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에 읽은 여러 책에서 소개된 바 있어 에밀 시오랑의 책을 찾아 읽게 되었습니다. 폐허의 철학자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그는 절망을 겪고 있는 사람을 어설피 위로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오히려 절망을 절망 자체로 응시함으로써 절망을 넘어서려 하였다는 것입니다. <해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의 첫 번째 글 ‘서정적인 너무나 서정적인’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죽음에 대한 끈질기고 두려운 생각을 의식 속에 두면 인간은 파멸한다. 죽음을 이야기하면서 자신 속의 무언가를 구해내지만, 그와 동시에 자신 속의 무언가를 잃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는데, “견딜 수 없는 상태와 인간을 괴롭히는 그 같은 집요한 생각들을 고백하는 것은 구원이 될 수 있다.(8쪽)”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도 살고 있는 것은 끝없는 긴장을 객관화하면서 진정시켜주는 글쓰기 덕분이다. 창작은 죽음의 마수에서 우리를 일시적으로 구원한다.(14쪽)”라는 글쓰기와 관련된 대목도 있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겪을 수 있는 우울, 고독, 슬픔, 죽음 등 온갖 부정적인 요소들을 천착하고 그 가운데서 긍정적인 의미를 찾아내려 노력한 것 같습니다.
삶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요인들을 겪을 때는 세상이 답이 없을 것 같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면 별거 아니더라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그저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생각으로 고통을 견디다보면 다시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인간, 잠 못 이루는 동물’은 불면으로 고통 받는 분에게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전체 동물 세계에서 잠을 이루지 못하면서도 잠을 자기 원하는 동물은 인간밖에 없다.(152쪽)’라는 명제를 생각해보면 모든 동물은 신체의 요구에 따라 잠이 들 시간이 되면 잠을 자는데, 인간만이 잠을 자야 할 시간에 잠들지 않는 유일한 동물일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하지만 수면은 망각이라는 주장은 오히려 역설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삶의 비극, 그 뒤엉킴과 집요한 생각들은 잠자는 동안에 잊히기 때문에 나온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과학적으로 수면은 기억을 완성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깨어있을 때 경험한 것들은 잠을 자는 동안 기억으로 정리된다고 알려져 니다.
기독교에 관한 이야기도 놀랍기만 합니다. 기독교에서는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시오랑은 “자신이 신의 아들이라고 알고 있었던 한 인간은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서야 의심을 품게 되었다”라고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진실로 망설였던 적이 단 한 번 있었는데, 산 위에서가 아니라 십자가 위에서 였다. 나는 예수가 바로 그 때 이름 없는 인간의 운명을 부러워했을 것이며, 할 수만 있었다면 이 땅에서 가장 외진 구석에 숨어서 아무도 자신에게 희망을 걸지도 속죄를 요구하지도 않기를 바랐을 것이라고 확신한다”라고 했습니다. 과연 기독교 쪽에서 보면 황당할 수 있는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는 있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시오랑은 스스로에 대해서도 인색하였던 것 같습니다. ‘아무 것도 중요하지 않다’에서는 ‘내가 나 자신을 괴롭히든 고통스러워하든 혹은 뭔가를 생각하든 무슨 상관인가’라고 시작합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나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 굳게 믿지만, 또한 동시에 나의 존재만이 유일한 현실이라고 느낀다’라고 하였습니다. 지금의 내가 있게 하기 위하여 누군가의 희생이 있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고도 했습니다. 그 이유는 “나는 내 삶을 죽은 사람들의 묘지 위에 세우고 싶지 않다”라고 하였습니다.
옮긴이는 ‘죽음, 허무, 절망, 고독. 시오랑의 단상에서 늘 마주치는 이 단어들의 의미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꿈, 희망, 미래와 같은 기분 좋은 환상 대신에, 고통, 번민, 우수와 같은 삶의 본질적인 문제들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순간 차가운 전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
|
우울증을 심하게 겪는 현대인이라면 한번쯤 읽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도서이다. 해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는 책제목은 절망적인 현실을 마주할 때마다 희망을 찾고자하는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문장이다. 극복하려는 의지가 필요하다는 위로나 이겨내려고 노력하라는 북돋음이 아닌 겸허히 받아들이고 시간을 흘려보내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힘든 시간도 지나가기 마련이고 시간의 흐름을 막을 수도 없다. 깊은 절망도 좌절도 우울도 그렇게 흘러간다. |
|
비록 지독히 절망적이고 염세주의적인 내용이지만, 자신의 삶을 한번 되돌아보게 되는 것 같다. 다음은 책 내용 중 기억에 남는 문장들이다. "죽는 순간 친구들에게 둘러싸이고 싶어 하는 사람은 두려움 때문에 마지막 순간을 과감히 맞이할 능력이 없는 사람이다. 중요한 순간 자신의 죽음을 잊으려고 하는 것이다. 그들은 왜 용기를 내어 문을 걸어 잠그고, 맑은 정신과 무한한 두려움 속에서 그 공포를 감수하려 하지 않는 것일까? 가장 심오한 죽음, 진정한 죽음은 빛까지도 죽음의 원칙으로 수렴되는 순간의 죽음, 외로운 죽음이다." |
|
"가장 불행한 사람은 무의식에 대한 권리가 없는 사람들이다. 의식이 늘 깨어있어 계속해서 세상과 맺고 있는 관계를 다시 정립하는 것, 항상 깨달음의 긴장 속에서 사는 것, 그것은 바로 인생을 망쳤다는 것을 의미한다...(중략)...내가 인간이라는 것이 아주 힘들다" 정신이 또렷하지 않아 고통받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정신이 지나치게 또렷하여 고통받는 사람이 있다. 전자는 무지에 관한 두려움, 후자는 앎에 대한 두려움이다. '모르는 게 약'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말은 아니다. 의식이 깨어있을수록 세상이 거미줄같은 부조리함으로 이루어졌음을 매순간 깨닫고 괴로워한다. 어두운 밤에 거미줄을 스쳐 지나치는 것과, 환한 낮에 거미줄을 스쳐 지나가는 건 다르다. 해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는 제목과는 역설적이게도 우리는 해가 떠 모든 사물과 관계가 선명하게 보일 때 가장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
| "우리는 일반적으로 인간이 되기 위해서 너무 많이 일한다." 이 문장이 책에서 나왔는데 너무나 맞는 말이라서..사실 일을 하는 이유가 자기만족도 있겠지만 '돈'도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잘 산다, 잘 살고 있다는 기준을 뭐라고 정해야할지 이 책을 통해서 좀더 고민을 하게 되는 것 같다. |
|
삶이 치열할수록 시간은 본질적이고 중요하다. 삶은 시간 속에서만 펼쳐질 수 있는 많은 방향들과 충돌들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삶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우리는 절대 순간을 말한다. 영원의 경험이라는, 그 시간에 대한 승리에는, 그 초월에는 삶이 없지 않은가? 그것이 해탈이다. P.1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