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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아주 많이 읽었다. 개인적으로 인연이 있던 사람의 서가에 꽂혀있어서 알게됬지만, 이 책을 그 사람보다 더 좋아하게 된 것 같다.
헨드릭 빌렘 반룬이라는 작가가 쓴『인류이야기』라는 책은 다른 초급역사서와는 다른 방식의 지리(地理), 삽화, 재미있는 비유 또는 생생한 표현이 많이 나온다. 유럽인이 쓴 만큼 유럽의 도시이름은 이 책을 읽고나면 많이 알게될 것이고, 그가 직접 그린 그림, 꼭 시커먼 붓으로 대충 휘갈긴듯한 그림(아래 첨부한 사진중 삽화)==물론 21세기 전문화가들이 그린 그림에 비하면 좀 퀄리티가 떨어지는 듯하지만==은 정말 절묘하고 역사를 이해하기 쉽게 한다. 일반 역사가가 쓴 연대기식 나열법에 비해 반룬은 대중을 겨냥해 에피소드와 장면을 묘사하는 식으로 쉽게 '이야기'한다. 보통 역사가 어렵다고들 하지만 그의 서술방식을 이해만 잘한다면 이 책의 ‘역사’는 분량상 하룻밤에도 읽을 수 있는 거다==물론 요즘 유행처럼 『하룻밤에읽는...』시리즈가 있어서 철학이나 국사니 상식이니 하룻밤에 읽을 수 있는 것처럼 쉽게 여길 수도 있겠지만,그런 이해는 표면적인 것이지 본질적인 것은 아니기에 비추한다 솔직히 미야자키 마사카츠의 『하룻밤에 읽는 세계사』는 추천하는데...다른 건 잘 모르겠다.
그러나 그냥 문자그대로 읽는다고 해서 누구나 반룬이 말하는 역사를 솔직히 다 이해할 수는 없지 않을까 한다. 누가 다 읽었다 그냥 읽었다 이런 말을 하지만 반룬이 말하는 역사는 그냥 읽어서 알거나 이해할 내용은 아니라도 리뷰작성자는 말하고 싶다===다른 일반 역사서랑 뭔가 같지만 다른 느낌을,,,뭔가 자세히 표현하기 그런 느낌을 알고 있기에. 반룬도 모든 산전수전 풍비박산 격동의 시대를 '경험'한 살아있는 사람이고 누구든 책을 쓸 때 자신만의 관점이 있고, 그것을 비껴서 객관적으로 글을 쓴다는 건 물론 불가능하진 않겠지만 (인간이라면) 그 주관성을 벗어날 수는 없을 것같다!!!
솔직히 우리는 반룬이 말하는 역사를 읽기보다는 그냥 있는그대로 일어난 역사를 읽고 싶어할 수도 있다. 왜 굳이 반룬 말고도 역사를 재미있게 쓴 사람이 없겠냐 하고 반문이나 의구심을 표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역사책을 읽을 때 좋든 싫든 있는그대로 있는 역사내용 뿐만 아니라 작가의 관점을 자신도 모르게 받아들인다는 점을 간과하면 안된다. 그러므로 마치 낯선 사람의 집에 들어갈때 현관에서 초인종을 누르거나 노크를 하는 심정으로 마치 '통과의례'처럼 반룬의 관점을 이해하려는 용기가 필요한 것같다===물론 바쁜세상에 그깟 저자의 생각이 뭐 중요할까 급한 마음을 가졌다면 리뷰작성자는 그런 사람에게 책읽기를 그만두라고 권하고 싶다...이유는 불문하고.
