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3)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33%
  • 리뷰 총점8 67%
  • 리뷰 총점6 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0.0
  • 40대 9.0
  • 50대 8.0

포토/동영상 (1)

리뷰 총점 종이책
춘추시대의 역사서를 읽는 이유..
"춘추시대의 역사서를 읽는 이유.." 내용보기
[춘추]란 춘추전국시대 공자가 살았던 노나라의 역사책을 말한다. 공자가 주왕조시대 제후국이었던 노나라의 역사기록과 자료를 산삭수정刪削修正하여 편찬한 [춘추]는, 노나라 14대 임금인 은공 원년(BC722년)부터 27대 임금인 애공 14년(BC481년)까지 242년간의 역사를 기록한 책이다. 책의 제목이 된 춘추는 춘하추동의 사계절 중 봄과 가을을 뽑아 줄인 말로 시간의 흐름을 의
"춘추시대의 역사서를 읽는 이유.." 내용보기

[춘추]란 춘추전국시대 공자가 살았던 노나라의 역사책을 말한다. 공자가 주왕조시대 제후국이었던 노나라의 역사기록과 자료를 산삭수정刪削修正하여 편찬한 [춘추], 노나라 14대 임금인 은공 원년(BC722)부터 27대 임금인 애공 14(BC481)까지 242년간의 역사를 기록한 책이다. 책의 제목이 된 춘추는 춘하추동의 사계절 중 봄과 가을을 뽑아 줄인 말로 시간의 흐름을 의미 한다. 춘추전국시대의 춘추라는 말도 바로 여기에서 따온 것이며, 이후 각 나라에서는 역사책을 가리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춘추]의 경문은 간략하고 추상적이어서 이해하기가 매우 어렵게 되어있다고 한다. 그러기에 경의 뜻을 풀어 설명하는 별도의 서적이 필요한데 이를 전이라 부른다. [춘추]를 해설한 전은 많았지만 현재까지 전해오는 것은 공양전, 공량전, 좌전 세 권으로, 이를 춘추삼전이라 부른다. 춘추삼전은 서술방식에서 서로 차이를 보인다. 공양전과 공량전은 질문과 답변형식으로 되어있으며 경문의 의례를 해설하는데 중점을 두어 경학經學으로 불리지만, 좌전은 경문에서 언급된 사건, 사실에 대해 상세하고 구체적으로 서술하며 사실적 배경설명에 중점을 두어 사학史學으로 불린다고 한다. 이 중 공양전은 공자가 친히 구술하여 제자들에게 전해주었다고 한다. 이렇게 구이상전口耳相傳으로 전해지다 한대漢代 이전의 이른 시기에 공양고가 저술하기 시작하여 한경제漢京帝 때 공양수에 의해 책으로 저술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따라서 [춘추공양전]이란 공양씨가 전을 쓴 춘추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진이 멸망하고 한이 들어서면서 유학은 관학으로 입지를 굳힌다. 더불어 공자가 구술했다는 공양전도 그 성가를 날리지만, 동한東漢 이후에는 사실적인 배경설명에 충실한 좌전이 성행하기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러나 공양전은 청대淸代에 이르러 고증학자들에 의해 다시 각광을 받기 시작했고, 청말기에는 유신개혁운동가들의 이론적, 철학적 무기가 되었다고 한다.

 

[춘추]를 읽다 보면 매년 똑같은 구절이 반복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춘추]의 경문이 기본적으로 매년 춘하추동 계절별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무런 일이 없는 경우에도 사계절 중의 한 계절이 지나면 반드시 다음 계절의 첫 번째 달을 기재했다. 그것은 [춘추]가 편년체의 역사서인 까닭에 사계절이 모두 갖추어진 연후에 비로소 한 해가 이뤄진다고 보았던 것과 무관하지 않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장공(莊公) 원년

 

[] 元年원년, , 王正月왕정월.

