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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답사 가기 전에 읽고 기록 안하고 서가에 꽂아 버린 책이다. 오늘 다른 책 검색하다 찾아보니 리뷰가 한 편도 안 달려 있기에 안타까워서 읽은 지 몇 달 지나 세세한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몇 자 적는다.
한 마디로, 이 책 참 좋다. 책을 읽으면서 몇 번이나 '아, 행복해!'하고 혼자 중얼거렸는지 모른다.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면 책 갈피에서 은은한 차향이 풍기는 것 같고 온 정신과 몸이 기분좋은 노곤함에 빠져든다. 마리님과 쟈파님, 베토벤님, 까탈님, 관객,,, 이번에는 딱 친구분들을 생각하며 낚시줄을 드리운다. 친구분들, 이 책 읽으시라, 내가 사랑하는 당신들의 취향에 딱 맞을 책이니까.
이 책은 베이징의 낡은 뒷골목인 후퉁에 숨은 사합원과 회관에 대해, 그곳에 머물던 중국 근현대사의 기라성같은 문인과 혁명가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중국 근대문학의 대가 루쉰이 살던 사오싱 회관, 변법자강운동의 캉유웨이가 살던 미시 후통의 난하이회관, 중국의 국부 쑨원이 살던 주차오지에의 중산회관, 마오쩌둥이 잠시 머물렀던 란만후통의 후난 회관,,, 등등 베이징의 수많은 회관과 그곳을 거쳐간 유명인이 이야기는 역사책에서 건조하게 만나던 이들을 그들의 공간에 담긴 육체가 있는 존재로서 다시 만나게 해 준다. (중국의 회관이란 명, 청시절 동향 사람들에게 주거를 제공하고 모임의 장소를 마련해주는 목적으로 수도 베이징등 대도시에 설립한 일종의 관사이다)
회관 아닌 사합원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롭다. 미로같은 후통을 보물찾기하듯 더듬어 가 보면 위안스카이(원세계)를 피해 차이어가 베이징 미엔화후통을 탈출하는 이야기를 만나게 된다. 베이징 대학 초대 총장이었던 차이위안페이(채원배)가 살던 동청취 동탕즈후통의 옛집, 반청 혁명가 장즈지엔과 그의 딸 장한즈와 결혼한 중국 외교계의 거물 차오관화, 2대의 역사적 유명인이 살았던 스지아후통, 아, 나는 동청취 베이고우옌 후통 23호 량치챠오(양계초)의 사합원에, 시산티아오의 루쉰의 서재 '호랑이 꼬리'에 가 보았어야 했다! 이 책에서 나는 좁은 후통을 지나치는 그들의 낡은 옷소매자락을 몇 번이고 스치며 그들의 몸내음을 맡는다. 옷자락을 도대체 몇 번이나 스쳐야 나는 이 남자들의 진면목을 알게 될까.
기쁘고 다행한 일은 '호랑이 꼬리'라 불린 작디작은 방에서 역사적이고, 문학적이고, 혁명적인 루쉰이 만들어졌고, 동시에 평범한 인성을 가진 루쉰으로 다시 태어났다는 것이다. 이 방에서 루쉰은 입체적이고 완전하고, 진정한 인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 121쪽 우리가 보존하는 것은 단순히 보통 명사의 집이 아니라 하나의 상징을 보존하는 것이고 그들에 대한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역사에 대한 존중인 것이다. - 269쪽
베이징 자유여행 가는 분들께 이 책을 권한다. 저자분이 직접 찍으신 흑백사진의 풍경, 직접 보고 느끼고 싶지 않으신가. 베이징 도시 재개발로 인해 이 유서깊은 후퉁들이 사라지기 전에 이 풍경을 오롯이 맘 속에 담아 오고 싶으시다면, 이 책이 답이다.
