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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돌프 폰 예링의 '권리를 위한 투쟁'을 읽었다. 얼핏 본 어떤 기사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이 가장 감동깊게 읽은 책이 이 책이라는 기사를 보고 서재 한 구석에 꽂혀있는 이 놈을 꺼내들고 아침부터 읽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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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리를 위한 투쟁 ] 루돌프 폰 예링, 책세상, 2007
‘법의 목적은 평화이지만, 법의 수단은 투쟁이다.’
예링은 법철학자로서 사회학적으로 법을 연구하기 시작해서 ‘법사회학의 아버지’라고도 한다. 이러한 연구는 법은 역사 속에서 구체적인 목적과 관심에 근거해서 진화한다고 주장 함으로서, 개념법학에서 목적법학으로 법학의 가치를 새로 정립한다. 여기에서의 법의 목적은 쾌락을 증대시키고, 고통을 감소시켜야 한다는 공리주의를 기반으로 한다.
1장. 법과 권리의 생성과 목적 2장. 법과 권리를 위한 개인의 투쟁 3장. 국민의 법감정 4장. 독일 보통법에서 권리를 위한 투쟁의 문제.
- 법의 목표는 평화이지만, 수단은 투쟁이다.
- 목적은 모든 법의 창조자다.
- 당신은 투쟁하는 가운데 스스로 권리를 찾아야 한다.
법의 목표는 서로 싸우지 않고 잘 지내는 상태 즉 평화를 추구하는 것이며, 적극적인 개념으로 본다면 분쟁을 일으키는 요소를 제거하는 노력까지를 포함하는 상태를 말한다. 적극적 개념으로 본다면, 분쟁 발생의 요소를 제거하는 노력 즉 투쟁이 없이는 평화를 이룩할 수 없다고 보며, 실천적 행동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처럼 투쟁을 통해서 새로운 법을 만든다는 건, 역사주의적 시각이다. 역사주의란 몰락과 생성이라는 원리로 보는 방식으로 권리를 위한 투쟁은 포괄적 역사주의에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저울이 없는 칼은 사실 그대로 폭력이고, 칼이 없는 저울은 법의 무기력이다. 정의의 여신이 저울과 검을 동시에 가지고 있듯이, 완전한 법이란, 목표인 평화와 수단인 투쟁이 합치되어 균형을 이루는 상태이다.
여기에서 인격적 감정을 중요시하는 이유는 법률 조문이 아니라. 누구나 느끼는 보편적 감정이 투쟁의 씨앗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법 지식이나 법 신념이 선택이 아니라 내면에서 일어나는 법 감정이 권리를 위한 투쟁의 근거가 되는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보면, 권리는 인격의 조건이고,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인격을 보존하는 일이다.
상봉 정도전은 1394년 조선 태조에게 [조선경국대전]을 만들어 올렸다. 고려, 이전 국가에서도 법체계가 없지는 않았으나, 이 책은 유교철학(성리학)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현대적 법전이라는 점이다. 물론 태조에 의해 받아들여져 시행되지는 못했지만 우리 법체계의 전통성과 우리의 법철학 사상의 높은 수준을 알 수 있다. 구체적 조문을 보면 다음과 같다. 국가의 형성에 관련해서 , 왕은 仁(인)으로서 왕위를 지켜나가며, 국호는 기자조전을 계승한 것이며, 왕위계승은 장자나 현자가 해야 하며, 교서는 문신에 의한 높은 수준으로 작성되어야 한다. 형벌은 대명률 기준으로 하여야 하며, 백성의 충성도가 약해지는 것은 토지가 없기에 민생안정이 교화의 근본임을 강조한다. 왕위 계승에서 장자나 현자가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를 바꾸어서 말하면 혈통 우선이나 왕의 자질이 없다면 어질고 명석한 사람을 추대할 수 있다는 규정하고 있다. 교서 즉 현대적 의미로 법령이나 대통령령에 등은 왕이 마음대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문신이 검토를 함으로서 왕권의 규제를 주장한다. 