[] 公何以不言卽位공하이불언즉위? '春秋'君弑춘추군시. 子不言卽位자불언즉위. 君弑則子何

     以不言卽位군시측자하이불언즉위? 隱之也은지야.  孰隱숙은? 隱子也은자야.

 

[] 원년, , 주력 정월

[] 장공의 즉위를 왜 말하지 않았나? "춘추'에서는 임금이 시해되고, 그 아들이 계승할 경우

     즉위라고 기재하지 않는다. 임금이 시해된 경우 어째서 그 아들의 즉위를 기재하지 않는가?

     애통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누구를 애통하게 여기는가? 그 아들을 애통하게 여긴다.

 

장공은 노나라 16대 임금이며, 장공 원년이란 장공이 즉위한 해 BC693년을 일컫는다. 경만 보고서는 도무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알 수가 없다. 그래서 공자는 전에서 질의응답 형식으로 장공 원년에 일어난 일들을 설명하고 있다. 쉽게 말해 [춘추공양전] [춘추]의 해설서인 셈이다.

 

공자는 [춘추]를 크게 세 단락으로 나누었다. 자신의 고조부, 증조부 시대의 일로 전해들은 것을 기록했다는 소전문세所傳聞世, 조부 시대의 일로 직접 들었다는 소문세所聞世, 그리고 공자자신과 부친 당대에 목격한 일이라는 소견세所見世가 그것이다. 그는 소전문세를 난세를 다스리는 시기로, 소문세는 안정되고 평안한 승평의 시기로 그리고 소견세는 천하태평이 달성되는 시기로 생각하면서 [춘추]를 썼다고 한다. 실제는 춘추시대 전체가 난세에 해당되었지만 공자가 이렇게 구분한 것은 사회발전의 추세는 변혁을 통해 점진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관점을 제시한 것이라고 한다.

 

[춘추]는 말 그대로 노나라의 역사서이다. 우리가 굳이 이해하기 어려운 중국 노나라의 역사서까지 봐야 할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별로 할 말이 없다. 그렇지만 춘추전국시대를 이해하기 위해서, 또 공자의 유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번쯤 읽어볼 만한 책임에는 분명하다. 조선시대 우리 선조들은 기본적으로 공부해야 하는 책으로 사서삼경(오경)을 들었다. 사서란 [논어], [맹자], [대학], [중용]을 그리고 삼경이란 [시경], [서경], [주역]을 말한다. 여기에 [예기], [춘추]를 더하여 오경이라 부른 것만 보아도 [춘추]를 얼마나 중요시 했는지 알 수 있다. 물론 현대는 조선시대가 아니다. 또한 당시 사람들이 [춘추]를 읽었던 것은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동아시아 정치구조상 어쩔 수 없는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대에 사는 우리가 [춘추]에서 읽어야 하는 것은 노나라의 역사가 아니라 바로 공자가 주장했던 변혁과 발전적인 역사관이다. 지금의 우리사회를 바라보면 그것이 얼마나 절실한 것인지를 누구라도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k*****1 2016.02.24. 신고 공감 5 댓글 2
리뷰 총점 종이책
춘추공양전 - 공양자 외
"춘추공양전 - 공양자 외" 내용보기
<춘추공양전>(인간사랑)의 옮긴이(곽성문)의 말에 따르면 이 책을 완역하기 위하여 많은 시간과 공을 들여야 했다고 한다. 그러한 노력 끝에 국내 최초 완역본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방대한 양의 책으로 다가왔기에 사실 이 책을 읽는 동안 꽤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다행스럽게도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역사라는 장르이기 때문에 조금씩 나누어 읽어도 그 흐름을 유지할 수 있었기 때
"춘추공양전 - 공양자 외" 내용보기


