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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코닉 주니어 내한공연-2008.03.13.
"해리 코닉 주니어 내한공연-2008.03.13." 내용보기
New Orleans, 이야기는 거기서부터 시작해야겠다. 초기 재즈의 형태를 확립한 지역. 빅밴드라는 밴드 편성, 스윙이라는 음악적 형태 등이 시작된 고장이 바로 뉴올리언스이다. 재즈 역사의 첫 페이지에는 ‘뉴올리언스 재즈’와 ‘딕시랜드 재즈’라는 말들이 등장하는데, 이는 모두 뉴올리언스의 지명에서 유래한 말들이다. 그곳은 동북아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는 낯선 지명일지라도 우
"해리 코닉 주니어 내한공연-2008.03.13." 내용보기
New Orleans, 이야기는 거기서부터 시작해야겠다. 초기 재즈의 형태를 확립한 지역. 빅밴드라는 밴드 편성, 스윙이라는 음악적 형태 등이 시작된 고장이 바로 뉴올리언스이다. 재즈 역사의 첫 페이지에는 ‘뉴올리언스 재즈’와 ‘딕시랜드 재즈’라는 말들이 등장하는데, 이는 모두 뉴올리언스의 지명에서 유래한 말들이다. 그곳은 동북아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는 낯선 지명일지라도 우리가 듣고 있는 모든 재즈들의 모태가 되는 고장이다.

 

그런 뉴올리언스가 2005년에는 전혀 다른 이유로 우리에게 이름을 알려왔다.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그 지역을 휩쓸고 지나갔다. 도심의 80%가 물에 잠길 만큼 엄청난 재앙이었던 사건으로 아직도 2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트레일러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 미국 내에서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이슈가 되었던 재해였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구호에 나셨다. 그리고 역시 재즈의 발상지답게 많은 스타들이 현장을 돕기 위한 활동을 펼쳤다. 많은 장르의 뮤지션들도 구호활동에 나섰는데, 그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사람은 해리 코닉 주니어(Harry Connick Jr.)였다. 해리는 뉴올리언스에서 태어나고 성장했다. 자신의 고향을 위해 TV 방송에 출연하여 모금을 홍보하고, 복구 정책을 위해 토론을 벌이기도 하였다. 급기야 2007년에는 『Oh, My Nola』를 발표하여 상처받은 고향에 선사했다. 내침 김에 그는 ‘My New Orleans Tours’를 기획하여 월드 투어에 나섰다. 이 투어는 『Oh, My Nola』 앨범과 맥을 같이 하여 재즈의 고향, 해리의 고향인 뉴올리언스의 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공연이었다. 2008년 3월 13일 한국에서도 해리 코닉 주니어를 만날 수 있었다.

 

한국의 대표적인, 그리고 상징적 공연장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린 이 공연은 해리의 피아노와 노래, 그리고 이 투어를 위해서 조직된 12명의 빅밴드 멤버들과 함께 했다. 내한 전에 언론들과 가진 인터뷰를 통해서 ‘고전적인 파티’와 같은 ‘편한 공연’이 될 거라고 말한 바 있다. 공연은 그가 말한 것처럼 평안하고 전통적인 분위기였다. 화려한 무대 장치도 없었고, 조명도 현란하지 않았다. 우리가 영화를 통해서나 감상할 수 있었던 재즈 클럽의 분위기였다.

 

 

시간이 되어 무대에 오른 해리 코닉 주니어는 『Oh, My Nola』 앨범에 담긴 ‘Won't You Come Home, Bill Bailey’, ‘Working In A Coal Mine’, ‘Hello Dolly’ 등 세 곡을 쉬지 않고 연주해주었다. 펑키한 리듬의 ‘Working In A Coal Mine’과 해리의 피아노가 돋보인 ‘Hello Dolly’는 관객의 마음을 활짝 열어주었다. 노래 세 곡을 끝낸 해리는 한국에 대한 추억과 이번 방문에 대한 인상을 얘기했고, 공연을 즐겨달라는 당부도 했다. 노래는 ‘Jambalaya’와 ‘Iko Iko’, ‘Big Chief’, ‘Yes We Can Can’의 메들리, 그리고 스윙 슬로우 곡 ‘Let Them Talk’까지 이어졌다.

