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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엔탈리즘' 깨부수기
"'오리엔탈리즘' 깨부수기" 내용보기
루쉰의 동생인 저우쭤린은 그의 글 『도쿄를 추억한다』에서 ‘동양의 비애’라는 말을 쓴다. 중국과 일본이 전쟁을 일삼는 상황속에서도 그는 양국의 예술가들이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는 통념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목전의 관계에서 벗어나 영구적인 성질을 논한다면 양쪽 모두 선척적으로 서양과는 운명이나 환경이 전혀 다른 동양인이라며 동양을 일종의 운명공동체로서 오히려 적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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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의 동생인 저우쭤린은 그의 글 『도쿄를 추억한다』에서 ‘동양의 비애’라는 말을 쓴다. 중국과 일본이 전쟁을 일삼는 상황속에서도 그는 양국의 예술가들이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는 통념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목전의 관계에서 벗어나 영구적인 성질을 논한다면 양쪽 모두 선척적으로 서양과는 운명이나 환경이 전혀 다른 동양인이라며 동양을 일종의 운명공동체로서 오히려 적극적으로 긍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양국 예술가들이 가슴 깊은 곳에 공유하고 있는 그 ‘동양의 비애’를 말하고자 하였던 것 같다. 과연 서양과 동양의 구분은 무엇인가? 서양에게 동양은, 동양에게 서양은 과연 어떤 의미란 말인가? 과연 양쪽은 결코 화해할 수 없단 말인가? 책은 크게 세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번째 부분에서는 자유주의와 시장경제를 바탕으로 하여 세계화를 부르짖는 서구와 이를 동조하는 지식인 집단에 대한 비판과 이에 맞서는 진정한 지식인의 역할에 대한 담론, 두번째 부분에서는 1948년 이스라엘의 도발로 촉발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양세력간의 다툼의 역사와 화해와 공존의 가능성에 대한 고찰, 마지막으로 세번째 부분에서는 한 프로듀서와의 인터뷰문과 저자 개인의 성장기가 담겨 있다. 미국을 정점으로 하여 끊임없이 책동되는 신자유주의의 물결, 그 올가미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는 비서구지역의 서글픔.. 에드워드사이드는 『오리엔탈리즘』을 통해 오리엔탈리즘의 실체에 대해 다양하게 밝혀내고 있다. 서구에서 말하는 '동양' 또는 '동양적인 것'이란 동양의 실체에 가깝기보다는 서구인들의 입맛에 의한 편견과 왜곡으로 빚어진 허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다분히 흥미위주이며, 상업주의적이며, 침략주의적 차원에서 비롯된 동양을 지배하고 재구성하여 억압하기 위한 서양의 스타일이라는 것. 하여 수백년에 걸쳐 동양의 역사와 성격 및 운명에 줄거리를 부여했다는 것도 그가 말하는 오리엔탈리즘의 모습이다. 발전을 위해서 언제나 ‘적’이 필요했던 서구의 역사에서, 그것은 동양에 대한 동료애적 관심이나 체계적이고 학술적인 연구와는 거리가 먼, 그저 침략하고 약탈하기 위한 명분아닌 명분일 뿐이었다. 거기에 자꾸만 살을 붙여 오리엔탈리즘은 거대한 편견의 집합체가 되어버렸다. 그가 비판하고 있는 헌팅턴이나 네이폴, 프리드먼과 같은 사람들의 문제는 그들 개개인의 문제라기보다는 서구라는 무의식의 공감대가 만들어낸 하나의 집단폭력의 광기다. 서구라는 이기(利器)화된 문명의 틀이 이미 그들에게 태어날때부터 씌워둔 ‘자본과 자유주의’라는 허울좋은 온상이다. 