 <춘추공양전>(인간사랑)의 옮긴이(곽성문)의 말에 따르면 이 책을 완역하기 위하여 많은 시간과 공을 들여야 했다고 한다. 그러한 노력 끝에 국내 최초 완역본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방대한 양의 책으로 다가왔기에 사실 이 책을 읽는 동안 꽤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다행스럽게도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역사라는 장르이기 때문에 조금씩 나누어 읽어도 그 흐름을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에 늦었지만, 완독을 할 수 있었다. 막상 완독을 한 이후에 이 책에 대한 리뷰를 어떻게 써야하지 사실 고민스러웠다. 역사에 관심이 있었지만, 나 또한 <춘추공양전>은 처음으로 읽은 책이었고, 심지어 이 책이 유교 경전의 하나인 <춘추(春秋)>에 대한 주석서이므로 이해하기란 결코 쉽지 않았다. 


 <춘추(春秋)>란 중국에서 역사서의 의미로 통상 사용되었다고 한다. 봄과 가을을 의미하는 두 글자는 우리가 4계절을 표현하는 한자인 <춘하추동(春夏秋冬)>에서 차용한 것으로서 결국 1년을 의미하는 것이고 나아가서 이러한 계절의 반복은 세월의 흐름을 의미하는 용어로 쓰여진다. <춘추공양전>은 노나라의 역사를 다룬 유교 경전 <춘추(春秋)>에 대한 경(經)과 전(傳)으로 구성된 일종의 주석서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경(經)과 전(傳)은 각각 편년체 방식으로 집필된 <춘추(春秋)>의 역사적인 사실과 그에 따른 주석으로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또한 <춘추(春秋)>는 원래 노나라의 사관에 의하여 기록된 역사서인데, 이것을 공자(孔子)가 독자적인 역사 의식과 가치관을 반영하여 필삭을 하였기에 유교에서는 하나의 경전으로 자리매김을 하게 되었다. 따라서 <춘추(春秋)>에 대한 해석이라는 것은 결국 역사에 대한 공자(孔子)의 사상에 대한 연구와도 통하는 것이 된다. 


 단순한 역사서가 아닌 유교 경전인 <춘추(春秋)>에 대한 해석은 다양한 방법으로 전개가 되었는데, <춘추(春秋)>에 대한 3 가지 주석서가 바로 춘추삼전이라 불리우는 <좌씨전>, <공양전>, <곡량전>이다. <좌씨전>은 <춘추(春秋)>에 기록된 사실을 바탕으로 역사적인 사실을 다루고 있어서 역사서로서의 성격이 강한 반면에 <공양전>과 <곡량전>은 <춘추(春秋)>의 경(經) 자체에 대한 주석에 중점을 두고 있다. 특히 <춘추공양전>은 공양씨와 공양학의 여러 학자들이 주석을 달아서 집필한 서적으로 알려져 있다. 


 기원전 722년부터 기원전 467년까지 255년간의 노(魯)나라의 역사에 대하여 <춘추공양전>은 무엇을 논하고자 하는 것일까? 앞서 언급하였지만, 이 책이 <춘추(春秋)>에 대한 주석서이니만큼 <춘추(春秋)>에 대하여 먼저 알아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 시점에서 <춘추(春秋)>에 대해서 논한다는 것은 많은 내용들이 다루어져야 하기 때문에 <춘추공양전>을 읽으면서 느낀 개인적인 생각을 간단히 정리해본다면 노(魯)나라의 역사라는 점에 눈길이 간다. 당시 춘추전국시대에는 많은 나라들이 존재하였고, 사실 노(魯)나라는 춘추오패라든지 전국칠웅과는 거리가 먼 나라였다. 그렇다고 단순히 공자(孔子) 본인이 태어난 나라여서 노(魯)나라의 역사를 <춘추(春秋)>로 집필한 것은 아닐 것이다. 비록 노(魯)나라가 천하 패권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시조가 바로 공자가 그토록 이상적인 군자로 여기던 주 문공(희단)이었다는 사실과 역시 이상적인 국가로 여기던 서주 시대의 예법을 그나마 유지하던 나라가 바로 노(魯)나라였기에 그랬던 것은 아니었을까?


