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7. 7. 27. 《출가, 세속의 번뇌를 놓다》 (사사키 시즈카 지음, 원영 옮김, 민족사) 읽기를 마치다
* 책 한 권을 읽고 이렇게 ‘좋은 느낌’을 갖기도 쉽지 않다.
문학 작품이나 다큐멘터리에서라면 진한 감동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그 딱딱한 《율장》을 主 재료로 삼아 이렇게 맛난 음식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 놀랍기만 하다.
얼마 전 같은 저자가 쓰고 이자랑이 우리말로 옮긴 《인도불교의 변천》은 학술서라 무거웠지만,
이 책 《출가, 세속의 번뇌를 놓다》[原題는 出家란 무엇인가?]을 읽는 내내,
“오늘 한 장이라도 더 읽어야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이 아닌데, 다른 일을 하면서 4일 만에 책 한 권을 일독한 것도 오랜만의 일이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돋보기를 끼기 시작하면서부터 책 읽는 속도가 아주 느려졌다.]
굳이 점수를 매기라고 하면, 별 다섯[5]개를 주어도 아깝지 않다.
다만 《불교평론》여름호에서 김호성교수도 ‘옥의 티’로 지적했듯이,
번역본을 내면서 제목을 새로 잡는 데에 문제가 있었고,
최소한의 역자 주석이 없었던 것이 아쉬울 뿐이다.
그렇지만, 원영스님의 번역도 깔끔해서 읽어나가면서 그리 어색한 표현은 별로 눈에 뜨이지 않았다.
* 31쪽
이 에피소드[사천왕이 천계에서 내려와 부처님께 발우를 바치고, 두 상인에게 공양을 받으신 일]는 불교사상 최초로 재가신도의 출현을 말하는 것으로서 대단히 중요하다. 그러나 그보다도 더 주목해야 할 것은 바로 발우의 사용이다. 발우는 사람들로부터 음식물을 받기 위해 사용된다. 즉 걸식생활의 상징이다. 그때까지 발우를 가지고 있지 않았던 석가모니가 이때 처음으로 발우를 사용했다고 하는 얘기는, 그 후 불교가 걸식생활에 의해 생계를 유지해 간다고 하는 출발점을 명확히 보여준다. 앞에서 불교교단에 최초의 신도가 생겼던 것처럼, 재가신도에 의한 출가자의 부양이라고 하는 불교교단의 기본적 경제 시스템의 성립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 42 ~ 44쪽
사의(四依)라고 하는 원칙이 주장하고 있는 것은, 재가자의 지원을 받을 수 없을 경우에 출가자 스스로가 채용할 수 있는 생활 방법이 이것밖에 없다라고 하는 것이다.
…
사의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바뀌지 않는 기본적인 원칙이었다.
분소의, 걸식, 수하주, 진기약이라고 하는 이 네 가지 생활조건은 그 모두가 엄격한 생활을 요구하는 규정이다.
…
생활의 근본이 되는 음식물 공급을 속세 사람들의 호의에 전적으로 의지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는 이 규정이야말로, 불교 승단과 속세와의 관계를 결정짓는 무엇보다도 중요한 점이다.
불교 승단이라고 하는 섬 사회는 물질적 생활기반을 속세에 완전히 의지하는 것으로 존속되고 있다. 속세의 호의가 끊어진 시점에서는 어쩔 수 없이 소멸할 수밖에 없는 특성을 가진 사회이다. 이것은 불교 승단의 상황을 고려할 때,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할 사실이다.
* 49쪽
개인에 대한 규칙은 벌칙을 동반하는 금지령의 성격을 갖는 것이다. 한편, 승단 전체에 관한 규칙은 행사집행 매뉴얼의 양상을 띠는 것이다. … 개인에 대한 금지령이 바라제목차 및 경분별이며, 승단의 행 집행 매뉴얼이 건도가 되는 것이다.
