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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 전체주의 그리고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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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 전체주의 그리고 예술'은 중도우파 문화단체인 문화미래포룸의 제1차 심포지움 내용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문화미래포룸은 좌편향적인 문화예술계에 균형을 맞춘다는 취지에서 작년에 발족한 단체인데, 시의성이나 명분 면에서 적절성이 있었다고 보여진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문화미래포룸의 결성은 매스컴의 주목을 받았고, 이 단체의 제1차 심포지움도 상당 정도 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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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 전체주의 그리고 예술'은 중도우파 문화단체인 문화미래포룸의 제1차 심포지움 내용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문화미래포룸은 좌편향적인 문화예술계에 균형을 맞춘다는 취지에서 작년에 발족한 단체인데, 시의성이나 명분 면에서 적절성이 있었다고 보여진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문화미래포룸의 결성은 매스컴의 주목을 받았고, 이 단체의 제1차 심포지움도 상당 정도 매스컴에서 관심을 보여주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심포지움에 대한 매스컴의 관심에 비하면, 심포지움의 발표문을 모아 책으로 엮어낸 이 '자유주의, 전체주의 그리고 예술'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독자들로부터 외면을 받은 게 아닌가 싶다. 표면적으로는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것 같지만, 실질적으로는 외면을 받았다는, '속 빈 강정'이 아니었나 싶다는 것이다.

 

문화미래포룸의 제1차 심포지움의 주제가 '자유주의, 전체주의 그리고 예술'이었다. 이 주제를 그대로 가져와 책의 제목으로 삼은 것인데, 복거일 선생을 포함해 11명의 학자 및 작가가 참여하고 있다. 11명의 학자 및 작가가 13편의 논문을 싣고 있는데, 논문들이 의외로 읽기 쉽고 어렵지 않으며 다가가기 용이하게 서술되어 있다. 이 심포지움의 의도가 학술 심포지움이 아닌 대중 심포지움을 지향했던 때문이 아니었던가 싶다.

책에 실린 열 세편의 논문이 각각 다양한 관심영역을 다루고 있긴 하지만, 크게 다음 세가지 성향으로 분류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자유주의 사회에서의 예술의 모습, 전체주의 사회에서의 예술의 모습 그리고 북한인권과 이에 대응하는 남한 예술의 행태, 이와같다. 자유주의 사회에서의 예술의 모습은 김태환의 '자본주의와 예술'에서 전체주의 사회에서의 예술의 모습은 복거일의 '전체주의 사회에 예술이 존재할 수 있는가?'와 왕치선의 '전체주의 사회 예술가의 삶과 예술성'에서, 북한인권과 이에 대응하는 남한 예술의 행태는 이동하의 '북한인권을 외면하는 한국의 문학인들'과 이호림의 '백낙청의 시민문학론 대동아공영권론에 안착하다?'에서 잘 다루어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자유주의 사회에서의 예술의 위상 및 모습은 예술이 자유주의 사회에 대해 적대적이거나 비판적이라고 하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겠다. 예술이 자유주의 사회에 대해 적대적이거나 비판적인 것은 자유주의가 자본주의에 기반하는 까닭이다. 자유주의와 자본주의가 동일한 것은 아니겠지만, 자유주의가 자본주의라는 경제 체제에 기반한다는 점에서 자유주의와 자본주의를 동일시해도 크게 잘못된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일반적인 사회의 인식수준에서 볼 때, 자유주의와 자본주의는 동일시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자유주의가 기본적으로 정치용어이고 자본주의가 경제용어임에도 그와같다고 할 수 있다.

예술이 자유주의에 대해 적대적이거나 비판적인 것은, 그것이 자본주의가 근본적으로 부정의하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예술이 자본주의에 대해 적대적이거나 비판적인 것은, 상당히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일인데, 그러나 그 실체가 명확한 것은 아니다. 이 적대감은 아마도 자본주의의 속물성 때문이 아닌가 싶다. 예술적 자아가 자본주의의 속된 자아, 물질적 자아와 일치할 수 없고, 갈등을 일으킬 수 밖에 없고, 충돌적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예술이 자본주의에 대해 적대감을 갖고 비판적인 게 나쁜 것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자유주의 사회에 긴장감을 불어넣어주고, 모순을 직시하게 해주며, 자유주의 사회의 발전에 도움이 될 수도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 적대감이나 비판이 도를 넘어 전체주의 운동을 옹호하는 데에까지 나아간다면, 이는 과잉이요 잘못이라고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예술이 자유주의 사회에 대해 적대적이라 하더라도 실상 예술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 또한 자유주의 사회인 것이다. 자유주의 사회를 떠나서는 예술은 가능하지가 않은 것이다. 예술이 성립하기 위해서 확보되어야 할 근본조건이 예술적 자유인데, 그 예술적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 바로 자유주의이기 때문이다.

