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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헤스와 텍스트 안의 텍스트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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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덮고 나서 처음으로 든 생각은 텍스트로 텍스트를 해체하고 재정립하고 그 과정에서 또한 텍스트를 이용한다는 점에서 '추리소설'이라는 장르는 정말 어울린다는 것이었다. 책에 대해서 나름대로의 평을 하기 전에 단언컨대 이 소설은 보르헤스를 아는 사람이라면 120% 더 즐길 수 있다. 왜냐하면 책의 소개에서 언급되었듯,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 책은 온전히 보르헤스를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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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덮고 나서 처음으로 든 생각은 텍스트로 텍스트를 해체하고 재정립하고 그 과정에서 또한 텍스트를 이용한다는 점에서 '추리소설'이라는 장르는 정말 어울린다는 것이었다. 책에 대해서 나름대로의 평을 하기 전에 단언컨대 이 소설은 보르헤스를 아는 사람이라면 120% 더 즐길 수 있다. 왜냐하면 책의 소개에서 언급되었듯,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 책은 온전히 보르헤스를 위한 오마쥬이기 때문이다. 사건이 진행되는 부에노스 아이레스는 보르헤스가 살던 곳이며, 주인공이 키우던 고양이 이름인 알렙은 보르헤스의 단편 「알렙」에서 차용했다. 또한 주인공이 쉰이 되도록 교사에 별반 특별할 것이 없는 번역가라는 점(게다가 주인공이 번역한 책들 중에서는 보르헤스의 책도 있지 않은가)은 보르헤스가 늦은 소설가 데뷔를 했다는 것에서 따온 것이다. 책에서 이미 보르헤스가 등장하는 것만이 오마쥬가 아니라 아예 주인공의 설정 자체가 보르헤스의 모방인 것이다.

 

 나 역시 보르헤스를 좋아하기 때문에 이 책을 집어들 수밖에 없었다. 이 책에서 보르헤스를 발견하기란 쉽다. 일단 등장인물이 보르헤스다. 하지만 더욱 자세히 들여다보면 작중 화자가 언급하는 것들은 교묘하게 보르헤스의 단편집에서 나왔던 구절이며 보르헤스가 소설에서 사용한 모티프를 사용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서는 추리가 이루어지는 과정 또한 '보르헤스적'이다. 그렇다면 이 책을 읽기 위해서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가? 추리가 현장에서 이루어지고 범인은 추리 현장에 다시금 찾아들 수밖에 없다는 오래된 진리를 떠올린다. 그렇다 책을 읽기 위해서는 우리 역시 책으로부터 시작함이 마땅하다. 그것도 보르헤스의 단편집 『픽션들』부터 말이다. 그리고 차근차근 어디가 어떻게 '보르헤스적'일 수밖에 없는지 알아볼까.

 

 사건의 중심에 등장하는 교수들과 잡지의 이름들은 모두 허구다. 보르헤스 역시 그의 단편에서 어떤 것이 진실인지 어떤 것이 허구인지 알 수 없도록 교묘한 장치들을 사용하는데 이 또한 그대로다. 에드가 앨런 포가 소설들을 썼으며 그의 팬이 있는 것은 진실이다. 하지만 그에 관한 <황금 곤충>이라는 간행물도 교수들은 허구다. 게다가 자주 등장하는 러브크래프트의 책에서 언급된 《네크로노미콘》이라는 책의 존재의 유무에 대해서 진지하게 토론하고 그 존재에 대해서 확신하고 있지만 추론의 정당성을 공고히 하기 위해 등장하는 이유들이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알 수 없다. 이렇게 진실과 허구의 결합으로 우리들로 하여금 어떤 것까지가 진실인지 허구인지 헛갈리게 하는 이른바 보르헤스의 방법이 전 부분에 걸쳐서 사용된다. 여기서 더 나아가 우리가 알고 있는 소설가 보르헤스가 이 소설에서 등장하는 보르헤스가 맞는가? 표면상으로는 그렇다. 하지만 여기서 등장하는 보르헤스는 저자가 온전히 사유로 만들어낸 보르헤스라는 이름을 가진 카피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보르헤스가 말하고 써낸 책들의 구절에서 보르헤스라는 것을 추측할 수는 있겠지만 보르헤스가 실제적으로 등장하지 않은, 그러니까 이중 텍스트 사이에서 헤매게 된다. 이는 결말에 이르러 더 명확하게 드러나는데 사건이 일어난 시점에서의 묘사가 아닌 사건의 후에 화자가 서간의 형식으로 보내는 것을 다시 보르헤스가 시간이 흐른 후에 편지로 써서 되돌리는 부분에서 이미 있었던 일과 쓰여진 일의 간극이 드러난다.

 

 텍스트의 전 부분에 걸쳐서 사용되는 '거울' 모티프는 어떠한가. 텍스트 안에서도 언급되지만 보르헤스의 단편인 「틀뢴, 우크바르, 오르비스 떼르띠우스」에서 그 기본적인 틀을 끄집어낸다. 그 안에서는 거울과 부성은 끝없이 재생산하기 때문에 가증스러운 것이다라는 부분이 있는데(이 부분은 책 안에서도 처음에는 성욕이었다가 부성으로 바뀌었다.) 이 역시 부성과 거울이라는 키워드를 그대로 차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끝없는 자음과 모음 그리고 언어에 대한 고찰 역시 같은 단편에서 나오는 고찰이었다. 언어에 대한, 궁극적으로 텍스트가 깨지기 쉬운 언어라는 구조 위에 서 있으며 그것에 대한 끝없는 회의를 통해서 새로운 의미로도 재창출 될 수 있다는 이른바 탈구조주의적인 면을 보인다.

