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Дядюшкин сон / Неточка Незванова :: Фёдор Миха'йлович Достое'вский 소위 [도스또예프스끼를 읽는다] 고 하면 스노브의 '난 척' 으로 보일 여지가 있다. 그가 세계문학사의 최고 거장이라는 타이틀을 쥐고 있는데다 그의 저서가 하나같이 분량이 두꺼운 바람에 범접하기 어려운 아우라를 갖고 있는 탓인지도 모르고, 혹은 진짜 몇몇의 스노브들이 그런 점을 악용하여 그의 영역에 또아리를 친 탓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단언컨대 그의 작품들은 어엿한 '대중소설' 이다. 그의 소설들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고전 소설들은 수많은 대중들에게 회자 되었기에 지금의 반열에 오른 것이다. 당시에 평가받지 못한 소설들이 지금에 와선 그 가치를 인정받기도 하듯이, 작품의 문학적 가치는 당시대에 단정 내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지금 시대에 고전으로 재평가 되는 것도 지나치게 과잉된 이미지가 적잖이 있다. 그런데 이것이 지적 허영심의 장신구로서 이용 되다보니 더더욱 현대 대중들에게 괴리감과 주눅어린 열등감을 제공하고 스노브의 전유물로 착각 되어진 것이 아닐까. 작품에 따라 편차는 있어도 고전은 그닥 어렵거나 지루하지 않다. 물론 현대적 감각과 속도감에는 한참 못미쳐도 적어도 근시대의 순문학으로 여겨지는 포스트모던 계열의 문학과 비교하자면 난이도의 차이는 'hard' 와 'very easy' 의 갭이라 봐도 무방할 정도다. 이중 삼중의 의미를 해석해야 하고 이야기의 구조를 풀이하자면 장황해지는 최근 문학 사조의 작품들을 읽다가 고전 작가들의 작품을 읽으면 그 이해하기 쉬운 플롯에 감사함마저 느끼게도 된달까. 오히려 그 작품들을 분석했다는 서평들이 훨씬 난해해서 작품을 소개하겠다고 쓴 글인지 서평가 스스로의 지적 척도를 가늠해보고 싶어하는 글인지 의심될 때가 있다. 서평가들의 임무에는 작가와 대중의 가교 역할도 있는 게 아닌가. 물론 이 글은 전문 서평이 아닌 일개 독자의 독서 일기에 불과하지만 모쪼록 더 많은 독자들이 학술적 서평에 대한 선입견과 스노브적 편견을 뛰어넘어 그저 '재미' 로서 고전들을 읽었으면 하는 바람에 권유와 추천의 의미를 담아 이렇게 서두를 써본다. 비주얼적 자극과 스피드에 길들여진 독자라면 시각적 상상보다 공감적 감수성에 기대고 호흡이 긴 장편이 버거울 수도 있겠으나 한두번만 습관을 들여 익숙해진다면 전자가 주는 재미 못지 않은 고전의 재미를 느낄 수가 있다. 재미는 시간에 비례한다고 할까. 순식간의 자극적인 재미는 그만큼 빨리 잊혀지지만 시간을 들인 재미는 그 시간 만큼, 혹은 그 시간보다 더 기억에 오래 머무르게 된다. 또 어떤 경우는, 현대 소설 못지않은 박진감 넘치는 전개 속도로 페이지의 두께를 잊게 되는 고전들도 있다. 도스또예프스끼의 이 중편집도 그렇다. 읽으면 읽을수록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가 궁금해 두께의 압박 때문에 지루함을 느끼게 된다는 핑계를 댈 틈이 없다. 그의 초기 단편작은 특유의 장광설이 지겹게도 느껴지는 부분도 없잖아 있었지만, 중기 이후의 작품으로 갈수록 군더더기가 없어지고 세련 되어진다. 특히 호기심을 자극하는 드라마적 요소가 강해지는데, 역자의 말에 따르면 이 작품은 그의 그러한 경향에 분수령이 된 작품이라고 한다. 사실 이 작품집의 두 중편 [네또츠까 네즈바노바] 와 [아저씨의 꿈] 은 도스또예프스끼의 작품 중에 가장 평론의 관심을 받지 못했음에도 가장 특이한 작품으로 기록 되어져있다. [네또츠까] 는 집필 도중 중단되고 [아저씨의 꿈] 은 도스또예프스끼 최초의 희곡이 되려다 만 '미완성' 의 작품들이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네또츠까] 의 집필 중단은 매우 안타까운 것이, 제대로 완성 되었다면 도스또예프스끼의 '제인 에어', 혹은 '여자의 일생' 으로 평가받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서다. 