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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 관세 철폐 *외국인 투자 규제 철폐 *수출 위주 기업형 단일 작물농업 *가격과 임금의 국가적 보호철폐 *사회복지 환경보호 비용과 정책의 축소 *공기관의 민영화 *다국적 기업집단에서 ‘수입대체프로그램’이라고 명명한 자급자족적 경제정책들의 종식
이것은 IMF, 세계은행, GATT, WTO 등 국제경제기구 중 그 어디를 통해서라도 지원금을 받거나 회원가입 시 반드시 수락해야하는 원칙들이다.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라틴아메리카 등 소위 제 3국가로 분류되는 후진국과 개발도상국에서는 모두 이러한 세계화 자유무역주의 신자유화 따위의 이름들로 불리는 서양의 경제 원리이자 정책을 받아들이며 붕괴되어 갔다.
위의 강제성을 띤 규제철폐사항들의 면면을 보자면 대등한 경제규모와 구조를 갖추지 않고서는 삽시간에 경제적 침탈을 면키 어려운 요구들이다. 이에 대해 몇 개 부분으로 분할하여 접근해보도록 하자.
*기업 보호관세철폐와 외국인 투자 규제가 없다면 상대적으로 경쟁력에서 미진한 당면국가의 기업들은 생존의 불투명을 넘어 폐망이 확실한 상황이다. 자국 시장에서 살아남은 기업들 또한 대주주가 외국자본이 되는 상황을 면키 어렵다. 이것은 제3세계에서만 국한되는 상황이 아니다. 이런 방식으로 캐나다에서도 수천 개의 기업이 미국을 비롯한 다국적기업들의 손으로 넘어갔다고 한다. 유럽의 경영환경 노동여건 또한 기업의 적자와 경제여건의 어려움등의 이유로 통제를 거치고 있는 중이다. 자유경쟁의 논리, 다양성 존중의 논리는 하나의 가정과 외양일 뿐이고 실제로는 인수합병을 통해 <기업(또는 경제)권력>은 중앙집중화 되고야 만다. 미국 내에서도 다수의 기업들과 금융업계 역시도 인수합병을 통해 점차 본색을 드러내며 중앙집권화 하고 있다. 이와 같이 국가에서 운영하던 국영기업(한국으로 예를 들자면 한국전력, 수도공사, 담배인삼공사 등)마저도 자본주의의 자유 시장 경쟁 원리를 근거로 민영화하기를 강제하고 결국엔 다국적 기업의 소유가 된다. 라틴아메리카나 동남아시아에서는 미국의 비호아래 민주정권을 전복시키고 집권한 독재정권들이 수십년 째 지배하면서 국제경제기구들의 요구에 따라 다국적기업들의 기업형식민지 지배치하에서 그들이 보다 더 그들 국가의 자원과 노동력을 착취하기에 적합한 환경을 조성해주어 왔었다. 이것을 거부하고자 버티다보면 다른 독재정권으로 교체 되거나 외환위기 등의 적대적 환경을 거쳐야 하는 것이다. 공기업의 민영화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화폐생산의 민영화에 이르는 것이다. 어쩌면 이런 것들이 자유경쟁이란 것의 궁극인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더 이상의 경쟁이 사라진 중앙집권화 된 계획경제 시스템의 도래를 앞두고 있다.
*식량자원 농업 또한 자유무역주의의 희생량이 되어 생존을 위해 별수 없이 수출 작물만을 선택해야 한다. 관세는 없애고 농민들에 대한 지원은 사라진 상황 하에서 공장형식의 기계화된 농경기술을 기반으로 농산물을 대량생산하는 다국적 기업들과 개발도상국가들의 소규모 농가들이 자유경쟁을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빈곤한 상황의 국가들이 식량원을 수입해야 하는 모순적인 상황을 맞이한다. 대량생산 하는 서구 농축산물과 가격면에서 결코 경쟁이 될 수 없기에 농업과 축산업관련 농가의 수출작물로의 귀결은 자명한 것이다. 인구의 도시밀집이나 농가의 소득 저하는 이미 예측 가능한 결말이다. 소수 농업을 마지막까지도 포기하지 않는 농가에서도 농경기술마저 서구화되어 비료 농약 종자의 필요불가결한 재원들 다수를 다국적 기업들을 통해 구매해야 한다. 자국의 기업이 비료와 농약의 생산 기술을 도입한다해도 다국적 기업들이 그 산하의 세계종자기구에서 특허를 신청해 국제경제기구들로부터 특허권을 인정 받으면 약간의 유전자조작이 가해진 종자들이 지적재산권으로 보호의 대상이 된다. 농사는 농부들이 짓겠지만 유전자 조작으로 매해 새로운 종자를 구매해야하니 결국엔 다국적기업이 해마다 로열티를 취해가는 것이다. 낙농업에서도 유전자 조작 가축은 유전적으로 특허의 효과가 계승된다하여 유전자조작 가축을 구매 후에도 그 가축이 출산을 할 때마다 비용을 제공해야 한다고 한다. 