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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 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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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 벌 /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예프스키   이 책을 이제 와서 제가 새삼스럽게 언급을 한다는 것 자체가 과연 잘하는 짓인지 모르겠습니다. ‘죄와 벌’을 모르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요? 이미 언급조차 버거울 정도로 많은 논문과 연구 자료 만으로도 웬만한 도서관을 가득 메울 겁니다. 그런데 이 수많은 글에 제 조악한 글을 덧댄다고 이게 어떤 의미를 가지게 될지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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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 벌 /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예프스키

 

이 책을 이제 와서 제가 새삼스럽게 언급을 한다는 것 자체가 과연 잘하는 짓인지 모르겠습니다. ‘죄와 벌을 모르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요? 이미 언급조차 버거울 정도로 많은 논문과 연구 자료 만으로도 웬만한 도서관을 가득 메울 겁니다. 그런데 이 수많은 글에 제 조악한 글을 덧댄다고 이게 어떤 의미를 가지게 될지 모르겠네요. 이런 대작 앞에 내 글을 놓는 다는 것이 부끄럽기 까지 합니다.

 

도스토예프스키에 관한 수식어는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많지만 그 중에서도 제가 가장 좋아하고 공감하는 수식어는 바로 악마적 천재라는 말입니다.

악마적 천재

저는 이제까지 도스토예프스키를 설명하는 말에 이보다 더 적절한 말을 찾지 못했습니다.

 

도스토에프스키를 처음으로 접했던 시기가 아직도 생생히 떠오릅니다.

중학교 2학년 여름 방학.

당시 국어 선생님의 강요에 못 이겨 잘 나가던 미술부를 때려치우고 독서반에 들어가 처음 맞는 방학 클럽 활동 시간이었습니다. 클럽 활동 중 책에 관련된 퀴즈를 맞추는 게임에서 이 책 죄와 벌을 처음으로 만났습니다. 아직도 그때의 문제를 토시 하나 잊지 않고 기억합니다.

 

살인을 저지른 주인공의 내면적 갈등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러시아 문학으로, 러시아 양대 문호 중 한 명인 도스토예프스키의 장편 소설은?”

 

당시로는 그래도 또래에 비해 책을 많이 읽는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시절이라 생전 들어보지도 못했던 작가의 이름이 나오자 당연히 아무도 맞추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순간이었습니다. 바보 같았죠. 그런데 그 때 저보다 나이 어린 후배 한 명이 갑자기 손을 들더니 똘망 똘망한 눈으로 정확히 정답을 맞추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의 그 후배 이름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엄청난 부끄러움과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그 경험으로 도스토예프스키를 접하게 되었고, 그는 그 후로 여지껏 한번도 제 가슴에서 떠난 적이 없습니다. 여러 단편들을 거치고, ‘지하 생활자로부터의 수기에서 충격과 죄와 벌에서 라스콜리니코프의 내면으로 침전되며 느꼈던 그 광적인 황홀감. 그리고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 이르기 까지, 그의 글은 제 사고 형성에 깊이 각인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그가 훑고 간 흉터는 제가 글을 쓸 때면 어김없이 머리를 빼꼼히 내밀곤 합니다. 어쩌면 지독한 트라우마죠.

 

죄와 벌의 주요 골자는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가 반쯤은 충동적으로 저지른 살인에 의해서 겪게되는 갈등의 과정입니다. 더 이상의 줄거리 설명을 드리면 아직 읽지 않은 분들께는 실례가 되기 때문에 말씀을 드리진 않겠습니다. 그리고 죄와 벌의 내용을 세삼스래 여기서 다시 떠들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게다가 이렇게 책의 서평을 쓰는데 원칙 중 하나가 그 책의 내용은 최소화 한다이다 보니 책의 내용은 이 정도면 될 듯 하네요.

 

그런데 사실 이게 책 내용의 팔 할쯤 된다고 보셔도 무방하기도 합니다. 그 외에도 부활’, ‘갱생’, ‘구원’, ‘도덕적 딜레마등 많은 키워드가 있기는 하지만 제 개인적인 입장으로는 그의 짜증스러울 정도로 천재적인 심리묘사에 그 책의 대부분이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보태자면 그 과정에서 나오는 주옥과 같은 삶에 대한 고찰이죠. 어쩌면 이러한 삶에 대한, 인간에 대한 그의 치열한 고찰 속에, 앞서 말씀을 드린 부활과 갱생과 구원 등이 전부 들어있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 특히 그 중에서도 이 책 죄와 벌을 읽다 보면 이유 모를 어지러움을 느끼게 됩니다. 뭔가 가슴속이 답답하죠. 계속 갈무리를 해 보지만 비집고 빠져나가는 광기와 비슷한 것이 꿈틀거리려 합니다. 이것은 어쩌면 이 책의 아주 유독한 향기와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책은 아름답게 위험합니다. 그리고 그만큼 강력하고, 진하며, 강렬합니다.

