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책 읽은 후 미니 감상평
죄의 상징인 A의 붉은 사랑을 담은 소설 <주홍글씨>. 영화로만 보았던 고전중의 고전을 드디어 소설로 읽게 되었다. 영화의 느낌과 소설의 느낌은 확실히 달랐다. 간통이라는 파격적인 주제와는 달리 소설은 전반적으로 은은하게 퍼지는 잔잔한 호수와도 같았다. 아마도 그 이유는 부드러우면서도 섬세한 작가만의 문체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의 섬세한 묘사법과 설명은 인물의 심리를 꿰뚫어 보듯 인물 각각의 특징을 잘살려 냈다고 볼 수 있다.
종교는 때론 폐쇄적이면서 단편 일률적인 면이 있다. 우리에게 끊임없이 많은 선을 요구한다. 아마도 그런 특징 때문에 미망인 헤스터 프린을 사랑한 딤즈데일 목사는 죄의식에 서서히 죽어갔을 것이다. 그녀 역시 남편이 죽은 줄로만 알고 있었기 때문에 목사와의 사랑이 돌이킬 수 없는 죄의 결과물을 낳을지는 예상치 못했던 것이다. 죄의 결과로 태어난 아기를 안고 지금 그녀는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간통(Adultery)이라는 머리글자인 주홍글씨 A를 달고 종교와 법아래 심판을 받고 있다. 그녀는 죄인이라 할 수 없을 정도로 당당한 표정으로 아이를 안고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그런 그녀의 뻔뻔함도 죽은 줄로만 알고 있었던 남편을 보자 눈동자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얼마나 가혹한 현실인가! 사랑하는 남자는 자신의 죄를 숨긴 채 헤스터의 담임 목사라는 이유로 그녀를 심문하고 있고, 또 한 사람은 이 모든 것을 즐기기라도 하는 듯 그녀를 향해 악마의 미소를 지어 보였다. 사랑했던 사람도, 사랑하는 사람도, 그녀를 모르는 사람조차 그녀를 향해 돌멩이를 던질 뿐이었다. 사람들은 판사들이 죄에 비해 너무 가벼운 벌을 내렸다며 야유했다. 최소한 뜨거운 인두로 이마에 주홍글씨 A를 낙인이라도 찍어야 했다고 비난했다. 그런데 판사는 고작 평생 가슴에 주홍글씨를 달고 살아야 한다는 형벌을 내린 것이다. 하지만 결코 주홍글씨는 작은 형벌이 아니었다. 이 글씨 하나가 더 이상 평범한 사람들과 소통하지 못하게 만들었고 평생 창녀라는 수치를 떠안고 혼자만의 세계에 갇혀 살아야 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그것은 사랑하지 말아야 할 사람을 사랑한 치욕의 댓가였고 자신의 운명을 보여주는 마법과도 같은 상징이었다.
어쩌면 주홍글씨는 그녀에게 도저히 거부할 수도 피할 수도 없는 운명의 힘, 즉 반드시 받아들여야 하는 숙명일지도 모른다. 남편의 실종, 담임 목사와의 밀회, 죄의 결과물이자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하나님의 선물 펄(헤스터의 딸). 이것이 그녀의 운명이었다면 그녀는 뒤로 걸어도 앞으로 걸어도 그 운명과 만났을 것이다. 아니면 그것은 하나님의 시험일수도, 또 어쩌면 악마의 유혹일수도 있다. 하지만 그녀는 그 시험으로부터, 유혹으로부터 이기지 못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를 잉태한즉 사망을 낳는다는 하나님의 말씀처럼 처음부터 목사와의 사랑은 욕심이었는지 모르겠다. 그 번뇌와 갈등을 승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말이 아닌 행위로서 보여주는 회개이다. 그녀는 침묵했다. 그러나 그녀는 가난하고 헐벗은 자들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상관치 않고 무릎을 꿇고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줬다. 자식을 위해서라도 다시 태어나야 했다. 펄은 이 세상을 살아갈 용기를 잃지 않게 해주는 단 하나의 보물이고 그녀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유일한 이유였다. 펄은 그녀에게 행복이자 동시에 고통이었다. 왜냐하면 펄은 하나님의 축복인가 동시에 죄에 대한 벌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녀가 아무리 열심히 봉사를 하고 과거의 죄를 속죄하기 위해 외딴 오두막집에서 외로이 살아간다 할지라도 가슴에 새겨진 주홍글씨만은 잊지 않았다. 눈송이처럼 새하얀 마음에 더러움이 묻어 버리면 아무리 지우려 노력해도 지워지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는 강했다. 자신의 죄를 알기에 더욱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반면 똑같은 죄를 지은 딤즈데일 목사는 죄에 대한 괴로움으로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다. 신도들은 목사의 건강을 걱정해 외부에서 온 유능한 의사 로저 칠링워스를 주치의로 붙여줬다. 누가 그 노인이 헤스터의 전 남편이며 악마라는 사실을 알겠는가! 그저 목사를 위한 길이라 생각했을 뿐 그 노인으로 인해 목사의 몸 구석구석까지 병들어 간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 의사는 인디언들에게 잡혀 있는 동안 약초와 뿌리에 대해 상당히 많은 지식을 얻었고 전문의보다 훨씬 탁월한 고대 의술에 대해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누구도 의심의 눈길을 보내지 않았다. 오히려 식민지 뉴잉글랜드 마을에 위대한 사람이 왔다고 더욱 귀하게 여겼다. 그 뒤로 의사는 마치 목사의 그림자라도 된냥 늘 따라 다닌다.
