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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나스젠까, 너는 내가 모욕의 응어리를 쌓아 두리라 생각하는가! 내가 너의 화사하고 평화스러운 행복에 어두운 구름을 드리우게 할 것 같은가, 너를 신랄하게 비난하여 너의 심장에 우수의 칼을 꽃을 것 같은가, 너의 가슴이 비밀스런 가책으로 고통 받고 행복의 순간에도 우울하게 고동치도록 만들 것 같은가, 네가 사랑하는 이와 함께 제대를 향해 걸어갈대 너의 검은 고수머리에 꽃힌 저 부드러운 꽃중에서 단 한송이라도 나로 인해 구겨져 버리게 할 것 같은가...... 아. 천만에! 너의 하늘이 청명하기를, 너의 사랑스러운 미소가 밝고 평화롭기를, 행복과 기쁨의 순간에 축복이 너와 함께 하기를! 너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가득찬 어느 외로운 가슴에 행복과 기쁨을 주었으니까. 오. 하느님! 한순간 동안이나마 지속되었던 지극한 행복이여! 인간의 일생이 그것이면 족하지 않겠는가?...... -백야 중 메모:도스또예프스끼... 나에게 멋진 이별을 선사해 주었다. 백야의 마지막 구절들.. 나를 한번 더 승격시키는 계기가 된 아름다운 구절이다.. 나도 그럴 것이다.. 축복과 행복을 빌어 줄 것이다.. 암흑 같다도.. 행복한 나날이였으니.. 나를 한층 더 성숙하게 만드는.. 그런 사람으로 되게 만들어 준 도스또예프스끼를 사랑한다.. 이 책을 사게 된게 헤어짐을 준비하는 선물을 사러 갔다 사게 된 것인데 이 안에 진정한 헤어짐의 마음이 담겨 있을 줄을 몰랐다.. 마치 예정된 것 처럼.. 나의 마음을 알고 있는 것처럼.. 그렇게 백야는 내게 왔다.. 사랑에서 시간이 무슨 상관이겠는가 3일이든 4년이든.. 세월로 사랑의 양이 축적되거나 재어지는건 아니다.. 사람의 마음.. 사랑하는 마음이다.. 이 책으로 이별은 무작정 비참하거나 슬픈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내줄때는 보내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백야의 마지막 구절을 읽고.. 이별을 결심했따.. 그리고.. 이런 마음의 이별이라면 정말 아름답다라는 생각도 했다.. 이별이 아름다울 수 있다는거 내 마음에서 느껴지는건 처음이다.. 그렇게 살련다. 행복했던 순간들에 감사하며.. 너의 행복과 축복을 빌어주며.. 그러나 너를 기다리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의 연은 여기까지다.. 도스또예프스끼.. 당신을 존경하며 사랑하지 않고는 이 순간들은 견딜 수 없을 것 같군요.. 다른 작품에서 또 만나요... 2004년 6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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Белые ночи :: Фёдор Михайлович Достоевский 글재주 없는 내 개인의 경우겠지만, 글이라는 것은 쓰면 쓸수록 어려워진다. 어린 시절 글쟁이를 꿈꾼 것이 이젠 대통령이나 우주인이 되고 싶다는 꿈 만큼이나 허황스런 갭이 느껴질 정도다. 그래도 열심히 쓰다보면 조금이나마 늘겠지 싶었건만, 가끔은 예전 글이 더 참신하게 보일 만큼 어째 갈수록 퇴보해 가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이젠 아예 열의도 고뇌도 없을 뿐더러 글 잘쓰는 이를 본다한들 부러워하거나 시기하는 마음조차 안든다. 잘쓰는 이들의 글만 평생 실컷 읽어야지, 하고 목표 수정한 것이 자기파악인지 자포자기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그나마 가끔 독서일기를 빙자해 글을 끼적이는 것은 심각한 건망증에 화투짝 맞추는 마냥 일종의 두뇌 트레이닝에 가깝고, 한가지 더 바란다면 모쪼록 시시때때로 자아를 반성하며 조금이나마 인간이 되고자 하는 각성용으로서의 기능일 뿐이다. 그런데 그 각성으로서의 글이 진정한 반성문은 안되고 자기 만족에 그치기만 해서 문제다. 하고 싶은 말이나 생각을 다 써내는 것까지는 좋은데, 막상 글을 완료하고 보면 그것이 배설물로 보인다. 내 불안한 정신 상태, 처해진 처지, 강박관념, 변덕스런 성향, 놓지 못하는 아집, 모자란 지성 등등이 자기 변명으로 잘 뭉쳐져 냄새를 풍기며 거기에 놓여 있는 것이다. 그래서 간혹 누군가 '잘쓴 글이다' 고 빈말로라도 말을 건네면 꼭 '똥 잘 싸놨다' 고 말하는 것만 같아서 민망하기 짝이 없다. 