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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는 무서운 질병이다. 뇌세포가 파괴되어 우리가 알던 그 사람이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버린다. 많은 경우 그야말로 갓난아기가 되어 버린다. 내 속으로 낳은 자식도 돌보기 힘들다고 아우성인데, 노인이 아기가 되어 버리는 일은 생각만으로도 끔찍하다. 더구나 그는 대개 우리 부모들이다. 누군들 부모의 치매를 무덤덤히 지나갈 수 있으랴. 가정은 파괴의 위기에 선다. 그러니 어쩔 것인가. 게다가 치매는 사람을 정해놓지 않고 무차별로 내리는 폭우와도 같으니 그 누구도 치매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힘이 든 한 가정의 상황을 사실감있게 묘사한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두렵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의 이야기를 읽으면서는 끝내 나도, 아이도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재작년 돌아가신 시아버님 생각이 나서였다. 췌장암 판정을 받고 6개월, 그 기간은 고통에 겨운 시아버님 당신과 이중고에 시달린 가족들 모두에게 일종의 시험기간이었다. 삶을 이렇게도 살아가는구나 하는. 병상에서 내게 당신이 들려준 젊은 시절 이야기는 말간 눈물이었고, 마지막 며칠 보여주셨던 그 표정은 이 책에 너무도 생생하게 실려 있듯 공허한 아픔이었다. 이 책 내용과 똑같이, 시아버님도 화장 후 하얀 가루 속에 교통사고로 다리에 심어놓았던 쇳덩이 한 조각을 남겨놓으셨었다. 그 쇳덩이가 우리를 얼마나 통곡하게 했던가가 손에 잡힐듯 되새겨졌다. 우리 부모님 세대의 삶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지난하셨다. 일제강점기의 시련이나 개발의 뒤안길에서 매몰되어 버린 땅 냄새 나는 삶의 터전, 그 향수는 비단 찬우 할아버지만의 몫은 아닐 것이다. 또한 그분들은 대개 가난하였고, 자식들에게 밥을 먹이기 위해 하루도 단잠을 자지 못한 인생을 사셨다. 그 눈물 겨운 삶을 조금씩이나마 엿볼 수 있는 나이가 되자, 그리하여 당신들의 거친 피부를 진정어린 손길로 쓰다듬을 수 있는 나이에 들어서자, 당신들은 먼 과거에 파묻혀 버린다. 징이라든가, 통장이라든가 하는 찬우 할아버지가 집착하는 것들에 대한 상징은 사실 내게 별로 와닿지 않았다. 그보다는 사람끼리의 끈이라는 부분이 내게 더 절실히 느껴졌다. 끈은 고운 비단일 때도 있으나 대개는 굵은 동앗줄이라 묶인 부분이 아프고, 심하게는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옥죄기도 한다. 그러나 풀 수는 없다. 저 알렉산더의 매듭처럼 끊어버리면 모를까 풀 수는 없다. 풀리지 않으니 끊어야 하나. 그게 안되는 것이 사람 사이의 끈이다. 책을 다 읽고 10살박이 딸에게 만약 할머니, 엄마, 아빠 중 누구라도 치매에 걸리면 어떻게 하겠냐고 물으니, 절대로 그런 일이 없다고 고개를 젓는다. 나도 지금 고향에 계신 친정어머니와 다리 다친 며느리를 대신해 살림을 도맡아 왔다갔다하시는 시어머니께서 그냥 편안히 계셔 주시기를 빌 따름이다. 그리고 나나 내 남편에게 치매가 오면 어쩔까도 생각해 본다. 미리 딸들에게 편지라도 써 두어야겠다는 생각. '우리로 하여 네 삶을 힘들게 하지 말고, 반드시 기관의 도움을 구하라.'고. 그러고나니 더 답답하다. 대안이 떠오르지를 않는다. 그저 시아버님 편찮으셨을 때, 희한하게도 그분의 오물이 더럽지 않았던 것처럼 내게 또 그런 마음이 찾아와 주기만을 바랄 뿐. 해답 없는 문제를 대했을 때처럼 답답하다. 외려 아이들에게 치매에 대한 두려움만 더해준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 가족 모두가 읽고 깊은 대화를 나눠보면 좋겠다. 서로 만일의 경우에 대비한 약속도 해 두고. 이웃에 치매 노인이 있을 때도 좀더 부드러운 표정으로 이해하는 연습도 좀 해 두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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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가 된 할아버지를 읽고..... 치매를 앓던 시어머님을 간병하며 함께 웃고 함께 울던 우리 아이들을 생각하며 쓰셨다고 하신 문영숙 작가님의 글을 보면서 내가 직접 경험을 한 것처럼 가슴이 뭉클해졌다. 그리고, 책 표지처럼 며느리와 시아버지의 그림을 모두 말해주듯이 힘겨웠던 그 시간들이 우리 아이들에게 세상을 넓게 포용하는 따뜻한 마음의 밑바탕이 되었다고 한다.
