 사회주의에 역사성을 부여해 역사에 대한 설명에 사회주의를 포함시켰다. 사회주의자들은 그들 사이의 견해차가 아무리 현저하더라도, 마르크스의 기본 입장을 공유하고 있다. 사회주의는 자본주의를 인간적으로 변화시키거나 전복시키기 위하여 정면으로 맞서려고 한다. 사회주의 경제 이론은 자본주의가 그대로 방치된다면 경제적으로 비효율적이고, 사회적으로 분열적이며, 장기적으로 소멸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서방에서의 사회주의는 복지국가를 공고히 다진 바탕 위에 세워진 사회민주주의 즉, 온건하고 의회주의적인 사회주의이다. 사회주의를 비판하는 신자유주의 세력이 있다. 신자유주의는 두 가지 갈래가 있는데 중심 갈래는 보수주의적이다. 이것은 신우파라는 말의 기원이 되었다. 신자유주의는 세계적으로 많은 보수주의 정당들의 견해가 되었다. 이와 달리 자유시장 철학과 연관된 중요한 사고의 형태가 있는데, 이는 보수주의적 사고와는 대조적으로 경제뿐만 아니라 도덕적 쟁점에서 자유지상주의적이다. 이 책은 이런 여러 사상들의 논리를 상당히 이성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한번쯤 읽어보기에 괜찮은 책이다. |
| 사회복지는 인간을 변화시키는 전문적 기술에 의존한 실천이면서도 동시에 사회,경제적 영역과의 부단한 상호작용에 의하여 그 정체성이 확립되는 분야이다. 미국에서는 어떠한 당이 정권을 잡는가에 따라 사회복지 예산의 규모, 서비스에 있어서의 정부의 역할 등이 확연히 달라진다. 전 세계적 자본주의 경제의 침체 속에서 ‘복지’의 개념은 많은 부분 변화했다. 고등학교 때였던가, 텔레비전에서 방영된 스웨덴을 비롯한 북유럽 복지국가들과 관련된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나는 국가가 적극적으로 국민의 삶을 책임지는 복지에 대해 막연한 동경심을 가졌었다. 하지만 대학 입학 후 내가 들은 첫 수업에서 내가 들은 말은 다름 아닌 ‘복지국가의 위기’라는 말이었다. 사람들이 복지에 의존하면서 더 이상 일하지 않으려 들고, 그로 인한 생산성 저하가 궁극적으로 국가 경쟁력의 저하로 이어지면서 복지에 대한 회의감이 증대되었다는 식의 이야기. 더 이상 복지국가에는 희망이 없는 듯 했다. 전 세계적으로 복지가 축소되고, welfare 가 어느 순간부턴가 workfare 가 되어가고 있었다. 이는 과거 영국의 대처 정부와 미국의 레이건 정부가 추진했던 복지예산의 감축과 민간으로의 서비스 이양 등의 연속으로 볼 수 있을 듯 했다. 복지 서비스를 제공받기 위해서는 노동에 참여해야 된다는 사실이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발악 마냥 느껴졌던 것도 사실이었다. 복지를 권리로 인식한다면, 권리를 주장하기 위한 의무에도 충실해야 된다는 사실에 대해 나는 어쩌면 간과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과거에는 없던 의무가 어느 순간부터 당연히 행해야 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사실은 어딘가 모르게 답답하게 느껴졌다. 물론 ‘제3의 길’은 전통적 좌/우파의 구분 속에서는 어떠한 정파도 제기하지 않았던 문제점들에 대한 진지한 논의를 가능케 하는 특성이 있다. 여성, 환경, 핵 등과 관련된 문제의 경우 좌, 우 어떠한 이념적 경향으로도 분석의 대상이 되지 않았던 논쟁들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제 3의 길’은 이들에 대한 진지한 논쟁을 가능케 한다는 점에서 과거와 같은 이분법적 구분이 많이 퇴색한 이 시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부단히 좌측으로 치우친 성향을 가져서 인지도 모르겠으나, 기든스의 이야기 속에서 나는 그의 이야기가 신자유주의와 다른 것이 있다면 무엇인지에 대해 묻고 싶어졌다. 물론 그는 전통적 사회질서로의 회귀를 위한 반동적 시도에 대해서는 경고하고 있다. 하지만 그가 제3의 길을 실천하고 있다고 여기는 듯한 영국 노동당의 정치가 신자유주의와 어떠한 점이 다른지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실제로 오늘날 영국은 미국의 작은 축소판과도 같아 보인다. 빈부의 격차는 나날이 상승하고,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노숙자와 실업자들의 수 역시도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영국의 노동당은 명분없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등, 경제적 우위를 통한 전 세계의 미국화를 꿈꾸는 부시 정권에 맞서 어떠한 반대 급부도 형성해내고 있지 못하다. 