이걸 느끼기 시작한 때부터는 누가 보는 공간에 사사로운 일기조차 쉽게 쓸 수 없게 되었다. 무엇을 쓰든 자아과잉과 자기변명이 내 눈으로 먼저 읽혀졌기 때문이다. 행여 그것이 도가 지나쳐 익명의 누군가를 공격하는 칼같은 글이라도 될라치면 더더욱 자격지심에 괴로워졌다. 진짜 글을 잘쓴다는 사람은 자아 조절이 능수능란한 사람이 아닐까. 아무리 써도 거기까지의 길은 요원하기에 나는 역시나 글쟁이로서 자격미달인 것 같다. 그나마 위안이 된달지, 이른바 천재 작가라는 이도 자아를 조절하는데 서투른 글쓰기의 과도기가 있었나보다. '천재 작가의 특별한 시기' 라는 프레임 안에서 읽는다면 그조차도 범상치 않은 글쓰기 감각이라 할 수 있겠지만, 아무래도 읽는 이의 수준이 거기까지 미치지 못하다보니 [도스토예프스키의 시작도 남다를 것 없었다] 고 제멋대로 해석하게 된다. (그렇게 읽는 내 관점으로) 도스토예프스키의 자아과잉이 절정을 이루었던 시기라 짐작되는 20대 후반에 쓰여진 이 열편의 단편들은 그의 정체성이 다듬어지고 성장하는 면모를 어렵지 않게 들여다볼 수가 있다. 이때만 해도 그는 호기롭게 속물적인 시대를 비판하고 너그럽게 비주류의 사람들을 감싸 안았다. 그만큼 시야가 넓고 깊어서라기보다 타자 대변을 빙자한 자기 변명에 불과해 보이는 것은 넘치는 자아과잉적 표현탓이라고 할까. [뻬쩨르부르그 연대기] 를 비롯하여 [여주인] [백야] 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내레이션이 작가 자신의 것으로 보이니 말이다. 사랑에 관해 쓸 때도 불륜에 관한 소재에 있어선 노골적인 혐오감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자신이 투영된 주인공이 갖는 연모의 감정은 (상대가 설령 유부녀라 할지라도) 한없이 순수하다고 미화시키고 있다. 짐작컨데, [여주인] 과 [백야] 는 그의 처절한 실연 경험이 밑바탕 되었던게 아닐까. [여주인] 에선 사랑이라는 경험이 자신을 훨씬 고립되고 우울하게 만들었다고 무기력하게 원망하는 한편, [백야] 에선 사랑이 자신을 속이고 배신했을지라도 얼마든지 너그러워질 수 있다고 성장한 모습을 애써 보이려 한다. [꼬마 영웅] 에선 그 모습을 보다 더 구체적이고도 은유적으로 압축하여, 열한살 소년이 감히 이룰 수 없는 어느 부인을 짝사랑하다 철이 드는 모습을 그려냄으로 스스로의 성장고백담, 혹은 자기변명적 담론을 마무리한다. [꼬마 영웅] 이 옥중에서 쓰여졌다는 사실을 미뤄볼 때, 이 단편이 철없고 호기롭던 젊은 도스토예프스키에서 시대의 문인 도스토예프스키로 거듭나는 터닝 포인트 지점이 아니었나 싶다. [쁘로하르친씨], [아홉 통의 편지로 된 소설], [크리스마스 트리와 결혼식] 등에서 돈에 얽매이고 돈 때문에 비굴해지는 사람들을 조롱하듯 쓰면서도 정작 자신이 돈에 전전긍긍해 하는 인생을 보냈다는 걸 이 단편을 쓰던 젊은 시절엔 자각하지 못했나보다. 당시에도 그는 재정적으로 어려운 형편이었던데다가 경제 관념조차 없었지만 적어도 돈에 얽매이지 않을 수 있다는 패기가 그때까진 남아 있었는지도 모른다. 돈을 모을 줄만 알았지 쓸줄 몰랐던 이를 동정하거나 (※ 쁘로하르친씨), 돈 때문에 친구 사이가 벌어지거나 못할 짓이 없다는 것을 비난하는(※ 아홉 통의 편지로 된 소설, 크리스마스 트리와 결혼식) 글을 쓸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 단편들을 쓸 무렵부터 돈을 목적으로 보수 매체에 글을 자처하며 비굴한 태도로 선불을 요구하거나 그 때문에 지인과 결별하게 되었다는 사실은 그의 이중잣대를 의심하게 만든다. 아니면 자기 자신을 잘 알았기에 자학적 감성에서 나온 글들이었을까? 자신의 이야기라고 떳떳하게 자아 비판하기엔 자존감이 너무 강했기에 더 큰 증오와 혐오로 자아가 투영된 타자의 속물들을 비판했던 것은 아니었는지. 자기 혐오와 비판이 강해지면 자기 연민도 강해지는 법, 그가 비주류에게 연민을 갖는 방법도 결국 자기애에서 비롯 되었다고 여겨진다. 자기 혼자만의 행복을 감당할 수 없어 마땅히 해야할 일마저 방기한 채 괴로워만하다 결국 미쳐버렸다는 이야기에서도(※ 약한 마음), 타인을 너무 순수하게 믿었다가 배신 당해 바보만 되었다는 자조적인 이야기에서도(※ 뽈준꼬프), 제멋대로 살며 남에게 폐만 끼친 이라도 마음이 순수하면 용서받는다는 이야기에서도(※ 정직한 도둑) 타자에 대한 연민보다 자기 변명과 자기 연민이 먼저 읽히고 만다. 때때로 게으르고 속물적 욕구를 억제하지 못하는 자신을 소설 속의 주인공들을 통해 용서 받고 싶었던 게 아닐까. 