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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혹, 전염, 그리고 중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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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혹, 전염, 그리고 중독                   - 『고추장, 책으로 세상을 말하다』를 읽고                                                                                박혜숙  1.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고추장  오래전 인터넷 글쓰기 모임에서 만난 분이 들려준 이야기가 생각난다.  만화 스토리 작가로 제법 성공한 그 분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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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혹, 전염, 그리고 중독

                  - 『고추장, 책으로 세상을 말하다』를 읽고



                                                                               박혜숙



 1.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고추장

 오래전 인터넷 글쓰기 모임에서 만난 분이 들려준 이야기가 생각난다.

 만화 스토리 작가로 제법 성공한 그 분에게도 무명 시절의 아픔은 절절했단다. 일을 주는 곳은 없고, 글에 목을 매달았으니 다른 일을 하고 싶지는 않고 참으로 힘겨운 시간들을 견뎌내고 있었단다. 그러던 어느 날, 급기야 쌀까지 떨어졌다. 열흘 넘게 밥 구경을 못했다. 도리가 없었다. 엄청나게 결혼을 반대했던, 그래서 발길을 끊었던 처갓집을 찾아갈 수밖에. 차마 떨어지지 않는 입을 떼자, 장모는 선심 쓰듯 20kg 쌀 한 포대를 들여놔 주었다. 당장 밥을 했다. 헌데 집에 있는 반찬이라고는 달랑 고추장 하나. 양푼 가득 밥을 퍼 고추장만 넣고 비볐다. 그런데 그 맛이 기가 막히더란다.

 세상에 고추장이 그렇게 맛있는 줄 정말 몰랐다고, 고추장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음식이라고 입에 거품을 물던 그 분이 생각난다.

 벌써 십 오륙년이 지나간 그 이야기가, 아직도 고추장을 볼 때마다 떠오르는 건 아마 한 편의 그림 탓일 게다. 만삭의 아내, 손에 잡히지 않는 꿈 때문에 왜소해질 대로 왜소해진 한 남자, 그들이 마주 앉아 미친 듯이 입에 퍼 넣던 빨간 비빔밥. 하염없이 흘러내리던 눈물과 콧물. 뭐, 이런 것. 

 “참 지독히도 맵더라. 그런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 지독하고, 맵고 찰진 고추장, 삶은 혹 그런 게 아닐까?”   

   

2. 순식간에, 기습적으로 

 고추장의 강의를 들은 사람들은 말하지 않아도 알리라. 그의 사유가, 그의 언어가 얼마나 매혹적인지. 숨 쉴 겨를도 주지 않고, 정말 순식간에, 마술처럼 그는 우리를 기습한다. 마치 초강력 바이러스처럼. 헌데 그 놈의 바이러스, 참 생명력도 질기다. 우리 몸의 한 구석을 턱하니 차지하고 앉아, 자꾸만 제 새끼를 길러낸다. 마구 요동을 친다. 도저히 그냥 앉아 있을 수 없도록.

 이번 책(『고추장, 책으로 세상을 말하다』)도 마찬가지. 정말이지 너무도 많은 강력 바이러스를 함유하고 있다.

 고추장표 바이러스는 내 안에 침투해, 나를 낱낱이 분해한다. 내가 가지고 있던 가치들을 모조리 깨부순다. 내가 당연시해 왔던 개념을 가차 없이 전복시킨다.

 “오직 대중 스스로가 모든 일에 ‘왕’이 되어야, 어떤 일에도 ‘왕’의 개입을 차단할 수 있다(11쪽).”며 때로 강한 지도자를 열망하는, 그 뒤에 숨어 조금은 편해 보고자 하는 내 어리석음을 지탄한다.

 “진정한 자유를 위해서는 굳지 않고 깨어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할 잠재력을 가져야 한다.(21쪽)”면서 자유는 선택이 아닌 능력일진대, “너, 지금 자유를 말할 수 있느냐?”고 되받아친다.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은 배우지 않고도 최선의 삶을 산다. 그러나 인간은 살아있으면서도 사는 게 서툴다. 잘 살아보려고 하는 짓이 대개는 제 무덤을 파는 짓(23쪽)”이라면서 사는 게 참 힘들다는 내 엄살을 일시에 무너뜨린다. 자로 잰 듯 그는 잘라 말한다. “네가 지금 원하는 게 무어냐? 잘 살려는 것이냐? 너, 최선을 다해 살고 있느냐?”

 마음이 없는 게 아니야, 내 사는 게 너무 바빠서, 주위를 살필 겨를이 없는 거야. 변명에 급급한 내게, “자유를 최고로 여긴다는 사회에 살면서 온갖 자유를 옭아매고 있는 국가보안법에 아무런 불편도 느끼지 못한다면, 그리고 그 법 아래서 정말로 자유롭다고 믿는다면, 확신컨대 당신은 간첩이 아닐지는 몰라도 자유를 위해 한 번도 도약해 본 적이 없는 사람(188쪽)”이라며 비수를 꽂는다. 잘 알잖아. 힘이 없는데, 무서워 죽겠는데, 어떻게 싸우니? 라며 뒷걸음질만 치는 내게, “공포로 한없이 웅크러들 때 네(원문에는 ‘내’) 안에서 악마가 자라난다(200쪽).”고 경고한다.