불우한 환경에서 자란 소녀가 성장하며 만나는 사람들에 의해 변화하는 모습을 그렸다는 것만으로도 여성 소설로서의 가치를 지닐 뻔 했는데, 탄력있는 1부에 비해 뒤로 갈수록 느닷없고 개연성 없어지는 전개에 결국 작가 스스로도 한계를 느껴 야심차게 출발했던 대하 장편으로서의 꿈을 한번 접게 만든 불운의 작품이 되버린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매우 재미있고 흥미롭다. 1부만 따로 떼어 단편작으로 마무리 했어도 좋았겠다 싶은 것이, 작가 도스또예프스끼의 개인적 고뇌를 가감없이 읽어볼 수 있다는 부분에서다. 타고 태어난 재능에 자만해 노력과 연습을 게을리하다 점차 범인들한테도 뒤쳐지고 종반에는 진짜 노력형 천재를 보고 좌절한다는 이야기는 도스또예프스끼 스스로의 자기 비판이자 반성 같다. 처녀작의 호평으로 우쭐하다 차기작의 호된 비판으로 나락에 떨어졌을 때 그가 어떤 심정이었을지, 이대로 가다간 어떻게 될지를 시뮬레이션해 쓴 우려감 어린 일기처럼도 보인다. 비록 고골의 [초상화] 와 비슷한 소재와 내용으로 신선함은 떨어질지언정 도스또예프스끼 특유의 솔직함이 그에게 인간적 공감과 친근감을 갖게끔 해준달까. 그의 또 다른 분신이나 다름없던 예피모프의 몰락 과정도 흥미로웠지만 그에게 일종의 '스톡홀름 신드롬' 을 느끼는 딸 네또츠카의 심리 묘사는 오싹함을 느낄 만큼 매우 인상적이었다. [아저씨의 꿈] 은 재밌다 못해 읽는 도중 몇번이고 폭소가 터져나온다. 도스또예프스끼가 이런 개그도 구사할 줄 아는구나, 하고 감탄마저 했달까. 우스꽝스럽게 과장된 묘사가 많아 희곡적 성향이 강하다는 인상을 받았더니, 아니나다를까, 애초에 연극 무대에 올리려고 만든 작품이란다. 푸쉬킨과 고골의 영향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해 결국 작가 스스로가 포기한 희곡 아닌 희곡이 되버렸지만, 그만의 색깔이 담긴 캐릭터들과 유쾌한 전개는 이 작품이 문학사적으로 가치가 있고없고를 떠나 팬으로서 애착을 갖게 해주는 작품이다. 왜 제목이 [아저씨의 꿈] 인지 아시겠는가? 읽으실 생각이라면 절대 그 이유를 미리 알지말고 보시라. 그 대목이 나오는 부분에서 자기도 모르게 [아하, 이래서 '아저씨의 꿈' 이구나] 하고 킬킬대며 웃게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테니까. 주인공 '아저씨' 는 물론이고 또 한명의 등장인물 아파나시 마뜨베이치에게도 주목하시라. 이들의 대사와 동작은 '개그 콘서트' 못지 않다. 이런데도 도스또예프스끼가 지루하고 어렵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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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사람들, 분신>을 읽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요 <백야 외>를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직접 서점가로 갔었습니다. <백야 외>가 비어 있었습니다. 세 번 째 < 아저씨의 꿈>이 진열되어 있었습니다. 세 번 째 책을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도끼의 글들은 말입니다. 처음에는 느려요 이것 저것 돌아 돌아 이야기하다가 중반이 넘으면 폭풍처럼 몰아치는 것이 맛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러시아 이름의 그 길이에만 익숙해진다면 천천히 발을 떼서 뛰어다닐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아저씨의 꿈 외 > 에는 중편 소설 분량의 소설 두 편이 실려 있습니다. 첫 작품은 <네또츠카 네즈바노바> - 이하 네또츠카 - 이고 두 번 째 작품이 표제인 <아저씨의 꿈>입니다. 처음에 등장하는 <네또츠카>는 미완의 소설이라고 합니다. 이 사실은 연구된 자료가 책 말미에 붙어 있어 알 수 있었지요
<네또츠카>는 '안나 (네또츠카는 애칭임)' 라는 아이의 시선에서 자신의 살아온 생활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형식인데 네또츠카와 인연이 닿은 세 사람의 이야기가 이어져 나오는데 사실 각 사람들의 이야기가 하나의 독립된 단편으로 만들어도 될 만큼 단절되어 있습니다. 옴니버스식 구성이라고 해야 좋을 구성입니다.