 노(魯)나라가 기원전 1046년부터 기원전 256년까지 존재한 나라였다고 한다면 공자가 집필을 한 <춘추(春秋)>는 노(魯)나라의 전성기부터 점점 쇠퇴해져가는 시기를 다루고 있음을 눈치챌 수 있다. <춘추(春秋)> 자체를 3개의 시기로 나누어 각각 공자(孔子)의 고조부/증조부, 조부, 그리고 아버지와 자신의 시기로 구분짓기도 하지만, 일단 <춘추공양전>을 처음 읽는 경우라면 우선 이 책에서 처음으로 등장하는 은공과 환공이라는 노(魯)나라의 강력한 시기부터 시작되어 대부의 권력 다툼으로 인하여 월나라로 피신하여 거기에서 숨을 거두는 애공의 시기까지 다루고 있기 때문에 노(魯)나라의 역사에 익숙치 않다면 전성기에서 점차 몰락하는 흐름을 보여주고 있음을 인지하고 읽으면 도움이 될듯하다.


 사실 <춘추공양전>에 등장하는 노(魯)나라의 역사가 그리 새로운 것은 아니다. 춘추시대와 전국시대의 다른 나라에서 나타났던 모습들이 바로 노(魯)나라에서도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노(魯)나라의 역사에 대하여 공자(孔子)는 자신의 역사의식과 사상을 반영하여 기술하게 된다. 사실 이 책을 한번 읽고 <춘추공양전>의 특징을 모두 인지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나마 내가 느낀 부분은 바로 공자(孔子)가 남긴 경(經)이 상당히 간단하다는 사실이다. 단순한 하나의 문구이기 때문에 이것이 왜 역사로 기록이 되었는지 의문이 든다. 이 책의 전언(前言)에 따르면 '서례(書例)'라 불리우는 경문의 서술에 대한 일관된 원칙을 제시하고 있다. 즉, 기재할 필요가 없는 내용이 기재된 경우 생각해볼 것이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소공 25년

[경] 가을, 7월, 상순의 신일(辛日), 기우제를 지냈다. 하순의 신일에 또 기우제를 지냈다.

[전] 한 달에 두 차례나 기우제를 지냈으니 무슨 까닭인가? 하순에 지냈다는 기우제는 실상 기우제가 아니고, 소공이 기우제를 핑계로 군중을 끌어 모아 권력을 잡고 있던 계씨를 축출하려던 거사였다.

 - p. 666 -

 이 책에 실려 있는 이 문구를 보면 서례(書例)에 위배되는 경우 어떠한 내용이 다루어지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통상적인 행사는 기재하지 않는다라는 서례(書例)의 원칙이 있는데, 위의 문구를 보면 기우제를 연달아 2번 지낸 것에 대한 [경(經)]이 있다. <춘추(春秋)>에는 바로 [경(經)]만이 존재하기 때문에 기우제를 2번 지낸 것에 대한 기록만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기 어렵다. 이러한 문구에 대한 해석이 바로 <춘추공양전>의 [전(傳)]에 해당되어 주석으로 기록된 것이다. 왜 공자(孔子)가 통상적인 행사를 기재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위배하고 해당 문구를 남겼는지 이해가 되는 대목이다. 실제 역사적으로 이 부분은 소공이 계손씨, 숙손씨, 맹손씨의 삼가와 치열한 권력다툼을 벌이다가 결국 진나라에서 객사하였다는 역사적인 사실과 연결되는 부분이다. 