 

 또한 출처에 대한 끊임없는 텍스트 분석 방법과 그 실마리를 찾는 방식에 있다. 역시 위의 단편에서 사건은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서 나온 한 구절의 출처를 찾아내면서 시작하는데(그 구절이 바로 거울과 부성에 관한 구절.) 이렇듯 어떤 책에서 한 구절을 보고 그 구절의 출처를 찾아가는 방식의 추리방식은 보르헤스가 처음으로 시도한 방법이었다. 후일 이 방법은 여러 작가에게 이식되었고 대표적으로는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이 있다. 게다가 텍스트의 출처를 찾기 위해서 또 다른 텍스트에서 그 해결점을 찾는 방식이나 여러 가지 텍스트를 한 가지의 범주에 의하여 묶고 연계시키는 방식 또한 보르헤스가 자주 쓰는 방식이다. 「틀뢴, 우크바르, 오르비스 떼르띠우스」에서처럼 그 뒤를 맡고 있는 거대조직이 실체가 불확실하지만 분명 음모를 지니고 있다고 추측하는 것처럼 이 텍스트에서도 이스라펠 소사이어티라는 음모를 지닌 거대조직이 등장하고 끝까지 그 실체가 부정확하고 그저 추측을 할 수 있을 뿐 진실은 드러나지 않는 것도 그렇다.

 

 물론 이 말고도 독자들이 느낄 수 있는 보르헤스의 자취는 많다. 보르헤스가 쓴 소설과 시들의 구절을 찾아내고 재인식하면서 진정으로 보르헤스적인 텍스트의 해체와 재정립 가능함을 만끽하면서 같은 보르헤스 팬으로의 동질감과 공모자의 은밀한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나 역시 작은 부분 하나 하나를 꼼꼼하게 들여다보면서 글귀를 되새김질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보르헤스 팬이라면 알 수 있을 무신론자라는 점이나 보르헤스가 말년에 비서와 결혼을 했다는 점이나 보르헤스 자신이 장님이며 또한 그것을 물려준 아버지, 즉 부성과의 관계, 필연과 우연에 대한 생각 등을 떠올리며 웃을 수 있었다. 마치 미로가 더 깊어질수록 웃음 짓는 텍스트 안에서의 보르헤스처럼 말이다.

 

 모든 것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말이 되어야 한다는 보르헤스의 말처럼 우리는 텍스트의 긴밀함과 끝없는 정보의 바다에서 모든 해답이 도서관에 있다고 믿는, 그래서 자신의 단편「바벨의 도서관」에서 자신을 그 속을 헤매고 정리하는 사서 노인으로 표현했던 것처럼 정말로 진실은 책들 안에 있는 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책은 읽는 사람에 따라서 독이 되기도 하고 금이 되기도 한다.

 

 끝으로 이 모든 것들을 조합하고 보르헤스의 자취를 따랐을 저자에게 찬사를 보내고 그것을 풀어내는 방식 또한 지극히 보르헤스를 따른 방법에 대해서도 찬사를 보낸다. 마지막까지 독자에게 던지는 재해석의 여지를 위해 텍스트를 닫지 않고 열어둔 것에서도 감사하다. 나는 처음에 보르헤스를 알면 더 책이 재미있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언제나 보르헤스의 방식처럼 이 책은 보르헤스를 몰라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알면 아는 대로 모르면 모르는 대로 거기서 뽑아내는 의미들은 어떤 것이 옳고 그르다 할 수 없다. 단지 추리소설로 보던 보르헤스의 오마쥬로 읽던 읽고서 판단을 내릴 여지는 크고 또 커서 온전히 독자의 마음에 달렸기 때문이다. 바로 그 보르헤스가 추구했던 탈구조주의적 사고방식에 의하면 말이다.


 

 

 

+이 책을 더 재미있게 읽기 위해서 읽어보면 좋을 책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픽션들』, 황병하 역, 민음사, 1999.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열기』, 우석균 역, 민음사, 1999.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대담:보르헤스가 보르헤스에 대해 말한다」, 『불한당들의 세계사』, 황병하 역, 민음사, 1999.
이남호, 『보르헤스 만나러 가는 길』, 민음사, 1994.

r******n 2007.02.15.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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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집스런 작가의 새로운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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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헤스에 대한 오마주인가. 교묘한 장치인가. <보르헤스와 불멸의 오랑우탄>(웅진지식하우스. 2007)의 첫 장을 읽는 동안 혼란스러움에 힘겨웠다. 난해한 단어의 나열이 아님에도, 편지의 형식을 빌린 따라가기 쉬어 보이는 템포에도 불구하고 독해가 결코 녹녹치 않았던 것은 내 얕은 문학적 소양 때문일까 아니면 작가의 언어적 시비일까. 그리 길지 않은 분량에도 책의 무게는 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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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헤스에 대한 오마주인가. 교묘한 장치인가. <보르헤스와 불멸의 오랑우탄>(웅진지식하우스. 2007)의 첫 장을 읽는 동안 혼란스러움에 힘겨웠다. 난해한 단어의 나열이 아님에도, 편지의 형식을 빌린 따라가기 쉬어 보이는 템포에도 불구하고 독해가 결코 녹녹치 않았던 것은 내 얕은 문학적 소양 때문일까 아니면 작가의 언어적 시비일까. 그리 길지 않은 분량에도 책의 무게는 묵직하게 느껴졌다.

 

초반의 혼란스러움을 조장하는 것은 ‘보르헤스’에 대한 두려운 선입견 때문인지도 모른다. 또한 시종일관 언급되는 ‘애드거 앨런 포우’의 이름 역시 머리를 무겁게 하는데 일조한다. 그뿐이 아니다. 소설 속에 언급되는 많은 작가의 이름의 태반이 생소하다. 이쯤 되면 작가의 글이 시비처럼 느껴지는 것이 결코 억지는 아닐 것이다.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의 숫자 보다 많은 작가들에 대한 사전지식이 없으면 즐길 수 없는 것인가’ 하고 반쯤 포기한 상태로 읽기 시작한 것도 작가의 의도를 시비로 여겼기 때문이다.