이미 우리나라는 전체 인구 중 노인이 10% 정도를 넘어서고 있는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었다. 또한 평균 수명도 예전에 비해 많이 길어지고 있는 추세이다. 이런 노인들의 건강한 삶을 위협하는 질병에는 당뇨병, 심장병, 중풍,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서 노인성 치매는 가장 심각성을 이 책을 통해서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치매는 이제 더 이상 노인들만의 문제가 아닐듯 싶다. 치매에 걸린 당사자야 두 말할 것도 없지만 그들을 옆에서 지켜 보고, 돌봐야 하는 사람들의 고통 또한 심각한 찬우의 엄마처럼 가출도 하지 않을까? 지금은 돈만 있으면 간병인에 요양원에 보내면 모두들 고생하지 않고 쉽게 해결해 주는 여러가지 방법들이 많다. 그런 찬우 엄마는 경제적으로 힘들어서 며느리로써 책임지고 있었다. 꼭, 내가 직접하고 있는 것처럼 찬우 엄마의 가출에서 엄청나게 펑펑 울면서 실제 상황을 겪은 본인의 모습처럼 느껴졌다. 그 후 마음을 추술이고 다시금 이 책을 읽어가니 "엄마 울지마! 책 보다가 왜 울어? 그렇게 슬퍼? 물어 본다." 엄마가 책을 읽고 우는 모습은 처음이라 그것도 심하게 훌쩍훌쩍 되니..... 말이다.
이 책을 보니 찬우의 엄마이자 시아버지의 며느리, 남편의 아내로써 짐이 였지만, 화김에 내 뱉은 찬우의 엄마는 혼자만의 문제로 끝날게 아니라 이 문제는 우리 모두의 문제로 해결 방법을 찾기 위해서 가출을 했다고 한다. 남편이 회사일에 늦게 들어오고 그것도 모잘라 술까지 마시고 귀가하니....하나 밖에 없는 고모는 자기집 일로 직장 다니고 바쁘다는 핑계로.....아들 찬우는 할어버지의 징소리때문에 친구가 소문내는 것을 무척 싫어하는 것에 엄마한테 짜증난 말투와 힘든 엄마한테 말대꾸로 덤비는 통에......고모를 찾아가서 그에 심각성을 풀어 놓게 되는데.... 그 후로 할어버지의 고두실을 듣게 되고 증조할어버지의 혼까지 듣게 된다. 그러다가 며칠 조용히 지내고 있었는데.....갑자기 할아버지의 엉뚱한 사고에 가족 모두가 놀라웠다. 공사장에서 발견한 할어버지의 병 생활은 한달을 무사히 치료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다시 돈으로 마지막 굿판을 벌이기 시작한 대소동이 벌어진다. 찬우는 그에 맞게 할어버지의 맞장구도 쳐주고, 징으로 무당의 흉내를 내면서 굿을 한바탕 벌어졌다. 엄마의 힘을 덜어주는 찬우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잠시 나는 내 아이가 이런일이 생기면 저런 마음이 들었을까? 우리도 찬우처럼 넉넉하지도 않고 집에 있는 엄마처럼 이런일을 담당해야만 하는 나에게 남의 일같이 않게 느꼈을 법한 일들이 지금 내 눈앞에 닥친 것으로 착각이 들정도 나는 이 책의 몰입했다.