 

예술이 자유주의에 적대적이면서도 또 자유주의를 떠나서는 성립될 수 없다는 것은 예술의 딜렘마요 모순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술은 끊임없이 자유주의를 끝장내고 전체주의화하려는 욕망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자기 파괴적인 욕망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그러면서도 예술은 스스로가 자기 파괴충동에 사로잡혀 있다는 사실은 망각한다는 것이다. 자기파괴충동이 자신의 근본적 욕망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거나 망각한 예술은, 위험할 수 밖에 없다.

한국사회의 예술이, 특히 영화와 문학이 이 지경에까지 이르르고 있다. 자유주의에 대한 적대감이 지나치다 못해 전체주의화 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체주의화 하는 예술은 위험하다. 자신의 존재를 가능케 하는 그 기반을 파괴하는 까닭이다. 그러나 이를 막을 방도는 없다. 예술 자체가 자신의 맹목성을 인지하는 단계에까지 이르르기 전까지는.

 

전체주의 사회에서의 예술의 위상은, 전체주의 사회에서는 예술이 존재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이 이 책의 결론적 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 본인은 대체로는 이 책의 이와같은 주장에 공감하는 바이다. 예술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예술적 자유가 확보되어야 하는데, 전체주의 사회에서는 예술적 자유는 물론 그 어떤 자유도 보장되지 않는 까닭이다.

그러나 책의 이와같은 결론은 일반적인 믿음과는 일치하지 않는 것 같다. 적어도 한국사회의 일반적인 믿음과는 배치되는 면이 있는 것 같다는 것이다.

이 책을 가지고 수업을 하고 리포트를 내 보았는데, 학생들의 견해는 대체로 책의 결론과는 불일치했다. 학생들은 대체로 전체주의 사회에서도 문학이 가능하고 존재할 수 있다고 보고 있었다는 것이다.

 

학생들은 예술적 자유의 완벽한 통제는 불가능하다고 보는 게 아닌가 싶다. 그리고 젊은 학생들의 이와같은 견해는, 이들에 국한되는 게 아니고 사회의 일반적인 통념이 아닌가도 싶다. 전체주의 사회의 위험성에 대한 안이한 판단이라고는 생각되지만, 이런 견해에 전혀 타당성이 없다고만은 할 수 없는 일이다. 본인은 북한을 볼 때 예술적 자유에 대한 완벽한 통제에 도달한 사회가 가능하다고 보지만, 이는 기본적으로 예술을 어디서부터 보느냐 하는 문제와 관련된 것이라는 생각이다.

일반적으로 예술은 예술시장에 그 모습을 드러낼 때에야 존재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이전에는 그것이 존재하는지 존재하지 않는지 사실상 파악될 수 없는 까닭이다. 그러나 예술이 예술로서 존재하기 시작하는 것은 예술시장에 그 모습을 드러낸 때부터이기는 하지만, 예술의 출발은 사실 그 이전부터라고 보는 게 타당하다. 작가가 이런 예술을 하겠다고 의도한 순간이 있을 테고, 그 의도를 현실화시키는 창작과정이 사전에 있었을 게 틀림없기 때문이다. 그 의도성이나 창작과정에 포커스를 맞춘다면, 예술은 시장에 모습을 드러내기 훨씬 이전부터 존재한다고 하는 게 맞는 말이 될 것이다.

 

예술을 그 창작 의도를 갖게 된 순간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으로 본다거나 혹은 그 창작과정에 임하는 때로부터 본다거나 한다면 전체주의 사회에서도 당연히 예술은 존재한다고 보는 게 옳다. 아무리 철저한 통제 사회라 하더라도 의도까지를 통제할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개된 작품을 가지고 예술을 따진다면 전체주의 사회에는 예술이 존재할 수 없다고 하는 게 맞다. 전체주의 사회에서는 지도자에 의해 통제되지 않는 작품은 공개될 수 없는 까닭이다.

우리 사회는 예술을 폭넓게, 즉 작가가 어떤 예술품을 창작하겠다고 마음먹는 그 순간까지를 포함하는 넓은 개념으로 인식하는 게 아닌가 싶다. 내면적 자유로서의 예술적 자유를 인정한다는 건데, 전체주의 사회에도 예술이 존재할 수 있다고 인식하는 태도에는 그런 사전 믿음이 깔려있는 것처럼 보여지기 때문이다. 예술적 자유를 내면적 자유로 보느냐 외면적 자유까지를 포함된 것으로 보느냐 하는 것은 논란이 있을 수 있는 일이겠지만, 하지만 '자유주의, 전체주의 그리고 예술'에서의 결론은 예술적 자유를 외면적 자유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보는, 즉 공개된 예술로서의 예술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는 것이다.