 

추리소설에 독자의 추리가 기본이라고 한다면 이 소설이 공평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글의 전개에 숨겨있는 해답의 꼬리가 낯선 작가들의 작품에 숨어있기 때문이다. 소설 속에서 명탐정으로(혹은 ‘양들의 침묵’에서의 ‘한니발’같은 존재)로 등장한 ‘보르헤스’가 용의자 또는 참고인의 자격으로 불러내는 것은 여러 작가들과 그들의 작품 속의 등장인물(혹은 등장 동물, 소재, 개념까지)이다. 보통의 추리소설에서는 드문 일이다. 물론 명장으로 꼽히는 작가와 명작으로 꼽히는 그들의 소설이 극의 모티브가 되거나 단서가 되는 일은 종종 있어왔다. 하지만 이 소설의 그것은 그들 자체가 극을 이끌어간다는 점에서 명백한 차이를 보이며 독자에게 불공평한 요인이 되는 것이다. 아니, 그 작품들을 읽었다고 할지라도 추리의 과정이 그리 녹녹치는 않은 것을 보면 소위 문학적 엘리트를 위한 유희인가 하는 반감마저 들게 된다.

 

그런데 이 소설 재미가 있다. 뭉그적댐 없이 경쾌한 템포로 몰입시키는 매력이 있고, 억지웃음의 장치가 없음에도 어느새 입가에 미소를 짓게 하는 묘한 재치가 있다. 자존심이 상해 생긴 반감으로 읽었음에도 끝에 가서 허벅지를 내리치는 통쾌한 반전도 있다. ‘다 빈치 코드’에서 나왔을 법한 음모론의 냄새도 풍기는 이 소설은 일흔 살의 작가가 고집스럽게 펼쳐낸 엘리트 소설이라는 인식과 더불어 유행에 민감한 대중소설로도 손색이 없다는 인상을 준다.

 

소설의 주가 되는 사건은 ‘밀실살인’이다. 그 살인의 저변에는 다소 의심스러운 단체와 역사적인 사건의 흔적이 있고, 범죄의 주체가 되는 인간의 본성과 한이 있다. 이것을 풀어나가는 과정에 다소 어려운 작품과 작가들로 가득 차 있지만 탄탄한 이야기의 틀을 잃지 않는다. 이것이 기본적으로 이 소설이 잘 짜인 추리소설로 손색이 없는 점이다. 사건과 인물, 그리고 그것을 연결해주는 배경에 의한 탄탄한 틀 위해서 이야기가 펼쳐진다는 말이다.

 

또한, 이 소설은 입가에 미소를 짓게 하는 재치가 있다. ‘보르헤스’와 화자가 주고받는 농담의 소재가 낯선 작품 속의 밑줄 긋기인지라 그로 인한 웃음의 타이밍은 잡기 힘든 것이 사실이지만 등장인물의 면면에 대한 묘사와 무엇보다도 그것을 확연히 드러내는 대화를 읽다보면 실로 웃음이 나온다. 억지웃음의 장치라고 폄하하는 것은 무리가 있지만 사건과 이미지로 웃음을 만들어 내는 것이 식상하게 느껴졌다면 이 소설에서 상쾌한 웃음을 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이미 고전으로 평가받는 소설에서 틀을 갖춘 ‘밀실살인’이라는 소재를 풀어내기 위해서는 거장들에 대한 오마주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는지도 모른다. ‘피카소’의 등장으로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어 미술은 죽었다고 평가한 후대 미술가들의 탄식처럼 추리소설 역시 ‘애드거 앨런 포우’나 ‘보르헤스’ 등의 거장들이 만들어 놓은 틀에서 쳇바퀴 돌 수밖에 없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물론 요즘의 추리소설은 그 나름대로의 매력과 가치가 있다. 지금이 아니면 의미가 없어질 시대상을 담아내며 빠르게 변하는 문화의 배경에서 생생하게 살아있는 것이다. 하지만 일흔의 이 고집스러운 작가의 자존심은 전혀 다른 방향의 글을 탄생시켰다. 거장에 대한 오마주가 난무하지만 전혀 비굴하지 않는 그만의 특이한 소설을 내놓은 것이다.
작가가 살고 있는 브라질이라는 나라가 주는 생경한 풍경과 브라질 하면 떠오르는 열정적이고 빠른 삼바 리듬에 휩싸이며 읽은 괴짜 노인의 이 소설은 그런 이유로 즐겁고 반갑다.

y*******9 2007.02.21.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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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랑우탄의 꼬리를 잡은 보르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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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헤스라는 제목만으로도 알았어야 했다. 이 책을 읽기에 내 이해력이 부족할 거라는 것을. 물론 추리적으로 접근하면 처음에 범인을 금방 알 수 있다. 이런 트릭이야 너무 흔하기 때문에 이젠 신본격 추리소설을 쓰는 일본 작가들을 빼면 누구도 이런 구식 트릭을 구사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이 작품에서 눈여겨봐야 할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제목에서 나와 있듯이 보르헤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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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헤스라는 제목만으로도 알았어야 했다. 이 책을 읽기에 내 이해력이 부족할 거라는 것을. 물론 추리적으로 접근하면 처음에 범인을 금방 알 수 있다. 이런 트릭이야 너무 흔하기 때문에 이젠 신본격 추리소설을 쓰는 일본 작가들을 빼면 누구도 이런 구식 트릭을 구사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이 작품에서 눈여겨봐야 할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제목에서 나와 있듯이 보르헤스라는 작가가 추구했던 사실적 환상 문학이다. 남미 작가들 대부분이 이런 식의 구성을 좋아하다보니 아주 제대로 그 사실과 환상 사이의 늪에 빠져버렸다. 책의 시작이 보르헤스에 대한 편지처럼 펼쳐지는 것도 흥미롭다. 여기에 보르헤스만 있는 것이 아니다. 포우를 연구하는 클럽이 등장하니 포우에 대한 이야기도 빠질 수 없고 그와 비교되는 러브크래프트는 아주 이 작품 속에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니 이 작품을 보기 전에 보르헤스와 포우, 러브크래프트의 작품을 읽어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들만 존재한다면 이 작은 책이 너무도 뻔했을 것이다. 그래서 작가는 의도적으로 그들과 함께 역사를 넘나드는 보르헤스와의 대화를 시도하는 것이다. 존 디와 그의 도서관과 불멸의 오랑우탄에 대해서 말이다. 보르헤스를 작가가 등장시켜 독자를 어지럽게 만들다니 이제 보르헤스는 내게 멀미와 같은 느낌으로 다가올 것만 같다.


