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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야심한 시각, 우연히, 케이블 방송을 통해 '시리즈 다세포 소녀'라는 드라마를 보았었다. 보지는 않았지만 영화 <다세포 소녀>만 알고 있던 나는 19세 금 표시가 된 그 드라마가 궁금했다. 그날의 에피소드 제목은(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가난에 대한 해부'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드라마의 주인공 소녀는 한쪽 어깨에 '가난'을 짊어지고 사는 아이다. 가난을 등에 업은 소녀. 정말로 진저브레드 모양의 책가방만 한 크기의 가난이 그 소녀의 어깨에 매달려 있다. 어느 날, 수업 시간에 선생이 '가난'을 주제로 강의를 한다. 무능력하고 게으른 자들이 가난한 것이라고 선생은 설명한다. 반 학생들 모두 가난을 등에 업은 소녀를 손가락질 하고, 소녀는 더욱 주눅이 든다. 그 반에서 특히나 부유한 세 명의 남학생 가운데 하나가 궁금증을 품는다. 정말 가난하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들은 정말 게으르고 못나서 가난한 것일까. 그는 소녀를 하루종일 미행한다. 자신이 사는 동네에서 조금 벗어나자 가난을 등에 업은 사람들이 사방에 돌아다닌다. 그는 화들짝 놀란다. 그리고 그 가난이 자신에게 닿을까 움찔한다. 방과 후 소녀는 하루종일 일을 한다. 해가 지고 어두운 시각, 소녀는 우연히 마주친 그에게 자신의 가난을 잠깐만 맡아 달라고 하고는 신문 배달을 하러 간다. 그는 소녀가 건네준 가난을 쥐고 친구들에게로 뛰어간다. 그리고, 특히나 부유한 남학생 셋이서 가난 해부 수술을 시작한다. 긴장한 그들은 땀을 흘리며 메스로 가난의 배를 가른다. (어떠한 상황을 이런 식으로 형상화하는 거 매우 좋아하지만, 헝겊으로 만든 진저브레드 인형을 가난이랍시고 어깨에 들처 메고 다니다가 그 인형을 메스로 해부하기까지 하다니, 살짝 웃기려고도 했으나, 그 속에서 도대체 무엇이 나올까 정말 정말 궁금했다.) 가난의 배를 가르고 그 속에 들어 있던 물건을 꺼낸 세 학생은 어리둥절해 한다. 그 속에서 나온 것은 바로, 코카콜라였다. 그들을 서둘러 코카콜라 병을 가난의 뱃속에 다시 집어넣고 바늘로 꿰매는 수술을 집행한다.
<가난한 휴머니즘>(eyes of the heart-seeking a path the poor in the age of globalization)에는 아홉 통의 편지가 실려 있다. 그 편지의 발신인은 장 베르트랑 아리스티드. 그는 신부였고, 아이티 반독재 투쟁에 앞장서다 세 차례 대통령직에 오르고 모두 쿠데타로 쫓겨났다. 그중 2003년 쿠데타는 미국이 주도한 것이다. 어린 시절 책장에 꽂혀 있던 '세계의 전래동화' 50권 시리즈 중 한 나라로만 기억하는 아이티는, 카리브 해에 있는 작은 나라로 남북아메리카를 통틀어 가장 가난한 나라이며, 세계 최초의 흑인 공화국이라 한다. 19세기, 서반구 최초의 노예 해방 혁명으로 독립을 쟁취한 아이티는, 그 뒤 이어지는 내란과 독재에 시달리고, 1915년부터는 사실상 미국의 지배하에 놓였다고. 그는 아홉 통의 편지를 통해 미국과 세계기구가 처방한 신자유주의를 단호히 거부한다. 아이티의 토종 돼지인 크리올 돼지가 멸종된 사연 등을 통해 그가 왜 신자유주의를 거부하는지 구체적으로 제시된다.
