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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물과 바람이 소수자였습니다. 처음에는 새만금의 조개와 천성산의 도롱뇽만이 소수자였습니다. 처음에는 늙은 농부와 어부들만이 소수자였습니다. 처음에는 장애인과 비정규직, 여성, 청소년들만이 소수자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만물이 소수자입니다. 자본과 권력의 횡포 앞에서 모든 생명들이 위험에 빠졌음을 실감합니다. 지난해 블로그에 '철학책 추천해주세요' 라는 글을 올렸고, 솔직히 예상치도 못하게 엄청난 책을 소개 받았다. 동안 나에겐 재미없고 죽은 지식 논하기에 다름 아니던 철학. 왜 문득 철학이 필요해 라는 생뚱맞은 목마름으로 헛물을 들이키게 되었을까? 세상이든 정치 경제든 늘 내 뜻대로 놀아난(?)적은 없었고 늘 내편이어서 고맙달까 따뜻함을 느껴본 적도 새삼 없었음에도 지난해 광우병 촛불집회를 시작으로 대한민국을 도화지로 그려지는 그림들이 그나마 이놈(?)의 세상에 어떻게든 발붙이고 살아보겠다고 아등바등 애면글면 용을 쓰는 사람들을 하찮은 갈잎처럼 내동댕이치는 모습을 목도하였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주의주장을 소신껏 자유롭게 펼치려는 사람들에 빨간 페인트를 뿌려놓고 너희는 나와 달라 그래서 너희는 틀리다고 즉, “모든 나와 다름은 틀림이다”라고 규정지어버리는 포스트 소피스트들이 난동하는 사회가 어느 날 되어버렸다는 때늦은 자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고병권은 니체나! 연구하는 학자라고 만 알고 있었다. 고미숙의 저작 몇 권을 접하면서 제도권 밖 <연구공간 수유+너머>에서 고미숙씨 등과 함께 세상을 바라보는 공부하는 사람 정도로 정보 몇 개를 더 수집한 정도였다가, 올 1월 제주올레를 걷기 위해 모인 사람들과 올레에 오르기 전 책교환 때 이 책을 집어와 올레를 음미하며 한달음에 읽어 내렸고, 블로그 철학책 추천책으로 이 책을 올린 내 혜안을 혼자 대견해 하기도 했다^^; 홈 패인 차별의 공간에서 우리 모두는 장애인이고, 시민권이 거부되는 곳에서 우리 모두는 이주노동자이며, 삶이 불안정한 곳에서 우리 모두는 비정규직 노동자이고, 삶의 터전을 잃게 된 곳에서 우리 모두는 농민이며, 생명의 위협을 받는 곳에서 우리 모두는 새만금의 조개입니다. 그는 진정한 자유를 위해서는 굳지 말고 깨어 있어야 한다고 했다. 무엇보다도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할 잠재력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나와 다른 것은 틀려먹은 짓이 아니라 오히려 나를 더욱 풍성하게 해주는 가치라는 것을, 나를 더욱 자유롭게 해줄 진리일수도 있다는 것을 “표현의 자유”를 위해 자신의 불명예조차도 마다하지않고 굳이 자신의 철학과 전혀 다른 화살표 저쪽, 자신의 색깔과 한참 반대되는 사람의 구명을 위해서조차 서명했던 나의 위대한 스승 촘스키를 논하지 않더라도 나는 말하고 싶다.
다름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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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 패인차별의 공간에서 우리 모두는 장애인이고 시민권이 거부되는 곳에서 우리 모두는 이주노동자이며 생명의 위협을 받는 곳에서 우리 모두는 새만금의 조개입니다."