 이러한 <춘추공양전>의 형식적인 측면과 더불어 내용적인 측면에서는 흔히 말하는 '춘추필법(春秋筆法)'의 표현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대의명분을 바탕으로 역사적인 비판을 볼 수 있는데, 이는 공자(孔子)의 유교 사상 중에서 충효 사상을 강조한 점을 본다면 수긍이 되는 부분이다. 심지어 난세라 불리우는 당시 시대상을 떠올린다면 그러한 모습은 더욱 강조되고 있다. 

선공 2년

[경] 가을, 9월, 을축일, 진나라의 조돈이 그 임금 이호를 시해했다.

 - p. 416 -

 이 부분은 이 책의 해설을 통하여 알게 돈 부분인데, 진나라의 신하인 조돈이 직접 그가 섬기던 왕을 살해한 것은 아니지만, 왕에게 자주 간언을 하다가 왕의 노여움을 받아 피신한 상황에서 자신의 친척이 그 왕을 살해하고 조돈을 불러들였는데, 이러한 조돈을 임금의 시해범이라 평한 것이다. 사실 이 대목은 일반인의 관점에서 보면 너무 과한 표현이라 할 수 있지만, 춘추필법(春秋筆法)은 그를 왕의 시해자로 단호하게 평하고 있는 것이다.


 <춘추공양전>을 읽으면서 과연 제대로 읽었나 싶은 생각이 들정도로 사실 쉽지 않았다. 한번 읽고 이해를 한다는 그 자체가 분명 불가능한 것이었을 것이다. 단순히 역사에 대한 해석이 아니라 유교 경전으로 불리우는 <춘추(春秋)>에 대한 주석이 주를 이루다보니 그 안에 녹아 들어있는 유교 사상에 대한 부분도 깨달아야 비로소 이 책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또한 청나라 말기에 고증학자들이 <춘추공양전>을 저술한 공양학에 대한 이해를 통하여 의리를 기본으로 하여 변혁적인 역사의식을 가지고 현실에 반영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진만큼 이 책은 고루한 경전의 주석서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도 빠른 변화 만큼이나 전통적인 가치관이 무너지는 시기여서 <춘추공양전>에 실려있는 다양한 지혜와 역사적인 관점을 토대로 청나라 말기의 캉유웨이가 그랬듯이 나름의 변혁적인 방법을 생각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한번 완독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린 책이지만, 결코 한번이 아닌 여러번 읽고 생각해봐야 할 책이 아닌가 생각된다.

g*******7 2016.05.17. 신고 공감 3 댓글 8
리뷰 총점 종이책
동양의 대표적인 역사철학서
"동양의 대표적인 역사철학서" 내용보기
《춘추》를 주석한 책은 대표적으로 세 가지인데 이를 열거해보면 다음과 같다. 《춘추좌전》, 《춘추곡량전》, 《춘추공양전》. 이 세가지 고전은 춘추삼전으로 불려왔으며, 공자가 편찬한 《춘추》를 이해하는데 길잡이 역할을 하였다. 《춘추》는 유교의 사서오경에도 들어가는 귀중한 역사책이지만, 사실 《춘추》 자체의 기록은 매우 소략하고 간략하게 기록되어 있다. 거추장스러운
"동양의 대표적인 역사철학서" 내용보기

《춘추》를 주석한 책은 대표적으로 세 가지인데 이를 열거해보면 다음과 같다. 《춘추좌전》, 《춘추곡량전》, 《춘추공양전》. 이 세가지 고전은 춘추삼전으로 불려왔으며, 공자가 편찬한 《춘추》를 이해하는데 길잡이 역할을 하였다. 《춘추》는 유교의 사서오경에도 들어가는 귀중한 역사책이지만, 사실 《춘추》 자체의 기록은 매우 소략하고 간략하게 기록되어 있다. 거추장스러운 수사가 없는 짧은 단문 형식의 메모글로 역사를 서술하였기에, 《춘추》 자체만을 읽는 것은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춘추》가 이렇게 소략하게 기록됐기에 《춘추》를 연구했던 후학들은 독자적인 주석을 가미해 《춘추》의 뜻을 확장하고 《춘추》의 뜻을 명확하게 설명했으며, 《춘추》가 다루던 배경을 주석으로 자세하게 설명했다.