여전히 토니 블레어의 노동당을 중도좌파로 정의내릴 수 있는 것인지, 노동자들의 요구에 대해 부응하지 못하는 현실에 대해서는 어떻게 판단을 해야 될지 나로서는 난감할 뿐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여전히 나에게는 신자유주의와 제3의 길 사이의 명확한 구분이 어렵다. 가끔씩은 자본주의의 유지라는 거대한 틀 속에서 벗어나지 못한 현실에 대한 타협의 일환으로 제3의 길을 받아들이기도 한다. 혹시라도 기든스의 영국 노동당에 거는 기대가 깨어졌다면,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현실 사회에서 기든스가 이야기하는 ‘제3의 길’을 걷고 있는 국가는 존재치 않는다고… |
| 고등학교 때 오빠의 레포트를 대신 해준게 기억난다. 그때는 신자유주의가 무엇이고 사회주의가 무엇인지도 알지 못했다. 단지 그때는 무턱대고 읽고, 몇가지 짜 맞추는 식으로 오빠의 숙제를 대신해준 것 밖에 기억이 안 난다. 그리고 책 자체가 상당히 어렵다는 것 정도, 그리고 그 이후 (고 3때 나왔던 책이니까) 벌써 2년이 지났다. 그 당시에는 제3의 길이 대단한 반향을 일으켰고 어느 대학의 교수님이나 그 책을 대학생이면 읽어보라고 아니면 아예 대학교재로 나갈 정도였으니까 그 대단한 영향력에 대해서는 두 말할 필요가 없다. 우선 이 책에서 제시하고 있는 제 3의 길이란 무엇일까? 우리는 냉전 시대의 종말 이후 자본주의 혹은 사회민주주의 기로에 서서 양극단적인 이데올로기의 치우침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알 수 있었다. 그것은 간혹 사회주의의 실패, 그리고 자본주의의 즉 시장 경제 체제 실패등으로 대두되었고, 이에 각국의 이데올로기 채택 방식에 있어서 새로운 길의 모색과 활용이 제기되고 있었다. 이에 영국의 블레어 총리는 앤서니 기든스의 이론을 채택하는 방식으로 자신만의 노선을 구축하고자 했다. 그것이 제 3의 길이다. 이런 제3의 길을 규정하는 가장 평범한 방법은 '제3의 길'이라는 책에서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쌍방 부정의 방법으로 제시하는 것이다. 사회주의도 아니고 자본주의도 아니란 말이 된다. 세계의 냉전 체제의 종결로 인하여 이제는 사회주의니 자본주의니 하는 구분은 필요가 없어져 버렸고 이는 새로운 세계로 접어들면서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이념이 아닌 새로운 제3의 길이 모색되어야 하며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이념 양분으로 인한 위험에서 벗어나야 함을 시사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문학작품만 주로 읽던 나에게 세상을 돌아보고 또한 앞으로의 세상을 그려 볼 수 있었던 중요한 책이 아니었나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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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제3의 길을 말하는 것은 시대착오를 넘어서 뭔가 크게 착각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조금은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최근 한국의 정치적 상황들 때문인 것 같다. 토니 블레어로 대표되는 제3의 길과 중도좌파 혹은 중도라는 정치적 입장은 결과적으로는 말장난에 불과하고 아무런 변화도 만들어내지 못한 이념이고, 그것을 지향한 집단으로 비춰질 수 있을 것이다. 자신들을 지지하던 지지자들이 전부 등을 돌리게 만드는 정책을 펼쳤고 대안을 제시하기 보다는 기존의 (신자유주의라고 불리는) 정책들을 일관적으로 혹은 더 무모하게 밀어붙이는 성향도 보이는 등 자신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전혀 인식하지도 못했다. 보다 현실적이면서도 이상을 추구한다고 주장했지만 결과적으로는 현실적이기만 했고 이상은 말로만 했을 뿐이었다. 혹은 머리 속에서만 남겨져 있었거나. 그런 제3의 길 혹은 중도좌파의 이론적 토대가 되고 그들의 문제의식을 가장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앤서니 기든스의 ‘제3의 길’은 짧은 분량이면서도 제3의 길이 어떤 문제의식을 갖고 사회를 바라보고 있는지 그리고 그들이 자주 말하고 있는 문제점과 그에 대한 가장 현실적인 답안은 무엇인지에 대해서 (아주) 간략하게 설명하고 있다. 