모두가 잘살기 위해 '소수'의 희생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그 '소수'를 도대체 누가 결정하는가. 정말로 수적으로 적어서 '소수'인가.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네가 소수이니 희생을 감수하라고 감히 강요할 수 있는가. 자신의 권리를, 최소한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투쟁하는 그들을 게으르고 무능력한 이들이라고 비난할 수 있을까. 우리가 투쟁하는 '소수'에 대해 비난을 할 때엔 스스로가 그에 속하지 않음을 전제로 한다. 하지만 그건 실제일 수도 있고, 믿고자 하는 것일 수도 있으며, 큰 흐름 속에서 미처 알아보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내 이웃이 쓰러졌는데, 그 옆에서 나를 살짝 비켜갔다고 가슴 쓸어내리는 모습, 너무 역겹지 아니한가. 아리스티드가 신자유주의를 거부하고 제시하는 제3의 길은 얼핏 현실성이 없어 보인다. 허나, 현실성의 있고 없음을 떠나 곰곰 드는 생각은 세상의 모든 길이 두 갈래뿐일까 하는 것이다. 다함께 굶어 죽거나, 아니면 미국의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이거나. 후자가 모두를 먹여살린다는 보장은 없다. 아이티를 부유하게 만들 것이라는 보장도 없고. 이전보다 배가 부를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세상엔 공짜가 없다. 반드시 치르게 되는 대가가 있는 것이다. 경험을 통한 증거뿐 아니라, 지금의 행동이 앞으로 어떤 사태를 불러일으킬지 뻔히 예상되는 것들도 다반사다. 하지만, 대세를 따르지 않으면 다른 길은 없을 만큼 단단한 구조적 벽이 존재한다면, 정말 그렇다면, 그 안에서 발생할 소외의 가능성을 최소화해야 하니 않을까. 적어도 누군가가 무방비 상태에서 휩쓸리게 해서는 아니 되지 않을까. 누군가에겐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가 걸렸는데도 쉬쉬하는 거, 그만해야 하지 않을까. 소통하는 것, 그것이 서로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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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회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려면 그 사회에서 가장 낮은 곳, 가장 소외된 계층이 어떤 대접을 받고 있는지를 들여다 보면 된다고 합니다. 그 의미를 좀 더 확대해서 보자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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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티라는 나라를 세계 지도에서 찍어보라면 금방 찾아낼 수 있는 우리 나라 사람은 얼마나 될까? 그만큼 심정적으로 지리적으로 먼 나라인 아이티. 그 나라가 우리 나라의 뉴스에 등장했던 것은 몇년 전의 대지진으로 참혹함이 알려지고 나서부터 일 것이다. 따지고 보면 최초의 흑인 독립 공화국이라는 점에서, 세계사에서도 한 꼭지 차지할 만한 이 나라는 그러나 지금은 중남미에서도 가장 가난한 나라이다.
마치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가 현재 그러하듯이, 식민지에서 독립하여 만들어진 이 작은 나라는 외세의 침입에서 놓여나자 총보다 무서운 자본의 힘에 경제가 휩쓸리고 그 때문에 정치 상황이 혼란스러워져 더욱 어지러워지고 있다. 이러한 점을 고쳐보고자 하는 사람들의 노력은 이 나라를 좌지우지하고자 하는 서방 국가의 비호 아래 그들에게 협조하여 권력을 얻고자 하는 사람들과 배치되면서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이 책의 저자인 아리스티드. 사실 책이라기 보다 아이티 밖의 사람들에게 쓰는 편지글의 형식을 띄고 있는 이 책에서 사람들에게 편지를 쓴 아리스티드는 아이티의 현실을 조금이라도 낫게 바꿔보고자 하는 노력 끝에 네 번이나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나 그때마다 그의 노력에 반기를 드는 사람들에게 축출되어 쫓겨났었고 지금도 아이티의 국민들을 위해 뭔가 할 일을 계속하고 있는 이이다.