또한 형벌도 왕이 마음대로 생살여탈권을 갖는 것이 아니라, 대명률(물론 옛 명나라의 법을 말한다, 그러나 독일법이 로마법을 근간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을 주의 할 필요가 있다.)에 근거해서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국가의 존립여부 즉 법체계의 존립여부는 농업생산을 바탕으로 한 경제적 안정에서 오는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예링은 법의 목적은 평화이나 법의 수단은 투쟁이라고 하였다. 삼봉 정도전 또한 국가의 존립과 체재의 안정을 위해서는 독점적 권력 집중의 견제와 민생안정을 근본으로 보았으니, 그 말에 차이가 있으나 국가의 평화를 위해서는 실천적 행동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없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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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한국사회의 권리 투쟁
권리란 무엇 일까. 사전에는 특정한 이익을 주장하고 또 누릴 수 있는 법률상의 능력, 또는 남에게 바라고 기대할 수 있는 정의 라고 되어있다. 요컨데 정당한 권리의 주장은 법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는 것 같다. 생각해 보건데 권리는 ‘내가 내 것을 가질 수 있는 힘’ 이 아닌가 한다. ‘내 것’ 이라 함은 단순한 물질(노동의 결과물 등) 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행동권 까지를 포함한다. 가진다 함은 소유에 그치지 않고 가진 것을 사용하는데 까지를 포함한다. 권리의 주장이 대체로 이익과 관련해서 발생하지만 꼭 객관적으로 이익이라서 발하는 것은 아니다. 금전적인 면에서 보았을 때 손해일지라도 권리를 주장하거나 침해에 대한 반발을 하는 것을 보면 권리란 분명히 감정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내가 무언가를 내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일까. 예링은 그 근거로 농부의 노동과 사관의 명예와 상인의 신용을 들고 있다. 가장 이해하기 쉬운 것은 농부가 자신의 노동을 바쳐 얻은 수확물에 대해 주장하는 소유권이다. 농부에게 있어 수확물은 농부 그 자신과 다름 없다. 때문에 수확물을 부당하게 얻고자 하는 자는 농부에게는 가장 큰 적이 된다. 자신의 노동을 바친 대가로 정당하게 수확한 곡식의 양이 매우 많아서, 한 말 정도 덜어도 전체적으로 보아 전혀 티가 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농부로서는 그것을 용납할 수 없을 것이다. 그 한 말의 곡식 안에는 자신이 바친 노동과 인격의 대가가 고스란히 담겨있기 때문이다. 이 개념을 확장하여 국가 영토의 개념으로 보면 한 국가의 영토에서 한 평 정도의 땅은 그리 크지 않을 지라도 그것의 침범을 허용해서는 이유가 명확해 진다. 영토는 국가의 필수 요소로서 국민이 삶을 영유하는 터전이고 국가의 법과 문화가 존재하는 실재의 영역이다. 그것에 대한 부당한 침범을, 그 정도가 미약하더라도 용인해서는 안 되는 이유도 예링을 통해 명백해 지고 있다.
이 책에서 예링은 개인이 권리를 주장하는 것뿐 만 아니라 국가규모의 사회공동체의 권리 주장에 대한 근거를 담고 있다. 또한 권리 주장이 단순히 인간이 가지게 되는 사회적 현상이 아닌 개인의 인격과 공동체의 존속을 위한 의무임을 강조하고 있다. 예링은 권리를 지키고 얻기 위해 침해의 대상과 싸우는 것은 많은 피해를 야기하지만 그것은 감수 해야 할 피해이며 설사 그것이 전쟁이 되어 국가가 파멸한다 하여도 피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자신의 권리를 확보하고 지키는 것은 개인이 그 자신의 존재를 스스로 인정하는 행위이고 권리의 포기는 자신의 인격을 없앰과 다름 아니며 그렇기 때문에 권리를 위해 ‘싸움’을 전개하는 것은 인격체로서 존재의 의무라고 한다.
