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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출판사별로 여러 종류가 있음)에 실려 있는 글이 담겨 있는 책이다. 국어 교과서를 만드는 사람들이 교과서에 담을 글을 뽑을 때 얼마나 고민했을까를 생각해 보고, 그 많은 글들 중에 하필 이 글을 뽑아 실은 데에는 또 그만한 이유가 있으리라 하는 것도 생각해 보고, 이 글을 통해 학생들에게 전해야 하는 교육의 의도가 무엇인지도 생각해 보고, 어떻게 하면 더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까도 생각해 보고...... 책도 이런 생각 중에 얻은 셈이다.
내가 뭐라고 보탤 말이 없다. 좋은 책이다, '그냥 좋은 책', 이렇게 말해도 되는 좋은 책. 각각의 글도 좋은 글. 오죽하면 교과서에 담아 전국의 학생들에게 읽히고 싶어 했을까. 이런 글을 안 읽으면 아깝고 서운하다고 생각해서 담았을 게 아닌가. 꼭 꼬집어서 투정을 부린다면, 딱 교과서 같아서, 교과서에 실릴 만한 글이 담긴 책이라서 매력이 도로 떨어진다고 해야 할지(교과서에 실리기만 하면 글의 재미나 가치와 상관없이 시험 공부 대상으로 삼아야 하니까, 저절로 글과 문제 풀이 방식을 연결시킬 수밖에 없게 된다.).
교과서에 실려 있는 부분 외에도 학생들과 함께 읽었으면 좋겠다고 싶은 글이 많다. 할 수만 있다면 책 자체를 같이 읽었으면 좋겠지만, 그런 자유로운 교육과정이 우리에게 주어질 리는 없을 테니, 부분만으로도 만족하자 여긴다. 이렇게라도 읽는 것이 아예 안 읽는 것보다는 분명히 나을 테니까.
글을 왜 읽어야 하는지, 어떻게 읽는 게 좋은지, 어떤 글을 읽어야 하는지, 누군가 설명해 주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스스로 읽으면서 터득하는 것도 때로는 필요하다고 본다. 이 책은 바로 그런 깨달음을 확인하도록 해 준다. 그동안 내가 잘못 읽었구나, 소홀하게 읽었구나, 글을 통해 선인과 만난다는 게 진정한 나를 만난다는 게 바로 이런 거구나, 글을 읽어야 하는구나....에 이르기까지.
옥편이 무엇인지 알까, 옥편을 보기는 했을까, 요즘 아이들이. 이것도 우리 어른들의 잘못이 아닐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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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틀을 타고 학교로 가는 길이었다. 문득 익숙한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설핏 이마를 찡그리고 생각해보니 아하, 이 노래는 진미은 경장님이 야근을 할 때마다 들으셨던 노래구나. 음음, 멜로디에 맞추어 고개를 까닥거리다보니 기억은 자연스레 그때로 돌아간다.
진미은 경장님은 경찰서 내에서 나와 말이 통하는 몇 안되는 사람 중 한명이었다. 자극이 없고, 그래서 의욕이 없는 공기업에서 진경장님은 눈에 띌 정도로 적극적이던 분이셨다. 진경장님을 도와 야근을 할때마다 나는 은근히 기분이 좋았더랬다. 군복무를 하는 중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아무런 의미 없이 흘러가는 일상이었는데, 진경장님을 도와서 일을 할 때만큼은 내가 이 지역에 자그마한 도움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셔틀에서 내려서 오랜만에 진경장님에게 안부 전화를 드렸고, 그날 밤 나는 진경장님이 선물해주셨던 '스승의 옥편'을 꺼내들었다. 제대하는 날 "제대로 된 책 좀 읽어!"라며 건네주셨던 책이었다. 나는 "제가 딱히 제대로 되지 않은 책을 읽었던 것 아니지 않습니까~"라는 장난기 섞인 목소리로 선물을 받았고 그렇게 부푼 꿈을 가득 안은채 서울행 버스를 탔다가 집에 도착하자마자 책장 구석에 끼워놓고 까먹어버린 책이었다.
봄인 봄이었으되 도저히 봄 같지 않았던 찬바람 불던 밤, 나는 이불을 돌돌 말아 흡사 소라게 모양을 하고선 책을 펴들었다. 정민 선생님이 10년에 걸쳐 써온 글들을 하나하나 읽다보니 나는 퍼뜩 죽비를 맞은 것마냥 머릿 속이 뎅뎅거렸다. 소라게 껍질...이 아니라 이불을 벗고 자세를 바로 잡고 다시금 책을 읽어내려갔다.