첫 부분에는 네또츠카의 계부인 예비모프의 이야기입니다. 천재적 예술가라고 말하는 예비모프는 술주정뱅이에다가 인생을 대충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이상하게 네또츠카는 이런 예비모프를 사랑합니다. 아버지를 넘어서서 이성으로 보는 것 같습니다. 흔히들 이야기하는 엘렉트라 컴플랙스의 전형적인 유형인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사랑이라는 것이 분명 아버지에 대한 동정의 마음을 넘어서 있는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 예비모프의 마지막 행동을 볼 때 김동인인가요 어디선가 읽은 것 같은데 <광염 소나타>의 변형을 보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두 번 째 부분에서는 양육인이 된 공작의 딸 '까쨔'와의 이야기가 주를 이룹니다. 계급이 다르고 살아온 환경이 다른 두 사람이 서로를 이해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워 보입니다. 특히 까쨔의 경우에는 더 하겠지요. 네또츠카를 괴롭히고 왕따를 시키기도 합니다만 까쨔의 잘못을 대신 뒤집어 쓰는 방법으로 까쨔와 네또츠카는 우정을 확인하고 급속도로 가까워지는데 물고 빨고 난리가 난다. 우정이라는 말보다는 동성간의 사랑이라는 것으로 발전되어 보여진다. 그러나 갑자기 까쨔가 공작을 따라 동생에게 가면서 이야기가 끝나버린다.
세 번 째 부분은 알렉산드라 미하일로브나와 네또츠카의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알렉산드라의 남편 뾰뜨르와 알렉산드라 그리고 미지의 인물 s.o와의 삼각관게를 서재의 책에서 발견하면서 파국이 시작된다. 너무나도 자상한 표정의 뾰뜨르는 사실 알렉산드라의 비밀을 잡아 그 위에 군림하는 남자였다 그것을 네또츠카가 폭로하려고 하는 것에서 이야기는 끝난다.
미완성의 글이다. 전체적 이야기는 개인적인 생각으로 그로테스크하다는 표현을 써도 좋을 것 같은데 계속 이야기가 씌여졌다면 더욱 그로테스크한 이야기 장대한 한 인간의 슬픈 연대기를 볼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씌여지지 않았으므로 보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나 그리고 후대의 사람들도 느껴야 하는 천형을 어쩔 수 없이 받아 들여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 아저씨의 꿈>은 K공작을 두고 마리아 알렉산드로브나 모스깔료바(이후 알렉산드로브나)가 자신의 딸 지나이다 아파나시예브나(이후 지나)를 자신의 욕심을 위해 결혼 시키기 위해 벌이는 일이다. 모즈끌랴꼬프의 청혼을 탐탁지 않았던 지나가 어머니의 의뢰(?)를 받아들이면서 일이 벌어지고 속임을 참을 수 없었던 지나의 고백으로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는 상황을 보여준다. 모즈끌랴꼬프는 공작을 아저씨라고 부르는데 청혼을 막기 위해 꿈이라고 우기라고 가르쳐 준다. 여기서 표제인 <아저씨의 꿈>이라는 말이 성립된다. 이 이야기는 음모가 있기는 하지만 매우 재미있는 상황을 연출한다. 심각함보다는 유쾌함과 희극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라고 보면 좋겠다. 참고로 많은 사람들과 그 이름들이 출현하기 때문에 메모하면서 읽으면 느긋하게 읽을 수 있다.