기든스의 문제의식은 분명 적절하고 날카로운 부분이 있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일반론적인 수준에서 머물고 있다. 여성과 가족, 환경문제와 세계화에 대한 그의 생각들은 인상적이기는 하지만 세밀한 면이 부족한 것 같다. 본인도 인정하듯이 최대한 간략하게 논의를 진행했기 때문에 생겨난 문제점이기는 하지만 현실적인 처방을 내려야 한다는 목표도 갖고 있는 제3의 길이라는 이념이 보여주는 해답이라는 것이 구체적이지 않다는 것에 실망스러운 기분도 든다. 그리고 제3세계의 빈곤문제나 기타 여러 가지 문제점들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고 있는 수준이지 직접적인 문제의식을 갖고 있지는 않은 것 같은데, 이런 생각을 토대로 하게 된다면 기든스의 제3의 길은 결국 유럽의 시각에서만 바라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기든스가 유럽중심주의에 빠져 있지는 않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그의 글에서는 특별히 세계화에 대해서 보다 풍부한 시각을 엿보기도 힘들기 때문에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본인도 인정하듯이 그는 과거의 케인즈와 비슷한 일종의 개량주의 혹은 수정주의자라고 볼 수 있는데, 케인즈와는 다르게 보다 직접적이고 현실적인 처방이 부족하기 때문에 그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입장에서는 그의 논의는 학술적이고 이론적이지도 않고, 현실적이고 직접적이지도 않은 논의일 뿐이며, 새롭고 신선한 무언가를 원하는 정치인들에게나 즉각적인 영감을 안겨주고 환호를 받을 수 있는 여지만 많다고 생각하게 된다. 기든스는 말미에서 토니 블레어 정권에 대해 말뿐인 공허함 보다는 보다 알찬 결실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는데, 이건 블레어만이 아니라 그에게도 필요한 말이었다. 어쨌든 그의 지적대로 제3의 길은 그의 의도와는 다르게 새롭게 보이기는 했지만 그건 수사적인 새로움일 뿐이었다. 하지만 정치인들이 제3의 길을 써먹고 실패했다고 제3의 길에 대한 모든 것을 부정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부분적으로 기든스의 논의 중에서 분명 지금 가장 중요한 문제로 생각할 필요성이 있는 부분도 있고, 그의 분석을 지속적으로 언급할 부분도 있기 때문에 쉽게 묻어버리기도 아까운 구석도 있다고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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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후변화의 정치학>과 <이제 당신 차례요, Mr. 브라운>에 이어 세 번째로 기든스의 저작을 읽었다. 출판 시기와는 정반대로 읽은 셈이다. <제3의 길>이라는 책이 있다는 것은 이번에 알았다. 그동안은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가 유럽의 사회민주주의에 대한 새로운 대안으로 ’제3의 길’이라는 것을 내세웠다는 정도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영국이 이라크 전쟁 등 미국의 대외정책에 늘 동참했다는 사실과 언론의 선정적인 보도(예를 들어 ’부시의 애완견’같은...) 때문에 블레어 총리에 대해서는 호감보다 반감이 많았다. 역자인 한상진 교수는 이 책이 ’학문적인 저술’이라고 규정하면서 독서 방법을 제시한다. 첫째는, ’제3의 길’이 과거에도 논의된 적이 많기 때문에 개념의 구조를 명확히 밝히는 것이다. 기든스는 과거에 ’제3의 길’을 주창한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자본주의도 아니고 사회주의도 아닌 것으로 애기하고 있다. 다만, 기든스가 다른 점은 고전적 의미의 좌우대립을 극복하고 인류 문명의 새로운 도전으로 ’세계화(Globalization)’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사고함으로써 종래의 ’제3의 길’과 다른 세계주의적(Cosmopolitan) 민족, 정치, 담론, 정체성 등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렇지만, 과연 자본주의도 아니고 사회주의도 아닌 ’제3의 길’의 단점은 무엇일까? 