아기가 된 할어버지의 행동에 엄마는 찬우한테 너도 네 살 때쯤에 일들을 이야기 해 준다. 명절때 너를 데리고 시골에 가면 할아버지랑 할머니랑 함께 한상에서 식사를 하는 자리에 너는 처음 먹어 보는 낯선 음식에 잘 먹지도 못하고 씹다가 상머리에 뱉어버린 적이 있다고 한다. 할어버지께서 그때 엄마한테 "어멈아, 난 네 속에서 나온 새끼가 먹던 게 더럽냐?" 하시면서 니가 뱉어 놓은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드시곤 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꼭, 자기가 다시 아기였을 적에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할아버지의 행동에 바보 같은 할아버지. 자기 똥인 줄도 모르고 주물럭거리기나 하고. 얼른 돌아기시기나 하지. 하고 혼자말을 한다. 그리고, 편치 않은 마음에 잠시나마 엄마의 마음은 어떨지 생각한다. 저렇게 힘들게 할아버지를 간호하면서 엄마는 할아버지가 오래 사시길 바랄까? 아냐, 엄마도 나처럼 때때로 할어버지가 빨리 돌아가셨으면 하고 생각할 거야. 내 똥도 만지기 싫은데, 엄마도 할어버지의 똥을 만지는 게 지겨울 것이라고.....나중에 내가 어른이 되었을 때, 만약 엄마나 아빠가 똥을 싸 놓으면 지금의 엄마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닦을 수 있을까? 혼자 생각에 잠긴다. (내 아이도 이런 마음이 들겠지 하면서 말이다.) 이렇게 아기가 된 행동에서 결국 찬우는 할어버지에게 그 동안 내가 못되게 굴었던 일들에 대해 용서를 빌고, 용서를 구하는 일은 결국 내 마음의 짐을 덜어 내는 것이니까 혼자말을 한다. 찬우가 6학년 여름방학 할어버지는 영원히 눈을 감으신다. 장례식을 마치고 화장터로 가는 길은 괜히 으스스하고 무서웠다는 13살 나이에 생각이 내 아이도 내년이면 6학년이 된다. 죽음에 대해 아직은 잘 모르지만 앞으로 닥쳐올 가족들의 죽음 앞에서 내 아이도 이런 기분이 들까 잠시 엄마인 내가 내 아이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게 만들어 주고 있다. 작년에 일이다. 가족중에 장례식장에 다녀 온 적이 있었다. 그 때 기분은 아직 어려서 잘 몰랐던 것 같기도 하고 알것도 같은 내아들에게 죽음에 대해 잠시 친할아버지를 이야기 해 주었다. 이 책에서는 징하나로 세상의 이치를 알려 주는 징소리로 찬우는 할아버지의 유년시절때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찬우네 가족에게 할아버지의 징은 이웃에게 폐를 끼치는 화근 덩어리에 불과할 뿐이지만, 징을 감추고 버리려고까지 하는 찬우네 가족도 힘들고 괴롭기는 마찬가지이니깐...
요즘 부모들은 대개 맞벌이를 한다. 만약 할어버지나 할머니와 함께 생활하는 아이들이 많아졌다. 이 노인들이 치매에 걸린다면 아이의 생활은 어떻게 될까? 치매는 가벼운 건망증 정도로 시작되기 때문에 당사자는 물론 주변 사람들도 처음에는 심각하게 생각하지 못하고 넘어갈 수 있다. 또 나처럼 넉넉하지 못한 형편 때문에 전문기관에서 조기에 치료 받지 못하고 방치되는 경우 어떨지 생각했다. 만약 아이들이 치매에 걸린 걸 자각하지 못하거나 치료 받지 못하고 방치되는 경우 어떻겠는가? 생활을 구속당하거나 고통을 받는 아이들도 생길 수 있을 것이다. 아마, 이런 일이 태반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치매는 이제 더 이상 치매에 걸린 당사자나 부모만의 문제가 아니임을 나는 이 책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접했다. 이제 내 아이들도 치매의 고통에서 예외일 수 없듯이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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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에 걸린 할아버지를 돌보느라 온 가족이 고생을 하는 모습을 그렸다. 한밤중에 징을 쳐서 아파트 사람들을 다 깨우질 않나 가져가지도 않은 통장을 며느리가 가져갔다고 우겨대질 않나, 이불에 오줌, 똥을 싸고 그야말로 한 가족의 삶은 할아버지 때문에 엉망이 된다. 찬우는 그런 할아버지가 불쌍하고 밉고 때론 얼른 돌아가셨으면 하는 마음 뿐이다. 똥, 오줌 묻은 이불과 할아버지를 씻겨야 하는 찬우 엄마는 오죽하였을까? 치매에 걸린 노인 뿐만 아니라 가족 중에 아픈 사람이 있어 병원에 입원이라도 하면 가족의 쳇바퀴는 덜커덩하고 돌부리에 걸려 잘 돌아갈 수가 없다. 누군가는 병원에서 아픈 이를 돌봐야 하고 그 몫은 주로 주부인 엄마가 하기 때문에 아이들은 갑자기 홀로서기를 해야 한다.