그야 말로 악마적인 천재의 글입니다.

마지막은 죄와 벌의 한 구절로 마무리를 짖겠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살고 싶다! 살고 싶다! 살고 싶다! 살고 싶단 말이야! 어떤 식으로 살더라도 살고 싶다! 이보다 더한 진실의 목소리가 어디 있단 말인가?”

 

왜 이 대목이 그렇게 와 닿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 수많은 명문 중에서 말이죠.

그 중에서도 이처럼 진실되고 절절하게 느껴지는 것은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왠지 도스토예프스키가 육성으로 외치는 듯한, 목구멍에서 피를 토하며 쥐어짜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니체가 그런 말을 했죠.

피로 쓰지 않은 글은 신뢰가 가지 않는다.”

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이 책 죄와 벌에는 도스토예프스키의 피가 고스란히 베어있는 듯 합니다.

YES마니아 : 로얄 i*******m 2010.05.0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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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 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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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또예프스키의 소설은 긴박하고 급박하게 돌아가는 가운데 독자를 확 끌어들이는 흡입력이 있지만 동시에 난해하기도 하고 가끔은 헷갈리기도 하며 다소의 우울감도 주곤 한다.   상권을 읽고 거진 1년에서 1년 반이 지나서야 하권을 읽게 되었다. 덕분에 상권의 내용이 제대로 기억이 나질 않아 앞부분의 상황 파악이 잘 안되어 곤란을 겪었지만 금세 내용에 빨려들어가 재미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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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또예프스키의 소설은 긴박하고 급박하게 돌아가는 가운데 독자를 확 끌어들이는 흡입력이 있지만 동시에 난해하기도 하고 가끔은 헷갈리기도 하며 다소의 우울감도 주곤 한다.

 

상권을 읽고 거진 1년에서 1년 반이 지나서야 하권을 읽게 되었다. 덕분에 상권의 내용이 제대로 기억이 나질 않아 앞부분의 상황 파악이 잘 안되어 곤란을 겪었지만 금세 내용에 빨려들어가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이런 저런 생각이 들었는데, 도통 정리가 잘 되지 않는다.

 

대략의 감상.

 

1.결국 도스또예프스키가 모든 것의 구원으로, 해결책으로 이야기하는 건 '사랑'이라는 생각이다. 죄인을 구원하고 부활의 빛을 주고 모든 종말에서 다시금 일어서게 한 건 소냐의 사랑이었다. 라스꼴리니꼬프과 같은 범죄를 저질렀으나 두냐에게 거부당함으로 사랑으로 구원받지 못하고 자살을 택하는 스비드리가일로프는 이런 면에서 주인공과 극명하게 대비되는 입장에 서 있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일종의 구원자, 성녀로 제시되는 소냐는 창녀라는 점도 의미심장한데 그녀가 창녀 일을 하는 것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서였다는 이유가 나온다. 그 뿐 아니라 끊임없이 가족을 부양하고 새어머니를 돌보고 루쥔에게 쉽게 이용당하고 결국에 주인공을 따라가 그에게 구원을 주는 그녀는 작품 도중에 주인공이 그녀를 "ㅇㅇㅇㅇ"라고 부르는 모습 그대로이다. (이 ㅇㅇㅇㅇ가 뭐였는지 도통 기억이 안난다 ㅜㅜ 러시아정교에서는 백치를 일종의 .. 하나님과 가까운 선지자나 예언자로 생각해 숭배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여러 수행자들은 자진해서 백치처럼 미치광이짓을 하며 수련을 했다고.) 모든 이에게 멸시받기 마련인 창녀와 백치가 일종의 구원자나 선지자로 추앙받는 것은 가난한 자는 복이 있으며 어리석은 자가 복이 있다고 이야기하며 죄인의 친구라 멸시를 받았던 예수를 떠올리게 한다. 더불어 오늘날의 높아진 기독교도 ..

 

2.라스꼴리니코프가 비록 병적인 상태였으나 이성적인 고찰을 거듭하여 살해를 실행에 옮기게 한 사상은 결국 그의 죄책감 때문에 온전히 성공에 이르지 못한다.