둘째는, 이 책을 기든스의 전체 저술과 연관시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든스는 1970년부터 영국의 케임브리지 대학, 미국의 하버드 대학, 버클리 대학, 스탠퍼드 대학에서 가르친 바 있고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의 주요 대학에서 초빙교수로 강의했다. 기든스는 ’구조화 이론(Structuration)’으로 명성을 얻었고 ’현대성(Modernity)’를 둘러싼 서구의 논쟁에서 독보적 위치와 역량을 인정받았다. 그리고 30년 간 30 권의 저서를 출판했고 많은 주제를 다루었다. 이 책은 거시적인 문제를 보다 실용적인 차원에서 다루고 있다. 즉, 좌우 이념의 대립을 넘어 실사구시의 관점에서 국가와 경제, 시민사회의 관계를 탄력적으로 재구성하려는 목표를 갖고 있다. 셋째는, ’제3의 길’을 오늘의 서구사회의 변동에 접목시켜 이해하는 방법이다. 서구사회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사회민주주의를 기반으로 역사적 대타협을 통해 복지국가의 길을 가고 있었으나 1970년대 들어 많은 비판을 받고 있었다. 누적되는 국가의 재정 적자, 비대해진 국가 관료제, 시민사회 기능의 약화, 국민의 노동 의욕 감소, 국가 경쟁력 하락 등이 그것이다. 그런 과정에서 경쟁과 효율, 개인의 선택과 창의성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가 세력을 얻게 되었다. 서구 복지국가가 위기에 빠진 이유 중에는 금융을 핵으로 하는 경제의 세계화도 포함되어 있다. 이런 변화된 현실에 대한 새로운 대응이 바로 이 ’제3의 길’이었다. 넷째는, ’제3의 길’을 한국사회에 적용하여 이해하는 방법이다. 이 네 번째가 가장 중요하다. "’제3의 길’이 우리에게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가? 있다면 누가, 어떻게 ’제3의 길’을 실천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을 가지고... 서구처럼 사회민주주의의 전통이 없더라도 ’제3의 길’을 요구하는 역사적 경험은 한국사회에도 필요하다. ’제3의 길’이 한국사회에 특히 필요한 이유는 한국사회에 여전히 고질적인 좌우 이념 대립, 지역 대결 구도, 노사간의 갈등과 반목, 세대나 남녀간의 불신, 사회적 양극화를 극복하는데 ’제3의 길’을 둘러싼 논의가 크게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기든스가 무엇을 주장하는지 살펴보겠다. 이 책은 서문과 결론, 그리고 5개 장의 본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문]에서 기든스는 1970년대 말까지 유럽을 지배했던 ’복지에 대한 합의’의 파괴,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돌이킬 수 없는 불신, 그리고 이런 현상들을 불러일으킨 매우 중대한 사회적, 경제적, 기술적 변화로 인해 사회민주주의의 미래에 대한 논쟁이 제기되고 있다고 분석한다. 그는 실천적으로나 이념적으로 사회민주주의가 앞으로 살아남을 수 있고 더욱 발전할 수 있음을 믿는다고 선언하면서 그렇게 되려면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여태껏 해온 것보다 더욱 철저하게 기존 견해를 수정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만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기든스는 1980년대 들어 보수당과 대처는 자유시장의 기치를 내세워 영국사회 전체의 변화를 강하게 촉진하면서 20년 넘게 영국 정치를 지배했음을 재확인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노동당은 구좌파의 견해만 반복하면서 패배를 자초했다고 평가한다. 제1장. [사회주의와 그 이후] 기든스는 소련의 멸망과 해체로 ’사회주의의 사망’했음을 선언한다. 마르크스의 "사회주의 경제이론은 늘 자본주의가 쇄신하고 적응하여 생산을 증가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는 점을 과소평가했다."(p.36) (저자 스스로는 지속적인 연구를 통해 ’현대성’과 같은 새로운 개념을 개발하고 수정하면서 고전적인 마르크스주의와 변화,발전한 ’사회주의 이론’을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대한 내 자세한 입장은 여기에 풀어내기는 어려우며, 단지 소련의 멸망을 도식적으로 ’사회주의의 사망’이라고 단언하기는 어렵다고 말하고 싶다.)