몇 년 전 외할머니가 암 진단을 받으시고 시골에서 올라오셨다. 친정에서 계속 머무르시다가 도저히 집에 모실 수 없어서 결국엔 병원에 입원하시게 되었다. 그 과정이 너무 힘들었다. 편찮으신 외할머니의 모습도 그렇지만 나들이 좋아하는 엄마도 꼼짝 못 하고 할머니를 돌보시기가 힘드셨던 것이다. 나도 가끔 그런 생각을 했다. 외할머니가 얼른 돌아가셨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엄마가 안 계실 때 우연히 친정에 갔더니 외할머니가 화장실에 쓰러져 계셨다. 난 엄마에게 화가 났었다. 할머니는 나 덕에 살았구나 하시면서 다행이라 하셨다. 그 후에도 할머니는 기저기를 찼음에도 불구하고 침대에 오줌이 샜고 식사를 하시기도 아주 힘들었다. 엄마는 할머니를 돌보느라 낫었던 무릎 신경통이 도지기도 하였고 우울증에 빠지기도 하셨다.
병원에 입원하시고 우린 교대로 할머니를 돌봐드렸다. 병원에 입원하시면 수월할 줄 알았는데 더 힘들었다. 집안은 엉망이 되었고 애들 둘이 다 어려서 애들만 놔둘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 후엔 남편이 발목 인대를 다쳐 수술을 하였는데 애들을 돌볼 수가 없어 퇴근한 동생에게 애들을 부탁하고 큰 애 학원은 그만 두게 할 수 밖에 없었다.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남편 때문에 걸을 수 있을 때까지 차로 남편 출퇴근을 시켰다. 그저 하루하루가 무사하게 끝나기만을 바랐고 그 때 봄이 어떻게 오고 갔는지 몰랐다.
아빠, 엄마가 치매에 걸리신다면 우리 가족의 일상이 어떠할지 이 책을 통해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었다. 나도 만만치 않게 고생을 할 것이다. 그리고 미칠 듯 힘들 것 같다. 아무도 그런 끔찍한 병에 걸리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하지만 누군가가 걸린다면 아, 사랑으로 참고 지낼 수 밖에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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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친정어머니때문에 마음이 조금씩 아프고 있습니다. 팔순이 되면서 급격히 기력도 떨어지고 움직이는게 이제 막 두돌이 지난 조카보다도 더 더딥니다. 하지만 당신의 자식에 대한 치사랑은 여전하십니다. 그래서 더욱 가슴이 아파오는지도 모를일이죠. 그만큼 못하는 내가 미워서~
요즘 읽은 책 중에 유달리 저의 눈가를 촉촉하게 물들인 [아기가 된 할아버지], 이 책을 읽으면서 더욱 친정어머니 생각이 납니다. 서두엔 며느리의 입장인 찬우 어머니의 눈으로 읽었습니다. 소리지르는 엄마, 엄마에게 구박받으면서 살고 있는 것 같아 보이는 안쓰러운 할아버지, 어느누구도 엄마의 입장에서 살펴보는 이가 없습니다.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엄마의 하루동안의 가출로 인해 가족들은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을지 짐작할 수 있었지요. 힘들어하는 엄마, 부인, 올케를 위해 할아버지를 시골 요양소로 보내기로 하고 내려가는 길. 할아버지의 징에 대한 집념을 듣게 되면서 그동안의 의아함과 엉켜있던 실타래가 풀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이야기가 점점 중반에 이르렀을 때 며느리의 입장에서 읽던 글이 우리 어머니의 입장에서 읽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외할머니가 치매에 걸리고 나서 엄마는 점점 바쁜 생활을 하시게 되었어요. 