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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제목이 참 특이하다는 생각을 했다. 바람에 휘날리는게 머리카락도, 스카프도, 옷자락도 아닌 비닐시트라니.. 비닐시트를 빨랫줄에 널어놓았나?하는 엉뚱한 상상을 하며 혼자 키득거렸었는데 정작 비닐시트의 뜻은 예상밖에 너무나 진지하고 숭고하기까지 해서 빨랫줄 타령을 한 내 생각의 짧음이 부끄러워 혼자 얼굴을 붉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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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소설은 읽고 나면 항시 여운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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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에 휘날리는 비닐 시트라,,,,,왜 저런 제목을 지었을까? 무슨 뜻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그 뜻이 못내 궁금했다. 단편소설을 그다지 즐기지 않지만 <바람에 휘날리는 비닐 시트>라는 제목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그 어떤 내용도 기대하지 않고 제목만으로도 나를 사로잡은 책이다. 모리 에토라는 작가가 쓴 작품으로 나오키상을 받은 <바람이 휘날리는 비닐 시트>와 다섯 편의 단편을 묶어낸 소설집이다. 솔직히 작가를 잘 모르면 책을 읽기가 겁나기도 한다. 나랑 감성이 아주 틀릴수도 있기 때문에 선뜻 손을 내밀지 못하지만 이렇게 좋은 작품을 만날 수 있다는 것에 나는 책 읽는 것에 감사한다. 바람에 휘날리는 비닐 시트의 의미를 알고는 더 마음속에 깊이 들어와 버린 작품. <그릇을 찾아서> 그 누구보다도 맛있는 케이크를 만드는 게 꿈이었지만 히로미 밑에서 일하며 히로미의 푸딩을 담기 위한 미노 자기라는 그릇를 찾으러 가는 아요이의 이야기이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갑자기 그릇을 찾으러 떠난 야요이는 남자친구 다카노리의 히로미와 자신 중에서 한 사람을 택하라는 문자를 받는다. 히로미의 변덕을 견디기 힘들지만 야요이에게는 케이크가 누구보다도 소중하다. 맛있는 케이크를 먹기 위해 구입하러 오는 이에게 행복한 기분을 느끼게 하고 싶은 것이다. 푸딩과 어울릴 마음에 꼭 드는 그릇을 찾았을때의 야요이의 뿌듯한 기쁨이 보였다. <강아지의 산책> 주인 잃은 강아지들을 기르기 위해 허름한 술집에서 호스티스로 일하는 에리코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동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내게 에리코의 모습은 좀 의외였다. 이런 사람도 있을 수 있구나. 동물을 위해 이런 일도 할 수 있다는 걸. 동물들을 싫어하는 내게 윗집의 강아지의 털도 만지지 못했지만 2년여가 지난 지금에 나는 그 강아지의 장난감을 던져주기도 하고 등을 긁어주는 단계로까지 발전했다. 에리코의 시아버지처럼. 어떤 사람들은 말을 한다. 사람보다 오히려 동물에게 정을 느낀다고. 내가 이런 걸 느끼며 에리코의 그런 행동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바람에 휘날리는 비닐 시트> 국제연합난민고등판무관(UNHCR)사무소에 근무하는 리카는 사랑했던 에드를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녀는 아프가니스탄의 난민 소녀 소와이라를 구하기 위해 총부리에 자신의 온 몸을 던져 그 소녀를 구한 사랑하는 에드를 잊기 위해 애를 쓴다. 그가 살았던 삶을 생각해보면 그에 대해 너무도 몰랐던 자신을 자책하며 힘들어한다. 비닐시트가 바람에 휘날린다. 사나운 한 줄기 바람에 펄럭이고 뒤집히고 구겨질 대로 구겨져서 우주를 춤춘다. 하늘은 뒤덮은 검은 구름처럼 무수하게, 아우성치고 있다. 날씨는 절망적이고 바람은 폭력적으로 몰아친다. 바람이 불면 휘날리는 비닐시트. 한없이 날려간다. 돌이킬 수 없는 저편으로 내몰리기 전에, 허공에서 그 몸이 찢겨지기 전에, 누군가 손을 내밀어 잡아주어야 한다. ~~~~~ 327페이지 '바람에 휘날리는 비닐 시트' 중에서 왜 UNHCR에 근무하느냐고 물어보면 에드는 늘 이렇게 대답했다. 공기보다 더 가벼운 난민들의 목숨을 비닐 시트로 표현한 것이다. 에드는 그 비닐 시트들이 바람에 아무렇게나 날리는 모습들이 괴로워 아이도 갖지 않겠다고 한다. 에드와 7년을 살았지만 실제로 그와 함께 산 기간은 100일도 채 되지 않는다. 에드는 늘 난민 구제를 위한 다른 나라에 가 있었기 때문이다. 