보르헤스의 추리, 보르헤스를 탐정으로 등장시키는 대담함을 보이다니 작가의 배짱에 놀랐다. 보르헤스의 그 머리를 다 담아내야 한다는 부담감을 어떻게 견디었는지 아무튼 그로인해 보르헤스가 들려주는 포우와 러브크래프트와 쟁윌, 그리고 존 디와 보헤미안의 도서관과 신비주의 종교와 문자가 가지는 신비한 힘, 거기에 암호까지 등장시키고.

 

여기서 우리는 알게 된다. 작가란 어떤 존재여야 하는가를 말이다. 작가는 글을 쓰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어떤 것도 글로 쓸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이 쓴 글은 허구라 할지라도 나중에 그것이 진짜로 뒤바뀌는 경우도 발생한다. 오랑우탄이 글로써 불멸하려 했던 것은 이것을 말하는 것이다. 허구는 허구여야 한다. 그것이 독자에게 사실처럼 받아들여지기를 작가는 간절히 바라지만 그것이 불멸의 진실성으로 남아서는 안 되고 그렇게 각인되어 왜곡되어서도 안 된다. 이것이 작가가 말하고자 한 것이라 생각된다.

 

허구와 왜곡은 다르다. 작가는 자신이 불멸의 오랑우탄이 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보르헤스가 거울을 두려워한 것도 이런 뜻은 아니었을까. 거울은 같은 것을 만들어내지만 사실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비춰주기만 할 뿐이다. 그런데 우리가 거울을 보고 거꾸로 보이는 상을 진짜라고 믿게 된다면 그것을 보르헤스라 믿게 된다면 어떻게 될 것인지 작가는 그것을 경계한 것이다. 그것이 바로 작가가 꼬리를 잡아서도 잡혀서도 안 된다는 얘기다.

 

작가는 단순한 플롯의 작품 속에 유머러스하면서도 진지한 많은 것을 담아내고 있다. 하지만 그가 일관되게 말하는 것은 제목에 뚜렷이 나타나있다. 보르헤스라는 거울과 불멸의 오랑우탄이라는 있어서는 안 되는 글 쓰는 이들의 자세다. 이렇게 명쾌하고 단순하게 그것을 말하는 작가의 실력이 놀랍다. 다음 작품이 정말 기대된다.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좋은 작가를 만나게 된다. 독자로써 정말 감사할 일이다. 하지만 다음 작품은 좀 쉽게 나왔으면 좋겠다. 아이고, 어지러워라... 그 놈의 오랑우탄 꼬리 한번 빙빙 우주적으로 잘도 돈다.

d*****g 2007.02.16.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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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헤스와 에드거 앨런 포,신화가 어우러진 절묘한 추리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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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헤스의 서적이라면 닥치는 대로 읽고 있던 나는 이 책을 제목만 보고 보르헤스의 서적인 줄 알고 무작정 집어들었다.첫장을 넘기다 보르헤스가 쓴 글이 아님을 알고 무척 실망했다.하지만 보르헤스를 등장인물로 설정 할 정도의 작가라면 그는 분명 보르헤스에게 반해버린 작가일 거라는 생각에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56쪽까지는 지루해서 이 책을 그냥 덮어버릴까? 고민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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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헤스의 서적이라면 닥치는 대로 읽고 있던 나는 이 책을 제목만 보고 보르헤스의 서적인 줄 알고 무작정 집어들었다.첫장을 넘기다 보르헤스가 쓴 글이 아님을 알고 무척 실망했다.하지만 보르헤스를 등장인물로 설정 할 정도의 작가라면 그는 분명 보르헤스에게 반해버린 작가일 거라는 생각에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56쪽까지는 지루해서 이 책을 그냥 덮어버릴까? 고민을 했다.하지만 59쪽 부터는 안 읽었으면 내가 내 발등을 찍었겠구나 !! 싶을 만큼 재미있다.알고 보니 서두 부분을 지루하게 만든 것은 저자의 농간이었다!! 아~추리소설의 답은 항상 직감에 있다!! 그 직감을 계속 밀고 나갔어야 했는데,나는 저자의 농간에 빠져 들어서 읽는 내내 추리라는 것을 하느라고 녹슨 머리를 계속 돌려야 했다 ㅎㅎ최초의 추리소설은 <모르그가의 살인>이 아니라 <오디푸스콤플렉스 >였구나!

 

 우연히  이스라펠 소사이어티 컨퍼런스에 참가한 포겔슈타인은 로트코프씨가 살해당한 것을 목격한다.로트코프의 시신은 거울 앞에 V자 모양으로 놓여 있다.하지만 보르헤스의 작품에서 거울과 부성(夫性)은 사물을 증식시키는 역할을 한다.그래서 V는 X라는 글자로 추리된다.하지만 V가 거울의 어떤 부분과 접촉 되느냐에 따라 W나 M이 될 수 도 있다.보르헤스의 시선으로로 볼 때 글자들은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수준을 벗어난 고대 언어까지 접근한다.