현대의 법은 그 자체로 권리 투쟁의 증거다. 국가운영에 관한 틀을 담고 있는 헌법부터 민주주의 국가의 성립을 요원 했던 근대 시민혁명의 산물로 태어났고 그로부터 파생된 행정법은 2차대전을 거치며 국가에 대한 개인의 주관적 공권의 개념을 도입하여 개인이 국가에 대해 권리주장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 졌다. 형법의 기본 원칙인 죄형법정주의도 공권력인 국가에 대해 피의자의 인권보장이라는 기본적인 권리 보호의 개념을 포함하며, 전통적인 재산권 영역인 민법도 개인과 개인의 재산권 문제를 주로 다루며 발전해 왔다. 근대 시민 국가의 성립 이후에 법은 꾸준히 개인의 권리 보호를 위해 발전해 왔다. 국민 투표의 실시나 참정권의 확대 등도 좋은 예가 된다.
예링이 말하는 권리는 모두 사회적으로 옳은 권리를 전제로 한다. 국가가 법으로 보장하는 권리들과 보장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되는 권리들을 언급하고 있다. 전자에 대해서는 몇가지 구체적인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지만 후자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언급은 하지 않고 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라서 그랬는지 아니면 정치적인 문제가 얽히는 것이 싫어서 그랬는지는 모를 일이다.
권리의 주장과 확보는 예링의 이전부터 계속 있어왔다. 인간이 사회생활을 하면서부터 이리라. 전투의 대가로 얻은 명예나 노동의 대가로 얻은 수확물에 대한 기초적인 권리부터 현대 사회에서 생긴 특허권이나 주주총회의 의결권 같은 것들까지 인간은 자신의 활동과 위치에 따라 끊임없이 권리를 만들고 확장해 왔다. 예링은 그때까지 그렇게 존재했던 권리들의 시작과 새로운 발생, 확장의 과정을 설명하고 싶었던 듯 하다.
권리는 예링이 이 책을 쓴 19세기 즈음에 이미 그 이전 시대와는 비교할 수 없게 발생, 확장되기 시작했다. 유럽 전역을 휩쓴 산업혁명과 식민지 건설의 바람을 타고 재산권에 대한 급격한 변화들이 생기고 이것은 곧 개인의 정치적 권리 향상이라는 결과를 가져왔다. 결과로서 등장한 3권분립체제는 오늘날 거의 모든 국가의 운영체제로서 국민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보호, 보장하는 기초적인 바탕이 되고 있다.
투쟁을 통한 권리의 확보가 비록 간단한 재산이나 명예에 대한 것부터 시작하였지만 그것은 결국 민주주의 라는 체제를 만들기 위한 오랜 노력이었다. 모든 국민이 국가의 운영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기 위한 포석들이었다. 또한 그런 국가의 법 위에 비로소 개인의 권리가 정당한 자리를 찾을 수 있다. 현대 사회에서는 왕정이라 하더라고 왕의 뜻에 따라 국민의 재산권이나 생명권을 임의로 침해할 수 없게 되었다. 20세기 이전의 권리 투쟁은 이것을 위함 이었다고 생각된다. 로마인이나 스코틀랜드인들이 주장했고 또 목숨 바쳐 쟁취했던 여성의 정조권이 당장 생존에 위협이 되지도, 부당한 재산권 침해를 일으키지도 않지만 그것의 확보를 위한 투쟁은 국민의 정치적 위치를 높이는데 기여한 바가 매우 크다.
우리나라 역시 권리를 위한 투쟁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가깝게 보아서는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이 있고 멀리 보아서는 살수대첩이나 임진왜란 등의 전쟁도 있다. 근대화 이전의 주요 투쟁 이유는 오늘날의 문제와는 많이 달랐다. 투쟁 형식도 나라 안의 것 보다는 주로 외교적 문제 즉, 전쟁이 대부분이었다. 전쟁에서 문제가 되는 권리는 역시 주권 즉, 통치권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투쟁의 주체는 왕이 아닌 민중의 손으로 넘어왔고 투쟁의 대상도 외국이 아닌 통치권자로 변해왔다. 멀게는 임꺽정의 난이나 망이망소이의 난, 동학농민운동 등을 가깝게는 4.19혁명과 5.18 광주민주화항쟁을 예로 들 수도 있겠다.