수출하는 특화작물들에 대해서도 각 국가별 작물의 분류가 명확하여 국제경제기구들의 예측과 통제가 가능한 상황이다. 구매자들의 카르텔이 형성되어 독점 아닌 독점구매인 것이다. 가격조절을 그들이 하기에 생산량 조절도 그들이 하는 것과 같다. 수요에 따라 공급이 조절될테니까! 판매에 있어서도 각국의 특화 상품에서 제외된 다국적기업들 주력 부문에서는 이들에게 경쟁상대가 있을 수 없는 상황이다. 이쯤이면 GATT의 정책들은 명백히 다국적 기업들에게 전세계 식량자원을 통제할 권한을 만들어주기 위한 것이었다고 단언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의료 1971년 제너럴일렉트릭사에서 미국특허 및 상표국(PTO)에 기름을 소화하는 박테리아에 대한 특허를 신청. 생명체(자연의 생산품)는 특허 대상이 아니란 전통법률을 근거로 특허 신청 기각. 법정공방의 시작. 1980년 미국대법원은 생명체도 특허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판결. 1985년 위의 판례를 근거로 유전자변형 씨앗과 식물 조직에 대한 륵허까지 확대적용 인정. 1987년 PTO는 “동물을 포함한 모든 다세포 생명체”에 까지 판례를 확대적용하겠다고 결정. 1988년 살아있는 동물에 대한 최초의 특허를 인정. -다른 종 동물의 다양한 유전자를 가진 초유전자 생쥐를 개발한 하버드대의 필립 레더교수와 샌프란시스코의 티모시 스튜어트.- 1991년 자연 그대로의 인체의 일부에 대한 특허권 인정. -캘리포니아 팔로알토의 시스테믹스社에게 모든 혈액 세포의 근간이 되는 인간 골수의 줄기세포에 대한 통제권을 인정한 것.- PTO는 이후 여러 개의 인간 유전자에 대한 특허를 발행, 수천 개의 인간 유전자에 대한 특허신청들이 심사 계류 중.
이러한 상황이라면 인간게놈프로젝트도 지적재산권 보호라는 측면에 입각해서 소수의 기업과 정부기관들의 이윤추구의 대상이 되는 사태를 거부하기 힘들다. 미국 정부만 예로 들더라도 인간게놈프로젝트에 착수할 때 30억 달러를 투자했고 이후 예산을 더욱 확장했다고 알고 있다. 또 사라져가고 있는 부족들로부터 언제든 다양한 의료적 용도로 사용가능할 인간 유전자 정보를 ‘인간게놈의 다양성 프로젝트(HGDP)’라는 명분으로 채취하고 있는데 이 프로젝트에 처음으로 자금을 댄 것이 미국국립과학재단(NSF)라고 한다. 그 외에도 신약개발과 의학을 비롯한 전분야에 대한 연구를 행하고 있는 대학들에 지원금을 조달하고 있는 것이 다국적 기업들이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다국적기업들은 의학과 과학의 미개척 분야마저도 이윤이 될거라 예견되는 대상들부터 선점하고 있는 것이다. 선점하고 있는 정도가 아니라 이윤추구의 대상을 발견을 너머 창조하기까지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또한 FTA등에서 제시하는 협상조건에는 의료서비스분야도 포함되어 (일반인들로서는 경쟁력 있는 의료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고 환영할지도 모르지만)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던 의료시장 역시도 침탈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근래 한국에서는 의사들의 시위가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는데 배불러 있던 현재의 한국의료계도 외래 의사와 외국병원들이 대거유입 되면서 결국에는 자성하기에도 뒤늦은 상황이 도래할 것이다. 지금과 같은 상황 하에서 21세기의 의료 현실은 다국적기업의 독점의 대상이 되는 <경제상황>일뿐이라는 것이 피할 수없는 현실인 것이다. 더욱이 서양인들이 가져온 신의료기술들로 인해 삶에 대한 욕구와 생명 그 자체마저도 이윤추구의 대상이 되어 진작부터 장기와 혈액, 생식물질, 기타 인체조직등이 매매의 대상이 되어 왔다. 인체장기가 상업적 수요의 대상이 된 것이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는 1991년에 이미 제3세계의 장기 판매가 “심상치 않은 수준”이라는 자료를 제시하였었다. 제3세계의 경제여건이 피폐해진 이후 제3세계 국민들은 자신의 장기臟器마저 매매의 대상으로 삼았고 제3세계가 주요한 장기공급국으로 부상하게 된 것 또한 이들이 국제경제기구들의 경제원칙들을 받아들인 결과로서 야기된 상황인 것이다.