 

 저자 루이스 페르난두 베리시무에게 놀라운 점은,추리소설인데 어쩌면 이렇게도 완벽하게 보르헤스적일 수 있을까!!! 보르헤스적이라는 것은 보르헤스의 전집에서 자주 사용했던 요소들인 거울,미로,우주,영원,카발라,윤회사상,언어적 유희등 모든 것들을 아주 잘 조합시켰다는 사실이다.추리소설에 유머,보르헤스적인 환상문학적인 요소까지 겸비하고 있어서 읽으면서 많이 웃게 된다.저자는 보르헤스라면 이 사건을 어떻게 해결 했을까? 의문을 제기하며 보르헤스의 시선으로 사건을 추리하게 만든다.물론 보르헤스는 애드거 앨런 포를 좋아했다.

 

 에드거앨런 포의 <우울과 몽상>,<보르헤스의 전집1~5>를 읽었다면 이 책을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하지만 추리소설은 항상 직감에 있기 때문에 굳이 읽지 않았어도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읽는데 지장이 없을 것 같다.독자로 하여금 포의 소설과 보르헤스와 고대 소설에서 단서를 찾도록 유도하는 시도가 흥미진진하다.주인공이 보르헤스를 만나고 싶어하는 것은 저자나 독자가 보르헤스를 좋아하고 만나고 싶어하는 마음을 추리소설에 반영한 것으로 해석하고 싶다.보르헤스의 팬으로써 보르헤스에 대해 잘 몰랐던 부분을 이 책을 통해서 더 알게 되는 재미도 있다.또한 책 속에서 언급하는 또 다른 책들을 알게 되는 재미도 있다.
d********3 2009.10.0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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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헤스와 불멸의 오랑우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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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보르헤스를 아느냐고? 누가 나에게 이렇게 물어보면 난 할 말이 없다. 이름만 아주 많이 들어본 사람이다. 게다가 책속의 주인공 이름으로도 심심찮게 나오기도 한다. 이 책 제목과 관련있는 보르헤스에 대해서 조금 더 알아야겠다고 생각해본다. 그러고나서 다시 이 책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다. 이 짧은 책을 읽고 , 많은 사람들이 리뷰를 써놓아서 이 책보다 더 길 것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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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보르헤스를 아느냐고? 누가 나에게 이렇게 물어보면 난 할 말이 없다. 이름만 아주 많이 들어본 사람이다. 게다가 책속의 주인공 이름으로도 심심찮게 나오기도 한다. 이 책 제목과 관련있는 보르헤스에 대해서 조금 더 알아야겠다고 생각해본다. 그러고나서 다시 이 책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다. 이 짧은 책을 읽고 , 많은 사람들이 리뷰를 써놓아서 이 책보다 더 길 것 같은 리뷰들을 읽고 내린 결론이다. 왜냐하면 똑같은 한글로 번역 인쇄해놓은 책을 읽고서도 내가 읽은 내용과 다른 사람이 읽은 내용이 어째 좀 다른 것처럼 느껴지니말이다.

 

그런데 하여간 재미있었다는 것이다. 마치 그 음악에 대해서 잘 몰라도 들으면 좋은 것이 있듯이, 이 책도 보르헤스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은 문장 하나하나에 들어있는 의미까지도 파악해내고 기뻐하지만 잘 모르는 사람도 그 흐름을 따라잡으며 나름대로 즐거웠다는 점이다.

 

이 책을 추리소설이라고도 하고, 팬픽션이라도 하고, 뭐 여러가지로 표현하더라만 나에게는 책들에 관한 이야기로 느껴졌다. 작가에 관한 이야기라고 해야하나, 아무튼 책읽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이 책을 읽다가 더 읽어보고싶어지는 책들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단 난 보르헤스에 대한 것을 더 알아봐야겠다. 그리고 다음에 이 책을 또 한번 읽고 더 깊이 느껴보고싶다.  

YES마니아 : 로얄 k********i 2009.09.30. 신고 공감 0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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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의 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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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 관심을 확 잡아 끄는 이 소설은제목만 요란스러운 소설이 아니었다!   보르헤스는 그의 명성으로 들어본적은 있지만오랑우탄이라니! 그것도 불멸의 오랑우탄이라니!   하지만 소설을 읽을 사람들을 위해각자가 불멸의 오랑우탄의 실체를 밝혀내기를 바라며오랑우탄 얘기는 이제 그만접고.   죽기 전에도 죽은 후에도관계없던 사람들에게까지도 무례한 행동을 일삼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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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 관심을 확 잡아 끄는 이 소설은
제목만 요란스러운 소설이 아니었다!

 

보르헤스는 그의 명성으로 들어본적은 있지만
오랑우탄이라니! 그것도 불멸의 오랑우탄이라니!

 

하지만 소설을 읽을 사람들을 위해
각자가 불멸의 오랑우탄의 실체를 밝혀내기를 바라며
오랑우탄 얘기는 이제 그만접고.

 

죽기 전에도 죽은 후에도
관계없던 사람들에게까지도 무례한 행동을 일삼으며
적으로 만들던 고약한 늙은 피해자로 인해
살인사건임에도 무거운 분위기는 커녕
추리문학의 대가들은 오히려 신이 난 것처럼 보이기 까지 한다.

 

화자처럼 굴던 사람이 보르헤스에게 마지막 꼬리부분을 남기고
드디어 보르헤스를 통해 우리 독자들은
화자를 통해 알게 된 사실이 아닌
진.실.을 듣게 된다

 

꼬리를 부탁하면서 조금 의심이 들긴 했지만
정말로 믿고 싶었고 믿을 수 밖에 없던
순진한 모습의 화자


하지만 배신감보다는 안쓰러움이
그리고 희생자에 대한 분노가 더 큰 묘한 감정이 일었다

 

 

화자인 동시에 유일한 목격자인 포겔슈타인.
그는 정말 보르헤스 생각처럼
보르헤스보다 우위에 있다고 느끼고 싶어서
꼬리를 부탁하며 계속해서 힌트를 준걸까
아니면 자신의 양심을 위해서 그렇게 한걸까

 

또 보르헤스의 의문처럼
또한명의 아니 진짜 목표는 보르헤스 였던걸까?

