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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와 역자 모두 미술사 교수로 1979년 출간된 관련 연구서를 완역한 것이다. 역자가 서문에서 자신이 왜 기독교 도상학을 연구하게 되었는지 이야기하고 있는데, 나도 똑같은 경험을 가지고 이 책을 찾아본 것이다. 수년간 유럽을 돌아다니며 미술관과 박물관, 그리고 성당이나 신전, 궁전 등에서 마주할 수 있는 기독교 도상들을 어떻게 보아야 할지 그 가이드가 필요했던 것이다. 이 책은 구조주의 언어학적 관점에서 기독교 도상학을 하나의 언어로 보고 서술되었다. 마치 언어가 시대와 지역에 따라 변화, 발전 하듯이 기독교 도상도 복잡하고 다양한 형식과 내용을 지닌 도상들로 계속 발전해왔고, 그 이야기를 이 책에서 풀어내고 있는 것이다. 가장 먼저 초기 기독교 도상들은 비기독교나 이교의 도상을 모델로 탄생했다고 말한다. 최초의 기독교 도상들은 서기 200년경에 출현했는데, 그렇다면 예수의 죽음과 부활 이후 한 세기 반 동안 기독교인들이 종교적 이미지를 만들어내지 않았다는 말이다. 이것은 현재 고고학적 증거가 없기에 뭐라 단정할 수 없다고 설명하고 있다. 최초의 기독교 도상들은 바로 기독교인들의 무덤인 카타콤의 벽화를 통해 나타난다고 한다. 어두운 무덤 속에 갇혀 있는 이 미술의 특징은 의외로 밝은 분위기라 하는데, 이러한 장례 미술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슬픔을 초월하며 다소 간략히 그려졌다고 한다. 그리고 극히 도식화된 장면들이 카타콤 속에 그려지거나 석관에 조각으로 새겨질 경우, 죽은 자의 육신 곁에 위치한 이 장면들의 존재는 영혼의 구원, 또는 장례식 기도와 같은 의미였다고 한다. 기독교 공인 이전 초기 기독교 미술에서 그리스도와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의 비중은 미미했는데, 구세주는 여러 가지 다양한 상징적 이미지로만 나타나며 개인적인 얼굴 모습으로는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고 한다. 대신 어린 양을 메고 있는 목자의 이미지나 기도자상, 또는 상반신을 벗은 채, 혹은 반쯤 몸을 드러내놓고 겉옷을 두른 채 걸상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수염 난 남자인 철학자의 모습으로 예수를 표현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모두 로마의 이교도 미술에서 유래된 것이라 하는데, 이교의 도상들 중 인간들을 해방시키기 위해 자신의 생을 바친 구원자 헤라클레스의 업적을 기독교 관점에서 해석해 하느님이 죽음으로부터 신자를 구하는 내용을 묘사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로마 사회 전 분야에 반향을 일으켰던 검투 경기와 그 경기장에 영향을 받아 기독교 의식의 언어도 검투 경기의 어휘에서 많이 차용하여 순교자 혹은 단순한 신자를 운동 경기의 승자에 비유하기도 했다고 한다. 즉, 종교적 체험에서 맛본 승리를 검투장에서의 결투나 승리와 관련된 용어로 묘사했으며, 기독교 도상은 검투 경기에 의해 창조된 도상의 레퍼토리에서 수많은 형상을 빌려왔다고 한다. 또한 기도하는 자세로 하늘을 향해 팔을 뻗고 있는 기도자상 자세를 일컫는 오란테 자세는 기도의 의미일수도 있지만 아주 흔하게는 놀라움을, 혹은 의식에서 갈채 혹은 증언을 나타내는 모습이라 설명한다. 신 혹은 영웅이 하늘로 올라가는 것, 태양과 달을 의인화하는 것, 황제가 누리는 사후 영광과 마차를 타고 개선하는 황제의 표현은 모두 기독교에서 그리스도의 승천을 형상화하는데 차용되었다고 한다. 