인간의 마음에 심겨진 일종의 절대법, 절대 진리로서의 양심에 다시 한번 주목하게 되었다.

 

3.나는 도스토예프스키가 라스꼴리니코프의 사상의 실행과 실패를 겪는 것을 통해 니체의 초인 사상을 비판하려 한 것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뒷표지에 보니 니체가 그를 자기 생애에서 가장 아름다운 행운 가운데 하나라고 극찬을 한 문구가 .. 그런걸 보면 아니었나 ?싶고.

 

4.나폴레옹은 어떻게 정당화되는가 의문이 들었다. 공리를 위해서라는 명분 혹은 특별한 사람은 죄를 저질러도 된다며 죄를 지으나 결국 죄책감 앞에 무너지는(?) 주인공을 보며 야먕 혹은 정복이라는 명목 하에 전쟁을 치룬 나폴레옹과 수많은 유대인을 학살안 히틀러 사이에는 어떤 차이점이 있는가 .. 왜 한 사람은 위인전에 등장하고 한 사람은 악인전에 등장되는가 하는 생각이.

5.앞부분에 인물소개가 되어 있어 다행이었다. 얼마나 자주 들춰봤는지. 지금 글 쓰면서 인물들의 이름은 찾아서 적고 있다. 솔직히 주인공 이름도 잘 못외우겠다.

6.끝까지 자신이 왜 잘못했는지 이유를 알지 못하겠다는 주인공이 인상적.

그러나 결국 사랑으로 구원받음. 그가 회개했는가는 나오지 않는다.

7.소설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의 유형 제시를 통한 인간 본성의 통찰과 당시 사회상의 적나라한 묘사도 인상적이다.

 

이런 대작에 다는 감상평이 뭐 이런가 싶지만 .. --;

아무튼 꼭 읽어보아야 할 소설 중에 하나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j********e 2008.11.2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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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론자의 '양심'과 '구원'의 문제를 다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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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라스꼴리니코프는 그의 이론 '비범인非凡人의 이론'에 따라 전당포 노파를 살해하고 그 현장을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몰래 빠져 나온다. 그 이론은 "비범한 사람들은 모든 종류의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권리와 법률을 위반할 수 있는 권리를 지니고" 있으며 "그의 양심이나 신념이 허락하는 한 모든 장애를 제거할 수" 있다는 것인데, 나폴레옹이나 마호메트와 같이 역사상 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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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라스꼴리니코프는 그의 이론 '비범인非凡人의 이론'에 따라 전당포 노파를 살해하고 그 현장을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몰래 빠져 나온다. 그 이론은 "비범한 사람들은 모든 종류의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권리와 법률을 위반할 수 있는 권리를 지니고" 있으며 "그의 양심이나 신념이 허락하는 한 모든 장애를 제거할 수" 있다는 것인데, 나폴레옹이나 마호메트와 같이 역사상 위대한 일을 위해 살육을 두려워하지 않은 예를 들어 자신도 그런 사람이라고 상상해온 주인공의 생각에서 나온 것이었다. 주인공은 나이가 20대에 해당하였고 청년으로서 페쩨르부르크의 자취생활 가운데 궁핍해져 대학의 학업을 중단하였고 하는 일없이 공상이나 하고 지내는 상황에 놓여있었다. 이런 생활 속에서 재산에 따라 삶이 결정되는 부조리한 사회현실에 대한 반발로서 실현가능성 여부를 떠나있는 망상에 사로잡혀 있었다. 또한 그에게는 남겨진 가족으로서 여동생과 남편을 여읜 홀어머니가 있었는데, 그들을 부양할 자신감을 상실하였고 걱정과 부담감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당시 러시아에 막 형성되어가던 사회지식층인 '인텔리겐챠'중 허무주의자(니힐리스트)로 분류될 수 도 있었을 것이다. 주인공은 사실 대학생답게 교양있고 합리주의적인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론을 철저히 따르는 합리주의자로서의 면모만 있을 뿐 현실감각은 엄청 무뎠다. 라스꼴리니코프는 자신의 처지와 비슷하거나 자신을 동정해줄 일부 사람 즉 마르멜라도프나 라주미힌과 친분을 맺고 있는 것같이 극히 비사교적인 편이었다. 이렇게 현실적 감각을 상실한 채 이상적 도덕관의 입장에서 여동생인 두냐의 약혼자인 루쥔을 향한 알 수 없는 적개심을 품게 된다==그는 루쥔이 '이기주의자'라는 것을 직감하고 돈으로 두냐를 '사가려는' 속물이라는 편견으로 그에 대한 혐오감까지 가지게된다. 어쨌든 주인공의 합리주의는 이상적이긴 하지만 폐쇄적일 수 밖에 없었고, 어떤 현실적 토대를 갖출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라스꼴리니코프의 비정상적인 언행은 루쥔을 자극하고 종국에는 두냐와 루쥔을 결별시켰으며 나아가 홀어머니나 친구와 같은 친지들을 불안케 하고 만다. 노파 살해에 대한 일말의 양심의 가책과 여전히 자신은 '비범인'이라는 공상속에서 번뇌하던 그는 예심판사 포르피리의 집요한 추궁과 유도심문의 '덫'에 걸려 점점 건강을 잃고 정신을 못 차리게 되는데 이런 상황은 그로 하여금 범죄현장에 가서 이상한 행동을 보이거나 헛소리를 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한다. 합리주의자이면서 자신의 이론을 신봉하고 무신론無神論을 자처하던 라스꼴리니코프는 스스로의 '분열'에 이르게 된다. 그는 자신의 고백을 들은 기독교의 신실한 여신도인 소냐의 권유도 있고 또한 자기자신을 더이상 못견디고 결국 경찰서에 가서 범행에 대하여 자수하게 된다. 주인공은 살인이란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질렀지만 그동안의 선행을 인정받아 법정에서 사형선고는 면제받고 시베리아 유형을 선고받아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된다.