*교육 사실 현재의 세계화 시스템은 사회제도 거의 전부를 서비스 상품이라 파악하고 있다고 한다. 교육 시장의 민영화는 청소, 급식, 학교버스운영, 건물관리, 컴퓨터 서비스, 자문 등등의 부대서비스까지도 동반한 것이기에 국제경제기구의 정책들의 협정등을 통해 조인된다면 공격적인 공략의 대상이 될 것이다. 또한 TV나 인터넷 등의 온라인 매체들을 통한 원격 교육프로그램이나 그 외의 여타 어학 수학 과학등 지적재산권의 보호를 받는 외래 유입 교육프로로그램들이 교육시장 전체의 지배적 위치를 고수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현대를 다양성이 부각되고 서로의 개성을 존중하는 시대로 조명하고 있으나 종교적 민족적 국가적 대립이 한층 격렬해지고 있는 현실로 인해 민족주의나 국가주의가 팽배해질 뿐이다. 실제 외래문화가 유입된 국가들 치고 <즈비뉴 브레진스키>씨가 <<거대한 체스판>>에서 언급한 미국식의 ‘이기주의와 이상주의가 적절히 배합된 개인주의’라는 문화적 MEEM에 세뇌되어 있지 않은 사람들은 없다. 웹 서비스등의 발달로 블로그나 싸이, 온오프라인의 클럽등을 통해 상호간의 연대감이 증대되었다고는 하나 다른 이들 틈에서 서로를 표현하고자하는 자기PR의식이 보다 확장되고 견고해졌을 뿐이다. 시대의 트렌드나 아이콘 등의 한정되고 피상적인 대상 등에 일부 세부폴더가 무엇인지 파악하듯이 폴더 형식으로 인식할 뿐이지 깊이 없는 교류로 더욱 상호몰이해의 혼란을 겪는 것이 현실이 아닌가? 각 국가가 문화나 사상을 받아들이며 집단무의식과 군중심리, 집단의 염원에 따라 정보를 인식하고 해석한다고 군중심리나 대중심리동향을 연구 하는 학자들은 말할지도 모른다. 허나 분명히 군중심리를 형성하고 유도하는 이들이 있으며 수십년에서 몇백년 단위로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 대전략을 기획하고 책동하는 자들이 있음도 간과해선 안될 일이다. 우리는 현실 긍정을 유도 당하고 다양성의 이름 뒤에서 책동된 획일성의 노예인지도 모른다. 기업형 경쟁중심, 적자생존 논리의 학력과 경쟁을 위주로 하는 서구 교육시스템이 자리 잡으면 더더욱 서구문화 옹호적이며 신자유주의의 흐름에 동참해야 한다는 개인 성취와 향유만을 외치는 정형화된 인간들만이 대량 양성될 것이다. 결국 교육시장의 잠식뿐만이 아니라 정체성과 사고방식마저 잠식 당하고 마는 것이다. 더더욱 이러한 기획이 의도된 전략임에도 불구하고 대중들에게 하나의 역사적 흐름이며 인류발전의 당위적인 결과로써 인식될 것이기에 이것이야말로 그보다 더 무서운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
*노동 임금의 문제를 보자해도 경쟁력 향상을 근거로 임금 동결과 삭감을 강제하고 노동의 이동이라하여 감원을 자유롭게 하라한다. 이러한 상대적이면서도 절대적으로 유리한 상황 하에서 다국적 기업의 공장들이 제3국가들에서 생산을 한다. 물론 이런 상황 하에서는 제3국가들의 GDP는 상승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허울 좋은 수치의 상승일뿐 낮은 관세와 내국인과의 동일한 세제 안에서는 모든 이익이란 다국적 기업의 이윤 상승만을 말하는 것일 뿐이다. 최저임금의 노동자들을 동원해 생산한다고 해도 결코 제품의 가격이 낮아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 노동자들의 국가에서는 동일한 물가에서 임금만 낮아지니 당연히 생활은 척박해질 수 밖에 없다. 타국가의 소비자들이라고 해서 기업이 제3국가에서 최저임금으로 제품을 생산한다고 이익을 볼 일은 없다. 물가 상승률에 따라 가격을 올리면 올렸지 저임금국가에서 생산한다해서 제품가격이 낮아지는 일은 없으니까.
기업의 경쟁력을 이유로 드는 국제경제기구들의 강압으로 환경보호정책과 노동자의 근로여건과 권익보호, 의료보험 등은 고려의 대상조차 될 수 없다. 요즘 한국의 노동조합들은 공장생산까지 자신들의 의지로 중단하리만치 선진 유럽의 노동계와 비교한다해도 손색이 없으리 만큼의 권력을 자부한다. 허나 한국노조는 저임금 노동자들의 현실과는 너무 동떨어져 있으리만치 노동계 자체가 특권화 되어 열악한 노동현실 속에 놓인 노동자들의 권익을 되찾아 주겠노라는 노동조합의 근본취지와는 괴리가 생겨나고 있는 실정이다. 국민여론마저도 “거대화된 노조”를 우려하기에 이르렀다. 게다가 2007.02.11 연합뉴스의 기사를 보자면 <전국가구 중 무직가구의 비율은 2003년 13.43%에서 2004년 13.40%로 소폭 내려왔다가 2005년 14.02%, 2006년 14.57%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고 통계청의 정보를 인용하면서 <무직가구율이 15%육박..통계작성 이래 최고>라고 <7가구 중 1가구 가장 '직업 없다'>는 현실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한국노조의 현실성 없는 자기괴멸을 예견할만한 행위들은 머잖아 되돌리기 힘든 부정적 상황에 직면하는 요인이 될 것이다. 장차 한미FTA체결이 완료된다면 놀랄만큼 신속하게 노조의 권력이 약화 될 것이며 뿐만 아니라 하나둘 노조의 하부구조가 자발적으로 탈퇴하고 해체되는 상황을 맞이할 것이다. 