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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이나 도서관의 서가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게 하는 작가들이 있다. 『마호로역 다다 심부름집』의 미우라 시온이나 『박사가 사랑한 수식』의 오가와 요코, 『선생님의 가방』의 가와카미 히로미나 『바람에 휘날리는 비닐 시트』의 모리 에토가 그렇다. 그녀들의 책이 보이면 되돌아가서라도 집어들게 된다. 그렇다고 그녀들의 책을 많이 읽었느냐 하면 그도 아니다. 여기저기서 드문드문 만날 때마다 더듬더듬 한 권씩 읽어가며 조금씩 다가갔을 뿐이다.
어제 도서관에서 모리 에토의 책 한 권을 발견했다. 그녀를 알게 된 건 『바람에 휘날리는 비닐 시트』를 통해서였다. 당시 그 책에 눈이 가게 된 것은 '나오키상 수상작'이라는 문구 때문이었다. 좀 희한하지만 나는 나오키상 수상작을 좋아한다. 그리 합당치 않은 이유지만 나오키라는 이름의 어감이 좋아서인데 그 책은 표지도 마음에 들었고, 제목도 마음에 들어 빨려가듯 읽어내려갔던 책이었다.
담담히, 잔잔히, 그러나 깊게 그려진 생의 의미 『바람에 휘날리는 비닐 시트』 http://blog.yes24.com/document/5426347
그 후『달의 배』를 읽었고, 그녀의 이름이 적혀 있다는 이유로 『아몬드 초콜릿 왈츠 』와 『별똥별아 부탁해』 를 모아두었다. 더 이상 빈 구석이 없는 우리 집 책장에 한 작가의 책이 4권이나 있다는 것은 그녀에 대한 내 사랑의 방증이다.
『리듬』은 모리 에토의 등단작이다. 이 책으로 그녀는 고단샤 아동문학상을 수상하며 데뷔했고, 다음해 이 책으로 무쿠 하토쥬 아동문학상도 받는다. 그만큼 그녀가 아이들의 심리를 잘 반영했거나 압도적으로 잘 썼다는 뜻일 테다. 『리듬』은 이렇게 시작한다.
나는 변하지 않는 것이 좋다. 바람처럼, 하늘처럼, 달처럼 변하지 않고 있어 주는 것이 좋다.
사춘기를 맞은 중학교 1학년 짜리 소녀 사유키의 고백이다. 달라지지 않고 그냥 그 자리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좋고 힘이 된다는 거다. 그런데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는 것이 쉽질 않다. 그게 쉬웠다면 얼마나 좋을까? 변하지 않는 것이 있어야 되돌아갈 수 있는데, 사유키에게는 이미 되돌아갈 곳이, 추억을 반추할 곳이 사라져버렸다.
다시 돌아오지 못한다, 많은 것이. 내 주위에 있던 것이 조금씩 모습을 바꾸어 간다.
예전처럼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사유키의 사춘기는 시작된다. '제2의 집'이었던 큰집이 큰아버지와 큰 엄마의 이혼으로 파경을 맞이했을 때, 그래서 큰집에 가도 큰아버지가 보이지 않을 때, 그로 인해 신지 오빠가 신주쿠로 떠나려 할 때 사유키의 세계는 불안정해졌다. 소중한 선물처럼 간직했던 기억들이 큰집의 파국으로 금이 가면서 사유키의 세계도 금이 가버렸다.
적잖은 시간을 사유키는 멍하니 보냈고, 밤마다 기도했다. 하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다. 신지 오빠 때문에 언니와도 갈등을 빚었고, 엄마에게는 너무 가까이 지내지 말라는 얘기를 들었다. 덧붙여 엄마는 이제 옛날처럼 지낼 수는 없다고 했다. 큰집을 찾은 사유키에게 큰엄마는 미안하다고 했다. 사유키는 자신이 시들어버린 꽃같다는 생각을 한다.
"이제부터 주위의 잡음이 신경 쓰이고 부모님이나, 선생님이나, 친구의 목소리가 신경 쓰여서 네가 생각한 대로 움직이거나 웃지 못할 때, 이 스틱으로 리듬을 맞춰 봐. 너에게는 너만의 리듬이 있으니까."
첫사랑이자 좋은 친척 오빠였던 신지 오빠가 신주쿠로 가면서 건내준 말이다.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하고 흔들리는 사유키에게 신지 오빠의 이 말은 중심을 잡게 해 주었다. 오랜 만에 만난 큰엄마의 얘기도 사유키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미래는 텅 비어 있어서 좋단다. 될 수 있으면 멋진 것으로 메워 가고 싶어."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담담한 글이다. 그러나 꽤 저돌적이다. 인생에 대한 질문이고, 마음에 품어왔던 의문이니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했고, 원치 않는 것을 수용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 속에서 사유키는 커가고 있었다. 그건 나이와 상관없이 세상을 사는 누구에게도 마찬가지이리라. 그래서 사유키는 이 말을 할 수 있었고 우리는 이 말을 내 이야기로 치환할 수 있었다.