이 소설은 19세기의 세계를 풍미하다 사라져간 도스토예프스키가  자신의 조국인 19세기의 러시아사회의 모순적 현실 즉 (농촌에서는) 봉건주의적 농노제가 잔재해있고 (도시에서는) 전제정치를 반대하는 자유주의가 유행하는 사회적 혼란기를 사실주의적으로 묘사한 작품이다. 당시 러시아는 서구국가들과 달리 민중이나 부르조아지라는 지도적인 세력이 없는 가운데 한쪽에는 무지몽매한 농민들과 한쪽에는 부패한 귀족들(지주들)이 있었고 유럽의 자유주의에 심취한 '인텔리겐차'와 같은 지식인들이 있었기에 누구 하나도 통일된 힘으로 사회를 발전시킬만한 원동력을 산출해내지 못하고 있었다. 이 시기에 러시아는 서구문물 특히 산업화를 받아들이는 등의 개방정책으로 변화를 시도하고 있었지만, 구심점이 없었기에 사회는 그야말로 사상적ㆍ문화적 혼란기에 접어들어 갔는데 주인공이 자취생활을 하던 상트 페쩨르부르크는 수도로서 교통과 정치ㆍ무역의 중심지이었기에 더욱더 혼란스럽고 소란스러웠다. 주인공은 이 '악취와 먼지가득한' 도시==글쓴이가 알아본 바에 따르면 17세기 표트르 대제가 건설한 도시이고 사실상 입지나 환경이 안좋아서 실제 그렇다고 들었다 소설가가 꾸며낸 허구가 아니라는 점==에서 살아가고 있었고 사회적 지위는 '인텔리겐차'로서 사회개혁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지만 경제수준은 가난했기에 어떤 직업이나 꿈을 이룰 수 없는 '부조리'속에서 하루하루 공상이나 망상에 빠져 살아가고 있었다.  『죄와 벌』은 의도치않은 살인의 실행 후 합리주의적고 무신론적인 청년의 '양심'과 '구원'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데, 도스토예프스키는 갈등과 번민하는 주인공의 내면이나 외적인 행위를 치밀하면서도 섬세하게 묘사하면서 인간에 있어 '정신'이 얼마나 중요한지 일깨워주는 듯 하다. 말미에서 주인공인 라스꼴리니코프는 시베리아유형에서도 여전히 죄를 자각하지 못하고 그것을 합리화==사회에 불필요한 '이'邇 한마리를 없앤 거라는 위안==하는 정체상태를 보이지만, 인도주의적 신실함과 신앙심을 간직한 애인 소냐의 보살핌과 가르침에 결국 '복종'하게되고 늦게나마 '구원'과 '부활'의 길로 들어서면서 소설은 마무리된다. 이러한 '에필로그'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일관된 주제인 '종교적 구원관'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라스꼴리니꼬프의 '비범인 이론'의 묘사 발췌
- 기억하시는지 모르겠지만 그건 한마디로 말해서 이 세상에는 어떤 부류들이 있는데 그들은 온갖 종류의 폭력과 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기보다는, 그런 짓을 행할 완전한 권리를 지니고 있고, 또 그들에게는 어떤 법률도 적용되지 않는 것 같다는 그런 암시였습니다.

