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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의 둑음(death)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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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대녕의 새로운 단편집이 나왔다. <은어낚시통신> 이후에 윤대녕을 잠시 잊고 지냈었다. 생각보다 그 작품이 내겐 좀 이해하기 어려웠고, 공감도 좀 덜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몇 년이 훌쩍 흘렀다. 읽어봐야지... 하면서도 전작의 아우라가 그렇게 컸던 것일까. 하지만 이번에 다시 만난 윤대녕은... 그 동안 잊고 지낸 걸 후회라도 하게 하려는 듯이... 그렇게 멋진 작품집으로 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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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대녕의 새로운 단편집이 나왔다. <은어낚시통신> 이후에 윤대녕을 잠시 잊고 지냈었다. 생각보다 그 작품이 내겐 좀 이해하기 어려웠고, 공감도 좀 덜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몇 년이 훌쩍 흘렀다. 읽어봐야지... 하면서도 전작의 아우라가 그렇게 컸던 것일까. 하지만 이번에 다시 만난 윤대녕은... 그 동안 잊고 지낸 걸 후회라도 하게 하려는 듯이... 그렇게 멋진 작품집으로 다가왔다. 

 

그가 그 동안 변한 것인지, 아니면 내가 나이가 들고 세상이 변하면서 좀 더 이해의 폭이 넓어졌는지, 이번 작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강한 흡입력으로 읽을 수 있었다. 단편들을 읽으면 읽을수록 더 끌려들어가고 단숨에 빠져들었다. 겉보기엔 고요한 수면 같은 일상 속에 굴레를 뒤집어쓴 씁쓸한 인생이 행복과 기쁨과는 다른 억눌린 고통과 무의식 속에 갇혀 불안과 허무로 드러난다. 하.지.만. 단절된 삶에서 과거가 그리움으로 스멀스멀 기어 나오고 열정과 숙명의 삶이 미소를 지으며 지나간 삶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평범한 듯한 글이 이렇듯 흡입력이 있다는 건 무슨 연유일까.  

 

문학적 감성 안에서 가려운 데를 착착 긁어주듯 한 표현력과 슬쩍슬쩍 드러나는 그의 유머와 재치(윤대녕의 무심한 유머!)를 곁들인 것도 일조를 했을 터이다. 뭐지, 뭐지? 하고 있을 때 탁 드러나는 그 순간의 공감이 작가와 나 사이에 존재한다.

 

이번 작품집엔 이별과 둑음(death- 원래 단어는 느낌이 강해 개인적으로 쓰지 않으니, 양해를...)의 테마가 주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그 이별과 둑음은 우리가 원래 알고 있는 부정적이고 무섭고 싫은 느낌의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삶을 더 강하게 연결해주는 느낌이다. 불행한 삶을 산 듯 보이지만 더 크나큰 행복한 삶이었음을, 또는 그렇게 볼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탱자>에서 고모가 말하는 “이제 됐다 싶더라.”가 의미하는 바는 크다.

 

이 작품집엔 <연>, <제비를 기르다>, <탱자>, <편백나무숲 쪽으로> <고래등>, <낙타 주머니> <못구멍>, <마루 밑 이야기>, 모두 여덟 편의 작품이 있다. 그리움이 가득한 작품들이다. 또한 삶이 가득한 작품들이다.

 

표제작인 <제비를 기르다>는 제비에 대한 ‘상사병’을 평생 앓은 어머니, 그로 인해 외롭고 고독했던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다. <가을에 강남으로 갔던 제비가 돌아오는 이듬해 봄까지, 어머니는 그 누구도 아닌 오직 자신만을 그리워하며 살았다.> 운명적으로 그리움을 타고난 어머니는 자신이 고독해지는 만큼 남도 고독하게 하는 팔자를 타고났다. 잘 익은 복숭아 같은 여자인 술집 작부 문희와 비교되는 어머니. 아들이 만난 또 다른 문희의 영혼 속엔 언제나 돌 굴러가는 소리가 들리고... 회귀하는 제비처럼 영원의 나라로 가서 부디 부디 머물 수 있을까.

 

작품집 가운데 내 마음을 처음부터 끝까지 사로잡고 놓아주지 않았던 작품은 <탱자>와 <고래등>이었다. 하나는 마치 ‘여자의 일생’을 보는 듯했고 또 하나는 ‘남자의 일생’을 보는 듯했기에 두 작품이 묘하게 균형을 유지하는 것 같았다.

<“일주문까지 걸어올라가긴 힘들었지만 불국사에 들어가니 나 같은 무지렁이도 저절로 마음이 거룩해지더라.”> 불국사에 그렇게 가보고 싶었느냐는 질문에 고모가 하는 말이다. <“왜 아니겠냐. 열다섯 살 때부터였으니 오십년 만에 원을 푼 셈이지. 게다가 맨날 동전에서만 보던 다보탑에다 석가탑까지 보았으니 이제 됐다 싶더라.”> <내 부질없는 마음엔 탱자를 갖고 물을 건너면 혹시 귤이 되지 않을까 싶어 들고 왔더니라.> 탱자가 귤로 변하지 않을까... 그게 고모의 ‘기다림의 사랑’이었다. <(...) 어두워지는 저녁에 앞에서 절룩거리며 걸어가는 모습을 보니 이상하게 그만 가슴이 미어지더라. (...) 이렇게 병신처럼 계속 절룩거리며 걷지 말고 차라리 내 등에 업혀 함께 어디든 가자고 말이다.> 바로 이것이 고모의 숙명적인 ‘열정의 사랑’이었다.

 

<고래등>에서는 삶에 대한 허영기로 일관한 아버지와 그에 희생당한(!) 어머니와 아들의 이야기다. <삶은 뜻하지 않은 각도로 사람을 바꿔놓는다. 남들이 보기에는 대수롭지 않아 보이는 일이 어떤 사람에게는 치명적인 계기로 작용해 생의 전모를 바꿔놓는 수가 종종 있다. 그리고 이것은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삶의 원리이자 저마다 이면에 감춰진 속박이자 굴레이기도 하다.> 결말 부분의 아버지와 아들에 대화가 참 씁쓸했다. “그렇지? 참으로 안됐지?” “그렇죠 뭐.” 인생은 그렇다. 이 작품은... 남자, 아버지...란 존재에 대해 궁금한 사람에게 일종의 해답을 주는 작품이다. 이해와 공감을 선물로 주는 작품이다. 