통치권자를 상대로 했던 투쟁들은 국가를 막론하고 대부분 민중들의 패배로 끝났다. 우리나라에서 있었던 모든 항쟁들이 그러했고 주로 종교적인 자유를 목적으로 했던 유럽의 투쟁들이 그러했다. 물론 그렇지 않은 투쟁들도 있다. 프랑스 대혁명이나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처럼 통치권자를 권좌에서 끌어내리고 새로이 정권을 바꾼 투쟁들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러지 못했다.
비교적 최근에 있었던 광주민주화항쟁의 경우 부당하게 권력을 찬탈한 신군부 세력의 퇴진을 요구했던 시민들의 시위였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사망 이후 오랜 독재의 틀을 벗고 민주화의 길로 들어가고자 했던 국민들의 바램은 신군부 세력의 쿠테타로 무참히 짙밟혔고 서울역등 전국 곳곳에서 시위가 일자 집권세력은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시위자들을 잡아들이기 시작했다. 이러한 집권세력의 행위는 광주에서 극렬한 저항에 부딪혔고 이에 시민에게 발포하는 등 무자비한 폭력진압으로 많은 사상자를 내고 광주민주화항쟁은 실패로 돌아갔다. 이후로도 군사정권에 대항하는 시위는 대학생을 중심으로 끊임없이 있었다. 서울시내에서는 연례행사처럼 최루탄 안개가 뭉클거렸고 화염병과 쇠파이프가 철방패와 곤봉에 대항하는 일이 심심찮게 일어났다. 노태우를 마지막으로 군사정권도 끝나고 이어서 문민정부가 들어섰지만 시위는 여전했다. 불법 부정선거에 대한 논란도 여전했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에 대한 부정선거의 의혹이 사라지기 시작한 것이 아직 10년이 체 되지 않았음을 볼 때 우리나라의 민주화는 이제 제 모습을 갖추어 가는 듯 하다. 언론이 마음 놓고 현 정권을 비난하고 국민이 여당이 아닌 야당의원을 마음 놓고 지지 할 수 있는 사회가 된지도 미쳐 10년이 되지 않았다. 60~90년대 까지 그토록 부르짖었던 민주화의 외침은 그 목적을 달성함과 동시에 급격히 잦아들었다. 민주화, 민주주의, 국민의 기본권 보장이 너무나 당연한 시대가 된지 아직 10년도 되지 않았건만 그때의 일은 이미 ‘옛날일’ 이 되어버린 듯 하다.
민주화 운동의 시작이며 주축이 되었던 대학생들은 이미 사회인이 되어버렸고 힘들게 이루어낸 민주화 속에서 대학생이 된 사람들은 경제적 압박에 시달려 서둘러 취업의 문을 뚫어야 하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사회의 변화를 주도하기 보다는 서둘러 사회의 일원이 되기 위해 가능한 빨리 그리고 더 많이 노력해야 하는 입장이 되어버렸다. 좋게는 서둘러 속해도 좋을 만큼 민주화가 되었다는 의미로, 나쁘게는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이나 행동의지 등이 결여되어 투쟁의무를 잊었다는 의미로도 해석 가능하겠다.