서유럽에서는 사회주의가 사회민주주의라는 이념으로 변화하여 잔류하였고 전후 30년 동안 정치이념과 정치세력으로 발전해온 것이다. 하지만, 사회민주주의는 마르크스의 ’사회주의 경제이론’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채 ’복지국가 시스템’을 중심으로 정체하면서 1980년대 들어 사회적, 경제적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고 신자유주의에 자리를 내준 것이다. 기든스는 비교표를 통해 구식 사회민주주의와 신자유주의의 원리의 비교한다.(기든스는 사회민주주의와 신자유주의의 특징을 잘 비교하고 있음에도 철학적, 이념적 배경과 내용, 그 과정에 대해서는 깊게 분석하고 있지 않다. 어쩌면 유럽 사회 대부분의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이 기든스와 비슷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1980년 이후 유럽 사회의 경제구조와 인구구성의 변화, 민중들의 태도와 입장의 변화, 정치적 지지 구조가 변하였음을 지적하면서 유럽 사회민주주의 정당들 사이에서 진행되는 최근(1990년대 후반기)의 토론을 소개한다. 사회민주주의의 운명을 바꾸기 위해서는 정책적인 변화가 필요함을 역설한다.제2장. [다섯 가지 딜레마] 기든스는 1980년대 중반 이후 사회민주주의에 대한 논쟁에서 크게 부각된 ’다섯 가지 딜레마’에 대한 관점을 제시한다. 그것은 ’범세계화(globalization)’, ’개인주의(individualism)’, ’좌파와 우파(left and right)’, ’정치적 행위체(political angency)’, ’생태적 쟁점들(ecological problems)’이다.’범세계화’가 경제적 상호 의존 뿐만 아니라 통신 혁명과 정보기술 확산, 사람들의 생활에서 시간과 공간의 변형에 관한 것이기도 함을 지적한다. 그것은 새로운 초국가적 체제와 세력을 창조하면서 동시에 특히, 선진국에서 일상 생활과 제도를 변화시키고 있다. (하지만, 기든스는 세계화 확대, 심화를 위해 주체적으로 작동하는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에 대해서는 철저히 분석하지 못하고 있다.) ’개인주의’는 단순한 시장의 영향이라기보다는 넓은 의미에서 범세계화의 충격에 수반되는 현상이며, 부분적으로는 ’복지사회’가 창출한 바로 그 풍요의 결과로서 생활 양식이 다양해짐과 더불어 문화적으로 더욱 다원회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좌파 및 사회민주주의 이론가들은 ’개인주의’에 대해 제대로된 해석과 입장을 내놓고 있지 못하다.(세계화가 ’개인주의’의 주요 원인이라는 저자의 분석은 틀린 것 같다. ’개인주의’는 봉건주의가 해체되고 자본주의 경제양식이 사회를 지배하면서부터 시작된 것이라 생각한다. ’세계화’는 ’개인주의’를 더 가속화시키고 ’개인’을 빈부격차로 양극화시키고 있을 뿐이다.)저자는 경제이론으로서의 사회주의가 사망함으로써 좌파와 우파를 나누던 중요한 구분선 중 하나가 사라졌고 환경이 변화하면서 좌우파 구도의 범주에 없던 새로운 문제, 즉 지구온난화, 노동, 가족, 원자력, 권력이양, EU들이 나타나면서 ’좌파와 우파’에 대한 새로운 범위 설정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그럼에도 그는 좌파 쪽에 선다는 것은 사회적 정의와 해방의 가치, 그리고 평등의 목표를 추진하고 여기에는 정부가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것을 주장한다.’정치적 행위체’와 관련하여 저자는 시장이 대체할 수 없는 정부의 목적과 역할을 규정하면서 1980년대 국민들의 탈정치화 과정과 영향력 고갈이 시민사회 세력에서 정치 참여와 행동주의로 나타나고 확산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러한 집단들이 정부가 실패하고 있는 영역들을 인수하거나 정당의 지위를 대체할 수 있다는 생각은 환상이며, 다만 정부는 이러한 집단들로부터 배우고 그들이 제기하는 쟁점에 반응하고 협상하여 문제들을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생산직 노동자로 구성된 노동당의 지지구조와 노동조합에 지분을 할당한 의사결정방식을 바꾸지 않는 한 저자의 주장이 노동당에 반영되기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시민사회와 결합도 여의치 않을 것이며, 이러한 상황은 또 다시 노동당의 약화를 가져올 것이라 생각한다.)’생태적 쟁점’에 대해 저자는 ’생태적 현대화’가 필요함을 주장한다. 