도끼는 많은 문학가에게 영감을 그리고 많은 비평가에게서 논란을 끌어낸 작가라고 한다. 읽으면서 이제껏 전통적으로 이어져 내려오던 것을 거부하고 좀 더 진보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진보하고 변했기 때문에 그것이 시간과 공간을 뛰어 넘어 현대에까지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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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또예프스끼(지음) ㅣ 박종소 (옮김) ㅣ 열린책들 (펴냄)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또예프스끼의 세 번째 작품 아저씨의 꿈을 만났다. 앞으로도 그의 작품을 계속 만날 예정이라 그리고 고전문학은 이미 전문가들에 의해 내용 정리가 되어 있기에 이분에 대해서 조사를 해보았다. 하지만 생각보다 믿을 수 있는 정보가 쉽게 보이지 않았다. 인터넷에 정보가 넘친다고 하지만, 이 정보가 고급 정보인지 그것을 골라내는 안목을 기르는 게 우선 시급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다행히 믿을 만한 기관에서 교수님들의 강연이 있어 참고해 볼 수 있었다.
도스또예프스키는 모스크바에 있는 빈민 의사 출신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귀족 출신이었으나 집안 형편은 가난했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며, 그의 소설 속에서도 자주 등장한다. 그의 아버지는 아주 엄격한 분이셨다. 도스또예프스키는 작가가 되고 싶었으나 아버지의 강요로 빼쩨르부르그 육군 공병학교에 입하하게 된다. 그러던 중 농노들의 폭동으로 아버지가 돌아가시게 되고, 그 이후 작가의 길을 걷게 된다. 25살 그가 쓴 첫 작품은 [가난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이 작품은 비평가들 사이에서 엄청난 호평을 받게 된다. 그는 러시아의 절대 왕정을 지지하던 골든의 입장을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하게 되고 그 죄목으로 사형을 선고받는다. 하지만 이는 당시 사회적으로 젊은이의 반항을 겁주기 위한 방안이였다고 한다. 하지만 이 사실을 몰랐던 도스또예프스키는 실제로 사형장에 끌려 나오게 되고 형장에 서게 된다. 사형이 집행되려는 그 순간 황제의 특명으로 형 집행은 멈추게 되고, 시베리아 옴스크에서 10년간의 유배생활을 하게 된다. 그는 간질이라는 병을 앓고 있었으며, 심각한 도박병을 가지고 있었다. 도스도예프스키의 일대기를 읽고 러시아 문학 교수님들의 강의를 들으면서 왜 그의 작품이 내게 그렇게도 매력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는지 뼈 속 깊이 전해져 왔다. 다반 이 앎이 마른 대지에 잠시 더위를 식혀주는 지나가는 비이기에... 흐르는 시간속에 잊혀짐이 안타깝다. 그래서 열린 책들을 통해 꾸준히 만나게 될 도스또예프스키 책들에서 반복적으로 언급해보고자 한다. 아무튼 그의 이런 드라마틱한 인생은 고스란히 작품 속에 스며들어 있다. 그의 작품을 연구해본 대다수 전문가들은 초기, 중기, 후기로 구분지어 작품을 분류하는데 있어서 큰 이견이 없다고 한다. 그 이유는 28살부터 38살까지 그가 경험한 10년간의 유배 생활 때문이라한다. 강력 범죄자들과 함께 보낸 10년의 시간은 인간 본성을 관찰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됐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그는 각종 강력범들과 같은 방에서 생활 했어야만 했다. 더군다나 19세기 귀족에 대한 민중들의 분노로 인해 신분만 귀족이었던 도스또예프스키는 늘 생명의 위협을 받으며 그들과 함께 지내야만 했다. 