현재만하더라도 전 세계적으로 노동임금을 삭감하거나 동결하고 비정규직이 확산되며 노동자들이 임금인상 없이 근무시간을 연장하는데 동의하고 있는 추세이다. 2006.11.15 한국경제 윤기설 노동전문기자의 칼럼을 보면 급진적 극우적인 유럽노조의 변화를 이야기하며 한국노조의 변화를 주장하고 있고 2007.01.21에 머니투데이를 보자면 한국은 <KOTRA 외투기업 설문조사 결과 “경영환경中 노사관계 최악”으로 평가받았으며 "한국은 경영안정성 보장 안되는 나라">라 인식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2007.02.01 매일경제의 기사를 보아도 <로버트 수바라만 리먼브러더스 아시아(일본 제외) 담당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올해 우리 경제성장률을 4.3% 선으로 본다며 "한국은 현재 생산성과 설비투자비를 급히 늘려야 하는 다급한 상황."이고 "한국은 원화 평가 절상 외에 몇 가지 구조적인 이유에서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한국경제의 경쟁력상실이 위험수위>에 이르렀다고 진단했다. 또 2007.01.30 매일경제 서울경제 헤럴드경제 조선일보 파이낸셜뉴스 데이터뉴스 등등이 노동부 조사를 근거로 발표한 기사에 의하면 <무노조 기업의 협약임금인상률이 5.2%로 유노조 기업의 4.5%보다 0.7%포인트 높게 나타났다고>한다. 이와 같은 것들이 기업의 경영환경개선을 위하고 한국정부의 평가를 제고하기 위한 여론조작이라 한다해도 이미 대세는 기운 것이다. 노조의 영향력 약화는 국제경제기구의 중앙집권화 된 통제권 확보를 위한 경제 침탈을 위해 필요불가결한 수순인 것이다. 미국 FRB에서 미국경제의 연착륙을 위하여 금리동결등의 정책등을 시도하고 있고 앞으로도 노력을 아끼지 않겠지만 미국의 대공황은 이미 예견된 바가 아닌가? 이후 그 여파가 전 세계로 파급될 것은 뻔한 일이고 어느 나라 할 것 없이 노동현실(임금삭감,비정규직확장,노동시간연장,노동자들의 의료보험 등 노동여건의 피폐화), 기업경영환경, 국가재정 모든 상황이 하나하나 다국적기업의 주권침탈에 적합한 상황으로 조절될 것이다.
*환경, 사회 현재 아프리카와 라틴아메리카, 동남아시아는 세계에서 임금이 가장 낮은 나라이면서 또한 사회 복지비용과 정책 역시 가장 낙후된 나라이다. 환경보호정책들이 상당히 유연한 국가들이 이들 국가들인데, 유럽과 북미지역에서는 환경관련 법안들로 제한이 적지 않던 다국적 기업들이 이들 국가에서 제제가 전무하다시피한 기업을 위한 최적의 여건 하에서 환경파괴를 서슴치 않으며 기업의 근본 목표인 이윤 추구에 주력해 왔다. 그러한 상황을 국제경제기구들은 장려하다시피 하여 왔었다. 허나 환경단체들이 하나 둘 생겨나고 그들의 영향력이 사회적으로 힘을 갖게 되니 다국적기업들로서는 새로운 안배가 필요 했을 것이다. 허나 이러한 안배가 말 그대로 새로운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들의 기획대로 실행해 옮기다보면 이에 대한 비판과 함께 반대 저지 운동이 확대될 것은 자명한 일이기에, 전략에 착수하기 전부터 복안을 마련해 두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환경단체들이나 반세계화 운동단체들 또한 국제경제기구들의 임원들이 다수를 차지한다면서 그들이 사회 혼란을 조장하며 그러한 상황까지도 자신들의 목적 완수에 이로운 각도에서 활용한다고 단정 짓기도 한다. 동아일보사에서 번역 출판한 <<위대한 전환>>이라는 도서를 보면 공저자들이 모두 <시에라클럽>이라는 환경운동단체의 회원들인데 약력을 보면 이들 회원 중 일부가 세계은행의 현직임원이거나 다국적기업 출신이었다. 이러한 예를 보아도 <그린피스>나 여타 환경 사회단체들의 회원이나 요직인사들이 국제경제기구등 국제질서창조를 위한 조직출신일 수도 있지 않을까하는 추측이 되기는 한다. 또한 엘리뇨, 지구온난화 등 환경문제들은, 물론 지구에 거주하는 생명체로서 당연히 관심을 가져야하는 대상이겠으나 현재 개발도상국들의 산업화를 저지하는 근거로써의 역할에 더욱 충실하지 않은가? 환경문제가 다국적기업의 이윤에는 다소 문제가 된다지만 제3국가들의 발전에는 심대한 타격이 아닐 수 없다. <<위대한 전환>>에 보면 세계은행임원인 한 회원이 쓴 환경분야보고에서 탄소배출량에 제한을 두고 초과 할 때 마다 세금을 부과하자는 내용을 보았는데 실제 요즘은 환경파괴를 하는 생산에 대해서는 실제로 환경비용이라하여 세금처럼 부과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아무래도 이 비용을 관리하는 것도 국제경제기구산하의 환경기구일 것이 분명하지 않겠는가? 이런 환경비용은 아무래도 전략적으로 기간산업에 과대부과 될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제3국가들은 발전하는 만큼 부과되는 세금을 감당해야하기에 영원히 현재의 미국과 유럽의 국제경제기구들의 배후인 다국적기업에 경쟁상대가 될 날은 오지 않을 것이란 결론에 이른다. 