에드를 너무도 사랑했지만 곁에 없어 일년에 겨우 몇일을 만나며 그의 목숨이 위태로운 곳에 있다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그래서 헤어졌지만 늘 그를 염려했고 사랑했다. 그가 없는 직장에서 마음을 잡을 수 없어 제대로 일도 처리하지 못하지만 아프가니스탄에서 에드가 목숨을 구했던 소와이라를 만난 기자를 만나 인터뷰하고 소와이라의 마지막 말에 그만 울음을 터트리고 만다. 그리고 자신의 삶의 방향에 대해 결정을 하게 된다.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 마음을 흠뻑 젖게 만들수 있다는 책이 있다는 게 나는 좋을 뿐이다. 가슴이 뭉클해지고 따스해지는 책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단편소설을 만나게 되어 좋다. 더불어 모리 에토라는 작가를 알게 되었다는 것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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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시적기에 이 책에 내게로 온 것만 같다. 개인적으로 어떠한 도전을 앞두고 있다. 어찌보면 별 일이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나로서는 지금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쏟아야 할 것이며 지금보다 더 분주할 것이며 지금보다 육체적으로도 더 힘들어질 그런 '어떤 도전'을 앞두고 있다. 그래서 과연 내가 내린 결정이 잘한 것인지, 무모한 건 아닌지... 과연 나는 꿈만 꾸고 있는 이상주의자가 아닌지.. 등등 잡다한 생각에 사로잡혀 미세하게 동요되는 물결에 이리 흔들 저리 흔들하고 있던 요즈음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나니, 결코 나의 도전이 '무모한도전'이 아님을 스스로에게 알려주고 잘될꺼야~하며 다독거릴 수 있었다.
총 여섯편의 단편이 실려있는 책으로, 20대들이 읽으면 앞으로의 방향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 던질 수 있을 것 같고, 30대들이 읽으면 앞만 보고 달려온 자신의 젊은 날?을 한번쯤 잠시 서서 짚어보고, 또 다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새로 잡아보는 기회가 될 듯 싶다. 40대 이상이신 분들이 읽으면,음... 아련한 추억에 잠기시든지 아니면 '아이고.. 나는 인생 헛살았어~'하면서 약간 후회하실지도 모르겠다.- 이건 농담이다...
어디까지나 이건 내멋대로의 생각이지만, 그런 생각이 드는건 이 책은 다소 모범생적인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꿈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라는 조절되지 않은 열정을 분출하는 것은 이제는 좀 무식?해보인다. 모든 감정과 이성이 그러하듯 조절을 하기 위해서는 기준이 필요하다.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에서는 감정과 이성은 배에 필요한 돛과 키와 같은 존재라고 했다.) 개개인마다 그 기준이 확연히 다르겠지만 아마도 이 책을 읽다 보면 자신이 어렴풋이 정해놓은 기준들이 눈에 보일지도 모르겠다. 감정:이성의 비율... 꼭 50:50만이 좋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에게 맞는 기준이 되는 감정:이성의 비율을 찾는 건 결코 쉬운 일은 아닐 듯 싶다. 그 비율을 찾아내는 데에는 시행착오가 필요한데, 이것에는 시간과 사건 그리고 깨달음이 필요하다. 자신의 능력의 한계를 깨닫고 꿈을 수정하고(그릇을 찾아서),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대해 후회없는 열정을 쏟으며(강아지의 산책), 자신의 현재 상황에 굴하지 않고 꾸는 꿈을 지켜나가며(수호신), 열정만이 다가 아니라 좌절도 있다는 것을 알게되고(종소리), 때론 자신의 순수한 바보스러움을 유지하는 것도 나쁘지 않으며(X세대), 타인을 이해하고 애정을 품고 또 실천하는 것에 자기 희생을 감내해내고(바람에 휘날리는 비닐시트)... 그런 그런 시행착오와 성찰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30년동안을 지녀온 뚱땡이 몸을 벗어나고자 '한달 10키로 감량 보장. 못하면 환불' 이런 문구에 속아 넘어가, 어찌어찌해서 한달 사이 10키로 감량해냈다고, 그게 바로 그냥 '나'가 될 순 없다. 앞으로 요요현상에 맞서 말짱 도루묵에 되지 않기 위해 얼마나 많은 기준과 싸워야 하겠는가? (- 참고로 이 얘긴 나하고는 상관없는 이야기임!) 마찬가지가 아닐까? 과거의 나, 지금의 나 그리고 앞으로의 나는 갑자기 변화하지 않을 것이다. 어렴풋하게나마 정해놓은 그 기준에 맞게 살아오고, 또 살아가고 있고 또 살아내면 그것이 바로 '나'가 되는 것이다.
