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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부다 해서 약 160페이지 밖에 되지 않는 날씬한 분량의 이 아름다운 책이 (내용뿐만아니라 표지의 초록도!) 절판되었다는 것은 슬픈일이다. 어쩐지 변태, 혹은 망녕난 노인을 연상케 하는 [연애소설을 읽는 노인]의 기본 줄기는 뜻밖에 거만한 백인들에게 살해당하는 아마존 정글 속의 살쾡이, 무지하고 맹목적인 인간들의 손에 파괴되어 가는 자연에 대한 이야기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아하, 그렇단 말이지, 이쯤해서 눈치챘어, 하고 생각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아, 우리는 얼마나 자연을 망쳐놓고 있었던가...등등등... 지사적인 맹목으로 가득한 잔소리로 가득찬 책이겠군. 그러나 속단하지 말아주었으면 좋겠다. 이 책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정글을 가득채우고 있을 소리들 만큼이나 다양하고 아름다운 이야기와 문체다.
독설가 치과의사, 뻔뻔하고 거만함으로 추하기 그지 없는 읍장, 정글속으로 속으로 백인의 개발앞에 속절없이 도망만하고 있는 수아르 족, 발전의 찌꺼기에 몰려든 히바로족. 그리고 무엇보다 연애소설을 한구절 한구절 씹어 먹고 사는, 문명을 버리고 자연에 순응하는 방법을 배운 노인. 이들이 어울어져 만들어내는 하모니는 경쾌하고 때로는 격렬하다. 우리는 무엇을 잊고 무엇을 망쳐 놓았는가? 그리고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암살쾡이가 버려지는 마지막 장면이 더 없이 가슴아프다. [인상깊은구절] 안토니오 호세 볼리바르는 천천히 일어셨다. 죽은 짐승에게로 다가간 그는 총알이 짐승의 몸뚱아리를 찢어 놓은 것을 보자 가슴이 아팠다. 짐승의 가슴은 하나의 커다란 상처로 변해 버렸고, 등쪽으로 위장과 허파가 삐져 나와 있었다. 처음으로 본 암살쾡이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컸다. 야위긴 했지만 아름다움 그 자체라고 해도 될 정도로 멋진 짐승이었으며 상상으로라도 만들어 낼 수 없을 만큼 걸작 중의 걸작이었다. 노인은 부상당한 발의 고통을 잊어버린 채 살쾡이를 쓰다듬었으며, 자기 자신이 비열하고 천하게 느껴져서 부끄러움으로 눈물을 흘리면서 이 싸움에서 자신이 결코 승리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을 개달았다. 눈물과 빗물로 두눈이 뒤범벅이 된 채 그는 살쾡이의 시체를 강가로 끌고 갔고, 강물은 살쾡이를 정글 깊숙한 곳으로, 백인들의 더러운 손이 결코 닿지 않을 땅으로, 아마존 강이 합류하는 곳으로, 비열하고 해로운 것들이 절대 손댈 수 없도록 비수처럼 날카로운 돌들이 그를 갈기갈기 찢어 놓는 일을 맡게 될 여울로 실어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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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제일 뒷부분에 소개문인가, 안내문인가에 노인과 바다와의 차별성에 대해 말하는 부분이 있다. 왜? 노인과 바다와 다른 책이라면 굳이 그 차이를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이런 책이 있는지도 몰랐는데 우리 사무실의 이모양께서 여기 나오는 노인이 날 닮았다고 읽어보라고 해서 읽게됐는데, 읽는 내내 노인과 바다의 척추에 피부색만 다르게 발라 놓은거 아니야?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는 다르게 순수하게 그 '책'에게만 초점을 맞춰서 보는 사람들에게는 술술 읽히는 재미와 아마존의 묘사들 만으로도 재미있는 책일 것이다. 하지만 나처럼 기존의 읽은 책과 비교를 하는 사람들에겐, 특히 노인과 바다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또 하나의 아류작은 아닌가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올만한 오해의 여지를 가지고 있다.