 

<연>에서는 이런 변화가 일어난다.
<그러다 초라해진 옛사람과 다시 만나 그보다 더 초라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겠지. 그리고 오히려 이쪽에서 또 매달렸겠지. 그게 삶의 굴레라는 것이다.>
<그 감옥 같은 방에서 넷이 꾸부정하게 모여앉아 밥을 먹었다. 갑자기 입이 하나 늘어 밥상은 더욱 비좁았다. 김치에 아욱국, 멸치볶음에 오이무침이 전부였으나 밥맛은 유난히 좋았다. 그저 시장기 때문이려니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처음 먹어보는 쌀이었다. 보기에도 기름질뿐더러 밥알이 쫄깃하고 씹을수록 고소한 뒷맛이 남았다. 묵은 김치도 깊은 맛이 배어 있었다. 남의 집 밥을 축내는 것은 미안했으나 나는 미선에게 밥을 더 달라고 빈 공기를 내밀었다.> 바로 그 고소한 맛이 삶의 굴레에서 나오는 맛이었다.

 

<못자국>에서 사랑은 작은 우연에서 시작되고 그 우연의 고리가 끊길 듯 이어질 듯 인연을 만들어가는 작품이다. 
<인생이란 헐벗은 나뭇가지들 사이로 틈틈이 지나가는 햇살을 바라보는 것. 따뜻한 강물처럼 나를 안아줘. 더 이상 맨발로 추운 벌판을 걷고 싶지 않아. 당신의 입속에서 스며나오는 치약냄새를 나는 사랑했던 거야. 우리 무지갯빛 피라미들처럼 함께 춤을 춰. 그래도 인생은 살 만한 거라고 내게 얘기해줘. 가끔은 자유와 이상과 고독에 대해서도 우리 얘기해. 화병처럼 나는 주인만을 사랑해. 나도 너의 주인이 되고 싶어. 당신이 먼저 잠든 밤마다 나는 이렇게 한줄씩 쓰고 있어요.> 함께 사는 인생은 <못자국>을 남기면서도 이렇듯 치약냄새로도 사랑할 수 있는 것이다.

 

이번 작품을 계기로 윤대녕의 <어머니의 수저>, <열두 명의 연인과 그 옆 사람>의 산문집도 읽었다. 나중에 물론(이렇게 마음에 드는 작품을 만나기도 쉽지 않으므로...) 감상문을 쓰겠지만, 간단히 보면, 전작은 우리나라 고유의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자신의 경험과 사고에 바탕하여 쓴 것이며 후작은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정도로 아련하며 잔잔한 로맨스 감정을 그린 산문집이다. 음식에 대한 산문집도 많고 로맨스 감정을 그린 산문집도 많지만, 이 두 작품은 다른 어느 작가들과의 작품들과도 다르다. 다소 까칠해 보이는 윤대녕이 오히려 무덤덤하고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작품들이다. 그를 좀 더 가깝게 인간적으로 만날 수 있는 작품인 것은 물론이다. 또한 그의 무덤덤하고 잔잔한 문체가 마치 차가워진 가을 날 아침에 호수를 적시는 안개처럼 나를 가볍고 상쾌하게 감싸고도는 느낌으로 꽉 채워준다.  

 

자의식 강해보이는 그가 이렇듯 담담하고 절제된 문체의 글을 쓰는 것이 더 매력적이고 그 매력에 한번 빠지면 헤어 나오기 어려울 듯하다. 강한 스토리나 플롯으로 한번 독자를 끌기는 쉽다. 하지만 스토리나 짜임새가 이렇듯 느슨해 보이면서, 또 평범하면서도 독자를 울리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는 윤대녕의 글이야말로 그 맛을 형용하기 어렵다.      

 

술, 담배, 자판기 커피... 선생님 책에 심심찮게 등장하는 기호식품이면서 선생님께서 참 좋아하는 것들로 보인다. 하.지.만. 몸에 좋지는 않을 것들이다. 조금씩만 줄이시고... 건강하셨으면... 

g******i 2007.02.06. 신고 공감 5 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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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은 미래에 있지 않으며, 오직 기억 속에 존재한다.
"구원은 미래에 있지 않으며, 오직 기억 속에 존재한다." 내용보기
구원은 미래에 있지 않으며, 오직 기억 속에 존재한다.  윤대녕 소설의 인물들은 불안하다. 그들은 늘 누군가를 그리워하며 현실에 견고하게 뿌리내리지 못한다. 그들은 과거의 시간 속을 부유한다. 그의 소설 속에서 그리움의 힘은 강하게 작용한다. 그리움은 시간의 터울을 건너 과거의 기억과 인연들을 현재까지 잇는다.『제비를 기르다』에 수록된 단편들도 그 연장선에서 읽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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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은 미래에 있지 않으며, 오직 기억 속에 존재한다.


 윤대녕 소설의 인물들은 불안하다. 그들은 늘 누군가를 그리워하며 현실에 견고하게 뿌리내리지 못한다. 그들은 과거의 시간 속을 부유한다. 그의 소설 속에서 그리움의 힘은 강하게 작용한다. 그리움은 시간의 터울을 건너 과거의 기억과 인연들을 현재까지 잇는다.『제비를 기르다』에 수록된 단편들도 그 연장선에서 읽혀진다. 다만 반복되는 불안과 그리움의 이미지 속에 ‘죽음’이라는 항목이 첨가되었다.

 표제작 「제비를 기르다」의 주인공은 한적한 강화도에서 유년기를 보낸다. 강남에 갔던 제비를 기다리던 어머니의 모습 속에서 ‘나’는 어렴풋이 생의 비의를 느낀다. 태연하게 벌어지는 아버지의 바람기도 어머니의 기다림을 멈추게 하지 못한다. 어머니가 기다린 것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알 수 없다. 어린 시절의 ‘나’에게 강렬하게 다가왔던 것은 아버지가 들락거리던 술집의 작부 ‘문희’의 강한 화장품 냄새와 다리 다친 제비가 힘겹게 파닥거리던 몸짓이다. 세월이 흘러 서울로 이사 온 이후에 술집 작부와 같은 이름의 ‘문희’와의 사랑을 겪으며 ‘나’와 예전 남자 사이에서 방황하는 문희의 방황을 보면서 깨달아간다. 과거에 목격한 작부의 진한 화장품 냄새와 어머니의 기다림을, 그리고 삶을 견디기 위해 그리움의 대상을 만드는 연유에 대하여. 시간 속에 퇴적되는 기억들은 흩어지지 않고 그 사람의 현재에 늘 함께 작용한다는 사실을. 그 사실을 깨달은 ‘나’는 중년이 되어서 강화도의 술집에 찾아가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는, 이제는 파삭하게 늙은 작부 ‘문희’의 품에서 흐느낀다. 제비처럼 고향에 찾아가서 죽음을 맞은 어머니에 대한 연민과 떠나간 ‘문희’를 떠올리며.