'스승의 옥편' 표지에 나온 그림은 정민 선생님의 스승인 이기석 선생이 생전에 쓰던 옥편이다. 하도 많이 찾아서 반 이상이 말려들어가고 손때가 절어 너덜너덜한 이 옥편을, 정민 선생님은 한 장 한 장 다리미로 다리고 수선해서 책장에 고이 모셔두고 있다고 한다. '학문의 길에 무슨 왕도가 있겠는가? 단순무식한 노력만 있을 뿐이다.'라는 정민 선생님 앞에서 내 모습이 얼마나 부끄러워지던지.
새로운 것이 추앙 받는 시대다. 이제 더이상 옛 것은 익힘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하지만 정민 선생님은 '사람 사는 세상은 본질적으로 하나도 변한 게 없다'며 옛 것의 아름다움을 설파한다. 정민 선생님이 소개해주는 한시들을 읽으며 '아! 아름답다!'라고 느낄 무렵 선생님은 슬슬 본론으로 들어가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일침을 놓는다.
옛 사람들은 평생동안 읽는 책이 십여권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고 한다. 다만, 같은 책을 읽고 또 읽어서 모든 구절을 달달 외울 정도로 읽었다고 한다. 책 속 어느 한구절도 놓치지 않고 깊숙히 파고 들었기 때문에 옛사람들이 쓴 글을 보면 그들의 마음 속엔 깊은 철학이 들어있다는걸 알 수 있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어떤가. 현대인들은 옛사람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많은 것을 공부하고 많은 책을 읽지만 제대로 된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은 몇 없다. 글이라고 해봐야 꼬여도 한참 꼬인 '악취나는 미문'거나 내용은 없이 껍데기만 있는 글인 경우가 허다하다. 많은 정보가 넘쳐나고 삶의 속도는 점점 빨라지지만, 글쎄, '조선시대 이덕무가 20대 중반에 쓴 일기를 보고 감동'받고, '30대 중반에 쓴 박지원의 글을 이해하지 못해 쩔쩔'맨다는 정민 선생님께서는 내면이 비어있는 현대인들을 바라보며 이것이 정녕 진보냐고 우리에게 묻는다.
책을 다 읽고 다시 소라게 껍질...이 아니라 이불 안으로 들어가 다시금 진경장님을 떠올려보았다. 왜 진경장님이 이 책을 '제대로 된 책'이라고 부르는지 알 것 같았다. 나는 이 책을 '독서를 위한 책'이라 부르고 싶다. '스승의 옥편'을 읽고 나면 왜 독서를 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독서를 해야하는지에 대해 알게 된다. 나는 이제서야 모난 돌처럼 원리원칙을 지키며 살아가던 진경장님의 대쪽같음이 어디서 나왔는지 알게 되었다.
하아. 나는 책을 다 읽고 난 뒤에도 한참동안 소라게 껍질에 덮인 채 부들부들 떨면서 내가 찬바람 때문에 떠는건지, 아니면 정민 선생님의 일침 때문에 너무 부끄러워서 떠는건지에 대해 고민을 해봐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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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다는 것이 나에겐 어떤 의미일까를 생각해 본다.
어렸을적 나는 책읽기를 좋아하지도 않았고 어떤 책이 좋은 지도 잘 몰랐다 그렇기 때문에 방학숙제로 나오는 글짓기 내기 독후감은 정말 괴로운 과제였다.
그래서 나는 흔히들 말하는 우수한 고전들이라고 하는 책들을 많이 읽지 못했다 또한 지금에 와서 고전을 읽는 다는 것이 조금은 낯설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정민님의 글을 통해 조금씩이라도 어렵지 않게 우리의 고전에 대해 관심을 두게 되였다.
스승의 옥편은 그런면에서 보면 조금은 어렵지 않은 글들을 모아 놓은 듯 하지만 스승님의 정을 그리워 하는 옥편을 대하는 마음으로 내용들이 이루어져 있어 좋았다.
특히 책읽기와 글쓰기 에 나와 있는 내용들은 정말 늘 가슴에 새기며 매일매일 읽어야 겠다고 결심했다.
책을 왜 읽어야 하는지 또한 단순히 읽는 것만이 중요하지 않다는 그런한 말들이 지금 책을 읽고 있는 내게 질타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렇지만..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와 방법을 나는 다신 한 번 분명히 알게 해 준 좋은 만남이었다고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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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님의 블로그에 방문했다가 이벤트에 당첨되었다. 책 두 권을 보내주신다 하기에 <스승의 옥편>과 <미쳐야 미친다>를 부탁드렸다.
