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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7 / 조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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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불신의 시대   1972년 7.4 남북 공동성명 이 발표된다. 외세의 간섭 없이 자주적으로 ,상대방을 반대하는 무력행사가 아닌 평화적인 방법으로, 사상, 이념, 제도의 차이를 초월하여 하나의 민족으로서 민족적 대단결을 도모한다..는  남과북이 합의한 최초의 통일 원칙이었다. 그후 남북 적십자 회담의 추진되는등.. 월북한 아버지를 두고 있어 연좌제에 묶여 아무것도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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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불신의 시대

 

1972년 7.4 남북 공동성명 이 발표된다.

외세의 간섭 없이 자주적으로 ,상대방을 반대하는 무력행사가 아닌 평화적인 방법으로,

사상, 이념, 제도의 차이를 초월하여 하나의 민족으로서 민족적 대단결을 도모한다..는 

남과북이 합의한 최초의 통일 원칙이었다. 그후 남북 적십자 회담의 추진되는등..

월북한 아버지를 두고 있어 연좌제에 묶여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유일민, 일표 형제와 그의 가족들에는 그 사슬이 느슨해 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실낱같은 희망을 가져보게 된다.

하지만 그러한 정책이 진행된다 하더라도 사회의 분위기는 누군가 그들에게 다가오거나 이상한 행동을 보이면 즉각 연행되어 갖은 고문을 받게 되는 현실이었다.

화해의 무드였지만 반공이라는 이데올로기는 결코 약해질 수 었는 우리의 영원한 트라우마였던 것 같다.

경제 개발 5개년 개획이 2차에 거쳐 진행되고 3차 경제개발계획을 앞두고 박정희 정권은 10월유신 을 강행해 계속적으로 집권을 연장한다.

경제건설을 주창하고 정치행위의 갈등이나 모슨도 경제건설이라는 미명으로 합리화시켜버리는, 정권에 대한 맹신자들이 늘어나고 있었고 사회적으로는 경제발전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는 일반 서민들과 한탕주의로 배를 불리고 있는 일부 사람들과의 빈부의 격차는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기다려라. 기다려라.. 잘 살게 될 것이다.. 라는 말만 믿고 기다리는 세월이 12년이 흘러가고 있었지만

그들의 삶은 결코 달라지지 않는 그런 삶이었던 것이다.

사채시장 동결이라는 정책으로 수출이 증가하고 기업의 활동이 활성화 되었지만 작은 금액이라도 투자하여 얼른 돈을 모아보겠다고 회사에 투자했던 일부 서민들의 돈은 흐지부지 허공으로 날아가버리는 어처구니 없는 일도 일어나고 있었다.

유정회 국회의원으로 언론인 출신들이 펜을 놓고 정치에 참여한다. 권력은 언론을 장악하여 자신의 뜻을 펼치려는 혹심을 들어낸다.

 

이 시기에 포항종합제철이 준공을 하고 그 신화를 이룬 박태준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우리나라의 산업구조를 수공업중심이었던 중화학산업구조로 바꾸는 계기가 되었던 포항제철

기술없고, 자원 없고, 자본이 없는 3無의 현실..

산업 전발에 철강의 중요성, 기술 자립의 필요성, 철강인들의 사명등을 주장하며 성공적으로 준공을 마친 박태준이라는 인물에 대해 그의 인간적인면, 일을 추친하는 방법 그리고 박정희도 어찌하지 못하는 그에 대한 신뢰등의 일화와 함께 신문기자 이상재를 통해서 쓰여진다.

 

이러한 사회속에서 우리들의 민초들은 어떻게 살아내고 있을까.

서독에서 간호사로 일하고 있는 우리의 자매들은 고국의 가족의 생계를 위해 정해진 일 이외에도 주말에 아르바이트를 해 몸을 혹사한다. 결국 너무 무리를 해서 몸이 아픈데도 진찰 한번 제대로 받아보지 못하고 죽음에 이르게 되는 정남희..