 이러한 그리움-죽음-애상의 구도는 반복된다.「탱자」의 고모는 자신의 삶이 투영된 듯한 탱자를 들고 바다를 건너 죽음을 맞이한다. ‘나’의 아버지는 고향집 편백나무숲 속으로 ‘큰 고요’를 찾아 사라진다. 마치 제비처럼 한평생 세속의 삶을 떠돌던 ‘나’와 주변 인물들은 처음 삶을 맞이했던 그 장소로 다시 돌아가서 죽음을 맞이한다. 마치 제비처럼. 그리고 은어처럼. 그 밖에도, 별거하다가 합친 이후에 다시 돌아온 집에서 발견한 ‘못구멍’을 통해 결혼 생활 속에서 주고받은 상처를 떠올리며 상처와의 공존을 사색하는 부부(「못구멍」), 6년 5개월만에 다시 재회하며 초라해진 서로의 모습을 보며 삶의 스산함을 확인하는 남녀(「연」)가 등장한다. 이들은 모두 지금-여기의 인물이지만 과거에서 조금도 자유롭지 못하다. 『은어낚시통신』부터 현재까지 윤대녕은 끈질기게 어떤 시원으로 복귀하는, 과거라는 꿈속을 헤매는 인물들을 통해 이야기를 직조한다. 상황만 소품의 재배치만을 거듭하는 것이 아닌가, 라는 지루함을 느꼈음을 솔직하게 고백한다. 그러나 『제비를 기르다』에 이르러 그러한 과거를 이고 살아가는 인물들의 행위들은 단순한 방황에서 벗어난다. 은어와 제비의 귀환이 죽음(소멸)인 동시에 새로운 생명의 잉태라는 생성인 것처럼 과거의 꿈을 통해 현재의 인간은 구원을 염원하는 것이 아닌가.

 구원은 복잡다단한 현재에 있지 않다. 구원은 과거에 존재하지 않는가. 윤대녕의 인물들은 방황을 통해 그렇게 읊조리는 것이 아닐까. 당신은 세속적인 계산과 알량한 자존심, 그리고 얕은 만남에 길들여진 자신을 느끼며 체념할 때 무엇을 떠올리는가. 아픈 현실에 위안이 될 수 있는 것은 분명 과거의 기억이 아니겠는가. 윤대녕의 소설들은 회상(그리움)을 통한 치유라는 독특한 효과를 발산한다. 퇴행이 아닌, 삶을 긍정하는, 과거로의 회귀.

2*****h 2009.04.21. 신고 공감 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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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쓸함. 쓸쓸하면서도 따뜻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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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대녕의 소설은 쓸쓸하다. 도대체가 즐거운 내용이 없다.   그런데 따뜻하다. 인간냄새가 슬며시 배어있다. 그래서 좋다.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각 작품들이 주는 동일한 느낌, 동일한 여운. 아름답지만 일면 루즈한 문체에서 오는 집중도 저하.   그래도 그의 소설에 중독성을 느끼는 이유는 오래된 된장국 입맛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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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대녕의 소설은 쓸쓸하다.

도대체가 즐거운 내용이 없다.

 

그런데 따뜻하다.

인간냄새가 슬며시 배어있다.

그래서 좋다.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각 작품들이 주는 동일한 느낌, 동일한 여운.

아름답지만 일면 루즈한 문체에서 오는 집중도 저하.

 

그래도 그의 소설에 중독성을 느끼는 이유는

오래된 된장국 입맛 때문일 것이다.

 

 

s***u 2007.12.05.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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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를 기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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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은이 : 윤 대 녕       '누군가 그럽디다 영원의 나라가 있다고 우리 모두가 그곳에서 이 세상에 잠시 머물다 가기 위해 찾아온 새들이라고 나중에 거기 가시거든 생을 거듭하지 말고 부디 오래 머무십시오 거기 영원의 나라에서..'     작가 윤대녕씨의 글은 참으로 담담해 보였지만.. 그의 생은 참 사연이 많구나..   할아버지의 품에서 자란 어린 시절..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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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은이 : 윤 대 녕

 

 

 

'누군가 그럽디다

영원의 나라가 있다고

우리 모두가 그곳에서 이 세상에 잠시 머물다 가기 위해 찾아온 새들이라고

나중에 거기 가시거든 생을 거듭하지 말고 부디 오래 머무십시오

거기 영원의 나라에서..'

 

 


작가 윤대녕씨의 글은 참으로 담담해 보였지만..

그의 생은 참 사연이 많구나..

 


할아버지의 품에서 자란 어린 시절..

일찌기 한자와 한글을 깨우치고..

시골집에는 오직 책밖에 없어서 늘 독서와 침묵으로 일관했다는 그..

중3때 처음 원고지 50매 가량의 단편을 쓰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기전까지 라면박스 4개 분량의 작품을 쓰고..

또 그것들을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어머니가 보는 앞에서 불태워버렸다 한다..

 


제대 후 신춘문예에 응모해 탈락하고..

그는 복학을 하지않고 절에 들어가..

출가를 결심하지만..

스님은 "당신은 언젠가 세상으로 다시 내려갈 사람이다'라며 그의 청을 거절했다고 한다..

 

 

 

 

 

내 어머니는..

강남갔던 제비가 돌아온다는 삼월삼짇날 아침에 태어나셨다..

평생 마음속에 제비를 품어 기르며 살았던 어머니..

아버지의 모진 매질에도 불구하고 첫눈이 내리면 어김없이 며칠이고 집을 나섰다가 피곤에 지친 모습으로 돌아오곤 하시던..

내 어머니..

 


'새끼제비 한마리를 뒤란 헛간 사과상자 안에다 넣고 정성을 다해 키웠다.