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참으로 아프다.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으며 좌절하지 않으나 그 길이 너무도 어려워보이기에 가슴이 아픈 것. 100년전에 이준 열사가 헤이그에서 외쳤던 호소와 그 무엇이 다르겠는가. 노력하고 있으나 힘이 열악하기에 자신들 만의 힘으로 부족하여 작은 도움을 원하는 그 외침
원조라는 이름 아래 행해지는, 오히려 자생력을 약화시켜 종속시켜 버리는 자본의 탐욕. 크레올 돼지의 멸종으로 상징되는 그 현상들은 비단 아이티 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지금도 자행되고 있다. 그 거대한 흐름 앞에, 그것이 시대적인 것이라고 치부해 버리기에는 너무도 많은 사람이 아파하고 있다. 너무나도 거대한 힘이기에 작은 힘이 아주 많이 모이지 않으면 이겨내기 어렵다. 이 편지들.. 많은 사람에게 전달되어 그러한 힘이 모이는데 이바지해야 한다. 나 또한 그 힘의 하나가 되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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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고 싶지 않은 일이었다. 가난으로 헐떡이는 이들에게 연달아 닥친 태풍과 지진은 악몽과도 같은 나날들을 낳았다. 가진 것이 없어 잃을 것도 없어 보였던 이들은 유일한 재산이라 할 수 있는 피붙이를 잃고 시름에 잠겼다. 전세계 언론은 막대한 피해를 몰고 온 자연재해에 주목했고, 많은 단체들이 이들을 향해 도움의 손길을 뻗쳤다. 온정이 그들을 조금 덜 외롭게 만들어주긴 할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안다. 약 9개월여 전에 그들을 쓰러뜨린 지진으로 인한 피해가 복구된다 하여도 아이티 사람들의 삶의 수준이 나아지진 않으리라는 것을… 언제나 가난했던 그들은 부유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덜 가난해지기 위한 투쟁을 앞으로도 계속 벌여야 할 것임을,… 씁쓸하지만 이는 외면할 수 없는 엄연한 현실이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최빈국으로 꼽히는 아이티. 역사를 살펴보면 더더욱 그들의 가난에 경의를 표하고 싶어진다. 긴긴 식민지배로부터 독립을 쟁취했지만, 약소국이 겪는 설움으로부터 아이티는 자유로울 날이 없었다. 미국은 호시탐탐 아이티의 지정학적 위치에 침을 흘렸고, 수 차례의 쿠데타가 합법적으로 수립된 정부를 불법으로 매도했으니 그 결과가 곧 가난이었다. 국제 기구들은 원조의 조건으로 세계의 기준에 부합하는 개혁을 요구했지만, IMF가 지난 날 우리나라에 가져다 준 변화가 그러하듯 아이티 역시 극소수의 부자들만이 떵떵거리며 살 수 있는 공간으로 돌변해버리고야 말았다. 인구의 85% 이상이 문맹. 글을 알지 못하고, 알고 싶어도 너무 가난해 학교에 갈 수 없는 사람들로 들끓는 그곳은 타자의 눈을 하고 보았을 때 불기둥만이 가득 들어찬 지옥과도 같아 보였다. 총 열 편의 편지를 읽기 전까지는 정말로 그런 줄로만 알았다. 물론 그 극심한 가난으로부터 매력을 느끼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신으로부터 버림 받은 듯한 그 땅에서 난 역설적이게도 희망을 발견하고야 말았다. 그리고, 결국 믿는 사람으로부터 발등 찍히는 세상이라고 저마다 한탄을 내뱉지만, ‘희망’이라는 단어를 대체할 수 있는 유일한 단어는 다름 아닌 ‘사람’이라는 다소 어리숙한 생각이 확고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물질만능주의는 현대를 가장 잘 설명해주는 단어임이 분명하다. 돈을 위해 사람이 사람을 배신하고, 심지어 죽이기까지 하는, 알고 보면 끔찍한 사회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이제 막 옹알이를 시작한 어린 아이에게 알파벳을 들이대고, 우스갯소리인지 진실인진 모르겠으나 원어민과 같은 발음을 구사하길 바라며 혀 수술을 시킨다는 이야기까지 심심찮게 들리는 것 역시 제 자식이 경쟁에서 살아남아 험악한 사회의 승자가 되길 바라는 부모의 마음 아니겠는가? 