콘스탄티누스의 기독교 공인 이후에 그리스도의 상징은 군대를 통솔하는 로마 제국의 우두머리로서 모노그램이 새겨진 투구와 황제 깃발을 지닌 황제에게 국한되어 사용되었다면서 이것은 부적 같은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때부터 신격화된 황제를 축복하거나 왕관을 씌워주기 위해 하늘에서 내려오는 손을 표현하게 되었으며, 그리스도는 항상 엄숙하게 옥좌에 앉아 축복의 제스처를 취하고 있고 양 옆에는 천사들과 성인들이 둘러싸고 있다거나 왕관을 들고 성인들에게 왕관을 씌워주기도 하는 모습으로 표현되었다고 한다. 마리아 역시 진주와 보석으로 장식된 예복을 입고 옥좌에 앉아 있는 모습으로 그려졌다고 한다. 특히 예수가 두루마리를 전달해주는 모습은 고위 관리에게 권력을 이양하는 모습과 일맥상통하며, 옆구리 쪽을 직사각형으로 장식하고 어깨에서 핀으로 고정시킨 무거운 망토와 그 위에 걸치는 흰 비단으로 된 아름다운 튜닉과 같이 궁정 고위 관리들의 의복을 순교자에게도 입혀 표현하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동방박사의 경배와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 역시 로마 제국의 모델을 반영하고 있는데, 동방박사의 경배는 로마 황제에게 패한 근동인과 야만인들이 선물과 왕관을 바치는 도상에서 따온 것이고,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은 최고 통치자가 제국의 도시나 정복된 자치 도시를 방문할 때 거행하는 의식에서 따온 것이라 설명하고 있다. 로마 황제와 고위관리 등의 초상화는 얼굴의 기본적 특징조차 고려되지 않고 초상화 옆에 이름이 명기되었는데, 이러한 초상화 모델은 한 개인이 아니라 단지 황제와 고위 관리라는 사회적이며 상징적인 모습을 표현하는 것이었다고 말한다. 이런 초상이 예수나 사도의 초상에 그대로 적용되기도 했다고 한다. 또한 예수 승천과 관련된 장면에서 기도자상으로 표현된 성모 마리아는 성모 자신인 동시에 지상에 있는 교회의 상징으로 표현되기 시작했는데, 이러한 기독교 도상은 도식적 알레고리나 단순하게 인물과 역사적 사건을 상기시키는 대신 기독교 교리의 추상적 개념을 표현해야 했기에 좀 더 많은 변형이 일어나기도 했다고 한다. 특히 고대 말기에 삼위일체의 개념을 형상화하기 위해서 동방박사의 경배 주제를 사용했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매우 오래된 유대의 전설에 각각의 동방박사가 분명히 신이 현현하는 환영을 보았다고 되어 있기 때문이라 한다. 그 외에도 그리스도의 세례 장면이 삼위일체에 대한 유일한 도상학적 해석으로 발전하게 되었다고 하는데, 예수가 세례를 받는 순간 삼위일체의 세 인격이 동시에 주의 현현을 선언하는 복음서의 한 구절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즉, 하늘에서 성부의 목소리가 들렸고, 성자는 요르단 강물 속에 서 있었으며, 비둘기의 형태를 띤 성령이 하늘에서 내려와 성자의 머리 위에 머물렀다는 언급 말이다. 또한 하느님은 보이지 않는다는 법칙에도 예외를 두기도 했다고 한다. 구약에 선지자 이사야와 에제키엘이 자신의 눈으로 하느님을 보았다는 언급이 나온다. 결국 그런 식으로 하느님께서 나타나셨을 때 그들이 한 묘사를 통해 하느님 자체에 대한 회화적 표현이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하느님은 표현될 수 없다는 원칙과 충돌하지 않기 위해 도상 제작자들은 도상을 제작할 때 그것이 특별한 증인들에게만 허락된 순간적이고 예외적인 환영에 관한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표현했다는데, 환영을 보는 사람을 환영 앞에 그리든가, 원이나 빛의 후광을 이용해 형상의 나머지 부분으로부터 초자연적 현상인 환영을 고립시키는 방식을 활용했다고 한다. 도상학적으로 고대 말기에 창조된 지옥으로의 하강은 승리한 로마 황제가 정복한 도시나 지방에서 끌려온 사람들의 무릎을 꿇려 쭈그리고 앉아 있게 하거나 이들의 대표자들을 모으는 알레고리적 도상을 모방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한편 수태고지의 관례적 유형들을 여러 가지 설명하고 있는데, 그 중에 아기 예수가 이미 동정녀 마리아의 품에 나타나 있는 도상이나 두 젊은 여인이 양 옆에서 팔을 잡아 은총을 받는 성모마리아를 부축하는 도상은 내가 예전에 보았던 것은 아니었다. 