얼추 성장한 제비를 날려보내려했지만 상자속으로 기어들어가 움직이지 않았다.

그날 나는 방으로 들어와 낮부터 이불을 쓰고 누웠다.

"네가 강남으로 가는 날 나도 집을 떠나고 말리라"

어머니를 닮은 내가 세상속으로 날개짓을 하기 시작한 날이었다.

따뜻한 강남으로 가기위한 것도 아닌, 차가운 이세상에 머물기 위한 것도 아닌, 어쩌면 숙명적 날개짓을..'

 

 

이런 어머니와 날 지켜봐야만 했던 아버지는..

얼마나 고독한 사람이었을까..

사랑하는 사람과 살을 맞대며 살고 있지만..

그 사람의 마음만은 가질 수 없다면..

이 얼마나 공허하고도 슬픈일이겠는가..

 


그런 아버지와 정을 통하던 술집작부 문희..

문희가 해주던 그 한번의 포옹과 뽀뽀는..

어머니의 사랑을 못 느껴본 나의 가슴을..

립스틱 보다 더 붉게 달아오른 인두가 되어 평생을 그렇게 아로새겨 놓았다..

 

 

애인의 면회를 갔다가 허탕치고 돌아간다던..

우연히 앉게된 버스 옆자리의 그 아가씨..

그녀의 이름은 문희였고..

난 문희를 사랑하게 되었다..

 


결국에 그녀는 회사까지 찾아와서 땡깡부리던 전애인에게로 돌아가지만..

내 어머니를 닮았던 문희의 결혼은 실패로 끝이나고..

제비떼를 볼 때면..

나에게 연락을 해왔다..

 


'결혼은 했나요?

나보다 네 살 아래고 같은 회사에 근무하고 있어.

그녀가 입사할 때부터 마음속으로 줄곧 좋아하고 있었어.

지금도 많이 좋아하고 있고.

여자는 남자가 만드는 거니까 잘해주세요.

우리 부모님을 보면 그렇지도 않더군.

결국 집을 짓듯 서로 조금씩 만들며 쌓아가는 거겠지.

누굴 좋아한다는 얘기를 들으니까 안심이 되네요.

따지고 보면 사랑한다는 말처럼 이기적이고 무책임한 말도 없잖아요.

그 말은 상대의 모든 걸 원한다는 뜻이니까요.

사실 모든 건 안되죠.'

 

 

초로의 작부로 남아있던 문희..

난 결국 몇십년이 지나 그녀를 찾아갔고..

평생 당신을 그리워 했다고..

그녀의 품에안겨 눈물을 펑펑 쏟아냈다..

 

 

 

 

영원의 나라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이 소설속 인물처럼..

또는 우리 모두들은..

그렇듯..

고독하게 살아가는 모양이다..

제비의 날개짓을..

다시한번 힘껏 추스리며..

 

 

 


image..

 

 

난 왜 소설을 보는 내내 swallow 가 아닌 저 단어가 떠올랐던 것일까..

아마..

주인공이 느꼈던 어린 시절 술집작부 문희의 image 처럼..

나도..

어느 누군가의 image를 아직도 내내 그리워 하나보다..

 

 


 

 

 

 

 

t******4 2007.11.03.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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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킬 수 없는, 흘러가는, 잡히지 않는 삶의 아련함
"돌이킬 수 없는, 흘러가는, 잡히지 않는 삶의 아련함" 내용보기
읽어보려 몇 번을 시도했다 보는 쪽쪽 포기했던 작가가 바로 윤대녕이었다. 90년대 등장한 그의 작품 세계는 나와 너무 멀리 있었고 그가 겨냥한 세대의 감성코드와 나의 고민은 접점을 찾기 어려웠다. 따라서 윤대녕 소설의 절정이라든가, 윤대녕 소설 기어코 여기까지 왔다든가, 정녕 윤대녕답다는 여러 평가들을 나는 판단할 수 없다. 나는 이 작품을 통해 윤대녕과 진지한 첫 대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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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어보려 몇 번을 시도했다 보는 쪽쪽 포기했던 작가가 바로 윤대녕이었다. 90년대 등장한 그의 작품 세계는 나와 너무 멀리 있었고 그가 겨냥한 세대의 감성코드와 나의 고민은 접점을 찾기 어려웠다. 따라서 윤대녕 소설의 절정이라든가, 윤대녕 소설 기어코 여기까지 왔다든가, 정녕 윤대녕답다는 여러 평가들을 나는 판단할 수 없다. 나는 이 작품을 통해 윤대녕과 진지한 첫 대면을 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그도 나도 나이를 먹은 것인가? 그의 이번 소설집은 처음부터 끝까지 쭈욱 읽혔다. 마음 한 켠이 살짝 불편해지지도 않았고 왠지 겉도는 이질감으로 집중력이 떨어지지도 않았다.


돌아오지 않는 아내를 찾아 나선 그 길로 30년이 넘는 세월, 고향과 어린 자식을 외면했던 아비의 삶이나 버림받은 이유를 단 한 번도 제대로 들어보지 못한 채 백부의 보호아래 천형의 결핍과 고독에 몸부림쳤던 찬영의 삶, <편백나무숲 쪽으로>

어두워지는 저녁 절룩거리며 걸어가는 모습에 가슴이 미어져 그 길로 사랑의 도피행을 감행한 후 구구절절한 인생역정을 걸어간 고모의 한 평생 <탱자>

제비가 강남으로 떠나면 자신의 인생마저 암흑천지로 변하고 연례행사로 가출을 해대던 어미의 불가사의한 삶이나 그로 인해 사는 게 고독한 행사임을 뼈 속 깊이 새겨야 했던 남편과 어린 아들의 삶 <제비를 기르다>


아마도 젊은 시절에는 이들의 삶이 독특하고 드문 그리하여 특별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지극히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이쯤 살아보니 인생에는 별별 일이 다 있다. 그들의 삶이 특이한 게 아니고 인생이란 놈의 생김새가 원래 그런 것이다. 행방불명된 가족, 단지 제비가 아닐 뿐인 그 무엇, 고모 못지않은 인생의 굴곡이 내남 할 것 없이 배경으로 깔려있다.


그럼에도 우리 모두가 살아가고 있듯이, 그것도 곧 죽을 것처럼 괴로워만 하는 것이 아니라 틈나는 대로 웃고 떠들고 행복해하며 또는 행복하려 노력하며 살아가듯이 그들의 인생도 화려한 색감과 활력으로 끓어 넘치는 시간들이었을 것이다.    