,,, 그리고 이 책이 내 마음에 들어온 지극히 사적인 이유 중의 하나는, 공학을 전공한 저자분이 나이 마흔에 하던 일을 때려 치고 낸 책이라는 것. 그런데도 문장과 서술 방식이 오래오래 고민하고 공부한 티가 난다는 것. 나는 이런 열정적인 비전문가의 생생한 역사 이야기를 읽는 것이 참 좋다. 닮고 싶다.
*** 사소한 지적
본문 92쪽의 朝花夕拾은 조화석'십'이 아니라 조화석'습'이라 읽고 표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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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전문가가 권해 주는 책이 출판사 서평보다 훨씬 낫다. 껌정드레스님께 고맙다고 첫줄에 인사 남겨야지.)
앞서 읽은 책이 프랑스의 중국학자가 쓴 중국 역사이야기였고, 이 책은 중국인이 쓴 중국 역사이야기였는데, 비슷한 시기를 다루고 있는 책을 동시에 읽었더니 비교가 확실히 된다. 이렇게 읽는 맛도 괜찮구나 싶기는 한데, 실망한 책의 경우 실망의 강도가 더 깊어지는 것 같아 그게 좀 씁쓸하다. 따로 읽었더라면 또 괜찮은 면을 발견할 수 있었을지 모르는데.
베이징에 가 본 적은 없다. 그런데 베이징에 가 보게 된다고 하더라도 내 경우 이 책에 나오는 풍경들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다. 그만큼 특별하게 그러나 지극히 평범하게 숨어 있는 공간들이다. 일부러, 전문적인 정보를 갖고 찾아가지 않는 한 스쳐 지나가는 사람으로서는 발견할 수 없을 것 같은 집들, 그리고 살았던 영웅들, 그들의 역사.
사진으로만 보아도 좀 누추하고 초라하다. 오래 된 곳들이라 그럴 수도 있고, 현대화시키지 않은 채 유지시켜 온 탓에 그럴 수도 있다. 바꾸지 않고 그대로 둔 것도 쓸쓸하고 휘황찬란하게 바꾼다고 해도 못마땅할 것 같다. 역사는, 역사의 증거는, 역사의 교훈은 어떤 식으로 남기는 것이 좋을까. 그대로? 혹은 바꾸어가면서? 이 부분은 생각해 볼 만한 문제다.
여전히 중국의 근대사는 지긋지긋하다. 우리 것도 지긋지긋하고 동아시아 것도 지긋지긋하다. 불과 얼마 전의 사건이다 싶으니까 현실감 때문에 그럴 수도 있겠지만, 고통과 분노와 무기력이 한꺼번에 닥친다. 어찌 그렇게 살아야 했던 것인지, 그러면서도 그렇게 죽을 수밖에 없었으니.
중국과 중국인에 대한 호감이 좀처럼 생기지 않는 내 의식은 어떤 편견에서 비롯된 것일까. 자격지심일까. 중국 한족이 만주족이 세웠던 청나라에 대한 반감이 의외로 컸다는 것은, 그 동안 세계사 공부를 해 왔음에도 내가 의식 밖으로 꺼내어 기억하지 못했던 사항이다. 내게는 다 같은 중국이었는데, 중국 안에서는 또 중국과 중국 아닌 것이 있었던 것이다. 사람은 또 얼마나 복잡하고 기묘한가.
예전에 한자음 그대로 익혔던 중국인들의 이름이 중국식 발음대로 바뀐 책을 읽고 있자니 헷갈린다. 잘 외워지지도 않는다. 알랭 루의 책에서는 그 헷갈림 때문에 책이 더 지루했고, 이 책은 읽다 보니 익숙해져서 더 재미있었던 것일까? 책 제목과 쓸쓸한 풍경이 오래 남아 있을 것 같다.
두 권의 책을 보았음에도 원래 내가 얻고자 했던 '문화대혁명'에 대한 내용은 제대로 얻지 못했다. 나는 아직도 문화대혁명 때 중국인들이 왜 그랬는지에 대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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