이는 정부와 업계, 온건한 환경주의자, 그리고 과학자들이 환경적으로 보다 옹호할 만한 입장을 좇아 자본주의 정치 경제를 재구조화하는 데에 협력하는 형식의 동반자적 관계를 의미한다.기든스는 ’제3의 길 정치’의 전반적 목표가 ’다섯 가지 딜레마’ 속에서 시민들로 하여금 새로운 길을 개척하도록 돕는 것이라고 말한다. 범세계화에 대해 긍정적인 자세를 취하고 좌우의 구분을 벗어나는 질문의 범위들이 이전보다 더 넓어지고 있음을 인정하는 동시에, 사회 정의에 대한 핵심적 사항들을 보존해야 한다. 평등과 개인의 자유는 충돌할 수도 있지만 평등주의적 조치들은 종종 개인에게 열리 자유의 범위를 확대한다. 자유란 ’행위의 자율성’을 의미해야 하며 ’책임 없이 권리 없다(no right without responsibilities)’를 새로운 정치의 모토로서 제시할 수 있다. 제3장. [국가와 시민사회]에서 기든스는 새로운 민주국가는 ’적이 없는 국가’이어야 함을 정의하고 새로운 국가의 역할은 권력의 지방이양, 이중 민주화, 공공 영역의 쇄신과 투명성, 행정적 효율성, 직접민주주의의 메커니즘, 위험성 관리자로서의 정부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활기넘치는 시민사회 육성은 ’제3의 길 정치’의 기본적인 일부분이며, 시민사회의 쇄신을 위해 정부와 시민사회의 동반자 관계 구축, 지방 주도를 통한 공동체 쇄신, 제3부문의 관여, 지방 공공 영역의 보호, 공동체에 기반한 범죄 예방, 민주적 가족이 필요함을 이야기한다. 가족 관점에서의 민주화는 평등, 상호존중, 자율성, 소통을 통한 의사 결정, 폭력으로부터의 자유를 뜻한다. ’민주적 가족’을 위해 정서적 성적 평등, 관계에 있어서 상호 권리와 책임, 공동 양육, 평생 양육 계약, 아이들에 대한 타협적 권위, 부모에 대한 아이들의 책무, 사회적으로 통합된 가족이 필요함을 주장한다. 제4장. [사회투자 국가]에서 저자는 ’제3의 길 정치’에서 경제분야는 ’신혼합경제(new mixed economy)를 옹호함을 말한다. ’신혼합경제’란 공공 부문과 민간 부문 사이의 상승 효과를 추구하며, 공익을 염두에 두고 시장의 역동성을 이용하는 것이다. ’제3의 길 정치’에서 평등은 ’포용’을, 불평등은 ’배제’를 의미하며, 포용적인 사회를 위해 포용으로서의 평등, 제한적인 능력지배, 공정 영역의 부흥, 노동사회를 넘어서, 적극적인 복지, 사회투자 국가가 필요함을 주장한다. 제5장. [범세계화 시대로]에서 저자는 범세계화 시대에서 사회민주주의자들은 민족의 새로운 역할을 모색해야 함을 선언한다. 그는 민족주의의 분열적인 속성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며, 이러한 속성을 제어하기 위해 필요로 하는 것은 바로 민족에 대한 세계주의적 해석임을 주장한다.그는 범세계화 과정들은 권력을 국가로부터 탈정치화된 범세계적 영역으로 이전시켰으나, 다른 사회적 환경과 마찬가지로 혹은 그것의 보편적 중요성으로 보아 훨씬 더 이런 새로운 영역은 권리와 의무를 도입하는 규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유럽연합(EU)은 대중적인 지지를 잃어 가고 있는 동시에 유럽 시민들의 삶에서 점점 더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지적한다. 그는 EU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유럽의회의 보다 큰 권력을 보다 효과적인 초국가적 정당 조직과 연결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세계적 규모에서 시장근본주의가 많은 문제를 야기하고 있기 때문에 저자는 세계경제에서 특히, 금융시장을 규제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통화의 과도한 회전과 남발을 진정시키고 통제하는 것, 단기적 통화 투기와 투자를 분리하는 것, 그리고 세계경제 관리에 참여하는 초국가적 조직을 재편할 뿐만 아니라 그 조직에 대한 책임성을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로부터 새롭게 많은 것을 배웠다. ’제3의 길’에 대한 문제의식과 아이디어, 그리고 정책들, 마찬가지로 현대성, 개인주의, 정치적 행위체, 이중 민주화, 민주주의의 민주화, 직접민주주의, 민주적 가족, 행위의 자율성, 신혼합경제 등은 새로운 개념이자 사고 구조를 확대시켜 주었다. 