 고추장표 바이러스는 참으로 준열하고, 날카롭고, 예리하다. 아마도 그가 지나간 자리는 오래 몸살을 앓을 것이다. 그러나 지독한 몸살을 앓고 남, 어쩜 조금은 자유로운 신체를 갖게 되지는 않을까? 어쩌면 “건강한 신체와 멀쩡한 정신(26쪽)”을 가지고 있음, 그것이 행복이라는 그의 말을 빽 삼아, 무지개를 찾아 헤매는 여행과는 과감하게 이별을 고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쁜 것, 좋은 것을 가르던 단순무식 이분법에서 과감히 벗어나 약제사의 실천적 지혜를 배우기 위해, 약제사 실천 강령을 달달 외울지도 모르겠다. “오직 제 스스로의 힘만으로 뭔가를 산출하(63쪽)”기 위해,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 만발하는 꽃(63쪽)’이 되기 위해 아침마다 눈곱 낀 눈을 비비며 스스로 불을 지필지도 모르겠다. 전사처럼 즐기면서 행군하는 법을 익힐지도 모르겠다. “끊임없는 물음과 시도로 점철된 치열한 기다림의 실천을 통해 번개를 맞듯 구원의 시간을 만날 것(43쪽)”이라는 희망을 품고.  


 3. 중독, 그 황홀한 체험을 향해   

 그러나 쬐끔 솔직하자면, 고추장표 바이러스가 내 몸 안에서 일으킬 내분은 겁도 난다. 아찔하다. 얼마나 혹독할까? 얼마나 신랄할까?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주는 유혹은 너무도 매혹적이다. 고추장표 바이러스에 중독된다는 상상은 나를 황홀하게 한다. 이는 비단 그가 열어주는 사유가 넓고 깊어서만은 아니다. 그가 끊임없이 자신의 배치를 바꿀 강력한 힘을 가져야 한다며 행복한 주문을 넣어주기 때문도 아니다. 그가 발화하는 세상을 향한 외침 곳곳에서,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 한 남자의 모습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천재와 전사, 실천하는 지식인의 너울을 훌쩍 넘어선 그 모습이 내겐 훨씬 더 매력적이다.  

  “‘인간은 행복조차 배워야 하는 짐승’이라는 니체의 경멸에 ‘행복을 배우려는 짐승은 그래도 희망적이지 않은가.’”라고 딴지를 걸거나, 아내와의 약속을 깜빡 잊고 난 뒤 ‘오늘 일이 많았던 거야. 나는 기억을 담는 통이 아니라구.(36쪽)’라며 자신을 위무하는 모습에, 거기에 멈추지 않고 ‘오늘도 자신의 기억력 상실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을 많은 사람들, 나처럼 건망증에 시달리는 그 사람들에게 작은 위안이라도 될까’ 싶어 니체의 ‘기억과 망각’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모습에 나는 훨씬 더 뭉클해진다. 애면글면 아들의 박사 학위 논문 심사가 무사히 끝나기를 기다리던 어머니 가슴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슬픈 괴물’을 통해 학력이 차별의 근거가 되는 사회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되물을 때, 나는 더 오래 고개를 끄덕인다. 어린 시절 자신 앞에 종종 사탕을 던지던 외할머니의 이야기를 통해 ‘선물’에 대한 이야길 꺼낼 때, 내 가슴은 훨씬 더 얼얼해진다.   


  할머니는 내게 사탕을 던지실 때마다 이렇게 말씀하시곤 했다.

 “이렇게 깡깡한(단단한) 걸 누구 먹으라고 만든다냐! 고얀 놈들!”

  어린 나는 할머니가 참 바보스럽다고 생각했다.

  “드시지도 못할 걸 사놓고는 괜히 맛있는 사탕 만드는 사람 탓하시긴. 한두 번도 아니고.”

  매번 횡재했다고 생각한 나는 할머니가 버리듯이 던진 사탕을 잘도 받아먹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여기에는 진정 놀라운 선물의 기술이 들어 있다. 받는 자에게 아무런 채무도 안기지 않으려고 하는, 받는 자를 진정으로 배려하는 선물의 기술.(79쪽)


 그가 낮은 어조로 최옥란의 이야기를 꺼낼 때 내 가슴은 더욱 떨린다. 파주 미군기지촌 주변 빈민의 딸이었던, 초등학교 1학년까지밖에 정규교육을 받지 못했던, 뇌성마비 1급 장애인이었던, 편모슬하에서 자라 양육권을 빼앗긴 이혼녀였던, 정부로부터 생계비를 지급받는 기초생활보장제 수급자였던, 어느 겨울 자신의 몸을 스스로 던질 수밖에 없었던 최옥란의 죽음을 두고 그가 “최옥란이 죽었다고 하는 그 어떤 봄날을 나는 알지 못합니다. 다만 5년 전 어느 겨울 날, 아무것도 가진 게 없었던 한 투사가 자신의 이름과 말과 행동으로 우리 미래의 가능성을 걸고 싸움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사실만을 알고 있습니다.(115쪽)”라고 말할 때 내 눈은 더욱 침침해진다. 

 계화도 어민에게서 바닷물이 막혀 목이 타들어간 뻘 속 조개들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생명에게 웃음을’이라는 구호를 적었다는 일화에서 나는 더 많이 감동한다. 

 초강력 고추장표 바이러스가 더 오래 더 깊이 내 맘을, 내 영혼을 교란시켜 주기를 기대한다.

 해서 아직도 우리 주위엔 자기 몸을 사슬로 묶고 달리는 열차를 세우는 것으로 자기 목소리를 대신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끊임없이 일깨우고, 그들의 꿈이 바로 우리의 꿈과 무관하지 않다고, 아니 우리 모두의 꿈이라고 각인시켜 주기를 고대한다. 

 그가 뿌린 강력한 독성이 온 몸에 퍼져, 내 스스로 내 자리를 만들게 되길, 그리하여 내 스스로 배치를 바꾸어 가길, 그로 인해 비로소 ‘우리 같이 행복해!’ 라고 외칠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이번 그의 책이 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바이러스를 유포시켰으면 좋겠다. 그들을 중독 시켰으면 좋겠다. 그들 스스로 새로운 초강력 바이러스를 생성할 힘을 키우는 촉매제가 되었으면……. 정말 좋겠다. 