시오니즘을 과연 민족주의적 이상으로 봐야 할 것인가? 아니면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해를 바탕으로 한 책략으로 봐야 할 것인가? 이 애매한 갈등의 바탕에는 사실 그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서구의 아랍세력에 대한 견제가 숨어있다고 본다. 이슬람을 계속해서 논쟁의 불씨로 남겨놓아야 하는 그들의 입장에서는 시오니즘은 더없는 훌륭한 명분일 수 밖에 없고, 언제나 그래왔듯 그들의 목적을 위해서, 이슬람은 여전히 위험하고, 잔인하고, 무지한 집단이어야 했다. 팔레스타인이라는 ‘태풍의 눈’ 때문에 정작 더 많은 고통을 겪고 있는 주위의 이슬람 국가들은 미워할 수 밖에 없는 그들의 적 앞에, 스스로 갈라지고, 상처입어 더욱더 커다란 수렁속으로 빠져든다. 분노는 분노를 낳고, 그렇게 화해는 자꾸만 멀어져 간다. 따지고 보면 어느쪽의 잘못도 아니다. 빼앗는 자들은 빼앗을 이유가 있고, 뺏기는 자들은 뺏기지 말아야 할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이 모순된 상황을 만들어놓은 그들이, 이 모순된 상황을 이용하여 계속해서 모순을 만들어 가려는 현실이 그저 답답할 뿐이다. 분명한 건, 그들은 어떠한 해결책조차 고민해보지 않는다는 것이고, 언제나 해결은 당사자들의 몫인 것이다. 비행기가 폭탄으로 둔갑하여 제심장을 겨누는 오늘날에도 진정으로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이슬람의 도발이 아니고, 이슬람의 고요인 것이다. 마지막 부분의 그의 독백은 가장 깊은 공감을 불러 일으킨다. 현대세계의 가장 큰 담론으로 굳어져버린 그 논란의 지역 한복판에서 태어나 혼란한 생을 이끌어온 그의 성장사는 그대로 오늘날의 비극이다. 그가 그 어린시절 이유도 모른채 원망스러워 했을 양극의 세계는 지금도 유효할 뿐이다. 무엇을 위해서 서로를 할퀴며 싸워야 하는지, 그것은 피부색으로도 종교로서도 이해되지 않았을 것이다. 어차피 이유란 것은 적당히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었고, 심지어는 필요조차 없는 것이었으니까. 중립이 오히려 더 큰 죄일 수밖에 없었던 그의 삶이 택한 외로운 싸움은 인류의 평화를 염원하는 이들의 가슴속에 계속해서 널리 퍼져나가야 할 것이다. 저자의 지적처럼 동양, 서양이라는 양비론적 구분을 넘어서 ‘다른 문화’라는 개념은 과연 유익한가? 결국 그것은 도리어 자기찬미이거나, 타자모독이 아닌가? 과연 문화의 공존과 공생은 불가능한가? 서로의 차이가 서로를 적대하는 구실이 아니라, 서로에 대한 관심의 계기로 작용하고, 서로의 차이가 서로에 대한 우열의 구분이 아니라, 합리적인 교류의 필요성으로 귀결되는 그런 세계는 올 수 없는 것인가? 모두가 염원하는 ‘세계시민’의 꿈 말이다. 그것이 과연 이상일지, 허상일지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 하지만 어찌되었건, 많은 이들이 허울뿐인 세계화를 부르짖는 오늘의 현실에서 이 말은 참으로 요원한 말로 들린다. 구분은 헌팅턴의 주장처럼 어떤 문명간의 그 문화의 이질성에서 경계지어지는 것이 아닌 것 같다. 어차피 적이어야 할 필요가 있다면 그들이 왼손으로 밥을 먹어도 ‘적’인 것이고, 그들이 오른손으로 밥을 먹어도 ‘적’인 것이다. 친구와 적을 구분하는 것은 유치원에서 배워야 할 일인데도, 친구를 적이라 계속 우겨대고 제손에 움켜쥔 것이 아직도 작다고 투정하는 그 철없는 이들에게 왜 우리가 친구인지를 가르쳐주는 것. 손을 한번 내밀기만 하면 금방 알수 있는 그 쉬운 일을, ‘자본’의 홀림에 빠져 언제나 총을 내밀며 다가왔던 그들에게, 그들이 철없이 저지른 그 무수한 만행들을 일깨워주는 것. 서양이 동양을 자신들의 잣대로 제멋대로 제단하여 ‘오리엔탈리즘’을 상정한 것이라면 그 허황된 망령의 틀을 깨부수는 것이 우리가 천착해야 할 ‘오리엔탈리즘’이고, 그것이 오늘날 우리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제2의 십자군’이 되어버린 어리석은 서구에 보내야 할 일갈이다.