며칠전 선배와 전화통화를 했다.나 보다 여러가지면서 여유롭게 살 수 있는 위치임에도 불구하고,여유가 없다는 하소연을 들었다.예전같으면 반론의 말을 했겠지만 부메랑처럼 돌아오는 답변을 알기때문에 포기했다. 그렇지만 생각한다.왜 그렇게 '성공'이란 것만을 향해 숨차게 달리려 하는지... 시민권이 없는 곳에선 이주노동자가 될 수 밖에 없고,광우병 소를 지켜내지 못한다면 우리 모두는 새만금의 조개와 다를 것이 없는데 말이다.그런데 그들은 그런 악조건 속에서 자신들은 늘 예외가 될 수 있다고 믿는 것 같다.그래서 아이들에게 공부를 강조하는 것은 아닐지..그런 생각을 하다보면 아찔한 마음이 들게된다. 그런 내 마음에 자극을 주기위해서라도 <고추장,책으로 세상을 말하다>란 책은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당장의 도움은 줄 수 없을지라도 세상엔 소수자들도 엄연히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하므로...
책은 크게'책 속으로'와'세상 속으로'로 구분되어 있다.책 속으로의 이야기만 있었다면 좀 힘들었을텐데,세상 속으로의 이야기가 있어,조금은 수월했음을 고백한다. 세상 속으로의 이야기 속엔 소수자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뉴스에서도 신문에서도 크게 관심을 두지 않으면 다루어 주지 않는 이야기들을 책을 통해 만나게 해 준다. 세상 속으로의 이야기는 '사실'이다. 허구도 아니며,저자가 독자를 향해 자신의 생각들을 강요하지도 않는다.사실을 이야기 하고 느낌으로 마주할 질문들은 책을 읽는 독자들의 몫이었다.
이 책은 여우와꼬리님방에 철학책 추천리스트로 있었던 책이었다.그 중에 조금은 어려워(?)보이지 않는 책부터 읽어 볼 생각으로 읽게 된 책이다.결론적으로 쉽게 그리고 편하게 읽을 책은 아니었다.그러나 적어도 이 책을 왜 읽어야 하는가에 대해선 말 할 수 있을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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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공간 수유 + 너머> 추장 고병권 씨. 고추장께서 여기저기 기고한 글이 모여 책이된 <고추장, 책으로 세상을 말하다>. 읽어봐야지 읽어봐야지 벼르고 있다가 이제야 읽게 된 이 책. 고추장님의 생각과 생활이, 공부와 사유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책이다. 책을 읽는 동안에는 내 생각까지 좌지우지 하셨던 이 분. 쉽고, 즐겁지만 전혀 가볍지 않은 이 책은 많은 생각을 던져주는 책이다.
베르그손이 말하는 자유는 행위 이전이나 이후가 아닌, 행위 자체의 독특한 색깔이다. 하지만, 우리는 자유라는 말, 그 행위 자체를 깨닫지 못할 때가 있다. 그게 올바른 자유인지 아닌지도 모른 채 '자유'라고 말한다. '자유'를 제대로 깨닫지 못하면서, 기형적인 많은 현상이 일어난 것은 아닐까? 공기처럼 소중하지만, 소중하다고 인식하지 못하는 자유라는 기본을 논의하며 하나 하나 우리의 모습을 파헤쳐 간다. 이후 전개되는 1부의 주제들은 2부를 밀도 있게 이해하기 위해서 필요하다. 2부의 이야기들은 모두 1부의 주제들 안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들이고, 1부에서 말했던 고추장님의 생각들은 2부의 사회적 현상, 사건들을 바라보는 시각과 사유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한다.
모든 사회적 현상들은 본질적으로 인권이랑 얽혀 있다. 인권을 생각할 때 벌어지는 싸움. 국가라는 거대한 권력 조직은 권력 세력과 국민들을 사이에 두고 인권 싸움을 벌인다. 겉으로는 인권을 잘 지켜주고 있는 듯 탈을 쓰고 있지만, 결국엔 힘없는 소수의 인권을 박탈하고, 소수의 힘있는 인권(?)을 탐욕스러운 방법으로 지켜준다. 그것은 국가라는 상부조직에서 권력을 가진 자들이 힘있는 소수이기 때문이 아닐까?
농민이 외면 당하는 세상, 농민을 외면하는 국가, 더 큰 이익을 위해서라고 그게 합리적이라고 말하는 권력을 가진 사람들, 학벌이 최고인 사회, 학연과 지연으로 굴러가는 사회, 박탈감을 느끼게 하는 순간들. 과연 우리는 이곳에서 자유롭다고 말할 수 있을까?