말짱 도루묵이 되지 않기 위해... 그 정신적 요요현상을 겪지 않기 위해 오늘도 나는 그 '기준'과 싸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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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시적이고 표지가 맘에 들어서 전부터 눈독들이던 책이다.
모리 에토.. 심지어 저자의 이름까지도 왠지 음악적 느낌이 든다. 한마디로 맘에 안드는 구석이 없다는 뜻이다.
책을 읽고 저자의 이력 소개를 보는 순간 나에게 저자의 또 다른 책이 있다는 걸 깨닫고 기분이 좋아졌다.
'컬러풀', 얼마전 고모에게 빌려온 책이었는데, 또 다른 저자의 따뜻한 감성을 느낄 수 있으리란 기대감에 책을 덮고,
눈물이 채 마르지 않았어도 기뻐서 웃음이 났다.
이 책에는 6가지의 단편이 실려있다.
하나같이 특이하지만 따뜻함이 느껴지는 글들이었다.
솔직히 세번째 이야기인 '수호신' 의 주인공의 심리와 네번째 이야기인 '종소리' 에서 보여지는 주인공의
오만한 집착은 그대로 공감할 수는 없었지만 무언가에 그렇게 순수하게 빠져들 수 있다는 점이 참 좋았다.
실수를 비웃지 않고 따뜻하게 감싸주는 사람들과 천천히라도 깨달아가는 모습도 보기 좋았다.
다섯번째 이야기인 'X세대' 는 순수한 열정에 대한 완성이었고, 무척이나 공감도 되었다.
십년전, 친구들과의 야구모임 약속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이시쓰.
그런 그의 열정을 보며 잃어버렸다고 생각한 자신의 열정도 되살리는 겐이치.
그런 둘의 마지막 대화에 나도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하지만 우리, 언제까지나 그런 바보로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10년 전에 그렇게들 얘기했습니다. 그야 물론 세월이 10년 정도 흐르면 다들 일도 할 것이고, 결혼을 했을 수도 있고, 아이까지 있을지도 모르죠. 중요한 일도 많아지고, 책임도 방해물도, 아무튼 온갖 것들이 많아질 테지만, 그래도 10년에 하루쯤, 모두 모여 동네 야구를 즐길 수 없는 인생은 살고 싶지 않다고, 10년에 하루 정도는 야구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는 바보스러움을 유지하고 싶다고, 우리는 그런 얘기를 했더랬습니다." - p.317
예전처럼 자주 만날 수 없는 친구들, 그렇게 그립고 소중한 친구들을 만나도 내 맘은 그대로인데 무언가 어색하고 앞으로 얼마나 더 자주 이렇게 친구들을 만나 즐겁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자꾸만 슬퍼진다.
내가 결혼하면 더 만나기 힘들꺼라고 말하는 친구들이 야속하기도 했다. 그게 사실일지라도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인데...