 

살인사건을 주제로 했지만
사건자체를 탐구하는 중에도 각자의 문학적 견해를 피력하면서
토론을 벌이는 그들의 모습과 그 토론으로
이야기는 활기찼지만
그들의 토론에 언급된 책들을 읽어봐야할 것 같은
알 수 없는 압박감으로
이 책은 결말과 함께 나에게 또 하나의 숙제를 내주었다

 

 

 

s*******r 2007.03.1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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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헤스와 불멸의 오랑우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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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헤스와 불멸의 오랑우탄     추리소설이라하면 풀기 어려운 수수께끼를 제시하고 그것을 풀어나가는 재료가 있어 논리적으로 추리함으로써   해결에 도달하는 것이 본격적인 추리소설이다. 이 책을 처음 접했을때 너무 어렵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정말이지   누가 보내는 편지글이긴 한거 같은데 정말 감이 오질 않았다! 답답한 마음도 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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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르헤스와 불멸의 오랑우탄

 

 

추리소설이라하면 풀기 어려운 수수께끼를 제시하고 그것을 풀어나가는 재료가 있어 논리적으로 추리함으로써

 

해결에 도달하는 것이 본격적인 추리소설이다. 이 책을 처음 접했을때 너무 어렵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정말이지

 

누가 보내는 편지글이긴 한거 같은데 정말 감이 오질 않았다! 답답한 마음도 있었고 이렇게 가다가는 범인은 커녕 책

 

내용 조차 파악할수 없을거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이야기는 읽으면 읽을수록 빠져들게 되고 흥미를 유발하는

 

부분들이 많았다! 그리고 추리소설의 특유한 성격자체 때문인지도 모르겠지만 읽으면서 범인을 유추해 내는 과정 또한

 

책을 읽는 흥미를 주기에 더할나위 없이 좋은 부분인거 같다!! 이 책에서 범인은 역시 아직까지 의아한 부분들이 많은것도 그렇다.

 

이유는 정확히 알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끝까지 꼼꼼히 따져보며 읽을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추리소설은 추리소설을 잘 아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크나큰 재미를 준다! 하지만 나는 추리소설에 대해서는 아는 것보다는 모르는 부분들이 더 많다! 그렇기 때문에

 

시간도 많이 걸렸고 제데로 파악은 했지만 그래도 약간의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기도 하다!!

 

e***0 2007.02.2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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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 1. 서간체 형식의 탐정소설.  처음에는 수신자와 발신자 사이의 이야기에서 소외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읽을 수록 서간체라는 느낌도 별로 들지 않고, 흥미로워져 책장도 빨리 넘겨진다. 2. 중간중간 '쟁윌이 누구지?'와 같은 생소한 것이나 사람이 나올 때마다 보충설명이 나오는데 모르던 것을 새롭게 알 수 있다는 점이 참 좋다.3. 얼마 전 TOEFL L/C교재에서 에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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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