YES마니아 : 로얄 d******g 2005.06.15. 신고 공감 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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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미국의 역학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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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사이드의 글은 처음이다. 사실은 그의 존재조차 몰랐다. [오리엔탈리즘]이라는 책은 알고 있었지만 저자가 누구인지는 몰랐었다. 이 책은 아직도 내가 읽고 싶은 목록 중의 하나다. [도전받는 오리엔탈리즘]은 [이슬람 문명]을 읽기 바로 전에 읽었다. 이런 류의 책들은 9.11테러 이후 한 두권씩 읽기 시작했다. 9.11테러 이후 이러한 책들의 출판이 급증했던 원인도 있고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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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사이드의 글은 처음이다. 사실은 그의 존재조차 몰랐다. [오리엔탈리즘]이라는 책은 알고 있었지만 저자가 누구인지는 몰랐었다. 이 책은 아직도 내가 읽고 싶은 목록 중의 하나다. [도전받는 오리엔탈리즘]은 [이슬람 문명]을 읽기 바로 전에 읽었다. 이런 류의 책들은 9.11테러 이후 한 두권씩 읽기 시작했다. 9.11테러 이후 이러한 책들의 출판이 급증했던 원인도 있고 그와 동시에 내가 국제정세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국제정세라고 해봤자 나의 관심을 끄는 건 미국,중국,일본 정도지만 현재 세계의 무게중심이 미국에 맞춰져 있기 때문에 미국에 관한 것이 나의 글읽기의 중심이다. 게다가 번역서들이 거의 미국에 관한 것들이라 다른 나라에 대해서는 선택의 폭이 넓지 않다는 문제도 있다. 원어로 책을 읽을 능력이 없으니 어쩔 수 없다. 내가 접한 미국관련 책은 경제서적을 제외하고는 모두 부정적인 것들이다. 미국의 오만과 이중적인 모습, 잘 알려지지 않은 국제범죄, 동북아정세에 대한 그들의 태도 등에 대한 지식인들의 비판이 그것이다. 노암 촘스키, 하워드 진, 에드워드 사이드... 나의 편견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미국을 비판하는 글이 내 구미에 맞기 때문에 그런 글들만 골라 읽었을 수 있다. 생각해 볼 문제다. 다른 글들이 미국의 전반적인 문제에 대한-세계 곳곳에서 이루어지는 미국의 정치 경제적 부당함에 대한-글이라면 에드워드 사이드의 글은 미국과 중동(특히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사실 내가 읽은 그의 글이라곤 달랑 이 책 뿐이니 확언할 순 없지만 적어도 이 책의 내용은 그렇다. 아마도 그의 태생과 성장배경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는 영국 식민지였던 팔레스타인 예루살렘에서 태어났고 예루살렘이 이스라엘에 강점되었을 때 이집트로 이주했다. 어쨌든 이 책은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미국의 역학관계에 대해 많은 사실을 알려준다. 아쉬운 점은 이 책의 구성이 처음부터 저자가 출판을 고려해서 쓴 글이 아니라 몇 년 동안 에드워드 사이드가 이집트의 <알-아흐람 al-ahram="">과 미국의 에 기고한 글들을 편역자가 골라서 묶은 것이어서 각 장마다 상당부분 내용이 중복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책의 분량이 별로 많지 않아 어느정도 중복된 내용을 감수할 수 있다. 복습한다는 기분으로.
n***b 2004.07.0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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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와 비난을 넘어서......