서독 광부 생활을 견뎌내고 공부에 매진하여 박사 학위를 받아 귀국을 꿈꾸는 배상집

가발공장에서 고생하는 딸 덕분에 조금만 더 돈을 모으면 고향으로 돌아가 땅을 일구고 살아야지.. 하는 꿈을 안고 있던 천두만.. 그러나 그 딸이 불의 교통사고 죽게 되고 그동안 모아온 돈은 사채동결로 회사에 묶이게 되는 날벼락 같은 일들이 벌어진다. 그래도 산 사람은 살아야하는 것.. 다시 한번 맘을 모질게 먹어 본다.

헐벗고 힘겨웠던 시절 친구인 유일표의 도움으로 끝까지 학업을 계혹하고 가족들을 돌볼 수 있었던 허진.

대기업에 취직을 하고 그곳에서 승승장구하며 함께 외쳤던 사회의 부조리에 굴복하며 사회에 흡수되는 모습을 바라보는 유일표의 씁쓸함과 외로움이 가슴 아팠다.

일본인들의 기생관광, 현지처.. 그것도 일종의 외화벌이라는 위안을 삼으며 그들을 접대해야했던 박보금,,

검사인 형과 매번 고시에 낙방하는 자신의 모습을 비교하며 더 이상 시도하지도, 그렇다고 이제와서 포기하지도 못하는 자신의 신세를 비관하며 결국 한강으로 몸을 던져버리는 김선태..

남북적십자회담을 통한 이산가족 상봉만을 기대하며 살아가고 있던 유일민, 일표의 어머니

결국 회담이 무산된다는 소식이 어머니의 고질병이었던 고혈압을 더욱 악화시키고

결국 아들에게 "아부리럴 원망 말그라.." 이 한 마디를 남기고 눈을 감고 만다.

 

1970년대 초반..

우후죽순처럼 솟아나는 빌딩들..

남산에서 내려다 보면 빌딩숲이라는 표현을 하게 되는..

마치 닭장처럼 생겼다 해서 닭장집이라고 했던 아파트.,

하지만 그 편리함에 아파트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아파트촌이 계속해서 생겨나던..

그 시절..

혼란과 어려움 그리고 또 다른 면의 희망이라는 것이 공존했던 치열했던 시기의

우리들의 이야기였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n******m 2013.04.11. 신고 공감 5 댓글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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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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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5.16 쿠데타에 성공한 군사정부는 농어촌을 안정화 시키고자 농어촌고리채정리령을 공표했다. 일제강점기를 거쳐 한국전쟁 이후 인구 다수가 농어민이고 임시방편으로 빚을 내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농어민의 빚 부담을 줄여주는 것이 목적이었다. 구체적인 내용은 ①1961년 5월 25일 이전의 채무 중에서 연리 20% 이상을 고리채로 간주하고, ②원금이 세대 당 15,000원을 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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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 5.16 쿠데타에 성공한 군사정부는 농어촌을 안정화 시키고자 농어촌고리채정리령을 공표했다. 일제강점기를 거쳐 한국전쟁 이후 인구 다수가 농어민이고 임시방편으로 빚을 내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농어민의 빚 부담을 줄여주는 것이 목적이었다. 구체적인 내용은 ①1961 5 25일 이전의 채무 중에서 연리 20% 이상을 고리채로 간주하고, ②원금이 세대 당 15,000원을 넘지 않는 범위에서 리()·동()의 정리위원회에 신고하고, ③고리채로 판정된 채무에 대해서는 채권자에게 농협중앙회가 발행하는 농업금융채권을 교부한다. ④농업금융채권은 연리 20%, 그 중 8%는 국가 부담이고, 나머지 12%는 채무자가 정부에서 융자를 받아 부담한다였다. 개인적으로 국민 대다수가 1차 산업 종사자이다 보니 꽤 좋은 정책으로 보인다. 그러나 군사정부가 경제재건을 위해 공업부분을 중점적으로 육성하는 바람에 지속적으로 추진되지 못해 실패했다고 한다. 선법, 악법을 떠나 새로운 규칙이 생기면 이익을 얻는 사람이 있는 반면 그렇지 않는 사람도 있다. 추수가 되기 전에 법이 시행되다 보니 자금 주들은 사채를 빌려주려고 하지 않아 돈 가뭄이 들어 긴급하게 자금이 필요한 사람들에겐 마른 하늘에 날벼락일 수도 있다.