  흔히 오늘날 《춘추》를 말하면 대부분 《춘추좌전》을 의미하는데, 그만큼 《춘추좌전》은 춘추의 주석서 중 가장 권위 있는 주석서로 인정받았으며 이런 시각은 오늘날까지 이어졌다. 《춘추좌전》은 《춘추》의 소략한 기록의 배경을 방대하게 풀어내어 설명했다. 기본적으로 《춘추》는 노나라 역사를 중심으로 전개되지만 《춘추좌전》에서는 노나라 역사도 역사지만 노나라 역사가 진행될 때 제후들과 주변국의 움직임을 굉장히 디테일하게 서술하고 있었다. 또한 간략하기 그지없는 《춘추》의 본문을 부연하고 해설하는 경우도 많았다. 물론 《춘추좌전》이 《춘추》가 다루는 내용을 그저 부연하고 설명하는 것에 그치지는 않았다. 《춘추좌전》의 저술 목표는 '역사적 사건에 대한 정당한 시비'에 있다. 그렇기에 결국 본문을 부연하고 주변 나라들의 동향을 자세하게 기록한 이유 역시 올바른 시대적 판결이라는 목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춘추공양전》과 《춘추곡량전》 역시 기본적으로 《춘추좌전》과 비슷한 목적하에 편찬됐다. 다만 《춘추좌전》에 비해 《춘추공양전》과 《춘추곡량전》은 역사에 가깝기보다 철학에 가까운 저서들이다. 《춘추좌전》은 공자가 편수했다는 《춘추》 본문도 중시하지만 그 외의 주변국의 상황이나 역사적 사례 등등을 설명하는데 있어서도 공을 들이고 있는데 반해, 《춘추공양전》과 《춘추곡량전》의 내용은 철저하게 《춘추》 본문의 경문을 벗어나지 않는다. 《춘추좌전》이 경문을 넘어선 배경까지 다루는데 반해 《춘추곡량전》과 《춘추공양전》은 철저하게 경문 중심이다. 두 책은 《춘추》의 경문이 어떤 연휴로 기록됐으며 기록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 소상하게 밝히고 있다. 이런 기술법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두 책은 《춘추좌전》에 비해 유교적 이데올로기가 강조됐다는 부분이다. 《춘추》의 원문을 중시하여 밝힌다는 것은 이를 정리했다는 공자를 드높이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으며, 그렇기에 《춘추곡량전》과 《춘추공양전》은 엄밀히 따지자면 역사를 바탕으로 한 철학서라고 해도 무방하다. 반면 《춘추좌전》의 경우는 전형적인 역사책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춘추곡량전》과 《춘추공양전》은 둘 다 유학을 중심으로 철학적인 해설이 붙어졌지만, 그 정도의 차이가 있다. 《춘추곡량전》은 유학적 이념이 매우 깊은 저서지만 《춘추공양전》은 유학적 이념에 충실하되 현실적인 힘의 관계도 나름 고려하는 시각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춘추공양전》의 시각은 대표적으로 들끓는 패자 국가들과 주나라 황실에 대한 해석에서 볼 수 있다. 《춘추》와 세 주석서의 공통된 주제는 유학적 이념에 충실한 것이고, 그러한 유학적 이념이 지향하는 목표는 주나라 봉건제의 질서를 강조하는 것이다. 따라서 세 책은 모두 주나라 황실에 대한 대의명분을 강조한다. 그러나 《춘추곡량전》은 무조건적으로 주나라 황실을 옹호하는 반면, 《춘추공양전》은 주나라 황실과 봉건제를 옹호하면서도 한편으로 신망을 잃은 주나라 황실 역시 비판적인 서술로 기록했다. 비유하자면 《춘추곡량전》의 입장은 윗물이 똥물이더라도 아랫물은 그저 맑아야 한다는 논리고, 《춘추공양전》의 논리는 아랫물이 맑아야 하긴 하는데, 윗물 역시도 맑음을 유지해야 하니, 이런 혼란은 결국 두 물 모두에서 비롯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렇기에 두 책은 유교 이념에 치우친 역사 철학서지만, 나름의 균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 쪽은 《춘추공양전》 쪽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춘추공양전》보다는 《춘추좌전》 쪽이 더 재미있었지만, 고대 동양에서 역사를 철학적으로 풀이한 《춘추공양전》 역시도 흥미롭게 읽었다. 《춘추공양전》의 핵심은 바로 '대일통 사상'이다. 즉 문자 그대로 하나로 통일된 것을 의미하는 '대일통 사상'은 《춘추》와 《춘추공양전》의 핵심적인 키워드다. 하나로 통일된다는 것은 결국 무너지고 붕괴한 주나라 봉건주의 시스템의 복원을 의미하는 것이고, 즉 이를 역사적으로 밝히기 위해 공자는 《춘추》의 경문을 지었다는 것을 《춘추공양전》은 강조한다. 공양학파의 논리를 정리해보자면 결국 공자는 《춘추》를 저술함에 있어 대일통 사상에 입각하여 역사를 정리하였고, 《춘추공양전》은 그런 공자의 숨겨진 대일통 사상을 자세하게 드러내어 공자의 집필 공식을 밝힌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런 대일통 사상은 분봉제를 바탕으로 한 봉건주의 질서를 강조하는 것이지만 이것이 순수한 지방 영주들 위주의 정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대일통 사상의 핵심은 천자로 대표되는 막강한 제왕을 중심으로 정치가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왜 《춘추공양전》이 한나라 시기에 유행했는지를 살펴보면 그 의도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중국 한나라 시대에는 분봉제를 기초로 한 중앙집권 형태 국가였다. 그렇기에 지방 자치를 의미하는 분봉제와 황제의 권력을 강화하려는 중앙집권제가 혼합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이 이질적인 정치제도를 잘 굴러가게 하려면 분봉을 받은 제후국은 지방에서 실력을 과시하기보다 중앙 정부의 명령만을 잘 받도록 관리해야만 했다. 또한 중앙에 위치한 황제 역시도 지방 영주들로부터 지지를 받아야만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을 만방에 넓힐 수 있었다. 이런 환경은 필연적으로 《춘추공양전》이 지향하는 대일통 사상을 떠올리게 만든다. 그래서 한나라 대에 황제들과 중앙 관리들은 의도적으로 《춘추공양전》을 드높였고, 그래서 한동안 성행했다고 한다. 오늘날 중국이 시행하는 소수 민족 정책 역시도 어찌 보면 대일통 사상을 떠올린다. 결국 중앙 한족으로 통일하는 것. 소수민족의 자치를 인정하는 것 같으면서도 결국 의도를 뜯어보면 궁극적으로 한족으로부터의 예속, 종속을 의미하는 것이니까 말이다.

