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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의 사기를 비교해 본다. 사마천의 사기는 완역본이 두 편있다. 위즈덤 출판사에서 신동준 선생이 민음사에서 김원중 선생이 각기 완역하여 세트로 출판했다. <서>를 기준으로 두 완역본을 비교한다.
오늘날의 기준으로 해석한다면 국가 운영철학과 경제이념이라는 특이한 단원이 역사책에 끼어들어 있는 셈이다. 두 저자의 <서>를 비교해 본다. 신동준 선생과 김원중 선생 모두 중국문화를 한역하는 분야에서 최고로 불리는 분들이라 어느분 해석이 정확하다고 표현하는 것은 실례고 독자 성향에 따라 입맛에 따라 고르는 것이 좋을 것이다. 1. 표지 책을 표지로 판단하지 말라지만 책을 살때는 매우 중요한 고려사항이다. 읽을 때는 중요하지 않지만 읽고나서 꽂을 때는 중요한 요소가 뽀대다. 책편집에서도 드러나지만 민음사는 파란색을 적극 사용한반면 위즈덤하우스는 평범한 흑백편집이다. 개인 취향이기는 하지만 전집으로 꽂아두기에는 위즈덤하우스본이 좀 더 우위에 있다.
2. 번역 비교 신동준번역은 기존에 우리가 한문 번역에서 보던 전통적 해석방법을 지킨다. 원문의 한자어를 최대한 살려 고풍스럽지만 평소에 사용하지 않는 낯선 단어들이 그대로 노출된다. 김원중본은 최대한 현대어로 바꾸어 놓았다. 신동준은 한자를 병기하고 각주로해설한다. 김원중은 한자어 옆에 해설까지 붙여 놓았다. 한자가 약하지 않고 죽죽 읽는 맛을 즐기는 독자는 신동준, 초보자나 해설을 중시한다면 김원중을 고르면 되겠다. 본인은 한자는 약하지만 짧게 치고 나가는 맛을 좋아해 신동준이다. 위즈덤하우스 신동준본
민음사 김원중본
다음 중 어느본이 신동준이고 김원중인지 고를 수 있을 것이다.
![]() ![]() 민음사본 중간 중간에 들어 있는 그림이다. 고수에게는 참고자료가 되겠지만 나같은 겉멋든 초보들에게는 중간 장식용으로 보일 뿐이다. ![]() 3. 요즘은 본 제품말고 껴주는 사은품도 중요하다. 신동준본은 한문 원문이 같이 첨부되어 있다. 한자-한문에 능한 독자는 유용하겠다. ![]() 신동준본은 예기와 악기 그리고 사마천의 연보를 부록으로 제공한다. ![]() 이에 김원중본은 사마천의 고뇌가 들어있는 편지를 부록으로 올렸다. ![]() 각자 필요한 부록으로 골라도 되겠다. 자~~~~ 고르시오 ![]() ![]() * "비빔냉면이냐 물냉면이냐, 짜장면이냐 짬봉이냐"가 먹기전에도 알 수 없고 먹고 나서도 풀 수 없는 인류 최대의 난제인 것처럼 두 완역본 중 어느것이 낫냐는 한 마디로 말할 수 없다. 허니콤보와 간장치킨, 뿌링클이 항상 선택장애를 일으키는 문제인 것처럼 두 전집도 딱 하나 고르기 어렵다. 그래서 난 두 전집을 다 가지기로 했다. 그러하다.......다 먹으면 해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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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 - 사마천을 이해하기 위하여
지난 서평에서는 사마천이 사기를 저술하게 된 동기를 몇 가지로 정리해 보았다.
많은 학자들이 많은 학설을 제시하고 있지만, 나는 그 중 두 가지를 꼽았다.
첫째는 그의 부친 사마담(司馬談)의 유언(遺言)이다.
둘째 이유는 발분저서(發憤著書)’ 또는 '발분저술(發憤著術)'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다.
이런 심정으로 역사를 기록한 것이 바로 『사기』이니, 후세 사람인 내가 그러한 사마천의 심정을 백분의 일, 아니 백만분의 일이라도 이해한다면, 어찌 『사기』를 앞에 두고 경건한 마음이 들지 않을까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무엇보다도 사마천이 『사기』를 기록하게 된 이유는 바로 그의 생사관에 두어야 하지 않을까
궁형을 받고 그 상처가 아물기를 기다리는 동안 그는 무엇을 생각했을까
그 치욕적인 상황에서 그는 먼저 죽음을 생각했을 것이다.