인간이라면 누구나가 누릴 수 있는 권리를 인권이라고 한다. 전쟁을 통한 투쟁보다 평화를 통한 인권보장이 더 중요하게 여겨지는 현대사회의 권리 문제는 좀 더 정치적이며 복잡하다. 요즘은 어딜 가나 인권이 문제가 된다. 인권 옹호가 곧 평화 사랑이며 이는 지극히 긍정적인 일이고 투쟁을 통해 무언가를 쟁취하려는 행위는 지극히 폭력적이고 인권 상실적 행위이며 부정적인 행위로 간주되는 것이 현대 사회의 분위기 인 듯 하다. 20세기 초의 양차대전이 과학의 발달로 인해 그 이전의 어떤 전쟁보다 많은 사망자를 만들어냈고, 또 그 사망자의 대부분이 민간인이었기에 2차대전의 종전 후엔 사망자의 수가 당연히 문제가 될 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나치의 유태인 학살은 인권에 대한 가치를 새로이 끌어올리는데 불을 지폈다. 전쟁의 참상으로 말미암아 그 이전엔 그토록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았단 생명의 가치가 부각되고 이것이 법의 제정과 문화의 발전에 강한 영향을 주어 싸움의 형식을 취한 권리의 주장을 배척하는 오늘날의 풍토를 만들지 않았나 한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투쟁의 대상과 방법이 바뀌고 있을 뿐 정당한 권리 주장을 위한 투쟁은 그 목적과 방법을 바꾸어서 계속 되고 있다. 21세기 들어 우리 국민의 투쟁 대상은 정부가 아닌 대외세력으로 바뀌고 있다. 미군에 의해 억울하게 희생당한 사람들을 위한 국민적 운동이나 일본의 독도 침탈 움직임을 저지하기 위한 비폭력 운동이 심심치 않게 전개되고 있다. 2002년 월드컵을 계기로, 전국민이 온라인이 아닌 오프라인에서도 하나의 목소리를 낼 수 있고 그 목소리가 상상이상으로 크다는 것을 실감했다. 그 목소리의 힘은 자연스럽게 대외문제 해결 수단으로 등장하고 있다. ‘붉은악마’가 정치세력이 된다는 뜻이 아니다. 월드컵의 함성이 잦아 들 2002년 말에 미군 장갑차에 의해 짙밟혀 세상을 떠난 효순이와 미선이의 추모 행렬은 미군의 잔혹행위근절을 바라는 비폭력 촛불시위로 전개 되었다. 김주열 열사의 추모행진을 하기 위해 쇠파이프로 무장했던 시위대도 그것을 진압하기 위해 갑옷과 철방패로 무장했던 전경과 백골단의 행렬도 이제는 찾아 볼 수 없는 것이 되었다. 촛불시위 날 남편은 아기를 안고 아내는 남편의 손을 꼭 잡고 촛불을 밝히며 노래를 부르던 어느 부부의 모습은 이 시대가 비로소 민주화의 길로 들어왔음을 알려주는 신호탄처럼 나의 머릿속에 남아있다. 예링이 언급했던 법감정과 그것을 위한 개인의 투쟁 그리고 사회를 위한 투쟁의 의무는 이 땅에서 성실하게 지켜져 왔고 또 이어져 가고 있다. 비록 그것이 올바른 열매를 맺지 못하고 대부분 무력과 외세에 패배하였음은 무척 안타까운 일이지만.
흔히들 한국인들은 냄비근성을 가졌다고 말한다. 사건이 일어날 때만 반짝 시끄럽고 조금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아무 말 없는. 하지만 최근까지의 역사를 돌이켜 보아도 그것은 잘못된 판단이다. 이 땅에 살아왔던 사람들은 끊임없이 불의에 투쟁하며 개인과 사회의 권리를 지키고 향상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일제의 식민지배에 항거해 피 흘린 독립 운동가들이 몇이며 해방 이후로도 민주화를 이루기 위해 피 흘린 투사와 열사들이 몇 인가. 100여년 동안 이 땅의 사람들은 오로지 ‘주권’과 ‘민주화’를 위해 투쟁했다. 그리고 그 열매가 이제 여물었다.
21세기의 문턱에서야 비로소 맺어진 민주화의 열매를 만끽할 틈도 없이 세계화의 바람을 타고 일어난 외환위기 사태와 국제적 신용하락은 정치적인 문제보다 경제적인 문제를 더 크게 만들었고 사람들은 이미 이룩된 민주화에 대한 투쟁보다는 당면한 경제적 문제에 집중하게 되었다. 그것뿐만이 아니라 연이어 일어나는 크고 작은 나라 안팎의 사건들에 국민들은 충분히 정신 없을 만 하다는 생각이 든다. 냄비근성이 문제가 아니라 사건이 너무 많은 것이 문제다. 사건도 많고 고쳐야 할 것도 많다. 투쟁의 대상은 너무 많은데 그러기엔 사람도 시간도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인지 최근의 권리 주장들은 다분히 경제적 성격을 가지고 있는 듯 하다. 민주화를 부르짖는 행렬 대신에 생존권 보장을 부르짖는 파업행렬이 그 자리를 대신 하고 있는 듯 하다. 외환위기 시절 밑바닥을 뒤엎듯이 드러났던 경영진들의 비리 혐의는 결국 근로자들을 실의에 빠뜨렸고 그들이 부당하게 취했던 재산이 본래 근로자에게 돌아가야 할 것들이라는데 이견은 없다. 파업은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 고용인이 고용주의 부당함에 대항할 수 있는 강력한 수단이다. 때문에 자본주의가 일찍 자리잡은 유럽, 특히 프랑스의 경우 파업을 그리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다고 한다. 자신의 권리를 투쟁으로 확보하는데 익숙한 국민들답다. 자신의 정당한 권리를 찾기 위한 파업에 대해 불만은 없다. 오히려 그런 파업을 통해 고용주들의 부당이익을 막고 건전한 자본주의 사회로 발전하길 바라는 바이다.