  《춘추공양전》의 또 다른 특징은 바로 공자가 다룬 노나라의 역사를 시기적으로 세 부분으로 나눠 해석했다는 부분이다. 이를 두고 책에서는 '장삼세설'이라고 이야기한다. 이 세 부분은 난세(소전문세), 안정과 발전기(소문세), 태평세대(태평세)로 구분되는데, 유학이 추구하는 이상적인 국가의 발전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다는 점이 눈에 들어온다. 《춘추》의 경문은 공자의 죽음으로 끝맺고 있는데, 결국 국가 발전의 마지막 단계인 태평성대는 공자라는 성인의 등장과 그의 철학이 세상에 퍼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다만 이런 기록과는 다르게, 국제 정세와 노나라의 정세는 시간이 흐를수록 패권주의로 흐르고 있었다. 《춘추공양전》의 장삼세설은 이념적인 측면에서 강조됐지만, 정작 현실은 《춘추공양전》의 기록과는 다르게 더더욱 난세로 치닫고 있었다. 기록대로라면 노나라의 발전과 중원 대륙의 발전은 태평성대로 끝나야 함에도 불구하고, 춘추시대가 흐르면 흐를수록 국가 간의 질서와 천자와 제후 간의 균형은 무너져갔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장삼세설을 통해 나는 역사를 파악하는데 있어 하나의 주관과 이데올로기를 고집한다면 그것은 필연적으로 역사의 왜곡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깨달았다.