주말마다 외할머니에게 다녀오셨던 기억, 놀러가시는 줄 알고 따라가보면, 할머니 목욕시켜드리고 옷 빨아드리고, 이불빨래 등 할머니의 손과 발이 되어 수발하시고 숙모에게 고개숙여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하고 올라오시던 기억이 납니다. 치매에 걸리면 정말 집착하시는 게 있나 봅니다. 우리 외할머니는 치매걸리기 전에 거동이 불편하실 때부터 빨래를 곱게 개어 바느질을 하셨어요. 이불 가운데 한번 집어주듯이 빨갯감 위아래를 한번씩 집어서 서랍장에 넣으셔서 여쭈었더니 "나 저세상에 가고 나서 누군가 열어보면 흉볼까봐" 새로 입을땐 다시 풀고 입으셨었는데, 치매에 걸리고 나서도 계속 그렇게 하시더군요. 책 표지의 그림을 보았을 땐 그저 '음, 노인이 된 할아버지를 엄마가 씻겨드리고 있는거로군' 단순히 생각했죠. 그런데 본문을 읽다가 나온 이 그림 때문에 많이 울었어요. 같은 그림인데 말이죠. 철없는 아들과 안쓰러워 하는 며느리, 세상의 것들을 잊어버린 할아버지 이렇게 3대의 대화속에 저도 함께 하고 있기 때문이었겠죠. 어린 아이가 태어나 사랑을 한아름 받으면서 자라 어른이 되고 세월이 흘러 다시 아기가 된다는 말이 어쩜 그리 맞는지요. 세상에 태어났을 때의 사랑으로 노인이 된 후 다시금 아기가 되었을 때도 부모처럼 돌봐줄 수 없는게 안타까울 뿐입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그 마음으로 부모님을 섬겨야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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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면 온몸을 구석구석 주물러주거나 책을 읽어주며 딸아이를 깨우는데, 오늘 아침에는 이 책을 읽어주며아직 눈도 뜨지 못하는 딸아이의 옆에 누워 책을 읽어내려갔다.
치매에 걸린 할아버지때문에 찬우의 가족은 어쩔줄을 모른다. 틈만 나면 징을 쳐대고 잘 있는 통장이 없어졌다고 하루종일 가족들을 괴롭히고 심지어는 엘리베이터에서 소변까지 보시는 할아버지.
가족들의 무관심속에 혼자서 할아버지를 돌보느라 지친 찬이의 엄마는 결국 가출을 하고, 갑작스런 엄마의 가출로 아빠는 직장을, 찬우는 학교를 쉬고 하루종일 할아버지를 보살피게 된다.
아침부터 찬우 에미가 통장을 가지고 나갔다며 아빠와 찬우를 볶아대는 할아버지. 그러나 할아버지가 늘 깔고 앉는 방석밑에 얌전히 있는 통장을 찾아내 할아버지에게 통장을 드리지만 잠시후 또다시 통장을 내놓으라고 졸라대는 할아버지.
결국, 찬우와 아빠는 천장에 못을 박고 줄을 달아 통장을 매달아 놓았다.
그 대목을 읽는데 어찌나 웃음이 나던지..... 조금전까지 눈을 감고 있던 딸아이가 나의 웃음소리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덤벼든다.
아침부터 찬우 할아버지의 통장소동으로 실컷 웃었다. 아침밥을 먹고 딸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나머지 부분이 궁금해서 결국 다 읽고 말았다.
중간중간 할아버지의 엉뚱한 행동과 찬우의 투정에 웃음이 나기도 하였지만, 할아버지의 지워진 기억 저편에 고스란히 남아있던 증조할아버지와 징에 대한 회한은 눈물샘을 자극하기도 하였다.
결국, 찬우 가족의 품을 떠나 그토록 그리워하던 고향 고두실에 돌아가신 할아버지.......
책을 읽는 내내 치매로 돌아가신 친정아버지가 몹시도 그리웠다. 나의 친정아버지도 갑작스럽게 찾아온 치매로 한동안 고생하시다 돌아가셨다. 한때는 요양원에 가실뻔한 찬우 할아버지와 달리 친정아버지는 요양원에서 돌아가셨다.
찬우의 할아버지가 틈만 나면 징을 쳐댄 것처럼 친정아버지는 고향으로 돌아가야 한다며 하루에도 몇 번씩 옷보따리를 챙기고는 하셨다. 심지어는 나를 못 알아보시고 막내고모나 사촌언니로 생각하시고 폐를 끼쳐서 미안하다고 하셨었다.
찬우 할아버지처럼 대변을 못가리거나 하시지는 않았지만 틈만 나면 밖으로 나가시는 통에 몇 번이나 길을 잃고 지갑도 잃어버리고 며칠 후에 다른 동네의 파출소에서 찾아오기도 하였었다.