그래서 온갖 우여곡절로 힘들어도 현실의 모든걸 포기하는 한이 있어도 약속을 지키려는 이시쓰와 친구들이 너무나 아름답게 느껴졌다. 문득, 나도 그런 약속을 친구들과 한다면 나도 이시쓰처럼 그렇게 지켜낼 수 있을까? 생각했다.
모두가 변해도 나와 내 친구들은 한결같기를 바라는건 아무래도 무리겠지만 그래도 언제까지나 함께이고 싶다.
이시쓰와 친구들처럼...
첫번째 이야기는 최고의 케이크를 만드는 히로미와 그런 그녀를 동경하는 야요이의 이야기다.
야요이도 원래의 꿈은 맛있는 케이크를 만드는 작은 자신의 가게를 갖는거였지만 히로미의 케이크의 반해, 케이크를 만들기보단 그런 그녀의 맛있고 아름다운 케이크를 돋보이게 해주는 그릇같은 사람이 되고자 한다.
처음에는 그런 그녀를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의 꿈까지 접고서 남의 뒤치닥거리나 하느라 자신의 생활은 엉망이 되는 그녀가...
하지만 지금은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 그녀는 꿈을 버린게 아니라 새로운 꿈을 갖게된 것 뿐이다.
그리고 그녀가 행복하다면 그걸로 괜찮은거 같다. 그저 자신의 꿈과 행복이 뭔지 아는 그녀가 부러웠다.
이리저리 삶에 치이고 힘들더라도 그게 자신의 꿈과 행복을 위한 과정이니까 견딜 수 있고 보람있는 일이니까...
그녀는 누가 뭐래도 자신의 삶을 살고 있는것이다.
오로지 케이크밖에 모르는 야요이는 가게 주인의 관심사가 폭넓다는 것이 부럽기도 했지만, 그 무질서함이 꺼림칙하기도 했다. 가게 앞에는 과연 작은 새가 네 마리, 두 마리씩 쌍으로 들어 있는 새장이 놓여 있었다. 하지만 '새장에 갇힌 새' 에서 연상되는 비참함은 조금도 없었다. 작은 새들이 오히려 느긋하고 행복해 보여, 그 역시 왠지 꺼림칙했다. - p.30
그녀는 그렇게 '새장에 갇힌 새'가 모두 불행한건 아니라고, 그 편견을 깨는 생각을 가르쳐 주었다.
두번째 이야기, '강아지의 산책', 우리가 잃어버리거나 우리에게 버림받은 떠돌이 개들을 돌보기 위해 술집에 나가는 에리코.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런 그녀를 이해하지 못하겠지. 그녀의 '하루 800엔'의 기준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나의 삶의 기준은 무엇인지, 그녀만큼 확실한 기준도 없이 하루하루 낭비하며 살아가면서 그녀를 비난할 자격이 있는지 오히려 묻고싶다.
에리코를 비난하는 책 속의 남자같은 사람들은 우리 곁에 많이 있다.
우리 아빠를 비난하는 건 아니지만, 우리 아빠 역시 그 남자와 같은 말을 했었다.
"세상에 먹지 못해 죽어가는 사람도 있다는데, 개를 위해 저러다니 참 우아하군." (p.90) 시간이 남아도나보다고 덧붙였었지.
아빠가 그렇게 말씀하실 때, 나는 아무런 반론을 할 수가 없었다. 아빠 말씀도 틀린 말이 아니라 생각되었고, 또 내가 사람이나 개를 위해 무언가 행동할 여력도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개를 돕지 말자고 생각하는건 아니었기에 조금 답답했었다.
지금은 그저 에리코의 말대로 이건 인간의 우열이나 선악의 문제가 아니라 그저 관심의 문제(p.88) 라는걸, 나도 그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라크에 잡혀갔다 풀려난 일본인 세 명의 이야기가 잠깐 나왔는데, 우리나라에서도 얼마전 교회사람들이 그렇게 잡혀가서 맘 졸였던 일이 기억이 났다. 정부가 위험해서 가지 말라고 했는데도 굳이 가서 잡혀간 그들이 유명해지고자 하는 심리로 그런거라며 멋대로 행동한 그들을 구하기 위해 왜 우리가 낸 세금을 낭비해야 하는가? 아마 우리나라 사람들도 그때 이런 생각한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랬기에 에리코의 질문이 나에겐 참 충격이었다.