        

o*****a 2007.02.11. 신고 공감 6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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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라보는 소수적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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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물과 바람이 소수자였습니다. 처음에는 새만금의 조개와 천성산의 도롱뇽만이 소수자였습니다. 처음에는 늙은 농부와 어부들만이 소수자였습니다. 처음에는 장애인과 비정규직, 여성, 청소년들만이 소수자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만물이 소수자입니다. 자본과 권력의 횡포 앞에서 모든 생명들이 위험에 빠졌음을 실감합니다. 지난해 블로그에 '철학책 추천해주세요' 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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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물과 바람이 소수자였습니다. 처음에는 새만금의 조개와 천성산의 도롱뇽만이 소수자였습니다. 처음에는 늙은 농부와 어부들만이 소수자였습니다. 처음에는 장애인과 비정규직, 여성, 청소년들만이 소수자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만물이 소수자입니다. 자본과 권력의 횡포 앞에서 모든 생명들이 위험에 빠졌음을 실감합니다.


지난해 블로그에 '철학책 추천해주세요' 라는 글을 올렸고, 솔직히 예상치도 못하게 엄청난 책을 소개 받았다. 동안 나에겐 재미없고 죽은 지식 논하기에 다름 아니던 철학. 왜 문득 철학이 필요해 라는 생뚱맞은 목마름으로 헛물을 들이키게 되었을까?


세상이든 정치 경제든 늘 내 뜻대로 놀아난(?)적은 없었고 늘 내편이어서 고맙달까 따뜻함을 느껴본 적도 새삼 없었음에도 지난해 광우병 촛불집회를 시작으로 대한민국을 도화지로 그려지는 그림들이 그나마 이놈(?)의 세상에 어떻게든 발붙이고 살아보겠다고 아등바등 애면글면 용을 쓰는 사람들을 하찮은 갈잎처럼 내동댕이치는 모습을 목도하였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주의주장을 소신껏 자유롭게 펼치려는 사람들에 빨간 페인트를 뿌려놓고 너희는 나와 달라 그래서 너희는 틀리다고 즉, “모든 나와 다름은 틀림이다”라고 규정지어버리는 포스트 소피스트들이 난동하는 사회가 어느 날 되어버렸다는 때늦은 자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고병권은 니체나! 연구하는 학자라고 만 알고 있었다. 고미숙의 저작 몇 권을 접하면서 제도권 밖 <연구공간 수유+너머>에서 고미숙씨 등과 함께 세상을 바라보는 공부하는 사람 정도로 정보 몇 개를 더 수집한 정도였다가, 올 1월 제주올레를 걷기 위해 모인 사람들과 올레에 오르기 전 책교환 때 이 책을 집어와 올레를 음미하며 한달음에 읽어 내렸고, 블로그 철학책 추천책으로 이 책을 올린 내 혜안을 혼자 대견해 하기도 했다^^;


홈 패인 차별의 공간에서 우리 모두는 장애인이고, 시민권이 거부되는 곳에서 우리 모두는 이주노동자이며, 삶이 불안정한 곳에서 우리 모두는 비정규직 노동자이고, 삶의 터전을 잃게 된 곳에서 우리 모두는 농민이며, 생명의 위협을 받는 곳에서 우리 모두는 새만금의 조개입니다.


그는 진정한 자유를 위해서는 굳지 말고 깨어 있어야 한다고 했다. 무엇보다도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할 잠재력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나와 다른 것은 틀려먹은 짓이 아니라 오히려 나를 더욱 풍성하게 해주는 가치라는 것을, 나를 더욱 자유롭게 해줄 진리일수도 있다는 것을 “표현의 자유”를 위해 자신의 불명예조차도 마다하지않고 굳이 자신의 철학과 전혀 다른 화살표 저쪽, 자신의 색깔과 한참 반대되는 사람의 구명을 위해서조차 서명했던 나의 위대한 스승 촘스키를 논하지 않더라도 나는 말하고 싶다.

 

다름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b******0 2009.02.18. 신고 공감 2 댓글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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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잘 살아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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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 패인차별의 공간에서 우리 모두는 장애인이고 시민권이 거부되는 곳에서 우리 모두는 이주노동자이며 생명의 위협을 받는 곳에서 우리 모두는 새만금의 조개입니다."   며칠전 선배와 전화통화를 했다.나 보다 여러가지면서 여유롭게 살 수 있는 위치임에도 불구하고,여유가 없다는 하소연을 들었다.예전같으면 반론의 말을 했겠지만 부메랑처럼 돌아오는 답변을 알기때문에 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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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 패인차별의 공간에서 우리 모두는 장애인이고

시민권이 거부되는 곳에서 우리 모두는 이주노동자이며

생명의 위협을 받는 곳에서 우리 모두는 새만금의 조개입니다."

 

며칠전 선배와 전화통화를 했다.나 보다 여러가지면서 여유롭게 살 수 있는 위치임에도 불구하고,여유가 없다는 하소연을 들었다.예전같으면 반론의 말을 했겠지만

부메랑처럼 돌아오는 답변을 알기때문에 포기했다.

그렇지만 생각한다.왜 그렇게 '성공'이란 것만을 향해 숨차게 달리려 하는지...

시민권이 없는 곳에선 이주노동자가 될 수 밖에 없고,광우병 소를 지켜내지 못한다면 우리 모두는 새만금의 조개와 다를 것이 없는데 말이다.그런데 그들은 그런 악조건 속에서 자신들은 늘 예외가 될 수 있다고 믿는 것 같다.그래서 아이들에게 공부를 강조하는 것은 아닐지..그런 생각을 하다보면 아찔한 마음이 들게된다.