 

또 다시 10년 뒤 1972 8.3 사채동결긴급조치를 선포한다. 긴급조치의 골자는 기업과 사채권자의 모든 채권채무관계는 무효화되고 새로운 계약으로 대체되는데 채무자는 신고한 사채를 3년거쳐 5년 분할상환조건으로 하고 이자율은 1.35%로 하고 사채권자가 원하면 출자로 전환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 당시 신고된 사채금액이 당시 통화량의 80% 3,456억 원 이었다고 하니 지금으로 환산하면 1,464,224 십억 원 이다. 이 조치로 수출이 증가하는 등 한국경제의 회복을 가져왔고 기업의 체질 개선을 가져왔다. 결국 투자자들을 희생시켜 대기업을 도와주는 형국이 된 것이다. 그리스, 로마 철학자들이 공부했던 철학이나 기하학 등이 지금까지 건재한 걸 보면 과거의 정책이라 하여 무조건 나쁘고 새로운 것이 좋은 것은 아니고 사용하는 사람이 어디에 적절하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호, 불호가 나눠지는 것 같다. 금융위기가 닥치면 국민에게 걷어들인 세금인 공적자금을 투입하여 위기를 덮으려 하는 걸 보면 과거의 정책에서 한발자국도 전진하지 못함을 볼 수 있다.

안경자의 남편 신지훈은 미국 유학을 갔으나 다른 여자와 눈이 맞아 돌아오지 않았고 강숙자는 자신의 친동생 강미현을 유일표에게 소개시켜줬으나 유일표 사정을 알게 된 동생은 거부하는 바람에 무산되고 임상천과 황집사는 자신이 가진 전 재산과 정동진 출장 중에 동업자를 보증인으로 하여 어음을 발행하고 할인하여 미국으로 도주하였다. 황진사는 임채옥을 데러 가려 했으나 임채옥이 거절하는 바람에 편하게 살수 있을 만큼의 돈만 건네 주었다. 허진은 사장의 신임을 받고 회사의 헤드쿼터인 기획실 중역이 되었으나 과거자신의 신분을 잊은 체 열악한 근로환경 개선을 외치는 노동자들의 노조활동을 금지 하며 현재는 분배의 시기가 아니라 성정의 시기라고 하며 유일표와 대립 한다.

정동진은 임상천이 발행한 어음을 막지 못해 부도를 내고 도망 다니다 한인곤과 임채옥의 도움으로 재기에 꿈꾸고 김선태는 고등고시에 계속 낙방되는 바람에 마지막으로 어머니 월하댁을 뵙고 나서 한강에 투신자살을 한다.

이상재는 허미경을 잊지 못해 양장점으로 찾아가 속내를 보였으나 허미경은 혼자가 되었지만 본인은 메인 몸이다 보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힘들어 한다. 한편 배상집은 광부 계약기간이 만료되어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기 위해 가난한 유학생 신분으로 변하였지만 광부들의 우상이 되어 광부들이나 간호원 심지어는 독일 회사에서까지 인정을 받는다.

 

이상재는 포항제철의 신화 박태준을 취재하는데 박태준에 대한 인물을 발췌하였다.