1.
 서간체 형식의 탐정소설.
 처음에는 수신자와 발신자 사이의 이야기에서 소외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읽을 수록 서간체라는 느낌도 별로 들지 않고, 흥미로워져 책장도 빨리 넘겨진다.
2.
 중간중간 '쟁윌이 누구지?'와 같은 생소한 것이나 사람이 나올 때마다 보충설명이 나오는데 모르던 것을 새롭게 알 수 있다는 점이 참 좋다.
3.
 얼마 전 TOEFL L/C교재에서 에드가 앨런 포에 관한 지문을 보고 들은 적이 있었는데 포에 관한 정보, 그의 저서에 관해 자꾸 나오니 읽어보고 싶다. 에드가 앨런 포의 작품이라고는 그의 단편인 <검은 고양이> 밖에 읽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더 궁금하다.
4.
 탐정소설. 뤼팽시리즈나 홈즈시리즈, 애거사 크리스티의 소설들에 빠진 적이 있었다. 정말 초등학교 3,4학년 때는... 특히 4학년 때는 교실 뒤편에 있던 60권짜리 얇은 홈즈 시리즈를 읽는 게 학교 생활의 유일한 낙이었다. 얇은 책으로 된 학급문고였는데 한 권당 30분 정도 걸리는 분량이었다. 그림도 있고. 막 재미를 붙이기 시작해 20권 정도 읽었을까. 담임 선생님이 더럽다고 소각장에 버리라고 내게 지시했다. 하지만 더럽지 않았다. 70-80년대에 나온 책이 그렇듯 표지 도안이 좀 촌스럽고 종이가 매우 노랗고, 오래된 책 냄새가 심하게 났을 뿐이었다. 바보같이 '제가 그냥 가져가겠습니다' 말도 못하고 주저주저 하며, 울면서 가져다 버렸다. 그 날 버린 책들 중에 소심한 내가 건진 유일한 책, 숨길 필요도 없던 버릴 책을 등 뒤에 숨겨 교실로 가져 왔던, 그 책은 <에밀과 탐정들> 이었다.
5.
 90쪽에 모음과 자음에 관한 재미있는 비유가 있다. 영어 발음에 대해 접하면서 새롭게 알게 되었던 자음과 모음 발음에 대한 느낌이랄까, 그런 것들이 이 책에도 적혀있다는 게 놀라웠다. 물론 그 사람들이야 맨날 쓰는 알파벳이고, 모음,자음이겠지만 말이다. 가령, 모음이 자음보다 더 진지하다는 표현이나, 모음을 단열재 삼아 수북이 쌓아놓은 뜨거운 언어라느니, 자음은 모음보다 더 열려있고 경쾌하다느니 하는 것들은, 내가 느꼈던 알파벳이 가지고 있는 느낌, 자음과 모음 발음이 주는 느낌을 적절히 표현하면서도, 또 기차게 멋진 표현이라고 생각됐다. 라틴 문학이 보여주는 재치있고 경쾌하고 뜨거운 표현이다.
 모음과 자음에 관한 얘기 뿐만 아니다. 책 속에 흐르는 이야기를 따라 재치가 넘치는 명랑한 표현들이 자꾸 눈에 와서 걸린다. '세상에서 해골들에게 말 걸고 죽음이라는 개념에 익숙해지는 데 멕시코만큼 좋은 곳이 없다'는 표현도 그랬고, '블라이드'와 '슬라이서'에 대한 구분은 개인적으로 단어가 주는 느낌과 함의의 차이를 충분히 느끼는 것, 자체를 즐기게 했다.
6.
 책을 읽는 동안, 나는 내내 학교 도서관이었다. 햇볕이 좋은 날, 채광이 잘 되는 곳에 놓인 책상에서 친구와 점심을 먹고 졸기도 하고, 책도 읽고 책구경하는 사람들을 구경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며 읽기 좋았던 책이었지만, 주인공 포겔슈타인과 보르헤스의 추리는 지루하게 만들기도 했다. 점심을 먹고난 뒤의 졸음기였을 수도 있겠다. 나른했다. 용의자는 계속 바뀌고, 그 사람들이 용의자일수밖에 없는 설명들은 때론 흥미롭고, 때론 이해가 가지 않았다. 무엇보다, 처음부터 의심이 간 사람들이 나중에 범인인 것도 아니고(두 인물의 대화 자체가 신뢰가 안가게 된다), 애거사 크리스티의 <열 개의 인디언 인형의 비밀>처럼 사건이 계속 진행중인, 어떤 서사구조가 나오는 것도 아니고(보고서라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개인적으로 한가지 문제에 다양한 해결책이 제시된 소설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오히려 굵직한 한 문제에 대한 묘사와 서사, 탐정소설이라면 탐정이 추리를 해가는 과정이 이처럼 번복되는 것보다는 퍼즐조각을 맞추듯 서서히 완성시켜가는 소설을 더 선호하는 편이다.)...... . 작중인물 중에서는 범죄학자 쿠에르보가 나와 가장 비슷한 사람이 아닐까.
 솔직히 사이비 종교에 빠졌다가 헤어나온 기분도 든다. 사이비 종교에 빠졌다가 헤어나왔다면 이런 기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고. 인물들의 지적인 분위기 속에서 이뤄진 대화 자체가. 지적이었던 건지, 지적인 것처럼 보였던 건지, 지적일 뻔했던 건지도 잘 모르겠다.
7.
 대개 책을 읽기 전 목차를 살펴보면 그 책에 대한 정보 내지는 졸가리를 파악할 수 있다. 그래서 대체로 책을 읽을 때 목차도 책표지를 살펴볼 때 같이 살펴보게 된다. 그런데 이 책은 좀 당황스러웠다. 목차가 < 범죄 - X - O - W - M - ◇ - 꼬리 >라는 대체 이 책이 무슨 책인지마저 미스테리했다. 그래서 처음에 더 읽기 힘들었던 것 같다. 무슨 책일까? 에 대한 의문을 버리고, 편하게 읽기 시작하니 책장도 빨리 넘겨지고, 궁극적으로는 책을 읽는 동안 목차가 다른 책의 목차와 마찬가지로 상당히 중요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일련의 졸가리를 이렇게 간단하게 나타낸 것도 다 읽고 난 치금엔 상당한 매력이다.
8.
 추리소설작가들은 어떻게 플롯을 짤까? 어떻게 보면 소설속에 등장하는 추리력이 뛰어난 사람들보다도 더 복잡한 얼개를 놓고 씨름한 사람들일게다. 나는 아서 코난 도일이나 애거사 크리스티나 모리스 르블랑같은 사람들은 (아는 추리작가도 별로 없긴 하지만, 거기에 헨리 라이더 하가드를 더 넣고 싶다. 물론 이 사람을 추리작가라고 봐도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사람의 탐험소설에서 추리소설을 읽었을 때 느낀 섬뜩함, 전율같은 것을 느꼈기에.) 굉장히 똑똑할 것이라는 선입관도 가지고 있다. 처음엔 그냥 <보르헤스와 불멸의 오랑우탄>이라는 제목이 재미있었는데, 의외로 진짜였든 아니든 상당한 지식(꾸민 지식이든 원래 있던 지식이든 말이다)이 없이는 이런 글을 쓰기 힘들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나는 나중에 나이를 많이 먹는다고 해도, 추리소설 비슷한 이야기라도 꾸며볼 수 있을까. 심심풀이로 푸는 퀴즈 비슷한 거라도 제대로 풀어 맞춰볼 수 있을까.
9.
 생각난 김에 에드가 앨런 포, 보르헤스의 미처 읽어보지 못한 작품들을 읽어봐야겠다.
10.
 라틴 문학을 정말 좋아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라틴 문학을 읽을 때마다, '사람의 머리로 이런 생각도 가능한가 보구나' 하고 문득문득 느낀다. 아주 소름끼치게 재미있는, 재미가 없어도 꽤 재치있는. 브라질 작가의 소설을 읽어본 김에 다른 라틴 문학작품도 읽어봐야겠다.

b********r 2007.02.2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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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에 꼬리를 무는 꼬리를 잡아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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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의 칼을 문 불멸의 오랑우탄에 끌려서, 추리소설이 그냥 마냥 좋아서 나도 모르게 신청해버린 조그마한 책은 읽기 시작하자 나에게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많은 노력으로 읽은 책에 대한 느낌은 한줄로 표현이 가능하다. "아는만큼 보인다." 더이상의 수식어가 필요가 없다.   어느 책이든 그러하지만, 소설의 경우에 나는 책의 표지며 안의 쪽날개까지 샅샅이 뒤지고 시작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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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의 칼을 문 불멸의 오랑우탄에 끌려서, 추리소설이 그냥 마냥 좋아서 나도 모르게 신청해버린 조그마한 책은 읽기 시작하자 나에게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많은 노력으로 읽은 책에 대한 느낌은 한줄로 표현이 가능하다. "아는만큼 보인다." 더이상의 수식어가 필요가 없다.