사뿐히 내려앉은 바.람.냄.새.에서 새로운 반 친구들의 웃.는. 얼.굴. 속에서 1학년 때와는 조금 다른 내.자.신.속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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リズム :: 森繪都 중학생인 사유키에게는 친척 오빠인 신지가 둘도 없는 우상이다. 예전엔 신지보다 두살 위 오빠인 다카시와 자신의 언니인 미유키, 그리고 동갑내기인 데쓰야와 곧잘 어울려 놀곤 했지만 다카시와 미유키는 공부와 진학에 몰두 하느라 자신을 외면하고 데쓰야는 가난한데다 왕따라 보기만 해도 화가 치민다. 신지도 머리를 노랗게 물들이긴 했지만 노래 라는 꿈을 소신있게 키워 나가고 데쓰야를 돌봐주는 상냥함도 있는데다 변함없이 자신들과 놀아도 준다. 미유키는 이런 생활이 계속 지속되길 바라지만 다카시와 신지의 부모, 즉 큰엄마, 아빠가 이혼을 한다는 소식과 더불어 신지도 꿈을 실현 시키기 위해 신주쿠로 상경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충격을 받는다. 왜 꼭 변해야 될까. 왜 남들이 하는 대로 따라 하지 않으면 안되는 걸까.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은 도대체 뭘까. 변화 속에 소망을 지속 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 아이를 낳고 백일이 넘었을 때, [뒤짚기] 를 못한다고 시댁 어른들이 성화였다. 4개월 넘어도 별로 뒹굴 의지가 없어 보이자, 일부러 애를 굴리라고 주문까지 했다. 돌이 지나자, 이번에는 왜 걷지 못하냐고 아우성 이었다. 17개월이 되도록 걸음마에 불안한 모습을 보이자 다리 이상이 있다며 정형외과 검사를 받으라고 심각하게 제안 했다. 두세살이 되어도 말을 제대로 못하자, 아이가 뒤떨어진다며 향후 몇십년까지 지레 걱정을 했고, 너댓살이 되도록 한글을 모른다고 엄마인 나를 비난 하기도 했다. 우리 부부는 다소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게 그렇게 느린가? 뒤짚기를 할 때와, 걸음마를 할 때와, 기저귀를 뗄 때와, 말을 배울 때와, 한글을 깨우쳐야 할 때가 딱딱 정해져 있단 말인가? 설령 그 때 라는 것이 있어서 그 시기에 도달하지 못할지언정, 무조건 아이는 열등하단 말인가? 호들갑을 떨던 주변 사람들이 무색 하게도 여섯살이 된 아들은 주변 다른 아이들과 별 차이가 없다. 아니, 지능의 차이가 얼마나 날지는 알 도리가 없어도, 최소한 개성의 차이에서는 여섯살의 인생을 살아가는데 별 무리가 없어 보인다. 나만 해도 성격과 행동은 급해도 습득에 있어선 느리기 짝이 없는 사람이라 아이에게 그 이상을 바라지도 요구 하지도 않는다. 대기만성, 이라는 근사한 말도 있지 않은가. 토끼 같은 능력으로 젊은 나이에 무언가를 이룩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거북이 같은 느릿함이라도 부지런하고 게으르지 않은 성격이 있으니 그게 내 미덕이려니 하고 내 자식에게도 딱 그만큼만 바란다. 뛰어서 빨리 종점에 도착하는 것만큼이나 걸어서 주변 풍경을 기억하며 도착 하는 것도 좋은 인생 이라고. 그런데 사회적 환경이 이런 태도는 잘못 되었다고 비난하고 압박한다. 뒤짚기를 했으면 일어서야 되고, 걸어야 되고, 말해야 되고, 글을 배워야 되고, 외국어를 배워야 되고, 학교를 가야 되고, 남을 제치고 높은 등수를 매겨야 하고, 대학 진학을 해야 되고, 좋은 기업에 들어가야 되고, 결혼을 해야 되고, 애를 낳아야 된다. 모든 일에 마지노선의 기간이 설정되어 있다. 그 때를 넘기면 안되고, 되도록 빨리, 빨리 하란다. 인생은 90분 축구 게임이나 마찬가지인데, 30분에 골 다 넣으면 되는 거란다. 그럼 남은 시간은 방어만 해야 하나? 골 먼저 많이 넣었으니 게임 끝내야 하나? 연장전까지 착실히 뛰어서 막판에 골 넣어보는 인생은 그야말로 막장인가? 빠른 속도감에 2,30년 길들여져 있자니 얼리어댑터가 추앙 받고 몇년도 채 안지는 것을 지니고 있는 것은 부끄러움이 된다. 남이 산 것은 나도 사야 되고, 남이 한 것은 나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린다. 무언가 샀다, 했다를 드러내서 타인에게 확인 받아야만 비로소 자신이 진정한 소유물이 되었다고 안심한다. 등수와 높은 점수에 집착 하다보니 평생을 숫자 컴플렉스에 시달린다. 