따라서 반룬의 관점이 어떠한 특징을 가지고 있는지, 이 책을 읽었을 때 어떤 가치를 느끼게 되는지를 살펴보려고 한다. 물론 반룬의 관점을 철저하게 밝히는 일이 쉽지 않은 점은 솔직히 인정하며, 리뷰작성자는 그런 관점들이 녹아있는 본문을 인용하는 것만으로 그의 관점에 접근하고자 한다. 이렇게나마 『인류이야기』의 특징을 밝힌다면 다른 역사서들과의 차이를 분명히 할 수 있으므로, 어린이들이 역사를 읽어내려갈 때 길잡이가 되어주는 '지혜'를 제공해주리라. 어린이들도 역사책을 선택할 수 있으며, 반룬이 지은 책도 분명히 예외가 될 수는 없다. 물론 리뷰작성자는 반룬의 관점을 충분히 이해 또는 공감한다는 점을 인정한다==100% 이해 또는 공감이라면 거짓이겠지만 어느정도는 그렇다. 독자들이 이 리뷰를 가지고 또는『인류이야기』에 대한 다른 리뷰를 가지고 책에 대한 평가를 내릴 것이겠지만, 나는 분명히 추천한다는 의미에서 이 글을 쓰는 점을 분명히 한다.
그리고 만약 역사서를 처음 보는 사람이 있다면 이 책은 21세기에 씌여진 역사서가 분명 아닌 고전서이고==20세기초인 1921년에 초판이 발행되고,1938년에 수정증보가 이뤄졌다==역사서술의 범위도 시간적으로는 세계1차대전 이전까지, 공간적으로는 유럽지역에 집중되어있음에 유의할 것을 당부하고 싶다. 이 점을 도외시한채 이 책에 대한 찬사나 호평을 늘어놓는 건 리뷰작성자로서의 순수한 의무를 저버리는 일일꺼고. ![]()
-"제국의 중심지 로마는 완전히 폐허가 되고 말았다. 고대 궁전들은 쉴 새 없이 약탈당하고, 학교들은 불타 사라져버렸으며 교사들은 굶어죽었다.부유층은 고약한 체취를 풍기는 털북숭이 야만인들에게 저택을 빼앗겼다. 도로는 망가지고, 유서 깊은 다리도 사라졌으며, 상업활동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본문 106p)
"샤를마뉴 대제의 궁전에도 로마 제국의 관습이나 예절ㆍ사고방식이 여전히 남아있었을지도 모르며, 또한 오늘날에도 선사시대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한 인간이 있을 수도 있다. 모든 시대와 세대는 서로 겹치고 술래잡기를 하기 마련이다."(본문 16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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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사람들은 자신의 의지에 따라 행동하고, 개인의 능력에 따라 운명을 개척할 수 있다고 자각하지 못했다. 오히려 그와 반대로 생각했다 신이 정해놓은 질서를 아무런 의문도 품지않고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 점에서 현대인들과 완전히 달랐다...(중략)...그들은 무지한 야만인이었다.그들의 지식은 오늘날 열두살짜리 아이의 수준에도 미치지 못했다.오직 책 한권에 의지하여 모든 정보를 얻었으니, 그 책이 바로 <<성서>>였다. 그가운데 <<신약성서>>는 사랑과 박애와 용서라는 덕목을 가르침으로써 인류역사의 진보에 큰 영향을 미쳤지만...(중략)...하지만 교회가 사람들의 무지를 의도적으로 조장한 것은 아니었다. 교회는 현세가 내세를 준비하는 과정이라고 굳게 믿었고, 지나친 지식은 불안한 마음과 위험한 생각을 불러일으켜 영원한 파멸을 초래한다고 생각했다. 어린 아이가 화상을 입을까봐 뜨거운 난로 주변에서 놀지 못하게 막는 어머니의 심정으로"(본문 p160-p163)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중세시대에는 발전이 매우 더뎠다. 지배층은 '진보'를
<==진보와발전을피하던중세의'종언'을묘사