나는 지금까지, 나하고는 무관하다고 외면하면 그만인 누군가와 어떤 일을 위해서 뭔가를 한 적이 있던가? - p.106
이 주제는 마지막 이야기이자 내가 이 책에 끌렸던 이유인 아름다운 제목 '바람에 휘날리는 비닐 시트' 에서 강렬하게 나타난다.
아름다운 제목만큼 아름답게 슬픈 이야기였다.
난민들을 돕는 UN 기관에서 일하게 된 리카는 상관인 에드와 사랑에 빠져 결혼하게 되지만 그들이 정말 행복하게 함께 한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에드는 현장에 나가 직접 난민들과 호흡하는 일을 좋아해서 계속해서 해외로 나갔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국 한 소녀를 구해내고 죽어버린다. 바람에 휘날리는 비닐 시트, 그건 바로 그렇게 정처없이 떠돌아다니는 난민들을 뜻하는 거였다.
리카는 에드가 죽기 전, 이혼을 했다. 항상 밖으로만 나가는 에드를 끝까지 이해해 줄 수 없어서...
그녀는 에드가 사랑했던 그곳을 '적' 으로 생각했다. "내게서 에드를 빼앗아가는 적." (p.366)
나는 그런 그녀를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리카처럼은 함께하고자 더 이해해보고자 노력도 않고 그저 불평만 해댔었다.
그와 내가 함께 할 수 없는 상황을 나도 그녀처럼 '적' 으로 생각하고 더 거부하고 미워했었다.
그래서 결국 난 그에게서, 그 상황에서 도망쳤는데, 리카는 이제 당당히 에드의 삶을 받아들인다.
나는 언제쯤 도망가는 걸 멈추고 리카처럼 당당히 맞설 수 있을까?
언제쯤이면 적어도 타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만을 위한 내 삶의 기준만이라도 갖게 될지 조금 불안하다.
나를 나로써 존재하고 살게 만드는 나만의 기준, 리카처럼 용기가 필요한 위대한 기준은 아닐지라도
적어도 야요이나 이시쓰처럼 나와 내 친구들의 작은 행복을 위한 기준을 찾고 싶다.
정말이지 나를 울고 웃게 한 가슴 따뜻한 여섯 편의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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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에토의 책을 두권정도 이미 읽은 나는 이번 책도 기대가 아주 컸다. 모리에토는 아동작가로 시작을 했기 때문인지 작품들은 대개 내용이 포근하고 등장인물들의 심리묘사가 섬세하다. 게다가 이 책은 최근에 상까지 수상받았으니.. <바람에 휘날리는 비닐 시트>는 표지디자인이나 제목도 참 맘에 쏙들었다.
막상 책을 펼치고 나니 이 책은 여러 단편들을 모아놓은 책이었다. 책소개에 나온 소제목들은 알고보니 각 단락의 소제목이 아니라 말그대로 각각 단편들의 제목이었다. 한권의 풍성한 장편을 예상하고 펼쳐들었던 나는 순간당혹감을 감출수가 없었다. <바람에 휘날리는 비닐시트>를 얼른 읽고 싶은 마음에 맨 마지막에 있는 그걸 먼저 읽고 다른 단편들을 읽을까도 싶었다. 하지만, 곧바로 작가가 책의 순서를 이렇게 잡은 건 다 이유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그냥 차근차근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왠걸..한편 한편 읽어내려가는데 뒤로가면 갈수록 더 나중에 실린 단편들이 훨씬 재밌는 거다. (그렇다고 앞에 실린 단편들이 하잘것 없는 것도 아니었다) 물론 간간히 찡하기도 하고 생각할 거리들도 주고말이다. X세대를 완전감동으로 본 나는 드디어 <바람에 휘날리는 비닐시트>를 볼 차례가 되었고.. 가슴은 정말이지 두근거려서 터질것만 같았다.
<바람에 휘날리는 비닐시트>의 화자는 이혼녀인데.. 죽은 전남편이 해외결식아동들과 같이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비유적으로 바람에 힘없이 이리저리 굴러 다니는 비닐봉지 같다고 말한데서 이런 제목이 붙었다. 더 리얼하게 제목을 정정한다면 실제 제목은 위에서 내가 말한 바람에 휘날리는 검정 봉다리쯤 될 것이다.