지식인은 비대해졌고, 기형적으로 탄생되기 시작했다. 고소득층 자녀들이, 강남 자녀들이 명문대에 가는 비율이 비이상적으로 높아졌고, 그 명문대는 미국 대학의 학부가 되어가고 있다. 미국의 대학에서 박사가 되어 돌아온 소위 지식인들은 미국식으로 아이들을 가르친다. 사유하지 않고, 흡수하기만 하고 돌아오지 않은 것이다. 성찰하지 않고, 입력된 대로 내뱉는 이들 속에서 복제되어 가는 지식인들을 과연 우리가 생각하는 지식인의 개념과 의미로 보듬어줄 수 있을까? 많이 배웠다고 지식인일까? 교육과 지식이라고 포장된 욕심과 탐욕이 '지식인'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수치스러움만 쌓아가고 있다. 그 반성, 분명 필요한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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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장, 책으로 세상을 말하다>라는 제목을 처음 보았을 때, 고추로 담은 장과 관련된 책인줄 알았다. 고추장으로 세상을 어떻게 말하지? 라는 의아한 생각으로 책을 보았었는데, 저자의 성에 부족사회의 추장이 결합된 단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대표라는 직함대신에 부족사회의 명예직이자 권력을 늘 가지고 있지 않았던 추장이란 단어를 좋아하는 저자가 소수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의 모습과 그가 읽은 책에 대한 소개가 2부로 나뉘어 실려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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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그러니까 10년도 더 전에 내가 하던 말이 있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서 자기가 일한 만큼 얻어 욕심 부리지 않고 그만큼만 쓰며 살고 싶다." 잉여생산물이란 것이 생겨나지 않도록 필요하면 노동하고 그 댓가를 얻어 만족하며 살고 싶었다. 그럴려면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아도 생계에 전혀 지장이 없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이 되느냐, 되지 않느냐'가 중요하다. 돈이 되는 직업이 있고 돈이 되지 않는 직업이 있다. 그리하여 자신의 진로를 돈의 가치로 따져 결정을 한다. 나 또한 그러했다. 꿈은 어디까지나 실현 불가능한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 꿈을 실천하는 사람이 있다. 자기가 하고 싶은 공부로 살아가고 삶으로 공부하는 길을 찾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다. 말로만 듣던 <연구공간 수유+너머>의 '연구원'들이다. 저자도 그곳에 있는 한 사람이다. '돈없이 살 궁리 좀 해보자'며 철저히 반자본주의적인 말들을 이 책 안에 쏟아 놓았다. 그 중 '기술'이란 제목의 글과 '농민의 죽음1.2'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 글들에는 자본주의 사회의 문제점을 정확하게 지적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기술> [도대체 개발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왜 잘 살기 위해 사용하는 우리의 기술이 우리의 죽음을 재촉하는가. 기술과 좋은 관계를 맺는 것은 불가능한가.] 하며 하이데거의 이론을 소개한다. 하이데거는 고대 그리스인들의 '4원인설'을 소개하면서 "여기서 원인이란 함께 책임짐을 의미한다."며 제작이란 함께 참여할 원인들을 모으는 일로 무언가 새로운 것을 '밖으로 끌어내오는'활동이라고 보았다. 저자는 여기서 '함께 참여함'이 중요하다고 한다. 현대의 기술은 '참여를 통한 드러냄'이 아니라, 자연에게 빨리 내놓으라는 '닦달'과 같다고 말한다. 현대인은 자연을 들볶음으로 해서 결국은 자신을 들볶는다고 한다. 즉, 대규모 환경 재앙뿐만 아니라 제작 과정 속에서 제작자인 인간도 스스로 하나의 부속품이 되고 마는 문제들이 생겨나고 있다. 우리는 살기 위해 죽음을 향하고 있는 것이다.