그런 내 마음에 자극을 주기위해서라도 <고추장,책으로 세상을 말하다>란 책은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당장의 도움은 줄 수 없을지라도 세상엔 소수자들도 엄연히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하므로...

 

 책은 크게'책 속으로'와'세상 속으로'로 구분되어 있다.책 속으로의 이야기만 있었다면 좀 힘들었을텐데,세상 속으로의 이야기가 있어,조금은 수월했음을 고백한다.

세상 속으로의 이야기 속엔 소수자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뉴스에서도 신문에서도 크게 관심을 두지 않으면 다루어 주지 않는 이야기들을 책을 통해 만나게 해 준다. 세상 속으로의 이야기는 '사실'이다. 허구도 아니며,저자가 독자를 향해 자신의 생각들을 강요하지도 않는다.사실을 이야기 하고 느낌으로 마주할 질문들은 책을 읽는 독자들의 몫이었다.

 

이 책은 여우와꼬리님방에 철학책 추천리스트로 있었던 책이었다.그 중에 조금은 어려워(?)보이지 않는 책부터 읽어 볼 생각으로 읽게 된 책이다.결론적으로 쉽게 그리고 편하게 읽을 책은 아니었다.그러나 적어도 이 책을 왜 읽어야 하는가에 대해선 말 할 수 있을 것 같다.

w*******i 2009.03.21. 신고 공감 1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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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라보는 올바른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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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공간 수유 + 너머> 추장 고병권 씨. 고추장께서 여기저기 기고한 글이 모여 책이된 <고추장, 책으로 세상을 말하다>. 읽어봐야지 읽어봐야지 벼르고 있다가 이제야 읽게 된 이 책. 고추장님의 생각과 생활이, 공부와 사유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책이다. 책을 읽는 동안에는 내 생각까지 좌지우지 하셨던 이 분. 쉽고, 즐겁지만 전혀 가볍지 않은 이 책은 많은 생각을 던져주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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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공간 수유 + 너머> 추장 고병권 씨. 고추장께서 여기저기 기고한 글이 모여 책이된 <고추장, 책으로 세상을 말하다>. 읽어봐야지 읽어봐야지 벼르고 있다가 이제야 읽게 된 이 책. 고추장님의 생각과 생활이, 공부와 사유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책이다. 책을 읽는 동안에는 내 생각까지 좌지우지 하셨던 이 분. 쉽고, 즐겁지만 전혀 가볍지 않은 이 책은 많은 생각을 던져주는 책이다.
냇물에 돌을 던지면, 멀리 멀리 물이 퍼지듯 누군가의 말과 이야기와 생각이, 읽는 이에게 파장을 준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 아닐까? 고추장님은 그런 일에 너무도 능숙한 분이 아닐까 생각한다. 억지스럽지 않게 그리고 자신이 먼저 행동하면서. 행동하는 지식인, 공동체를 생각하는 지식인, 고추장님은 그런 분이다.

이 책의 1부는 우리가 논의해야 할 쟁점 키워드가 펼쳐진다. 철학자의 말을 빌어, 어떤 책의 말을 인용해 넌지시 자신의 생각을 전한다.  자유, 행복, 도덕, 기억, 역사, 사실, 여성, 기술, 화폐, 선물, 사회, 인권, 국가, 혁명. 짧은 글 안에서 느껴지는 방대한 독서량. 공부와 시간이 결합되어 만들어 놓은 산물. 그리고 2부가 펼쳐진다. 기본에 대해 이야기가 끝나자, 사회 현상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된다. 소수자의 이야기들. 장애인, 비정규직, 농민, 학벌, 교육, 지식인, 전쟁 등 그는 아픈 곳을 마구 마구 찌른다. 우리가 외면하고 사는 이야기들을 적나라하게 펼쳐 놓는다. 그 속에서 아프지 않은 자 없고, 그 안에서 반성하지 않는 자 없을 것이다. 그가 던지는 화두는 우리 모두의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인식과 사유를 하지 않은 채 힘을 가진 소수자들 뜻대로 하는 사회에 다시 한번 분노케 한다.

 

 

   
 

 진정한 자유를 위해서는 굳지 말고 깨어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할 잠재력을 가져야 한다. 자유란 선택이기보다는 능력이다. 알코올 중독자는 술을 자신의 기호라고 주장할 수 있겠지만 우리는 그의 자유가 술에 대한 예속가 무능력에서 벗어나는 데 있음을알고 있다. 코뮨이란 그래서 필요한 것이다. 그것은 나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나를 극복하도록 만든다. - 21p <자유>

 
   

 

 

베르그손이 말하는 자유는 행위 이전이나 이후가 아닌, 행위 자체의 독특한 색깔이다. 하지만, 우리는 자유라는 말, 그 행위 자체를 깨닫지 못할 때가 있다. 그게 올바른 자유인지 아닌지도 모른 채 '자유'라고 말한다. '자유'를 제대로 깨닫지 못하면서, 기형적인 많은 현상이 일어난 것은 아닐까? 공기처럼 소중하지만, 소중하다고 인식하지 못하는 자유라는 기본을 논의하며 하나 하나 우리의 모습을 파헤쳐 간다. 이후 전개되는 1부의 주제들은 2부를 밀도 있게 이해하기 위해서 필요하다. 2부의 이야기들은 모두 1부의 주제들 안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들이고, 1부에서 말했던 고추장님의 생각들은 2부의 사회적 현상, 사건들을 바라보는 시각과 사유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한다.