 

 

뉴올리언스의 ‘투 핸디(Two Handy)’ 스타일의 피아노 연주라고 소개한 ‘You Made Me Love You’는 왼손은 쿵짝쿵짝 2박자로 지극히 단순한 리듬을 만들고, 오른 손은 한없이 화려한 솔로 라인을 만드는 독특한 연주를 보여주었다.

 

 

마늘과 남대문 시장 얘기로 한국에 대한 인상을 한창 얘기하던 그는 자신의 두 딸을 무대에 올려 관객에게 소개했다. 해리는 아이들에게 시장에서 본 것 중에 무엇이 좋았냐고 물었다. 딸들이‘돼지 머리’와 ‘물고기’라고 대답했는데, 아마도 서양 아이에게 돼지가 머리만 덩그러니 진열하고 파는 것이 다소 충격적인 장면이었나보다. 딸들이 들어가고 빅밴드의 밴드 마스터 루시엔 바바린(Lucien Barbarin-트럼본)을 소개하고, ‘Basin Street Blues’를 통해 보다 고전 스윙 넘버에 가까운 연주를 들려주었다. 이곡의 후반부는 루시엔의 노래도 들을 수 있었다. 무척이나 흥겨웠던 ‘Didn't He Ramble’가 끝나고 해리는 ‘감사합니다.’라는 한국어가 매우 어감이 좋다며, 미국에서 여러 가지 버전으로 유행시키겠다고 했다. ‘아리랑’를 부르기도 했는데, 한국에 와서 배운 것이 아니라 그 전에 이미 알고 있었다고 한다.

 

 

한국을 상징하는 노래인 ‘아리랑’ 이어지는 노래는, 해리의 고향 뉴올리언스를 상징하는 노래라는 ‘Do You Know What It Means To Miss New Orleans’. 이 노래는 해리의 88년 앨범 『20』에 'Dr. John'과 함께 한 버전으로 실렸던 곡이다. 앨범에서는 해리의 피아노와 'Dr. John'의 오르간만으로 연주되었던 곡이 빅밴드로 편곡되어 있었다. 느린 템포로 장중하면서도 편안한 사운드는 뉴올리언스가 갖고 있는 힘(재즈라는 음악적 자산)과 여유를 느낄 수 있었다. 뉴올리언스에 대한 애정으로 시작된 공연의 콘셉트와 가장 어울리는 곡이 아니었을까. 마칭 드럼(marching drum)으로 시작한 ‘Bourbon Street Parade’는 이전 곡의 조용한 분위기를 잊게 했고, 공연장의 분위기는 단숨에 뜨거워졌다. 『Oh, My Nola』 비슷한 콘셉트로 발표된 2007년 1월의 『Chanson du Vieux Carre』 앨범에 수록되었던 노래인데, 앨범 버전보다 훨씬 빠르게 편곡되어 있었다. 무엇보다 트럼본, 테너 색소폰, 트럼펫 등의 솔로 타임을 상당히 길게 주었는데, 정통 브라스 연주란 무엇인가를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Bourbon Street Parade’로 한바탕 놀아재낀 후에 한국인이 로맨틱한 노래를 좋아한다고 들었다면서 특별히 준비한 ‘When I Fall In Love’를 들려주었다. 워낙 유명한 스탠더드 넘버이기 때문에 익숙하다거나 식상하다고 느낄 수도 있었지만, 해리의 음성으로 한 번도 음반화 된 적이 없던 곡이기 때문에, 이날의 관객들에게는 멋진 팬 서비스가 되었을 것이다.