![]() ←'중세의무역'을묘사한그림 "예컨대 어떤 현자가 '내가 발견한 위대한 진리를 다른 사람에게 전달해야겠다'고 생각했다면, 그는 청중이 몇 명밖에 안 되더라도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자신의 지혜를 설파했다. 그러다 젊은이 몇 명이 그 위대한 스승에게 지혜를 얻으려고 정기적으로 찾아와 중요한 말을 받아 적다가, 어느 날 비가 내리자 강의 장소를 지하실이나 '스승'의 방으로 옮겼다. 스승은 의자에 앉고 젊은이들은 마룻바닥에 앉았다. 중세의 대학은 그런 방식으로 시작되었다."(본문173-17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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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알리기에리의 초상
"망명생활을 이어 가던 단테는, 자신이 고향에서 정치지도자로서 지낸 시절, 아르노 강가를 걷다가 아름다운 베아트리체 포르티나리의 모습을 흘깃 보았던 그 시절에 자신이 했던 생각과 행동을 정당화시킬 필요를 느꼈다(베아트리체는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되었다가 기벨린 당 사건이 벌어지기 10여 전에 죽고 말았다.) 단테는 정치가로서 품은 꿈을 이루지 못했다. 고향을 위해 열심히 일했지만, 타락한 재판소는 그에게 공금 횡령 죄를 뒤집어씌운 다음 추방령을 내려 피렌체에 다시 들어오면 산 채로 화형에 처하겠다고 위협했다. 단테는 동시대인과 자신의 양심 앞에서 결백을 입증하고자, 상상의 세계를 설정하고 자신이 실패한 상황을 자세히 묘사했다. 동시에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이탈리아가 사악하고 이기적인 독재자들이 고용한 용병들의 전쟁터로 전락한 현실, 곧 탐욕과 욕망과 증오로 가득찬 무기력한 현실을 그려냈다."(본문175-176p)<==단테의 『신곡』의 저술배경을 묘사
"독일의 역사가 랑케의 말처럼 '실제로 발생한' 사건의 진상을 제대로 파악한다면 역사는 아주 다른 시각에서 재조명될 수 있다. 인간생활에서 완벽하게 옳거나 그른 경우는 없다. 역사가는 흑백논리에 빠지지말고 역사적 사건의 진위를 솔직하게 기록해야 하며, 개인의 가치관에 따라 형성된 편견에서 벗어나도록 노력해야 한다. 나는 강력한 신교 국가인 네덜란드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열두살 무렵까지 가톨릭 신자를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가톨릭 신자를 만날 때마다 마음이 몹시 불편하고 약간 겁조차 났다. 알바 공작이 종교재판소를 열어 수천 명의 루터 파 신자와 칼뱅 파 신자를 이단으로 몰아 잔인하게 처형한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중략)...그러나 나중에 가톨릭 국가에서 지내다 보니, 그곳 국민들도 신교국가의 국민들 못지 않게 지적일 뿐 아니라 명랑하고 너그럽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종교개혁에 관한 가톨릭의 견해도 이해할 수 있었다."(본문196p)
" '관용'은 최근에 생겨난 개념이다. 이른바 '현대인들'도 자신과 이해관계가 그다지 깊지 않은 사안에만 관용을 베푸는 경향을 보인다. 상대가 아프리카 원주민이라면 불교도이든 이슬람교도이든 개의치 않고 너그럽게 대하지만, 공화당원으로서 높은 보호관세를 옹호하던 이웃사람이 사회주의 당원으로 변신하여 보호관세법 폐지 운동에 나섰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그 순간 관용을 베푸는 태도는 감쪽같이 사라지고 만다."(본문206p)<===16세기 종교개혁 이후 갈등에서 '관용'이 존재하지 않았음을 현대와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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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혁명의 시발점이 된 바스티유감옥습격그림 "프랑스혁명은 파리 빈민가 하층 계급의 작품이 아니라, 그들을 동맹 세력으로 이용한 중산층의 작품이었다. 혁명의 기본사상은 몇몇 사람의 뛰어난 두뇌에서 나왔다. '앙시앵 레짐'의 우아한 살롱에서 오락거리로 제공된 사상이 사회 비판이라는 위험한 불꽃놀이를 즐기던 중, 불씨가 낡은 마룻바닥 틈새로 떨어져 웅장한 건물 전체가 화염에 휩싸이고 말았다."(본문248p)