 

 

   
  결국 공동체 바깥에 존재하는 적나라한 인간은 현실적으로 인권을 갖고 있지 않다. 그래서 아렌트는 인권이야말로 인간이 자기 행위를 의미 있게 발휘할 수 있는 공동체를 필요로 한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인권이란 그런 공동체에 살아갈 권리, 그래서 공동체가 부여하는 권리를 가질 수 있는 권리라고 할 수 있다. 노예제가 반인권적인 것도 자유의 권리를 부인당해서라기 보다는(전시[戰時]에는 시민들도 자유를 일정하게 박탈당한다) 자유의 '권리를 가질 수 있는 권리'(right to have right), '자유를 위해 싸울 수 있는 가능성'을 배제했다는 데 있다(<전체주의의 기원>). 그렇게 보면 인권이란 동어반복이거나('권리를 가진 자들의 권리'로서 말할 때) 무의미한 것('권리 없는 자들의 권리'로 말할 때)이다.    - 92p <인권>에 대한 고추장의 독서 메모  
   

 

 

모든 사회적 현상들은 본질적으로 인권이랑 얽혀 있다. 인권을 생각할 때 벌어지는 싸움. 국가라는 거대한 권력 조직은 권력 세력과 국민들을 사이에 두고 인권 싸움을 벌인다. 겉으로는 인권을 잘 지켜주고 있는 듯 탈을 쓰고 있지만, 결국엔 힘없는 소수의 인권을 박탈하고, 소수의 힘있는 인권(?)을 탐욕스러운 방법으로 지켜준다. 그것은 국가라는 상부조직에서 권력을 가진 자들이 힘있는 소수이기 때문이 아닐까?

2부를 열자마자 시작되었던 최옥란 씨의 이야기. 마음이 아팠다. 단지 사람답게 살고 싶어 투쟁했지만, 아무도 그녀의 말에 귀기울지 않았고 아무도 알려 하지 않았다. 그녀는 결국, 우리의 무관심 속에 사그라들었다. 그녀가 요구한 것은 '최저생계비를 현실화하라'였다. 28만 원으로 한달을 살 수 있다는 국가의 단정 속에. 그녀는 28만 원으로 한달을 살아내야 했다. 그녀는 힘없는 소수자들을 대표한다는 말이 과장이 아닐 정도로 불우한 가정에서 자랐으며, 교육받지 못했으며, 신체장애를 가졌으며, 아이의 양육권을 빼앗겼으며, 이혼한 사람이며, 여성이었고, 가난한 사람이었다. 단지 사람답게 살고 싶어서 인권을 위해서 '싸우는 사람'이었다. 국가의 존재 목적이 무엇인지, 사회가 약자들을 보호하고 있는지 존재의 역할을 잘 하고 있는지 온몸으로 묻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의 이름과 요구 속에서 여러 '가난한 자들'의 이름과 요구들을 봅니다. 그리고 맑스가 '전부를 가진 자'들에 맞선 '아무것도 갖지 못한 자들'에서 미래를 찾았던 이유를 생각해봅니다. 그는 왜 미래를 그들의 것이라고 생각했을까요. 가난한 자들은 빈곤하고, 억압받고, 착취당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자체로 사회가 바뀌어야 할 이유이자 요구이고 투쟁인 것입니다. 나는 네그리와 하트가 '가난한 자'라는 모든 시대 '공통의 이름' 속에서 인간이 지닌 모든 가능성의 토대를 발견했다고 말한 것을 기억합니다. 
- 115p <최옥란을 기억하며>

 
   

 

 

농민이 외면 당하는 세상, 농민을 외면하는 국가, 더 큰 이익을 위해서라고 그게 합리적이라고 말하는 권력을 가진 사람들, 학벌이 최고인 사회, 학연과 지연으로 굴러가는 사회, 박탈감을 느끼게 하는 순간들. 과연 우리는 이곳에서 자유롭다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리가 하는 공부는 무엇일까? 이 권력 안에 속하기 위해서 발버둥 치는 공부라면 그게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남을 무시하기 위해서, 자신이 우월감을 느끼기 위해서 하는 공부라면 그것이 과연 가치가 있는 것일까? 공부를 하면서 성장한다는 것은 사유를 하고 인식을 한다는 것인데, 신성한 대학에서조차 사유와 인식과 반성과 성찰보다는 탐욕과 권력을 잡으려는 발버둥이 만연한다. 과연 이들을 지식인이라고 부르는 것이 합당한 것인가.


미네르바가 백수에 전문대를 나온 이었다고 밝혀졌을 때, 우리가 그려놓은 환상에서 동떨어진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을 때, 믿음이 불신으로 바뀌는 그 이상한 순간. 우리는 모두 마음속에 괴물 한 두마리쯤은 키우고 있는 것 같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 이 책을 읽으며, 부끄러워지는 순간. 마음이 아파오는 순간. 바로 내 안의 괴물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삶으로부터 분리된 지식인, 현장에서 떨어져 나온 지식인. 오랫동안 우리는 이것을 지식인의 존재조건인 양 말해왔다. 플라톤은 "평화롭고 한가하게 담론을 생산하는 자들"과 "물시계의 흐르는 물에 쫓기면서 언제나 긴급하게 이야기하는 자들"을 대비시켰는데, 전자만이 철학하는 자로서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삶에 쫓기는 자들은 차분히 숙고할 여유를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스쿨'(school)의 어원인 '스콜레'(schole)가 '여가'라는 뜻을 가진 것은 이와 무관치 않다. 물질적 이해로부터 떨어져 나올 수 있는 여유. 그것이 학문의 전제인 것이다.
그러나 삶에 쫓기지 않을 여유, 물질적 이해관계와 거리를 둘 수 있는 여유란 아무에게나 가능한 게 아니다. 지식인으로 살아가기 위해 갖추어야 할 '거리두기'는 사실상 특정 계층, 특정 계급 이상에게만 가능하다. 먹고사는 것이 다급한 빈곤층에서 지식인이 배출되기는 어렵다. 우리는 지식인이 물질적 이해로부터 자유롭기 때문에 계급이나 계층을 넘어 보편적 진리를 말할 수 잇다고 말하지만, 그런 지식인이 특정 계급이나 계층으로부터만 충원된다면, 그렇게 그 지식의 보편성을 믿을 수 있을까. - 155p <지식인, 그 이미지와 현실 사이에서>
 