* 54 ~ 55쪽
율장은 승단의 법률이기 때문에 어느 승단에도 반드시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법률이 없는 국가가 있을 수 없는 것처럼 율장이 없는 승단 또한 있을 수 없다. 불교 승단이 독자적 생활규범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출가자와 재가자의 구별이 없어져 그 승단은 일반사회 속에서 독립성을 유지할 수 없게 된다. 누가 스님이며, 누가 일반인인지 알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불교 신도는 있더라도 승단은 존재하지 않는 이상한 사태가 발생하게 된다. (일본불교가 이에 가까운 상태이다.)
…
현재 완전한 형태로 전해지고 있는 율은 6종류나 된다. 이 사실은 승단이 단일성을 지킬 수 없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불교 승단은 긴 역사 속에서 분열을 계속해 왔던 것이다.
* 58 ~ 61쪽
불교 승단에는 반드시 율이 존재한다고 이상에서 설명했다. 그렇다면, 일본불교의 승단은 어떠한 율을 사용하고 있는 것일까. 실은 어느 것도 사용하고 있지 않다.
일본에 불교가 처음으로 도입된 당시에는 국가불교로서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즉 불교란, 당시의 국가권력이 일본을 통치하기 위해 수입한 신사상이었으며, 비구나 비구니는 그 국가 프로젝트의 실행원, 즉 국가공무원인 셈이었다. 국가공무원이 자신들의 독자적 법률을 만들어 독립공동체를 운영한다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국가공무원은 무엇을 하더라도 국가의 규칙에 따라야 하는 존재이다. 따라서 당시의 불교는 율장을 기반으로 한 승단생활을 도입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이 일은 일본불교의 형태에 매우 커다란 문제를 야기하게 되었다.
불교의 본래 목적은 출가자가 되어 수행을 하고, 생존의 고통을 제거하는 것이다. 깨달음을 향해 철저히 수행하기 위하여, 수행자는 일체의 생산 활동을 포기하고, 재가자들의 보시에 의지하여 생계를 유지해야만 한다. …
그러나 일본불교의 경우에는 율장에 따른 출가생활이라는 것이 처음부터 거부되어 왔다. 물론 감진(鑑眞) 화상 등의 노력에 의해 출가의식만큼은 전해지게 되었다. 그렇다 해도 그것은 국가공무원으로서의 비구, 비구니를 생산하기 위한 서류상에 불과한 것이었다. 율장을 엄격히 지키는 자야말로 진정한 출가자라고 하는 원칙은 무시되었던 것이다.
출가의식은 율장에 엄격히 규정된 중요한 의식이다. 따라서 승단이 율장을 엄수하는 형태로 운영된다면, 그 의식이 제멋대로 바뀌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율장 자체가 정착되어 있지 않은 일본불교에서 출가의식을 변경했다 하더라도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의식의 정통성을 뒷받침하기 위한 율장이 권위를 가지고 있지 않으므로 어떠한 형태로 출가한다 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마침내는 감진이 가져온 출가의식까지도 포기하게 되었다. 그 결과 일본불교는 교단마다 서로 다른 의식을 채용하게 되었다. 특정 교단이 인정하는 출가의식 절차를 통과하고, 그 단체가 인정하는 출가자의 생활형태를 지키는 자는 설령 그것이 율장과는 동떨어진 것이라 하더라도 교단에 있어 출가자로서 정신으로 인정된다고 하는 특수한 상황이 출현하게 된 것이다. 그것도 본래의 율장을 그대로 지키는 집단은 어디에도 존재하기 않기 때문에 그 다양한 불교단체 속에서 어느 것을 정통이라 하고, 어느 것을 사이비 교단이라고 해야 할지, 판단 근거는 누구도 제시할 수가 없다. 이렇듯 진정한 승단을 갖지 못한 일본불교는 매우 다양한 불교세계를 형성하기에 이르게 되었다.
일본인은 율장이 없는 불교라고 하는 매우 특수한 세계에 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고대인도의 불교에 대해서도 곧잘 같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당시의 인도불교는 율장이라고 하는 절대적인 권위에 의해 규제되고 있었다. 율장을 갖지 않은 불교 승단은 찾아볼 수도 없다.
