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미를 찾고 의미를 재생산하는 ‘생비자’로서의 문화수용자> 문화를 ‘생산’하는 자와 문화를 ‘소비’하는 자. 언뜻 보면 아주 다른 역할을 하는 두 집단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제 단순히 ‘생산자-소비자’의 이분법적 구분은 무의미하다. 문화를 만드는 생산자가 ‘의미 만들기’를 하면 소비자 혹은 수용자는 ‘의미 찾기’를 한다. 소비자의 ‘의미 찾기’의 결과는 새로운 ‘의미 만들기’로 연결된다. 이제 문화수용자는 일방적인 소비자가 아닌 문화를 소비함으로써 적극적으로 새로운 의미를 찾아내고 만들어내는 ‘생비자(pro-sumer)'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고급문화 <-> 대중문화 고로 대중문화=저급문화?> 이 책의 ‘프롤로그’ 부분에서 저자는 ‘대중문화’를 ‘고급문화’와 비교해 저급한 것으로 보며 대중문화 소비자들을 문화적 ‘젬병’으로 보고 있는 과거의 지식인들의 엘리트주의적인 사고를 비판하며 대중문화와 그 문화를 소비하는 수용자들을 비중 있게 바라보고 있다. 나는 그의 이러한 시각에 동조한다. 다만 내가 여기서 묻고 싶은 것은 저자가 규정한 ‘고급문화-대중문화의 구분이 옳은 구분인가’ 하는 것이다. 흔히 고급문화라 일컬어지는 문화(나는 이렇게 고급문화라고 일컬어지는 문화가 진정한 의미의 고급문화인지에 대해서도 회의적이다)가 과연 진정한 고급문화일까? 흔히 사람들 사이에서 고급문화로 불려지는 문화는 단지 ‘비싼’ 문화 혹은 ‘고상한’ 문화일 뿐 고급문화는 아닌 것 같다. 그리고 ‘고급’문화의 상대개념은 ‘저급’문화여야지 대중문화가 될 수는 없다. ‘대중’문화는 단지 ‘고상한’ 문화의 상대적 개념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대중문화의 범주 내에서도 상대적으로 고급문화에서부터 저급문화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하는 게 아닐까? <대중문화의 다양한 스펙트럼; 고급문화에서 저급문화까지> 저자는 책에서 “서태지의 하드코어 록이 트롯이나 댄스곡보다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음악이라고 암묵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을 비판하며 “장르적 차이를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우열의 관계로 몰고 가는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에 공감한다. 하지만 냉정하게 대중문화 판을 바라보면 장르의 차이가 ‘취향’의 차이를 넘어 ‘우열’의 차이로 이어지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사실 트롯이나 댄스곡을 하드코어 록과 동급 수준으로 평가하는 것은 불공평하지 않은가? 저자의 사고방식은 자칫 수용자로 하여금 ‘진정 좋은 작품이 무엇인가’를 판단하는데 있어 혼란을 가중시키고 대중문화의 수용자로 하여금 진정 좋은 문화를 찾아 떠나게 힘들게 만들 수 있다. 그런 사고방식은 H.O.T.와 G.O.D.를 열광적으로 좋아하는 팬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에 다름 아니다. H.O.T., G.O.D.의 팬들을 단죄하자는 게 아니다. 다만 그들로 하여금 H.O.T.나 G.O.D.의 음악보다 더 좋은 음악이 이 세상에는 더 많이 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대중문화 내에도 고급과 저급 사이의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하니 그들로 하여금 더욱 적극적으로 고급 대중문화를 찾아 가도록 권유하고픈 것이다. <또 하나의 문화전략; 소수의 수용자를 중심으로 한 아방가르드 문화운동> 핑클, S.E.S., G.O.D., H.O.T. 등의 댄스음악에 열광하는 팬들처럼 많지 않지만 홍대 앞 인디 밴드에 열광하는 수용자들도 있다. 나는 이러한 인디 문화를 대중문화 속의 고급문화이자 대안문화로 생각한다. 그들의 음악은 비록 장르 면에서 일반적인 대중문화와 다르지 않고 수용자 면에서도 소수의 문화이지만 그 형식이나 내용에 있어 진보적이고 앞서가는 음악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이런 음악들은 소수의 수용자만이 좋아할 수밖에 없다. 이런 면에서 나는 김지하가 율려운동을 시도함에 있어 ‘아방가르드적 시도’를 하는 것에 어느 정도 공감한다.(나의 율려운동에 대한 지식이 부족함을 핑계로 율려운동 자체의 평가는 자제하기로 하겠다.) 세상의 모든 문화가 대중에 맞추어 나간다는 것은 불가능하고 또 어떤 면에서는 바람직하지도 않다. 문화의 수용자로서의 대중을 낮게 평가하는 게 아니다. 세상의 다양한 문화 중 어떤 문화는 처음에는 고급문화의 형식으로 시작하여 나중에 점차적으로 대중화되는 것도 하나의 전략이자 현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
| 저자 조흡의 글은 '월간 인물과 사상'을 통해 그런데로 많이 읽었었고, 그의 문화를 보는 시각 또한 어느 정도는 파악하고 있었다. 이 책을 선택한 것은 이러한 '익숙함'이 많이 작용한 결과라고 하겠다. 책은 '월간 인물과 사상'등에 게재한 글을 모아놓은 형식을 취하고 있으나, 그간 파편처럼 떨어져 있던 저자의 문화에 대한 기준을 책의 '프롤로그'를 통해 확실히 알 수 있어서 백화점 식의 나열을 피했다고 할 수 있다. 챕터의 구분도 그런대로 괜찮았고, 분량의 경우도 원래의 글이 부담스럽지 않을 만한 정도라 부담되지 않았다. 저자는 '대중 문화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물음을 시종일관 던지고 있으며, 그 물음에 답으로 문화는 현상이 아니라 수용자의 행위로써 파악해야 한다고 제시한다. 이것은 우리의 문화에 대한 그동안의 단편적이고 편협한 시각을 넓혀주는 개념으로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저자의 시각에 전혀 문제가 없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우리의 문화에 대한 담론이 지나치게 '위로부터 형성된'것이라는 것과 그에 반하는 담론은 또한 너무 극단적으로 '음모론'에 치우쳤다는 것을 상기해 볼때, 저자의 대중 문화론은 좀 더 구체적인 현실에 가까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