   

 

 

지식인은 비대해졌고, 기형적으로 탄생되기 시작했다. 고소득층 자녀들이, 강남 자녀들이 명문대에 가는 비율이 비이상적으로 높아졌고, 그 명문대는 미국 대학의 학부가 되어가고 있다. 미국의 대학에서 박사가 되어 돌아온 소위 지식인들은 미국식으로 아이들을 가르친다. 사유하지 않고, 흡수하기만 하고 돌아오지 않은 것이다. 성찰하지 않고, 입력된 대로 내뱉는 이들 속에서 복제되어 가는 지식인들을 과연 우리가 생각하는 지식인의 개념과 의미로 보듬어줄 수 있을까? 많이 배웠다고 지식인일까? 교육과 지식이라고 포장된 욕심과 탐욕이 '지식인'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수치스러움만 쌓아가고 있다. 그 반성, 분명 필요한 것이다.

그가 속한 <연구공간 수유+너머>는 공부를 하는 연구원들이 만들어가는 꼬뮌이다. 그는 그곳에서 추장으로, 공부하며 공동체의 도움을 받으며 생각하고 말하는 대로 살고 있다. 용기, 그의 삶은 용기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 없이 살 궁리'를 하고, '공부다운 공부'를 하며 함께 살아가는 연구공간. 그들의 그런 노력이 있기에 안 될 것처럼 보이는 일도 되어 가는 거겠지. 고추장! 그가 바라보는 시선으로 세상을 보는 것은 불편하다. 하지만, 끊임없이 논의되고 개선되어야 하는, 그래서 이 국가에 살고 있는 모두가 '인권'을 보장받고 '자유와 행복'을 보장받으며, 올바른 '역사'를 쌓아가는데 꼭 필요한 시선이다. 신속히 사라지는 기억의 끈을 꽉 붙잡고, 이 책 안의 의미들을 외면하지 않고 똑바로 보고, 경계하며 살아가고 싶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j******e 2010.10.0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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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장, 책으로 세상을 말하다] 지식인의 책무를 다하다
"[고추장, 책으로 세상을 말하다] 지식인의 책무를 다하다" 내용보기
# 소수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한국의 사회.   국가의 시대에 추장의 마음으로 대한한국을 읽는다.       <고추장, 책으로 세상을 말하다>라는 제목을 처음 보았을 때, 고추로 담은 장과 관련된 책인줄 알았다. 고추장으로 세상을 어떻게 말하지? 라는 의아한 생각으로 책을 보았었는데, 저자의 성에 부족사회의 추장이 결합된 단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대표라는 직함대신에 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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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수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한국의 사회. 

  국가의 시대에 추장의 마음으로 대한한국을 읽는다.

 

 


  <고추장, 책으로 세상을 말하다>라는 제목을 처음 보았을 때, 고추로 담은 장과 관련된 책인줄 알았다. 고추장으로 세상을 어떻게 말하지? 라는 의아한 생각으로 책을 보았었는데, 저자의 성에 부족사회의 추장이 결합된 단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대표라는 직함대신에 부족사회의 명예직이자 권력을 늘 가지고 있지 않았던 추장이란 단어를 좋아하는 저자가 소수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의 모습과 그가 읽은 책에 대한 소개가 2부로 나뉘어 실려있다.

  머리말에 등장하는 그가 책을 구분한 4개의 잣대에 동의한다. 세상을 변혁하는 책과 세상을 해석하는 책, 세계를 반영하는 책과 세계를 낭비하는 책으로 나누는 구분속에서 이 책은 양극화, FTA, 이라크전쟁 등의 사회의 현실을 반영하고, 그 뒤에 숨겨진 함의를 해석하고, 작은 외침으로 세상을 변혁하는 책이다. 2003년부터 06년까지 저자가 매체에 기고한 글과 책을 엮으면서 새로 추가한 글이 모인 책이다. <수유 + 너머>의 집단을 좋아하거나, 주류의 시선이 아닌 소수의 관점을 받아들일 여유가 있는 독자에게는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넓힐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는 책이다.


 

# 고추장! 책 속으로 뛰어들다.


  그린비에서 나온 리라이팅 클래식 <니체의 위험한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저자이기 때문일까. 자유, 행복, 도덕, 기억, 역사, 사실, 여성, 기술, 화폐, 선물, 사회, 인권, 국가, 혁명 14개의 주제와 연관된 저자가 읽어낸 책 이야기가 실려있다. 인문학에 무지한 내게는 저자가 소개한 책들이 생소했지만, 저자의 논리적인 글솜씨에 저자가 이야기하는 주장에 동의하고, 저자가 소개한 책을 읽어싶어보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 현실을 살아가는데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지만, 생을 살아가는 자신의 가치관에 큰 틀을 잡아줄 수 있는 주제와 관련된 책들, 그리고 책의 본문의 내용이 좀 더 많이 소개된 고추장의 독서메모 를 마지막에 붙여 저자의 이야기를 좀 더 깊이있게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의식에 직접 주어진 것들에 관한 시론>, 에피쿠로스의 <쾌락>, 스피노자의 <신학정치론> 등 그냥 책의 제목만 들었을 때는 읽을 엄두도 나지 않는 책들이다. 하지만 저자의 메시지 안에서 그의 글에 공감이 가면서, 소개된 책들의 내용도 이해할 수 있는 틈을 얻게 된다. 자유는 선택이 아닌 능력이고, 인간은 행복조차 배워야 하는 짐승이며, 건강한 신체와 멀쩡한 정신만 있다면 누구도 행복에 대한 스승을 찾을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 선과악이란 인간 자신의 생각과 이익에 맞추어 판단하면서 생겨난 것으로, 자연 전체로는 선악이 존재할 수 없다는 말, 기억력과 함께 기억증도 있다는 말, 치열한 '기다림'의 실천의 중요성, '사실'을 추려내는 역사학자들의 작업과 한 목소리의 위험성, 여성을 대하는 남자의 미숙함 등과 저자가 추구하는 코뮨주의의 근간을 살펴볼 수 있다.
 