모든 사람의 생명과 삶은 너무나 소중한 것인데도 불구하고 전쟁과 기근과 선진국들의 간섭으로 인해 이리저리 시달리는 그들을(그래서 하잘것없는 인생처럼보이는 그들을) 날리는 검정 봉지로 비유하다니 너무 강렬한 비유였다. 모리에토 정말 탁월하다.캬~ 그런데 그 강렬한 제목과는 달리 정작 내용은 인권운동에 대한 것이라기 보다는 사람을 사랑하고 또 떠나보내고 결국 이별하게 되는 과정을 통해 한 여자의 삶이 더 성숙하게 변해간다는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참 어렵다. 그 사람다울 때 그 사람이 멋진 것이다. 하지만, 그걸 뛰어넘도록 만드는 사랑이란 것은 그래서 더 위대하다.
스토리는 이처럼 크레센도처럼 점점 몰아가서..나중엔 오열을 쏟게 만들었다.
내가 흔히 생각해왔던 단편은 한 순간을 잘 포착한 마치 사진과 같은 작품이었었다. 그런데, 바람에 휘날리는 비닐시트에 수록된 단편들은 왠만한 장편들보다 더 다양하고 흥미진진하며 가슴뭉클한 내용들을 짜임새있게 담고 있었다. 이것은 내가 기존에 갖고 있던 단편에 대한 선입견들을 날려버리게 만들었다. 각각의 단편들은 어떤 대서사시들에 견주어도 아쉽지 않을만한 힘을 갖고 있었다.
이 책은 오랫동안 책읽기를 쉬었던 사람들에게 또한 모리에토의 따뜻하고 힘찬 목소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그리고 단편의 힘을 가벼이 여겼던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다. 이런 사람들은 아마 나처럼 이 책이 참 재밌고 부담스럽지 않게 느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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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키상 수상작이라고 예약판매라고 해서 호기심에 구입해보았다. 바나나나 가오리의 책을 즐겨보니까 비슷한 부류가 아닐까 생각하면서...
장편인 줄 알았는데 단편들이 모인 책이었다. 양장본이었구...
단편 단편 가볍지 않은 주제를 가벼운 문체로 다루었다. 처음엔 어.. 이게 모지...라고 생각하다가 읽을수록 아...이런 사람들이 있구나..이런 내용이구나... 나도..그럴 때가 있지... 그런 생각들...
마지막 바람에 휘날리는 비닐 시트를 읽을때쯤 완전히 빠져들었다...
소소한 사람들의 세계를 잘 집어낸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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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 감동.... !! 퇴근하면서 읽다가 낭패 봤다. 눈물 참느라고 진짜... 종소리와 X세대도 정말 재미있었지만, 역시 바람에 휘날리는 비닐 시트가 백미. 표지도 너무 이쁘다. 어쨌건 오랜만에 좋은 책을 읽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다. 그래도 후유증의 심할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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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소설에는 독특한 '맛'이 있다. 묘하게 사람을 끌어당기는 맛이다. 시큼달콤하기도 하고, 오싹할만치 강렬한 맛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리고 잔잔한 일상속에서의 사람살이가 느껴지는 편안한 맛도 더불어. 그래서인가 일본은 그 다양한 맛들처럼 문학상들이 유난히 많기도 하다. 그중에서도 유독 내가 좋아하는 나오키상 수상작. 왠지 재미가 '보장'된 책이라는 믿음이 생긴다고나 할까. 이 책 '바람에 휘날리는 비닐 시트'도 135회 나오키 상 수상작이다. 눈길을 끄는 예쁜 표지와 함께 나를 끌어당긴 이 책은 6개의 단편을 담아내고 있다.