 

공연은 전체적으로 물 흐르듯이 편하면서도 완급조절이 성공적인 공연이었다. 마지막 곡은 빌보드에서 ‘재즈 앨범 차트’ 1위까지 했던 앨범 『Come By Me』의 동명 타이틀 곡 ‘Come By Me’였다. 이 곡은 앞서 연주했던 ‘You Made Me Love You’처럼 투 핸디 스타일로 시작해서 점점 현란해지다가 후반부에 빅밴드까지 가세하는 드라마틱한 편곡이다. 객석이 모두 좌석이라서 안타까웠지만, 구석구석 자리에서 일어나 음악을 즐기는 관객들도 눈에 띄었다. 세종문화회관이라는 엄숙한 이미지의 공간치고는 무척이나 열려있는 모습들이었다.

 

‘Come By Me’가 끝나고 해리의 인사와 함께 밴드들도 퇴장했지만, 관객들은 정해진 순서라는 듯이 ‘앵콜’을 외쳤다. 시간이 조금 흐른 뒤에 다시 무대에 오른 해리와 빅밴드는 많이 와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남기고 이전의 어떤 곡보다 빠르고 스윙감 넘치는 곡 ‘Mardi Gras In New Orleans’를 연주했다. 해리는 연주하던 도중에 한국 관객 한명을 무대로 올렸는데, 잘 추는 춤은 아니었지만, 격렬한 몸짓에 관객들은 모두 그를 응원해주었다. 이에 흥겨워진 해리와 그의 밴드 마스터 루시엔은 개다리 춤을 비롯해 무척 우스꽝스러운 춤으로 관객의 기분을 챙겨주었다. 이 순간엔 정말로 공연을 즐기는 것은 관객만이 아니라 무대에 선 뮤지션이었을 것이다. 진짜 뮤지션이라면 관객보다 더욱 공연을 즐기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공연을 즐긴 것은 뮤지션과 관객만은 아니었다. 노래가 연주되는 동안 해리의 두 딸이 ‘바퀴달린 신발’로 무대를 가로질러 다닌 것도 무척 인상적이었다.

 

한 번의 앵콜이 끝났지만 아쉬운 관객들은 다시 한 번 앵콜을 요청했고, 이번엔 좀 더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무대에 오른 해리는 고맙다는 말을 여러 번 반복하고, 오늘의 자신을 알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영화 ‘해리가 셀리를 만났을 때’의 삽입곡 ‘It Had To Be You’를 베이스 반주로 불러주었다. 우리에게 익숙한 빅밴드 편성은 아니었지만, 가장 듣고 싶었던 곡 중의 하나였고, 공연의 엔딩으로 잔잔한 마무리를 위해 더없이 알맞은 편곡이었다.

 

사실 해리의 연주와 노래의 모든 요소가 아주 전통적인 스윙 재즈라고 할 수는 없다. 장르는 여러 아티스트의 음악적 특징 중의 공통분모를 모은 후에 이름을 지어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역으로 생각하면 한 아티스트의 음악을 부를 때 한두 가지 스타일의 이름으로 한정하여 부르는 것 자체가 모순일 수도 있다. 한국에서 상당한 인기를 끌었던 해리의 음반 『She』도 전통적인 재즈가 아닌 ‘퓨전 재즈(Jazz-Rock)’가 대부분인 앨범이었다. 이날의 연주도 구석구석 블루스, 펑크 등 여러 가지 스타일의 음악이 녹아있었다. 그렇지만 공연의 전체는 빅밴드라는 음악적 장치로 스윙 시대부터 내려온 뉴올리언스 재즈의 정수를 느끼기에 충분했다.

 

공연 내내 해리가 강조했던 것은 ‘뉴올리언스’였다. 재즈의 시작이었던 뉴올리언스. 자연의 힘 앞에 어이없이 무너진 상처를 갖고 있는 도시. 공연 내내 뉴올리언스에 대한 해리의 애정을 한껏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재즈의 고향을 아쉬움 없이 느낄 수 있는 공연이었다.

 

 
 
※ 사진 제공 옐로우 나인(인터넷 자원 활용)
※ 본 리뷰는 음반 리뷰가 아닙니다. 해당 공연 상품 검색에 실패하여
   공연의 모태가 된 음반을 선택하였습니다.
r*******7 2008.04.22.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