# 고추장, 지식인의 책무를 다하다.

   세상의 소수자와 연대하기.


  제목이 명확히 기억나지 않는 책에서 지식인이란 노동자 등의 생활인들의 욕구를 대변하는 존재라는 글을 본 적이 있다. 노동자가 생존의 시위를 하기 이전에, 현실을 읽고 부조리한 부분을 글로 세상에 알리고 소통하는 책무가 지식인에게 있다고 할까. 지식사회로 가면서 지식과 개인의 안위가 연결되고, 세상과 유리되어 세상을 게임처럼 객관적 시선에서 풀려고 하려는 이들이 많은 가운데, 고추장, 저자는 지식인의 책무를 다하고 있다. 최저생계비의 현실화를 요구하다 쓸쓸히 죽어간 최옥란씨, 비가 통계적으로 오지 않아 장애인의 날이 된 4월 20일을 '장애인 차별 철폐의 날'로 주장하자는 목소리, 폭력을 조장하는 언론과 경찰, 심화되고 있는 양극화의 현실, 빈곤의 투쟁과 빈민들의 정치세력화의 당위성, 한미FTA를 반대하는 이유, 마을이 무너지고 있는 농촌사회의 현실, 학자와 교수의 관계, 미국 대학원으로 전락한 서울대의 모습, 국가보안법 철폐, 이라크 전쟁, 한일 극우주의의 해법 등 주류의 시선에서 벗어난 소수의 시선에서 바라본 한국 사회의 모습을 글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신문에서 소개되어 양쪽의 주장을 살펴보지만 마음속의 울림으로 다가오지 않던 이야기들이 저자의 글을 읽으니, 소수자의  불편한 현실들이 생생하게 전해져 왔다. 이런 현상이 일어난 원인 뒤의 철학에 대해 살펴볼 수 있었다고 할까. 실제 보이는 현실의 지표들이 아닌, 좀더 큰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의 차이, 이런 시선들을 외면하고 그냥 내 안위를 위해 살아가다 보면, 주류들의 시선에 의해 무기력해지고, 한탄만 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심각하게 느끼지 못했던 사안들의 중요성을 느끼게 된 것만으로 이 책을 읽게 되었던 점에 만족한다. 깊이있게 다가서고  싶지만, 부족한 지식으로 어렵게 다가왔던 철학적 내용들도 저자의 글을 통해 편하게 다가설 수 있었다. 현실의 문제를 외면해 버리면 결국 피해보는 이는 서민과 비주류일 뿐이라는 현실도 느껴진다.
 
  에필로그에 실린 '돈 없이 살 궁리'를 하는 저자의 모습에 색다른 감동을 느꼈다. 연구자들이 서로 각출해서 연구도 하고 마음의 정도 나누는 관계. 70년대 다들 없이 살았던 시대의 따뜻한 인정의 모습을 보는 느낌이라 할까. 연대를 하기 위해서는 모두의 연대의 필요성과 그에 걸맞는 노력과 책무가 필요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돈을 벌려 노력하는게 아니라, 더 적게 자본에 의지해서 살아가는 삶, 꿈처럼 생각은 몇 번 해 보았지만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이 존재할거라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 온 세상에 돈만 없는 부자들로 가득 찬 세계, 나 역시 그런 날이 오기를 꿈꾼다.

7******e 2008.09.2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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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로 살아가고 삶으로 공부하고 싶어하는 한 지식인의 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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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그러니까 10년도 더 전에 내가 하던 말이 있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서 자기가 일한 만큼 얻어 욕심 부리지 않고 그만큼만 쓰며 살고 싶다." 잉여생산물이란 것이 생겨나지 않도록 필요하면 노동하고 그 댓가를 얻어 만족하며 살고 싶었다. 그럴려면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아도 생계에 전혀 지장이 없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자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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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그러니까 10년도 더 전에 내가 하던 말이 있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서 자기가 일한 만큼 얻어 욕심 부리지 않고 그만큼만 쓰며 살고 싶다."

잉여생산물이란 것이 생겨나지 않도록 필요하면 노동하고 그 댓가를 얻어 만족하며 살고 싶었다. 그럴려면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아도 생계에 전혀 지장이 없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이 되느냐, 되지 않느냐'가 중요하다. 돈이 되는 직업이 있고 돈이 되지 않는 직업이 있다. 그리하여 자신의 진로를 돈의 가치로 따져 결정을 한다. 나 또한 그러했다. 꿈은 어디까지나 실현 불가능한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 꿈을 실천하는 사람이 있다. 자기가 하고 싶은 공부로 살아가고 삶으로 공부하는 길을 찾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다. 말로만 듣던 <연구공간 수유+너머>의 '연구원'들이다. 저자도 그곳에 있는 한 사람이다. '돈없이 살 궁리 좀 해보자'며 철저히 반자본주의적인 말들을 이 책 안에 쏟아 놓았다.

그 중 '기술'이란 제목의 글과 '농민의 죽음1.2'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 글들에는 자본주의 사회의 문제점을 정확하게 지적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기술>

[도대체 개발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왜 잘 살기 위해 사용하는 우리의 기술이 우리의 죽음을 재촉하는가. 기술과 좋은 관계를 맺는 것은 불가능한가.]