"세계역사를 살펴보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사람마다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이 다양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책을 놓고도 다양한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 나는 이 책을 쓰면서 단 하나의 원칙을 염두에 두었다. '그 국가나 인물이 역사 무대에 등장하지 않았다면, 인류의 모든 역사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될 만큼 독창적으로 행동하고 혁신적으로 사고했는가?' 이 원칙은 나의 개인적 판단 기준이 아니라, 객관적이고 엄격한 기준이다.....(중략).....하지만 인류는 프랑스 혁명보다 더 끔찍한 시련을 겪었다. 그 충격이 너무 큰 나머지 수백만 명의 가슴속에 남은 마지막 희망의 불꽃마저 꺼져 버렸다. 인류는 진보를 찬양하며 평화를 기원했건만, 4년 동안 처참한 살육을 일삼는 전쟁이 일어났다. 인류는 의문을 품었다.'그래도 여전히 희망은 남았는가?' 1차 세계대전은 참담한 결과를 낳았지만, 희망은 남아있었다. 오히려 새로운 미래의 시작을 알렸다....(중략)...인류 역사를 '고대', '중세', '르네상스 및 종교개혁', '현대'로 구분한다면 '현대'는 인류가 최고 수준의 업적을 달성한 시대라는 뜻이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역사에서 확실한 해답은 없다. 우리가 이루었다고 생각한 업적이 어떤 문제를 안고 있을 지 확신할 수 없다. 인류는 끊임없이 진화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린 생물종처럼 멸종할 수밖에 없다....(중략)...우리는 동굴에서 지낸 원시 인류의 마지막 세대에 속한다. 바로 엊그제 새 시대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발판이 겨우 마련되었을 따름이다. 인류가 모든 것에 용기있게 의문을 품고, 합리적이고 상식이 통하는 인류 사회를 창조하기 위한 기반으로 '지식과 지혜'를 활용하는 순간, 비로소 인류는 진정한 문명인이 될 수 있다. 1차 세계대전은 그런 단계로 '발전하기 위해 반드시 겪을 수밖에 없는 시련'이었다...(중략)...과학자들이 강철과 무쇠와 화학과 전기로 이루어진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기 시작했지만, 인간 정신이 매우 더디게 진보해 왔다는 사실을 망각한 순간부터, 모든 것이 꼬이고 고통이 빚어졌다. 프록코트를 입는다해도 줄루 족은 여전히 줄루 족일 따름이다. 개가 자전거를 타고 파이프 담배를 피운다고 해도, 개는 개일따름이다. 중세의 무역상이 1921년 생산된 롤스로이스를 탄다고 해서, 그 무역상의 정신이 20세기에 맞게 갑자기 바뀌는 것은 아니다."(본문300-306p)<==20세기초부터 씌여진 1921년까지 일어난 사건들, 특히 제1차대전을 평가하면서 ![]() ←보스턴에서출발한항공기2대가 美國뉴욕WTC에 충돌하는 장면(2001년)