요약해서 책을 읽을까말까,,고민하는 사람들에게 그들이 원하는 정보만으로 말하자면,
: "읽는 재미는 있다. 읽을 만하다. 그런데 노인과 바다가 자꾸 생각날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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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오 호세 볼리바르가 책을 구경한 것은 가져간 원숭이와 잉꼬를 판 날이었다. 그는 여선생이 보여 주는 책들을 본 순간 형언할 수 없는 감동에 휩싸였다. 대략 50여권을 헤아리는 책들이 선반에 가지런히 정렬되어 있었다. 그는 그날부터 그 즈음 구입한 돋보기 안경을 쓰고 나름대로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결정하기까지는 그때부터 다설 달 정도가 흘렀다. 그사이 그는 여러 책을 보며 혼자서 생각하고 혼자서 묻고 되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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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은 끊임없이 이야기를 한다. 그러나 그것을 들을 줄 아는 귀는 많지 않다. 루이스 세뿔베다는 자연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작가다. '세상 끝으로의 항해'에서 작가는 푸른 남극해에서 불법 고래잡이를 하는 거대한 일본 포경선에 맞서 외롭게 투쟁하는 한 늙은 뱃사람의 이야기를, '연애소설을 읽는 노인'에서는 평생 아마존에서 살아왔고 또 그곳을 지키는 노인을 통해 인간의 문명이 자연에 입힌 상처와 자연의 일부였던 삶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는 우리의 야만성을 돌아보게 한다.
아마존의 오지 엘 이딜리오, 이빨이 썩기 시작한 순간 자기가 글을 읽을 줄 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노인 안토니오 호세 볼리바르 프로아뇨, 권력층과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음을 과시하려고 일부러 버리지 않고 있던 오래된 신문 몇장을 볼리바르에게 읽을 거리로 빌려주겠다는 읍장, 일년에 두 번 들르는 우체부처럼 6개월에 한번씩 찾아와서 이빨을 뽑고 틀니를 흥정하는 입이 걸은 치과 의사, 내기 때문에 멀쩡한 이빨을 모조리 뽑아버리는 원주민 청년, 단 두권 밖에 읽어보지 않은 연애소설 이야기를 볼리바르에게 들려주는 실의에 빠진 신부......
얼핏 보기에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희극적이다. 그러나 노다지꾼과 양키의 점령으로 오염되고 무너지는 정글에서 자신들의 삶의 방식을 빼앗기고 잃어가는 자연과 사람들은 나날이 교활하고 사나워진다. 숲 속의 오두막에서 혼자 사는 노인 볼리바르는 치과의사가 올 때마다 가져다주는 연애소설을 읽는 것이 유일한 낙이다. 그에게 연애소설은 늙음이라는 가공할 만한 毒에 대한 해독제이고 인간의 야만성을 잊게 해주는 아름다운 망각의 세상이다.
아마존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서 살고 있는 수아르족이 어느날 백인의 시체를 싣고 오자 읍장은 그들에게 살인 누명을 씌우려 한다. 볼리바르는 백인의 몸에서 거대한 암살쾡이의 흔적을 찾아내어 그들이 새끼 살쾡이를 죽였기 때문에 어미의 보복을 받은 것이라고 수아르족에 덮어 씌운 누명을 벗겨낸다. 볼리바르 때문에 자신의 원칙이 사사건건 훼손당한다고 분개한 읍장은 그를 암살쾡이 사냥에 동참시켜 완전히 제거해버리려 한다.
내키지 않는 사냥에 나선 볼리바르는 거대한 암살쾡이와 단 둘이 대면하고 살쾡이의 가슴에 총을 겨눈다.
"미안하네. 친구. 그 망할 놈의 양키 녀석들이 우리 모두의 삶을 다 망쳐놓았군."