 

어느 책이든 그러하지만, 소설의 경우에 나는 책의 표지며 안의 쪽날개까지 샅샅이 뒤지고 시작하는 습관을 갖고 있다. 보르헤스의 비밀스러운 서재에서 벌어지는 세 사람의 어이없고 황당한 그러나 치밀한 추리!
한명의 소설가와 만화가의 작품에 대한 감상을 본 나는 이 책의 유쾌함을 너무 빨리 기대하게 했다.

.

책을 읽기 전에 알고 시작해야 할게 있다면 이 책은 대개의 추리소설이 그러하듯 이 소설의 큰 기둥이 되어주는 사건은 밀실살인을 다뤘다. 그리고 그 살인 사건에 대한 포겔슈타인의 독백(?)이고, 마지막 마무리는 보르헤스의 글이다. (인칭 설정의 잘못으로 인해, 포겔슈타인에 대한 나의 감정이 녹아들지 않아서인지 시작 부분의 읽기에 애를 먹었다는 어이없는 사실이 안구에 습기를 안겨준다.)

 

그 살인사건의 범인을 쫓기위해 쿠에르보는 과학적인 추론을 하고, 보르헤스와 포겔슈타인은 문학적으로 쫓아간다. 포겔슈타인은 번번히 틀린 증거를 들이대면서 쿠에르보의 수사에 애를 먹인다. 차례를 보는 순간 내용은 전혀 예측할 수 없다. 범죄, X, O, W, M, ◇, 꼬리,,,

이 차례의 양 끝을 제외한 XOWM◇는 살해당한 로트코프 씨의 마지막 죽은 자세이다. 이것까지 알고 들어가면 읽기가 편해지고 재미있어질지 모르겠다.

 

초반의 지루했던 사설들을 벗어나면서 시작된 본격적인 내용들은 살인 사건이라는 주제를 다룬 책임에도 불구하고 유쾌하다. 그 유쾌함에 동참할 수 없었던 '과학적인' 사고방식의 쿠에르보를 제외하고 말이다. 유쾌함에 동참하게 되는 순간 책의 감상을 써준 뒷 페이지의 두명의 작가의 감상문에 무한한 공감대를 형성하게 될 것이다. 책의 유쾌함 속에서 언급되는 여러 작가들과 작품들은 이런 류의 문학에 대한 얇고 좁은 지식에 한계를 안겨주기는 하지만 말이다.

 

보르헤스에 대해서 아는 것이라고는 책 가장 뒤에서 출판사가 알려주는 지식이 전부이고, 소설속에서 나오는 여러 작가들과 작품들에 대한 지식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는 내가 이정도의 재미를 느꼈다면 보르헤스가 누구인지를 알고, 언급되는 작품에 대한 지식이 있던 사람들이 이 책을 접했다면 얼마나 큰 재미를 느꼈을까를 생각해보면 부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배가 아프기도 하다.

 

베리시무의 유쾌한 글 속에서 불멸의 오랑우탄을 불러냈지만, 인간의 상상력은 그 이상의 것도 불러낼 만큼 한계를 모를 것이다. 그렇기에 추리소설이 가진 긴장감과 재미, 그리고 반전은 언제나 나를 소설로 불러낼 것이다.


우리가 믿지 않는 걸 믿으면 놀라운 일들을 경험하게 되겠군요. -p.101
쓰게, 그러면 기억하게 될 것이네 -p.167

YES마니아 : 로얄 c****q 2007.02.1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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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의 힘,,대단한 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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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을 참으로 오랜만에 접해본다. 그런 낯설고 생소함에 추리소설의 기원과 탄생에 관해 정보를 탐색했다. 인간에게는 본질적으로 추리능력이 있다고 한다. 고대부터 전해내려오는 이야기나 소설 속에 추리적인 요소가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해결의 단서를 우리는 해결의 '실마리'라고 표현하고 말한다. 빨강 눈동자가 유독 강하게 인상적인 오랑우탄이 나를 삼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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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을 참으로 오랜만에 접해본다.

그런 낯설고 생소함에 추리소설의 기원과 탄생에 관해

정보를 탐색했다.

인간에게는 본질적으로 추리능력이 있다고 한다. 고대부터 전해내려오는 이야기나 소설 속에 추리적인 요소가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해결의 단서를 우리는 해결의 '실마리'라고

표현하고 말한다.


빨강 눈동자가 유독 강하게 인상적인 오랑우탄이 나를 삼킬 듯 하다.

한 장을 넘겨 보니 빨강 표지에 저자에 관해 글이 실려있다.

책 크기는 딱 손에 들고 다니며 읽기 편한 정도이며 두께도 그다지 부담스럽지

않았다.

안의 글자들도 조밀하지 않음이 혹여 지루함이 들까 하는 배려가 아니였나 모르겠다.

브라질의 원로 작가인 루이스 페르난두 베리시무가 쓴 이 소설은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린 추리문학대회에서 발생한 밀실 살인사건의 범인을 추적하는 과히 놀랄만한  추리 게임이 벌어진다.

그 속에서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황당한 그러나 치밀한 추리가 돋보인다.

정작 누가 범인인가에 대한 관심보다는 추리에 많은 의미를 던진 듯 하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추리소설은 항상 그 뒤엔 반전이 숨어있다고 생각하고

바라보게 된다.

이 소설 역시 기가막힌 반전이 숨어있었고 추리라는 요소에 엉뚱함과 상상이

가미된 새로운 추리의 획을 긋는 작품인 것 같다.

아무 연결성 없어 보이던 엉뚱한 추리들이 어느 순간 필요 요소적인 결정체가

되어 사건 뒤에 감춰진 진실을 보여준다.추리 자체가 그 결정체를 암시해 준

그 비밀을 알려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보르헤스와 불멸의 오랑우탄의 기막힌 반전이라 생각한다.

새로운 추리소설의 짧고도 긴 상상의 열차를 탄 기분이다.



k*****5 2007.02.10.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