특히 두 젊은 여인이 나타나는 도상은 대천사에 의해 예고된 하느님의 은총이 동정녀 마리아에게 임하는 순간 마리아가 기절을 하게 되고, 그래서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아기 예수의 탄생 장면에서 몸을 돌리고 있는 요셉의 자세도 내가 본 적이 없는 것이었다. 이것은 예수의 무염시태에 의한 탄생을 재현하고 간접적으로는 성령이 아버지임을 표현하는 방식이라 하는데, 신의 개입에 의한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탄생과 비교해주고 있다. 아이의 수태와 관계없는 올림피아의 남편 필립이 그리스도의 탄생 때 요셉처럼 올림피아와 갓 태어난 아기에게 등을 돌리고 앉아 있는 모습으로 묘사되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 탄생 도상에서는 아기 예수 위로 빛이 비치고 있는 반면, 알렉산드로스의 진짜 아버지인 제우스를 상징하는 뱀 한 마리가 올림피아의 몸을 따라 기어가고 있다는 점도 지적하고 있다. 조토가 그린 벽화 속에서 묘사된 바로는 예루살렘의 황금의 문 앞에서 만난 요아킴과 안나가 서로 껴안고 있는 장면 바로 뒤에 동정녀 마리아의 탄생 장면이 나오고 있는데, 이렇게 포옹 장면과 수태 장면을 연결하려는 시도가 확대되어 방문 장면과 수태 장면을 연결시키게 되었다고 한다. 바로 마리아와 엘리자베스의 만남에 대한 묘사이다. 두 여인은 임신을 했고, 엘리자베스는 경배를 표하며 지상에서 처음으로 동정녀 마리아 뱃속에 있는 아이의 신성함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그 도상 말이다. 한편 그리스도의 육화 개념은 앱스 앞에서 행해지는 영성체 성사 개념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말한다. 영성체는 사실 그리스도의 육화를 미리 가정하고 있었기 때문에 앱스에 성모 마리아의 모습이 자주 나타나게 되었다고 한다. 8세기와 9세기 전반 비잔틴 제국에서는 성상파괴주의자들이 종교적 형상의 표현을 공식적으로 금지시켰는데, 843년에 성상파괴주의자들이 패하고 그리스 정교가 승리하면서, 비잔틴 사람들은 기독교 도상을 다시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초기 기독교 시대 도상적 유산을 되살리려는 노력을 했다고 한다. 성상에 경배하는 것은 그 성상에 신성과 성스러움의 일부분이 현존한다는 사실에 의해 정당화되었기에 그 작품이 부분적으로 비이성적 세계에 속하며 평범한 이미지의 세계와 분리되어 있다고 느끼게 만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각 도상에 내재한 성스러움의 현존을 위해 인체와 사물의 표현에서뿐만 아니라 공간과 움직임에 대한 표현에서도 조형성을 거부하고 태도와 제스처에 있어서도 엄숙함을 유지하는 근엄하고 장중한 양식을 선택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특히 만물의 창시자이며 우주의 지배자인 그리스도가 비잔틴 중앙 집중식 교회에서 하늘을 상징하는 돔 천정 중앙 원형의 틀 안에 흉상으로 표현되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왼손에는 성서를 들고 오른손을 들어 축복의 자세를 취한 모습으로 말이다. 