높은 조회수, 높은 방문객 숫자, 높은 스크랩수의 숫자가 자신의 인간됨과 애정 확인의 척도다. 칭찬이나 관심의 반응이 없으면 무시 받거나 미움 받았다는 자격지심에 시달린다. 남이 있어야 자신도 있다 해도 주체와 주체로서의 상호 교류가 아니라 타인 이라는 숙주가 있어야 자신이 기생할 수 있다는 절박함으로 스스로의 존립 가치를 서서히 잃어 버리고 포기하게 되는 것이다. 사회인으로서 타인과의 상호 영향은 피할 수가 없다. 때로는 상대의 장점으로 좌절하고, 때로는 상대의 단점으로 우월감을 느낀다. 사람 누구나 장단점을 지닌 존재 이므로 타인과 구분 시키기 위해 굳이 애써가며 타인이 안하는 것, 반대 되는 것, 마이너한 것으로 자신을 역류 시키는 것도 무의미 하다. 그래봤자 사람의 생의 흐름은 결국 같은 길이기 때문이다. 단지 폭포로 가느냐 시냇물로 가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내 성분이 시냇물인데 폭포의 강함과 속도를 부러워 해서 무엇하리. 세상이 설령 폭포의 인생을 아름답다고 찬미 한다해도 그렇다고 시냇물이 세상에 필요치 않는 것도 아닐 것이다. 속도가 느려도 세상에 있을 가치는 있다. 스스로가 그것을 기꺼이 만끽하며 마침내 바다에 도착 했을 때, 꼭 폭포가 아니었어도 되었다는 걸 깨닫고 만족하게 되지 않을까. 내 속도대로, 내 리듬대로, 결국은 골인을 한 것이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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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뜻했다. 머리가 쨍하게 맑아지는 것 같았다.
어지럽고 불안하고 뛰쳐나가고 싶은 사춘기,
하지만 설레고 아름답고 자유로웠다.
읽는 내내 책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성장소설을 읽기엔 나는 너무 나이가 들어 버린 것 같았지만
책 속의 문장 하나하나를 가슴에 새기고 싶었다.
살아가면 갈수록 가장 중요한 것을 잊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가끔 이런 책을 읽을 때마다
가슴이 설레고 가슴이 뜨끔해지는 것 같다.
오래간만에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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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 에토, <리듬>이라는 책 제목보다 모리 에토라는 가냘퍼 보이는 소녀적인, 발음할 때 왠지 기분 좋아지는 작가의 이름에 더 눈길이 갔다. <리듬>은 무슨 이벤트에 당첨되어 받은 책이다. 한 소녀의 성장기라는, 성장 소설 특유의 냄새가 나서 사실 처음에는 좀 읽기 거북한 느낌도 있었다. 나는 이미 다 성장한 어른이니까.. 이유가 좀 웃긴가? 그러나 그래도 한번 읽어 보자는 생각에 펼쳐 들었는데, 굉장히 속도감있게 읽혀 금세 다 읽어 버리고 말았다. 큰아버지네의 이혼과 그 희생양이 된 주인공의 짝사랑 신지 오빠. 반항하는 듯 보여 염려하는 어른들의 속단과는 달리 사촌 오빠는 주인공에게는 세상의 중요한 큰 부분이다. 또한 큰 의지가 되어 주는 사람이다. 그 나이대에 그랬듯, 부모님의 말보다는 사촌오빠의 말에 더욱 진지해지는 주인공의 모습에, 내 어릴 적 모습이 투영되어 살짝 미소를 짓게 된다. 어릴 적 감성이 다시 밀려드는 왠지 모를 아련함에 입맛을 다시게 되는 소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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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1학년. 더이상 아이도 아니고 그렇다고 어른이 되기에는 너무 작고 어린 존재. '리듬'은 중학교 1학년 사유키의 미묘한 심리를 따라가는 성장 소설이다. 성장 소설이라고 해서 거창한 사건이 일어나 일생일대의 경험을 하는 것은 아니다. 사유키는 큰아버지네의 이혼과 사촌오빠의 이사 등 어쩌면 사소하고 평범한 일을 통해서 과거에서 변하고 싶지 않은 자신을 극복해나간다. 누구나 꿈을 잃고 싶지는 않다. 또 누구나 행복한 과거를 잊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어른이 된다는 것은 때로는 꿈을 잃기도 하고 때로는 행복한 과거를 잊기도 하는 것이다. 사유키가 그런 것처럼.