얼마전에 읽었던 가쿠타 미쓰요의 '죽이러 갑니다'에서 주제 테마였던 '일상의 악의'를 첫번째 이야기 '그릇을 찾아서'에서 느낄수 있었다. 언젠가는 자신의 가게를 가지고 맛난 케이크를 만들고 말겠다는 꿈을 지닌 주인공 야요이. 하지만 그녀의 보스인 히로미의 절대적인 맛의 재능 앞에서 포기하고 만다. 정말 맛난 케이크를 만들어 내고, 사람을 부리는 경영수완, 화려한 미모, 행운.. 히로미가 가진 그 모든 재능과 맞바꾼듯 연애운은 형편없다. 쉽게 반하고, 쉽게 버림받는다. 덕분에 야요이의 연애는 늘 그녀에게 질투의 공격대상이고 청혼을 준비해놓은 남자친구와의 크리스마스 데이트를 망쳐버릴셈으로 그녀를 먼곳으로 출장을 보내버리는 히로미. 악의 아닌 악의가 물이 새듯 스며들어 온다.
이렇게 몇줄의 글자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수 있는 재능. 책의 마력이란 이래서 대단한게 아닐까. 화가나서 부르르 떠는것도 잠시, 출장간 곳에서 문득 느끼는 낯선 남자의 유혹에 너무도 자연스레 넘어가고 그러면서도 남자 친구와의 저녁을 상상하는 그녀를 보며 '아.. 역시 일본인'이라는 보수적인 편견이 자연스레 기어나와 버리며 피식 웃어버린다.
나머지 이야기들은 이렇게 '일상속의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악의와는 상관없다. 아니, 오히려 마지막 이야기인 '바람에 휘날리는 비닐 시트'에서는 사람의 마음속 온기를 느꼈다고 할까. 매일매일의 바쁜 업무속에서 상사에게 '쓸데없는 교류'까지 강요당함에 지쳐 주인공이 새로이 선택한 직장, '국제연합난민고등판무관 사무소'. 그 길다란 이름만큼이나 절박함에 내몰린 난민들을 위한 국제기관이다.
늘 난민속을 뛰어다니는 현장직원인 에드와 결혼하지만 그녀는 이제 그의 정착을 바라고, 에드는 조그마한 바람이라도 불면 하늘로 날려올라가 언제라도 찢어질지 모르는 비닐시트처럼 아슬아슬한 난민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그녀마저 현장으로 이끌기 위해 애를 쓰고.. 책에서도 말하듯 '부부도 타인' 이란 말이 와닿는 결혼이라는 정의가 가슴에 닿아왔다. 의견의 간격을 좁히지 못하고 6년의 결혼생활을 접고 이혼한지 얼마되지않아 아프가니스탄의 난민 소녀를 강간범의 총에서 구하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던져버린 에드의 죽음의 소식앞에서, 살아남은 그 소녀의 장래 희망이 '국제기관에서 일하는 것'이라는 메세지를 전해들으며 오열하는 그녀의 떨림이 나에게도 번져왔다.
이렇게 책은 소소한 여섯명의 인생이야기를 들려준다. 맛난 케이크 한조각을 위해, 주인에게 버려진 개들을 위해, 인생에서 버려진 1억을 되찾기 위해, 불상복원에 관한 꿈을 위해, 동창들과 10년전에 약속했던 야구시합을 위해. 그리고 마지막, 절박한 사람들의 인권을 위해.. 그렇게 하나씩의 인생을 살아갈만한 아름다운 이유 한가지씩을 말이다. 내게는 어떤것이 살만한 인생이라고 이야기 할수 있는 가치일까? 그리고 그것이 진정한 가치일까. 아니면 그저그런 집착일까.
읽는 내내 일본소설 특유의 잔잔하고 세세한 묘사가 책에 빠져들게 했다. 약간은 기대에 못미친 느낌을 안겨다 주기도 했지만, 과장되지 않고 현실감이 느껴지는 삶의 이야기 속에 녹아들어 주인공 한사람 한사람이 되어 그들의 삶을 겪고 빠져나온, 그런 기분이다.
나는 부유한 나라에서 태어난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가난한 나라의 참상을 외면하고 있을 뿐이다.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메마를 대지를, 난민들의 뼈만 앙상한 몸을, 눈앞에서 스러지는 무수한 생명을, 모진 바람에 휘날려 사라지는 것들을, 내 두 눈으로 직시하기가 두려웠던 것이다. -406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