이 책은 '옛글의 행간','세상읽기 삶읽기','생활의 발견','책읽기와 글쓰기'의 네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저자의 소박하면서도 훈훈한 인정이 담긴 글의 무게가 마음에 많이 와 닿았다. 요즘 마음이라는 것이 무엇일까 가끔 생각하고 있는데, 마음은 무엇으로 채워지지 않은 것이며 깨끗이 닦아야 하는 것이라고 말한 부분도 좋았고, 자녀가 어릴 때 겪었던 일화들이 옛글과 어우러져 드러나는 부분도 좋았다. 나는 딸과 아들을 키우면서 재치가 넘쳤던 순간들을 다 잊고 말았다는 아쉬움 때문이다. 인상적인 부분은 '스승의 옥편'과 4장의 여러 글이었다. 스승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이 내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주었다. 옛 사람들이 글을 읽으며 문리를 터득하고 주견을 얻은 다음, 식견을 형성해가는 과정을 읽고는 학교에서 독서에 관해 설명할 때 유용하리라 생각했다. 오래 전, 컴퓨터를 처음 익힐 때 <도스3.3> 설명서를 12번이나 읽으면서 공부했다. 그 정도로도 학교에서 컴퓨터를 담당하는 업무를 맡게 되어 우쭐했었다. 그런데 조상들은 책을 통째로 외우는 방법으로 공부를 했다. 미련스러워 보이기까지 했던 그 공부법이 실은 가장 지혜로운 방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책을 덮고 나서 좌악 떠올라야 산독서지 읽었는데도 안 읽은 것과 비슷하다면 죽은 독서라는 부분을 읽을 때는 한참 졸릴 때인 한밤중인데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정민 선생의 글은 여운을 남기는 것이 좋다. 책을 읽으면서 '내 생각'을 덧붙이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아무 생각 없이 남의 것을 받아들이기에도 바쁜 세상이라는데 그 중심에 내가 없으면 무슨 의미가 있나. 나를 돌아보게 하니 그 글에 무게가 실려 있다. 그래서 좋다. 이참에 정민 선생의 책을 모조리 읽어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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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목이 한 번 터지면 세상 어떤 것도 두려운 것이 없다'
사실 많은 책을 읽으면서 우리는 가끔 단 한 줄의 문장을 통해 스스로 와의 공감,
또는 자신이 찾고 있던 삶의 답변을 찾기도 하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해보곤 한다.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위의 저 한 문장이 내 최근의 삶을 한 문장으로 표현할 수 있게 한
책 이었던 것 같다.
살면서 개인적인 많은 일들을 겪고 힘들어 하고, 또는 사회에서의 다난한 경험과
사람들과의 부데낌 속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는 안개 속 같은 시간들.
하지만, 그러한 시간들은 거칠고 무거운 압력이 되어 자신을 채찍질 하기에
우리는 열과 압력에 의해 소성변형을 하는 물질 마냥 수많은 고민과 방법 모색으로
자신을 변화하게 되고, 어느 순간 칠흙같은 어둠 속에서 더듬 거리듯 빛을 발견한다.
그리고서는 그 한 줄기 빛이 여명이 되고 마침내 환한 광명이 되는 순간,
그 암흑 속에서 느꼈던 두려움들은 거짓말처럼 사라져 버리곤 한다.
왜냐면 삶의 '안목'이, 불꽃이 터지듯 머리와 마음 속에서 새로운 길을, 또는 이미 누군가는
알아왔던 그 '바른' 길을 내 안의 네비게이션에도 업데이트 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후 부터, 우리는 지난 두려움을 더 이상 무서워 하지 않게 된다.
솔직히 이 책은 전혀 기대치 않은 많은 '새로움'을 내게 주었다.
문장을 줄이고 생각을 늘리게 하는 법과 더 깊은 고찰만이 진정한 자신만의 식견을 가지게
한다는 아주 기초적이지만 간과하기 쉬운 기본을 다시 생각케 하는 시간을 가지게 해준
좋은 책이었다.
특히나 '4 장' 이 개인적으로는 제일 좋았다는 멘트를 붙이며,
모두들 기회가 되면 차분하게 읽어 보실 기회를 권하고 싶습니다.
여러분들 중 그 누군가도 우연히 나와 같이 당신의 최근을 표현해 줄 한 문장을 찾고,
거기서 큰 희열을 느낄수 있을지도..
늘 행복한 독서생활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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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벤트 책들에 치여서 정작 내 책들을 읽지 못하는 답답한 독서의 연속이었다. 내가 좋아서 신청한 책임에도 기간 내에 읽고 리뷰를 써야 한다는 압박감은 상당한 스트레스였다. 독서의 의미조차 잃어가는 상황이기에 이벤트를 줄이고 그 동안 묵혔던 책들을 조금씩 꺼내서 읽기 시작했다. 그 변화는 미미했지만 많은 책을 읽고 리뷰를 쓰는 것보다 마음이 훨씬 편했다. 비로소 내가 제대로 책을 읽는 것 같았고, 많은 이들에게 선물 받은 책들을 꺼내 볼 수 있어서 행복했다. 이 책도 선물 받은 책들 중 하나였다. 온라인으로 인연을 맺게 된 소중한 사람에게서 받은 책임에도 오랫동안 방치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책의 진가는 더 발휘 되는 듯한 느낌이었다. 소중한 사람이 준 책이였고 평안한 상태였으니 책의 내용이 내게 쏙쏙 들어올 수 밖에.