중학교 소녀의 변화와 성장을 그린 모리 에토의 '리듬'은 감각적인 문체와 선명한 색상의 일러스트 등으로 독자들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을 수 있을 것이다. 비록 몸은 다 큰 어른이라 할지라도 내 마음은 아직 사유키인 것만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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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텅 비어 있어 좋단다. 될 수 있으면 멋진 것으로 채워 나가고 싶어.
너에게는 너만의 리듬이 있으니까...
중학생때의 감정을 차분하게 그린 소설.
노란 책 표지 만큼이나 설레이고 중간이고 아무것도 결정 되어 있지 않던 그런 시절에 내 리듬을 찾으려고 해본 적이 있던지...
지금도, 난 내 리듬을 찾아 헤매는 것만 같아. 그래도, 아직 오지 않은, 미래가 될 수록 멋진 것들로 가득 차길... 비워 나가고 다시 채우고, 또 그렇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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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즐겨 읽던 일본소설을 다시 보던 중에 만난 작가 모리 에토. 성장소설을 많이 보았지만, 정말 탁월했다. 그때의 두근거리는 감정들이 되살아났다. 어른들에게는 한심해보였겠지만, 보물처럼 소중했던 그때 그 순간으로 돌아가게 했다. 그리고 아직도 나만의 리듬을 찾지 못하고 주변의 잡음들에 휘청거리는 지금의 나에게도 들려주는 이야기가 많은 글이었다. 이 작품 하나로 모리에토라는 작가를 머릿속에 새기고 싶게 만들었다. 이 작가의 더 많은 작품들이 출간되기를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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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본 시간은 얼마 안 되는데 쓰는 시간은 또 오래 걸리고 있다. 처음 시작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서 이런 말을 먼저 썼다. 이 책 다음이라고 할 수 있는 《골드 피시》도 있다는데 이 책에 대해 잘 쓰지도 못하고 그 책을 볼 수 있으려나. 먼저 여기 나오는 후지이 사유키는 중학교 1학년이다. 곧 여름방학이 끝나고 새학기가 시작될 것이다. 사유키는 달라지는 것을 싫어했다. 여름방학이 끝나고 학교에 다니면 처음에는 어색하게 느끼다가 이틀이나 사흘이 지나면 다시 적응했다. 나는 새학년이 되면 그랬는데. 그리고 사유키한테는 친하게 지내는 친구도 둘이나 있었다. 내가 느낀 어색함과 사유키가 느끼는 게 조금 다른 것인지도 모르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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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면 안되지만, 제목을 보고 김완선씨의 리듬을 춰줘요가 생각나서 잠깐 웃었다.
사유키는 자신이 어렸을 때 쓴 일기를 발견하고는 웃는다. '두개의 우리집'이란 제목의 글에는 우리집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신지 오빠에 대한 이야기 뿐이다. 큰집의 다카시오빠와 신지오빠, 그리고 언니와 함께했던 추억. 울보쟁이 데쓰야가 같이 놀아달라고 쫓아왔던 기억. 네 사람이 어릴때 어디론가 먼 곳을 향해 모험이라며 떠났던 짧은 여행길. 앞에서 다른 아이들을 재촉하며 열심히 목표를 쫓았던 다카시 오빠와 그런 오빠를 열심히 쫓아갔던 언니. 그리고 그 뒤에서 장난을 열심히 치며 별로 그곳까지 가는 것이 의미를 두지 않았던 신지와 사유키. 결국 데쓰야가 힘들다고 해서 중간에서 포기했던 기억까지.
소녀는 변하지 않고 싶었지만 세상은 흘러간다. 머리를 노랗게 물들인 신지오빠는 밴드를 하겠다고 하고 많은 것은 변해버렸다. 작가가 21세에 사유키라는 소녀를 그리고 싶어 썼다는 글이다. 책을 덮은 후에 난 21살에 뭐했지하는 생각이 들어 조금 우울해졌다. 뭐 지금 돌아갈 수도 없을 뿐더러 돌아간다고 해도 뭔가 뾰족한 수가 생기는 것도 아니다.
아마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이 지나버렸다는 것이 아쉬운 것 뿐인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