경쟁상대가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환경비용이라는 세금으로 국제경제기구의 운용과 다국적기업의 이익에 보탬을 주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경제, 식량자원, 의료, 교육, 노동자문제 등 분야별로 20세기중후반기의 역사를 읽자면 이 모든 것이 명백한 계획 하에서 주도된 상황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마지막으로 정부 이런 환경 속에서 정부에 대한 국민의 지지가 하락한다는 것은 바보라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정부의 권한과 역할에는 제약이 생기고 만다. 국제경제기구들이나 국제기구들이 제시하는 법안들에 상충하는 국내법은 개정이 되고 새로운 법률을 제정할 때도 그들의 법안에 상충하지 않는지부터 고려해야 한다. 재판 시에도 국내법이 국제기구들의 법률에 저촉된다면 재판 자체가 성립될 수 없다. 그에 더해 공기업을 민영화하기에 결론적으론 행정부분을 제한하는 것이지 않은가? 각 국가의 입법, 사법, 행정 거의 모든 부분을 통제하는 그들이 과연 민주적인 국제협력을 위한 기구들인가? (WTO의 임원들은 선거를 통해 선출되는 것도 아니라는데 무슨 민주라는 말인가?) 이러한 사태가 정말 아무런 의도도 없이... 우연히... 세계화를 자유무역만을 추구하는 과정 중에 형성된 그저 조율이 필요한 상황인 것이라 생각되는가? 그저 약간의 시행착오일 뿐으로써 앞으로 조율을 거치면 전 세계가 서로를 위하고 모두가 법률을 근거로 하는 평등하고 윤택한 사회가 순순히 등장하리라 정말 확신이 드는가?
이제 우리는 곧 국제기구들의 창안자들이 오랜동안 시행해온 대전략의 결과를 목격하게 될 것이다. 부동산시장위축, 달러약세, 헤지펀드 해체, 버블붕괴 등 여러 요인들로 미국이 대공황을 맞이하면서 시작될... 용의주도하게 준비되고 조작된 파국이 휩쓸고 지나간 후 우리는 비관적 시각에서 조망하는 SF영화에서나 볼 수 있었던 암울한 미래를 끝내 겪어야할 것이다. 이젠 막기에도 너무 늦어버렸으니까... 정말이지 경이롭다는 말 밖에는 나오지 않고 그들의 오랜 대전략 완수 과정에 찬탄하지 않을 수 없다. 외경심마저 이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분노도 인다. 참담함도 인다. 슬픔과 가련함도 가슴을 메운다.
무엇보다도 이러한 파국을 앞두고도 근거 없는 낙관론만으로 세상을 바라볼 다수의 인구가...
그렇다해도 현시점은 이러한 안일함으로 무방비 상태에서 무장해제 될 때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파국을 당면한 이후라도... 이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고 진정한 평화와 평등을 위한 새로운 대전략을 함께 구상해 나아가야할 때라고 제안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모든 것을 다 바쳐서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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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를 휩쓸고 있는 많은 물결들 중에서 가장 뚜렷하고 거스르기 힘든 대세를 이루고 있는 게 있다면 그건 아마도 ‘세계화의 물결’이 아닐까 싶다. 한창 개발중인 제3세계의 많은 도시들뿐만 아니라 티베트 고원이나 아마존 밀림 등 예전에는 거의 접근이 불가능했던 지구상의 오지와 변방에까지 그 물결이 속속 빠짐없이 미치고 있으니 말이다. 맥도날드 점포의 수나 코카콜라의 소비량 따위를 흔히 그 척도로 삼고 있다는 사실이 분명히 말해주고 있듯이, 이 거대한 세계화의 물결은 무엇보다도 경제를 자신의 동력으로 삼고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이 점을 분명히 할 때, 우리가 ‘세계화’를 운위하면서 자주 함께 언급하곤 하는 ‘지구촌’과 ‘세계시민’이라는 익숙한 단어들의 배후에 도사리고 있는 어두운 그림자를 볼 수 있게 된다. 즉, 우리가 그 말들에 의식적으로 애써 새겨 놓은 인류애에 바탕을 둔 연대감과 자긍심이라는 가치는 점점 희미해져서 더 이상 찾아볼 수 없게 되고, 다만 하나의 ‘시장’으로 간주될 뿐인 이 지구라는 행성에서, 매스 미디어의 광고 홍수에 의해 실제보다 더 부풀려진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끝없이 상품과 서비스의 소비에 몰두하는 ‘소비자’의 모습만이 뚜렷하게 부각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세계화의 물결’을 타고 있는 우리는 지구촌의 자랑스러운 세계시민이 아니라 다만 전세계적 또는 전지구적 차원에서의 소비자에 불과할 뿐이라는 사실은, 당장 우리의 저녁 식탁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확인된다. 