조그맣게 흥얼거리던 노래소리와 함께 앙상하게 마른 친정아버지의 모습을, 아기였을때 함께 찾아뵙고는 하던 외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는 딸아이에게 자주 들려주었던 탓에 치매나 외할아버지에 전혀 낯설어하지 않는다.
처음과는 달리 시간이 흐를수록 찬우 할아버지에 대한 연민과 이해를 더 하게 되는 찬우 가족의 모습을 보면서, 나 역시 한때 치매로 딸조차 몰라보는 친정아버지가 몹시도 가여웠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아버지로서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몹시 마음이 아팠었다.
결국, 치매에 걸린 시아버지를 진심으로 돌보는 찬우의 엄마를 보면서, 또 마음속에 갈등으로 괴로워하며 먼 훗날 자신에게 닥칠지도 모를 일을 생각하며 고민하며 후회하는 어린 찬우를 보면서, 요즘 노인문제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치매'에 대해서 뿐만아니라 진정한 가족애에 대해 보다 현실적으로 돌아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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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가 된 할아버지..
아침부터 부은 눈두덩이 사이로 붉은 흰자위를 보며 아이들이 엄마 밤새 뭐했는지 다그친다. 밤새 뭘 한 게 아니라 눈뜨자마자 읽었던 책에 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더니 책 표지가 눈에 다시 띄자 눈물이 다시 흐른다. 원래 책 읽다가. 영화 보다가. TV를 보다가 자주 우는 터라 그러려니 했지만.
아기가 된 할아버지는 읽는 내내 10여 년 전의 나로 데려다 놓고 있었다. 둘째아이가 세 살 되던 해 시아버님이 뇌출혈로 몇 개월간 누워계셨었다. 긴병에 효자 없다는 말들을 주변에서 했지만 그렇게 오래 아프시다 가신 것도 아니고
내가 12시간 계속 붙어 있는 상황도 아니었으므로 치매노인에 대한 생각이 그렇게 극단적이진 않았다. 다만 ,, 아기가 된 할아버지처럼 며느리에게 대소변이라는 커다란 일을 내 보이는 시아버님의 모습이 책 읽는 내내 마음을 짓눌렀다. 유난히 어린 손자만 찾으시고 점점 더 아기가 되어가고 점점 작아지는 모습에 마음아파 혼자 울기도 했었다.
며칠 전 자신의 시어머님을 요양소에 모셔드리고 왔다는 시누의 말을 듣고 가슴이 아팠다. 전문적인 간병이 되지 못하면 할머니도 힘들다 라는 말에 모셔드리고 왔지만 마음이 아프다고,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고 찬우의 징소리가 내 마음에도 끊어질 듯 이어지며 계속 내 속에 머물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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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책을 읽을때면 항상 좋은 내용들만 가득해서 아이들이 꼭 그런 동화속 주인공처럼 살아가는 듯 착각을 하게 만들기도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가 못하다.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알게 모르게 이렇게 고통속에 사는 사람들이 꽤 많다. 물론 그 고통이 꼭 그들만의 것은 아닌데도 우린 남일처럼만 생각하고 사는건 아닌지 모르겠다. 이 책을 읽는 초반엔 정말 엄마가 좀 너무 한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는다. 같은 여자 입장이지만 그녀의 귀찮아하는 태도와 짜증스러운 말들이 그녀의 입장에 서서 생각하기 보다 그런 오해를 불러온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엄마가 나가버린 하루동안 아빠와 아들아이 둘이서 겪는 과정들을 보면서 그들과 함께 그녀에게 가졌던 원망의 마음을 반성하며 엄마란 정말 강해야한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그리고 그런 치매 노인을 둔 가정의 아이에 대해서도 한번쯤 생각해 볼 수 있게 해 주는 책이랄까? 할아버지와의 추억이 짙은 찬우라는 아이가 점점 할아버지와 멀리 하게 되고 점점 벗어나고 싶은 강한 반발심이 생기는것은 진실일거다. 실은 내게도 치매에 걸리신 할아버지와 함께 산 경험이 있다. 