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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늪이 말라버렸다. 세상 그 어떤 것에도 눈물을 흘리지 않는 사람들, 그렇다 하여 그들의 삶이 전적으로 행복하다 말할 순 없을 것이다. 어쩌면 삶이 버거워지는 만큼 우린 나를 제외한 모든 이들을 타인의 범주에 몰아넣고, 그렇게 남이 되어버린 이들에 대해서는 철저한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시를 읽는 내내 생각했다. 우리가 잃어버린 공감하는 능력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이 사람에게 세상은 얼마나 서글픈 곳일지에 대해서… 바람에 흩날리는 풀 한 포기에도 안쓰러울 테고, 무심코 짓밟은 개미 한 마리의 죽음에도 서글픔을 느낄지 모르는 이 사람. ‘현대’라는 시대와는 다소 안 어울리는 듯한 감수성, 어쩌면 잃어버린 우리 자신의 본능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의 뒷부분에 수록된 해설을 통해 시인이 오래도록 만성신부전증의 괴롭힘을 받았음을 알았다. 자신이 어려우면 그 어려움에 매몰돼 다른 것은 보지도 못하는 게 우리의 태도건만, 시인은 반대로 자신의 아픔을 통해 타인의 아픔에도 눈을 떴나 보다. 대개의 사람들에겐 그저 연기만을 뿜어내는 무의미한 것으로 다가오는 굴뚝으로부터 생을 향한 집착을 느끼고, 말라붙은 나뭇가지를 바라볼 때마다 저 나무에게도 싱싱한 젊음이 허락되던 시절이 있었음을 생각하는… 그의 눈을 통해 모든 사물은 살고자 하는 의지를 가진 것으로 다시 태어났다. 현재는 아픔을 표출할 따름이지만 한 때는 건강했던 무언가로 말이다. 공감하는 그의 능력은 제2 부를 통해 보다 선명히 드러났다. 사람 이름이 시의 제목이 되어버린, 여타 다른 시집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광경이 내 눈 앞에 펼쳐졌다. 그들 모두는 이미 우리에게 익숙한 인물들, KBS <인간극장>에서 만났던 사연들이 한 편의 시가 되어 페이지를 수놓고 있었다. 평면 가득한 영상을 통해 맛보았던 ‘생이 이래도 되나 ’라는 원망감, 그럼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하루를 꾸려나가는 그들을 향한 존경심과 나는 다시 만났다. 세상은 그들을 가난하다 비웃고, 정상이 아니라며 선을 그어버리지만 그 어떤 삶도 귀히 여기지 않을 순 없는 법. 하루 반나절 혹은 그 이상을 걷기만 하여도, 낯선 땅에서 병까지 걸려버려 내일을 장담할 수 없게 된다 하여도 그것도 삶이요, 살아있는 자라면 그 삶을 견뎌 내야만 하는 게 이 세상의 법칙임을 시인은 잘 알고 있었다. 한동안의 시큰거림도 짧은 기간의 각별한 관심 후 잊혀지는 것처럼, 그에게 오랜 병마와의 싸움은 어쩌면 삶의 일부가 되어버렸을 테니 말이다. 특출한 글솜씨로 인해 글 쓰는 걸 제 본업으로 삼은 이들이 바로 작가이다. 하지만 그들에게 하나의 문장을 창조해내는 능력보다 더욱 귀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다름 아닌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아닐까 싶다. 아픔에 눈을 뜬지 어언 20년. 제 아픔을 통해 세상의 아픔을 느끼는 시인의 모습을 보며 나는 묻고 싶어진다. 우리 자신의 가슴 속에는 한없이 아픔을 담아낼 수 있는 밑 빠진 독이 있는 게 아닐까라고 그리고 우리의 빈 독을 대신해 시인은 거리마다 놓여있는 아픔을 주워 담았던 게 아닐까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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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이 났다. 그래서 나도 아파졌다. 나의 건강함이 비겁해서 울었다…
<물방울 무덤들>
아그배나무 잔가지마다 누군가 아그배 밑동을 툭, 차면 저 글썽거리는 것들에는 하지만 너는 저 가지 끝끝마다 매달려 언제까지고 글썽일 수밖에 없구나, 너는, 하면서
<불탄 나무>
1 나는 네게 말하마, 내 아파서 너를 아프게 하는 게 더 아프구나! 2 3 우리는 오래 침묵을 나누었다 외로움이란 4 흑백필름에 새겨지는 마그네슘 플래시 발광처럼 환하게 밝아오던 땅 끝 처음 너를 알아보던 때!
<어떤 잠꾸러기> 가운데에서
어쨌든 잠이란, 무언가를 오롯이 견뎌내야 하는 때 가장 좋은 친구, 그야말로 휴식 같은 친구 아니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곤히 잠든 그의 얼굴, 수척한 몸피에 밴 저것은 고스란히 괴로움과 슬픔이 아니면 무어란 말이던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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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 만에 나온 세번째 시집이라고 한다. 시 한편을 쓰는데 얼마만한 시간이 걸리는가 정해져 있진 않지만, 12년 동안 쓴걸 고르고 골라 내었다고 생각하면 시가 참 어려운 것이구나 감탄도 자아내게 된다.