"분노와 비난을 넘어서......" 내용보기
아랍 출신인 저자의 분노가 한줄한줄 마다 각인돼있는 폭로서이다. 촘스키의 숙명의 트라이앵글, 하워드 진의 오만의 제국 등도 미국의 만행과 이스라엘의 폭력성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아랍 출신인 에드워드 사이드가 느끼는 분노와는 비교가 안되는 것인 지도 모른다. 이 책은 시종일관 이스라엘의 교묘한 로비와 홍보, 팔레스타인에 대한 억압등을 맹렬히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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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 출신인 저자의 분노가 한줄한줄 마다 각인돼있는 폭로서이다. 촘스키의 숙명의 트라이앵글, 하워드 진의 오만의 제국 등도 미국의 만행과 이스라엘의 폭력성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아랍 출신인 에드워드 사이드가 느끼는 분노와는 비교가 안되는 것인 지도 모른다. 이 책은 시종일관 이스라엘의 교묘한 로비와 홍보, 팔레스타인에 대한 억압등을 맹렬히 비판하고 있으며 미국의 아랍인에 대한 편견과 이스라엘에 대한 천문학적인 지원, 언론매체의 일방성 등에 대해서도 저자의 심각한 절망감을 생생하게 표현하고 있다. 조국을 지키기 위해 남녀노소의 구분 없이 병역의 의무를 성실히 수행하고 전국민이 총으로 무장하고 있는 이스라엘을 본보기로 교육받았던 우리 역시 상대적으로 아랍인들을 선량한 이스라엘을 끊임 없이 괴롭혀 영토를 유린하려는 야만적이고 공격적인 맹신자들의 집단 쯤으로 오해하고 있었던 게 분명하다. 덧붙여 아랍인들의 종교인 이슬람에서 칼과 피만을 연상해온 것이다. 역설적으로 9.11 테러를 당한 미국의 노력으로 인해 전 지구의 관심이 아랍인들과 그들의 종교에 대해 쏠리고 있고 그 결과 오히려 그들을 이해하고 동정하고 지지하는 사람이 늘어나는가 하면 이 사람들은 이스라엘과 미국의 음모를 비판하고 두 나라의 결탁을 저지하려는 세력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구태의연한 언론을 제외하면 이스라엘과 미국의 행위를 긍정하는 서적에 비해 그들의 잘못을 꾸짖고 이슬람에 박수를 보내는 서적의 출간이 압도적으로 많을 뿐 아니라 근거 또한 명확하다. 지구 상에 존재하는 국가간의 악의 근원인 미국 내에서 미국을 통렬한 목소리와 강도 높은 어투로 비판한 이 책의 탁월한 점은 또 있다. 미국과 이스라엘에 대한 비판에 그치지 않고 아랍인, 특히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지극히 현명한 조언을 하면서 대안을 제시하고 있는 점이 그것이다. 때로 전쟁은 평화를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간주될 때도 있다. 엄청난 모순과 자기기만 아닐 수 없다. 더구나 가해자와 피해자가 늘 정해진 전쟁이라면 그건 이미 전쟁이 아니라 침략을 통한 말살 정책에 다름 아니다. 부패한 팔레스타인 정부와 이스라엘에 대한 적대감과 복수심에만 사로잡혀 이성을 잃고 있는 팔레스타인들이 부디 현명한 판단과 결정과 실천을 하기를 바란다. 역사는 흐르고 또 바뀐다. 밀물은 썰물 뒤에 오고 썰물은 또 다시 밀물 뒤어 오는 것이다. 오늘날의 미국과 이스라엘은 언젠가 내일의 팔레스타인이 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나는 미국과 이스라엘을 마음껏 동정하고 미국난민을 위한 모금운동에 기꺼운 마음으로 참여하겠다. 그 날이 꼭 오기를......

[인상깊은구절]
미국의 이스라엘 지지자들은 현실과는 너무나 동떨어져있고 다른 나라에 사는 유대인들의 모순된 죄의식(결국 시온주의자이면서 이스라엘로 이주하지 않는 건 무슨 의미인가?)과 미국 내에서 소수이면서도 가장 성공하고 가장 큰 힘을 갖게 된 데 따른 맹목적인 신념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그들은 이스라엘을 대신해 아랍에 폭력을 행사하고, 깊은 공포와 증오심을 드러내곤 했다. 이는 또한 그들이 이스라엘 유대인과는 달리 아랍계와 직접적인 접촉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a******t 2002.02.2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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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 없이 읽히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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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분쟁 문제가 멀게만 느껴졌던 게 사실이다. 미국 내 거주하는 어느 학자의 칼럼들을 읽으면서 생각이 조금씩 변화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책이 사이드의 칼럼들을 모아 편역한 것이기 때문에 중첩되는 내용이 많아서 지루한 면도 없지않다. 하지만 무리없이 읽혔고 사이드가 쓴 책을 기회가 된다면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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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분쟁 문제가 멀게만 느껴졌던 게 사실이다.

미국 내 거주하는 어느 학자의 칼럼들을 읽으면서

생각이 조금씩 변화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책이 사이드의 칼럼들을 모아 편역한 것이기 때문에

중첩되는 내용이 많아서 지루한 면도 없지않다.

하지만 무리없이 읽혔고 사이드가 쓴 책을 기회가 된다면 읽어보고 싶다.

