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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본서를 구입하는 데에 있어 어느정도의 학연과 지연이 작용했음을 시인해야겠다. 저자(라고 칭해도 될까 조심스러울 지경-_-;;;;;)의 소개에 따르자면, 나와 같은 동네에 살면서 같은 학교와 같은 정서를 갖고 살았던 분으로 보이는데(물론 나이는 내가 근 15년 가까이 어리지만ㅋ) 혹여 어린시절 나도모르게 지나치지 않았을까, 하는 반가움에 별 이유없이 구입했다. 도입부에서부터 저자는 이 책이 우리의 현실과는 별 상관없는 고답적이고 학술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으며, 가능한한 지루하게 서술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고, 나 또한 그 대목을 보며 구입을 잠깐 후회했지만, 정작 굉장히 재미있게(?!)읽었다. 아울러 본서의 내용이 우리의 현실과는 동떨어진 20세기 초 독일의 보수적인 '교양시민계급'지식인들의 이야기이지만, 그렇다고 오늘, 여기에 사는 우리에게는 아무 쓸모없는 이야기라 치부하는 것은 못내 아쉬운 일일 것 같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나만의 생각인가? 이 보수혁명의 주인공들은 유럽에서는 어쨌건 '늦은 근대'를 맞이했다는 독일에서 20세기 초,중반에 맹활약(?)한 독일의 교양시민계급이다. 그들은 물질과 기술지상주의적인 자본주의 근대화의 물결도 마땅찮았고, 온갖 '잡것'들이 설치도록 내버려 두는(?) 민주주의도 사회주의도 공산주의도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들 입장에서는 지극히 암울했을 근대화의 시기를 지나 1차 대전이 시작되자 이들은 환호했는데, 전쟁터야말로 그들이 생각하던 이상-희생, 형제애, 신뢰같은-이 실현되는 공간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은 직접 전쟁에 참여하며 전쟁터가 그렇게 낭만적인 공간은 아님을 느끼게되고, 전쟁터에서 놀라운 기술 발전이 보여준 화력을 체험한 그들은 다시 한쪽 극으로, 즉 기술에 대한 맹신의 길로 간다. 전반적인 우울함 속에서, 그렇다고 과거로 돌아가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워졌기에 이들은 결국-저자의 표현에 따르자면-'앞으로의 도주'를 감행한다. 이러한 앞으로의 도주는 다양한 모습을 띠고 있다.(심지어 '민족볼세비키'란 이름으로 극좌파인 볼세비키와 연대하는 부류도 있다.) 물론, 이들의 다수는 대놓고 나치즘을 지지하지는 않았지만 나치즘을 수용하는 보수주의적 입장에 서 있었고, 때문에 나치즘에 대한 책임을 피할 수는 없다고 봐야하겠지만, 기본적으로 그들은 어떤 방식으로건 유의미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집단은 아니었다. 그들의 성향자체가 '반정치적'이었기 때문이다. 책에서 보여진 이들의 수많은 정신적 아이러니들은 혼란스러운 시기 인간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이러한 서술은 모습들은 우리의 혼란스러운 시기를 다시 정리, 해석해 보고자하는 의욕을 부추긴다. (솔직히 말하자면, 난 책을 읽는 내내 이젠 미디어에 일상다반사로(?) 얼굴을 내비치는 소위 '운동권출신 극우보수 변절자'들이 떠올랐다. 그러니까 그들은, 애초부터 변절하지 않았던 것은 아닐런지??) 자칫, 방향을 잃고 헤맬 수 있을 주제이지만, 저자가 탁월한 문체로 매혹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정말이지 지금, 여기의 현실과 동떨어진 것처럼 보이는 주제이지만, 어떤 사람이 읽건 실망하지 않을 만한 내용이다. 당근 별 다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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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바이마르 공화국(1918~1933)은 근대헌법상 처음으로 소유권의 사회성을 강조하고 인간다운 생존권을 보장하는 것을 이상으로한 20세기 현대 헌법의 전형인 된 '바이마르 헌법'으로 유명하다.
바이마르 공화국은 헌법뿐만 아니라 독일 보수주의 지식인들은 '보수 혁명'(Konservative Rovolution)이란 담론을 형성하였다. 진진성이 지은 <보수혁명>은 보수 혁명 담론을 통해 20세기 독일 보수주의와 그것을 이끌었던 지식인들을 이해하는 도움을 준다.