정민님과의 만남은 이번이 두번째다. <책 읽는 소리>를 통해 옛 선인들의 모습에 많은 감동을 느꼈었다. 그래서 저자의 신간이 나왔다고 하기에 지인에게 말해서 받은 책임에도 이제서야 꺼내 보는 나의 손길이 부끄러워 진다. 비단 이제서야 꺼내는 마음만 부끄러우랴. 책을 읽고보니 현재의 내 삶에만 치우쳐 마음속에 허영만 채웠던 시간들까지 부끄러운 것들 투성이었다. 이 책에는 <책 읽는 소리>보다 좀 더 다양한 저자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옛글을 읽다 읽지 못할 풍경을 실은 글, 논설적인 성격의 글, 생활 속의 단상, 선인들의 독서와 단상에 대한 글들을 담고 있었다. 10년동안 쓴 글을 모았다고 해서인지 창작의 흔적보다는 편안함이 지배적이었다. 너무 빨리 읽혀 멈춤을 의도해야 할 정도였고, 멈춤 속에서는 놓쳐 버리고 싶지 않는 것들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보기도 했다. 그러나 책을 덮고 난 지금은 그다지 생각 나는게 많지 않다. 소소한 에피소드만이 기억날 뿐이다. 책을 읽었음에도 어찌 기억나는게 없을까 한탄을 해보지만, 오래지 않아 결과보단 과정의 책이었기에 이런 느낌이 들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책 읽는 소리>처럼 과정이 더 벅찬 책이었다. 많은 공감을 끌어 내지 못했더라도 한 두 가지의 이야기가 내 머릿속에 박혀있는 느낌. 그 느낌들이 이 책의 전부다라고 말하지 못해도 내게는 책의 전부를 기억하는 것보다 소중하다는 기분이 든다.
내게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옛글의 행간>과 <책 읽기와 글쓰기>에 대한 글이었다. 그 중에서 나를 부끄럽게 만들고 스승의 가르침을 소중하게 만들었던 글이 생각 난다. 한문학자인 저자가 석사논문을 권필의 한시로 준비할 때, 시를 번역해서 스승께 보인 일이 있었다. '텅 빈 산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비는 부슬부슬 내리는데'라는 부분을 스승이 말이 많다며 '빈 산 잎 지고 비는 부슬부슬'로 줄이게 하는 장면에서 나는 심히 부끄러워져 버렸다. 평상시에 불 필요한 말은 얼마나 많이 했으며, 책의 느낌을 남기는 이 순간에도 얼마나 많은 잡설로 채우고 있는가 하는 생각 때문에 지금도 얼굴이 화끈 거린다. 또한 차근차근 짚어 주며 가르침을 주었던 저런 스승이 분명 하나쯤은 있었을 터인데, 무조건 밀쳐내 버렸던 내가 안타깝기도 했다. 그런 안타까움과 후회로 책을 읽어 나가고 있었는데 <책 읽기와 글쓰기> 부분에서 또 한번 무너지고 말았다. 지식인들의 언어 꼬기의 실상을 보면서였다. 그런 글을 만나도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거라고 그들의 글을 찬사하기 여념이 없었다. 그러나 글의 횡포를 눈치 채지 못한 나의 어리석음이라는 깨달음이 들었다. 거기다 김훈이 '칼의 노래'에서 한 때 이순신의 연인이었던 여진의 죽음을 묘사하는 장면을 다섯장을 썼다가 '내다 버려라'로 일축 했다는 부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저자의 글에도 배우고자 하는 마음은 그득했다. 그랬기에 많은 이들에게 존경 받는 저자도 스승의 옥편을 다리미로 다리며 조심조심 보는 이유가 이러한 부끄러움이 내제 되어 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스승이 위대해서가 아니라 부족한 부분을 노력으로 채워갔던 스승의 마음을 잃지 않고자 함은 아니었을까. 몇몇 이야기를 통해 스며드는 저자의 아릿한 마음들이 내게도 번져와 잠시 스산해지는 마음을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 마음들이 정처없이 떠돌아 다시 내 곁으로 오지 못한다고 해도 저자가 느꼈던 아릿함은 오래도록 남아 있을 것이다. 내 마음속에. 그리고 앞으로의 내 삶 속에도. 너저분한 잡설로 채워 나가는 나의 글이지만, 그 느낌들을 잊지 않고자 하는 마음이라고 너그러이 품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