  

생에는 화해할 수 없는 관계라는 것도 엄연히 존재하게 마련이다. 그런 사실을 인정하고 나면 그토록 악마처럼 굴던 삶이 오히려 나에게 관대한 점이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삶을 완수하는 방식이 저마다 다르다는 건 얼마나 갸륵하고도 오묘한 사실인가.


화해하길 바랬지만 결코 화해할 수 없었던 관계로 고통받아본 사람들은 절절히 공감할 구절이다. 그리고 대개 이런 관계란 아주 가깝고 사적이며 운명이나 필연, 업보, 인연 등등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불가피성의 외피를 두르고 있게 마련이다. 상처가 고통인 까닭, 그 흔적이 쉽게 지워지지 않는 까닭은 마음을 주었던 사람들이 남긴 기억이기 때문이다.


화해를 포기한다는 것은 고독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내 마음을 거둬들이고 그가 타인임을,그와 나 사이의 어쩔 수 없는 거리감을 인정하는 것이다. 불가능한 화해에 몸부림치며 미봉책의 연결점으로 포장하든, 깨끗이 털어내고 다가설 수 없음을 인정하든 자기 할 나름이다. 하지만 나는 갸륵하고도 오묘한 경지에는 이르지 못했다. 여전히 마음 한 구석 미련이 남아 그들의 삶을 지그시 봐 줄 여유가 아직은 없는 것인지도. 그리하여 내 마음은 많은 시간 냉정하고 순간순간 파바박 불꽃이 튄다.


언젠가 따스운 연민의 강물이 내 마음을 가득 채우면 얼음과 불꽃의 격렬한 파동을 잠재우고 평온한 경지에 다다를 수 있을까? 잡으려 할수록, 기대할수록 마음이 어지러워진다는 것은 알았다. 하지만 어지러움을 다스리기 위해 그저 버리고 포기하고 내버려두는 것 이상의 경지는 머리로만 알 뿐 마음은 따라가지 못한다. 잡을 수도 버릴 수도 없는 그 어정쩡함 안에 나는 여전히 갇혀 있다. 

   

YES마니아 : 로얄 n****o 2007.03.07.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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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보는 따스한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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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이란 지나 그를 만나니 그도 변해 있었다. 그의 변화를 나는 기꺼히 환호하며 박수치며 반긴다. 모호하고 안개속을 걷는 기분, 달빛가운데 있는 듯한 그의 소설이 인생을이야기하고 사람들의 삶을 말한다. 이제 인생의 절반을 산 그는 삶을 더욱 깊히있게 말하고 사람사이에 벌어지는 갈등과 불화에 대해 화해하고 소통하며 사랑하는 방법들을 소설 구석 구석에서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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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이란 지나 그를 만나니 그도 변해 있었다.

그의 변화를 나는 기꺼히 환호하며 박수치며 반긴다.

모호하고 안개속을 걷는 기분, 달빛가운데 있는 듯한 그의 소설이 인생을이야기하고 사람들의 삶을 말한다.

이제 인생의 절반을 산 그는 삶을 더욱 깊히있게 말하고 사람사이에 벌어지는 갈등과 불화에 대해

화해하고 소통하며 사랑하는 방법들을 소설 구석 구석에서 말하고 있다.

그의 소설을 읽을 때 마다 느끼는 인간의고독감, 왠지 소통하지 못하고 섬같은 인간들의 모습이나

자신의 내면에 충실에했던 모습보다 사람사는 이야기들로 가득 찬 그야말로 잘 읽은 된장같은 소설집이란 생각이

든다

 

8편 모두가 주옥같고 빨리 읽기가 아까운 소설이었다.

표제작인 <제비를 기르다>에서도 엄마가 봄철만 되면 제비를 쫓아 집을 나섬으로 인해 아버지와 자식이 외로움으로

몸살을 앓고 나름자신들의 방법으로 자신들의 삶을 추스리는 모습과 마지막에주인공 내가 마음속에 그리움의 대상인 문희를 만난 그의 품에 안겨 통곡하는 모습을 보며 결국그간에 억눌었던 외로움과 울분들의 시간들이  화해 하는모습이어서  안도감이 들었고 마찬가지로 <못자국>또한 우연히 찾아온 인연으로 부부로 살다가

어느 순간의 흐름을 놓치며 서로에게 멀어지고 단절되었다가 다시 만나지만 서로에게 남긴 그 상처는 지울 수 없는

못자국으로 남는다는 <못구멍>도 마지막 글귀를 읽으며 애잔한 마음이 들었다. 결국 더 좋은 방향으로 노력하며

 살아가지 않을까

인생이란 헐벗은 나뭇가지들 사이로 틈틈이 지나가는 햇살을 바라보는 것

따뜻한 강물처럼 나를 안아줘. 더 이상 맨발로 추운 벌판을 걷고 싶지 않아

당신의 입속에서 스며나오는 치약냄새를 나는 사랑했던 거야

우리 무지개빛 피라미들 처럼 함께 춤을 춰

그래도 인생은 살 만한 거라고 내게 애기해줘 가끔은 자유와 이상과 고독에 대해서도 우리 얘기해

화병처럼 나는 주인만을 사랑해.

나도 너의 주인이되고 싶어

당신이 번저 잠든 밤마다 나느 이렇게 한줄씩 쓰고 있어요.

 

작가의 시선은 항상 긍정의 모습을 잃지 않는 듯 했다. 그래서 소설속의 내용이 더욱 충만하다는 느낌을 주었고

마음한 구석 응어리짐들을 풀어가며 화해의 자리로 우리를 인도해 낸다. 남자 작가이기에 이야기 해줄 수 있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 대해서도 이번 소설집에도 빼먹지 않았다. 아버지와의 갈등을 말하는 <편백나무숲쪽으로>

나 <고래등>도 오랜 갈등의 모습에서 결국 화해와 용서의 자리로 서로를 이끄는 모습이 참으로 가슴짠하게 오는 듯 했다. 자신이 죽은 후 기여코 화장을 해달라는 아버지의 말과 이것을 용납하기 어려워 하는 아들의 모습가운데 아버지는 말한다 굳이 화장을 고집할 이유가 없잖아요 그가 슬그머니 옆을 돌아보고 나서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럼 봉분이 있으면 가끔 와보기는 할래?p189 - 고래등- 

 부모 자식뿐 아니라 같은 가족 구성원내에서의 따돌림과 구박을 이겨내며살아온 고모의 모습을 귤과 탱자라는 이미지로 말한 <탱자>에서도 인생의 참으로 모진 단면을 작가는 이야기 한다.