이러한 저녁 식탁을 앞에 두고, 전세계적 또는 전지구적 상차림이니 이 얼마나 보기 좋은 풍경이냐고 말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이른바 ‘자유무역’이라는 배에 실려서 수입된 이러한 먹거리들로 인해서, 대대로 이 땅에서 먹거리를 키워온 농부들이 실업자로 내몰리고 그들이 버리고 떠난 논밭은 ‘개발’이라는 이름의 아파트나 쇼핑센터, 또는 공장으로 변모하고 만다는 사실을 이제는 누구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독일의 경제 철학자인 볼프강 작스는 자신의 책 『개발의 사전』에서 이처럼 대규모의 세계적 개발 실험의 실패보다 더 나쁜 것은 이 실험의 성공밖에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실험이 최상의 상태로 진행된다 하더라도, 장기적인 혜택은 이 실험의 중심부에 앉아 있는 극소수의 사람들과 이 실험에 경제적인 연관성을 갖고 있는 일부 사람들에게만 돌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머지 인류는 황폐화된 행성의 폭력적인 사회에 살면서 더 줄어든 일자리와 땅을 얻기 위해 애쓰게 될 것이다. 새로운 물결 위로 띄워질 배들은 이 실험 과정의 소유자들과 관리자들이 갖고 있는 배들뿐이다. 그리고 나머지에 속하는 우리들은 해변에서 새로운 물결을 바라보기만 하는 입장이 될 것이다. (18쪽) 『위대한 전환』은 이처럼 파괴적인 모습을 남길 뿐인 ‘세계화의 물결’을 거스르기 위하여 우리 시대의 가장 뛰어난 녹색 지식인 40여 명의 비판적인 글 43편을 한 권의 책에 모은 ‘반세계화’ 논의의 결정판이다. 헬레나 노르베리-호지, 제레미 리프킨, 반다나 시바, 랠프 네이더 등 이미 전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반세계화 운동가들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학자, NGO활동가, 전 세계은행 간부 등 다채로운 이력과 직업을 가진 전문가들이 이 책에서 연대하고 있다. 이 책에 수록된 글들이 경제학뿐만 아니라 사회학, 정치학, 인류학, 생물학, 법학, 의학, 역사학, 교육학, 문학 등 거의 전방위에 걸쳐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두 상당한 수준의 깊이를 보여주고 있는 것은 이러한 뛰어난 필진에 힘입은 것이겠다. 이 책의 제1부에서 이들은 ‘세계화의 물결’,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신자유주의적 세계경제로의 통합’이 우리에게 미치고 있는 충격들을 정치, 고용, 지역사회, 공공보건, 교육, 문화, 환경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서 살펴보고 있다. 위에서 나는 아주 상징적인 차원에서 저녁 식탁의 사례를 들었지만, 이 책에서 목도하게 되는 세계화의 충격은 실로 전면적이고 엄청나다. 경제뿐만 아니라 우리 삶의 모든 부문에 걸쳐 있으며 더 나아가 우리가 속해 있는 생태계의 재생 능력까지도 넘어서는 수준에 이르고 있으니 말이다. 특히 생명이라는 새로운 식민지를 선점하기 위해 생명공학 기술을 앞세운 기업들이 경쟁적으로 벌이고 있는 생명체 특허와 유전자 조작 및 독점의 사례들은 마치 디스토피아 SF영화를 보는 듯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이렇듯 우리의 삶과 생태계, 그리고 심지어는 조만간 우리의 유전자 구조까지도 바꿔 놓을지도 모르는 세계화가 가져다 줄 파국적 상황은, 서구 세계라고 해서 예외가 될 수는 없다. 비록 상당한 편차와 시차가 존재한다고 해도, ‘세계화의 물결’이 전지구적으로 확산됨으로써 이익을 보게 되는 이들도(대부분 서구세계에 살고 있는) 결국은 타이타닉호에서 벌어진 포커 게임의 승리자와 같은 운명에 놓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제2부에서는 세계화의 근저를 이루고 있는 두 개의 이론, 즉 자유무역(또는 자유시장)과 개발(또는 성장) 이데올로기의 허구성을 다루고 있다. 이러한 두 이데올로기가 떠받치고 있는 세계관인 ‘신자유주의적 세계경제’는 앞서 살펴보았듯이 치명적인 결함으로 가득 차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동안 기업 경제 전문가, 은행가. 정치가, 경제학자들에 의해 너무나 오랫동안 선전되어 왔기 때문에 기성체제 속에서는 큰 저항 없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특히 1980년대 말, 현실 사회주의의 붕괴가 이러한 세계관의 우월성에 기인한 승리로 여겨지면서 ‘세계화의 물결’은 더욱 급속한 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하지만 제1부에서 살펴보았듯이 다양한 부문에 걸쳐서 나타나고 있는 세계화의 부작용과 폐해에 주목하고 있는 이 책의 필자들은 세계화가 ‘실패한 만병통치약’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아니, 자유무역과 개발 이데올로기라는 ‘만병통치약’은 사실은 우리가 가진 문제의 해결책이 아니라 문제의 근원이라는 사실을 아주 체계적으로 증명해 보이고 있다. 자유무역은 우리 시대의 종교이다. 경제적 세계화를 천국으로 삼고 있는 자유무역은 분석적이고 철학적인 토대를 지니고 있다. 자유무역의 정리를 설명하는 데는 고등수학이 사용된다. 그러나 최종분석에서 자유무역은 경제적 전략이라기보다는 도덕적ㆍ교의적인 측면을 더 많이 드러낸다. 