 

n******i 2007.05.2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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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다른 문화의 평화로운 공존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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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에드워드 사이드의 '도전받는 오리엔탈리즘'을 읽고 있다. 여러가지 칼럼들이 실려있는데, 그의 주장을 요약하자면 세계의 문화는 서로 수렴하고 융화해나가야 하는 것이지, 어느 한 쪽이 다른 한 쪽을 완전히 박멸(!)해버릴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는 역사적으로 기독교를 표방한 서구사회가 어떻게 이슬람과 유교를 사회의 기본에 깔고 있는 동양사회를 무시하고, 억압하고, 자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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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에드워드 사이드의 '도전받는 오리엔탈리즘'을 읽고 있다. 여러가지 칼럼들이 실려있는데, 그의 주장을 요약하자면 세계의 문화는 서로 수렴하고 융화해나가야 하는 것이지, 어느 한 쪽이 다른 한 쪽을 완전히 박멸(!)해버릴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는 역사적으로 기독교를 표방한 서구사회가 어떻게 이슬람과 유교를 사회의 기본에 깔고 있는 동양사회를 무시하고, 억압하고, 자신들 기준으로 개조하려 했는지를 상세히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아마도 이번 미국의 대아프간 공습이 그러한 역사적 흐름의 정점이 될 것이다. 아프간 공습의 빌미가 된 지난 9.11 테러의 기저에는 미국이 이스라엘과 손을 잡고 국제사회에서 팔레스타인 핍박, 중동지역에서의 미국의 입지 강화를 노골적으로 꾀해왔던 부시의 강경외교가 깔려 있음은 공지의 사실이다. 남의 집에 불이 났으되, 그 불구경이 영 찜찜한 것은 그 전쟁이 부시가 호언한 대로 정의를 위한 전쟁이 아니라는 심증을 강하게 주기 때문이다. 에드워드 사이드의 '도전받는 오리엔탈리즘'은 2001년 키워드 '테러'와 '문화충돌, 그리고 공존'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데 유익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선조들의 여름 보양식이 세계인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는 요즘, 한반도의 문화와 역사는 품위를 잃지 않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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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이드는 분노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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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미국 행정부에 가장 껄끄러운 비판적 지식인 두 명을 꼽으라면 단연 사이드와 촘스키이다. 9.11 뉴욕 테러사건이 발생 직후 미국의 람보는 배후 세력으로 이슬람 광신도, 오사마 빈 라덴를 주범으로 단정하고 즉각 보복공격에 나섰다. 그런데 결과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사건 직후 촘스키가 먼저 미국이 군사적 보복공격을 자제해야 하는 당위성을 말하고 나섰다. 그는 수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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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미국 행정부에 가장 껄끄러운 비판적 지식인 두 명을 꼽으라면 단연 사이드와 촘스키이다. 9.11 뉴욕 테러사건이 발생 직후 미국의 람보는 배후 세력으로 이슬람 광신도, 오사마 빈 라덴를 주범으로 단정하고 즉각 보복공격에 나섰다. 그런데 결과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사건 직후 촘스키가 먼저 미국이 군사적 보복공격을 자제해야 하는 당위성을 말하고 나섰다. 