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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둔황의 막고굴에서 엄청난 유물이 발견된 후, 그동안 역사의 주변부로 인식되었던 중앙아시아가 동서문명의 가교이자 완충지로 주목되기 시작했다. 이에따라 그 부근 대상의 이동경로가 실크로드로 명명되었고, 실크로드학이 중앙아시아 역사학의 새로운 주류로 부상했다. 한낱 유목민들의 역사에 지나지 않았던 중앙아시아는 수 세기의 침묵을 깨고 새로이 부상한 것이었다. 실크로드학에 대해 이제까지 가지고 있던 선입견은, 한국에서의 연구성과가 불모지나 다름없다는 것이었다. 근동의 일본만해도 나가사와 가즈도시, 타가와 준조 등을 필두로 하는 서역학자들이 훌륭한 저술을 많이 남겼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연구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실정이었다. 얼마전 영국의 수잔 휫필드가 "실크로드 이야기"란 책을 펴냈는데, 당시 실크로드의 환경과 삶을 조명하기 위해 역사와 문학을 결합함으로써 당시의 생활상을 재현하여 센세이션을 일으킨 바 있다. 이러한 탁월한 저술이 어째서 우리나라에서는 나오지 않을까?
이러한 회의감이 사그러갈 즈음 우연히 서점에 들르게 되었고 이 책을 발견하게 되었다.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복역했던 정수일이 서역학자였다는 사실은 내게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더 놀라운 충격은 다른데 있었다. 아니 우리나라에도 이렇게 탁월한 실크로드학자가 있었다는 사실이 바로 그것이었다. 서구 학자들 사이의 이른바 주류 실크로드학의 단점은 연구범위를 즉 실크로드의 공간적 범위를 로마로부터 중국의 장안에 한정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정수일은 이러한 한계를 간파하고 그 범주를 극동 즉 한반도에까지 확장하는데 성공하였다. 굳이 내셔널리즘적이라 비판할 독자들도 있겠지만, 혜초의 서역 여행이라든지 일본의 고승인 엔닌이 서역을 여행하며 구법하였다는 사실, 석굴암이 간다라양식을 본받았다는 사실 등을 감안하면, 정수일의 실크로드학은 실크로드의 지평을 넓히는 계기를 제공하지 않았나하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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