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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문총’을 위하여!
“당황하셨어요?”
이 책을 펼쳐 몇 페이지를 읽는 동안, 개그프로에서 나오는 이 말이 떠올랐던 것은 웬일일까
이런 기록물을 펴내면서 이런 스타일로 글을 쓰다니, 의외였기에 그렇다. 정말 의외였다. 그래서 많이 당황해 했다.
이 책의 구성은 특이하다. 역사적 사실을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소설식 구성을 택하고 있는 점이 그렇다. 저자는 자기가 연구한 결과물을 격자식 스토리 텔링 기법을 사용하여 발표하고 있는 것이다. 이문열의 소설 <황제를 위하여>처럼 말이다. 물론 이문열의 그 소설은 격자 안이나 밖이나 모두 픽션이지만, 이 책은 그렇지 않다는 점이 다르다. 여기에서는 기본은 사실이지만 그 사실을 전달함에 있어 픽션처럼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그런 구조 때문에 읽고 난 지금에도 약간의 혼돈이 있다,
어디까지가 사실일까, 라는 의문에 독자인 나는 답을 하지 못하겠다. 물론 관련되는 기록을 심층적으로 더 찾아본다면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느 부분이 저자의 상상에 근거한 기록인지 파악이 되겠지만, 이 책을 읽은 평범한 독자에게 그것은 무리가 아니겠는가
그래서 먼저 이런 서술방법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다.
첫째는 건조한 글에서 탈피한다는 점에서는 일단 합격이다.
저자는 책 중 화자의 입을 빌려 다음과 같은 발언을 한다.
<한동안 논문이나 보고서 같은 건조한 글 읽기에만 매달렸던 탓인지...> ( (181쪽)
논문과 보고서 스타일의 글만 쓰던 저자는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런 모습의 글이 얼마나 ‘건조한’ 것인지, 그래서 독자들의 흥미를 유발하지 못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러니 저자로서는 건조한 글쓰기를 지양하여 독자들의 흥미를 유발하는 반면, 독자들은 마치 소설처럼 읽어 나갈 수 있기에 흥미를 가지고 읽을 수 있다는 점이 좋은 점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어차피 사실관계를 이 시점에서 확인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면, 그래서 그 부분 때문에 사건과 그 다음 사건의 연결이 매끄럽지 못하고 끊어지는 문제가 있다면, 그 부분을 저자의 상상력으로 보충한다면 좋지 않을까? 그리고 그 상상력에 대하여는 저자가 어떤 사람인지 안다면 그리 걱정할 필요없을 것이다. 그 상상력은 결코 소설가의 상상력이 아니라 사계 권위자로서의 그것이라 믿기에 그렇다.
저자는 어떤 사람인가
<벽화 고분이 발견된 지 한 세기를 넘었지만, 이를 연구하는 데 평생의 헌신과 열정을 부어넣은 학자는 한중일 통틀어 저자가 유일하다>( 표지 앞 날개)
그런 평가를 받는 저자이니, 저자가 사건과 사건을 연결시키고 있는 그 상상력조차 그저 소설(?)은 아닐 것이라는 전제가 있기에, 읽을만 하며 따라서 유익하다.
지금 시점에서 과거에 있었던 일을 완벽하게 복원할 수 없을바에야 이런 식으로 고분에 얽힌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도 유익할 것이다.
또한 독자로서는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 그 것의 전모를 파악하기가 쉽다. 이미 말한 바지만, 사실과 사실 사이에 메워지지 않는 부분은 저자의 상상으로 이어지기에 일단 이야기의 맥락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진다는 이점이 있다. 사실관계는 차치하고 독자로서는 이야기가 계속 진행이 되기에 사건의 전모를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예컨대, 등장인물에 있어서도 묘지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대형 한보의 존재는 더욱 그렇다. 이 인물은 완벽한 허구의 산물이라 할 수 있을 것인데, 그럴지라도 독자에게는 하등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무덤이 조성될 당시의 사회상을 알 수 있고 - 역시 저자의 명망에 기대어 - 종교로 인한 사회의 변화상을 알 수 있게 된다.
특히 202쪽으로부터 시작되는 한보의 일인칭 독백은 그 당시 사람들의 내세관을 엿볼 수 있기에, 귀한 부분이다.
죽음을 앞에 두고 심리적으로 치열한 투쟁이 벌어지는 것을 기록한 그 부분은 문장 하나 하나가 다 귀하고 가슴 한켠이 먹먹하기까지 하다. 이 부분은 저자가 건조한 학문의 세계에서 사는 사람이라기보다는, 그래서 고분을 연구하면서도 그저 객관적인 물체로서만 그 고분을 보는 것이 아니라 긴내마을에서 무덤을 돌보는 무덤지기 한마루 같은, 무덤 주인을 가슴아파하며 술과 밥으로 제사를 지내는 감성을 지녔다는 것을 보여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한보의 사후세계에 대한 그의 일인칭 독백은 당시 사람들의 세계관, 내세관을 짐작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조상신에서 불교로 전환되는 당시의 내세관이 어떻게 일개인과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한 기록은 귀중한 부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 책을 펼치면서 그 전달 방법 때문에 당황스러웠지만, 읽고난 시점에서의 생각은 다르다. 이런 기법이 더 훌륭하게 그의 연구 결과를 전달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그만큼 이런 방식의 전달방법을 택하는데 저자로서는 고민이 많았을 것이다. 학술서로 펴내야 할 부분을 이런 식으로 기록하고자 할 때 저자는 무척 고민을 했을 것이다.
그런 고민을 충분히 엿볼 수 있는 기록이 있는데, 저자는 책 중 화자의 입을 빌려 다음과 같이 토로하고 있다.
<접근도 어렵고 이해도 잘 되지 않는 역사적 실재를 되살리는 길을 찾고 찾다가 선택한 방법이 반半픽션이랄까, 일종의 다큐멘터리였던 셈이다.> (264쪽)
그러나, 저자의 그런 고민은 훌륭하게 결실을 맺었으니, 이 책의 주제가 건조한 사건의 전달이지만, 독자들은 모두다 흥미를 가지고 읽을 수 있다는 점이 그 하나요.
또 하나는, 이 책에 등장하는 - 저자가 고심하여 등장시킨 - 모든 인물들이 제각기 고구려의 고분 환문총을 보여주는데 유감없이 제 몫을 하였다는데, 모두 동감할 것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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