 

전체주의 사회에서 공개된 예술이란, 예술적 자유에 입각된 것이 아니고, 그런 한 전체주의 사회에서의 예술의 존재가능성은 제로일 수 밖에 없고, 제로가 될 수 밖엔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전체주의 사회에서는, 예술이 존재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북한인권과 이에 대응하는 남한 예술의 행태는, 한마디로 말하자면, 부정적이라고 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부정적이라고 하는 것은 남한 예술이 북한인권에 대해 한결같이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북한에는 인권문제가 없고, 그건 문제의 본질이 아니라는 듯한 태도마저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양태를 보이는 게 과거 남한 사회에서의 인권문제에 관심을 가졌던 예술가들에게서 오히려 뚜렷하고 더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더하다고 하는 것이다.

 

남한 예술이 북한인권에 대하여 눈을 감고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 심각한 문제이다. 그 침묵과 외면이 과거 남한 사회의 인권문제를 심도있게 문제제기했던 예술가들에게서 더 뚜렷하고 강도 높게 나타나고 있다는 점은 더욱 문제적이라고 할 수 있다. 남한 예술이 북한인권에 대한 일종의 침묵의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고, 인권에 대한 이중적 잣대를 지니고 있는 게 아닌가 싶기 때문이다.

이런 이중적 잣대는 예술가들을 위선자로 전락시킨다. 위선자로 전락한 예술가들은, 예술가로서의 생명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을 수 밖에는 없다. 예술가가 위선자이고서는, 더는 예술을 생산해낼 수 없는 터이기 때문이다. 예술과 위선은 양립불가능한 것이다. 결국 예술가들의 이런 위선적 태도가 남한에서의 예술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남한 예술을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남한 예술, 특히 영화와 문학이 전체주의화 하고 있다는 사정을 감안하면 이건 그다지 놀라운 일은 아니다. 우려할 만 하고 안타까워 할 만한 일이긴 하지만, 놀라워 할 일은 못된다는 것이다.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이다.

남한 예술이 전체주의화 하고 있다면, 북한 예술과 그다지 차이가 없다는 얘기가 된다. 전체주의 예술이라는 측면에서 동질적이라는 것이다. 북한 예술이 북한인권을 외면한다면, 북한 예술과 동질적인 남한 예술도 당연히 북한인권에 대하여 외면할 수 밖에는 없는 것이다. 동질적이므로 이는 필연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남한의 민족문학단체와 북한의 문학단체가 손을 잡고 남북문인단체를 결성한 것도 이런 수준에서 들여다봐야 제대로 된 이해에 도달할 수 있다. 이건 이질적인 단체의 합체가 아닌, 동질적인 단체의 합치였고, 필연적으로 진행될 수 밖에 없는 일이 일어난 거라고 하는 것이다. 남한문학과 북한문학이 전제와 수준을 달리하고 이런 점에서 남북문인단체의 합체는 성공할 수 없는 비극이 되리라고 보고 있는 이 책의 결론에는 재고의 여지가 있다고 보여진다. 민족문학을 제외한 남한의 다른 문학에 대해서는 이런 주장이 온당하다고 보여지나, 민족문학과 북한문학과만을 놓고 볼 때 이 주장은 타당해보이지 않는 까닭이다. 남한의 민족문학과 북한문학은 전체주의라는 측면에서 동질적인 것이다.

예술가란 인간의 얘기를 다루는 전문가들이고 따라서 북한인권에 대해서도 외면해선 안된다는 주장은 지극히 상식적인 당위론이다. 상식적인 당위론이므로 예술가라면 마땅히 그리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상식이란 별로 사람들에게 인기가 없다고 하는 것이다. 이 책이 사람들에게 별로 주목받지 못했던 것도 지극히 상식적인 당위론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상식적 당위론이 별 흥미를 유발시키지 못할지는 모르지만, 그러나 상식적 당위론을 외면할 수는 없는 일이다. 상식적 당위론이란 인간사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상식적 당위론이 무너지고서는, 인간사 자체가 온전하게 성립될 수 없는 것이다.

상식적 당위론을 회복한다는 차원에서 이 책을 한번 탐독해보는 게 어떨까 싶다. 예술가는 인간의 얘기를 다루는 사람이고 따라서 북한 인민의 아픔과 고통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이 지극히 당연한 상식적 당위론이, 이 지극히 당연한 상식이 남한 사회에서 비상식이 되는 어이없는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서 말이다.

 

<자유야님(http://www.ilnp.co.kr/?ngrp=netizen&act=0105&board=book&sub=view&num=8&sch0=&sch1=&sch2=&page=8)의 글>

 

h****m 2008.03.29.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