하지만 파업은 강력한 수단인 만큼 신중하게 시행되어야 한다. 예링이 권리를 찾기 위해 벌여야 한다고 주장한 투쟁은 문제의 권리가 정당한 것임을 전제로 하고 있다. 정당하지 않은 권리를 주장하며 투쟁하는 것은 싸움을 거는 것과 다름없다. 회사의 운영에 있어서 파업을 지휘하는 노조의 영향력은 외환위기 이후 굉장히 강해졌다. 한때는 그들이 전국민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나 외환위기도 지나고 그토록 바라던 민주화도 마침내 자리잡은 오늘날 당면한 경제적 문제들을 앞에 놓고 벌이는 파업들은 투쟁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그들의 행동이 정말로 정당한 권리를 찾기 위함인지 증명할 사이도 없이 교섭의 수단으로 파업을 선언하고 고용주들을 위협하는 노조들을 보면 이기적인 권리를 위한 투쟁이 얼마나 부정적인 수단이 될 수 있는지를 깨닫고는 한다. 예링이 언급한 투쟁은 결코 그런 것이 아니리라.
무엇이 정당하며 무엇이 이기적인지는 명확한 판단을 내리기가 어렵다. 기본권에 해당하는 권리들이 오랜 투쟁에 의해 거의 확보된 오늘날에 기본권의 내용이 아닌 권리를 위한 투쟁들은 사실 당사자들 간의 이해관계가 얽혀있어 그 판단이 난해하다. 인권으로 대표되는 기본권을 위한 투쟁이 대부분 모습을 감춘 오늘날에 어떤 권리들이 투쟁을 통해 주장될지는 짐작이 가질 않는다. 하지만 그것이 ‘당연한 것’ 이기 보다는 특정인들에게 ‘필요한 것’ 이 되어 특정인물이나 집단의 이기적인 모습을 보일지 정당한 모습을 보일지는 미지수다. 그것의 판단이 범국민적인 차원에서 이루어 져야 할지 아니면 특정 당사자들의 입장에서만 이루어 져야 할지는 앞으로 지켜볼 일이다.
*나는 해설이 없는 완역본을 읽었지만, 과거의 고전을 모두 읽는 것이 큰 의미가 없는 오늘날에 완역본을 고집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한다. 전문성 있는 학자가 달아놓은 주석과 발췌된 부분만 읽는 것이 오히려 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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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에 대한 정의를 루돌프 폰 예링만큼 명확하게 한 이가 있을까. 글의 첫머리를 읽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법의 목적은 평화이며, 평화를 얻는 수단은 투쟁이다.” 법이 왜 존재하는지, 그리고 그 존재이유를 지키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를 한 문장으로 압축시켜 표현하고 있었다.
법이 가진 자의 편에 서고, 형평성을 잃어버린 지금 이 순간에도 권력이 되어 버린 법과 그 시녀들로 인해 많은 이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대부분은 법을 모르기 때문에, 가진 게 없어서, 인생에 대한 회의로 인해 자신의 권리를 포기한다. 자신의 권리를 되찾는 일은 정당한 일이자 의무이기도 하다. “권리를 완전히 포기하는 것은 도덕적 자살”이란 말을 되새겨야 할 것이다.
