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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격물가(과학자) 장영실을 이 시대에 소생시킨 일등공신은 드라마도 위인전도 아니다. 바로 김종록 장편소설 <장영실은 하늘을 보았다>이다. 김종록 작가는 단 몇 줄의 사료 뒤에 숨어있던 비운의 과학자이자 왕과 벗한 노비 장영실의 삶을 최초로 복원해 그의 발자취를 중국을 넘어 사마르칸트까지 넓혀가며 생생하게 그려냈다. 장영실은 역사 속에 혜성처럼 등장해 혜성처럼 사라진 인물이다. 그저 똑똑한 노비, 세종과 함께 조선의 과학을 발전시킨 의문의 인물로만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당시 조선과 중국의 역학관계나 성리학자들의 세상에서 노비의 신분으로 중국에 유학하고, 대호군(종3품)까지 초고속 승진하며, 납득이 안 되는 사건을 빌미로 역사에서 감쪽같이 사라진다는 사실은 문사철에 능통한 중견 베스트셀러 작가에게는 소설로 형상화하기에 매혹적인 소재였음직하다. 소설은 노비 신분의 장영실이 중국에 유학해 북경 천문대에 오르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그는 금단의 영역, 중국 황제의 천문대에 선 최초의 조선인이다. 그 위에서 나지막이 내려다보이는 자금성을 바라보며 영실은 인간이 만든 신분제와 ‘천하의 중심’ 자리에 대한 깊은 의문을 품는다. 기득권이 만든 제도의 모순과 하늘조차 독점하려드는 중국의 탐욕을 깨닫고 자아를 발견한 그때야말로 최초의 근대적 인간이 탄생하는 순간이 아니었을까? 덫에 걸린 멧돼지 신세의 어린 노비, 책방 도령을 가르치려다 옥에 갇힌 방자, 중국이 탐 낸 조선의 과학자, 세종이 사랑한 노비에서 대호군까지 장영실은 다양한 모습으로 변모하며 성장한다. 게다가 유불선에 능통한 스승 갈처사와 영실을 죽음의 위기에서 구해내는 공녀 여비 한씨의 등장, 원나라 천문학자 곽수경의 손녀딸과의 국경을 초월한 사랑, 정화 원정대를 따라 세상을 경험하고 싶었던 탐험가이자 위대한 과학자이고 싶었던 장영실의 삶이 웅장한 서사구조 속에서 중국을 넘어 사마르칸트까지 뻗어가며 한 편의 영상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과연 장영실은 비운의 과학자인가? 억세게 운 나쁜 노비로 태어났지만 왕과 친구가 되고 중국유학 후 마침내 15세기 조선 최고의 과학자가 된 천재 장영실. 세종과 장영실은 수많은 난관을 뚫고서 결국 조선의 하늘을 열지만, 세상의 중심이자 하늘이라 자처하는 중국 황제가 이를 결코 용납하지 않는다. 강대국 중국의 회유와 겁박 속에서 장영실과 세종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우리의 하늘을 그대로 빼앗기고 말까? 이 소설의 백미는 바로 마지막 놀라운 반전 속에 들어있다. 우리는 하늘의 달조차도 백자에 담아 집 안으로 들이는 민족이다. 장영실과 세종은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그들만의 곳, 천 세 만 세를 두고 숨겨둘 수 있는 그곳에 하늘을 감쪽같이 감춘다. 놀랍게도 이 부분은 소설이 아니라 팩트다. 엄연히 존재해왔음에도 지금까지 의식하지 못하고 있던 팩트말이다. 이 소설에는 사실보다 더 사실 같은 진실이 담겨있다. 10여 년 전 초판에서도 그러했고 재출간된 지금은 긴박감 넘치는 재미까지 더해졌다.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면 알게 될 것이다. 우리가 아는 비운의 과학자 장영실이 지금까지 얼마나 두터운 베일 속에 가려져 있었는지를. 이 소설은 그의 삶을 생생히 복원할 뿐만이 아니라 자아를 발견한 개인, 그리고 어느 위대한 조선 노비의 응어리진 한限까지 신명나게 살풀이 하고 있음을. 게다가 우리가 말하고 읽고 쓰는 한글 속에 담긴 놀라운 의미까지 더해 한국인의 자부심을 고취시킨다. 과연 이 시대에 부는 장영실 열풍의 주역이 소설 <장영실은 하늘을 보았다>라는 사실에 이의를 제기할 이가 있을까? 우리 시대에 다시 태어난 장영실은 이 소설이 있기 전과 있은 후로 나뉠 따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