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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그리고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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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등학생 즈음 때부터 작은영화관에서만 개봉하는 그런 작은영화들을 자주 찾아다니며 보곤 했었다. 그 때도 뭐에 꽂혔었는지 지금 생각해보면 제목도 내용도 그렇게 끌릴만한 것 하나 없는 그 영화에 왜 그렇게 목 맸는지 모르겠지만, 그 때는 그 영화를 놓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영화를 싫어하는, 특히나 그런 잔잔한 영화를 정말 싫어했던 남자친구를 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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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등학생 즈음 때부터 작은영화관에서만 개봉하는 그런 작은영화들을 자주 찾아다니며 보곤 했었다. 그 때도 뭐에 꽂혔었는지 지금 생각해보면 제목도 내용도 그렇게 끌릴만한 것 하나 없는 그 영화에 왜 그렇게 목 맸는지 모르겠지만, 그 때는 그 영화를 놓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영화를 싫어하는, 특히나 그런 잔잔한 영화를 정말 싫어했던 남자친구를 데리고 이백 석도 안 되어 보이는 영화관에 앉았다. 광고 하나 없이 조명이 꺼지고 숨소리도 사라진 다음에, 나는 스크린에 적혀진 글자를 보았다. '나인 라이브즈(Nine Lives).'

 이 영화는 제목에서처럼 아홉 개의 삶을 차례로 보여준다. 영화에 등장하는 아홉 명은 '분노, 슬픔, 회상' 등의 단어만으로 표현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아직 미련을 버리지 못한 남자친구와의 짧은 만남으로 인생이 무의미하다고 느끼고, 평생을 증오한 아버지 앞에서 총을 꺼내면서도 쏘지 못하고 울어버리고, 할머니가 되어버린 한 어머니가 오래전에 잃었던 어린 딸을 잊지 못해 아직도 무덤을 찾아오기도 한다. 그들은 삶에서 얼마든지 마주칠 수 있는 갑작스럽고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났을 때, 우리가 어떻게 변화하고 행동하는지를 한 컷 안에 여과없이 보여준다. 그 한 컷 사이에 나타나는 수많은 표정들. 그 한 컷 가운데에 보이는 어떤 표정만으로 우리는 과거로 혹은 무한한 상상의 세계로 들어간다.

 죽는다는 것.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일 것이다. 이 영화에서도 죽음을 앞둔 아내를 보살피는 남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수술 직전, 불안한 아내가 진정제를 맞고 겨우 잠들자 남편은 아내의 볼에 자신의 볼을 대면서 나지막이 말한다.

 "우린 영원히 함께 할 거야." 

 영화관에서 볼 때는 몰랐는데, DVD를 사서 집에서 그 장면을 보았을 때, 나는 몇 년 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 생각이 났다. 정확히 말하면 죽어가는 할아버지를 지켜보는 할머니가 생각났다. 갑자기 할아버지가 암으로 입원하시고나서 할머니는 꼬박 일 년을 병실에서 지내셨다. 나는 거의 가지 않는 병원에 석 달 만에 갔다가 한 달만에 가고, 일주일만에 가게 되었다. 그러는동안 할아버지는 하루가 다르게 살아있는 미이라가 되어갔다. 할머니는 병원 앞에 있는 만개한 벚꽃나무를 보면서 내가 항상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옛날 말투로 말씀하셨다. "이것이 당신과 함께 하는 마지막 봄입니다."

 이틀 후 할아버지가 위독하시다는 말을 듣고 급하게 간 병원은 이미 죽음을 앞두고 있었다. 내가 도착하고 한 시간 후에 의사는 사형선고를 내렸다. 그리고 정말로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써야겠다. 시간이 느려지고 공기가 멈춰버렸다. 나는 입을 한껏 벌린 채 죽어있는 할아버지를 보고 그 옆에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있는 할머니를 보았다.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볼에 할머니의 볼을 대면서 말씀하셨다. "극락에서 기다리소."

 할아버지가 계시지 않은 지금 할머니는 아무것도 못 하신다. 생각해보면 할아버지는 그 시절에 고학력자에 철학가이고 역사학자셨으니, 글도 잘 못 읽으시는 할머니 대신 머리 역할을 해주셨던 셈이다. 이제 할머니에게 모든 서류문제가 생길 때마다 어머니가 경주까지 가신다. 툴툴대는 어머니만큼 나도 할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할아버지의 부재에 대해 느끼고 있다.

 언젠간 나에게도 영화처럼 마주하고 싶지 않은 상황에 맞닥뜨리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익숙하고 공감이 가는 장면일수록 그 상황을 나도 모르게 연습해보게 된다. 내가 그 상황에 처한다면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처하게 될지. 나는 그들과 좀 다를지. 하지만 지금까지는 역시 이 장면이 최고인 것 같다.

 "우린 영원히 함께 할 거야."                  

 

 

 

c*********3 2009.06.22. 신고 공감 3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