그때는 정말 집안 가득 고약한 냄새가 진동을 했으며 항상 정신이 오락가락하셔서 할머니는 우리에게 거짓말을 시키시기도 했는데 그런 상황속에 있다는 사실이 많이 싫었던 기억이 난다. 책속의 할아버지가 집착하시던 징처럼 우리 할아버지는 고향 금산에 두고 오신듯한 인삼에 강한 집착을 보이셨다. 그래서 항상 신작로(아스팔트)에 쌓아놓은 인삼을 가져와야한다고 자꾸 밖으로 나가시려했다. 그래서 징에 대한 서러운 한을 풀어 버리고 싶은 할아버지를 위해 물에 잠긴 고두실을 찾아가듯 나도 삼촌과 함께 할아버지와 금산엘 다녀온적이 있다. 하지만 이 책에서처럼 할아버지의 정신이 돌아오시지도 못하셨고 그에 서린 한스런 이야기도 듣지 못했다. 하지만 그날 이후로 그런 소동은 줄었지만 누워만 계시다가 어느날 돌아가셨다. 실은 그때 나는 대학을 조금 멀리 다닌 관계로 집을 떠나있었는데 죄 짓는 마음이지만 너무너무 해방감을 느꼈던건 사실이었다. 그래서 책속 찬우란 아이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하고 책을 읽게 된다. 항상 어느 책이든 이야기를 너무 미화하는 경향이 있어 진실은 가려질때가 많은데 찬우의 솔직한 심정을 잘 드러내는 글들이 주는 느낌이란 솔직한 이야기에 공감을 주어 더 많은 생각을 할 수 있게 한다. 나도 할아버지의 죽음 앞에서는 참 숙연해 지는 마음이 들기도 했으며 편안히 돌아가셔서 저 세상에서는 인삼밭 실컷 일구시기를 기원했다. 마지막 가시는길에 징을 두들겨 하늘 소리를 울려 퍼지게 한 찬우처럼 눈시울을 붉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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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누구나 늙는다. 이 ‘늙음’에 대해 부정할 수도 긍정할 수도 없는 지금이다. 그렇지만 거부할 수 없다.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그냥 그렇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기가 된 할아버지! 가족이란 울타리이다. 그 울타리 안에서 구성원들은 휴식을 얻는다. 이 책의 깊숙한 곳에서는 가족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한다. 치매를 앓는 사람의 마음을 우리는 알 수 없다. 그저 본인도 힘들어하고 있을 거라고 미루어 짐작할 수밖에 없다. 이 책에서는 찬우 할아버지가 치매를 앓고 있다. 그런 시아버지를 모시는 며느리가 있고, 할아버지를 지극히 모시는 손자가 있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는 보는 아들이 있고, 딸이 있다. 그렇지만 할아버지는 힘들다. 며느리도 힘들고 아들도 힘들고, 손자도 힘들고, 딸도 힘들다. 할아버지의 오랜 상처를 우리는 이해해야 한다. 할아버지는 ‘징’에 강한 집착을 한다. 그것 때문에 모두가 더 힘들어 한다. 그렇게 바라고 원하던 징을 마음껏 두드리고 그 소리를 듣고 난 뒤 잠깐 병을 앓기 전으로 돌아와 속내를 보인다. 그러나 그 시간은 너무도 중요하다. 할아버지는 그 때 비로소 며느리에게 가슴에 담긴 말을 건넨다. ‘가족’이라는 울타리 속에 힘겨운 생활을 하는 이들에게 잠깐이나마 위로가 되는 순간이다. 작가의 또 다른 면모가 드러난다. 그냥 치매에 걸린 할아버지를 모시는 한 가정의 이야기로만 그치지 않았다. 이 이야기는 일제 때부터 현재까지 이야기를 묶었다. 소재하나만으로도 시대와 시대를 묶어놓았던 것이다. 초등학생이 즐겨 읽을 동화 속에 우리가 경험하지 않은 시대의 아픈 역사를 일깨워주기도 한다. 체험적 이야기는 다분히 자기의 이야기를 나열하는데 그칠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은 결코 그렇지 않다. 시대를 거슬러 가게 하는 작가의 구성능력 때문이다. 작가만의 역량이다.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뼛가루를 할아버지가 그토록 가고 싶어 하는 고향에 뿌려줄 때 찬우의 고백하지 못한 이야기가 왠지 아련하다. 만약 찬우가 울려주는 징소리를 할아버지가 듣는다면 비록 말로 전하지 못했어도 그 징소리를 타고 할아버지에게 찬우의 고백이 들렸으리라 위로한다. 노년의 시기가 점점 길어지는 이 때, 우리의 ‘늙음’에 대해 찬찬히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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