주의할 점은 '보수혁명'이라 할 때 현실 정치에 실현되고 있는 보수주의와 연관시킬 수 있지만 이들 지식인들은 현실정치를 거부했던 '반(反)정치적' 이념을 빚어냈음을 알아야 한다. 보수혁명을 이끈 이들은 반서구주의 반근대주의적 입장을 견지하였고, 보편성을 지향하며 개별 인간의 자유를 강조하는 서구 자유주의의 이념을 거부하였다.
"독일보수주의는 역사적으로 계몽 사상과 프랑스 혁명에 대한 투쟁 과정에서 형성되었으며 따라서 줄곧 서구 세계에 대한 저항 의식을 키워왔다. 이 이념은 특히 범인류적 보편성을 지향하는 서구 자유주의를 문제시했으며 그것의 토대인 계몽적 이성과 개인의 자유의 원리를 모두 거부했다."(20쪽)
계몽사상과 개인의 개별인간의 자유와 권리는 기술과 산업혁명, 다양한 정치적 ․ 사회적 혁명을 가져왔다. 이는 기존의 사상과 예술, 정치 형성과 사회 구조를 붕괴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독일 지식인들은 이 변화를 위기로 인식하였고, 붕괴되어가는 사회 현실을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하였다.
“보수혁명은 근대적 혁명 이념들이 고취시켰던 바와 같이 ‘역사적 진보’를 위한 혁명이 아니라 오히려 그와 정반대로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혁명이었다.”(31쪽)
<서구의 몰락>을 지은 오스발트 슈펭글러(Oswald Spengle)는 “우리는 생을 지배하는 이성의 힘을 더 이상 믿지 않는다. 우리는 생이 이성을 지배한다고 느낀다. 인간에 대한 인식이 우리에게는 추상적이고 보편적인 이념보다 중요하다.”고 했다. 계몽사상과 보편성, 이성적인 사유를 거부했던 보수혁명은 '전쟁'(1차 세계대전)을 통하여 폭발한다.
1914년 8월 1차대전 발발을 통하여 집회 자유가 제한되었던 프로이센 독일에서는 '개인들과 계층들과 직종들'이 혼연일체가 되어 거리로 뛰쳐나와 '카니발'을 연상시켰다. 이런 일은 독일 보수층을 고무시키기에 충분했다. 개별 인간의 권리보다는 '통일된 단위'로 유대를 재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신학자 에른스트 트뢸취(Erenst Troltsch)는 말했다.
"이 믿기 힘든 (전쟁의) 압력하에서 독일의 삶의 희생, 형제애, 신뢰의, 필설로 다 할 수 없이 위대한 통합 속으로 녹아들어갔다. 승리에 대한 확인이야 말로 잊을 수 없는 8월이 준 의미였고, 또한 현재에도 그러하다."(39쪽)
독일 보수주의는 이렇게 개인과 공동체(전체)가 운명일체임을 확신하게 되었고, 독일 민족 개별 인간은 새롭게 등장은 주체인 공동체에 부름받는 객체가 되었다. 수 많은 젊은이들은 결국 전쟁에 스스로 나섰지만 독일은 처참한 패배를 맞게 되었다.
개별 인간이 아닌 공동체와 전쟁이 나은 처참한 결과를 통하여 개인의 자유와 이성, 다양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아야 하지만 독일은 정치적 행위의 결정 요소를 민주적 토론이 아니 합의 보다는 오로지 정치적 책임자-권력자-의 임의적인 결단에서 찾는 '결단주의'가 등장했고 독일은 '보수혁명'의 길로 들어섰다.
보수혁명에는 여러 분파들이 존재했지만 정치지형을 만들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현실 정치가들보다는 문인과 예술가, 비주류 사상가들의 담론이었기 때문이다. 정치적 대안은 마련하지 못하고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
카를 슈미트는 결국 '총체적 국가' '영도자 국가'가 이상적 국가로 개별 인간의 자기 주장이 아니라 자기 행동에 책임을 질 수 있는 권위 있는 영도자가 지배하는 국가를 원했는데 결과는 1939년 폴란드 침략으로 드러나게 되었다.
<보수혁명>을 통해서 인간 이성을 철저히 배격하고, 한 개인을 주체가 아니라 객체로 만든 결과가 얼마나 비참한 결과를 낳게 되는지 알 수 있다. 나치즘은 독일을 지배하게 되었고, 그 결과는 상상을 초월하였다.
보수 혁명을 주장했던 인간 파괴를 통하여 우리는 20세기 겪었던 일들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독일 보수주의자들이 역사 저편으로 사라졌다고 하지만 아직 세계는 인간 파괴를 떨처버리지 못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