‘이러한 치욕을 살아서 계속 당하며 살아가는 것이 과연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구차하게 목숨을 이어가느니, 죽는 것이 어떨까?’라는 생각 분명 했을 것이다.
그래서 사마천의 생사관을 살펴보면, 사마천이 임안에게 보낸 <보임안서(報任安書)- 임안에게 보내는 답장>중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보인다.
그는 그 치욕을 이렇게 묘사한다,
“하루에도 아홉 번이나 장이 뒤틀리고, 집에 있으면 망연자실 넋을 놓고 무엇을 잃은 듯 하며, 집을 나가도 어디로 가야 할지 모릅니다. 이 치욕을 생각할 때마다 식은 땀이 등줄기를 흘러 옷을 적시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그 치욕은 그의 삶을 파괴한 것과 다름이 없다.
그래서 그는 자연히 죽음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삶에 애착을 갖고 죽기 싫어하며, 부모님을 생각하고 처자를 돌보려는 것은 인지상정입니다. 그러나 의리에 자극을 받으면 부득불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비겁한 사람이라 해도 의리를위해 목숨을 가볍게 버리는 경우가 왜 없었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살아남았다.
어떤 마음을 가졌길래, 그는 다시 삶의 길을 택했을까
“사람은 누구나 한번 죽지만 어떤 죽음은 태산보다 무겁고 어떤 죽음은 새털보다 가볍습니다. 이는 죽음을 사용하는 방향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궁형을 받고 치욕스럽게 살아가면서도, 그래서 죽음을 생각하면서도 죽지 못하고 살아야 하는 당위성을 그렇게 밝히고 있는 것이다. 사마천은 그 방향을 역사서인 『사기』를 완성하는 데로 돌렸던 것이다. 죽음을 사용하는 방향이 다르다.
결국 죽음의 의미는 결국 삶의 흔적으로 결정되는데 사마천은 사기를 남김으로 그의 흔적을 남기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쓰여진 사마천의 『사기』를 읽는데, 일말의 감상 없을 리 없어 서평에 앞서 몇 자 적어 놓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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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
드디어 『사기(史記)』를 읽어가는 대장정에 들어섰다.
『사기』는 <사기 본기>, <사기 열전1>, <사기 열전2>, <사기 세가>, <사기 서>, <사기 표>, 이렇게 6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사기’란 원래 ‘사관의 기록’을 가리키는 일반명사였는데, 훗날 사마천의 저작을 가리키는 명사로 쓰였다. 그 원명은 『태사공서(太史公書)』이다.
책도 나름이지만 어떤 책을 읽을 때에는 경건한 자세가 필요하다.
그렇게 경건한 마음으로 읽어야 할 책 중 가장 앞서는 것은 단언컨대 『사기』다.
『사기』를 기록한 사마천의 생애 때문이다.
사마천은 단순하게 역사를 기록한 것이 아니다.
『사기』는 사마천의 삶과 뗄라야 뗄 수 없는 책이다, 인생 전부를 걸고 쓴 책이기에 그렇다.
그의 어떤 인생을 걸었을까
사마천의 『사기』를 두고, 저작동기를 여러 가지로 추론하고 있지만, 난 그중 두 가지가 마음에 와 닿는다.
첫 번째는 그의 부친 사마담(司馬談)의 유언(遺言)이다.
사마천의 부친인 사마담(司馬談)은 무제의 봉선례(封禪禮)에 참가하지 못하게 되자 화병이 나서 곧 죽게 되었는데, 이때 아들인 사마천에게 다음과 같이 유언했다.