<농민의 죽음1,2> 1부에서는 현재 농민들의 실태를 지적하고 있다. 농민은 한국 사회에서 한 개인이 아닌 한 범주로 죽어가고 있다고 한다. 노인들이나 빈민들은 살지언정 농민은 살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살아도 거대 곡물기업이나 상인에게 고용된 농업노동자들일 것이라고 한다. 노동자처럼 생산수단을 완전히 잃은 존재도 아닌, 자본가 계급처럼 자본의 순환을 통해 이윤을 축적하는 계급도 아닌 모호한 존재는 더이상 존재할 수 없다고 한다. 더이상은 소규모 농업생산이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한국 농민들은 지금 대지로부터 추방되어 유랑하고 있는 것이다. 2부에서 저자는 전북 부안에서 서울까지 했던 천리 길 행진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있다. 90년대 들어 시작된 연이은 개방으로 농촌은 이미 경제적으로 죽어 있다. 이와 더불어 마을마저 사라져가고 있는 농촌은 사회적으로도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이렇게 허무한 공간에서 사람들이 '혹시나'하고 저지르는 게 대규모 개발이다. 땅을 넓혀 공장이 들어온다면 공장이 들어오지 않으면 인부들이라도 들어온다면... 그런 마음으로 농민들은 새만금이나 금강 하구 개발 공사를 지지하였다고 한다. 그들에게는 개발로 인해 잃게 될 미래가 보이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고 저자는 이야기하고 있다. 지푸라기 하나라도 잡고 싶은 그들의 마음조차 이용하는 게 자본주의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다니엘 벤사이드의 [저항]에 나오는 "최고의 저항은 죽음에 대한 저항이다."란 말을 인용한다. 맞는 말이다. 살기 위해 죽음으로 성큼 성큼 다가가야 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최고의 저항은 죽음에 대한 저항이다. 죽음으로 행진하는 것을 막는 방법. 그 시작이 저자가 이야기하는 '돈 없이 살 궁리'를 하는 것이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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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람은 다 자신만의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해, 그들만의 이상향을 그리곤 하는데 (물론, 세상이 더 나아지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도 있다.) 저자 고병권의 이상적인 사회를 들어보자. 고추장은 고병권의 지위를 가르킨다. 그가 속한 집단에서 그의 지위는 추장이다. 그래서 그의 호칭은 고추장. 추장의 의미는 위계적인 서열과는 거리가 다르다. 집단에서 추장은 하나의 도구다. 현대 우리사회가 갖는 지위에 대한 욕구와는 다르게 추장은 권력없는 도구이다. 그의 모든행위는 집단의 지배아래 놓이며, 집단을 위해서만 행동해야 한다. 그가 속한 집단을 통해, 우리는 그의 성향을 느낄 수 있다. 그가 속한 정치적 지향은 신좌파라고 할 수 있다. 구좌파의 정치투쟁보다는 그들은 다양한 영역에서 투쟁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가 세상을 보는 눈은 날카롭고, 감성적이다. 그의 노모가 많은 지혜를 갖고 있더라도, 세상은 그의노모를 초졸로 기억한다고 했을때, 뭔가 울컥한 감정이 들었다. 우리세상은 개인을 인식할 때, 그의 학벌이나 재력으로 그를 인식하지 않은가? 그것이 인간의 본질이라고 할 수 없는데도 그렇지 않은가? 하지만, 우리는 이를 너무나 당연시 여기며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본다. 개인은 재력과 학벌이라느 껍데기의 뒤에서만 존재하는데, 이는 껍데기의 뒤에 있는 개인에게나, 껍데기를 갖지못한 개인에게나, 너무나 아픈 기억만을 준다. 우리사회는 특히나 학벌에 대한 지나친 편견이 존재하는데, 우리는 이 편견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오히려 자기최면을 걸어버리는 경우가 많은것을 보았다. 고추장의 이런 분석들에 대한 단상을 언급하자면, 개인, 사회 의식적인 차원에서 비판에는 유효하지만, 구조적인 차원에서 문제제기는 미비하다고 느낀다. 실제로, 학력, 학벌로 사람을 평가하는 사회 분위기에 대한, 어떤 대안점을 제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책에는 좌파적 감성을 느끼기에는 훌륭한 책으로 보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