마음껏 흙을 밟고 뛰어 놀아야 할 아이들은 저마다 학원에 들어차 있고, 빈 놀이터엔 오늘도 공허함만이 울려 퍼지는, 사람 사는 냄새가 나지 않는 세상에서 휴머니즘을 말하는 건 왠지 어색하다.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울지 모르나 저마다 불행하다 아우성치는 사회가 현대인의 이상향은 아닐 것이다. 부족한 가운데 나눔이 몸에 배인 사람들, 실질적인 도움을 받지 못했음에도 맨바닥을 세상에서 가장 따끈한 구들장이라 말하는 아이티 인들의 모습이 차라리 아름다워 보인다. 그렇다 하여 그들의 가난이 정당화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먹을 게 없어 혹 눈이 멀 수도 있단 사실을 알면서도 진흙으로 쿠키를 구워 먹는, 그 빈곤까지 찬양해서는 아니 된다. 살고 죽는 게 우리의 의지가 아니기에 제 조국의, 제 부모의 부유함과 가난함이 한 사람을 살리고 또 죽이는 일은 옳지 않다. 허면 무엇이 그들을 위함일까? 앞선 자의 기득권에 부합하는 제도와 체제를 그들에게, 좋게 말해, 전파하는 것은 어떤가? 아이티 농민들과 오랜 기간 함께 했던 크리올 돼지가 미국산 돼지에 밀려 사라져버리고 저렴한 수입쌀 탓에 아이티산 쌀의 생산이 중단된 점이 아이티 인들에게 가져다 준 것은 혼란뿐이었다. 합법적으로 수립된 정부를 붕괴시키고자 하는 세력을 암암리에 지지, 지원하는 태도는 아이티에 대한 불경이자 그들의 자생력을 무시하는 오만이다. 희망은 다른 게 아니다. 많은 이들이 ‘다르다’를 ‘틀리다’의 동의어로 받아들인다. 조금 형태가 다르다 하여 무시하고 차별하는 태도는 곧 남성에 견주어 여성은 열등하고, 백인과 비교했을 때 흑인이나 황인이 열등하고, 경제적으로 앞선 나라에 비해 그렇지 못한 나라가 열등하다는 식의 사고로 이어진다. 하지만 여성이라 하여, 피부색이 하얗지 않다 하여 뜨거운 가슴을 가지지 아니하였겠는가! 그들 역시 가슴 왼쪽에서 끊임없이 요동치는 심장을 소유한, 같은 인간이다. 그 인간을 잘 보듬고 끌어 안는 게 바로 희망이다. 사람을 중히 여기고, 세상 무엇보다도 앞서 생각할 때 비로소 희망을 입에 담을 수 있다고 난 감히 말하고 싶다. 아이티의 더딘 걸음이, 어린 아이와도 같은 여린 보폭이 언제쯤 성장할지는 기약할 수 없다. 부유함보다 인간다움을 찬양하는 사람의 수가 늘어날 때, 연대하여 인간답게 살고 싶다 외치는 사람이 지구 상에 많아질 때 철옹성과도 같은 부조리는 무너질 것이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칠레 광부들의 귀환 소식에 세상이 들뜨고 있다. 그들의 영웅스러운(?) 생존이 찬양되는 이면에는 휴머니즘을 향한 우리 인간의 목마름이 존재한다. 진정 아름다운 것은 바로 우리 사람이다. 애써 외면해온 이 진실에 눈뜨는 이들이 좀더 많아지길 바라며, 느림과 불가능은 같지 않음을 피력해 본다. 시작은 미미하나 끝은 창대하리라! 당신은, 우리 모두는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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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티 공화국, 그곳에서 지진이 일어나기 전에는 어디에 위치한 나라인지도 알지 못했다. 강진에 의해 끔찍하게 파괴된 그 곳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전세계 모든 나라들이 집과 가족을 잃고 배고픔에 허덕이는 그들을 위해 물과 음식을 보내주었다. 직접 가서 복구에 힘을 보태는 사람들도 있었다. 언론은 앞다투어 그들의 상황을 머리 기사로 올렸다. 지진이 멈춘지 몇 달 후 그곳은 사람들의 관심에서 차츰 멀어지고 있다. 아직 페허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그들의 투쟁은 계속되고 있는데 말이다. 언론의 카메라가 더 이상 비추어주지 않으면 우리들은 마치 문제가 해결된 것으로 착각할 때가 있다. 시야에서 사라졌을 뿐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는데도 말이다.