"미국인들은 과거에 대한 자의식이 거의 없는 편이어서 타민족보다 훨씬 열린 시각에서 미래를 바라보며 당면한 상황을 해결해 나간다. 오늘날의 세계 현실을 솔직하게 인정하며 모든 장단점을 인식하기 때문에, 생명을 가진 인간과 생명이 없는 기계가 서로 존중하며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재빨리 터득했다. 산업이 가장 발달한 미국이 '철의 사나이'를 최초로 굴복시켰다고 말한다면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그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미국은)오늘날에는 전혀 쓸모가 없는 온갖 이상과 편견과 이념을 과감히 제거했다. 독일ㆍ영국ㆍ스페인을 포함하여 유럽 각국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유럽 대륙에서 희망은 사라지고 말 것이다."(본문312p)
아울러 책의 관점을 알기위해서 저자의 프로필을 추가적으로 소개한다==그의 커리어를 살펴볼 때 그의 사상이나 가치관을 알수있기에!!! 반룬은 AP통신사기자로서 미국의 편에서 제1차대전에 종군기자로 활동한 저널리스트이면서 네덜란드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이민온 (가톨릭이 아닌) 신교도이기도 하다. 그는 개인적으로 뉴욕에 있는 '유니테리언만인교회'에서 '관용寬容'(톨레랑스)을 주제로 강연을 하기도하였으며 사회적으로는 자유와 평등과 같은 권리를 강조하는 캠페인을 벌이며 제2차대전기간동안에 반나치활동을 수행했고 실제로 루즈벨트대통령의 선거활동까지도 도운 경험이 있었다==1944년 사망할때까지. 반룬은 독재에 반대하여 '자유'와 '합리성'을 옹호한 실천하는 '이론가'였었던 것이다
반룬은 서문에서 역사를 '경험의 탑'으로 비유하면서 탑꼭대기에 올라 폭넓은 시각으로 조망하여 일상생활에서 맞닥뜨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용기'를 기대한다고 말하였다(본문13p) 전술한바와 같이 네덜란드인이자 미국이민자인 그의 관점이 어떤 가치나 심지어 편견에 치우쳐서 쓰여졌거나 다른 책과 차이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우리 주변에 자유와 평등같은 가치를 깔고있는 관점의 역사서는 매우 흔하기 때문. 서구적인 시각에서 자유와 민주주의를 강조하고 그러한 관점에서 바라보고 현실문제를 해결해나가는 ‘해법’을 제시하는 성향의 『인류이야기』같은 책은 다른 역사책들과 비교해봤을 때 꼭 같지는 않겠지만 유사한 경향을 보인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프랑스혁명을 반룬이 폭력성이나 급진적인 측면에서 우려하는 걸 보면 그가 이념적으로 보수保守편향적이라는 것도 느낀다==유시민의 『거꾸로읽는세계사』는 그런 면에서 이념적으로 중립적이라고 느끼는데, 리뷰작성자는 어쨌든 혁명이 폭력적이긴 하나 반대로 정신적인 자유를 얻게 해준다는데서 칭찬하고 싶고, 실제 선거권이나 사회보장같은 민주제도등도 프랑스에서 일어난 사태에서 교훈을 배웠기에 가능!
유달리 "진보/희망/평화/미래"라는 단어를 강조하던 반룬은 자유주의자였으며 아울러 '진보주의자'였을 것이다==여기서 '진보'는 사회개혁이나 혁명과 같은 급진적인 변혁보다는 종교나 편견에서 벗어난 '이성'이 중심이 되어 구습을 타파하는 '개혁'이 일어나는 사회변화같은 점진적 '진보'를 의미하는 것같다!!! 그는 책에서 프랑스혁명이나 볼셰비즘과 같이 체제와 사회를 뒤엎는 폭력을 반대하였고,(신교와 가톨릭과 같은) 종교적 차이 또는 편견으로 사람을 박해하거나 차별하는 것을 반대하는 '관용寬容'(톨레랑스)을 알리고자하였으며. 인권을 존중하면서 파괴적인 전쟁보다는 합리적인 평화를 외쳤던 것이다. 요컨대 그는 혁명이나 폭력을 통한 급진적 변화보다는 '이성'으로 의문을 품고==편견을 깨뜨리면서==합리적인 상식이 통하는 점진적인 '진보'를 원했다.그런 의미에서 당시 인류에게 "동굴에서 지낸 원시인류"의 수준에서 '진보'되어 "진정한 문명인으로" 거듭 태어나기를 촉구해마지 않았다.(본문305-306p) 당시 반룬은 제2차세계대전의 발발과 그 의미를 글로 쓰지는않았지만, 활동으로 보면 그가 반反독재와 자유의 입장을 끝끝내 지켰음을 알수 있다.