그는 수많은 민간인의 희생을 반대이유로 들었다. 곧 사이드가 입을 열었다. 이 책은 그가 말한 것을 조금 담고 있다. 이 책은 9.11 테러 사건 이후 사이드의 "긴급제안!"이란 문구를 동원하여 독자를 현혹시킨다. 수록된 18편의 글 중에서 단지 4편이 9.11 테러 이후에 발표된 글이며 나머지는 모두 이전의 조각모음 글을 끌어온 것이다. 독자의 기대를 배반한 행위이다. 이 책에서 사이드가 한 말("What Said Said")의 핵심 내용 언급은 잠시 미루자. 이 책은 또 다른 문제점을 내포한다. 그것은 바로 우리 시대의 대표적 브랜드인 사이드를 잘 팔리는 상품으로 유통시키려는 상업혼이 춤추고 있다는 점이다. 고급장정의 하드백으로 만들어졌고 책값이 비싸다. 왜? 만약, 사이드의 고견을 많은 독자가 섭취했으면 하는 것이 출판사의 바람이었다면 페이퍼 백으로 찍어서 대량으로 유통시키는 방식이 더 낫지 않았을까? 그리고 책의 제목 '도전받는 오리엔탈리즘'도 다소 혼란스럽다. 원제목이 The Crisis of Orientalism이면, '도전받는' 보다 '위기에 처한'이 더 적절할 것이다. 이 제목이 내용 목차와 잘 맞아 떨어지지도 않는다. 제목에 대한 적절한 설명이 없다. 여하튼 사이드의 위대성은 기존의 통념과 정형화된 시각과 정설에 대한 의심을 품는 태도, 발상의 전환, 전복적 시각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서구는 비서구를 열등한 존재라는 일방적인 담론/지식을 만들어내어, 책과 미디어 영화를 통해 이를 유포시킨다. 이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 사람들은 결국 서구의 지배담론에 포섭되어, 서구인의 잣대로 자신들을 열등한 존재로 간주하게 되는 비참한 상황에 처한다. 이런 부당한 지식폭력에 개입하고 나선 사람이 바로 사이드이다. 9.11 테러 사건이 발생하자, 서구가 만들어낸 오리엔탈리즘이 표면에 다시 부상하게 되었다. 아랍인=테러리스트=악의 화신이란 지식/공식이 미디어에 의해 만들어져 CNN등의 전파를 타고 전세계로 안방으로 유포되었다. 부끄럽게도 많은 한국인들도 이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였다. 서구/미국이 재생산해 낸 회교주의자는 곧 악마다라는 담론은 명백한 지식폭력의 예라고 할 수 있다. 사이드의 이런 비판시각은 그 자신이 약소민족인 팔레스타인 출신이라는 성장배경과 맞물려있다. 그래서 그는 미국의 지지를 받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억압하는 부당성을 강도높게 비판하고 나선다. 강자의 횡포에 대한 고발과 타자의 궁지에 대한 동정은 그의 감정구도의 형성한다. 이런 맥락에서, 그는 군사력의 절대적 우위를 지닌 미국이 일방적으로 아프카니스탄을 공격하고,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처사는 지극히 야만적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그의 잣대/시각의 효용성에도 불구하고 그의 나이폴 때리기는("노벨문학상을 받은 네이폴의 비겁 비판" 이 글은 나이폴이 2001년 노벨상 수상자로 결정되기 이전인 1998년에 쓰여진 글이다.) 너무 일방적이며 부당하다. 자신이 아랍인이기에 사이드는 나이폴의 아랍인에 대한 비판에 지극히 민감하여 이성을 잃는 것 같다. 9.11 테러 사건이 평소에 이슬람 근본주의를 비판해온 나이폴에게 상을 주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고 보는 것은 숭고한 작업인 글쓰기에 전력해온 작가에 대한 모독이라고 생각한다. 나이폴은 서구 이슬람 때리기에 동원된 나팔수가 아니다. 나는 나이폴이 서구인의 시각에서 이슬람 문화를 헐값에 팔아먹는 작가라는 사이드의 비판에 동의하지 않는다. 나이폴이 돈이 중요해서 이슬람세계로 여행하여 기록한다는 사이드의 시각은 천박할 정도이다. 나이폴은 이슬람 근본주의를 포함하여 서구 제국주의와 제3세계 민족주의가 내포한 문제점들에 대해 비판해온 작가이다. 그의 비판이 특정 종교, 이념과 문명에 한정된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그가 비판의 대상의로 삼고 있는 것은 그럴듯한 혁명, 이념, 종교의 이름으로 저질러지는 비참한 현실, 비인간화, 가난의 현실인 것이다. 사이드가 지식인의 일탈/탈선의 예로서 나이폴을 꼽는다면 이 또한 그가 비판해온 부당한 지식폭력을 저지르는 꼴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서 사이드는 약자를 대변하고자 하는 일관된 태도를 보이면서 여러 형태의 부당성을 고발한다. 즉, 미국과 서구의 비서구에 대한 편견과 획일적 잣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강압통치, 미국의 이스라엘 일방적 편들기 등이 해당된다. 지배와 피지배의 불평등 관계에서 탈피하여 상호공존의 지혜를 피력하는 그의 절규가 가슴 속에 박힌다.