또한 우리 한국사회에서 친족이란 이름에 대해 너무도 냉정하게 잘 말해주는 듯 싶다. 그저 명절때가 되어 서로 모이고그러다 안부없이 헤어져 있는 모습, 어쩌다 서로의 경조사만을 확인하며 지내는 모습에서  고모와 조카라는 어쩜

가까울  수도 있고 멀 수 도 있는 관계에서 뒤늦게 챙겨주고 신경써주며 나중에 고모의 부음을 아버지로 부터 뒤늦게 듣고 화를 내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며 조금 안타깝기도 했다.

 

YES마니아 : 로얄 m*******r 2009.06.0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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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대녕 첫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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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대녕이라는 작가를 이 단편소설집으로 처음 접했다. 한국 문학에 무지한 나는 그 전에는 윤대녕이라는 이름도 알지 못했던 것이다.   이런 글을 쓰는 작가를 이제껏 모르고 있었다니. 그저 한숨만 나올 뿐이다. 하지만 이제라도 알게 되었으니.로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의 이야기들은 모두 약간은 아프다. 내가 특별한 사람은 아니지만 도시의 중산층에서 살아온 20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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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대녕이라는 작가를 이 단편소설집으로 처음 접했다.

한국 문학에 무지한 나는 그 전에는 윤대녕이라는 이름도 알지 못했던 것이다.

 

이런 글을 쓰는 작가를 이제껏 모르고 있었다니.

그저 한숨만 나올 뿐이다.

하지만 이제라도 알게 되었으니.로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의 이야기들은 모두 약간은 아프다.

내가 특별한 사람은 아니지만

도시의 중산층에서 살아온 20대로서는

접하기 힘든 사람들과 그들의 이야기들이 화자의 주위에 펼쳐져 있다.

하지만 윤대녕의 글은 끈끈하되 구질구질하지 않고

밀도가 높지만 발목을 잡지 않는다.

 

머리를 쓰는 것조차도 덥게 느껴지는 이 여름에

가을 바람이 스치고 지나간 것처럼

가슴이 알알하고 머리가 먹먹해지는 이야기들이다.

 

문득.

대한민국에서 남자로 태어나

일정한 직업을 갖지 않고

글을 쓰며 평생을 살아온 사람들이

무척이나 대단하다는 생각도 든다.

 

그들은 얼마나 많은 편견과 험난한 길을 지나야만 했을까.

 

YES마니아 : 플래티넘 i*****e 2008.08.1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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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깊은 그리움에 전하는 따스한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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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대녕의 소설을 펼쳐들 때면 언젠가 머물렀던 제주의 기억이 떠오른다. 환한 햇빛이 비치는 아름다운 날도 있었을 텐데, 푸르게 넘실거리던 바닷가의 물결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던 눈부신 날도 있었을 텐데, 제주를 떠올리면 이상하게도 흐린 하늘과 세찬 바람에 대한 기억뿐이다. 온몸으로 부딪혀 오던 그 거친 바람이, 마음을 세차게 때리던 바람 소리에 대한 기억이 책장을 넘기는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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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대녕의 소설을 펼쳐들 때면 언젠가 머물렀던 제주의 기억이 떠오른다. 환한 햇빛이 비치는 아름다운 날도 있었을 텐데, 푸르게 넘실거리던 바닷가의 물결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던 눈부신 날도 있었을 텐데, 제주를 떠올리면 이상하게도 흐린 하늘과 세찬 바람에 대한 기억뿐이다. 온몸으로 부딪혀 오던 그 거친 바람이, 마음을 세차게 때리던 바람 소리에 대한 기억이 책장을 넘기는 내게 애잔한 그리움처럼 밀려들었다. 윤대녕의 소설은 그 바람 소리를 닮았다.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누군가를 잊지 못하면서도 그렇게 마음에 담아두기만 하는 그의 인물들을 보면서 제주의 바람 소리를 떠올린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마음 속 담아두었던 깊은 그리움을 툭툭 건드리는 것만 같았던 제주의 바람, 그리고 그 바람소리로 기억되는 제주. 작가가 제주에서 쓴 소설, 「탱자」는 고단한 생을 누린 고모가 제주에서 머무른 여정을 담고 있다. 고모의 고단한 생이 제주의 거친 바람을 닮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고모의 한탄 섞인 자조의 목소리도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다. 결국 따스한 햇살을 기다리며 차가운 바람을 견뎌내는 게 우리네 인생일 테니까. 「못구멍」에 나오는 말처럼, “헐벗은 나뭇가지 사이로 잠깐잠깐 스쳐 지나가는 빛을 바라보는 게 우리들 인생”일 테니까 말이다. 

 

그리움은 어쩔 수 없이 우리 생에 스며드는 운명 같은 것이어서, 그의 인물들은 그리움을 멍에처럼 이고 살아간다. 「제비를 기르다」의 어머니는 가슴에 스며있는 그리움을 어찌할 수 없어서 집을 떠났다 다시 돌아오곤 했다. 마치 제비처럼 떠났다 돌아오는 어머니의 삶은 어디 한 곳 정착하지 못하고 평생을 떠도는 사람처럼 황량하고 고독했을 것이다. 그것을 지켜보는 가족들의 삶이야 말해 무엇하랴. 곁에 있는 가까운 사람들조차 어루만져 줄 수 없는 내밀한 생의 고독은, 그리고 그 고독으로 이루어져 있는 관계는 「못구멍」에서도 마찬가지다. 운명처럼 두 사람이 만나 결혼하지만 이들은 고단한 생을 핑계 삼아 서로를 가장 외롭게 한 후에 헤어진다. 이들은 다시 만나게 되지만 그 재결합이 쓸쓸하게만 느껴진 것은 서로가 서로에게 준 상처가 못구멍처럼 어떤 것으로도 지워질 수 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상처는 겉으로는 치유된 듯 보이지만, 그 앙금은 깊숙하게 남아 우리 삶을 이끌고 갈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가장 가까운 사람들, ‘가족’으로부터 깊은 상처를 받기도 한다. 가까운 듯 보이지만 가장 멀리 존재하는 관계일 수 있는 가족. 그 가족의 고단한 관계가 여러 소설에서 보인다. 「제비를 기르다」에서 어머니는 그 자신의 고독으로 남은 가족들을 고독하게 만들었고, 「고래등」과 「편백나무숲 쪽으로」의 아버지는 ‘나’에게 ‘가족’이라는 이름의 멍에 같은 존재이다. 「못구멍」에서 부부는 함께 있으면서도 혼자 있을 때보다 더한 외로움을 느낀다. 함께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내밀한 외로움을 나누지 못했다. 따뜻한 관계라고 생각했던 ‘가족’이 그렇게 고단한 삶의 짐이 되기도 하고, 마음 속 깊이 맺힌 고독의 무게를 더하기도 한다. 그의 소설 속에 자리하고 있는 그리움의 정체는 ‘가족’이라는 무거운 관계에 빚지고 있는 부분이 크다.