숨겨진 죄인 목사와 드러난 죄인 헤스터, 둘 중에 누가 더 불행한 사람이냐고 물어 본다면 당연히 딤즈데일 목사이다. 비록 헤스터는 사람들의 비난을 받고 주홍글씨라는 치욕적인 벌을 받았지만 차라리 행복했다. 소박하게 바느질을 하며 생계를 유지했지만 그 돈으로 아이를 키우면서 좋은 일도 많이 하고 이웃 사람들을 도와주면서 살아갔다. 그런데 왜 딤즈데일 목사가 더 불행할까! 그건 바로 ‘양심의 가책’ 때문에 그의 삶은 늘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지상에서 가장 선해야 하는 신의 종이 그것도 사람들이 하나님의 목자라 칭송받는 자가, 주일이면 단상에서 천사의 말로 설교를 하는 그 목사가 바로 십자가에 매달려야 할 죄인이었던 것이다. 얼마나 괴로웠으면 깜깜한 밤에 단에 올라가 홀로 고해를 하고, 처음 헤스터와 함께 올라가지 못한 교수대에 쓸쓸히 올라가 심판을 받는다. 우리는 딤즈데일 목사를 통해 진실 되지 않은 삶이 온 세상을 거짓으로 만들고 영혼의 알맹이를 다 뽑아 가라지로 만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명예와 사람들의 시선이 도대체 얼마나 위대하길래 헤스터처럼 당당히 가슴에 A를 달지 못하고 가슴 속에 A를 달고 죽어 갔던 것일까! 그 무심히 흘러갔던 7년이란 세월이 헤스터에게는 창녀(Adultery)에서 성녀(Angel)로 거듭난 시간이었다면 딤즈데일 목사에게는 지옥 같은 시간이었다. 그렇게 해서 사람들은 점점 그녀를 상징한 주홍글씨 A를 다르게 해석하기 시작한다. 자선단체를 하나 만들었다고 봐도 좋을 정도로 엄격한 세상에 자비와 사랑을 전하는 그녀의 봉사 정신을 보면서, 어떤 이들은 A가 천사(Angel)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또 어떤 이들은 유능함(Able)을 뜻하는 A로 해석했다. 한마디로 그것을 죄의 표시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녀가 행한 무수한 선행의 표시로 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목사는 스스로 흩뿌려놓은 죄 때문에 걸음을 옮길 때마다 죄에 걸려 넘어지면서 이 음울한 불행의 미로 속을 방황하고 있었다. 그 방황을 끝내기 위해 헤스터와 함께 멀리 도망가기로 약속하지만 그 삶은 거짓의 연속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교회 안에 있는 성인 같은 목사! 시장바닥에서 주홍글씨를 달고 선 여인! 누가 감히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똑같이 가슴에 치욕스런 낙인이 찍혀 있을 거라 상상하겠는가! 그는 진정 하나님께 사함받기 위해 마지막 힘을 다해 교수대에 올라가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악마로부터 탈출하게 된다. 그것이 비록 죽음이었지만 그는 이제야 행복을 되찾게 된다.
가슴 뭉클하고 짜릿한 결말이다. 우리는 이 가련한 목사의 삶을 통해 진실을 배워야 한다. “진실하게 살아라! 진실하게 살아라! 진실하게 살아라! 최악의 죄는 아닐지라도 최악의 죄가 될 수도 있는 기미가 보인다면 서슴지 말고 세상에 알려라!” 이것이 책이 주는 강력한 메시지다. 그리고 헤스터의 말처럼 목사는 그런 삶을 살았어야 했다. “이제 뒤는 돌아보지 마세요. 과거는 지나갔어요! 그런데 무엇 때문에 과거에 미련을 두어야 하나요? 보세요! 저는 이 주홍글씨와 함께 과거를 모두 벗어던지고 전부 없었던 일로 만들 거예요!” 고된 세월 속에서도 인정을 잃지 않고 헌신적으로 살다 보니, 주홍글씨는 더 이상 세상의 멸시와 비웃음을 끌어오는 낙인이 아니라 사람들의 슬픔을 같이 슬퍼해주는 한편 경외감과 존경의 마음으로 우러르는 새로운 상징으로 바뀌었다. 그 누가 그녀를 향해 비난할 수 있겠는가! 이렇듯 행복과 불행은 종이 한 장 차이이다. 같은 죄를 지은 딤즈데일 목사와 헤스터의 삶이 그 예를 너무나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진실해야 한다. 거짓으로 똘똘 뭉친 고뇌와 갈등 속에서는 행복을 누릴 수 없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