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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의 타락은 무엇때문인가. 그리고 삶의 무게와 비극의 책임을 어디까지 개인에게 지울 수 있을까. 그리고 또 그의 가족들은? 이 만화는 전쟁의 트라우마와 장애를 지닌 상이용사이며, 여성으로서 숨어 지내며 변태성욕에 중독된 여장남자였고, 자기 곁의 부인을 폭행하는 가정 폭력범이던 한 남자에 대한 이야기다. 하지만 사실 그는 젊고 잘생긴데다가, 유망하고 돋보였기 때문에 장교로서 최전선에서 목숨을 걸어야했고, 전쟁 중 가난 속에 여성으로서 열악한 봉재공장의 샅바느질과 고된 가내 수공업을 참아냈으며, 사면 후에는 본래의 성 역할에 충실하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사회와 동물적 본능은 그를 쉽게 놔주질 않았다. 자신을 군대로 끌고간 그 세상은 여성으로서 폴을 착취했으며, 나중에는 남자도 여자도 아닌 광대로 전락시켰다. 결국 그는 자신을 처음으로 여장시킨 자기 부인에게 사살당한다. 세상은 비극과 부조리의 집합이라지만, 폴과 루이즈의 삶은 너무나 기구했다. 그렇다면 이 모든 비극을 폴에게만 쉽게 책임 물을 수 있을까? 이 만화는 경쾌한 그림체와 달리, 선뜻 답하기 어려운 주제를 다룬다. 이야기 자체는 금방 읽힌다. 속도감있게 구성됐으며 그림도 미려하다. 하지만 전반적 톤이 가벼워서, 이야기가 가진 비극의 깊이를 제대로 살리지 못해 아쉽다. 분명 작가인 클로에 크뤼쇼데는 실력이 있다. 특히 인상적인 작화는 불과 한페이지의 창틀 묘사로 몇년의 시간흐름을 담아낸 부분이다. 이런 디테일한 작화는 작가 본래의 내공이다. 하지만 적어도 이 책에선 그 실력 탓에 너무 많은 것이 그림 아래로 뭍혔다. 작가가 그리지 않은 시간 이면에는, 폴이 여성으로서 눈뜬 변태 욕정과 그 속에서 겪은 섹스 중독, 성 정체성의 혼란, 루이즈와의 심각한 가정파탄이 자리잡고 있다. 만화를 세번 쯤 읽고서야 이 참극이 단순한 변태 성욕자들간의 아귀다툼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이 부분을 만화가 가볍게 지나간 점은 아쉽기만 하다. 얼마나 비극적인가. 루이즈가 자신의 남편을 쏜 것은. 성도착증과 밤거리 섹스에 중독된 밤의 여왕으로부터 해방된 루이즈도 사실 일상생활조차 어려운 정신착란의 상태였을 것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폴을 처음으로 여장시킨 이 또한 그녀였다는 점이다. 그 상황에서는 폴도, 루이즈도 궁핍 속에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 이런 종말은 당시 원피스를 입히는 루이즈도, 순순히 따라준 폴도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니마와 아니무스 속에서, 또 이드와 타나토스 아래에서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오가며 살아간다. 이 것이 연약한 동물로서 인간의 삶이다. 폴과 루이즈의 비극은 남의 일만은 아니다. 죽음의 공포로부터 도피와 굶주림을 피하기 위한 노력, 금단의 선을 넘을 때 그 스릴과 그 쾌락에 무섭게 중독되는 연약한 인간의 마음. 어느 누가 위 본능으로부터 하나라도 자유로울 수 있을까. 우리는 때때로 너무나 쉽게 누군가의 삶을 평가한다. “네가 열심히 살지 않은 탓이야.” “순간 참지 못한 네 잘못이야.” “변태.” “비겁자.” “넌 왜 사는지 모르겠다.” “왜 저렇게밖에 못사나. 열심히 안살면 나중에 저렇게 된다.” 하지만 누가 전쟁과 부모의 가난, 장애같은 초월적 압력, 죽음의 공포와 굶주림의 고통, 외로움, 쾌락의 갈증에서 자유로울까. 극단적 환경을 인내하고 이겨내는 것은 극소수의 초인들이다. 보통 인간은 그런 인내력과 행운을 갖지 못한다. 그것이 인간이라는 동물의 태생적 제약이다. 하지만 인간이라서 몰락할 수 밖에 없는 어떤 누군가를, 우리는 또 사회는 너무나 쉽게 비난하고 평가한다. 마치 자신은 극복해낸 초인인 것 마냥. 하지만 저런 전쟁통과 가난, 장애 속에서 폴처럼 생존만을 위한 극단을 경험못한 이들의 말은 그저 가볍기만 하다. 말의 무게를 위해선 무언가 말하기전에는, 얼마나 상황을 알고있는지 일단 한번 되뇌어봐야 한다. “누구든 죄 없는 자, 먼저 돌을 던져라.” 유명한 저 성경구절에서 말하는 죄란 인간으로 태어난 원죄 자체다. 우리는 사람이기에 저마다 동일한 삶의 무게를 지녔고 본래부터 크게 다르지 않다. 누가 폴과 루이즈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까. 그저 살기 위해 노력하다가 그들은 그렇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사회에서도 저렇게 억압된 채 음지 속에서, 영혼마저 좀먹고 부서져가는 가련한 이들이 얼마나 많을까. 우리는 때때로 남들의 몰락에 너무나 쉽게 돌을 던진다. 결과적으로 폴과 루이즈는 변태 여장남자와 살인자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꼼꼼히 읽어봤다면 누가 그들의 삶을 평가절하하고 단죄할 수 있을까? 평온한 지금의 시대에 한편으로 감사하며, 비극속에 떠나간 부부의 안식을 바라고 기도한다. 실화였기에 더욱 무겁고 어려운 책이었다. |