미국 아래에 쿠바와 도미니카 공화국과 이웃하고 있는 작은 섬나라,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최초의 흑인 공화국이자 가장 가난한 나라, 국민의 85%가 글을 읽지 못하는 나라, 정치적으로 매우 불안한 나라, 그들을 소개하는 내용 중에서 자랑할 만한 것은 어디에도 없었다. 해방신학을 가진 신부이자 그들의 대통이기도 했던 아리스티드는 전세계 사람들에게 아홉 통의 편지를 보낸다. 그 편지들 속에는 아이티의 가난의 역사가 담겨있다. 미련하고 게을러서 가난한 것이 아니다. 일하기 싫어해서 다른 나라의 원조를 당연히 받아 먹고 있는 것 또한 아니다. 그들은 프랑스로부터 독립하는 과정에서 자유와 돈을 맞바꿨다. 프랑스에게 배상해야할 어마어마한 금액은 그들을 옥죄었다. 자유를 얻는 댓가는 너무나 가혹했다. 세월이 흘러도 그들의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지정학적 위치도 그들에게는 불리했다. 미국은 그들을 가만히 놔 두지 않았다. 쿠바와 근접해 있는 아이티가 강대국의 힘의 논리에 희생양이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세계화의 바람은 그들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쌀 개방은 그들의 농업 기반을 뿌리부터 흔들었고 국영기업의 민영화로 사람들은 직업을 잃었다. 무분별한 벌목은 가뭄을 가지고 왔고 농사는 커녕 먹고 마실 물조차 구하기 힘든 처지가 되었다.
"......그들은 우리에게 거저 주는 것이 아니라 빌려 주는 것입니다. 자선행위가 아니라 사업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보내주는 원조는 인도적 차원의 '순수'가 아니다. 준 만큼 아니 그 이상의 대가를 지불해야 했다. 아리스티드는 그들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제 3의 길을 가야한다고 말한다. "우리들이 분노와 좌절, 자포자기를 폭력으로 분출하는 것보다 평화를 위해 집단적으로 결집하도록 해 주십시오. 체념하면서 죽는 방법과 폭력적 폭발을 통해 죽는 방법,이 두가지 죽음사이에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집단적 결집이 바로 제 3의 길입니다. 이것은 인간 에너지의 어쩔 수 없는 집중입니다.우리에게 돈은 충분하지 않지만 사람은 충분합니다. 우리가 찾아 나서고 있는 제 3의 길은 새로운 무엇이 아닙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결집시킬수 있는 풍부한 경헙한 지식, 기술과 에너지, 그리고 힘이 존재합니다........"
그는 민주주의를 담보로 종속경제가 되는 것을 경계한다. 민주주의 복원한다는 목표때문에 다시 한번 우리의 미래를 저당 잡히게 만들수도 있는 경제 계획에 동의할 수는 없다고 잘라 말한다. 그는 '존엄한 가난'을 이야기한다. 그들 스스로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다.막대한 원조가 들어 온다한들 가난한 아이티 국민들에게는 큰 혜택이 없다. 소수 지배층만이 부를 누리고 축적할 뿐이다. 그들은 가난을 경영하기를 원한다.
"뱃 속에 평화가 없다면, 머릿 속에도 평화는 없다. 경제적 참여가 없는 정치적 참여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아이티의 홀로서기는 계란으로 바위치기일지도 모른다. 작고 보잘 것 없는 나라는 스스로 사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는 것이 세계화의 현실이니 말이다.