- 평범한 사람들은 순종하며 살아야만 하고 법률을 어길 권리를 지니고 있지 않아. 왜냐하면 그들은 평범한 사람들이니까. 비범한 사람들은 모든 종류의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권리와 법률을 위반할 수 있는 권리를 지니고 있는데, 이는 그들이 비범하기 때문이라는 거야. 저는 다만 비범한 사람은 권리를 가지고 있다....즉 공식적인 권리가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양심상...모든 장애를 제거할 수 있는 권리를 가졌다고 말한 것 뿐입니다. 그것도 만일 그의 신념(때로는 모든 인류를 위한 구원적인 신념일 수도 있지요)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 요구되는 경우에 한해서만 말입니다.

- 아주 고대로부터 시작해서 리쿠르고스, 솔로몬, 마호메트, 나폴레옹 등으로 이어지는 인류의 입법자들과 제정자들은 새로운 법률을 제시하고, 그로 인해 선조로부터 전해져서 사회에서 성스런 추앙을 받은 낡은 법률을 파괴했고, 만약 유혈만이 그들을 도울 수 있었다면(때로는 낡은 법률을 위해서 용감히 죄 없이 흘린 피도 있기는 합니다). 피 앞에서도 멈추지 않았다는 점만을 보더라도 그들 모두가 하나같이 범죄자들이었다는 생각을 발전시킨 거지요. 이런 인류의 은인과 건설자들의 대부분이 특히 무서운 살인자들이었다는 점은 흥미롭기까지 합니다.

- 그 사상이란 바로 자연의 법칙상 사람들은 대체로 두 가지 부류로 나뉜다는 겁니다. 하나는 저급한(평범한) 부류로서 오로지 자기와 비슷한 사람들을 출산하기위해서 존재하는 사람들이고, 다른 하나는 자기가 처한 환경 속에서 새로운 말을 할 줄 아는 재능 혹은 천분을 부여받은 사람들입니다. 물론 이 큰 분류 아래로 수많은 작은 부류들이 무한하게 있을 수 있겠지만, 이 두 부류를 구분짓는 특징들은 대단히 명확합니다. 첫번째 부류, 즉 재료는 대체로 말해서 자기 천성상 보수적이고 체면을 차리는 사람들로 복종 속에서 살아가면서 순종하기를 좋아합니다. 제 생각에 그들은 반드시 복종을 해야 하는데, 그 이유는 그것이 그들의 사명이고, 그렇게 하는 게 그들에게는 전혀 굴욕적으로 여겨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두번째 부류의 사람들 모두는 그 능력에 따라서 법률을 어기는 파괴자들이거나 그럴 경향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의 범죄는 물론 상대적이고 다양합니다. 그들 대부분은 다양한 분야에서 더 좋은 것의 이름으로 현재의 것을 파괴할 것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 사상을 위해 시체와 피를 건너뛰어야 한다면, 자기 내면의 양심에 따라서 피를 뛰어넘는 걸 스스로에게 허용할 수 있습니다.

- 새로운 생각을 가진 사람들뿐 아니라, 아니 조금이라도 뭔가 새로운 말을 할 줄 아는 사람들마저도 대체로 극히 적은 숫자로 태어나니까요. 이상할 정도로 적은 숫자입니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이 모든 부류와 그 아래의 세부 부류에 속하는 모든 사람들의 탄생의 질서는 분명 어떤 자연의 법칙에 의해서 정확히 결정되어 있다는 겁니다.
 -만일 모든 사람들이 똑똑해지기를 기다린다면,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릴 거야. 사람들은 변하지 않을 것이며, 그들을 개조할 사람은 누구도 없다고, 그러니 애쓸 가치조차 없다는 것을 깨달았어. 그게 인간의 법칙이야. 법칙. 머리와 정신이 견고하고 강한 사람이라야만 사람들의 주권자가 된다는 사실을 말이야! 더 많이 용기를 내어 일을 감행하는 사람만이 사람들 눈에는 옳아 보이는 거야. 보다 많은 것을 무시하는 자만이 그들의 입법자가 되고, 더 많은 일을 해치울 수 있는 사람이 그 누구보다도 옳은 사람이 되는거야! 지금까지도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거야!