 

그의 소설 속에서 헤어짐, 상처, 그리움의 쓸쓸한 이미지는 자연스럽게 ‘죽음’의 고독함으로 이어진다. 「제비를 기르다」에서 그토록 고독한 생을 살아온 어머니는 당연한 귀결처럼 죽음을 준비한다. 「탱자」의 고모나 「편백나무숲 쪽으로」의 아버지가 맞이하는 죽음은 그 고단했던 생과 맞물려 애잔한 느낌을 가지게 한다. 남겨진 사람들에게도 타인의 죽음은 지독한 아픔이어서 「낙타 주머니」에서처럼 쓸쓸한 느낌을 어찌할 수 없다. ‘죽음’이라는 끝을 가지고 태어나는 한, 우리 삶에 드리운 고독은 우리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숙명인지도 모른다. 윤대녕의 소설은 그러한 필연적인 고독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마치 그러한 필연적인 고독에 의해 소설이 쓰인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각별히 고독을 챙기며 살았다는 작가의 말을 읽으며 가슴이 먹먹해져 온 것은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주 행복하다고 생각했던 어떤 시간, 갑자기 터져 나온 울음에 먹먹해졌던 기억이 있다. 환한 빛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생이란 끊임없이 고독한 질문을 요구하는 것일까. 그 때의 먹먹했던 기억만큼이나 가슴을 아련하게 파고드는 문장들은 마치 옛사람을 우연히 마주치게 된 것만큼이나 쓸쓸하다. 윤대녕의 서정적인 문장들 속에서 서서히 아픈 통증을 느끼는 사람처럼 거닐었다. 그 아픈 통증을 쓰다듬어 주었던 것은 역설적으로 그의 문장들이었다. 부드럽게 매만져주는 따뜻한 손길처럼 그가 속삭이는 듯 했다. 쌓여가는 그리움들이 상처가 되어 삶 속으로 파고들어도, 그래도 살아가다 보면 따스한 강물 같은 위로 받을 수 있는 날이 있다고. 고독한 삶 위로 따스한 빛이 내리쬐는 순간, 그런 순간들이 이 삶에도 존재한다고. 그러니 살아가는 게 아니겠냐고. 

시간이 흘러도 변함없는 감정들로 아파할 때, 잠들지 못하는 밤 그리움들이 가슴 시리도록 스며들 때, 누군가의 위로로도 스산해진 마음을 다독이지 못할 때, 그럴 때면 늘 윤대녕의 소설집을 꺼내들었다. 살아 있는 일이 이토록 고독한 일이었던가. 그의 문장들에서 나는 얼마나 고독해졌고, 그러면서도 이상하리만치 편안해졌는지. 우울했던 시간, 그의 문장들에서 나는 또 얼마나 위로받았었는지. 그의 말처럼 살아 있는 한 그리움은 계속되고 누군가 글을 쓰는 일도 계속된다면, 이제는 더 이상 내 깊은 그리움을 홀로 삭이지는 말아야겠다. 마음이 시리거나, 그리움이 서걱거리는 밤이면 펼쳐볼 한 권의 책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 그래서 잠들지 못하는 밤이면 따뜻한 이불에 파고들듯, 그리운 이가 전해주는 엽서를 읽듯, 그의 소설 속으로 파고들어야겠다. 내 깊은 그리움을 달래주기 위하여. 내 고독한 삶에 아름다운 위로 하나 건네주기 위하여.

a*****1 2008.05.1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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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치는 삶, 그래도 살만하다라고 말해주는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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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으로 떠난 제비가 돌아오는 봄, 내 안에도 박씨를 심어줄 제비가 들어왔다. 윤대녕, 그의 소설은 마치 길고 긴 한 편의 시와 같다. 단 편 하나 하나가 각각 연이 되어 때로는 매혹적이고 때로는 무덤덤하게 독자에게  말을 건다. 글 속의 화자는 어느새 글을 읽고 있는 독자로 이입된다. 가물거리는 꿈속 같은 추억을 이야기하고 갈망하는 욕망을 터드리기도 한다. 그러나 조용한 목
"파도치는 삶, 그래도 살만하다라고 말해주는 작가 " 내용보기

 강남으로 떠난 제비가 돌아오는 봄, 내 안에도 박씨를 심어줄 제비가 들어왔다. 윤대녕, 그의 소설은 마치 길고 긴 한 편의 시와 같다. 단 편 하나 하나가 각각 연이 되어 때로는 매혹적이고 때로는 무덤덤하게 독자에게  말을 건다. 글 속의 화자는 어느새 글을 읽고 있는 독자로 이입된다. 가물거리는 꿈속 같은 추억을 이야기하고 갈망하는 욕망을 터드리기도 한다. 그러나 조용한 목소리로 내뱉는다. 윤대녕의 소설은 일상에서의 일탈을 도모하게 한다. '피아노와 백합의 사막'에서 온통 사막을 그리워하게 만든 그는 이 소설집에서 삶을 여행하는 여행자, 추억을 더듬어 방황하는 중년이후의 그리움을 탐익하게 한다. 잔잔했던 내면속으로 파고들어 점점 더 커지는 파동을 만들어낸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인생의 뒤안길

 지난 가을 떠난 나만의 제비가 돌아오길 기다리지만 정작 돌아온 제비는 그때의 제비가 아님을 알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나를 잊지 않고 돌아온 나만의 제비로 기억하고 싶어한다. 인생의 공허함과 외로움을 달랠길 없던 어머니의 기나 긴 방황은 그녀의 부재를 대신한 누군가를 필요로 한다. 그것은 또다른 방황으로 이어지고 소설속 화자가 그리워한 문희로 대변된다. 그저 외로웠기에 그저 나를 달래기 위한 방편. 어머니가 기다리던 제비는 결국 나에게도 같은 의미의 제비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 그것이 인생인지 모른다.