마지막 아홉번째 편지에서 그는 미래의 아이티를 말한다. 사람들이 더 이상 비참하게 살지 않아도 되고 존엄한 가난을 지킬 수 있는 나라, 사회적 차별을 없애고 국가적 논쟁에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나라, 15퍼센트가 아니라 85퍼센트가 읽고 쓸 수 있고, 토종 돼지 크리올을 마음껏 기를수 있는 나라, 아이들이 배부르게 먹을 수 있고 누구나 학교에 갈 수 있는 나라, 그들이 희망하는 미래의 모습은 허황되거나 거창하지 않다. 작고 소박하다. 하지만 그 속에는 모든 것이 담겨 있다. 전 세계가 바라는 자유와 평등의 민주주의 이념이 그 곳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들의 희망은 우리의 희망이기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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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난, 휴머니즘, 존엄, 삶
글을 모르는 아이티의 사람들을 위해서 대신 쓴 아홉 통의 편지라고 소개하고 있는 이 책은 아이티의 대통령이었던 아리스티드의 저서이다. 물론 지금도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고 있지 못하지만 누구보다도 아이티의 상황을 잘 알고 있고 마음으로 아파하는 이이다. 다른 모든 상황을 벗어나서 가난하더라도 존엄한 가난이었으면 좋겠다는 그의 바램은 전 세계에 만연해 있는 세계화에 의해 쉽사리 이루어지지 않지만 이런 상황을 하나씩 알리고 포기하지 않고 대안을 만들려 노력하는 모습은 언젠가 결국 좋은 결과가 될 거라 생각한다. 우리가 그토록 좋다고 배웠던 세계화와 미국이 세계 최초의 흑인 공화국이었던 아이티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알 수 있었으며 자유무역, 시장경제, 자선이라는 것들의 불합리한 결과를 생생하게 볼 수 있다. 가난에 대한 공부에 길이 되어주는 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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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제 3세계라는 나라들을 바라보는 입장에서 미안함을 느끼거나 응원을 하는 것도 이제는 무척 민망한 일이다. 결론적으로 변한 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나마 보여지는 긍정적인 작은변화들은 언제나 외부에서의 지원이 아니라 내부에서의 처절한 저항에서 기인했다. 대체, 이러한 류의 책을 읽고 마음아파하고 안타까워하는 일은 먹고살며 사유하는데 아무런 불편이 없는 입장에서 무슨 의미를 지닌단 말인가! 저자의 편지가 말하는 아이티의 현실은 강대국들이 약소국들을 어떻게 점령하고 관리하고 식민지화시키는지를 전형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내부의 기득권력이 자신의 힘을 유지하기 위해 인민을 다루는 전형도 보여준다. 어려울 것이 없다. 기득권은 강대국 외세세력을 등에 진 채 내부의 부를 독식하고, 약소국의 식민지화에 눈독을 들이는 강대국은 약소국의 기득세력을 매수하여 매우 정교한 체계로 자신들에 유리한 산업환경을 만들어놓는다. 단지 마구잡이로 빼앗아가는 것이 아닌, 자신들의 손이 필요할 수 밖에 없는 환경으로의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는 군사력으로 억압하던 20세기 초반의 식민지 시절보다 무척 정교해진 점령의 방법이라는 점에서 특징적이다. 동시에 이런 수탈과 억압의 구조를 유지하는 가장 기본적 틀은 '인민의 무지와 문맹'이라는 매우 중요한 시사적 특징이 존재한다. 그래서 아리스티드가 벌이는 문맹퇴치와 교육사업은 어떤 시선에서는 우리나라 개화기의 문맹퇴치운동을 떠올리게 하기도 한다. 21세기의 발전했다는 세상에 그들이 요구하는 것은 존엄한 가난이다. 모든 것을 빼앗기고 아리스티드의 이름마저도 발설하는 것을 허용치 않는 억압의 암담함 속에서 그들이 요구하는 최소한일 것이다. 인민의 저항은 언제나 기본에서 시작한다. 그들의 존엄함과 폭력에 대항하는 비폭력 저항으로 행동의 정당성이 존중받기를 원한다. 폭력과 억압의 논리를 정당화하는 기득세력 앞에서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인가. 하지만, 역사속의 모든 곳에서 인민의 저항은 진실에의 앎과 함께 존엄의 요구, 비폭력으로 시작하였고 수많은 희생이라는 아픈 댓가를 치른 다음에야 작은 변화라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그러니까 이 책은, 그런 저항을 이끄는 아이티의 신부이자 전 대통령이기도 했던 아리스티드의 전 세계 인민들에 보내는 나직한 호소인 것이다. 