 

p****n 2011.07.2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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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 벌 (하) / 도스또예프스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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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콜리니코프는 전당포 노파와 그 여동생을 살해하는 죄를 짓는다 하지만 그는 한마리의 "이"를 죽인 것에 불과하다도 정당성을 부여하려 한다. 하지만 인간의 생명을 해하였다는 것에 대한 번민과 방황을 피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죄를 소냐에게 고백한다. 소냐는 그에게 대지에 입을 맞추고 모든 것에 대해 사죄를 하고 죄값을 받아들여야한다고 한다. 그러한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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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콜리니코프는 전당포 노파와 그 여동생을 살해하는 죄를 짓는다

하지만 그는 한마리의 "이"를 죽인 것에 불과하다도 정당성을 부여하려 한다.

하지만 인간의 생명을 해하였다는 것에 대한 번민과 방황을 피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죄를 소냐에게 고백한다.

소냐는 그에게 대지에 입을 맞추고 모든 것에 대해 사죄를 하고 죄값을 받아들여야한다고 한다.

그러한 그의 옆에서는 항상 자신이 있을 것이라는 말과 함께

그리고 그의 고백을 엿듣게 된

스비드리가이로프

그도 고향에서 아내를 독살했다는 의혹과 많은 하인들을 괴롭힌

두냐가 가정교사로 있던 집의 주인이었으며 두냐를 사랑하는 남자

그는 라스꼴리니코프와 동질성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그는 두냐의 사랑을 얻지 못하고 자살을 택하게 된다.

 

라스콜리니고프가 자수를 하러 경찰서를 찾아갔을때

그의 살인을 알고 있다고 생각되었던 관리는 다른 곳으로 전근을 갔고

그의 살인을 알고 있는 소냐이외의 유일한 사람 스비드리가일로프도 자살을 했고

예심판사인 뽀르피리도 자수한 다른 범인이 진범임을 믿게 된 상황

그는 또한번 갈등을 하게 된다.

하지만 죄를 자백하고 재판을 받데 된다

 

정상이 참작되고 유배형 8년을 받게 되고

그 뒤를 소냐를 따른다.

유배지에서도 자신의 행동에 대한 정당성때문에 고민하고 괴로워하던 그

소냐의 품에서 오열을 하며 비로소 죄를 고백하고

참회를 하며 편안한 마음으로 돌아온다.

 

어떠한 경우라도 , 비록 그것이 선한의도, 커다란 목적을 위한 희생이었다 하더라도 그것을 위한 범죄는 인정할 수 없는 것이다.'

그 당시에는 그것이 정당해보일 수 있어도 언제가는 그것이 옳지 않음을 평가받게 될터이니까 말이다.

 

사람이기에 고민하고 그것으로 갈등할 수 있는

죄에 대한 개념과 그것에 대한 벌

 

자신의 삶이 그리 평탄치 않았던 작가가

자신의 삶을 투영하고 고민했던 것들은 라스콜리니코프라는 대학생을 통해 풀어 놓은 이야기

사랑을 통해 인내하고 , 사랑을 통해 승화되는 인간의 순수함을

다시한번 느낄 수 있었다.

 

다음 고전은 무엇을 택할까 고민중이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n******m 2009.12.3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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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속의 삶의 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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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필요없는 도스또예프스끼의 소설. 첫장을 넘기는 순간 숨막힐듯한 광기과 열정에 사로잡혀 한순간도 책을 손에 놓을수 없는 최대의 걸작. 과연 그 광기의 상상력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한 인간의 삶속에서 법은 객관적인 틀일뿐 그것을 분연히 깨치고 나가는 광기는 정말로 진리라 할수 있을까? 보지 않고서는 인간 내면에 숨겨진 광기의 흉폭함을 알수없는 러시아 문학의 필독서
"광기속의 삶의 부정" 내용보기
말이 필요없는 도스또예프스끼의 소설. 첫장을 넘기는 순간 숨막힐듯한 광기과 열정에 사로잡혀 한순간도 책을 손에 놓을수 없는 최대의 걸작. 과연 그 광기의 상상력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한 인간의 삶속에서 법은 객관적인 틀일뿐 그것을 분연히 깨치고 나가는 광기는 정말로 진리라 할수 있을까? 보지 않고서는 인간 내면에 숨겨진 광기의 흉폭함을 알수없는 러시아 문학의 필독서.
m*******9 2008.11.04.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