1963년 육군소장으로 예편한 후 만성적자였던 대한중석을 1년만에 흑자로 전환하여 박정박정부터 제철소 건설 소임을 부여 받는다. 이에 박태준은 미국을 방문하여 KISA 대표와 담판을 했으나 협력 불가하다는 말을 듣고 돌아오는 길에 대일청구권 자금의 일부를 제철소 자금으로 전용하자는 생각을 박정희에게 보고하고 재가를 받아 일본에 가서 정재계 인사들을 설득하여 대일청구권자금 7 370만달러와 일본 차관 5천만 달러를 들여와 포항제철소 건설을 시작하여 1970년 조강연산 130만톤 규모의 1기 설비를 착공하고 1973년 에는 비로소 용광로에서 처음으로 쉿물을 받아냈고 1992년에는 광양제철소까지 완공되어 2 100만 톤을 생산할 수 있는 세계 5위의 철 생산국이 되었다. 제철산업이 단순하게 철을 생산하는 것에게 끝나지 않고, 자동차, 조선, 가전 등 관련산업의 성장과 경쟁력 때문에 국민경제적 기여도가 상당히 높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현재의 제품과 시장에 안주하지 말고 새로운 부분에 관심을 갖고 투자가 이루어 져 지속 가능한 혁신철강기술을 확보하여 고부가가치를 이루어 내야 할 것이다. 중국 등소평이 신일본 제철에 가서 포항제철과 같은 것을 중국에도 만들어 달라고 하자 당신에 나라에는 박태준 같은 사람이 없지 않소 라는 말을 들었을 때 박태준은 신화와도 같은 존재구나 라고 생각했다.

 

m******0 2013.03.1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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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사회의 궤적을 따라 걷는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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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 너도나도 일어나 새마을을 만드세..." 새마을운동이 시작되고 시골 마을에도 확성기로 아침마다 "새마을 노래"를 틀어주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콧노래로 그 노래가 흘러나온다. 반복학습이 주는 엄청난 능력이다. 수 십년간 잊고 살았던 그 노래가 떠올릴것 없이 가사하나 빼먹지않고 그냥 튀어나오는 것이다. 초등학교때 조회시간마다 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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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 너도나도 일어나 새마을을 만드세..." 새마을운동이 시작되고 시골 마을에도 확성기로 아침마다 "새마을 노래"를 틀어주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콧노래로 그 노래가 흘러나온다. 반복학습이 주는 엄청난 능력이다. 수 십년간 잊고 살았던 그 노래가 떠올릴것 없이 가사하나 빼먹지않고 그냥 튀어나오는 것이다. 초등학교때 조회시간마다 복창했던 "국기에 대한 맹세"가 그랬고 "국민교육헌장"이 그랬다. 쉼없이 반복되는 미디어를 통한 의식교육이 이토록 큰 힘을 가진 것이다. 독재정치의 정당성, 반공의식의 고취, 반체제 의식의 말살, 경제 제일주의의 확립... 이런 사회에서 나는 자랐던 것이다.

 

불쌍하고 안쓰럽기 그지없는 유일민이 아버지의 편지를 전하겠다는 조총련계 일본여행객의 만남을 거부했음에도 또다시 끌려가 고초를 당하는 장면은 대하고는 내 의식이 이 장면이 꿈일꺼야라고 의도적인 단정을 하게 만들었다. 한강을 통해 돌아보는 우리사회의 지난 모습은 너무나도 억압과 폭력이 난무했던 시대였다. 오늘날의 시각에서만 보더라도 민주공화국이 맞는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할 수 있을것이다. 과연 자유와 평등이라는 것이 존재했던가. 민주주의를 그리고 자유를 그냥 얻을 수 없는 것이고 피를 먹고 자라는 것이라고 한 이야기를 절실히 느끼게 된다.

 

흔적은 남아있지만 많이 바뀐 이 시대에 그리고 자라나는 내 아이들이 과연 그 의미와 가치를 느끼고 기억할 수 있을까?

y*******0 2007.12.09.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