- 내가 이 긴 문장을 옮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것이 곧 한국 불교에 그대로 해당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 98 ~ 99쪽
한 화상이 둘 수 있는 제자의 수가 특별히 제한되어 있지는 않다. 단 각 제자들에게 두루 지도가 미치지 못할 만큼 많은 제자를 두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
아이의 교육 기간이 지나더라도 부자 관계에는 변함이 없는 것처럼, 화상과 제자와의 관계도 의지(依支) 기간을 넘어 오랫동안 지속된다. 어떤 사미나 비구라도 자기의 화상은 반드시 있으며, 또한 한 사람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비구가 되어 5년이 지난 의지할 필요가 없어져 자립한 후에도 화상에 대해서는 아버지를 대하는 것처럼 존경심으로 받들어야 하며, 어느 정도의 시봉도 의무로 되어 있다. 만약 자기의 화상이 죽거나 없어졌을 경우에도 친아버지를 대신할 사람이 없는 것처럼 다른 비구를 화상으로 삼을 수는 없다. 화상이란 진정 출가자 세계의 아버지인 것이다.
- 그러나 현재 한국 불교에서는 ‘建幢’이라는 이름으로 아버지를 몇 명씩 바꾸거나 새로 정하는 경우가 非一非再하다. 또한 화상 쪽에서도 일일이 손길이 미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제자를 두어, 사후에 제자들 사이에서 ‘상속’ 문제를 일으키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 305쪽
차법(遮法)은 이와 같은 일반사회와의 알력을 피해 수행의 장으로서 승단을 존속시기기 위해 만들어진 울타리였다. 따라서 차법은 고대 인도사회 속에서 하나의 섬 사회를 형성하고 있었던 불교가 집단으로 살아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채용하게 된 일종의 편법이다. 이것은 편법에 그치지 않고 율 전체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는 것으로, 율 규칙은 결정코 비구 개인의 깨달음을 얻기 위해 제정된 것이 아니다. 불교집단이 일반사회와의 사이에서 마찰을 빚지 않고 평온하게 수행의 장을 유지해가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데 여성에 대한 규정만큼은 승단의 존속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정해진 규정이 아니었다. 승단 규칙 중에는 비구니의 지위를 경시하는 것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한 것들의 제정 이유를 생각해보면, 세간과의 원활한 관계를 맺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제정했다고는 도저히 생각되지 않는 것이 대부분이다. 비구니가 비구보다 낮은 지위에 놓여진 것은 세간과의 알력을 피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승단 자체가 비구니를 경시하고 비구니 승단을 비구 승단의 부수적 조직으로 생각하는 비구들의 사고가 근저에 깔려 있었던 것이다.
* 324쪽
비구니라면 승단에서 추방되는 행위가 비구에게는 자기반성으로 그친다. 같은 행위라도 그 처벌은 남성과 여성에게 커다란 격차가 주어지고 있는 것이다.
* 326쪽
여성에 대한 세간의(즉, 남성 측의) 혹독한 시선은 그 여성을 받아들이는 비구니 승단의 규칙에도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던 것이다.
* 336쪽
현재 우리들 눈에 차별된 규칙을 비추어지는 비구니에 대한 모든 규정이 편의적 조치의 흔적이라고 한다면 초기불교에 있어서 남녀차별의 원인은 한 번 정해진 규율은 무조건 고수해 가고자 하는 완고한 태도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규칙을 제정하기에 이른 모든 조건을 고려하지 않고 “규칙이 이렇게 되어 있으니까 이렇다.”라고 무비판적으로 전통을 정당화해 가는 태도가 비구니 승단의 지위를 얕보게 하는 가장 큰 요인이었던 것이다.
* 관심 있는 사람은, 우선 《불교평론》 2007년 여름호에 김호성교수가 쓴 서평 <부처님 당시 스님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 《출가, 세속의 번뇌를 놓다》 (사사키 시즈카 지음, 원영 옮김, 민족사)를 읽고 ->을 읽어보라 권하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