1,2집은 읽어 내기가 참 힘이 들었다. 책에다 감정이입이라도 할라치면 멀쩡하던 내몸도 같이 아파지는것 같았다. 하지만 이번 시집은 마음맞는 아줌마랑 수다 떠는 중이라고 할까...어제본 TV프로 얘기하면서 그거 재미있었지 하고 맞장구 치는 느낌. 시집이지만 에세이 같은 편안함을 느끼게 한다. 그래서 시집이 아닌 조금더 긴글로 읽고 싶은 바램도 가져본다.(나는 '무릎을 잊어버리다.'가 좋다.)
내가 읽고 나서 느낌이 좋아 책 좋아하는 이웃에게 한 권 선물했다. 이 봄에 마음이 따뜻해 지는 시집으로 권할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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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담담할 수 없다. 자신의 그것을 포함한, 인간의 생래적 고통과 쓸쓸함을 시인은 마치 "남의 일인양", "강건너 불구경하듯" 멀찍이 물러서서, 혹은, 시의 제목처럼 "내려다보기"조차 한다. 얼마나 치열하고 숨가쁜 고통의 시간이 흐른 후에야 저렇듯 관조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이다. 흔히들 말하는 "달관"의 경지에 이른것 같은, 얼핏, "인간극장"의 나레이터처럼 담담하게 읊조리는 그의 언어는 역설적이게도 가슴이 서늘해지고, 때로는 철렁 내려앉고, 때로는 억장이 무너지게도 만든다. 그러나 그의 "고통에 대한 담담한 관조"는 팍팍하고 고달프고 아픈 "살아내기"를 하고 있는 독자에게 포기나 외면이 아닌 "수용과 긍정"이라는 크나큰 메세지를, 그의 고통과 견뎌내기의 경험을 빌어 눈물겹게 전달한다. 그것이 "물방울 무덤"의 정수임을, 시집을 덮는 순간 눈치 챌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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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경은 시가되지 않는다. 만성신부전증을 앓고 있는 엄원태 시인은 이틀에 한번씩 피를 투석한다. 그러나 일년의 반을 5시간씩 병원 침대에 누워 병마와 싸워야 하는 고통도, 시인의 ‘시에 대한 사랑과 열정’을 누그러트리지는 못했나보다. 오히려 시인의 병은 그를 키웠고, 삶의 농도를 짙게 했으며, 그의 시를 성숙하게 했다. 시의 곳곳에 묻어나는 병과 죽음, 존재, 아픔, 삶의 이야기가 ‘처음에는 불운이라 생각했던 병이 인생이 스승이 되었다’라는 그의 말을 증명한다. 이번 시집의 특이점은 실제인물을 시의 제재로 삼았다는 것이다. 총 4부로 이루어진 시집의 2부는 모두 인물시편이다. 16편의 시에서 20명가량의 실제 인물들이 등장한다. 처음 인물시를 본 내 반응은 ‘뭐야?’였다. 이런 것도 시가 되나 싶었던 것이다. 시인은 특정 인물의 삶에 개입하지 않고 바깥에서 바라보고 있다. 그 어떤 미사여구 없이 묵묵히 바라봄으로써 객관적 사실만을 풀어낸다. 그래서 나는 이것이 교술이지 서정인가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엄원태가 시인이 될 수 있는 까닭은 있었다. 보통사람이라면 하나의 일상으로 간주하고 넘어갔을 지점을 시인은 시로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즉, 시인은 평범한 일상들에서 인물의 특성이 잘 들어나는 지점인 ‘시가 되는 지점’을 잘 포착하고 있다. “오래 진저리 쳐본 것들만이 그 여운의 미미한 떨림을, 소리 없는 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는 것(종후성中:)”이어서 인지 시의 곳곳에 묻어나는 생의 고뇌와 아픔을 모두 공감하기에는 내가 너무 얕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도 시인처럼 “벌겋게 타오르던 노을이 쇠잔해져 어둠에 사그라지는 시간(저녁일곱시中)” 의 나이가 되면, 인생의 저녁 일곱시의 시간쯤이면 이해할 수 있을런가? “등허리에도 통증처럼 걸려있지만 그 어떤 미련도 남아있지 않다(어두워질때 中)”고 말할 수 있을 때, “저녁 되어 마음을 가라앉히는 것이 늙어가는 어떤 마음과 다름없는 것을 (저녁中)”을 알 수 있을 때, 비로소 시인처럼 진저리치는 삶의 미미한 떨림을 느낄 수 있을 런지. 그건 정말이지 말이 필요 한게 아니다. “말이 미처 되지 못한 생각은 거기도 고요와 침목의 뒤범벅으로 붐비는(말이필요한게아니다 中)”것은 이렇게 시가 된다. 엄원태의 이번 시집은 ‘절경은 시가되지 않는다’는 그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아픔과 어둠이 깔려있다. 상처가 문학을 만든다는 말이 있는데, 그에게는 병이 시를 만들게 했나보다. “존재라는 구체성과 한계를 동시에 껴안는다는 의미에서 그 쓸쓸한 긍정만큼 아름다운 것이 또 있을까?”라는 마지막 시인의 말이 시집의 모든 이야기들을 함축적으로 가장 잘 표현해주는 것 같다.
2007.07.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