국가의 역사, 정당의 역사, 이념의 역사 등 상당히 중요한 측면에서 영국과 한국이 다르기 때문에 기든스의 생각과 의견이 한국에 그대로 적용되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도 아이디어와 정책에서 많은 부분을 비교하고 시도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을 읽고 나면 기든스가 이야기하는 ’제3의 길’이 어떤 배경에서 제기된 개념인지, 정치적 태도와 입장은 무엇인지, 주요 정책이 무엇인지를 자세하게 알 수 있다. ’제3의 길’이 앞으로 어떤 변화와 발전, 실적을 보여줄지 관심을 가져야 할 것 같다.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사회주의와 사회민주주의가 어떻게 다른지, 사회민주주의의 철학과 이론이 무엇인지, ’제3의 길’이 사회민주주의와 어떻게 다른지, ’제3의 길’의 철학과 이론이 무엇인지 알아내기는 어렵다. 기든스는 학문적으로 ’제3의 길’을 풀어내려고 했지만, 결국 현실 정치에서 필요한 정책을 제시했을 뿐이다. <기후변화의 정치학>과 <이제 당신 차례요, Mr. 브라운>을 읽고서도 느꼈지만, 앤서니 기든스같은 저명한 학자이자 정치가가 정당에 참여하여 활동하고 있는 영국이 부럽다. 특히, 그의 철학이나 이념적 배경이 무엇이던간에 자유와 평등주의, 민주주의, 취약계층에 대한 애정, 시민사회 육성, 국가 개입, 합리적인 사고방식에 대한 마인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영국 민중들에게는 행운이다. 역자인 한상진 교수의 말대로 이 책은 "세계를 휩쓸고 있는 신자유주의의 물결 앞에서 시장경제의 논리와 시민적 연대 및 정의의 원리를 결합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 같다. 한교수는 <제3의 길>을 두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진보적 지식인의 최소한의 양식과 개방적 사고를 상징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고 말한다. 그 이유는 이 책이 처음 발간된 이후 "영국, 프랑스, 독일 등 많은 나라들에서 ’제3의 길’을 표방하는 중도 좌파 정부가 집권한 상태이기 때문에 현실적인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 2011년 6월 25일 ] |
| 나는 일개 소시민에 불과하지만 오늘날의 세상에 대해서 고민이 많다. 머리에 먹물이 든 사람들의 문제가 그런 것일 것이다. 아무 것도 하지는 못하면서 늘상 고민만 하고 있다. 제 3의 길이라는 이 책이 처음 나왔을 당시, 사람들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던 기억이 난다. 친구들을 찾아가보면 누구할것 없이 모두 이 책을 손에 들고 있었다. 찾아가던 나도 그 책을 들고 찾아 갔으니까... 그러면서 사람들은 이야기를 했다. 과연 제 3의 길이 대안이 될 것인가라고? 오늘날 토니 블레어를 보면 제 3의 길은 답이 아닌것 같다. 사람들은 신자유주의는 대안이 없는 대세라고 말하기 시작한다. 정말 그러한가. 나는 아직도 제 3의 길이 있다고 믿고 싶다. 꼭 이 책에서 말하는 방식의 제 3의 길이 아니더라도 다른 형태의 길이 만들어질 것이다. 아마도 세상 어느 구석에서 태동하고 있을 것이다. 토니 블레어에 대해서 너무 실망하지 말자. 누구든 권력을 잡으면 보수주의로 변화하기 마련이니까 말이다. |
| 기든스가 블레어의 옆에 있으면서 그 정책적, 정치적 입장을 펴낸 책이 바로 '제3의 길'이다. 이 책은 한마디로 좌우 이념 대립이 끝난 시점에 새로운 상상력의 화두를 던져준다. 특히 그가 책을 쓸 당시 영국, 프랑스, 독일 등에서 중도좌파가 집권한 상태라 그의 제안은 현실적인 비중이 있었으며, 더군다나 신자유주의를 넘어서 새로운 '시장경제 논리'와 '시민적 연대'를 추구하려는 것이 목표라면 쌍방부정이나 절충주의가 아닌, 진정한 범세계적 지양점이 제3의 길에서 제시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구조화 이론에서 보여줬던 기든스의 탁월함은 수용하지만, 이런 정치적 모호함은 거부하고 싶다. 물론 그의 입장이 거시정치의 영역에서만 구성되어 그런 모호함이 도드라져 보이는 것일 수 있지만, 현대 사회민주주의의 부활이 그런 사회경제적 변혁틀에서 적절하게 성취될지 의문이다. 나는 그 속에 깔린 진보적 사관과 목적론은 허상에 가깝다고 본다. 새로운 복지 개념은 어떻게 가능할까? 이 책의 역자인 한상진 선생님에 의해 제3의 길 모델이 한국에도 수용되었지만, 김대중 정부 초기의 생산적 복지 개념과 여타의 정책들은 신자유주의적이거나 대처리즘에 지나지 않는다며 비판받았던 것처럼 현실은 그렇게 호락호락해 보이지 않는다. 무조건 제3의 무엇을 제시하는 것이 꼭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