이런 관점에선 도스토예프스키라는 인물의 참 선량하고 다정하면서도 여린 마음에 줏대없고 의지박약적 성격이 드러나 보이는 것 같다. 그래서 그가 쓰는 소시민의 사연들보다 작가 개인의 퍼스널리티에 더 흥미가 간다. 비사회적이며 몽상가적 자신을 변명하는데 애쓰는 글쟁이였지만 그가 자기 자신에게 천착하지 않고 대작가로 거듭나게 된 건 무엇 덕분일까? 아마도 끊임없는 글쓰기 덕분이 아니었을런지. 흠이 있는 인간으로 살아도 늘 자신을 성찰하고 깨우칠줄 알고, 그 깨우침으로 타인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 보다 다채로운 안목과 깊은 사고, 긍휼심을 길러낸 것은 자기 내부의 모든 것을 글로 내뱉어 스스로 읽고 다시 생각하여 자기 제어에 성공했기 때문일 것이다. ("...현대식 사고는 적절히 중간에 멈춰 서고 자기에게 가능한 수준까지만 가는 것이고, 자신의 주위를 둘러보고 확인하고 스스로를 느끼는 것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세상과 상대방, 그리고 자신을 연구하고 분석한다. 모든 사람이 흥미로운 시선으로 상대방을 유심히 관찰하고, 서로를 잣대로 재어 본다. 그 다음 자기를 완전히 고백하게 된다. 사람들은 보통 아픔과 고통 속에서 모든 것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고 세상 앞에 자기 자신을 낱낱이 보여 준다. 어떤 일에 자신만의 견해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한번도 의구심을 품지 않던 사람들에게 수천 가지의 새로운 견해가 모습을 드러낸다. < 뻬쩨르부르그 연대기, P101> ) 되도록 그의 연보에 따라 작품을 읽어나가고 있는 중인데, 아마 다음 작품은 보다 성장한 도스토예프스키를 만날 수 있을거란 생각에 설레여진다. 읽는 것만으로 작가의 능력을 전사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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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적인 몽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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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합적인 내용들로 가득한 초창기 중, 단편들을 읽어 보면서 서서히 '도스또예프스끼적인' 무엇에 도달할 수는 있었지만, 확실히 그의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복해서 읽는 것이 필수 일듯 싶다. 대략의 줄거리를 이해하는 차원을 넘어 핵심에 도달하기 위해선 말이다. 우선,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작품은 마지막에 수록된 <꼬마 영웅>이었다. 지극히 서정적이고 우아한 그 소설을 도스또예프스끼가 감옥에 수감되었을 때 구상한 작품이라는 것은 상당히 아이러니 하지만, 삶을 다시 재편성해서 되돌아 볼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던 만큼, 기존의 사회 소설보다는 조금 더 색다른 시각의 소설을 지향하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상대방의 마음을 조율하지 못해 안타까움에 몸부림치던 몽상가 청년의 이야기인 <백야>도 좋아하지만, 소년이 겪어낸 순수한 연정의 흠모를 우아하게 표현한 <꼬마 영웅>이 더 애잔하게 가슴에 남는다.
11편의 작품들이 전반적으로 현실과 환상을 오가는 느낌이었다. <쁘로하르친씨>가 동경한 알 수 없는 세계가 무엇이었을지 궁금해 하는 사이, 거액의 돈을 남기고 구두쇠로 살아야 했던 그의 대한 기묘한 대답이 들려온다. 분륜을 소재로 한 <아홉 통의 편지로 된 소설>과 <남의 아내와 침대 밑 남편> 그리고 <꼬마 영웅>의 M부인까지. 분륜을 표현하는 방식이 정당한데에 대해서 매우 흥미로웠다. <정직한 도둑>과 <여주인>을 보면 도스또예프스끼의 따뜻한 박애정신을 느낄 수 있었다. 자연주의와 사회주의 소설의 정점을 이룰 당시, 점점 자신만의 세계를 전달하고자 하는 여실한 노력이 보여서 다음 장편들을 이해하는데 반드시 알고 넘어가야 할 작품들이 아닌가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