교회의 원형 천장은 하나의 소우주이고, 거기에 표현된 형상들은 이 우주의 구성원들을 가리키며, 그들의 위치는 그들이 살고 있는 우주의 다른 부분들과 대략 일치한다는 의미에서 그리스도와 천사들은 하늘에 있고, 예언자와 성인들은 성모 마리아를 둘러싼 채 땅에 해당되는 벽을 차지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성가대석 벽에 나타난 사도들의 성체배령을 포함하는 같은 높이의 다른 벽들은 구원의 역사에 관한 중요한 사건을 상기하는 장면들로 채워지고, 나머지 벽화들은 영원히 하느님 나라에 머무는 여러 등급의 믿음의 영웅들의 초상화들로 채워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9세기 후반경부터 신의 어머니가 다시 인간미를 띠기 시작하면서 아기 예수를 어루만지는 성모 마리아를 표현하게 되었으며, 천상의 하느님 왕국에 대한 권능을 표현하기 위해 엄격할 정도로 위엄 있는 모습과 장엄한 모습을 한 그리스도 도상은 12세기 말 모두 사라지며, 이후 인간화된 다양한 유형의 그리스도 성상이 만들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교회의 사제들을 천사들로 대체해서 그리게 되었는데, 사제에 의해 지상에서 거행되는 예배의식은 천사들이 하늘에서 거행하는 예배의식의 반향 또는 모방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한편 비잔틴 제국의 동로마 제국이 아닌 서로마제국과 서구 기독교에서 도상은 지식, 특히 신앙 내용에 대한 지식의 수단이며, 결과적으로 종교와 그것이 내포하고 있는 신비에 대해 가르치는 수단으로 여겨졌다고 한다. 즉, 카롤링거 왕조가 끝났을 때 서방의 기독교는 성상파괴주의자들처럼 모든 종교적 도상을 거부하는 대신 그것을 단지 종교 교육적 활동의 차원에서 사용되는 도구와 신의 섭리에 의한 역사적 인물들과 사건들을 상기시키는 수단으로 사용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회화나 조각이 아닌 기독교 관련 책에 삽화와 채색화로 묘사되기 시작했다는 말이다. 이러한 도상은 지식을 다루는 수단이지 비잔틴에서처럼 비이성적 현존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서구 도상 제작자들은 장식적 문양 속에 신체의 일부인 머리나 팔, 다리 하나를 해체해 표현하는 것을 피하지 않다고 한다. 또한 중세 초 도상 제작자들은 원형, 반원형, 방사성 윤곽을 그리는 것을 모방하면서 기하학적 형상들을 나타냈는데, 이것은 우주 한복판에 위치한 소우주로서의 인간과 천사들의 위계, 나침반과 복음서 저자들의 상징 같은 다른 주제에 적용되게 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모습은 교회 건축에도 적용되었는데, 특히 교회 파사드는 신학적 또는 전례에 관한 이야기보다 교회 안에 아름답게 장식되어 보관된 성유골의 주인공인 성모 마리아, 성인, 사도, 증거자, 그리고 순교자에 대한 예배와 관계되는 것을 장식하게 되었다고 한다. 즉, 교회의 파사드에는 난이도 높은 교육적인 장면이 거의 나타나지 않은 반면, 가장 흔한 전례나 가장 널리 퍼져있는 설화를 반영한 주제는 늘어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밖에 12세기에는 성서에 대한 조형적 주석을 제시하려고 노력했다고 하는데, 스테인드글라스로 도상학을 확대 적용시켰다고 한다. 특히 이 때 만들어진 방아의 알레고리가 특이했다. 모세로 대표되는 구약과 바울로 사도로 대표되는 신약이 방아로 표현된 예수를 통해 연결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묘사되는 곡식을 붓고 있는 인물은 모세로 구약을 상징하고, 정미된 곡식을 담고 있는 인물은 바울로 사도로 신약을 상징한다는 것이다. 둘의 행위를 이어주는 방아는 그리스도를 상징하며, 그는 구약의 율법을 새롭게 하여 복음서로 이를 전달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라 설명한다. 전반적으로 이 책은 초기 기독교 도상과 이것이 중세까지 이어져온 모습을 담고 있다. 도상도 같이 제시하고 있어서 이해에 도움이 되었지만, 도상이 흑백사진에다 그렇게 품질이 좋지는 않아서 알아보기에 좀 어려웠다. 하지만 기독교 도상을 이해하는데 이 책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