그는 그들이 미웠다고 한다. 그리고 인간의 가장 더럽고, 추악한 모습을 보았다고 한다. 그들은 사람을 죽인 행위, 아동을 학대한 행위, 여성을 억압한 행위등등 그들의 악행을 무용담 늘어 놓 듯 아무런 죄책감 없이 자랑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그 어떤 누구도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지 않았다고 한다. 이 부분에서 나는 백범 김구 선생님의 옥살이 이야기가 오버랩 되었다. 인간이란 존재는 선한 마음도 분명 있지만 이런 추잡한 마음 반성이라고는 절대하지 않는 마음도 분명 있다는 것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말이다. 도스또예프스키는 그런 인간이 처한 환경이 자체가 지옥이라고 규정지었다 한다. 그는 수용소 자체가 어찌 보면 철학적 사유를 하고 깨달음을 얻는 공간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교수님의 강의를 들으면서 왜 그의 작품에서 깊이가 전해져 왔는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왜 그의 작품이 그리도 끌리고 좋았는지 이제 이해가 되었다. 그리고 그가 다른 이들에 비해 섬세하고도 치밀하게 인간의 추악함을 적나라하게 잘 묘사될 수 있었는지 특히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라는 작품이 왜 대작이라고 일컬어지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물론 어떤 전문가는 그의 작품을 두고 허무주의라고 보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그의 마지막 작품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보면 그와 같은 해석은 좀 동의하기가 어렵다. 이런 배경 지식을 습득한 이후 [열린 책들 출판사]에서 역자 해설, 작품 평론, 작가 연보를 재독해 보았다. 훨씬 내용이 더 잘 숙지되었다. 그리고 작품 평론 마지막 부분을 통해 <아저씨의 꿈>에 대한 비하인드스토리를 들을 수 있어서 참 좋았다. 이 이야기의 스토리는 다음과 같다. 러시아의 힌 지방 소도시 모르다소프 시에는 속물적이고, 탐욕스러우며, 허세와 과시욕이 넘치는 지방 귀족들이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특히 소설 속 주인공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 모스깔료바는 이 지역에서 꽤 이름이 알려진 훌륭한 부인으로 사교계에선 그녀의 영향력이 제법 강력하였다. 그녀에게는 무능한 남편과 지적이고 마음 착한 미인 딸이 있다. 그 딸은 23살이 되도록 결혼을 못하고 있었는데, 그 이유가 1년 전 지방 초등학교 선생과 묘한 관계를 맺었다는 소문 때문이었다. 어느날 이 무료한 도시에 K 공작이 방문하게 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는 산송장에 가까울 정도로 늙었다. 머리는 다빠지고 없어 가발을 쓰고 있고, 새까맣게 반들거리는 콧수염, 구레나룻, 턱수염이 얼굴의 반을 가리고 있으며, 얼굴 속 주름은 지분으로 가렸고, 옷차림은 최신 유행 옷차림에 한쪽 눈은 유리로 된 의안에 한쪽 다리는 절름 걸음이다. 그뿐 아니라 치아란 치아는 모두가 의치다. 의치 때문에 그가 쏟아내는 발음도 명확치 않다. 더 심각한건 치매 정상까지 있는지 금방 본 사람도, 일도 기억하질 못한다. 하지만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는 이 소설에서 등장하는 인물들 중 유일하게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딸 지나를 설득시켜 이 시체 공작과 결혼을 추진시킨다. 