| 이 책은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암시해주고 있다. 사회주의 이후 민주주의 속에서, 중도적인 입장에서의 길을 말하려고 한 것 같다. 신자유주의의 부상과 함께 정치, 경제, 사회 등의 분야에서의 변화와 문제점들도 함께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20c말 세계경제가 자본주의 단일체제로 전환하면서 지역간의 상호 의존성이 높아지고 이로 인해 세계화가 시작되어 오늘날의 세계화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이에는 경제권 패권주의로 나아가는 경향이 많아 문제점이 대두되고 있다. 이 책에서는 국가, 민족, 문화 다원주의와 복지국가, 민주주의를 통해 앞으로의 길을 모색케 하고 있다. 또한 마지막에 사회, 정치, 경제, 철학 등 다양한 분야의 생소한 용어를 깔끔하게 잘 정리하고 있어, 많은 도움이 된다. 인문 사회계열 학생들은 한번쯤은 읽어 볼 책이라고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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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길도 저 길도 아닌 세번째의 길 제 3의 길
좀 많이 어려운 책이다. 특히 나처럼 세상에 대한 관심은 있지만 깊게 빠져들어 있지 않은 사이비들에게는 특히. 가뜩이나 어려운 내용에 리뷰 쓴다 뭐한다로 리듬을 잃어 더더욱 어렵게 느껴진 책이다. 읽는 도중 끝까지 읽어야 하는가에 대한 깊은 회의와 망설임 그러나 중간 중간 알고 싶은 내용에 대한 문구나 구절이 있어 다행이 끝까지 읽을 수 있었다. 제 3의 길이란 결국 극단으로 치닫는 좌파와 우파에 대한 대한 대안적 묘색이라 볼 수 있다. 보수적 성향을 띄고 있는 극단적인 우파의 무한 경쟁과 시장 원리와 개인의 능력을 외면하는 진보적 성향의 좌파 이 둘 사이의 적절하고 옳은 생각을 뽑아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대안으로의 제 3의 길, 그것은 중도의 길이다.
좀 난해한 내용에 난해한 해결책이다. 저자는 반드시 제3의 길이 도래할 것이며 도래해야 한다고 하는데 다행 문제를 해결하고 좋은 방향으로의 중도면 좋은데 때로는 개선이 아니라 개악이 되면서 그럴 듯한 중도로 포장될 수도 있겠다.
한국 중심의 글이 아닌 민주사회주의가 발달한 유럽 중심이라 내용 이해의 접근성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이러한 정책에 대해서 관심이 많은 사람은 읽어 도움이 되겠지만 그렇지 않고 상식 수준의 얕은 지식으로 무장하고 책을 읽게 되면 뒷골이 땡기고 남은 장수를 헤아리느라 내용에 집중하기 많이 어려울 수도.. 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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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앤서니 기든스는 제 3의 길을 영국의 토니 블레어 총리와 함께 미국의 자유주의, 시장 경제의 주류 흐름에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였다. 많은 대다수의 나라가 미국의 스탠다드를 따라가는 동안에 나타난 많은 병패에 대해서, 새로운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이것은 유럽에서 탈 미국을 선언하는 작은 움직임이라고 해도 할 수 있는데, 정치, 사회, 경제의 큰 틀을 경쟁의 관계라고 볼 수 있는 시장 원칙에서 벗어나서, 신자유주의를 주도한 미국의 경향을 반대한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사회주의의 사망이후, 딱히 민주주의 정치 경제 사상에 대응할 것없이 보이던 상황에서, 평등을 중시한 인본적인 사상을 제시하였다. 국가와 시민사회의 관계를 제조정했고, 함께 미래를 지향하는 공동체 복원과 민주적인 가족의 제시하였고, 사회 투자 국가, 함께 살아가는 사회, 적극적 복지사회를 꿈꾸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조금 이것도 아닌 저것도 아닌 대안을 제시할 수 있다. 과연 그런 제 3의 길이 현재 존재하는 정부의 시스템에서 작동할 수 있을 련지도 의문이된다. 그러나 하나의 세계를 강요하는 분위기 속에서 이런 모습이 세계를 정치를 사회를 더욱 다양하고 다채롭게 해 줄 것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