자유무역은 가치중립적인 개념처럼 행세하고 있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자유무역은 물건을 구매하는 것이 최고선이라고 가정한다. 자유무역은 또한 유동성과 변화가 진보와 동의어라고 가정한다. 자본, 원료, 상품, 사람의 이동이 자율성이나 주권, 지역 공동체의 문화보다 우선한다. 자유무역은 생기 있는 지역 사회를 창조해내는 사회적 관계들을 장려하고 지지하는 대신, 효율성에 대한 협소한 정의에 의존해서 우리의 행동을 이끌고 있다. (274~275쪽) 비교우위에 따른 국제적 분업화에 바탕을 둔 자유무역만큼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광범위한 동의를 얻고 있는 정책 처방은 없다. 자유무역은 오래 전부터 달리 증명되지 않는 한 좋은 것으로 가정되어왔다. 이 가정이 GATT와 NAFTA의 초석을 이루고 있다.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의 기본 이론들은 자유무역과 경제적 세계화에 대한 GATT의 기본적인 헌신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그 가정은 반드시 역전되어야 한다. 그리고 국내 시장을 위한 국내 생산에 유리한 기본 입장이 설정되어야 한다. 별로 지장이 없을 때는 균형 잡힌 국제 무역이 사용되어야 하겠지만, 그것이 환경과 사회의 재앙을 불러올 위험을 무릅쓰고 한 국가의 모든 일들을 통제하도록 내버려두어서는 안 된다. 국내 경제가 개라면 국제 무역은 그 개의 꼬리여야 한다. GATT는 모든 개들의 꼬리를 단단히 한데 묶어서 국제적인 꼬리의 매듭을 흔들면 여러 개들의 꼬리가 한꺼번에 흔들리도록 만들려고 하고 있다. (287쪽) ‘개발’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제국주의’라고 불렀던 것의 새로운 이름일 뿐이다. 제국주의는 ‘식민주의’라는 좀더 친숙하고, 비교적 중립적인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제3세계가 오늘날 처해 있는 상황을 잠깐 살펴보기만 해도 식민지 시대와 개발의 시대 사이의 지속성이 의심의 여지 없이 드러난다. (317쪽) 『위대한 전환』의 제1부와 제2부는 ‘반세계화’ 논의를 다루는 기존의 책들에서도 제법 많이 다루어진 내용들이어서 신선함이 조금 떨어진다. 다른 책들에서는 쉽게 발견하기 어려운 이 책만의 미덕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이어지는 제3부와 제4부를 주목해야 한다. 특히 제4부는 이 책이 그 제목과 부제(‘다시 세계화에서 지역화로’)를 빚지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세계화’라고 다들 쉽게 말하는데, 더욱 구체적으로 물어보자. 과연 무엇의 세계화인가? 누구를 위한 세계화인가? 정답은 두 질문 모두 기업이다. 그 중에서도 자본과 시장이 전세계에 걸쳐 있는 초국적 기업이다. 오늘날 국가와 기업을 통틀어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100대 경제체 가운데 47개가 사실상 초국적 기업이며, 겨우 500개밖에 안 되는 기업이 세계 무역의 70%를 지배하고 있다는 이 책에 제시된 통계가 그것을 단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이로써 ‘세계화’가 자본의 기획이라는 점을 우리는 더욱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제3부에서는 이처럼 세계화를 추진하는 가장 강력한 엔진으로 작용하고 있는 이들 초국적 기업들에게 현미경을 들이대어, 기업지배의 메커니즘, 기업의 행동을 지배하는 규칙, 기업과 새로운 정보통신 기술의 공생관계 등을 꼼꼼하게 살펴보고 있다. 반사회적 행동을 자행하는 초국적 기업의 구체적 사례로써 제시된 제너럴 일렉트릭(GE)과 월마트에 대한 글은 최근 몇 년 동안 우리의 주목을 끌고 있는 재벌기업 삼성을 떠올리게 해서 매우 흥미롭게 읽힌다. GATT의 우루과이라운드에서 설립된 WTO는 사실상 초국적 기업을 위한 세계적인 통치 기구로서의 역할을 하게 되어 있다. WTO는 전 세계에서 투자와 경쟁을 가로막는 모든 장벽을 제거할 수 있는 입법권과 사법권 및 위임통치권을 갖게 됐다. WTO 아래서는 각국의 비선출직 무역 대표부가 경제와 사회 정책에 대한 국민국가의 결정과 전 세계의 민주적인 법률마저 간단히 짓뭉개버릴 수 있는 위력을 가진 세계의 의회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동시에 세계의 주요 초국적 기업들이 가입국의 무역 대표부와의 직접적인 연결 고리를 통해 새로운 WTO 체제에서 강력한 역할을 하게 됐다. 