그리고 청혼 과정에서 일어나는 해프닝을 그리고 있는 소설이 바로 아저씨의 꿈이다. 공작의 외양 묘사나 그가 마리야와 한 약속을 끝까지 자신이 꾼 꿈이라고 우기는 모습 등등 공작의 인물 유형을 희화화 시킴으로써 소설의 재미로 부각시키고 있다. 또한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를 통해서는 당시 러시아 지방 귀족들의 모습을 풍자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 작품은 사실 도스또예프스키가 유배 생활이 끝난 이후 처음 쓴 작품으로 작품을 쓰는 동안 검열에 대해 아주 민감하게 반응 했을 듯 하다. 그의 작품을 초기. 중기. 후기로 나눌 수 있다고 한다. 초기에 대해서는 내가 작품을 근거로 강의를 듣지 않아 다음에 초기 작품을 읽게 되면 다루도록 하겠다. 중기에서는 감성주의와 리얼리즘이 동시에 나타난다. 아저씨의 꿈 역시 이러한 특징이 잘 보여지고 있다. 특히 도스또예프스키는 문학 세계는 나와 타자의 관계라고 하는데 이 부분도 작품을 읽으면서 하나씩 익혀나가고 싶다. 타인에 대한 지나친 의식 이런 특징은 작품 [지하로부터의 수기]에서도 매우 잘 나타난다. [아저씨의 꿈]에서도 타인의 구설수, 타인의 시선, 타인 의식을 끊임없이 하는 등장인물들의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지나 아파나시예브나가 애인이 죽은 이후 그의 집에서 나와 길을 걷는데 자신에게 끊임없이 구혼을 했던 빠벨 알렉산드로비치의 대사다.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공작은 뒤늦게서야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게 되고 자신은 꿈을 꾼 것 뿐이라고 꿈 속에서 청혼을 한 듯 하다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중간중간 마리야의 말에 흔들렸다가 헛소리를 했다가 치매 걸린 노인 마냥 헛소리를 늘어놓는다. 그래서 친척들이 그를 정신병원에 보내겠다는 말을 한 듯 하다. 즉 전혀 근거 없는 말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런 상황에서 마리야는 끝까지 오리발을 내밀고 그런 어머니의 뻔뻔스러운 추태를 보며 유일하게 양심을 가진 딸 지나 아파나시예브나가 자신의 집에 와서 공작과 자신의 청혼이 어떻게 된 일인지 확인하러 온 어중이 떠중이들 앞에서 자신의 잘못된 욕심을 고백한다. 그런데 그녀의 그 용감한 고백은 그녀를 파멸로 몰아 놓게 된다. 다음날 사람들은 앞다퉈 험담하기 바쁘다. 그러던 중 아파 죽어가는 그녀의 옛 애인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한번만 자신의 아들 임종을 봐달라며 애절하게 부탁하게 되고, 입장이 곤란한 그녀임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애인의 어머니를 따라 그를 보러 간다. 두 사람의 회환의 눈물을 흘리고, 딸이 사라진 사실을 안 마리야는 그녀의 미래를 위해 딸을 찾아가지만, 그녀는 한사코 남자 곁을 떠나지 않는다. 결국 눈 속에서 어머니는 혼자 집으로 돌아가게 되고, 지나는 남자의 죽음을 밤을 새워 곁에서 지켜보게 된다. 하지만 그의 곁에서 최선을 다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임종을 지킨 그녀에게 남자의 어머니는 이 한마디를 던질 뿐이였다. 너 때문에 이런 변을 당했다. 네가 내 아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망할 년 같으니라고! 이 요망한 계집 같으니라고, 네가 내 아들을 죽였다.! 아저씨의 꿈 244쪽 온갖 구설수를 다 감수하고 엣정을 생각해서 기껏 달려와 밤새워 임종을 지켜준 그녀에게 남자의 어머니가 한 말이다.