j******1 2002.01.0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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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다각도로 살피는 눈이 필요하다
"세상을 다각도로 살피는 눈이 필요하다" 내용보기
지난 9,11 미국 테러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이슬람 문명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이 사실이다. 나 또한 그 일 이후 갑자기 봇물처럼 쏟아지는 이슬람 사회에 관한 책을 몇 편 읽은 적이 있다. 그 중 기억에 남는 것은 노엄 촘스키와의 회담을 엮어서 낸 이란 책과 이란 책이었다. 먼저 은 세계의 지성이라 불려지는 노엄 촘스키의 미국의 독주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 의식과 그의 세계
"세상을 다각도로 살피는 눈이 필요하다" 내용보기
지난 9,11 미국 테러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이슬람 문명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이 사실이다. 나 또한 그 일 이후 갑자기 봇물처럼 쏟아지는 이슬람 사회에 관한 책을 몇 편 읽은 적이 있다. 그 중 기억에 남는 것은 노엄 촘스키와의 회담을 엮어서 낸 <촘스키 9-11=""> 이란 책과 <나를 사로잡은="" 이슬람="">이란 책이었다. 먼저 <촘스키 9-11="">은 세계의 지성이라 불려지는 노엄 촘스키의 미국의 독주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 의식과 그의 세계관을 확인할 수 있는 책이었다. 그리고 <나를 사로잡은="" 이슬람="">은 이슬람 사회의 내용을 다양한 사진 자료와 함께 생생하게 제시하여 준 점이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내가 읽은 책 중에서 가장 나를 매료시킨 책은 <도전받는 오리엔탈리즘="">이란 책이었다. 실로 오랜만에 나를 확 끌어당긴 책이 바로 이 책이었다. 우선 이 책을 읽으면서 미국과 이스라엘을 강도 높게 비판하고, 진실을 외면하는 지식인을 비판하는 그의 도도하고 강한 성미를 글을 통해 느낄 수 있었다. 그 사람이 쓴 글의 내용이나 문체를 보면 대충 그의 성격과 태도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사람의 글에는 생명력이 있다고나 할까..자신의 주장을 펴서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이 책을 통해 팔레스타인에서 일어나고 있는 부조리의 현장, 이스라엘과 미국의 비합리적인 정책, PLO의 무능과 현실 착오를 강경하게 비판하고 있다. 이처럼 사회를 비판하는 그의 강렬한 어조에서 나는 그의 분노를 어느 정도 느끼고 공감할 수 있었다. 힘의 논리에 정면으로 대응하는 한 지식인의 웅변에 감동을 받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사람들이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은 다양하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세상을 한 측면에서만 보고 판단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한 번쯤, 자기가 보고 있는 방향을 조금 틀어서 반대 방향에서 세상을 볼 때,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이면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책이 바로 그런 눈을 가지는 길을 제시해줄 것이라 생각한다.
s***d 2003.12.10.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내용보기
급하게 책 제목만 보구 구입했던 나는 책의 내용에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도전받는 오리엔탈리즘이라는 제목을 보고 서구의 우월의식을 비판한 책이겄거나 하고 생각을 했는데 책의 내용은 엉뚱하게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그리고 미국에 관한 내용이었다. 이 책의 내용들은 여러 칼럼들을 모아서 한개의책으로 엮은것 같다. 따라서 책의 내용이 다른 책들 보다는 쉽고 저자의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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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하게 책 제목만 보구 구입했던 나는 책의 내용에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도전받는 오리엔탈리즘이라는 제목을 보고 서구의 우월의식을 비판한 책이겄거나 하고 생각을 했는데 책의 내용은 엉뚱하게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그리고 미국에 관한 내용이었다. 이 책의 내용들은 여러 칼럼들을 모아서 한개의책으로 엮은것 같다. 따라서 책의 내용이 다른 책들 보다는 쉽고 저자의 주장이 명확히 드러나는게 특징이다. 지금은 노암 촘스키의 '숙명의 트라이엥글'이라는 책을 보고 있는데 그 책의 엄청난 양의 자료를 바탕으로 한 내용과 달리 지금 소개하는 이책은 명쾌하고 이해가 쉽다는 장점이 있다, 또한 저자는 아랍출신이면서도 아랍에서 조차 외면을 받는 것처럼 단순히 미국뿐만 아니라 아랍 사화와 PLO 아라파트에도 비판의 칼날을 댄다. 그동안 모든 잘못은 미국과 이스라엘에게만 있다고 생각해온 나에게는 약간의 충격이었다. 책의 내용은 좋았지만 책의 재목에 실망한 나로서는 그래도 이 책을 좋게 평가하기는 무리인것 같다.
p***1 2002.08.30.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