하며 하이데거의 이론을 소개한다. 하이데거는 고대 그리스인들의 '4원인설'을 소개하면서 "여기서 원인이란 함께 책임짐을 의미한다."며 제작이란 함께 참여할 원인들을 모으는 일로 무언가 새로운 것을 '밖으로 끌어내오는'활동이라고 보았다. 저자는 여기서 '함께 참여함'이 중요하다고 한다. 현대의 기술은 '참여를 통한 드러냄'이 아니라, 자연에게 빨리 내놓으라는 '닦달'과 같다고 말한다. 현대인은 자연을 들볶음으로 해서 결국은 자신을 들볶는다고 한다. 즉, 대규모 환경 재앙뿐만 아니라 제작 과정 속에서 제작자인 인간도 스스로 하나의 부속품이 되고 마는 문제들이 생겨나고 있다. 우리는 살기 위해 죽음을 향하고 있는 것이다.

 

<농민의 죽음1,2>

1부에서는 현재 농민들의 실태를 지적하고 있다. 농민은 한국 사회에서 한 개인이 아닌 한 범주로 죽어가고 있다고 한다. 노인들이나 빈민들은 살지언정 농민은 살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살아도 거대 곡물기업이나 상인에게 고용된 농업노동자들일 것이라고 한다. 노동자처럼 생산수단을 완전히 잃은 존재도 아닌, 자본가 계급처럼 자본의 순환을 통해 이윤을 축적하는 계급도 아닌 모호한 존재는 더이상 존재할 수 없다고 한다. 더이상은 소규모 농업생산이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한국 농민들은 지금 대지로부터 추방되어 유랑하고 있는 것이다.

2부에서 저자는 전북 부안에서 서울까지 했던 천리 길 행진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있다. 90년대 들어 시작된 연이은 개방으로 농촌은 이미 경제적으로 죽어 있다. 이와 더불어 마을마저 사라져가고 있는 농촌은 사회적으로도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이렇게 허무한 공간에서 사람들이 '혹시나'하고 저지르는 게 대규모 개발이다. 땅을 넓혀 공장이 들어온다면 공장이 들어오지 않으면 인부들이라도 들어온다면... 그런 마음으로 농민들은 새만금이나 금강 하구 개발 공사를 지지하였다고 한다. 그들에게는 개발로 인해 잃게 될 미래가 보이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고 저자는 이야기하고 있다. 지푸라기 하나라도 잡고 싶은 그들의 마음조차 이용하는 게 자본주의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다니엘 벤사이드의 [저항]에 나오는 "최고의 저항은 죽음에 대한 저항이다."란 말을 인용한다. 맞는 말이다. 살기 위해 죽음으로 성큼 성큼 다가가야 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최고의 저항은 죽음에 대한 저항이다. 죽음으로 행진하는 것을 막는 방법. 그 시작이 저자가 이야기하는 '돈 없이 살 궁리'를 하는 것이 아닐까?

YES마니아 : 로얄 t*****i 2007.08.0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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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장의 책으로 말하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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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람은 다 자신만의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그들은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해, 그들만의 이상향을 그리곤 하는데(물론, 세상이 더 나아지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도 있다.)저자 고병권의 이상적인 사회를 들어보자.고추장은 고병권의 지위를 가르킨다. 그가 속한 집단에서 그의 지위는 추장이다.그래서 그의 호칭은 고추장.추장의 의미는 위계적인 서열과는 거리가 다르다.집단에서 추장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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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람은 다 자신만의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해, 그들만의 이상향을 그리곤 하는데

(물론, 세상이 더 나아지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도 있다.)

저자 고병권의 이상적인 사회를 들어보자.


고추장은 고병권의 지위를 가르킨다. 그가 속한 집단에서 그의 지위는 추장이다.

그래서 그의 호칭은 고추장.

추장의 의미는 위계적인 서열과는 거리가 다르다.

집단에서 추장은 하나의 도구다.

현대 우리사회가 갖는 지위에 대한 욕구와는 다르게

추장은 권력없는 도구이다.

그의 모든행위는 집단의 지배아래 놓이며, 집단을 위해서만 행동해야 한다.


그가 속한 집단을 통해, 우리는 그의 성향을 느낄 수 있다.

그가 속한 정치적 지향은 신좌파라고 할 수 있다.

구좌파의 정치투쟁보다는 그들은 다양한 영역에서 투쟁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가 세상을 보는 눈은 날카롭고, 감성적이다.

그의 노모가 많은 지혜를 갖고 있더라도, 세상은 그의노모를 초졸로 기억한다고 했을때,

뭔가 울컥한 감정이 들었다.


우리세상은 개인을 인식할 때, 그의 학벌이나 재력으로 그를 인식하지 않은가?

그것이 인간의 본질이라고 할 수 없는데도 그렇지 않은가?

하지만, 우리는 이를 너무나 당연시 여기며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본다.


개인은 재력과 학벌이라느 껍데기의 뒤에서만 존재하는데,

이는 껍데기의 뒤에 있는 개인에게나, 껍데기를 갖지못한 개인에게나, 너무나 아픈 기억만을 준다.

우리사회는 특히나 학벌에 대한 지나친 편견이 존재하는데,

우리는 이 편견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오히려 자기최면을 걸어버리는 경우가 많은것을 보았다.



고추장의 이런 분석들에 대한 단상을 언급하자면,

개인, 사회 의식적인 차원에서 비판에는 유효하지만, 구조적인 차원에서 문제제기는 미비하다고 느낀다.

실제로, 학력, 학벌로 사람을 평가하는 사회 분위기에 대한, 어떤 대안점을 제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책에는 좌파적 감성을 느끼기에는 훌륭한 책으로 보았다.



y******4 2012.02.29.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