다만 한 가지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는 ‘투쟁의 합법성’이다. 민주주의의 원칙이 합리적으로 유지된다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투쟁의 문제가, 권위적인 정부에 의해 불법으로 낙인찍힐 때에는 과연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럴 경우 예링의 말은 이상적인 구호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기본적인 자유가 유지되고 논쟁이 가능한 사회라면 투쟁 속에서 권리를 신장시킬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에는 그 기본권을 지키기 위한 투쟁 또한 필요하지 않은가.
법의 목적은 평화이며, 평화를 얻는 수단은 투쟁이다. -37쪽 법의 생명은 투쟁이다. 즉 민족과 국가 권력, 계층과 개인의 투쟁이다. -37쪽 정의의 여신은 한 손에는 권리를 재는 저울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권리를 관철시키는 검을 쥐고 있다. -37쪽 법은 끊임없는 노동이다. -37쪽 권리를 완전히 포기하는 일은 도덕적 자살에 해당한다. -58쪽
by 꽃다지, 2009년 12월 1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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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리를 위한 투쟁의 대표적 산물인 참정권을 행사하는 요즘 같은, 특히나 벚꽃대선을 맞이할 수 있게 된 이런 때에 다시 읽으면 그 의미가 무서울 정도로 뇌리에 박힌다.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받지 못한다.' 권리의 중요성은 주어진 것일수록 잊기 쉽다. 권리는 살아 있는 것이라 잃지 않기 위해 소멸시키지 않기 위해 우리는 끊임없이 쟁취해야만 하는 것이다. 침해받은 권리에 대한 투쟁은 나만의 것만이 아니다. 그 정당한 권리를 관철시키는 것은 자신의 도덕적 생존을 지속시키기 위함이며 더 높은 차원에서는 사회 공동체에 대한 의무인 것이다. 법은 권리를 실현시키고 권리의 행사는 법을 유지시킨다. 우리는 적극적으로 권리를 주장함으로써 법의 수호자, 집행자가 된다. 그렇게 권리와 법이 존재하는 사회 질서가 유지되는 것이다. 투쟁을 포기하지 말고 권리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당연한 사실을 이 책을 읽으며 다시금 되새길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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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지켜야 할 것을 지켜나가는 데 법이 하는 역할은 중요하다. 법이 있음으로 인해 우리는 우리가 보호하야 할 것들 지켜나가야 하는 것들을 보수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법만이 우리의 삶을 판단하는 기준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법이전에 우리가 진정 향유하고 지켜 나아가야 하는 것이 잇으니 윤리이다. 법학자인 예링이 법치주의 국가에서 진정 놓치지 않아야 할 윤리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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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도 유명한 고전입니다. 고전을 제대로 음미하려면 당시 시대상황이나 작가의 생애를 알아두면 좋다고들 합니다. 특히 이 작품은 법사상사적 위치를 제대로 알고 읽는다면 감흥이 더할 것 같습니다(독일사람이라면 아마 흥미를 갖고 읽게 될만한 책이겠지요). 하지만 그런 배경지식이 없더라도 저자가 비판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전통적인 견해'가 우리 법학계의 주류임을 감안하면 저자의 메세지를 그냥 지나칠 수 없게 됩니다.
저자의 주장을 거칠게 요약하면 "법은 전통과 관습이 저절로 굳어진 것이 아니라 피나는 노력으로 쟁취되고 만들어진 것이다. 권리란 단순히 실정법을 구체화한 것이 아니고 인간의 도덕적 생존의 전제조건이다. 법감정이야말로 권리를 위한 투쟁의 원동력이다." 정도 될 것 같습니다(더 간단하게는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 사소한 불법에 눈감는 개인이 많은 국가는 망할 수밖에 없다").
생각보다 재밌지는 않았습니다(그래도 철학서적 같이 졸음이 쏟아지는 정도는 아니네요). 독일어.. 그리고 법학자..의 글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예시가 거의 없다는 점에서 그렇게 느껴집니다(중간에 농부, 장교의 예가 있고, 영국인의 예가 있기는 합니다). 그래도 번역은 좋은 것 같습니다.
어쨌든 밀린 숙제를 해치운 느낌인데 너무 대충한 것 같아서 찜찜하네요.. 나머지 숙제를 기약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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