예를 들어 미국의 경우에는 무역정책과 협상을 위한 자문 위원회에 IBM과 AT&T, 베들레헴 철강회사, 타임 워너, 코닝, 아메리카 은행,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스콧 페이퍼, 다우 케미컬, 보잉, 이스트만 코닥, 모빌 오일, 아모코, 파이저, 휴렛 팩커드, 비어하우저, 제너럴 모터스와 같은 거대 기업이 참여하고 있으며, 이들은 모두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의 일원이기도 하다. (374쪽) 제4부는 이러한 초국적 기업들이라는 숨겨진 엔진에 의해서 거스를 수 없는 힘과 속도로 지금 이 시대의 세계 곳곳을 휩쓸고 있는 파국적인 ‘세계화의 물결’을 멈출 수 있는, 아니 역전시킬 수 있는 대안들을 진지하게 모색하고 있는 글들로 채워져 있다. 간디의 스와데시, 공동체, 지역 통화 등 이 책의 필자들이 다양한 형태로 제안하고 있는 그 전환의 방향은 말할 것도 없이 ‘지역화’이다. 아주 최근까지도 인류의 대부분은 지역 경제에만 의지해서 생계를 꾸려왔다는 역사적 사실을 상기할 때, 이러한 방향 전환은 아주 자연스럽고 또한 신뢰할만한 것이 아닐 수 없다. 자기충족성을 강조하는 지역공동체에 기반하는 이러한 지역 경제체제는 장거리 수송으로 인한 자원과 에너지의 낭비를 야기할 뿐인 세계적 의존은 가급적 줄이고 지역내 자급자족 또는 가까운 지역들 사이의 상호 의존을 최대한으로 추구하는 경제체제이다. 하지만 생태학적으로 건전한 원칙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와 인권을 존중하는 이러한 새로운(그러나 따지고 보면 참으로 오래된) 대안 경제체제의 창조와 확립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의 삶을 둘러싸고 있는 너무나 많은 이해관계들이, 너무나 강력한 이해관계들이 우리의 발목을 붙잡고 있으며, 또한 우리가 올바른 판단을 내리는 것을 방해하는 매스 미디어들과 초국적 기업들의 공세가 엄청나기 때문이다. 파멸로 향하고 있는 ‘거대한’ 세계화의 물결을 거슬러서 예전부터 있어온 지역화로 다시 방향을 바꾸어나가는 당연한 자구 노력에 대해서 ‘위대한’ 전환이라는 수식을 붙인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위대한 전환』은 그런 방향 전환에 동참하기를 희망하는 이들에게 있어 실제로 자신의 삶에 적용시킬 수 있는 완벽한 지도는 되지 못하겠지만 매우 유용한 나침반은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아주 끔찍한 딜레마에 처해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인간의 진보라는 말의 진정한 의미와 본질을 다시 생각해야 하는 시점에 도달했습니다. 그러나 약 50년 전에 등장한 미래의 비전과 결정들이 세계 도처에서 사회의 관리 과정을 변화시킨 사건들을 촉발했기 때문에 우리에게 필요한 사고와 구조의 변화가 일어나기 어렵습니다. 모든 일이 너무나 빨리 일어났기 때문에 정말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기업의 광고에 의존하고 있는 언론에서는 진짜 이슈들을 거의 다루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장 의존적인 세계 경제의 지속성은 허먼 E. 댈리의 표현대로 불가능의 명제입니다. 대안은 무엇일까요? 이 질문에 많은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 사람들은 세계화의 반대가 그 해답이라고 생각합니다. 긍정적ㆍ부정적 결정을 내리는 사람들을 모두 연결시켜주는 작은 조각으로 경제 활동을 나눔으로써 경제적 지방분권화를 촉진하는 것입니다. 이는 자본을 한곳에 정착시키고 그 통제권을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에게 분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강력한 이해관계는 현재의 추세를 뒤집는 것 같은 일을 성취하는 데 결정적인 방해가 됩니다. 그러나 가장 큰 장벽은 이 주제에 대한 대중의 논의가 제한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관련 이슈들을 눈에 잘 띄는 곳으로 드러내서 주류 정책 토론에 포함시키는 것이 우리의 출발점이 되어야 합니다. 아마 이 책과 같은 책들이 우리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48쪽) |
| 이 책은 Yes24 편집인 추천목록에서 우연히 발견한 책이다. 매일 같이 매스컴에서 경제, 환경, 세계화라는 단어를 듣고 있지만 그 말에 얼마나 큰 의미가 숨겨져 있고, 바로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과 얼마나 깊은 관계가 있는지를 알려줄 수 있는 책입니다. 나아가 단순히 경제, 환경, 세계화의 의미해석에 그치지 않고, 경제란 사람의 생존활동에 다름아니며 경제활동의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 환경임을 생각할 때, 21세기 지구에서 살아가고 있는 당신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대한 새로운 - 그리고 제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매우 논리적이고 설득력있는 - 시각과 해석능력을 기르는데 도움이 되는 책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