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하고 싶어서 어머니의 잘못된 선택에 자신도 잘못된 행동임을 알면서도 동참했고, 그 행위를 진심으로 뉘우친 이 소설에서 유일하게 정상적인 사고를 한 인물 지나 아파나시예프나 그녀의 집안은 이후 그 소도시의 집을 팔고 그곳에서 멀리 떨어져있던 농장도 팔더니 먼 곳으로 떠나버린다. 그리고 어느날 빠벨 아파나시예브나는 한 화려한 사교장에서 신분이 높은 고위직의 아내가 되어 사교장에 있는 지나를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소설은 끝이난다. 이 소설의 끝은 참 씁쓸하다. 이런 끝맺음 때문에 그를 허무주의라고 하는걸까? 그는 당시 부패한 절대왕정에 대해 비판 성명을 읊었다는 죄명으로 10년의 유배 생활을 했다.... 그리고 이후 끊임없이 가난과 병마에 시달렸다... 도스도예프스키 강의를 들으면서 깨달은게 있다. 대작이라고 명명하는 작품이나 작가들은 일단 이유는 알고봐야 한다는 점이다. 그에 대해서 알게 되니 작품에 대한 이해가 한결 더 친숙하게 다가왔다. 이런 좋은 작품을 접할 수 있게 해준 네이버독서카페 리딩투데이에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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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새벽 2:43분이다... 집에 10시쯤 들어와서 씻고 정리한 후 지금껏 도스또예프스끼 전집을 읽었다.. 읽다가 졸리면 자려 했는데.. 도스또예프스끼의 매력적인 글이 이 새벽까지 나를 잠재우지 않으며 해설까지 독파하게 만든 후 독후감까지 쓰게 만들고 있다... 이 책은 정말 두꺼움에도 불구하고 3일만에... 순신간에 읽어버린 책이다.. 도스또에프스끼의 수다(?)에 한번 걸려들면 헤어나올수가 없다. 온 신경이 집중되어 다음장을 읽지 않고서는 못 배기게 만든다.. 헤어나올래야 헤어나올 수 없는 이야기 꾼이다.. 어쩜 저렇게 수다쟁이(?) 인지.... 내가 수다를 떨고 있는 듯한 분위기다. 도스또예프스끼 작품을 읽으면 읽을수록 더 매료되고 그의 세계에 푹 빠지는 듯한 느낌이다.. 그러면서 다음 작품을 제촉한다... 정말 난 도스또예프스끼에 빠졋다. 체 게바라가 된 듯한 기분이다.. 체 게바라도 새벽까지... 독서를 하지 않았던가... 머리가 띵해 오지만 상쾌하다.. 월급 타면 도스또예프스끼 전비을 사야겠다.. 지금은 다른 책이 쌓여있으므로.... 이 단편집에서는 <네또츠카 네즈바노바>,<아저씨의 꿈>이 있는데 <네또츠카 네즈바노바>는 아주 긴 중편일 거라 생각했다.. 중간 중간에 암시해주는 스케일이 너무 컸기에... 그러나 끝은 가까워져 가는데.. 아무리 이야기꾼이더라도 그 짧은 페이지에 결론을 담지 못할거라 생각했는데 결국은 끝나고 말았다.. 도스또예프스끼가 이 작품을 쓰고 있을때 6부로 계획되던 것이 사회주의 사상 등을 연구, 토론하던 뻬뜨라셰프스끼 단체 사건에 연루되어 체포됨으로써 완성을 보지 못하고 중단 되었다.(1849년 4월 23일) 그 후에도 검열국으로부터 작가의 이름을 빼고 실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아내었으나 결국 완성되지 못한 3부를 끝으로 도스또예프스끼는 이 작품으로 돌아가지 못했다고 한다.. 1,2.3 부가 대충 그려지는 전개였는데.. 전개의 흐름이 너무 급작스러웠고.. 자연스럽게 넘어가지 못한게 조금은 마음에 걸렸다.. 미완성 된것이 아쉽기도 했지만 그 부분은 내가 상상하기로 했다.. 내 맘대로.. ^^ 아저씨의 꿈은 정말 수다스럽다는 말이 딱 어울리는 작품이다. 풍자의 분위기가 높아서 그런지 마지막쯤 가다가 짜증이 나려 할대 한바탕 웃음을 터트려 주었다.. 주인공 아저씨... 노공의 어처구니 없는 언변에 말이다... 한편의 드라마를 보는듯한 느낌이였고 정말 수다스러움이 대단해 보였던 작품이였다... 다음에 읽을 작품을 얼른 읽고 싶은 마음뿐이다.. 오.. 나의 도스또예프스끼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