<우리 선조는 주(周) 왕실의 태사(太史)였다. 상대(上代)로부터 일찍이 우(虞)․하(夏)에 공명이 드러났고 대관(大官)일을 맡아왔다. 후세에 중도에서 쇠퇴하더니 마침내 나에게서 끊어지려는가? 너는 다시 태사가 되어 우리 조상이 하던 일을 계속하거라. 지금 천자께서는 천세(千歲)의 황통(皇統)을 이어 태산(泰山)에서 봉선례를 행하시는데, 나는 따라가지 못했으니, 이는 명이로구나, 명이야! 내가 죽거든 너는 반드시 태사가 되거라. 태사가 되거든 내가 논저하고자 하던 바를 잊지 말거라. ........유왕(幽王; 전781~771)․여왕(厲王; 전878~842)이후 왕도가 결핍되고 예악(禮樂)이 쇠퇴해지자, 공자(孔子)는 옛것을 닦아 쇠퇴한 것을 일으켜 《시》․ 《서》를 논하고 《춘추》를 지으니 학자들이 지금까지 그를 본받고 있다. 획린(獲麟) 이래 사백여년이 지나자 제후들이 서로 겸병하고 역사기록은 끊어졌다. 지금 한(漢)이 일어나 해내가 통일되고 명군․현신․충신․의로움에 죽은 선비들을 내가 태사이면서도 논하여 싣지 못하고 천하의 역사문을 폐하게 되어서, 나는 이를 심히 두려워하니, 너는 그것을 염두에 두거라.>
사마천은 갑작스러운 부친의 임종을 맞이하여 간절한 유언을 받았으므로 깊은 감동을 받고는 머리 숙여 말하기를, “소자가 불민하오나 아버님께서 정리하여 놓으신 옛 기록들을 모두 논술하여 감히 빠뜨리지 않겠습니다”라고 하여, 부친의 뜻에 따를 것을 엄숙히 맹세했다.
이와 같이 부친의 유언은 사마천에게 『사기』저술이라는 거대한 사명감을 고취시켰던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발분저서(發憤著書)’ 또는 '발분저술(發憤著術)'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다.
이는 사마천이 이릉(李陵) 사건에 연루되어 궁형(宮刑)을 받은 후, 자신의 곤궁을 역대인물에 조명하여 얻어낸 결론이라 할 수 있다.
사마천은 궁형을 받아 다시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자, 극도의 정신적 타격을 받는다. 평소에 공자(孔子)와 같은 ‘청운지사(靑雲之士)’가 되고자 했던 사마천이기에 치욕적인 형벌을 받고는 죽음을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죽음을 결심하기 앞서 냉정하게 주위 상황 및 자신의 처지를 생각해 보고는 “가령 자신이 법에 매여 죽음을 당한다면 마치 아홉 마리의 소에서 털 한 오라기를 잃는 것(九牛一毛)과 같아 개미와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았고, 또 “세상에서는 자기를, 절개를 위하여 죽은 사람과 비교하지 않고, 다만 지혜가 다하고 죄가 커서 스스로 빠져 나오지 못하고 마침내 죽었다”라고 평할 것이라는 것도 알았다.
여기에 생각이 미친 사마천은 “사람은 다 한 번씩 죽지만 어떤 사람의 죽음은 태산(泰山)보다 무겁고 어떤 사람은 기러기 깃(鴻毛)보다 가볍기도 하니, 이것은 죽음으로 나아가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이다”라는 사실을 인식하게 된다.
이와 같이 자신의 객관적 상황을 냉철히 분석한 사마천은 자신이 집필해 온 역사기록에서 저명인물의 경우를 살펴보게 되는데, 그 결과 역대 성현(聖賢)들도 대개는 역경에 처했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그 고난을 이겨냈다는 교훈을 발견하게 된다.
옛날 서백(西伯) 문왕(文王)은 유리(囿里)에 갇혀 《주역(周易)》을 연역(演繹)했고, 공자는 진(陳)과 채(蔡) 사이에서 위험을 당하여 《춘추(春秋)》를 지었으며, 굴원(屈原)은 추방되어 《이소(離騷)》를 지었고, 좌구명(左丘明)은 실명하여 《국어(國語)》가 있었으며, 손자(孫子)는 다리를 잘리고 병법을 논했으며, 여불위(呂不韋)는 촉(蜀)땅으로 옮겨져 세상에 《여람(呂覽)》을 전했으며, 한비(韓非)는 진(秦)에 갇혀 〈세난(說難)〉․〈고분(孤憤)〉을 지었고, 《시(詩)》 3백 편은 대개 성현들이 울분을 나타내어 지은 것이다. 이들은 모두 마음속에 울결(鬱結)한 바가 있어 자신의 뜻을 소통할 수 없었으므로 지난 일을 저술하여 후세 사람을 생각했다.(<태사공자서>)
그래서 이르게 된 결론이 바로 발분저서(혹은 발분저술)이다.
이런 심정으로 역사를 기록한 것이 바로 『사기』이니, 후세 사람인 내가 그러한 사마천의 심정을 백분의 일, 아니 백만분의 일이라도 이해한다면, 어찌 『사기』를 앞에 두고 경건한 마음이 들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