불리바르의 말은 작가가 정작 하고 싶었던 말이었을 것이다. 그는 승리보다 치욕에 휩싸여 인간의 손이 닿지 않는 강물 깊숙히 살쾡이의 시체를 밀어넣고 연애소설이 있는 그의 오두막, 탐욕과 파괴가 존재하지 않는 눈물이 흥건해지도록 아름다운 꿈의 세계로 돌아간다. [인상깊은구절] 처음으로 본 암살쾡이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컸다. 야위긴 했지만 아름다움 그 자체라고 해도 될 정도로 멋진 짐승이었으며 상상으로라도 만들어 낼 수 없을 만큼 걸작 중의 걸작이었다. 노인은 부상당한 발의 고통을 잊어버린 채 살쾡이를 쓰다듬었으며, 자기 자신이 비열하고 천하게 느껴져서 부끄러움으로 눈물을 흘리면서 이 싸움에서 자신이 결코 승리자가 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눈물과 빗물로 두 눈이 뒤범벅이 된 채 그는 살쾡이의 시체를 강가로 끌고 갔고, 강물은 살쾡이를 정글 깊숙한 곳으로, 백인들의 더러운 손이 결코 닿지 않을 땅으로, 아마존 강이 합류하는 곳으로, 비열하고 해로운 것들이 절대 손댈 수 없도록 비수처럼 날카로운 돌들이 그를 갈기갈기 찢어 놓는 일을 맡게 될 여울로 실어갔다. 그리고 나서 그는 화가나서 총을 집어던져 버렸고, 살쾡이가 강물 속으로 가라앉는 걸 바라보았다. 모든 인간들로부터 치욕을 당한 금빛 짐승. |
| 이 책은 일종의 고발문학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가 이미 서두에서 세계적인 환경운동가이자 아마존강 유역의 위대한 옹호자인 친구 치코 멘데스에게 이 책을 바친다고 했듯이 처녀성을 지키고 있는 아마존 유역의 문명인 백인들이 들어와 자연의 질서와 섭리를 깨뜨려 버린 현실을 고발한다. 세상은 호세 노인이 한가롭게 연애소설을 읽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사랑하는 남녀가 고통스러운 사랑을 하지만 결국에는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연애소설을 좋아하는 노인은 한 달에 두번씩 치과의사가 건네주는 연애소설을 읽으며 여유롭게 자연의 조화에 삶을 내맡기고 있다. 연애소설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어쩜 인간다운, 또는 자연다운(?) 모습을 그린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자연스러운 아마존을 권력을 상징하는 읍장, 문명을 상징하는 백인, 이주민들이 샅샅이 파헤치고 난도질한다. 자연의 섭리를 거스린 백인들은 어느날 살쾡이 가족을 죽이고, 미쳐버린 암살쾡이는 인간을 사냥한다. 어쩔 수없이 살쾡이를 사냥해야 하는 호세 노인은 결국 살쾡이를 죽이고는 연애소설을 읽을 수 있는 자신의 오두막으로 발길을 옮기지만 왠지 씁쓸한 여운을 남긴다. 환경이 언제까지고 호세 노인을 편안하게 연애소설을 읽을 수 있게 만들 것 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자연과 어울려 사는 수아르족,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수컷의 고통을 끝내기 위해 죽여달라는 암살쾡이의 간절한 눈빛 등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아름다운 묘사와 문체는 호세 노인이 연애소설을 몇 번이나 읽고 외우고 하듯이 문장에 푹 빠지게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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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자신이 밝혔듯이 이 소설은 아마존강 유역의 옹호자인 친구 미구엘 첸케에게 바치는 작품이며 저명한 환경운동가 치코 멘데스를 기리는 작품이다. 당신이 만약 정말로 연애 소설을 읽는 노인에 관한 이야기를 읽고 싶었다면 권유하고 싶지 않다.
원시림의 아름다움을 여직까지 간직해온 엘 이딜리오에 한 백인이 살쾡이에게 습격당하면서 소설의 흐름은 급격하게 진행된다. 조용히 연애 소설을 읽으며 말년을 보내고 싶었던 노인은 그 소박한 소망을 이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살쾡이를 죽이는 일에 동참하게 되고, 그런 과정 속에서 물질 문명의 세례를 받은 읍장과 백인들, 자유분방한 원시의 삶을 살아가는 수아르족, 그리고 수아르족의 삶을 살지만 수아르족이 아닌 노인이 각자의 입장을 드러낸다.
기본적으로 단순하고 굵직한 플롯을 가진 이 소설에서 섬세한 재미는 맛볼 수 없다. 살쾡이를 죽인 후 자신이 이 싸움에서 결코 승리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비열하고 해로운 것들이 손댈 수 없는 정글 깊숙한 곳으로 살쾡이를 데려 가는 결말은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하며 환경소설이라고 못을 박듯 교훈적이기까지 하다.
번역이 조악했기에 문장을 꼼꼼히 읽기를 선호하는 나는 이 책을 그리 즐겁게 읽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시니컬하면서도 유쾌한 문장 몇 개를 발견할 수 있었다. 원전은 더 훌륭했을 거라는 아쉬움을 감출 수가 없다. [인상깊은구절] 그렇기 때문에 그는 정기적으로 모습을 감추어야만 했다. 수아르 인들의 설명에 따르면, 그가 자기 부족의 일원이 안 되는 게 좋다는 것이었다. 그를 보고 그와 함께 있는 게 좋긴 하지만 그가 곁에 없을 때 그에게 말을 할 수 없다는 데서 생기는 슬픔이라든가 그가 다시 나타날 때 즐겁게 뛰는 심장의 고동소리도 느껴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