  《춘추공양전》은 역사 기록을 유교 철학적 이데올로기에 입각하여 잘 풀어낸 명저지만 분명한 사실은 그 유학적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힌 시각 때문에 역사의 의미를 축소하거나 왜곡된 시각으로 바라보기도 하였다. 나는 역사를 해석함에 있어서 하나의 주관을 가지고 집필을 하는 것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이다. 물론 일정한 집필 방향이 있으면 좋겠지만 때론 집필 방향과 어긋난 역사적 사건이 일어날 경우, 역사가는 진실에 입각하여 기록을 하기보다, 자신의 집필 방향 (어떠한 이념이나, 목적 따위)에 충실하여 진실에 입각한 역사를 져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내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역사가는 자신의 관념 역시도 오류가 있을 수 있다는 열린 마음을 바탕으로 사료를 대하고 선별하며 해석해야만 한다. 따라서 이런 나의 역사적 주관에 입각한다면 《춘추공양전》의 장삼세설은 비판적인 눈으로 볼 수 밖에 없다. 

  집필 방향이 아쉽긴 했어도 재미있게 읽었다. 무엇보다 까마득한 고대에, 역사를 두고 이토록 진지하게 철학적으로 풀어낸 저서가 있다는 것 자체가 놀라웠다. 《춘추공양전》을 읽으면서 앞서 읽었던 《춘추좌전》이 많이 생각났다. 두 저서는 같은 《춘추》를 해설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교될 수밖에 없는 책이다. 두 책이 추구하는 춘추필법의 공통점은 주나라 봉건시대로의 회귀를 지향한다는 점이고 차이점은 집필법이 상이하다는 점이다. 《춘추좌전》은 전형적인 스토리텔링 기법을 통해 사건을 평가하는 정통 역사서고, 《춘추공양전》은 스토리텔링보다 《춘추》의 경문이 어떻게 집필됐는지 치밀한 질문을 통해 의미를 찾는 역사 철학서다. 따라서 두 책은 같은 내용을 바탕으로 했지만 집필 스타일로 인해 전혀 다른 장르의 책으로 갈라졌다. 《춘추공양전》의 문답법을 읽다 보면 서양의 소크라테스 문답법이 생각났다. 소크라테스는 플라톤의 《대화편》에서 상대의 의견에 꼬리에 꼬리를 무는 물음을 구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마찬가지로 《춘추공양전》 역시 《춘추》 본문의 집필 의도를 밝히기 위해 끊임없이 물음에 물음을 거듭하고 있었다.

  역사철학서라 장르 자체에서 내용이 딱딱할 수밖에 없는 《춘추공양전》이지만, 중간중간에 역자의 센스 있는 해설이 있어서 책의 이해에 큰 도움을 준다. 해설은 모든 대목이 있진 않고 복잡한 사건이거나, 부연 설명이 필요한 부분에만 나와 있는데, 괜찮은 편제 같았다. 해설이 길지도 않고 적당한 부분에만 있어서, 본문에 집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춘추좌전》과 《춘추공양전》을 읽었으니, 《춘추곡량전》도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춘추곡량전》까지 읽어야 비로소 '춘추삼전'을 읽었다고 할 수 있으니까.

k******m 2018.06.01.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