 

 단편 '제비를 기르다'에서 아버지와 화자가 기다린 제비는 어머니였을 것이고, 어머니가 기다린 제비는 자기 자신이었을 것이다. '어디서 어느 틈에 새들어온 빛일까. 노파의 등 뒤에 연잎 같은 커다란 보랏빛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있었다. 그 빛은 차츰 사람의 형상으로 변해 노파를 뒤에서껴안은 듯한 그림자가 되어갔다.'제비를 기르다' 중에서 .이 단편은 어린 아들을 버리고 평생을 살다가 죽음을 앞두고 아들에게 돌아 온 아버지와의 암묵적인 갈등와 증오를 편백나무 숲이라는 거대한 숲으로 표현하고 있는 '편백나무쪽으로' 라는 소설과 그 맥락을 함께 한다. 깜깜한 어둠으로 그려지는 편백나무숲, 정작 그 숲 안에서는 평온이숨겨져있고 알려지지 않았던 아버지의 삶이 드리워져 있다. 그 안에서 비로소 화해할 수 있는 아버지와 아들의 모습을 그리게 한다.

 소리내어 말했으나 들리지 않는 소리

 

 우리는 매일 매일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이야기를 듣는다. 심지어 자동으로 녹음된 기계화된 음성을 듣기도 한다. 아니, 기계화된 음성에 점점 더 익숙해져 있다. 감정을 배제한 음성이기에 때로는 그 안에 담겨진 진짜 소리를 듣지 못하기도 한다. 반대로 어느 누구도 알아주지 않던 자신의 소리를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자신에게 가지는 의미는 특별하다. 가족 모두에게 외면당하고 살아온 늙은 고모가 죽음을 앞두고 바다 건너 제주도까지 자신의 말을 들어주고 자신을 위로해주던 조카를 만나고 떠난 이야기, '탱자'는 지친 삶의 농밀한 슬픔을 그대로 보여준다. 자신의 제외한 모든 가족은 귤이었고 늙은 고모는 작고 보잘 것 없는 탱자였다는 은유적 표현으로 읽힌다. 

  홀연하게 나타나 자신의 삶을 뒤흔드는 듯한 누군가와의 만남과 이별을 통해 삶과 죽음, 인연이라는 것을 이야기하는 '낙타 주머니', 인생에서 결혼이라는 인연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만나지는 상처를 그린 '못구멍'이라는 단편은 윤대녕만이 쓸 수 있는 글이라는 것을 확인하게 했다.  물론 나는 아직 그의 작품을 많이 만나지는 못했다. 하고 싶은 말을 입 속에서 소리로 만들어내지 못하고 맴돌다가 한 참 후에 세상에 토해내는 느낌, 하나의 사물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는 듯한 그의 시선을 만난다. 

 '문학의 종언'을 둘러싼 논란이 문단에서 가열한 이때, 또 한 권을 책을 보태는 일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삶이 계속되는 한 그리움은 계속되고 또한 누군가 조용히 숨어 글을 바라고 쓰는 일도 계속될 것이다. 라는 작가의 말은 '인생이란 헐벗은 나뭇가지들 사이로 틈틈이 지나가는 햇살을 바라보는 것. 따뜻한 강물처럼 나를 안아줘. 더이상 맨발로 추운 벌판을 걷고 싶지 않아. 당신의 입속에서 스며나오는 치약냄새를 나는 사랑했던 거야. 우리 무지갯빛 피라미들처럼 함께 춤을 춰. 그래도 인생은 살 만한 거라고 내기 애기해줘. 단편 '못구멍'에서 만난 이 문장을 메모하게 한다.


r*********s 2008.04.2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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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를 기르다]윤대녕에 빠지다.
"[제비를 기르다]윤대녕에 빠지다." 내용보기
윤대녕의 천지간을 아직도 읽지 않았다. 이유는 모르겠으나,호기심이 생기면서도 괜히 친해지기 싫었던건 이름에서 풍겨오는 작가의 이미지가 괜히 너무 무겁거나 지루하지 않을까 하는 근거도 없는 선입관 때문이리라.   지난번에 먼저 읽은 어머니의 수저,는 생각보다는 조금지루했으나, 이 작가에 대해서 더 파고들어 가고 싶었고, 출판의 신간 순으로 계획하였다.   약간의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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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대녕의 천지간을 아직도 읽지 않았다. 이유는 모르겠으나,호기심이 생기면서도 괜히 친해지기 싫었던건 이름에서 풍겨오는 작가의 이미지가 괜히 너무 무겁거나 지루하지 않을까 하는 근거도 없는 선입관 때문이리라.

 

지난번에 먼저 읽은 어머니의 수저,는 생각보다는 조금지루했으나, 이 작가에 대해서 더 파고들어 가고 싶었고, 출판의 신간 순으로 계획하였다.

 

약간의 기대와 우려가 짬뽕된 심정으로 글을 읽는 순간

나는 완전 환장한 사람처럼 윤대녕의 글에 빠져들었다.

 

그 느낌은 처음 박완서 선생님의 글을 접했을때와 거의 마찬가지 수준으로 신선한 충격이였으며,'이게 바로 문학이구나' 싶을 정도로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리면서 영화 한편을 보는 것처럼 생생했다.

 

나의 경우에는 '탱자''제비를 기르다''연''편백나무 숲쪽으로'가 다 인상적이였다.

 

수록된 작품 들 중에서 우열을 가리기 힘들정도로 나름대로 다좋았다.

 

특히, 항상 어떤 보던 소설의 패턴과는 달리 엄청나게 자극적인 사건이 없이도,

이렇게 감동적인 글이 쓰여지는 구나 하는 감탄은, 책의 맨 뒷장의 신경숙의 서평처럼...중독되고 싶은 생각이 저절로 들게 하였다.

 

정말로...윤대녕 선생님의 글을 무척 좋아하게 될 것 같다.

YES마니아 : 로얄 c******m 2007.03.23.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