그러나 진보주의자로서 당연했을법한 그같은 낙관적인 견해는 (독자가 아닌 비평가들의 눈으로 본다면) 인류의 '진보'가 또다른 굴레에 매이게된 20세기 중반의 사건때문에 '시련'을 겪지 않았나 한다. 한차례의 세계대전후 오히려 세계역사는 그 위기를 안정화시키지못하고 다시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유례없는 파시즘과 공산주의같은 독재와 혁명의 팽창을 바라볼수밖에 없었다.그리고 소련과 미국이라는 강대국의 등장과 함께 냉전체제의 긴장상태로 빠져들고 말았다. 그런 단기적이고 눈에 보이는 역사적 사건들의 흐름 속에서 반룬이 설파하고자한 '진보'의 '실현'實現은 동떨어진 것이고, 낙관론적 예언은 비판받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1944년 죽음을 맞이하기까지 『인류이야기』에서 그의견해를 들을 수없었기에 그 부분은 애매모호하다==1938년의언급이 마지막이었으며, 그후낙관론적 예언을 철회하는 선택을 했을지 아니면 제2차세계대전부분을 "변동을겪는" 것으로 단정하면서 "여전히 희망이남아있어서" 전후복구활동에서 "새로운 미래"의 시작을 예언했을지알수없기때문.
그러나 리뷰작성자는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그의 낙관적인 예언이 맞았다고 보고 싶다.1990년대에 이루어진 냉전종식까지의 기간이 반룬이 말한 '변동을 겪는' 시기라고 본다면 냉전이 끝난 즉 '탈냉전'기에 형성된 자유의 확산, 세계화,정보화, 경제발전 속에 펼쳐진 '진보'는 반룬이 말한 '새로운 시대를 여는 것'이지 않겠는가? 또다른 정보화혁명의 연장선인 스마트폰‘신세계’만 상상해봐도 통신을 통하여 세계가 연결되면서 '진화되고' 합리적인 가치가 확산되며 편견이 사라지게 된 문명의 세상이 온것이지 않나 한다. 정말 인류는 반룬이 강조해마지않던 '진보'를 만끽할 싯점이 아닐까하는 설레임이다.
그러나 당장 우리 주변상황 즉 한반도와 한국사회로 눈을 돌려보더라도, 연평도포격과 같은 전쟁확대, 구제역확산, 낮은출산율과 고령화, 실업문제와 빈익빈ㆍ부익부, 아이돌idol 중심문화의 획일화, '지역주의의 부활'같은 문제점이 우리의'평화'를 멀게하고 '미래'를 어둡게 하고있는듯 하다. 그렇다면 인류의'진보'는 아직 오지 않은 것인가? 냉정하게 바라보면 반룬이 말한 '새로운 시대를 열지못하고' 그저 '변동'이라는 굴레속에서 여전히 헤어나지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결론적으로 긍정적이기 하고 부정적이기도 한 여러 다양성을 함축하고 있는 현시대는 당장 진보여부를 판단하기 어려운 상태에 있는 것같다!
어쨌든 미국에서 수여되는 권위있는 아동문학상인 뉴베리상을 제1회에 수상하기도 한 『인류이야기』란 책은 전세계어린이들에게 인류의 참된 역사를 알게 해왔다. 리뷰작성자도 그런 역사를 알게된 것이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리뷰작성자는 헨드릭 빌렘 반룬이 인류문화내지 지식체계같은 데 '공헌'한 요소를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그건 자유주의적 진보주의자로서 세계의 숱한 일과 사건들의 의미를 어린이들에게 일깨우면서도 그런 일을 겪은 인류가 (궁극적으로는) '진보'할 것이라는 '낙관론'을 전달하고 호소해왔다는거. 그런 점에서 책에서 '감동'과 '공감'을 넘어서 역사를 바라보는 '신성함'또는 '경외감'마저 느끼게 한다. 또한 인류의 '희망'과 '미래'를 책을 통해 이해한 어린이들이 먼훗날에 저마다의 꿈을 실현하려고 '팔걷게 되었을 때' 작은 새싹들이 먼밑동에서부터 움트고 나중에 큰나무로 자라 인류의 '진보'라는 숲을 이루는 그런 가슴뿌듯한 '상상'까지하게 만드니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