다시 민망함으로 돌아간다. 21세기의 발전했다는 세상에 내가 풍요를 바탕으로 존재하는 것이 간접적으로는 80%에 육박하는 세계인민의 가난에 기인한다는 사실, 그리고 이런 구조에 어떤 모습으로든 간접적인 기여를 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내가 이런 현실의 변화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찾아보기조차 어려운 만큼 복잡해서 무기력해질 수 밖에 없다는 사실에 대한 민망함 말이다. 내가 속한 사회를 바라보면서 내부의 문제에 골몰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이런 전 지구적 구조에 대한 민망함을 간직하고 의식하기만 하는 일은 언제나 좀 더 구체적인 고민으로 변화할 수 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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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휴머니즘 - 존엄한 가난에 부치는 아홉 통의 편지- 장 베르트랑 아리스티드
서반구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식민지 국가 중 가장 먼저 독립운동을 벌여 독립전쟁의 댓가를 프랑스에 지불함으로써 한 없이 가난해졌지만 자유와 독립의 존엄성을 아는 카리브의 작은 나라 아이티. 그리고 그 나라의 대통령이었던 사제 아리스티드가 세상사람들에게 쓴 잔잔하지만 사랑과 존엄성이 가득한 아홉 통의 편지. 인류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도 충분한 식량을 생산 하고 있음에도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들이 가장 짧은 시간안에 죽어 가는 세상에 대해 한없는 연민과 반성을 각성시키는 짧지만 감동적인 그러나 결코 동정을 구하지 않는 글이다. 먼저 “상상력의 위기가 너무나 깉은 탓에 이운만이 유일한 가치의 척도가 되어 버려 오로지 경제적 성장만이인류의 진보를 측정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되어 버린 이 세계, 세계 인구의 10%에 불과한 사람들이 대부분의 부를 소유하고 30억 인구가 절대 빈곤 상태에서 살아가는 이 세계에서 아직 이런 비참한 상태를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일상의 안락에 젖어 있는 나같은 사람이 꼭 읽어두어야 할 책이다. 편지는 이렇게 현재 세상의 실태를 간단명료하게 설명하는 것으로 시작하고, 다음으로는 아이티의 농업이 붕괴하게 된 원인을 짧지만 인상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경제적으로 자기 방어 능력이 전혀 없고 가난하게 근근하게 살아나가는 아이티 국민들에게 “세계화”라는 그럴 듯한 명분이 스며들어 그 땅의 토종 돼지(크리올 돼지)를 멸종 시키는 길지 않는 기간을 정확히 묘사하는 부분은 우리의 한미 FTA 협정 사태의 진짜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아 슬프기까지 했다. 우리의 현실이 1980년대 아이티에서 일어난 일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30년이란 세월이 지났음에도 변함이 없다. 아이티 농업의 모습은 곧 우리 농업의 모습이다. 다만 경제 규모가 다를 뿐, 진행 속도가 다를 뿐, 아이티는 곧 우리나라였다. 그러나 아이티는 우리 보다 앞선 나라다. 먼저 고통을 겪어내고 그 질곡 속에서 인간적인 생존 방법을 모색하고 대안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우리보다 앞서있는 나라다. 현재 우리보다 문맹률이 떨어진다고, GNP가 턱없이 낮다고, 비민주적인 쿠데타로 날이 새고 지는 날이라고 해서 이 작은 나라를 무시해서는 안된다. 작은 나라인 만큼, 시장을 우선시 하는 체제에서 버림받은 나라로 원치 않았지만 생존과 죽음의 양자택일을 처절하게 강요당하는 상황에서 온 국민의 대동단결을 이뤄내 양자택일이 아닌 제3의 생존의 방식을 모색하는 해 낸 나라로서 우리는 아이티의 전철을 꼼꼼히 연구하고 학습해야 한다. 인간의 존엄성을 잃지 않는 방식으로 가난을 견뎌나가는 이들은 지구화의 결과를 몸소 겪어낸 산 증인이다. 온 몸이 생처투성이지만 그들은 경험을 집단적인 기억으로 간직한 우리들의 확실한 교사들이다. 이들의 절규를 등한시하는 자만에 빠져 있을 일이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